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절대영도에서 우주의 소멸까지, 낫씽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통찰력!
그 앞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게재된 것이다. 1956년에 창간된 ‘뉴 사이언티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잡지 중 하나이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독자로 300만 명 이상을 두고 있다. 이 잡지가 2005년부터 펴내고 있는 대중 과학 시리즈는 2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 책을 엮은 제러미 웹은 이 잡지에서 20년 이상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이 우주는 영원하지만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 중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가장 쉬운 예로 불활성 기체가 있다. 우리 대부분 학교에서 이 가스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이 기체도 화학적 반응을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과학은 하나의 여정일 뿐이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 바로 과학인 것이다. 그런데 그 여정이 언제나 쉬운 항해만은 아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심과 고통스런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 편자 제러미 웹
‘뉴 사이언티스트’ 편집국장. 이 잡지에 오기 전에 BBC를 거쳐 영국의 의료 전문 신문 ‘펄스’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 역자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팀워크 심리학>(대니얼 래비), <성격의 재발견>(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캐롤 드웩), <자유와 존엄을 찾아서>(B. F. 스키너)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장 모든 것은 무에서
빅뱅 | 뇌의 은밀한 사생활 | 제로에서 히어로로 | 당신 자신을 치료하라
2장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시간이 시작된 날 | 플라시보의 힘 | 공간의 낭비? | 사라지고 있는 의식
3장 이해의 어려움
희박한 공기로부터의 탈출 | 아무것도 안 하느라 바쁘네 | 구멍 이야기 | 허공 속으로 | 제로
4장 놀라운 것들
빈 공간의 난폭한 삶 | 마음이 육체를 공격할 때 | 천상의 지하철을 타라 | 꽉 찬 진공 | 공통점 무(無)
5장 발견의 여정
절대영도 | 권태학: 행복한 지겨움 | 게으름뱅이를 일하게 하다 | 일어나, 밖으로 나가!
6장 결말에 대하여
운동이라는 약 | 초물질의 세계 | 우주 종말의 시나리오들
낫씽
들어가는 글
사물의 부재를 상징하는 기호인 0을 예로 들어보자. B.C. 300년 경 바빌로니아에서 0의 일부가 생겨났다. 0의 나머지는 그로부터 1,000년 후에 나타났다. 인도인들이 무를 뜻하는 고대의 상징에 사물의 부재(不在)라는 사상을 녹여냈을 때였다. 유럽에서 0은 처음엔 위험한 혁신으로 여겨지며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널리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0은 당신이 사용하는 모든 숫자의 정의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 한 예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몇 세기에 걸쳐 논쟁을 벌였던 진공(眞空)이다. 처음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진공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8세기에는 진공은 빛 에테르라는 신비한 물질로 채워진 것으로 여겨졌다. 이 이론은 20세기 초에 폐기되었다. 그러다 1930년에 이르러 진공은 양자이론의 진공이 되었다. 이 진공은 무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 진공은 입자들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공간이다.
모든 것은 무에서
빅뱅
시작은 무(無)였다. 그런 다음에 빅뱅이라 불리는, 불타는 뜨거운 불덩어리 속에서 우주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빅뱅은 무엇이었는가? 빅뱅이 일어난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그처럼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믿기에 이르렀는가?
약 138억2천만 년 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글자 그대로 무에서 폭발해 나왔다. 빅뱅이라 불리는 거대한 불덩이가 폭발하면서 우주가 생겨났다.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말하자면 물질과 에너지, 심지어 공간과 시간까지 존재하게 되었다.
빅뱅이 일어나고 몇 순간 동안에, 우주의 물질은 극히 작은 부피를 차지했으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것은 전자파와, 오늘날 우주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다른 물질의 입자들이 뒤섞여 펄펄 끓는 가마솥과 비슷했다. 불덩어리는 확장하면서 서서히 식어갔으며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구성물들이 굳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 입자들, 말하자면 모든 물질을 건설할 벽돌이 지금과 같은 본질을 차츰 얻었다. 입자들이 원자로 응축되고 은하가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다음에 우리의 태양과 같은 별들로 부서졌다. 그리하여 45억5천만 년 전에 지구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나머지는 말하자면 역사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들은 빅뱅 초기 0.1초와 1초 사이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의 숫자가 첫 0.01초에서 첫 0.1초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의 수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역사를 영화 필름을 되감듯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초기로 올라갈수록 훨씬 더 광포한 활동으로 가득해진다.
