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의 블로그를 정리해서 엮은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의 후속편으로, 디자이너의 자세와 실천을담고 있다.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에도 균형이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나가오카는 결국 디자인은 그 속살을 드러내야 진정한디자인이란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얼굴을 드러내는 디자인이다.
■ 저자 나가오카 겐메이
1965년홋카이도에서 출생했다. 1990년, 일본디자인센터에 입사하여 이듬해인 1991년, 하라 겐야와 함께 일본디자인센터 하라디자인연구소를 만들었다.1997년, 일본디자인센터를 퇴사하고 디자인 사무실 DRAWING AND MANUAL을 설립한다. 2000년, 디자이너로서의 업적을 집대성한새로운 소비의 장을 만들기 위해 도쿄 세타가야에서 D&DEPARTMENT PROJECT를 시작한다. 디자인과 리사이클링의 결합이라는새로운 형태의 이 사업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2002년, 오사카의 미나미호리에에 2호점을 오픈한다. 같은 해에 디자인적으로 가치 있는1960년대 일본 제품을 재생산하는 60VISION를 시작, 그 일환으로 가구 회사 가리모쿠의 60년대 상품들을 리브랜딩하기 시작했다. 현재에이스(가방), 스키보시(신발), 아데리아(식기) 등 14개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활동으로 2003년에 굿디자인상 가와사키 가즈오심사위원장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는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목소리를 담은 CD레이블 VISION"D VOICE를 제작한다. 롱라이프 디자인을 테마로 한 격월간지「d long life design」을 2005년에 창간하고 2007년 10월, 평범한 디자인의 사무용품을셀렉트한 숍 D&MOTELS STORE를 도쿄에 오픈한다. 현재 일본의 디자인 소비 문화를 선도할 숍 인프라 NIPPON PROJECT를각 지방의 젊은 직인들과 함께 일본 전역에서 전개 중이다. 그 1호점인 D&DEPARTMENT PROJECT SAPPORO by 3KG가2007년 11월, 홋카이도의 삿포로에서 오픈했으며 야마가타현, 가가와현 등 몇몇 장소에서도 준비 중이다. 일본디자인커뮤니티 회원이다.
■역자 이정환
경기도 청평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ㅍ손정의, 21세기 경영전략』『도쿄대학학생들은 바보가 되었는가』『준비된 행운』『천하무적 잡학사전(2)』『20대, 재능을 돈으로 바꿔라』『면역혁명』 등을번역했다.
2005
11 17|그들은 "검소"하고 "건실"하며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02 08|역시 "먹을 수 있는" 그림에 그린 떡을 만들어야 한다
0224|일반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새로움을 느끼자
03 01|일본의 리듬
03 30|사람은 역시 사람의 열기를 느낄 수있는 장소에 모인다
05 31|최근에서야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일본 지도
06 11|"즐겁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수주하기 쉬운디자이너
07 02|디자이너에게도 의사 같은 "검진"이 있다
07 18|원점은 있는가? 그 원점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10 24|"바뀌지 않는" 것과 "바뀌는" 것
12 27|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린다
01 09|"도쿄적"이라는 것
02 08|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새롭게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03 14|D&DEPARTMENT 삿포로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 가고 싶다
03 26| 삿포로가믿음직스럽게 유지되고 있다
04 11|"D&DEPARTMENT PROJECT"를 "NIPPON VISION PROJECT"로
04 18|새로운 "고급"
04 20|충동구매는 없다
06 09|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찾는다
07 06|지역을회생시키는 해답은 "도쿄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것"
07 10|전 지역에 작은 디자인이 들어간 화분을 만들자
09 19|국가의수준을 높인다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11 15|삿포로점, 오픈
12 20|행복 안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1221|후카사와 나오토씨에게
2008
01 04|"상품 판매에서 철수한다"는 각오로 임하고싶다
01 10|현실적인 우리의 모습
01 24|NIPPON VISION
02 05|D&DEPARTMENTPROJECT라는 활동체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02 25|중학생이 행동에 나서게 하려면
03 04|다지인 프로듀서가 오히려 방해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03 10|스포트라이트는 영원히 비추는 것이 아니다
05 03|이른바 전통 공예, 이른바 물산, 이른바물품 전시회
05 11|물품 전람회의 디자인판
06 17|여러분 모두, "디자인 여행"에 협력을!
