■ 책 소개
수십년간 밀라노와 오사카를 왕복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 문화를 개척해 온 저자는 전통 공예에서 디자인의 미래를 본다. 동양 디자이너가 세계 속의디자이너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우리의 동양 문화적인 감성과 혼이 세계 속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 속에서전통 공예와 디자인을 함께 어우러진 미래에 대한 디자인의 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통이 전통으로만 그치지 않고 시간과 국경을 뛰어넘어‘공통’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 기타 도시유키
1969년부터 환경 및공업 디자이너로 일본 및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국내외의 브랜드부터 생활용품,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히트 상품을 탄생시켰다. 작품 대부분은 뉴욕현대미술관, 파리국립현대미술관, 뮌헨현대미술관 등 세계의 박물관에 영구컬렉션으로 전시되어 있다. 최근에는 오사카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중국레드스타디자인어워드(Red Star Design Award)심사 위원, 싱가포르 정부의 디자인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디자인 교육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한오랜 기간에 걸쳐 필생의 작업으로서 일본 전통 공예, 지역 전통 산업을 활성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고, 디자인 정체성 규명을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4년부터 한중일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구및 국제 전시를 발표하고 있다. 2006년 국민대학교 우수연구센터,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소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었고, 2009년 ‘한중일 일상에서의 휴’라는 주제로 국제전시와 2009OCD International Conference를 개최했다. ‘동양문화 가치와 디자인적 실천’이라는 주제로 매년 2회 《Journal ofOriental Culture & Design》을 발간하고 있으며, 인문학, 역사학, 비교문화학과 디자인을 접목한 다학제적 통합교육도실시하고 있다.
서문
영혼을 담은 물건 만들기
창고로 변해 가는주거 공간
전통을 일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고부가 가치 제품에 요구되는 독창성
시장을해외로
종이 뜨기 장인과의 만남
플라스틱 전성기로
전통종이의 오늘
칠기와의 만남
사용하는 입장이 되다
칠기 제품의매력
제3장 후쿠이현 사바에의 안경과 시계
안경 기술을 활용한 시계의 개발
어떻게 전달할지의중요성
제4장 니가타현쓰바메의 커트러리
양식기의 산지 쓰바메
고품격 물건을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가
(재)니가타산업창조기구 - 구로카와 레이
니가타현의 생활 산업활성화에 종사한 지 20년
첫 단계만 최저 10년
기업의 디자인 역량을 육성한다
제5장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의 나무쪽 세공
나무쪽 세공장인과의 만남
현장의 목소리
(주)쓰유키목공소 -쓰유키 기요카쓰
3대째의 30년
디자이너와의 작업
제6장 사가현 아리타의 도자기
저가 경쟁으로는 버텨 나갈 수 없다
꽃 접시 [하나]의탄생
지역 전통 공예 산업 활성화
현장의목소리
아리타 나나쿠라 덴페이 가마 - 이케다 가즈시
디자이너와의 협업
프로듀서의 유연성
무엇으로 승부할것인가
일류를 만든다
아리타 나나쿠라의 성과
후기
디자인 미래를 바꾸는 전통의 힘
서문
전통을 일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전통 공예의 활성화를 위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해 온 생활과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일상생활에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과제에 뛰어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 공예는 자연의 소재를 지혜롭게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제한된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여 답을 낼지가 중요했다.
우리의 과제는 장인의 기술과 제한된 소재를 살리며, 새로운 기술까지 고려해 현대의 생활에 맞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가 후원자가 될 것이냐 하는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할 사람이 먼저 있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원칙이다.
지금까지 나는 생활 도구를 만들고 그것이 쓰이기 위한 토대, 생활문화 그리고 경제, 산업적인 토대를 만들었다. 즉, 산업의 존재 가치를 명확히 한다는 주제를 기본으로 삼고, 의식적으로 디자인과 기획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 왔다. 나는 전통 공예를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통 공예의 배경에는 항상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생활과 산업으로서의 측면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이런 부분이 반드시 잘 될 것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는다.
지역 전통 공예 산업, 전통 공예와 디자이너의 협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생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산업과 그 뒤를 잇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는 성공 사례이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과 장인 정신과의 협력이다.
