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노엘라
ǻ
나무수
   
13800
2010�� 03��



 ■ 책 소개
바이올리니스트이자칼럼니스트인 저자의 그림과 음악 이야기. 

저자는동시대를 살면서 그림과 음악이라는 각기 다른 수단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해냈던 화가와 음악가의 생애와 예술작품을 통해 사랑, 고독, 불안,창조적 삶 등 인간의 보편적인 화두들을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행적을 좇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책이 아니다.그들이 남긴 작품 그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그런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그들이 겪고 이겨내야 했던 삶의 역경과 감정들 그리고 삶의 가치관을 엿볼 수있는 일화들이 저자의 에피소드와 일상의 감정들과 함께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 저자 노엘라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 14세에 미국으로 건너가세인트 폴 학교(St. Paul"s School)와 피바디 (Peabody) 예비학교를 거쳐 뉴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Conservatory)에서 제임스 버즈웰(James Buswell)을 사사하고,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플로리다 주립대(FloridaStat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음악, 그림, 글 등의 다양한 예술적 소재를 통해 끊임없이 일상의 감정들과 마주하고 세상과 소통하기를 꿈꾸는 그녀는 무엇보다‘예술’이 우리에게 ‘시대의 공감’과 ‘창조적인 삶의 영감’을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8년에는 1집 앨범 <샤이닝클라우드(Shining Cloud)&&를 발매하고, 「주간 한국」에서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를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는 등 더 많은 사람들과예술‘적’ 삶을 함께하고자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01.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모네 & 드뷔시 - 감정의 조각들은 사랑이 되고
실레 & 베르크 - 애증, 그 강렬한 이끌림
들라크루아 & 베를리오즈 -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믿었던사랑은
모로 & 바그너 -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그로 & 브람스 -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거야
클림트 & 시마노프스키 - 단 한 번의 잊지 못할 입맞춤

02. 불안은 창조의 씨앗이 되고
터너 & 슈만 - 다시는 오지않을, 이토록 뜨거운 순간
칼로 & 뒤 프레 - 아팠구나, 네가 많이 아팠구나
뭉크 & 쇤베르크 - 불안은 창조의씨앗이 되고
프리드리히 & 슈베르트 - 끝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알마 타데마 & 생상스 - 가장 달콤한 유혹,아름다운 죽음을 꿈꾸다

03. 자유로부터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미켈란젤로 & 데 프레 - 불완전해서 오히려 아름다운
로트레크 & 비제 -자유로부터 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발라동 & 말러 - 사랑할 자유, 꿈꿀 자유
고야 & 베토벤 - 내 인생의 혁명이필요할 때

04. 예술, 일상을만나다
폴록 & 케이지 - 우연의 이끌림 
칸딘스키 & 스크랴빈 - 오감으로 느끼는 사랑
드가& 푸치니 - 진실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진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뒤샹 & 사티 - 굿바이 고정관념, 헬로자유!
워홀 & 번스타인 - 예술, 일상을 만나다

가만히 듣다 물끄러미 보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부그로 & 브람스 -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외롭고 쓸쓸했던 유학 시절, 난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한참을 울고 있다가도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금세 눈물을 훔치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했다. 딸이 타지에서 홀로 우는 걸 알면 엄마의 근심만 늘까봐 유학생활의 외로움은 홀로 감당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때였다. 누군가에게 나의 외로움과 슬픔을 드러내놓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한 번 터트리면 상처가 걷잡을 수 없이 덧날 것만 같았다. 상처를 드러내면 내가 더 약해질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나를 지켜야 했다.