06 27|미래가걱정됩니다
06 30|스타넷의 바바 씨를 만나러
누가 일본의 제조업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0704|"버리는"방법으로 진행한다
07 05|발돋움하지 않는 멋
07 07|부탁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0718|단체전의 디자인
07 30|전람회에도 "체온"이라는 것이 있다
08 27|얼마나 고마울까. "일본다움을 느낄 수 있는일본"과 연결될 수 있다면
09 25|부탁을 받기 전에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가 좋다
09 29|디자인은 정말 어렵다
09 30|미디어를 통해 얻는 정보는 사실 1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하자
11 14|D&DEPARTMENT PROJECTSHIZUOKA by TAITA 오픈
12 01|디자인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12 07|미토에D&DEPARTMENT의 동료가 만든 작은 카페가 문을 열었다
2009
01 15|그것은 수영장에들어가기 전의 소독조와 같다
01 28|"이른바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
01 29|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짓을 하면서까지 멋을 내고싶을까
02 05|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통합할 수는 없다
02 07|D&DEPARTMENT나가노 준비 사무실의 다키우치씨, 잘 지내시는지요
02 12|돈이 아닌 소중한 관계를 만들자
02 13|책임감 주는 행복도 있다
02 14|특산품과디자인의 균형은 지역의 문화 수준을 대변한다
02 18|450년의 전통을 지닌 온천여관의 티슈 케이스
02 25|"진짜"와 맞서는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02 27|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02 06|사람은 어느 곳에 살건 따뜻한 존재다
"디자인 전시회"가 아닌 "슈퍼마켓"의 풍경, 그것 역시 디자인
03 07|전통을 음미하는 것
03 10|우리에게어울리는 "회전 속도"
03 14|그 지역을 방문해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를 복간
"무리를 해서라도 활기를 찾게 해 주는"강장제보다는 "지속"이라는 구조가 중요하다
05 03|"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에서의"끝"은 지금이다
05 04|그 지역에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연구하는 것이 최고
05 10|NIPPON VISION의 축하 연회는 지역의 특산품을 들고 참가하는 파티
05 15|"화려함을 지향하지 않는다"="절묘한 규모 감각"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잇는 제품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고애정의 뿌리가 뻗어 있다
05 30|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08 01|모든 잡화점을 불편한 장소에 만드는이유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
나는 마흔 살의 나이에 ‘일본’을 배웠다. 나에게 ‘일본’을 가르쳐 준 사람은 공예품이나 민예품을 취급하는 크래프트 바이어, 히노 아키코 씨. 그의 상냥한 태도와 위트 넘치는 말투는 나의 내부에 존재했던 ‘일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본을 여행하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함이나 멋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그저 젊은 감각을 갖추고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점심식사로 라면을 내놓아도 불평을 하지 않는, 메일이나 휴대전화로 간단히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 미디어에 어느 정도 소개된 적이 있고, 지식이나 사고방식이 확실히 박혀 있는 사람. 지역 전통 공예 장인으로 나이는 40대 정도에 도쿄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여유 있는 리드가 필요하다.
만약 내가 전통 공예가의 가정에서 태어나 그 지역의 공예나 기술을 계승해야 한다고 하자. 그때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전통산업센터’의 공예품이다. 그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공예품들의 뒤떨어진 감각에는 절망을 느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것은 별로라거나 이것은 촌스럽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말할 수 없는 환경은 활기 넘치는 운영으로 이어질 수 없고 전시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마치 완성된 제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는 창고 같은 상태로 전락하여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다.
