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왕립통계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통계학자 데이비드 핸드는 언뜻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들 배후에 엄밀한 수학, 통계학적 법칙이 존재함을 말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등장할 법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예로 들며, 그 뒤에 숨겨진 다섯 가지 우연의 법칙을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가 점괘나 종교나 미신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로또에 100% 당첨되는 방법(그리고 현명하게 번호 고르는 전략)을 비롯해 도박이나 스포츠에서 말하는 소위 끗발의 존재, 월드컵의 결과를 맞히는 문어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비법, 왜 경제 위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지, 주가는 그토록 널뛰기하는지, 생명은 어떻게 우연한 선택을 통해 진화하는지, 창조주가 없이도 지적인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는지 등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소재들을 다룬다. 기이한 사례들로 가득하며, 자연의 규칙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 저자 데이비드 핸드
데이비드 핸드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세계적인 명문 공립 대학인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 London 수학과 명예 교수 겸 선임 연구원이다. 2002년에는 통계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가이 메달Guy Medal을 받았고, 2003년에 영국 학사원British Academy의 연구원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부터 왕립통계학회Royal Statistical Society 회장을 지냈으며 그동안의 연구 업적으로 2013년 대영 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다. 유럽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알고리즘 매매 헤지펀드 중 하나인 윈턴 캐피털 매니지먼트Winton Capital Management의 고문이기도 하다.
‘우연한 일들’에 숨어 있는 법칙을 다룬 그의 대표작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The Improbability Principle》는 자연 과학서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워싱턴 포스트」와 「허핑턴 포스트」 등 유력 매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어려운 통계학 지식을 우리 일상과 연관 지어 알기 쉽게 전달한다는 평을 받은 데이비드 핸드는 책의 내용을 대중들에게 전하는 강연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정보 세대: 데이터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는가Information Generation: How Data Rule Our World and Statistics》를 비롯하여 7권의 책을 썼고 300편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다.
■ 역자 전대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현재는 과학 및 철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철학은 뿔이다》, 시집으로는 《가끔 중세를 꿈꾼다》 《성찰》이 있다. 번역서로는 《로지코믹스》《위대한 설계》《스티븐 호킹의 청소년을 위한 시간의 역사》《기억의 비밀》《기억을 찾아서》《생명이란 무엇인가》《수학의 언어》《산을 오른 조개껍질》《아인슈타인의 베일》《푸앵카레의 추측》《초월적 관념론 체계》《동물 상식을 뒤집는 책》《수학 시트콤》《물리학 시트콤》《뇌의 가장 깊숙한 곳》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어머니의 장례식과 십자가 모양의 햇살
김범준(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들어가며: 로또 복권과 벼락, 우연의 법칙
I. 왜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까?
1. 놀라운 ‘우연의 일치’
2. 미신, 종교, 예언
3. 우연이란 무엇인가
II. 우연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법칙
4. 필연성의 법칙: 결국 일어나게 돼 있다
5. 아주 큰 수의 법칙: 참 많기도 하다
6. 선택의 법칙: 과녁을 나중에 그린다면?
7. 확률 지렛대의 법칙: 나비의 날갯짓
8. 충분함의 법칙: 그냥 맞는다고 치자
III.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9. 오해의 동물, 인간
10. 생명과 우주에도 우연은 있다
11. 우연의 법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나오며: 기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록 A: 정신이 멍할 정도로 큰 수와 아찔할 정도로 작은 수
부록 B: 확률을 계산하는 규칙들
주註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왜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까?
미신, 종교, 예언
왜 하필 내가 하필이면 여기에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어느 쾌적한 여름 저녁, 당신은 집 앞마당 잔디밭에 앉아 있다. 옆에는 차가운 백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이 놓여 있고, 당신은 한가로이 공을 한 손으로 던져 올리고 다른 손으로 받는 놀이를 한다.
