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충격

   
이일용
ǻ
글드림
   
16000
2014�� 11��



책 소개

 

지능이란, IQ가 아니며 타고난 똑똑함이나 분야별 재능은 더더욱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된 지능에 대한 오해를 종식시키는 책!

 

이 책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준다. 저자는 사고력의 원리지능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능을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IQ나 타고난 똑똑함, 분야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사실 지능이 아니다. 저자는 IQ와 같은 잘못된 개념을 지능이라고 착각하여 지능의 정체를 파악할 기회를 놓친다면, 인류는 수많은 인종차별적 편견과 유전학적 오판으로 지난 수백 년간 겪었던 고통을 또 다시 반복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능이 무엇이며 그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이일용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차례

1장 지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새로운 지식

2장 지능과 맞설 준비 - ‘사고학이란 무엇인가

3장 지능으로 착각하기 쉬운 개념들

4장 지능에 대한 새로운 질문, 지능의 자격을 말하다

5장 지능의 딜레마를 풀다

6장 생명은 지능을 어떻게 구현하였는가

7장 지능은 기억을 허락하지 않는다

8장 지능은 감정의 동작 원리를 재정의한다

9장 지능은 생각이 존재하는 이유를 바꾼다

10장 지능이란 이토록 무서운 개념이었다




지능의 충격

지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새로운 지식

1인칭 학문의 부재

최근 수천 년 간 인류의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다양한 학문과 그 깊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바쳐도 벅찰 정도로 깊고 풍부해졌습니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학습 능력’과 ‘사고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지만 막상 그토록 필요한 ‘학습 능력’과 ‘사고력’ 자체는 어떤 학문으로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인류에겐 수많은 학문이 있지만, 막상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해주는 ‘손에 잡히는 학문’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인생을 연구하는 ‘인생학’은 없으며, 교육을 연구하는 ‘교육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학습을 연구하는 ‘학습학’은 없고,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사고력을 연구하는 ‘사고학’이란 학문은 없습니다. 즉, ‘학습, 사고력, 인생’은 다른 학문의 하부 항목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독립된 학문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문명의 문제점’입니다. 학문과 지식은 수도 없이 많은데, 모두 다 배워야 하는 학문들뿐이지 정작 우리가 실전에서 직접 쓸 수 있는 학문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인류가 정립한 모든 학문은 대부분 ‘3인칭’이기 때문입니다. 학문이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고 객관성을 확보할수록, 학문은 주관성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관찰 위주의 3인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관성’을 다루는 ‘1인칭 학문’은 쉽게 만들어지기 힘들며, 대신 이런 류의 주제는 ‘나는 이렇게 하여 성공하였다’라는 식의 개인적인 ‘성공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마다 모두 적성이 다르고 장점이 다르니 한 사람의 성공법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3가지 학문[학습학, 사고학, 인생학]이 계속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손들 역시 평생을 배우느라 고통받고 사고력이 늘지 않아 괴로워하며 인생이 무엇인지 몰라 힘들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가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이 3가지 학문을 만들려면 반드시 알아내야 할 뭔가 ‘끔찍하게도 어려운 개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습이 안 되는 이유와 사고력이 떨어지는 이유, 그리고 인생이 힘든 이유를 알아내려고 할 때마다 이 모든 이해하기 힘든 증상과 원인들이 결국에는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길래 이런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요? 바로 ‘지능’이라는 개념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능’을 그저 똑똑함이나 영리함으로 알고 있던 분들은 잘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명체에게 행사하는 지능의 영향력과 위엄(威嚴)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근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인류가 얼마나 ‘지능’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사고학이란 무엇인가

3가지 기본 사고 능력

지연력(지연시키는 능력)

사고학의 3가지 기본 사고 능력 중 첫 번째로 배워야 할 사고 능력은 바로 ‘지연력(지연시키는 능력)’입니다. (참고로, 만족을 지연시키는 기법, 즉 더 큰 만족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지연시키는 것 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사고학에서의 ‘지연력’이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하여 일부러 해결을 ‘지연시키는 능력’으로 다음 3가지를 말합니다.