나는 히노 씨와 함께 전국을 돌아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 감각이 존재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제품을 캐주얼하고 젊은 감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감각으로 바라보면서 확실한 상품과 장소를 선택할 것.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그 스타일을 전파하여 서로의 고민을 공유할 것. 여기에는 조합이나 보조금도 필요 없다.
나는 두 가지 사항을 현실적인 계획으로 연결했다. 하나는, 자금을 투자해서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D&DEPARTMENT’를 47개 지역에 만들어 그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 강연처럼 오늘 와서 내일 돌아가는 입장이 아니라 내 가게가 있는 지역으로서 진지하게 그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디자인 감각을 바탕으로 1년에 한 번은 꼭 일본의 제조 상품을 생각해 보는 기획전을 개최하는 것. 즉, ‘판매 장소’와 ‘지역의 매력을 정리하는 작업’을, 그다지 위대하지 않은 나가오카라는 디자이너이기에 가능한 스타일로, 그 지역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자금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정도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끝에 프랜차이즈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었다.
자금 문제는 제쳐 두고 규칙은 간단하다.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실행에 옮기면 가능하다. 첫째는 임대건물 안에 음식점을 두는 것. 즉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는 것이다. 직접 카페를 운영해도 되고 친구에게 카페를 운영하도록 해도 된다. 둘째는 내가 선택한 상품을 취급하는 것. 예를 들면, 내가 기획하고 있는 ‘60VISION’이라는 복간 상품이나 일본 전역에서 선택한 캐주얼한 감각의 셀렉트 라인 ‘NIPPON VISION’ 등이다. 이것은 그 지역의 젊은이들을 겨냥한, 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도쿄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다.
셋째는 실제로 투자를 한 사람이 자신의 지역에 ‘예로부터 전승되어 온 가치 있는 공예품’, 즉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견하여 판매하거나 확산하는 것. 이것은 주로 외부인을 겨냥한 활동으로, 관광을 하러 온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역을 알리기 위한 행위에 해당한다. 공예품 중에서 젊은 감각이 있는 제품을 선택하여 판매하거나 그 지역만의 특산품 명주를 제조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술을 판매하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프랜차이즈의 이름이다. 내가 생각한 ‘D&DEPARTMENT’ 배후에 투자자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의 이름, 예를 들어 오카야마 현이라면 ‘OKAYAMA’를 넣고, 마지막에 투자자의 이름을 넣는다. 즉, ‘TOMATO’라는 회사가 아이치 현에서 이 프랜차이즈를 운영할 경우에는 ‘D&DEPARTMENT PROJECT AICHI by TOMATO’라는 식으로 건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규칙이다.
어른들이 계승하여 온 아름다운 이 나라를 젊은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도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스타일로. 시장을 조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건을 만들지 않고 책임감 없는 공상을 통하여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훌륭한 물건을,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재창조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2006
03 01|일본의 리듬
일본은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의 따지 못했다. 10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그래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 주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아나운서의 말이 오히려 허무함을 증폭시킨다. 일본은 애당초 ‘노력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결과보다는 매일 노력하고 연구해서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던가. 손재주가 좋고 세밀한 세공에 능하며 근면하고 성실한 그런 나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만 늘어놓아서는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기지 못하면 경제는 윤택해질 수 없다. 섬나라 일본에는 자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자원을 조달하는 입장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우등생이 되어야 한다.
일본에는 일본의 리듬이 있다. 이것은 간단히 바뀌지 않는다. 슬로우 라이프, 로하스. 그것을 세계적인 붐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제 경쟁’이라는 말의 의미에 의문을 품고 일본의 본래 모습, 섬나라 일본의 리듬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07 18|원점은 있는가? 그 원점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내 책상 옆에는 동경하는 건축가의 사진이 어지러이 붙어 있다. 무엇인가 고민할 때, 스스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을 때 벽에 붙어 있는 다양한 스크랩으로 눈길을 준다. 그렇게 하면 용기가 느껴지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일을 시작할 때에 생각했던 사고 등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분명 그러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60VISION’은 그런 발상을 형태로 만든 브랜드다. ‘기업의 원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점에 지속적으로 남겨 둔다. 그럴 경우, 그 기업의 창업과 관련된 사람들은 무엇인가 망설여질 때나 활기를 잃었을 때에 그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점을 방문한다. 혼란한 세상, 스스로도 그런 것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제품을 만나면 예상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다.