고부가 가치 제품에 요구되는 독창성
지금의 전통 공예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시장 개척이다. 즉, 값싼 제품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진짜 장인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일본의 제조업은 값싼 대량 생산품뿐 아니라 감성 높은 고부가 가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부가 가치 상품에는 독창성이 필요하다. 전통 공예품에는 장인이 혼을 불어넣은 끝에 완성된 물건으로서의 독창성이 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을 현재의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 만들기에 활용하여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때에 전달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유통이나 시장 문제는 중요 사항이 되며, 전체를 기획할 수 있는 인재도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제안되고 있다. 본디 자연과 함께해 온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쓰면 쓸수록 색도 차분해지고 기분 좋은 촉감이 만들어진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편리한 일회용??을 대체할 긍정적이고 가까운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후현 미노의 전통 종이
종이 뜨기 장인과의 만남
디자인과의 인연을 맺은 것은 알루미늄 메이커 신제품 개발부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알루미늄을 재료로 한 일용품 등의 신제품 개발 작업은 즐거웠지만 다른 소재에도 흥미를 느낀 나는 독립을 결심하고 1967년 디자인 사무실을 설립했다. 그리고 디자인의 목적,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1969년 가을 이탈리아행을 결심했다.
미노의 전통 종이 장인 후루타 유키조 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68년경이다. 그 무렵은 손으로 뜨는 전통 종이보다 ??기계 뜨기가 더 좋다??라는 풍조가 일반적이었던 시절로, 후루타 씨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를 보고 새삼 느낀 것은 기후와 풍토에 맞추어 배양되어 온 기술과 물건에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후루타 씨를 방문했을 때, 그는 종이 뜨기를 ??그만 두려?? 하고 있었다. 미노는 대표적인 종이 산지이다. 그러나 기계 뜨기로 만드는 펄프지의 진출로 장인들이 잇따라 작업을 포기하고 있었다.
미노 종이는 약 1300년 전부터 만들어져 왔다. 지금도 나라 지방의 쇼소인에는 다이호 2년의 호적 용지가 보존되어 있다. 원료는 닥나무 껍질로, 내구성과 튼튼함, 섬유 길이의 특성 때문에 전통 종이를 만드는 데 뛰어난 소재로 잘 알려져 있다. 펄프는 세월이 지나면 누렇게 변하지만, 전통 종이는 오래도록 그 소재가 변질되지 않는다.
전통 종이가 왕성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널리 퍼지던 무렵이다. 경전을 기록하거나 답례품, 진상품으로도 쓰였고, 편지나 서적, 의류 혹은 등롱이나 창호지 등 일상적인 용도로 쓰였다. 에도 막부 때는 장지문을 바르는 용도로 봉납되기도 했고, 쇄국시대에는 나가사키의 데지마 등지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그런 전성기 때에는 전국 5,000호 정도의 공방에서 얇고, 강하고, 흠 없는 종이를 떴다고 한다.
미노 종이는 물과 빛과 숙련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한다. 우려내고, 삶고, 헹구고, 두드리고, 뜨고, 말린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소재로서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이다. 기계 뜨기로 만든 닥종이는 겉보기에는 비슷하더라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차이가 난다. 기계 뜨기 종이에 끈기가 없고 약한 것은 아무래도 섬유가 짧은 것을 재료로 쓰는 탓일 것이다. 반면 장인이 손으로 두드리고 시간을 들여가며 건조시킨 것은 튼튼하며 감촉도 좋다.