‘괜찮아, 지나갈 거야. 나의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


부그로의 그림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슬픔이 묻어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차라리 슬프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나 그가 표현하는 슬픔은 절대 지나치지 않다. <비블리스> 속 여인은 그녀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울고 있다. 고개를 떨구고 손은 기도하듯 마주잡고, 입을 꼭 다문 채 숨죽여 운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비블리스>를 그린 부그로는 눈물이 되어 사라진 그녀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며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모네,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반대하며 고전주의를 고집했고 그는 그들로부터 비인간적이며 기계적이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화가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그가 죽은 후 그의 그림은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동안 인정받지 못하며 역사의 그림자 속에 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1970년대 우연한 계기로 그의 작품이 다시 발견되었고 한 치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테크닉과 사진보다도 더욱 사실적인 인물 묘사는 다시금 그를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올려놓았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부그로와 마찬가지로 음악계에서는 브람스가 고전주의 형식을 고집했는데 그는 음악 역사상 베토벤에 이어 최고의 작곡가로 꼽히고 있다. 당시 유럽에는 바그너리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바그너가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부그로가 개혁파 화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처럼 브람스 역시 바그너, 리스트, 베를리오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독일악파’ 음악가들로부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진부한 음악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곤 했다.


부그로와 브람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와 같은 철학가와 상징파 시인인 말라르메, 랭보, 낭만주의 문학가인 바이런, 디킨스, 괴테를 비롯하여 미술계에서는 세잔느, 마네, 모네,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 그리고 음악계에서는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와 같은 낭만파 작곡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들이 살았던 19세기는 이성과 감정, 자유와 억압 등이 대립하며 혼란을 거듭하던 시대였다. 또한 이러한 혼란의 형태는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고전주의에서 벗어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미술가들은 틀에 박힌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지식이 아닌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음악가들은 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절대음악 대신 이념이나 주제를 상징하는 표제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렇듯 예술계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변화를 추고하고 있었다. 브람스와 부그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고전주의를 고집했다. 절제된 감정과 완벽함을 추구했던 그들. “숙련된 기술이 없는 영감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것이다”라는 브람스의 말에서 그의 예술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다. 완벽을 추구한 그들의 노력과 변화보다는 지키려는 열정 그리고 과함보다는 절제된 미를 추구한 그들의 작품은 우리를 더욱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이끌며 진정한 의미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불안은 창조의 씨앗이 되고
프리드리히 & 슈베르트 - 끝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고독’ 하면 생각나는 작곡가가 있다. 바로 가난과 고독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다. 아이러니하게도 슈베르트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성악가 미하엘 포글, 화가 폰 슈빈트, 그리고 시인 쇼버 등이 그들이었는데 이들은 거의 매일 밤 만나 친분을 쌓고, 슈베르트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모임의 이름을 ‘슈베르트의 밤’이라고 부를 정도로 슈베르트를 사랑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처럼 친구가 많은 슈베르트였지만 인간은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듯 그의 음악에선 언제나 고독이 묻어난다. 특히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에게 죽음에 이르는 길은 더더욱 외로운 것이었을 테다.


슈베르트는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마왕>은 슈베르트가 18세 때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시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멜로디와 화성을 같이 변화시켜 가곡을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음악적 드라마로 완성시킨다. 슈베르트는 이후 <죽음과 소녀>라는 곡을 작곡하는데 여기서도 죽음은 마치 마왕처럼 신비롭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소녀를 죽음으로 유혹한다.


이렇듯 달콤한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일까? 슈베르트는 25세쯤 친구 쇼버와 어울리다 그만 매독에 걸리게 되고 이로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게 된다. 자신의 병을 알고 몹시 괴로워했던 슈베르트는 자신이 20세 즈음 만들었던 가곡인 <죽음과 소녀>를 현악 4중주 14번 2악장의 모티브로 사용하여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어낸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인생을 젊은 나이에 마쳐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두려움 그리고 고독함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말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겨울과 방랑자의 모티브를 연결시킨 그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가난으로 사랑하는 여인마저 보내야 했던 슈베르트의 심정과 죽음이라는 춥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죽기 바로 직전에 쓴 곡이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슈베르트의 음악적 주제였던 죽음, 방랑자 그리고 겨울은 독일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뒷모습의 화가’ 프리드리히에게도 모티브가 되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인간의 유한한 삶을 뛰어넘은 영혼의 세계를 갈망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분위기와 색채 그리고 담고 있는 메시지까지 무척 닮았다.