사람은 간단히 바뀌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과거의 감동은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그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 ‘쑥스럽지만 벽에 붙여 놓는 사진들’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디자인을 판매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의미이다. 지금 D&DEPARTMENT에 있는 ‘정보’를 모두 ‘생활과 관련된 제안’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특정한 인물이 디자인한’ 주전자가 아니라 ‘그냥’ 주전자로서 판매하는 것이다. 잡화점을 성립시키려면 ‘사람이 사람을 판매한다’는 원점으로 돌아가 ‘디자인적 훌륭함’과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구매자에게 ‘단순히 무엇인가를 구입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아름다운 기억의 하나로 저장될 수 있다. 그렇게 구입한 물건은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의미를 안겨 줄 것이다.
10 24|바뀌지 않는 것과 바뀌는 것
어제 다마 미술대학에서 3시간 정도 특별 강의를 했다. 주제는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 이것은 ‘큰 것’과 ‘작은 것’이라는 대비와 비슷하다. ‘바뀌는 것’과 ‘큰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의 내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매우 닮아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커다란 의미’가 존재한다. 그것은 ‘거대한 변화’로 향하는 하나의 계기이며 일부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했는데 나가기 직전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그때 상대방 한 사람만을 또는 그 시간만을 생각한다면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10년에 백 명을 또는 평생 동안 천 명을 만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작은 만남은 거대한 목표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거대한 목표는 즉시 달성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들여 서서히 목적을 설정할 수는 있다. 그 목적을 위한 오늘 그리고 만남. 그렇게 생각하면 귀찮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까. 우리는 여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초조해 하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커다란 목표와 작은 행동의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농사를 예로 들어 보면, 농작물의 ‘생육’은 농부가 아무리 서둘러도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는 없다. 즉,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대방의 속도’에 인간이 맞추어 가면서 농부와 농작물이 함께 수확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농가의 삶은 ‘절대로 서두르지 말라’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이 ‘자연스러운’ 속도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봤지만 그것은 무리다. ‘큰 것’과 ‘작은 것’을 의식하고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2007
04 20|충동구매는 없다
“그 의자를 구입하고 싶습니다. 일단 보러 가겠습니다.” 오늘 미리 연락을 한 뒤에 잡화점을 방문한 손님이 있었다. 결국 그 손님은 10만 엔 가까운 가격에 망설이더니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고 돌아갔다. 남자가 만 엔짜리 향수를 구입하는 데 주저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하지만 구입해서 반년 이상을 사용해도 아직 남아 있는 향수처럼,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람들은 ‘만 엔도 싸다’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가치’, ‘이익을 본 듯한 쇼핑’에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은 느낌을 맛볼 수 있다.