플라스틱 전성기로
밀라노로 건너간 지 2년째 되던 해, 조명 기구를 디자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이탈리아 조명 업계는 플라스틱 전성기였다. 굳이 이 손 뜨기 종이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전통 공예가 지닌 독창적이고 우수한 힘 때문이다. 나는 후루타 씨의 종이를 사용해 족자처럼 단 한 장의 종이를 늘어뜨리는 간결한 조명 기구를 만들었다. 그 시작품을 빌루멘사에 보여줬다. 종이를 통해 새어나오는 빛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그곳 경영자는 제작을 속행했다. 1971년 <타코(TAKO)>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기까지 반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종이에서 새어나오는 빛 특유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조명 기구 회사의 공감을 얻고 또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전통 종이는 펄프 종이와는 달리 전구의 열기에 강하고 오래 사용해도 거의 변색이 없다. 후루타 씨는 "오랫동안 투과 기술은 쓰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쓰던 도구가 있다"며 창고에 남아 있던 옛날 종이에 감물 바른 것을 꺼내 와 여러 가지 시험을 했다. 종이를 뜰 때 대나무 발 같은 것을 사용하는데, <타코>에서는 그 발 크기를 그대로 조명 사이즈에 적용했다. 이 종이 뜨기 발의 치수는 손을 크게 펼쳤을 때와 작게 펼쳤을 때의 크기로 잰다. 수작업으로 뜨는 종이의 치수를 그대로 활용하면 버리는 부분 없이 소중한 재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1971년 전통 종이 특유의 아름다운 주름을 살린 조명 <쿄(KYO)>를 발표했다. 작게 접었을 때 생기는 주름을 균등하게 만들기 어려워 생산 단계에서 깨나 고생을 했다.
<타코>를 디자인할 때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사 하나면 벽에 걸 수 있는 간편한 조립, 분해하면 작고 가벼워지는 편리한 수납과 운반 구조를 염두에 두었다. 또 가능한 한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려고 했다. <타코>는 알루미늄판을 손으로 접고 구부려 조립하는 키트 감각의 제품이다. 연과 비슷한 이 조명 기구는 발표 초기부터 밀라노의 백화점과 인테리어 전문점에 진열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로부터 40년,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 중이다.
당시 <타코>나 <쿄>는 유감스럽게도 일본에서는 별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창 고도성장 중이던 일본은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어디나 똑같은 평면 배치의 주거 공간에서 사람들이 선호했던 것은 값이 싸고 편리한 형광등이었다. 오히려 "그런 조명을 걸 벽이 없다"며 번거롭게 여겼다. 이탈리아나 독일에서는 <타코>가 먹혀들었다. 전후 부흥을 이루고 넓어진 일반 주택은 사람들이 모이는 살롱, 인생의 무대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코>가 일본이 아니라 외국에서 발표된 또 하나의 이유로는 회사 경영자의 빠른 판단과 결정이 있었다. 이탈리아에는 개인 회사가 많아 일단 회사 대표가 결단을 내리면 일의 진행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논의와 실무의 진행 속도가 일본에 비해 빠르다.
요즘에는 전통 종이라고 해도 태국이나 중국에서 뜬 종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만이 가진 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부가가치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다.
전통 종이의 오늘
후루타 씨의 작업장을 찾았을 때 닥나무를 물에 담그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종이 뜨기 작업에는 대량의 맑은 물이 필요하다. 당시 나가라 강 상류 이타도리 강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물의 흐름을 조금 막아 닥나무를 하룻밤 담가 두면, 불순물이 빠지고 하얀 종이의 원료가 된다. 일본의 옛 전통 공예는 물과 자연과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다. 그것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배양되어 왔다. 따라서 그 환경이 파괴되면 전통 공예 산업도 시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나가라 강 맞은편에서 호안 공사가 시작되었다. 콘크리트 둑이 만들어지고 강가에 진흙이 쌓여 풀이 나고 순식간에 강의 표정이 달라졌다. 당시 이타도리 강둑을 따라 약 400호쯤 있던 종이 공방은 이제 4호 정도만 남아 있다.
