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이 책은 건축물을 의식주의 하나일 뿐 아니라 인간 삶의 동반자로서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건축공학이나 기술, 그리고 역사 · 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발현되기를 소망한다.
건축은 집이나 빌딩, 다리 등의 건축물을 설계에 따라 짓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단순히 그러한 설명만으로 건축을 정의할 수는 없다. 건축물이 완성되려면 가장 먼저 구조와 물리, 설계 등 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건축의 수많은 과정 중 최초의 단계일 뿐이며, 작업이 진행될수록 본격적으로 더 많은 요소들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지형적 특성이나 물리적인 과학기술뿐 아니라 그 지역의 사회적 성향, 국가의 경제 상황, 그리고 당대의 철학과 예술, 문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학문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건축은 매우 다양한 분야와 연관되어 있다.
■ 저자 양용기
‘아르누보’의 중심지인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설계 일을 하면서 독일에서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다. 지금까지 설계한 건축물이 독일, 미국, 요르단 등 세계 80여 군데에 자리하고 있다. 건축물을 하나씩 설계하면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는 루이스 칸의 말처럼 설계자에게 건축은 ‘건축, 그 이상의 더 많은 의미가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한때 세계적인 건축가 귄터 베니쉬에게서 설계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만들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대표적인 설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쥬베일 국제학교&&(1994), 리야드의 <셰단 센터&&(1994), 안산대학교 <민들레 영토&&(2005) 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건축에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디자인 이론을 직접 설계에 반영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으며,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미국 O.N.E 건축사무소, 쌍용건설(주)을 거쳐 현재 안산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탈문맥』(건축소설)『건축설계입문』『건축형태분석』『건축 ATLAS』『기숙사 건축문화』『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디자인=기능+미』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
Chapter 1 인간을 위한 건축, 융합으로 아우르는 종합학문
건축은 인간에게 제2의 피부 | 인간·자연·건축, 생존의 삼각관계 | 건축의 구성요소, 바닥·벽·지붕 | 건축의 형태와 구조는 목적에 맞아야 한다 | 건축물에 생명을 부어주고 겉옷을 입혀주는 설비와 마감 | 건축은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의 3중주 화음 | 건축은 기능과 미를 아우르는 종합예술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
Chapter 2 건축에 반영된 미술사, 미술사에 반영된 건축
건축,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미술과 함께하다 | 고대, 감성의 눈으로 건축과 미술을 보다 | 중세, 신이 건축을 지배하다 | 르네상스, 인간의 건축으로 부활하다 | 근현대 미술과 건축, 모더니즘을 열다 | 사실의 가치를 중시한 자연주의·사실주의·이상주의 | 아츠 앤 크래프츠, 아르누보, 유겐트스틸 | 아방가르드, 전위를 꿈꾸다 | 다다이즘, 관습과 형식을 의심하다 | 표현의 가능성을 입체파·표현주의·미래파 |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 경계를 해체하다
Chapter 3 도시를 창조한 건축, 사회를 이해하는 척도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건축 | 사회구조가 다르면 건축구조도 다르다 | 지형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건축 | 환경과 건물의 관계, 조화·대조·대립 | 도시와 아파트, 그 순기능과 역기능 | 건축과 도시는 항상 미래를 준비한다
Chapter 4 과학에 바탕을 둔 건축, 미래를 준비하는 첨단과학
과학적 원리가 담긴 건축구조 | 건축 속에는 열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유리, 건축에서 벽을 사라지게 하다 | 최첨단 과학과 인간의 만남, 스마트 건축을 만들다
Chapter 5 철학·미학·심리학적 질문으로 완성되는 건축
철학적 질문 속에서 새롭게 지어지다 | 인간을 담는 공간으로 확장되다 | 미적 형상이 건축을 결정한다 | 자연미와 인공미 사이에 선 건축 | 심리학으로 짓는 건축 | 낯선 건축에서 새로움을 보다 | 오감을 통해 완성되는 공간
Chapter 6 문화 전달자로서의 건축, 건축의 상징을 녹여내는 영화
문화 수행자 또는 전달자로서의 건축 | 건축,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 양식은 하나의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 한국 전통건축의 울,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다 | 문화적·상징적 기호언어가 깃든 건축 | 영화배경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건축:〈007〉〈배트맨〉 | 건축의 상징을 영화로 녹여내다 : 〈인터내셔널〉 | ‘건축’과 ‘영화’는 서로 닮았다 :〈건축학 개론〉
주석 | 찾아보기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인간을 위한 건축, 융합으로 아우르는 종합학문
건축은 인간에게 제2의 피부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너무도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옛날에는 그러한 질문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서 옛날이라 함은 건축이 무엇인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 즉 건축이 무엇이든 기본적인 기능만 만족하면 되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무엇일까? 이것이 건축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다.