이는 초기의 우주가 광자라 불리는 작은 에너지 형태인 전자기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광자의 운동은 온도가 높을수록 더욱 활발해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력한 에너지의 광자들이 물질의 입자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 가지 형태의 에너지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보여주었듯이 질량(m)은 단지 에너지(E)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를 유명한 공식 E=mc2으로 나타냈는데, 여기서 c는 빛의 속도이다.
뇌의 은밀한 사생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원이던 소콜로프는 뇌가 생각에 몰두할 때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비하는지를 알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자원자의 뇌가 문제를 푸트라 끙끙거릴 때 산소를 더 많이 소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가 눈으로 목격한 내용은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실험 대상자가 산수 문제를 풀 때에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할 때에 비해 산소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뇌는 수도쿠 퍼즐을 풀거나 신문을 읽거나 군중 속에서 어떤 얼굴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기 전까지는 전원이 켜진 채 가만히 있는 컴퓨터처럼 그냥 잠자코 쉬고 있을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소콜로프의 실험이 이와 크게 다른 진실을 처음으로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 실험에서 뇌도 사생활을 아주 은밀하게 즐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겨우 몸무게의 2% 정도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칼로리의 20%나 게걸스레 소비하는 이 놀라운 신체기관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운데 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는 것 같다.
라이클과 슐만은 2001년에 자신들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디폴트 모드(default mode)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디폴트 모드란 일종의 혼자 하는 내면의 놀이와 비슷한 것으로, 뇌가 무엇인가를 활동하도록 요구 받을 때에는 내려놓았다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을 때 하는 그런 놀이 정도로 보면 된다. 이 뇌 활동은 대부분 앞에서 뒤까지 뇌의 중앙선을 통해 연결되는 부위에서 일어났으며, 라이클과 슐만은 이 부위에 디폴트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뇌 부위들은 연구원들에게 그 전에도 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때까지 연구원들이 몰랐던 것은 이 부위가 사람이 아무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서로 끊임없이 잡담을 나누다가 주의의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 생기기만 하면 금방 조용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대사 활동을 측정한 결과 이 네트워크의 일부가 뇌의 다른 부위에 비해서 에너지를 30%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은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할 때, 뇌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가? 디폴트 네트워크의 윤곽을 대충 그렸을 때, 라이클과 슐만은 이 뇌 부위와 관련해서 이미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이 네트워크의 목적을 말해줄 단서들을 살폈다.
라이클과 그의 동료 데브라 거스나드(Debra Gusnard)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한 가지를 가리켰다. 바로 공상이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해마를 통해서 기억, 즉 공상의 재료를 건드릴 수 있다. 그러면 내측전전두피질이 성찰적인 관점에서 그 기억들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클과 거스나드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뇌에게 미래의 행동과 선택을 미리 고려해보는 내면적 리허설의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같은 진척은 반세기도 더 전에 소콜로프가 놀라운 관찰을 내놓은 이후로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끊임없이 일을 하는 뇌보다 휴식을 취하는 뇌를 살핌에 따라, 우리가 은밀한 순간들을 가질 때 내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작용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번에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슬렁거리게 되거든, 그때도 당신의 뇌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시간이 시작된 날
이 아이디어만 받아들인다면,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점이 아주 명백해진다. 빅뱅 이전과 같은 시기는 절대로 없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빅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물음에 대해 "빅뱅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식의 대담한 대답이 종종 나온다. 이 같은 대답이 많은 오해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맥락에 쓰는 nothing이라는 단어를 빈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어렵게 지적하고 있듯이, 빅뱅 이전에는 공간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낫씽이 공간 이전의 보다 신비한 무엇, 혹은 공간이 나온 추상적인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는 낫씽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언급했듯이,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낫씽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곳에 어떤 신비한 낫씽의 땅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언급한 지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뿐이다. 북극의 북쪽은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빅뱅 이전 시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론자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어떠한 앞선 시기도 없었다는 식으로 간단히 설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왜 시간과 공간이 갑자기 켜진 것일까? 한 가지 추리는 시간과 공간이 이처럼 자연적으로 기원하게 된 것이 양자역학의 결과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소립자에 적용되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가 두드러진 특징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관측 가능한 모든 양에서 예측을 불허하는 돌발적인 요동이 일어난다. 양자 요동은 그 어떤 것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 요동은 그야말로 저절로 일어나며 가장 깊은 차원의 자연에 고유한 성격이다.