"장인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서는 좋은 종이를 뜰 수 없다", "일주일 중 좋은 종이를 뜰 수 있는 때는 불과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후루타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머리로 이치를 배우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몸으로 기술을 익히고 작업하는 매 순간에 몰두하는 것. 전통 공예 산업에는 항상 지극한 정성이 담겨 있다. 본디 전통 공예란 쓰임으로써 비로소 기술이 되고 물건이 되는 법. 장인 후루타 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지역 전통 공예 산업의 활성화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이시카와현 와지마의 칠기
칠기와의 만남
1984년 와지마에 본사를 두고 옻칠 제품을 취급하는 지역 전통 공예 기업 오무카이고슈도의 오무카이 미노루 씨는 당시 쇠퇴 기미에 있던 와지마 칠기에 뭔가 새로운 방향이 없을까 하고 내게 도움을 청해 왔다. 나는 장인의 혼이 담긴 옻칠에도 흥미를 갖고 있었기에 오무카이 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와지마를 방문해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디자인 이야기, 이탈리아의 디자인 동향, 미노 전통 종이를 사용한 조명 기구의 사례 등을 강연 형태로 이야기했다. 거기에는 젊은층도 포함해 지역의 장인들이 참석했다. 그중에는 유명한 와지마 옻칠 장인 가도 이사부로 씨도 있었다.
칠기는 사치품이다. 하나의 모델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제품이 아니다. 특히 자연목과 천연 옻칠만을 고집하는 와지마 칠기의 경우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가치를 어떻게 전할지가 큰 과제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칠기는 조몬시대 당시 주술사의 머리를 장식하던 빗이 출토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부터 의식에 칠기가 이용되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와지마 옻칠의 기원이나 마을이 온통 산지가 되기 시작한 경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약 600년 전인 무로마치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옻칠과 와지마 옻칠을 구분하는 특색은 와지마 옻칠은 부근의 산에서 채취하는 지노코가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노코는 목재를 감싼 규조토 거죽에 옻칠이 잘 스며들면서 더욱 튼튼하게 한다. 다른 옻칠 산지보다 와지마 옻칠이 견고하다고 알려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와지마 옻칠이 번성한 데는 뛰어난 품질 말고도 판로의 개척이 발달했다는 흥미 깊은 배경이 있다. 에도시대 와지마 칠기의 수요는 행상에 의해 교토와 오사카, 또 야마구치와 홋카이도까지 확대되었다. 와지마는 겨울에는 눈 때문에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그래서 행상이 여름에 고개를 넘어 주문을 받아 오면 겨울 내내 작업을 해서 완성한다. 그리고 날리 풀리면 만드는 쪽에서 발품을 팔아 단골 거래처로 직접 배달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무사와 공가(公家)에서의 수요를 잃었을 때 전국의 옻칠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와지마 사람들은 부유한 농가와 상가 그리고 요정이나 여관의 영업용 주문을 개척하는 등 행상시대부터 손님과 직접 대면하면서 터득한 수요를 파악하는 안목과 판로 개척 정신을 활용했다. 물건을 주문해오는 거래처가 달라졌다고는 해도 와지마 칠기는 근대에 들어서도 합성수지나 합성 도료를 사용하지 않고 옛 명성 그대로 고급품의 가치를 늘상 지켜왔다.
사용하는 입장이 되다
와지마 칠기의 제조 공정은 복잡하다. 칠기에 사용되는 소재는 천연 나한백이나 느티나무 통나무 목재 그리고 옻나무의 수액, 즉 옻이다. 수액을 모으는 ??옻 모으기?? 작업에서 직경 15센티미터 정도의 나무 한 그루에서 채취할 수 있는 수액은 약 150그램이라고 한다. 밥공기 몇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제조는 완전한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크게는 목재 깎기, 칠하기, 갈아내기, 그리고 침금과 마키에(금가루나 은가루로 칠기 표면에 무늬를 그려넣는 기법), 그림 그리기 등의 장식하는 작업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과정을 더욱 세분화하여 하나의 제품이 완성하기까지 약 120~140가지의 공정을 거친다. 완성되는 데 보통 6개월, 그동안 30~40명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옻칠이라는 소재를 두고 내가 제일 먼저 착안한 것은 "먹는다"라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위와의 관계였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자라난 공식적인 의식 부분, 일상 속의 "잔치" 기분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구체적으로는 젓가락, 밥공기, 사발, 찻잔, 통 등 일식용 칠기 외에 서양 요리에 쓸 수 있도록 나무에 옻칠을 한 포크, 접시, 쟁반, 볼 등 양식기를 곁들여 본 것이다. 국경을 넘어 다양해진 현대의 식생활에 대한 적응과 칠기의 소재감을 식탁에서 연출하는 효과도 생각한 결과이다.