10만 엔짜리 가구는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비싼 쇼핑’이라는 공포감과 비슷한 기분이 들게 한다. 상품의 가격이 높을수록 기쁨이 그 가격만큼 증가한다는 즐거움이 존재하는 반면, 그에 버금가는 불안감도 느껴지는 법. 그리고 고민 역시 그 가격만큼이나 머릿속의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시험 삼아 당신 주변의 값비싼 물건을 돌아보자. 그 물건을 구입한 것에 대해 지금도 후회감이 존재하는가. 대체적으로 그런 물건은 가족이나 연인과의 소중한 시간 또는 혼자만의 한가로운 시간을 공유한다. 값비싼 쇼핑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당신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생활의 질을 높여 준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면 처음에 생각한 것이 정답인 경우가 많다. ‘이거 좋은데’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를 입수하면서도 매순간 각각의 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한다. 따라서 충동구매라는 것도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자신’의 감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순간적인 욕망이나 그 자리에서의 감각적 충동이 아니다. 10만 엔짜리 의자를 구입하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단, 그 결단을 하루 연장시키고 싶을 뿐. 처음에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어떨까. 무엇이든 처음에 좋다고 생각한 일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07 06|지역을 회생시키는 해답은 도쿄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것
‘재팬브랜드’라는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디자이너다. 지금까지 여러 지역을 돌았지만 ‘도쿄에서 본 지방’과 ‘지방에서 본 도쿄’에서의 의식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그 지역에서 생활하겠다는 정도의 각오나 그 지역을 충분히 이해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은 디자이너라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지역에서 디자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생각은 즉시 버려야 한다. 일시적인 ‘화려함’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 지역의 독특한 생태계를 어지럽혀 놓을 뿐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박람회 같은 ‘지속성이 없는’ 거창한 행사는 지역에 일시적인 경제 효과를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최라는 행위 때문에 일시적으로 비대해진 것일 뿐, 행사가 끝난 이후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보조금을 받아 도쿄에서 디자이너를 초청하여 강연회나 교류회를 실시하고 있다. 또 디자이너가 기업의 컨설턴트로서 참가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받아야 한다. 첫째, 그 지역에 살도록 할 것. 또는 그와 동등한 생활을 하여 물리적으로 공유를 할 수 있을 것. 둘째, 판매에 깊이 관여하게 할 것. 설공의 보수는 보조금이 아니라 그 이익에서 지불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의 위험 부담도 공유하게 할 것. 셋째, 그 디자이너가 아무리 권위가 있다고 해도 처음부터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지는 말 것. 넷째, 이런 조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디자이너와는 손을 잡지 말 것.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과 낙후된 지역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디자인은 최종적인 마무리이고 지역의 뿌리 깊은 문제는 그런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지역의 성공이 그 지역의 성공 스토리와 동일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고 원인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재팬브랜드에 관하여 그 지속성과 붐이 막을 내린 이후의 상황을 충분히 예상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어려운 일을 생각해야 한다. 실력은 부족해도 상관없다. 지역을 회생시키는 해답은 ‘도쿄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2008
09 25|부탁을 받기 전에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가 좋다
매일 아침 D&DEPARTMENT DINING의 개점을 준비할 때에는 잡화점 전체에 음악이 흘러나와 직원들 모두가 활기를 느끼며 업무를 준비한다. ‘청소를 할 때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편집해 오라’는 명령을 듣고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일이다. 그런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존재하고, 누군가가 그 감각을 느낀다면 그곳에서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탄생한다. 나는 그런 과정을 좋아한다. 부탁을 받기 전에 무엇인가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 그것이 참 좋다.
디자인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대부분의 일은 자주적인 프레젠테이션과 자주적인 기획전이었다. 즉, ‘자주적인 활동’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제로 전람회를 하고 세밀한 부분도 혼자 처리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작업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는 스스로. 그것을 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이번에는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라는 형식으로 나름대로 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제안을 한다.
최근, 그런 사람들이 많이 들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려 하거나 ‘일’이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 않으려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D&DEPARTMENT에 입사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입사하고 싶은 마음을 긴 문장의 편지로 정리하거나 그 자리에서 떠오른 제안을 별 생각 없이 던진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설득력이나 납득할 수 있는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로 그 부분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겐모치 디자인연구소의 마쓰모토 소장의 말이 떠오른다. “건축가는 사회적인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나서서 ‘일 좀 없습니까?’ 하고 영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일단 작품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부탁합니다’라는 형식으로 다가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결과물에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부탁’은 성립된다는 의미다. 멋진 말이지 않은가.