그러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공을 하늘 높이 던진다. 치솟은 공은 지구의 중력을 받아 점점 느려지다가 궤적의 정점에서 멈춘 후 낙하하기 시작한다. 공의 낙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리고는 풍덩! 포도주 잔 속에 정확히 떨어진다. 이는 확실히 불운한 상황이다. 잔디밭 어디에든 떨어질 수 있는 공이 하필 면적이 몇 제곱인치에 불과한 유리잔 속에 떨어지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만약 당신이 공을 유리잔 속에 떨어뜨릴 요량으로 높이 던져 올린다면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이 장면에는 무언가 신비로운 힘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마치 어떤 존재가 공의 진로를 조정하여 잔 속으로 이끌기라도 한 듯하다. 어쩌면 어느 장난기 많은 도깨비가 재미 삼아 당신을 골탕 먹이려고 자연법칙에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이처럼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은 공이 하필 포도주 잔 속에 떨어지는 것처럼 불운한 경험은 아니더라도 꽤나 흥미를 끌었을 수 있다. 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절로 의문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사건들은 우리가 생각한 우주의 작동 원리와 실제로 우주가 돌아가는 양상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우주의 작동에 불규칙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그 인과관계를 확립하고, 또 배후에 있는 규칙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안전과 확실성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따라서 어떤 일이 그저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꺼려지게 마련이다. 만약 원인이 없다면 그 결과를 조작하거나 통제할 길이 없을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면 질병, 사고, 실패를 막을 방도 또한 없을 것이며, 예측 불가능한 재앙의 도래를 염려하며 지속적인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만약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건을 예측할 수 있거나 나아가 통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셈이다. 고개를 숙여 총알이 비껴가게 하거나 일촉즉발의 자동차 사고를 피하고, 경마에서 이길 말과 값이 오를 주식을 선택하고, 공이 떨어지기 전에 포도주 잔을 옮길 수 있으니 말이다. 신비로운 사건을 설명하려는 예전의, 즉 과학 이전의 시도들은 내가 도깨비 설명이라 부르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에서는 신비로운 힘이나 존재가 사건의 배후에서 악의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었다. 이는 미신, 예언, 신, 기적, 초심리학, 융의 동시성, 그 밖에 무수히 많은 것들과 관련이 있다.
우연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법칙
필연성의 법칙: 결국 일어나게 돼 있다
로또 복권에 100% 당첨되는 법
비록 자각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일련의 상황에서 작동하는 필연성의 법칙을 익히 인식하고 있다. 바로 복권에 대한 것이다.
내가 가진 《뉴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복권 사업이란 숫자가 매겨진 표를 팔고 무작위로 뽑은 숫자를 가진 사람에게 상금을 줌으로써 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이다. 복권의 개념은 유서가 깊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배심원을 선정하고 정부위원회의 대표를 선출할 때 복권의 원리를 이용해왔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는 1763년에 복권 사업을 시작했다. 복권 사업자들과 복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이들의 갈등도 오래되었다.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은 아주 적으므로, 어떤 이들은 복권 사업을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수단이라며 비난한다.
오늘날 로또 복권 시스템은 많은 숫자들 중에서 고른 숫자 몇 개가 복권 각각에 매겨지는 방식이다. 예컨대 영국 로또에서는 복권에 1부터 49까지의 정수 중에서 뽑은 숫자 6개가 매겨지고, 핀란드 로또 요커리에서는 7부터 39까지의 정수를 사용하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캐시 파이브 로또에서는 43개의 숫자 중에 5개를 고르고, 플로리다 주의 뉴 판타지 파이브 로또에서는 36개의 숫자 중에서 5개를 고른다.
이런 유형의 로또를 s분의 r로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복권 하나를 사면 s개의 숫자 가운데 r개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선택한 r개의 숫자가 로또 운영자가 무작위로 뽑은 숫자들과 일치할 확률은 r과 s의 함수다. r과 s가 클수록 당첨 확률은 낮아진다. 왜냐하면 r과 s가 커지면 s개의 숫자 가운데 r개를 선택하는 방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영국 로또 복권을 산다면, 1등에 당첨될 확률은 1398만 3,816분의 1이다. 영국 로또의 고아고 문구는 "바로 당신이 당첨자일 수도 있다!"이다.
어떤 로또에서는 복권 구매자에게 숫자를 두 벌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유로밀리언스 로또 복권을 산 사람은 1부터 50까지의 숫자 가운데 5개를 선택한 뒤 1부터 11까지의 숫자 가운데 2개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이 로또는 5/50+2/11 로또인 셈이다. 미국의 파워볼 로또는 59개의 숫자 가운데 5개와 35개의 숫자 가운데 1개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즉 5/59+1/35 로또다. 파워볼 로또 복권 한 장을 사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1억 7522만 3,510분의 1이다.