플라시보의 힘
이런 것이 플라시보의 힘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한때 긍정적인 사고의 힘만 작용하는 그런 간단한 문제로 여겨졌다. 사람들이 훌륭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라. 설탕으로 만든 가짜약으로 그렇게 해도 좋고, 친절한 태도로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 간섭을 추가로 하지 않아도 차도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베네데티와 다른 전문가들은 지금 플라시보의 진짜 본질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가 우리에게 많은 문제를 안겨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약품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이 특히 더 의문스럽게 되었다고 베네데티는 말한다. "약효가 없는 약이 표준적인 실험에서 플라시보보다 더 잘 들을 수도 있다."
보스턴의 하버드 의대의 테드 캡척이 지적하듯이, 그 반대 또한 진실일 수 있다. "분명히 약효가 있는 약이 표준 실험에서 플라시보보다 더 낫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효과 있는 약이 잘 듣는다고 확신을 가질 때조차도 가끔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일부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플라시보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연구원들은 최근의 발견들이 증거에 근거한 약품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어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네데티는 "플라시보가 약품의 신뢰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 대상자들에게 자신이 복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실험을 주관하는 담당자들도 어느 집단이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를 몰라야 한다. 그래서 실험담당자들은 실험에 동원되는 약에 관한 한 절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임상실험의 중요한 기준인 무작위 이중 맹검(盲檢)(double-blind randomised controlled trial)이 확보된다. 이것도 플라시보 효과를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그 효과가 두 집단에 똑같이 적용되도록 한다. 통념에 따르면, 이중맹검에서 진짜 약을 복용한 집단에 나타난 초과 효과가 그 약의 효과로 여겨진다.
베네데티는 "어떤 약품의 진짜 작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약을 복용하는 행위 자체가 환자의 뇌를 자극하고, 그러면 환자의 뇌에서 생화학적 사건들이 봇물 터지 듯 일어난다." 약이 약에 대한 기대로 인해 활성화된 분자들과 상호작용할 수도 있음에 따라, 약효에 대한 해석을 더욱 복잡해졌다.
이해의 어려움
진공에 얽힌 이야기
아마 4가지 위대한 발명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것은 진공펌프일 것이다. 진공펌프의 영향은 다른 것들에 비해 덜 두드러진다. 아마 기압의 변화가 대안렌즈를 통해 보는 이미지들에 비해 이해하기가 더 어렵고 또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만큼 뚜렷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진공을 쓸 곳조차도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 되어서야, 진공이 물질과 삶의 방식을 보는 관점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이 진공도 철학적으로 적절하고 또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으니 더욱 낮은 기압에 도달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200년 동안 진전이 멈추었다. 호기심 강한 자연 철학자 몇 명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진공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공은 사소한 문제로 취급당하고 말았다. 그러다 1850년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저 기압이 1 또는 2 밀리바 근처까지 낮춰졌다.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이 1660년에 닿은 6밀리바에 비하면 크게 향상된 수치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진공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노이다. 설령 육안에 보이는 부피에 전혀 입자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도 진정으로 빈 공간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공간도 여전히 양자 요동과 암흑 에너지를 비롯한 다른 양자역학에 따른 현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이런 식으로 다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실용적 관심과 목적에 비춰 이상적인 진공으로 평가받을 그런 진공을 성취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질문이라면 당연히 예스이다. 어쩌면 이미 성취했을지도 모른다.