슈베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프리드리히는 7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형제 3명까지 잃게 된다. 특히 형제 중 한 명은 프리드리히와 함께 얼음판에서 놀던 중 얼음판이 깨지면서 익사를 하게 되고, 프리드리히는 이를 목격하는 아픈 경험을 한다. 이렇듯 어릴 적에 겪은 가족의 죽음이 그를 우울증과 은둔적 생활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참나무 밑의 수도원>은 이러한 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대변하듯 어둡고 외로우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눈 덮인 수도원의 묘지>는 한겨울의 눈 만큼이나 차갑고 쓸쓸하며 외로운 죽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림 속 수도승들은 한없이 작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압도당할 만큼 거대하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나 작은 존재인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일찍 경험한 프리드리히는 그림을 통해 거대한 자연 앞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는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인간의 쓸쓸함과 고독이 느껴지는 그의 대표작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원의 세계를 갈망했던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경험하게 되며 동시에 인간의 초라함과 인생의 무상함 그리고 영원한 삶을 향한 동경을 느낄 수 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영혼을 끌어올리며 우리의 삶을 숙연히 돌아보게 만든다.


무한한 우주, 무수히 많은 별들 중 하나인 지구, 약 70억 인구 중 한 명인 나의 존재. 이토록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인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하찮아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그 무엇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노란색 꽃을 좋아하는 나는 노란 장미를 보고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노란 장미는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인간보다 더없이 하찮아 보이는 이 작은 꽃 하나가 말이다. 이토록 작은 장미 한 송이가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큰데, 부모, 형제, 연인,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는 존재감은 얼마나 클까?


슈베르트는 “우리는 행복이란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상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행복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불행의 존재로 인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행복과 불행의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 그것이 기쁨이든 또한 슬픔이든 그것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면 그곳에 영원을 향한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유로부터 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고야 & 베토벤 - 내 인생의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혁명들을 거치며 살아간다. 혁명이란 크게는 정치, 경제, 사회를 뒤엎는 것이고 작게는 나를 뒤엎는 일일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반드시 나 자신을 위한 혁명이 필요할 때를 만난다. 내 인생의 혁명이 필요할 때, 혼자서는 뒤엎기 힘든 나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깨고 싶을 때, 내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을 때 베토벤과 고야의 정신을 떠올려보자.


베토벤과 고야가 살았던 당시 유럽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나고 있었다. 프랑스의 혁명으로 민주주의 의식이 생겨났고 시민들은 자유를 부르짖었다. 이 가운데 베토벤과 고야는 예술계의 혁명을 일으키며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베토벤은 이전의 음악과는 달리 음악 안에서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해냈다. 피아노와 포르테 간의 일정 간격을 유지했던 기존 음악과는 다르게 베토벤의 음악은 강약의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의 음악은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악장 자체가 길고 관현악 곡의 경우 구성 자체가 방대했다. 특히 불협화음의 사용과 강약의 다양한 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의 관중들은 이런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소한 불협화음과 멜로디 역시 제한적이어서 베토벤 음악을 따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의 음악은 듣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관중들은 이런 음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기이’하고 ‘광적인’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음악, 그의 음악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미술계의 혁명을 일으킨 고야의 그림 역시 보고 즐기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고야의 작품은 기존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달리 공포와 긴장감, 두려움과 혼동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무시무시함과 잔인함, 피와 뜯겨나간 살점 등을 그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그림들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비난하고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베토벤의 음악처럼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혁명적인 작품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초기 작품은 고전음악과 로코코 회화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고야의 <빨래하는 여인들>과 같은 초기작품들은 로코코 미술의 특징인 밝고 행복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평온한 자연과 더불어 여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베토벤 역시 초기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소나타 형식에 충실한 듣기 편하고 차분한 음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유럽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으며 이들의 예술세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혁명적 작품은 그의 세 번째 교향곡 <영웅>에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곡은 당시에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제1악장은 15분에 달하는 긴 악장으로 기존 교향곡의 전 악장을 합쳐놓은 것 만큼이나 긴 길이로 관중을 놀라게 했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영웅 나폴레옹에게 이 곡을 헌정한다. 그러나 민중의 혁명가라고 여겼던 나폴레옹이 추후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노하여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힌 악보를 찢어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세상을 바꿀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나폴레옹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이후 주변 국가들을 혁명이란 이름 하에 점령하기 시작한다. 1808년, 그는 스페인을 점령하고 그의 형 조세프를 왕위에 올린다. 이에 스페인 민중들은 반발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에 이른다. 고야는 이 끔찍한 장면을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프랑스 군대의 잔인함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림이다. 그는 이 참혹한 현장을 실제로 목격하고 사실 그대로를 고발한다. 실제로 이 장면을 지켜본 고야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난폭하고 잔인한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 대신 자신의 피를 그림에 직접 발랐다고 한다. 전쟁에 대한 그의 극한 감정을 대변하는 일화다.