‘문제의 상황’을 그대로 지연시키는 능력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지연시키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지연시키는 능력


즉, ‘지연력’이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현시점에서 상황을 정지시킨 후 문제가 있는 상태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그대로 유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경찰이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몇 번이고 이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지연력으로 문제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해야 몇 번이고 이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지연력으로 문제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야 이것을 반복해서 계속 들여다볼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문제가 쉽다고 바로 해결해버린다는 것은 경찰이 심증만으로 범인을 잡은 후에 성급하게 사건 현장을 폐쇄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연력’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잊혀진 열쇠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잊혀진 열쇠 효과’란, ‘인간은 보물 상자를 열고도 보물에 신경 쓰느라 방금 전 어떤 열쇠로 열었는지 알지 못한다’라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잊혀진 열쇠 효과’에 빠지지 않으려면, 상자를 ‘열기 전’에 번거롭고 귀찮아도 매번 열쇠에 분명하게 표시를 해두어야 합니다. 성공한 다음에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사용한 열쇠가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게 됩니다. 열쇠를 손에 쥘 기회는 상자가 열리기 전에만 있는 것입니다.


‘지연력’을 배워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생각 동력(動力)’ 때문입니다. 즉, ‘지연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외부의 ‘생각 동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자동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숨겨진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지연력 없이 문제를 처리하다 보면, 온통 해결책을 찾는 데에만 집중하여 문제 자체에는 소홀할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단순하고 쉬운 문제들은 잘 해결하지만 문제의 수준이 조금만 높아져도 핵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다 포기하게 됩니다.


구분력(구별하고 분리하는 능력)

제가 연구한 결과, 사회가 어느 선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이유는 ‘개념’을 구별하는 능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며, 인간이 지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사고력이 정체되는 이유도 ‘개념’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념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도 개념을 서로 ‘분리하는 능력’을 따로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귀찮더라도 이것저것 얽혀 있는 생각을 서로 ‘구별하고 분리하는 능력’을 의도적으로 배워야 하겠습니다. 개념이나 생각을 서로 구별하고 분리하여 사고하지 못하고 한데 뭉쳐 놓고 고민만 하다 보면, 개인이건 사회이건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엔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엔 암초에 부딪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인정력(인정하는 능력)

세 번째 배워야 할 사고 능력은 ‘인정력(인정하는 능력)’입니다. 사고학에서의 ‘인정력’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認定)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정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생각 자체를 전혀 올바르게 진척시킬 수 없을 정도로 ‘사고력 왜곡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진실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 아무리 뛰어난 사고력을 동원해 보아야 모두 다 왜곡된 사고력일 뿐이며, 자신이 잘못되었음이 명백함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고력은 모두 의미가 없어집니다.


인정하는 것을 ‘포기의 순서’처럼 제일 마지막에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일단 도전하라 그리고 나서 인정한 후 새롭게 바라보라’가 되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진실을) 인정하는 법을 연마해보시기 바랍니다.



지능으로 착각하기 쉬운 개념들

지능이란 무엇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다

오랜 기간 ‘지능’이란 추상적인 것이나 상징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언어와 같은 추상적인 상징이나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개념들을 잘 이해하는 능력과 과거에 배운 개념을 확장하여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근본적인 차이이며 이런 ‘추상적인 사고 능력’이 곧 ‘지능’이라고 여겨졌었습니다. 즉,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지능’ 그 자체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중대한 의문을 하나 제기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는 능력, 즉 ‘이해력’은 위에서 말하는 그런 능력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연구해본 결과,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였다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와 그 정체(개념)를 파악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어떤 것의 ‘의도’나 ‘용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잘 ‘구사’하거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경향이 큽니다.