땅 위에서 기술저적으로 이루는 진공의 경우, 실질적 한계는 우주 공간보다 훨씬 더 높다. 어떠한 벽이나 봉인도 완벽할 수 없다. 분자들, 특히 수소의 침투 때문에 어디든 약간의 분자가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초고진공(超高眞空) 시스템이 수소를 몰아내는 데 비효율적인 터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과학에서 주사형(走査形) 전자 터널 현미경(scanning tunnelling miscroscopy), 그리고 싱크로트론과 입자가속기 같은 대규모 시설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불충분할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느라 바쁘네
하루 종일 고된 노동 끝에, 집으로 돌아와 요리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을 재우고 이제 겨우 5분 정도 안락의자에 앉아 몸을 쉴 시간이다. 운 좋게 얻은 이 짧은 시간에 당신은 어쩌면 터무니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사는 동물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무늘보를 보자. 이 녀석들은 열대 우림의 무성한 숲 속에서 나무 위에 올라가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아니면 비단뱀을 보라. 다음 식사를 기다리며 몇 개월이고 누워 있다가 배를 채운 다음에는 다시 몇 주일 동안 관목 속에서 쉬면서 소화시키는 일만 한다. 지복(至福)이 따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게을러터진 것 같은 동물들의 행동과 대사 작용을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런 동물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편하게 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동물들도 나름대로 생존의 벼랑에 서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살아남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움직임이 가장 적은 생명체들 중 일부의 대사 작용이 경주마만큼이나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펭귄 새끼들을 밀폐된 작은 방에 넣었다. 방에는 공기 공급을 모니터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펭귄 새끼들이 산소를 얼마나 빨리 소비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산소 소비는 신진대사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포가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포도당을 태워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하다. 위(胃)에 든 것이 없는 펭귄 새끼들은 시간 당 몸무게 1그램에 1밀리미터의 산소를 소비하는 신진대사율을 보인다.
채플을 정말 놀라게 만든 것은 방금 배를 채운 새끼 펭귄들의 신진대사율이 그보다 배나 높다는 사실이다. 온혈동물 사이에 신진대사율이 그만큼 증가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새끼 펭귄들이 이런 활동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유가 뭘까? 어린 펭귄들에겐 한 가지 목표가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자라는 것이 목표이다. 새끼 펭귄들은 도둑갈매기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이런 환경에서 작고 연약한 새끼 펭귄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단 덩치부터 재빨리 키워놓는 것이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신속한 소화는 당연히 몸집을 불리는 데 도움이 된다. 새끼 펭귄들이 먹이를 통째로 삼키게 되면 부모에게로 더 자주 가서 더 많은 먹이를 조를 수 있다.
세코는 비단뱀의 다른 장기들도 똑같이 먹이를 먹지 않는 동안에는 허리를 졸라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배가 비어 있을 때에는 간과 신장과 심장 등이 점차 오그라든다. 그러나 먹이를 먹고 나면 이 장기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50%까지 늘어난다. 먹이를 먹은 뒤에도 유일하게 무게를 잃는 장기는 쓸개이다. 이는 저장해두었던 담즙을 창자 쪽으로 비우기 때문이다.
신진대사에 나타난 이런 식의 적응은 크고 귀한 먹잇감을 숨어서 기다려야 하는 포식동물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먹잇감을 발견하지 못하고 몇 개월을 버텨야 할지도 모르는 비단뱀에게는 조용히 한자리에 있는 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 비용을 정당화할 만한 여분의 먹이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먹잇감이 드물기도 한데다 추격하면 달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냥에 나서는 비단뱀은 아마 굶어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 당신이 두 다리를 높은 곳에 얹고 쉬게 될 때면, 이런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운이 인간이 놓쳐버린 진화론적 보너스일지는 몰라도, 게으름뱅이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한 모든 연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운엔 반드시 벌칙이 따르게 되어 있다. 텍사스 장님 도롱뇽에게 좋은 것이 당신에겐 나쁜 소식이 될 수도 있다.
놀라운 것들
천상의 지하철을 타라
지구에서 달 혹은 행성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무엇일까? 나사(미국 항공우주국)의 엔지니어들에 따르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런던 시민들의 방식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즉 지하철처럼 터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그다지 독창적이지 않다. 피터 해밀턴(Peter Hamilton)의 SF 소설 『판도라의 별』(Pandoras Star)은 사람들이 먼 별들을 돌고 있는 행성들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철로가 시공(時空)을 관통하는 지름길 같은 웜홀(wormhole)을 정확히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웜홀을 지을 수만 있다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논리적이다. 훨씬 앞서, 스미스(E. E. Smith)는 적의를 품은 외계인들이 다른 차원으로부터 인간 세계를 공격하는 데 이용할 초공간적인 튜브를 떠올렸다. 그리고 맥앱(C. C. MacApp)은 항성계(恒星系)들이 튜브 시스템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주를 상상했다. 맥앱이 그리는 우주 안에서는 우주선들이 이 튜브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 있다.