이렇듯 그들의 작품세계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했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그들만의 독립적인 작품을 만들도록 예술적인 영감을 준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바로 청각장애였다. 베토벤은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인 26~28세에 청력을 잃기 시작해서 38세에는 완전히 청각을 잃는다. 고야 역시 47세에 심한 열병을 앓고 난 뒤 청각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불안한 사회와 함께 그들의 청각장애는 내면의 심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들로 하여금 인간의 내면을 더욱더 적나라하고 심도 있게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들리지 않아 그리는 것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 고야.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온갖 잔인함을 목격한 그의 그림에서는 광기 어린 불안함과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그가 말기에 살았던 ‘귀머거리의 집’의 벽에 그린 <검은 그림> 연작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신이다. 어느 날, 사투르누스는 자식에 의해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후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에 이른다. 고야가 그린 사투르누스는 미친 듯이 아이를 뜯어 먹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그림. 권력에 눈이 멀어 스페인을 침공해 잔인하게 시민들을 학살한 프랑스를 빗대어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을 비롯하여 그는 <곤봉 결투>, <모래 늪의 개>, <성 이시드로의 축제>, <숙명>, <두 노인> 등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그림들로 그의 집을 가득 채웠다. 이 그림들은 그가 겪었을 극도의 불안감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검은 그림> 연작 이후 고야는 말기에 <보르도의 우유 파는 여인>이란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그림을 그렸던 그의 <검은 그림>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그녀의 눈동자에서 고야의 변화된 심리상태를 느낄 수 있다.


들리지 않아 내면의 소리에 더욱 집중했던 작곡가 베토벤. 그에게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악기의 소리와 음정을 바탕으로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어낸 베토벤이 겪은 자신과의 싸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리라. 베토벤의 음악은 이러한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듯 여러 가지 극한 감정의 변화를 스포르잔도, 포르테피아노 등의 음악적 테크닉을 통해 나타낸다. 베토벤의 말기 작품인 현악 4중주 Op.133(Grosse Fuge)은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처럼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른다. 어느덧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갑자기 소리치는가 싶더니 흐느껴 운다. 빠르게 움직이던 음표들은 곧 잠잠해진다. 반복적인 리듬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그 분위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다 갑자기 우울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음악은 베토벤의 광적인 정신상태를 반영한 듯 극도의 불안함 속에서 흐르다 한순간 평온을 되찾는다.