예를 들어,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물리학의 오래된 난제 중에 하나로 아직까지도 시간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의미는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이지만, 우리는 물론 아동들도 시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관련 어휘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부터 모든 학문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이해하고 그 정체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던 그 수많은 ‘개념’들이 역사를 통하여 한순간에 ‘착각’으로 밝혀진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어떤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그것의 의미(개념)를 이해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사실은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을 자주 접하여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느낀다’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에게조차도 추상적인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그저 ‘단순 매핑에 의한 익숙함’에 불과하다면, 이런 잣대로 생명체의 ‘지능’을 정의할 수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능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지능’이란 무엇을 잘하거나 특정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 지구 상에는 특정 기능만을 잘 수행하거나 특정 문제만을 잘 해결하는 생명체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지능’의 한 요소인 것 같지만, 여기에는 많은 함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체의 지능을 비교하기 위해 특정 상황을 주고, 해당 문제를 어떤 생물이 보다 잘 해결하는지 테스트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방법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생명체의 ‘감각 기관’이나 ‘행동 본능’이 모두 동일해야만 사용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즉, 항상 어떤 분야와 어떤 생물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테스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관점으로 테스트 환경을 만들어놓고 어떤 생물이 이것을 더 잘 해결한다고 해서 이것이 지능 수준을 말해준다고 간주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간만의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지능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도구 사용 여부’나 ‘기억 활용 여부’, ‘자아 인식 여부’ 등이 테스트에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들이 지능이 높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증해줄 수는 없습니다.


나뭇가지만 잘 사용하면 지능이 높은 것인가요?

인간보다 기억만 잘 하면 지능이 높은 것인가요?

거울만 잘 볼 수 있으면 지능이 높은 것인가요?


인간이 잘하는 분야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으면 지능이 높고 잘 하지 못하면 지능이 낮은 것일까요? ‘지능’이란 어떤 분야에서 기능을 잘 수행하거나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없으며,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분야에서 공통으로 발현되는 생명체의 지적 속성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동물이 매우 지능적이거나 고도의 논리적이며 계산적인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이것은 ‘지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능력을 다른 분야에는 응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 단 하나의 질문이, 해당 동물의 능력이 진짜 ‘지능’인지 그저 ‘재능’인지를 구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분야를 잘 선택하면 그것이 지능을 대표할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겠습니다.


지능이란 학습하는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란 생각보다 정의하기에 난해한 개념이지만, 대다수 학문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경험을 통한 행동의 변화’나 ‘지식의 습득’처럼 알기 쉽고 단순한 개념으로 ‘학습’을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과 ‘지능’의 관계 역시 단순하게 추론합니다.


즉, 대부분의 학문에서 ‘지능’이란 ‘학습하는 능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학습할 수 없으면 무엇을 배울 수도 없기 때문에 ‘높은 지능’에는 반드시 ‘뛰어난 학습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관점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동물은 먹이를 먹기 위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금방 학습하지만 다른 동물은 잘 학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학습 능력’을 기준으로 지능을 평가하려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습과 지능이 서로 긍정의 피드백만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강화될 것이다’라는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학습과 지능은 강한 ‘억제의 피드백’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지능이 높을수록 학습을 더 잘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왔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각종 교육 정책은 물론 사회복지 정책, 인종 차별 정책까지도 자행되어 왔습니다. 마치 ‘공부(학습)를 못하면 지능도 낮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매도하면서 ‘공부 실패’는 곧 ‘인생 실패’로 간주되어 온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부 때문에 고통 받으며 사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저는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오히려 지능이 높을수록 학습하기 어려워진다.’ 역설적이게도 학습과 지능은 어떤 수준 이상에서는 서로 반비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생명체는 지능이 높을수록 ‘원치 않는 학습’이나 ‘재미없는 학습’을 보다 잘 인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이 이런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게 되어 학습을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학습의 역설’입니다.