나는 나름대로 사발의 뚜껑 종류를 연구해 보기로 했다. 먹기 직전의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 내어 디자인에 반영한 3개의 뚜껑 손잡이를 고안했다. 하나는 손으로 뚜껑을 움켜쥐듯이 여는 디자인, 또 하나는 뚜껑을 뒤집으면 접시로도 쓸 수 있는 것, 국그릇답게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열 수 있는 형태, 먹기 전에 안에 든 게 무슨 국일까 하는 기대함을 갖게 하는 형태이다.
당시에는 "좋은 물건이 나왔다"는 실감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칠기를 사용하는 데는 자신이 능숙하게 길들여 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20년 이상 흐른 지금에야 겨우 그런 것들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느끼지 못한 감격을 이제야 느낀다. 이것이 칠기 제품이 갖는 커다란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디자인할 때 그 기업이나 공방에서 자신 있는 부분을 파악하여 조건이 유리한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나는 와지마 칠기의 야무지고 탄탄하고 오래 가는 특성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옻칠 표면의 아름다운 광택을 고집했다. 해외에서 발표할 경우도 고려해 서구의 래커(Lacquer)와 구분이 쉽지 않은 로이로(옻칠을 입힌 뒤 다시 문질러 광택을 내는 기법)는 손상되기 쉬운 부분에 천을 대고 옻칠로 접합해 천의 결이 표면에 드러나도록 했다. 그 밖에 크기를 달리 하거나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사용법을 제안했다.
칠기는 실용적이지도 않고 식기 세척기에 넣어도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평생 사용할 소중한 도구이자 자신의 보물로서 지닐 수 있는 물건이다. 또한 플라스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능성과 독특한 자연의 운치를 지니고 있다.
1년 정도 걸려 최종적으로 사발에 쟁반, 찬합, 통 그리고 다다미 2장 크기의 세레모니 스페이스 <이첩결계>를 포함한 29가지의 시리즈 <컬렉션 KITA>가 완성되었다. 오무카이 씨와의 대화에서 얻은 영감 "현대의 이벤트 공간은 거실이라는 것, 거기서 열리는 파티와 명상의 공간을 만들 것"을 테마로 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미디어를 통해 주목을 받았으며, 다른 전통 공예 산업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사가현 아리타의 도자기
저가 경쟁으로는 버텨 나갈 수 없다
2003년부터 관여하기 시작한 아리타에서의 프로젝트 "아리타 나나쿠라"는 처음부터 프로듀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접근했다. 규슈 사가현에서 아리타도자기공업협동조합 대표인 후쿠다 마사오 씨가 나를 찾아와 새로운 아리타 도자기를 모색한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아리타 도자기는 가격이 자꾸 떨어지고 있었고, 백화점에서의 전시 판매도 난관에 봉착해 ??백엔숍??에서 거래 교섭까지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아리타를 찾아갔다. 아리타도자기공업협동조합은 ??아리타 나나쿠라??라는 이름으로 7개의 공방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모인 조직이다. 가마 공방은 대대로 이어온 것이고, 예로부터 오리지널 상품을 만들어 왔기에 공방별로 특색 있는 그림을 지니고 있었고, 운영자는 작가로도 활약하고 있었다.
아리타를 방문하고 느낀 것은 400년 전 유럽에 고품질 제품을 수출하던 전성기 때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었다. 그 옛날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중국과의 전쟁으로 도자기의 일대 산지를 들여 올 수 없게 되자, 아시아 근린을 돌아다니며 도자기 제품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아리타에 질 좋은 도자기 흙을 채취할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도자기 산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아리타는 급속하게 도자기의 일대 산지가 되었고, 17세기에는 이마리 도자기 등 고도의 기술을 완성하고 유럽으로 자기 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지역으로 발전했다.