인생에서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고통과 희망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들의 작품에서 그들이 진정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 내면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평생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베토벤과 고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의 혁명가로 남아 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Op.135의 마지막 악장의 악보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의 문구가 남겨져 있다. “어려운 결심, 꼭 그래야만 하는가? 꼭 그래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문구를 적어 넣었는지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어쩌면 우리가 인생의 고비마다 되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 일상을 만나다


드가 & 푸치니 - 진실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진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끊임없이 유지됨과 동시에 변해왔다. 인생에 대한 가치와 평가 역시 시각과 시점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잘’사는 것과 ‘못’사는 것에 대한 기준과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미천하고 빈곤한 삶은 아름답지 않은 삶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며,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은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는 성경도, 그리스 신화도, 귀족의 이야기도 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뒷골목 빈민층, 돈이 없어 몸을 파는 창녀들, 온실 속 장미가 아닌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들꽃 같은 서민들의 현실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베리스모 운동(진실주의, 사실주의)이 한창이었다.


오페라 무대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보석과 레이스로 우아하게 치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후줄근한 옷을 입고 생계를 위해 몸을 팔거나 공장, 시장, 술집 등에서 일하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베리스모 오페라의 중심에는 파리 뒷골목 보헤미안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의 애환을 그린 <라보엠>이 있었다. 푸치니는 자신의 가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오페라를 완성한다.


파리 뒷골목 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 네 명. 돈 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삼으며 문란한 삶을 즐기는 무제타 그리고 바느질하는 병들고 약한 미미가 <라보엠>의 등장인물이다. 그 당시 바느질하는 여성은 창녀와도 마찬가지인 신분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시인 로돌포 역시 돈은 없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난 로돌포와 미미.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다 서로에게 반해버린 이들은 단숨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행복한 이들. 하지만 이들은 곧 여느 젊은 남녀처럼 이별을 맞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회한 이들. 하지만 미미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추운 겨울, 가난으로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마는 미미. 미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죽은 미미 앞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로돌포. 가슴 아픈 보헤미안의 삶을 그린 이 오페라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로 가난한 청춘의 삶과 사랑 그리고 서민의 애환을 노래한다.


가난한 뒷골목의 현실을 그린 이 오페라는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동시에 자신을 사실주의 화가라 주장했던 드가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드가는 생계를 위해 열심히 다림질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나 삶이 고달픈 듯 파리의 한 카페에서 홀로 압생트를 마시고 있는 우울한 분위기의 여인의 모습 등을 통해 그 당시 파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드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림을 위해 연출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거나 아픈 다리를 주무르거나 하품을 하는 등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드가는 마치 사진의 스냅샷을 찍듯 이러한 장면들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그는 특히 발레하는 무희들을 즐겨 그렸다. 그 당시 무희들은 대부분 노동자 계층의 여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지금의 발레리나와는 개념이 많이 달랐다. 이들은 공연하는 것 외에도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파는 일을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습장소에는 언제나 돈 많은 스폰서들이 드나들었다. 무희들은 한껏 치장을 하고 이들의 눈에 띄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스폰서들은 그녀들과 가격을 흥정했다. 드가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발레리나들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들이 바로 이 스폰서들이다. 드가는 이렇듯 매춘부와 다를 바 없었던 무희들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마치 푸치니가 천한 신분의 미미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방식은 달랐지만 여성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성공한 푸치니와 드가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눈병으로 앞을 잘 볼 수 없었고 말년에는 거의 실명에 이르렀던 드가와 가난으로 파리 뒷골목을 전전긍긍하다 성공 후에는 여자와 오리 사냥, 자동차 수집을 즐기며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푸치니.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극과 극의 그들. 하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진실된 모습으로 그려낸 그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들. 꾸며진 모습이 아닌 현실을 그려낸 작품, 그들의 손을 거쳐 한 편의 환상적인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었던 서민들의 삶.


다시 한 번 처음 가졌던 질문을 되묻는다. 무엇이 진정 ‘잘’사는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며 예술적인 것일까? 대답은 아마도 ‘진실할 때’가 아닐까 싶다. 진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든 진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