저도 처음엔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고학의 ‘에너지 감지 가설’을 정립하다 알게 되었죠. ‘생각의 원리’가 추구하는 목표 중에 하나는 ‘에너지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즉, 지능이 높을수록,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해당 학습을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 수시로 자신도 모르게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이 높은 생명체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여 끝까지 ‘학습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습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야 학습 수행에 계속 에너지를 소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내부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능에 대한 새로운 질문

‘전두엽’에 대한 질문

(정상적인) 인간이 뇌의 전두엽 장애로 인한 의지의 상실 즉, 무의지증(abulia)에 걸린 경우 지능은 어떤 상태라고 보아야 할까요? 전두엽(frontal lobe)은 대뇌의 전방 부분으로 추리와 사고력 등 같은 인간 정신 작용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전두엽에 손상을 입으면 여러 가지 정신 장애가 발생하지만, 그중에서도 ‘지능’과 관련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장애는 심각한 의지(意志)의 상실, 즉 중증 무의지증(abulia)을 촉발시키는 전두엽 증후군들입니다.


심한 무력감과 욕동(浴童, drive) 상실로 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외부에 반응은 할 수 있어서 묻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간단한 행동을 시키면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이나 행동에도 전혀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 마치 감정이 증발된 기계와도 같이 무덤덤하게 반응한다고 하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의지증 환자들 중에 일부는 정상적인 지적 기능을 보인다고 합니다. 즉, 지적인 기능은 정상 작동하는데 그야말로 의욕이나 감정 기능만 결여된 산송장 같은 환자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들의 지능은 정상인 것인가요? 아니면, 욕동 상실로 인해 ‘자발성’이 훼손되었으므로, 지적인 기능이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지능은 손실된 것으로 간주해야 할까요?

무의지증과 관련해서 지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찾아낸 ‘지능’의 정체가 맞다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능의 딜레마를 풀다

‘심심함’이라는 딜레마

기생충은 결코 스스로 심심해할 수 없으며, 이 기생충에게 거미의 뇌를 떼어다가 붙여줘도 역시나 스스로 심심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뇌가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뇌가 있는 수많은 동물들 역시 스스로 심심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거미, 개구리, 도마뱀 등 하등동물일수록 심심해할 수 없으며, 고등동물일수록 심심해할 수 있는 능력이 증대된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지능은 가장 심심해할 수 없는 지능이며, 인간의 지능은 가장 심심해할 수 있는 지능인 것입니다.


이제야 지능이 더 높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구체적인 기준이 나왔습니다. 적어도 ‘지능’이란, 심심해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심심함’이란 그저 어떤 ‘지루한 상태’가 아니라, 고등생명이 ‘창출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지능의 정체’는 ‘지능이 더 높다’라는 것을 알아야만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것이며, ‘지능이 더 높다’라는 것은 ‘심심함’이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가를 알아야만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서로 모순되는 2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기생충은 심심함을 창출할 수 없으므로 지능이 매우 낮으며, 인간은 심심함을 다양하게 창출할 수 있으므로 지능이 매우 높다.

2. 그러나 피조종자는 그저 좀비처럼 조정당하는 것뿐이므로, 조정자보다 지능이 높을 수 없다.


즉, 인간이 (기생충의) 피조정자가 되어 조정당하게 된다면, 기생충보다 지능이 낮아야 하는데, 기생충은 지능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났으니 인간이 어떻게 그보다 지능이 낮을 수 있는가 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위 2가지 사실을 위배하지 않고도 인간의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인간 스스로 기생충에게 조정당하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즉, 기생충은 인간을 조정할 수 없어야 합니다. 결국, 기생충이 인간의 뇌를 아무리 조정하려고 해봐야, 인간이 ‘심심함’을 스스로 창출해낼 수 있다면 그 원리로 인하여 이 기생충의 조정을 방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심심함을 발생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내부 구조

유기체(생명체)가 어떤 ‘심심함’을 느끼려면 일단 동력을 주기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통합 신호 발생기’ 같은 것이 뇌 안에 필요합니다. 이것이 1단계 기계적인 과정입니다. 심심함의 2단계에서는 이 주기적 신호를 뇌에서 해석하게 되는데, 특히 인간의 뇌는 다음 3가지의 내부 상태를 함께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신체 에너지, 현재 급한 일, 감정 전환 에너지’