아직 우리가 웜홀이나 다른 차원 또는 빛보다 더 빠른 우주 터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수학자들은 우리의 태양계가 이 작가들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발명품과 놀랄 정도로 비슷한 무엇인가를, 우주여행에 완벽할 만큼 적절한 튜브의 네트워크를 발견했다. 이 튜브는 오직 수학적인 눈에만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튜브의 벽들이 태양계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형성하는 중력장들에 의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들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만약에 행성과 달, 아스테로이드와 혜성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장들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성들이 끊임없는 중력의 댄스를 출 때 그 행성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튜브의 네트워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사의 엔지니어들은 이미 이 네트워크를 행성 간 슈퍼하이웨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한 번 SF 소설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튜브들은 중력이 만들어내는 지형도의 한 특징이다. 태양계는 산악의 풍경과 많이 닮았다. 태양계 행성과 그 달들의 중력장들이 산과 언덕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태양계의 중력 등고선은 땅의 등고선과 아주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이를테면 중력장의 힘이 절정을 이루는 태양 가까운 곳에 등고선처럼 생긴 테들이 촘촘히 몰려 있다. 물론 거기에는 이웃한 2개의 물체의 중력장들이 서로를 상쇄하는 곳인 계곡 바닥을 나타내는, 등고선이 없는 평평한 곳도 있다. 빅토리아 시대 철도 엔지니어들이 등고선을 따라 기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사실을 파악했던 것과 똑같이, 수학자들은 우주에서도 중력의 등고선을 따라 우주선을 달리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여행 코스를 바꾸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행성 간 슈퍼하이웨이의 자연적인 인터체인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인터체인지의 존재를 보여주는 계산은 200년도 더 전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계산은 단 2개의 물체, 예를 들어 지구와 달로 이뤄진 체계 안에서는 두 물체의 중력장이 서로의 힘을 상쇄하는 곳이 5군데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중 3개는 지구와 달이 일직선을 이루는 곳에 있다. L1은 지구와 달 사이에, L2는 달의 건너편에, L3는 지구 쪽 먼 곳에 위치해 있다. 트로이안 지점(trojan points)이라 불리는 L4와 L5 는 달의 궤도에, 달보다 60도 앞이나 뒤에 있다. 달이 지구 궤도를 돌 때, 라그랑주점(Lagrange point)도 같이 돈다. 다른 물체들의 짝, 즉 지구와 태양, 목성과 태양, 토성의 제 6위성과 토성에도 라그랑주점이 있다. 일부 라그랑주점에는 또한 헤일로 궤도(halo orbits)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제3의 어떤 물체가 라그랑주점을 주기적으로 돈다.
이 모든 이론의 아름다움은 태양계를 통과하는 튜브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오테르마 혜성의 궤도는 목성 가까운 지점에서 서로 만나는 2개의 튜브를 따르고 있다. 한 튜브는 목성의 궤도 안에 있고, 다른 한 튜브는 목성의 궤도 바깥에 있다. 2개의 튜브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이 혜성은 목성과 태양의 중력의 효과에 따라서 튜브를 바꾸거나 바꾸지 않는다. 어느 한 튜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오테르마 혜성은 교차로에 이를 때까지 그 튜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테르마 혜성은 자체 추진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혜성은 궤도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언제나 목성 가까이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우주선은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목성이 유일한 교차로도 아니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임무 계획을 짜는 길은 어느 튜브가 목적지와 관련이 가장 깊은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선을 라그랑주점으로 향하는 튜브를 따라 날게 할 것이다. 우주선이 라그랑주점에 닿으면, 그때는 모터를 재빨리 조정하여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있는 다른 라그랑주점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주선의 길을 조정하면서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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