만일 당신이 파워볼 복권을 한 장 샀는데 1등에 당첨되었다면, 아마도 스스로를 대단한 행운아로 여길 것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당첨된 숫자들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본 설명들 중 하나를 받아들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또는 그냥 기계를 이용하여 숫자들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숫자들이 당첨 숫자들과 일치할 것은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에는 1억 7522만 3,510명의 구매자가 복권 한 장씩을 사서 각자 다른 숫자들을 선택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 누군가가 1등에 당첨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선택 가능한 숫자들의 세트가 1억 7522만 3,510개밖에 없으므로, 구매자들은 모든 가능성들을 소진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로또에서 1등에 당첨되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물론 당신이 엄청난 부자일 때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모든 가능한 숫자 세트를 사버리면 된다. 그러면 당신이 산 세트들 중 하나가 1등 당첨번호일 수밖에 없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 세트들을 다 사려면 당연히 많은 돈과 약간의 조직 동원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 방법이 실행된 적이 있다.
1990년대에 버지니아 주 로또는 1부터 44까지 숫자 가운데 6개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이 로또 복권 한 장을 사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파워볼 로또의 당첨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은 705만 9,052분의 1이었다. 요컨대 복권 한 장이 1달러였으므로, 복권을 약 700만 달러어치만 사면 1등 당첨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금액이면 모든 가능한 숫자 세트를 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1992년 2월 15일, 지난 몇 주 동안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버지니아 주 로또의 1등 당첨금은 2700만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게다가 모든 숫자가 아니라 일부 숫자만 맞추면 타는 2등 이하의 당첨금도 총 90만 달러에 달했다. 따라서 전체 당첨금은 2700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구체적인 계산은 직접 해보길 바란다. 한마디로 700만 달러를 들여서 27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벌 기회였다. 물론 함정이 하나 있었는데, 이 얘기는 잠시 뒤에 하겠다.
1992년 2월에 자칭 국제로또펀드라는 집단이 꾸려졌다. 소액 투자자 2,50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는데, 투자자의 대다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었지만 미국인, 유럽인, 뉴질랜드인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숫자 세트를 사는 데 필요한 700만 달러를 마련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마도 조직 동원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안에 복권 700만 장을 사야 했으니까 말이다.
국제로또 펀드는 약 20명으로 팀을 꾸려 버지니아 주를 누비며 8개 체인의 소매점 125곳에서 복권을 샀다. 이것은 정말 고된 작업이어서, 결국 국제로또펀드는 500만 장의 복권만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사업이 망할 수도 있었다. 투자자들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지 상상될 것이다. 그들이 1등에 당첨될 확률은 7분의 5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1등에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4분의 1을 넘었다.
게다가 조직 동원이 원활하여 계획대로 복권 700만 장을 다 샀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1등 당첨자가 여러 명일 가능성이었다. 1등 당첨자가 한 명만 더 있어도 국제로또펀드는 예상한 1등 당첨금의 절반만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때까지 버지니아 주 로또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온 횟수는 170번이었는데, 당첨자가 두 명 이상이었던 경우가 열 번이었다. 따라서 이 위험은 현실적이었다. 물론 1등 당첨금의 절반만 해도 두둑한 금액이긴 했지만 말이다.
1992년 2월 그날, 로또 당첨번호는 8, 11, 13, 15, 19, 20이었다. 적잖은 불안을 느끼며 복권 500만 장을 살펴보았을 국제로또펀드는 자신들이 확보한 복권 한 장에 그 숫자들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과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버지니아 주 법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서 더 비싼 가격에 되파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복권을 살 때는 복권을 인쇄해주는 판매소에서 직접 돈을 지불하고 사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제로또펀드는 복권 300만 달러어치를 프레시팜 슈퍼마켓 체인의 본부에서 사고 판매소들에서는 수령하기만 했다. 국제로또펀드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1등 당첨 복권의 인쇄처인 체서피크 판매소에서 복권 몇 장을 직접 사기도 했으며, 1등 당첨 복권이 그곳에서 직접 산 것인지 아니면 수령하기만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로또 운영자들은 1등 당첨 복권이 그 인쇄처에서 수령되기만 했음을 증명하기가 어려울뿐더러 고집을 부리다가는 결과가 불확실한 소송에 휘말릴 것임을 감안하여 당첨금 지불에 동의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생명과 우주에도 우연은 있다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당신이 눈을 가린 채 큰 원뿔 모양의 구릉 밑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의 목표는 구릉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한 가지 전략은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을 구릉 꼭대기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창조자가 있다는 설명에 대응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전략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구릉 꼭대기가 어디인지 알고 거기에 도달하는 전략을 가진 누군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누군가의 존재는 "창조자는 누가 창조했을까?"라는 질문을 불러온다.