사가현립규슈도자문화관을 가 보면, 당시에 도자기 산업으로 번창했던 지역의 모습과 그 역사적 경위를 알 수가 있다. 옛날 도기 형태나 모티브를 살펴보다가 작은 접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화꽃 3송이가 둥글게 겹쳐진 듯 배치된, 마치 세잎클로버 같은 모양의 접시였다.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그란 접시로는 한 가지 음식만 담게 되지만, 이 접시를 이용하면 3가지 요리를 곁들여 담을 수 있다. 새로운 식생활 문화의 콘셉트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꽃 접시 <하나>의 탄생
평범한 동그란 접시와 클로버 모양 접시의 제조 과정은 동일하다. 접시에 쓰일 흙의 중량은 같고 구울 때 필요한 열량도 같다. 그러나 클로버 모양의 접시에는 한 번에 3가지 요리를 담을 수 있다. 요리를 담는 방식이 변할 것이다. 그것이 직감적으로 전해지는 접시 모양에 강한 독창성이 있다. 이 <하나(HANA)> 접시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식기를 연구했다.
다리 달린 그릇도 생각했다. 만약 다리를 4개 달면 테이블 위에서 뒤뚱거려 안정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고대 수많은 그릇들처럼 다리를 3개 달았다. 그러면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또 이 3개의 다리가 달린 그릇에는 뚜껑도 달았다. 따뜻한 스프나 조림 등을 담기에 적당할 것이다.
일본 요리는 물론 중국 요리, 한국 요리, 인도 요리, 이탈리아 요리에도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다. 세잎클로버 모양 접시의 변형형이나 컵 등 잇따라 시작품을 만들었다. 연구를 거듭해, 커피잔 손잡이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안하고 여러 종류의 아스파라거스를 담을 수 있는 부메랑 모양의 접시라든가 포트 또한 대칭형으로 만들지 않고 독특한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하나> 시리즈는 그 모양 자체가 독특한 그릇이다. 이 모양을 최대한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또 하나의 큰 시도를 했다. 아리타 도자기의 특징인 그림을 잠시 없애버린 것이다. "접시는 요리를 담는 캔버스"라는 콘셉트대로 처음부터 일부러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새하얀 그릇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 개념은 장인들이나 아리타 도자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대담한 제안으로 아마 저항도 있었을 것이다.
새하얀 그릇 시리즈 <하나>의 첫 번째 시작품이 완성된 단계에서 2003년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는 "아비타레 일 템포"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그 전시회에서 종이와 옻칠 전통 공예품을 중심으로 한 내 작품전 코너를 배당받았다. 갑자기 이 아리타 도자기 <하나>의 신작을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공방에 몇 종류를 더 부탁했고 전시 일정에 맞추어 무사히 출품할 수 있었다.
나는 아리타 나나쿠라의 멤버를 이탈리아로 불렀다. 나는 무엇보다 그들에게 아리타 도자기가 세계의 미디어를 향해 발표되고 있는 현장을 보게 하고 싶었다. 나중에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고 들었다. 기업의 경영자와 전통 공예에 종사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 시장을 직접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된다. 넓은 시야로 마케팅을 느끼고, 그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전시회장에는 TV를 비롯한 취재진이 많이 몰려들었고, <하나> 시리즈는 아직 시작품 단계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역 전통 공예 산업 활성화
최종적으로는 다양한 그릇이 모여 그 수가 50가지 이상이나 되었다. 지금은 국내 전시회는 물론 프랑스의 "메종 드 오브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메세" 등에서도 발표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식기는 손에 들고 써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느 날 보험 권유를 하러 온 사람이 전시되어 있던 <하나> 시리즈가 마음에 든다며 사간 적이 있다. 그 후 그 사람을 통해 잇따라 주문이 들어왔다. 아리타에는 이 그릇을 사용하는 뷔페식당이 있고, 결혼식 답례품으로 이용하고 싶다거나 레스토랑을 개점하면서 영업용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의뢰도 늘기 시작했다.
가격 문제가 남아 있는데 경제산업기구가 추진 중인 "재팬 브랜드 프로젝트"의 예산 지원 대상이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서 개발해야 하는 제품을 행정 예산으로 개발하게 되면 의미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신들의 자금으로 정말로 가치가 높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행정 예산에 기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면 의식도 희박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자력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행정 보조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