2009
02 12|돈이 아닌 소중한 관계를 만들자
순수한 것, 순수한 마음,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갖고 있는 힘. 좋아하지도 않는 회사의 일을 계속할 리 없는 것과는 반대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곳도 있는 법. 이것은 보수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또는 동향(同鄕). 자신의 고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속으로 성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자신이 자란 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지는 애정과 마찬가지로 낯선 지역의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애정’을 느끼려면 다양한 우여곡절이 필요하다. 성가신 일도 귀찮은 일도 경험하면서 어떤 계기를 통해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 손을 잡고 같이 기뻐하기도 하면서.
‘컨설팅’이라는 말을 들으면 외자 계열의 형식적인 느낌이 든다. 시간이나 일손을 모두 돈으로 해결하고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출하는 세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의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신뢰와 돈이 있으면 일은 진행된다. 의뢰를 받고 돈을 받으면 밤을 새워 자료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또 다음 기업의 의뢰를 받는다. 그런 생활의 반복. 예전에는 예산과 일정과 의뢰 내용이 나쁠 경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디자이너로서 납품한 모든 디자인은 소중하게 활용하여 기업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선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만 앞세워 ‘사회를 위해’라거나 ‘환경을 위해’라는 주장을 펴는 기업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 친화적이라거나 지역에 공헌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지역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보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
전혀 모르는 의뢰인이라도 조건을 만들어 일로 받아들이는 세계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지고 싶다. 역시 ‘좋아하지’ 않으면 그 회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다. 일을 적당히 처리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마감일 전날에 적당히 넘기고 일부러 일정을 빡빡하게 채워 놓고 쉴 틈 없이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등. 그러나 그래서는 인간적인 마음이 설 자리가 없다. 최근 우리의 마음이 잔뜩 가라앉아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애정이 없는 의뢰’를 ‘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시간과 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고향과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스트레스 없이 순수하게 일에만 매진할 수 있다. 동향이 아닌 회사라면 그런 마음이 생길 때까지 업무적인 관계는 사실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과거의 일의 방식에는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초밥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가게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굳이 여러 개의 가게를 낼 발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많은 고객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 여기에 부자연스러움이 존재한다. 정말로 ‘디자인을 통하여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디자인이어야 진정한 디자인이니까.
08 01|모든 잡화점을 불편한 장소에 만드는 이유
우리 D&DEPARTMENT는 상업적인 건물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입지 조건이 나쁜, 보수와 유지도 직접 해야 하는 그런 장소에 하나하나 만들어 갈 것이다. 도쿄를 벗어나 낯선 지역으로 가면 그 지역에 관하여 전혀 문외한인 나도 지역적 파워를 갖추고 있는 장소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재능인지도 모르지만 비어 있는 임대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 힘을 짐작할 수 있다. 영감은 아니다. 특별한 감각이 작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입지 조건이 좋은 장소라고 해도 자신의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출판사에서 『D&DEPARTMENT를 운영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것은 도쿄, 오사카의 직영점 이외에 삿포로, 시즈오카 등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파트너와 함께 D&DEPARTMENT를 만들어 갈 때의 고생담을 엮은 책이다. 도쿄를 토대로 삼고 있는 우리와 각 지역에 살고 있는 파트너가 함께 손을 잡고 약 1년에 걸쳐 그 지역에 어울리는 D&DEPARTMENT를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고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즉, ‘D&DEPARTMENT를 만든다’는 계기를 통해서 깨닫게 된 ‘지방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어려움’을 정리한 책이다.
낯선 지역과 낯선 사람, 그들과 함께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만들어 간다. 마치 결혼을 하듯. 그 사람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 사람의 가족도 좋아할 수 없다면, 또 그 사람이 생활하는 지역도 좋아할 수 없다면 좋은 가족이 될 수 없다.
상업적인 건물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사랑’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편리함만을 추구한 이벤트 같은 거대한 공간보다는 어느 정도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그 지역, 그 주민다운 풍경 속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내가 모든 지역의 잡화점을 매우 불편한 장소에 만들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