또 다른 전략은 무작위한 방향으로 계속 뛰면서 구릉 전체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운 좋게 구릉 꼭대기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전략은 분자들이 무작위하게 결합하여 우연히 인간을 형성하는 것에 대응한다. 이 전략은 언젠가는 통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성공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약간 더 복잡한 셋째 전략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발을 무작위한 방향으로 뻗어 바닥을 더듬으면서 그쪽으로 이동하면 고도가 높아질지 알아본다. 만일 고도가 높아질 것이라면 당신은 그쪽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반대 경우라면 당신은 다른 무작위한 방향으로 발을 뻗어 바닥을 더듬는다. 한 걸음 이동하여 새 위치에 도달한 다음에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당신은 차츰 구릉 꼭대기로 올라갈 것이다.
물론 직선 경로로 곧장 올라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도를 매번 조금씩 높여주는 작은 걸음들을 모아서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이때 경로는 심지어 구릉 꼭대기를 선회할 수도 있다. 걸음 각각이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하더라도 말이다. 수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확률적 최적화라고 부른다. 확률적이라는 표현은 걸음의 방향이 무작위로 선택되기 때문에, 최적화라는 표현은 당신이 목표에 점점 접근하기 때문에 붙었다. 수학자들은 이 전략의 다양한 변형들을 수학적 함수의 최댓값과 최솟값을 구할 때 사용한다.
확률적 최적화에서 우연의 법칙의 가닥 두 가지가 작동한다. 하나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당신의 걸음들은 작다. 한 걸음이 60센티미터 정도일 수도 있다. 반면에 구릉은 크다. 구릉의 높이는 수백 미터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의 걸음들은 방향이 무작위하다. 걸음 각각은 당신의 고도를 약간 높이지만, 상승폭은 3센티미터나 그 이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걸음들을 충분히 많이 내딛으면, 당신은 구릉 꼭대기에 도달한다.
이 결과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둘째 가닥은 선택의 법칙이다. 당신은 매번 걸음을 내딛기 전에 바닥을 더듬어보고 고도 상승을 가져오지 않을 방향은 배척한다. 바꿔 말해 당신은 고도 상승을 가져올 방향들만 선택한다. 매번 걸음을 내딛고 나면 당신의 처지는 과거보다 약간 더 나아진다. 이제 당신은 더 나은 출발점에서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구릉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한 이 한 걸음씩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 각 걸음의 방향을 무작위로 선택한다.
- 수많은 걸음을 내딛는다.
- 걸음의 결과로 당신의 고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질 때만 걸음을 내딛는다.
둘째 요소와 셋째 요소는 우연의 법칙의 가닥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큰 수의 법칙과 선택의 법칙이다. 이 세 요소는 다름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를 추진하여 생명과 인간을 탄생시킨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하나 살펴보자.
어떤 곤충 종은 매년 봄에 큰 집단을 이루는데, 이때 여왕 곤충들은 각자 무작위한 방향으로 날아가 무작위한 장소를 서식처로 삼고 새 집단을 꾸리기 시작한다. 겨울이 오면, 그 서식처들 중 일부는 추위에 취약함이 드러난다. 그런 서식처에 사는 곤충들은 모두 죽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다른 서식처들은 원래 집단의 서식처보다 약간 더 따뜻하다. 어쩌면 적도에 더 가까운 위치일 수도 있다. 그런 서식처의 곤충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은 곤충들은 번식하여 이듬해 봄에 다시 여러 집단으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곤충들은 더 따뜻한 지역, 생존에 더 유리한 지역으로 차츰 이동한다. 이 과정에 무작위성이 내재되어 있다. 각 단계에서 여왕들이 정착할 장소를 결정할 때는 본질적인 무작위성이 개입한다. 또한 선택이 작동한다. 일부 곤충들은 생존하여 이듬해에 번식할 확률이 더 높은 장소로 우연히 이동한다. 녀석들의 자식 세대는 더 따뜻한 곳에서 삶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서식처의 이동이 눈에 뛸 만큼 축척되려면 많은 세대가 필요하다는 점도 쉽게 알 수 있다.