즉, 현재 신체가 어떤 역치 이상의 에너지 여유가 있고, 현재 처리해야 하는 다른 급한 일이 없으며, 현재 감정 상태를 바꾸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평가가 어떤 기준치 이상이면 드디어 심심함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뇌가 감정 전환에 대한 어떤 계산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급한 일이 없고 신체 에너지가 충분해도 아이들의 뇌는 감정 전환에 대한 계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감정 저항력이 약해 심심함을 자주 느끼는 반면, 어른들의 뇌는 감정 전환에 대한 계산 능력이 높기 때문에 감정 전환시 저항력이 커져 심심함을 자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감정 전환이 크게 요구되면, 아무리 신체적으로 기운이 넘치고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심심함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지능은 생각이 존재하는 이유를 바꾼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이제부터는 지능의 그림자가 ‘생각의 원리’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사고력은 인간의 지능과 생각의 동작 원리 위에서 탄생하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알아볼 ‘생각의 원리’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고학에서 바라보는 ‘생각의 원리’는 ‘상황 추론과 계획의 도구’이며 다음과 같습니다.


‘지능이 있는 존재는 자신의 욕구를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알아내어 처리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추론하고 예측한 후 이를 기반으로 욕구 처리 행동을 계획하고 수행하여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추론과 계획의 도구가 바로 생각이다’라는 원리입니다. 따라서 ‘생각’이란 상황과 욕구를 추론하고 평가하여 행동을 계획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생각 시스템의 3가지 특징

생각이란 독립된 기능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과 연계된 기능일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그 다음에 제가 주목한 것은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순간에 생각 전체를 못한다면 필름이 끊긴 것처럼 그러한 상황 자체도 사라져야 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이 잘 안 된다는 것을 그 순간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정확히 말한다면, 생각이 멈춘다기보다 생각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생각’이란 (1) 단일 통합 시스템이며 (2) 생각 이외에 다른 어떤 것과의 연계가 필요하고, (3) 생각을 감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함께 동작하는 과정에서 위의 다양한 일상 사건들과 마주칠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생각을 진행시키지 못하게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에너지

생각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하나의 생각은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생각 흐름을 유발하여 다발적 생각 군(무리)으로 확산되기 때문에, 생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이 아니라 에너지 소모도가 크고 작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생각이란 관련 행동을 유발하거나 행동 충동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당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도까지도 이 생각 에너지로 간주되어 계산하게 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이젠 ‘공부해야지’나 ‘일해야지’라는 생각은 하나의 단발적 생각이 아니라, 뒤이어 수행해야 할 행동들의 에너지 소모도까지도 자동으로 계산되어 감지되는 ‘다발적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아주 충분하다면 생각이 얼마나 다발적인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생각을 지속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생각은 에너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에너지가 부족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끝없이 시도하게 되므로, ‘생각과 에너지의 관계’를 잘 모르면 사고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인간은 가급적 생각을 줄여 자신의 에너지를 보호하려는 성향을 갖게 되며, 현재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감지하여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생각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정상적일 경우) 기본적으로는 ‘생각 유지’에 방어적이며, ‘생각의 분산’과 ‘생각의 순환’에 직면하게 되면, 더 이상의 생각 진행을 하지 않고 생각을 멈추려는 경향을 갖게 됩니다. 또한 생각의 개수가 같더라도 생각의 종류가 많아지면 생각 범주화 전환에 에너지 소모가 커져서 금방 피로하게 되며, 단일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줄줄이 촉발되는 생각 다발이 많다면 이것 역시 자동으로 감지되어 해당 생각을 기피하게 됩니다.


생각의 동작 원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생각’이란 지능의 기능인 상황을 추론하고 평가하여 다음 행동을 계획하는 기능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이란 ‘상황 감지 시스템’과 강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에너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1) 신경계에 이상이 오지 않도록 ‘신체 상황을 개선’하고 (2) 상황 정보가 편향되지 않도록 ‘감각 입력의 중립’에 신경 써야 하며, (3) 생각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감당하는 법을 꾸준히 배워서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자립’이란 이처럼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지,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생각의 자립’이 얻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이점을 명심하고 ‘생각의 원리’를 잘 숙지하여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능’이란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욕구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잊더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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