개 사육에서도 진화의 원리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개의 품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다양한 품종들은 인간이 원하는 특징을 가진 개들을 선택적으로 교배함으로써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선택적 교배를 통해 태어난 자식들 중 일부는 부모의 특징을 가졌지만 다른 일부는 가지지 않았다. 인간은 전자를 선택하여 다음 세대의 부모로 삼았다.
이 과정이 수많은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다채로운 종들이 차츰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도 무작위성이 내재한다. 당신은 교배의 결과로 어떤 자식이 태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 예에서는 개 사육자가 어떤 자식을 선택하여 다음 세대의 부모로 삼을지 결정한다. 반면에 자연에서는 어떤 자식이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될지를 외부 환경이 결정할 것이다.
큰 규모에서 보면 거시적인 기후변화가 진화를 추진하리라고 예상해볼만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을 관찰했다. 영국 국립환경연구협의회 산하 생태학 수문학센터의 팀 스파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남부의 한 장소에서 서식한다고 보고된 이주성 인시목 곤충의 종수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증가는 유럽 남서부의 기온 상승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덜 알려진 예로 이탈리아벽도마뱀이 있다. 1971년에 이탈리아벽도마뱀 열 마리가 크로아티아의 코피슈테 섬에서 므르차라 섬으로 옮겨졌다. 녀석들은 원래 살던 섬에서 주로 곤충을 잡아먹었지만 새 서식지에서는 식물을 더 많이 먹었다. 오늘날 므르차라 섬의 이탈리아벽도마뱀들은 코피슈테 섬의 벽도마뱀들보다 머리가 더 크고 씹는 힘이 더 강할뿐더러 내장의 구조도 달라져서 식물 섭취에 더 적합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사탕수수두꺼비의 사례는 진화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탕수수두꺼비는 원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생하지 않았지만 사탕수수에 피해를 주는 딱정벌레를 잡아먹을 포식자로서 하와이에서 수입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후 사탕수수두꺼비는 널리 퍼져 토종 생태계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녀석들은 처음 풀어놓은 곳을 중심으로 마치 물결처럼 해마다 더 멀리 퍼져나간다. 물결의 선두에는 당연히 가장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녀석들은 끼리끼리 교미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확산을 선도하는 사탕수수두꺼비들의 후손들은 더 활발하고 기민해진다. 선두의 이동속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진다. 이것은 자연적인 진화의 귀결이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많은 세대가 필요하지만, 어떤 생물은 한 세대가 비교적 짧은 시간이다. 박테리아가 대표적이다. 박테리아는 한 세대가 워낙 짧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박테리아의 진화를 연구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렌스키는 1988년부터 진행해온 실험에서 5만 세대가 넘는 대장균들을 관찰하면서 집단들의 유전자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 연구했다. 5만은 아주 큰 수의 법칙이 작동하기에 충분할 만큼 큰 수다.
동물학자 마크 리들리는 진화 과정의 과학적 측면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그는 시간에 따른 진화에 주목하는 대신 지리적 위치에 따라 약간씩 다른 특징이 선호되는 것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에서 서쪽으로 북아메리카까지 이동하면서 재갈매기를 관찰하면, 재갈매기이기는 한데 영국 재갈매기와는 모양이 약간 다른 녀석들을 볼 수 있다. 서쪽으로 더 가면, 그 재갈매기들은 차츰 줄어들지만 시베리아에서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 정도에 이르면 재갈매기는 영국에서 줄무늬노랑발갈매기라고 부르는 녀석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된다. 시베리아에서 러시아를 횡단하여 북유럽까지 이동하면서 보면, 재갈매기는 영국의 줄무늬노랑발갈매기와 점점 더 비슷해진다. 마지막으로 유럽에 이르면, 종으로서의 자격을 완벽하게 갖춘 두 가지 종인 재갈매기와 줄무늬노랑발갈매기를 보게 된다. 이 두 종은 모양이 다를뿐더러 자연에서는 서로 교미하지 않는다."
찰스 다윈은 기본적인 진화 과정을 아주 깔끔하게 요약했다. "어떤 생물에게 이로운 변이가 발생하면, 그 변이를 가진 개체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보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 확실하다. 또한 강력한 대물림의 원리에 따라서 그 개체들은 유사한 변이를 가진 자식을 낳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간결한 표현을 위해 이 같은 보존의 원리를 자연선택이라고 불러왔다." 자연선택은 대단한 단순성, 우아함, 그리고 힘을 지닌 개념이다. 자연선택은 아주 큰 수의 법칙과 선택의 법칙에 의해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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