건축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다른 생물체에 비해 인간은 자립적인 생활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또한 다른 생물체는 자연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있는 반면 인간은 다른 매개체를 필요로 했다. 즉 건축물은 인간에게 제2의 피부 역할을, 인간의 보호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인간을 만족시키는 건축물, 이것이 바로 건축물의 1차적인 기능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제2의 피부와 보호막이 되어주는 건축물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 제2의 피부는 인간이 원하는 경우에 곧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져갔다. 그러다 보니 신체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한 건축물도 점차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로써 스스로 보호막을 만드는 인간의 능력은 다른 생물체가 갖고 태어나는 신체적인 장점과 맞먹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이 장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계절에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게 했고, 또한 정착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즉 인간은 건축물을 통해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이로써 건축물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가 되었다.
인간·자연·건축, 생존의 삼각관계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축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근대건축의 5원칙에서 옥상 정원을 만든 이유도 바로 건축이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연의 영역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건축물이 자연으로부터 빼앗은 것을 돌려주고자 옥상에 정원을 꾸몄다. 건축물로 인해 끊어지고 훼손된 자연에 생명의 연속성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품은 건축물을 만들고자 하는 건축가는 역사 속에서 많이 등장했고, 그들은 지금도 훌륭한 모델로 남아 있다. 이들 중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라는 오스트리아 건축가를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을 건축물에 담으려 하지 않고, 건축물을 자연의 일부로서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표현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대 초기 등장한 아르누보(Art Nouveau)의 곡선과 곡면이 자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작품은 자연을 품은 것이 아니고, 작품 속에서 자연이 연속된다는 점이다.
이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경고음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건축의 자연 침해는 도를 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니체(Nietzsche)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라는 저서를 통해 근대에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듯이, 르 코르뷔지에 같은 시대의 선각자가 등장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도 자연이 주는 경고음을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건축에 반영된 미술사, 미술사에 반영된 건축
건축,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미술과 함께하다
미술과 함께해온 건축의 역사
건축의 역사와 미술의 역사는 거의 동일하게 출발하고 있다. 미술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주로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정신세계의 근본을 어디에 두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배경을 배제하고 예술품을 감상할 수 없다. 음악과 미술, 건축 등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고대문화는 종교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술의 바탕이 되었던 종교는 그 시대의 다양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람의 생활 형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이 예술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유럽에서 모더니즘이 시작되기 이전에 예술은 당시의 정치, 종교, 민간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를 시대적으로 크게 나누어 본다면, 각 시대별로 특징이 잘 드러난다. 고대의 예술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신인동형의 관념이 지배적이었고, 중세에는 기독교가 모든 예술행위의 판단 기준이었으며, 뉴타임이라 부르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 기준이 인간 중심이 되면서 예술의 주체가 개인으로 바뀌었다.
르네상스 이후 발달한 과학은 사람들을 바다 바깥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고, 곧 식민지가 생겨났다. 식민지에서 가져온 자원으로 새로운 재료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회구조가 만들어졌다. 모더니즘(modernism)은 관습에 반해 모든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인 영역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역사와 연결되어 폭발적으로 발전했으며, 17세기부터 시작된 정신적인 변화와 18세기 중반의 산업화,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정치적인 변동, 19세기 초의 국수주의를 거쳐 예술사의 한 자리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모더니즘 예술이 등장했는데, 많은 이론이 장식을 부정하고, 산업혁명의 산물인 기계를 테마로 삼았다. 또한 개인의 심리가 예술로 표현되었는데, 모더니즘으로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의 예술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특히 모더니즘 미술은 다양한 사조를 발생시키며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고대, 감성의 눈으로 건축과 미술을 보다
그리스, 서양건축의 근본
그리스 예술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사실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막의 지평선이 이집트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리스의 험난한 산악지대는 풍부한 신화를 탄생시켰다. 이집트는 인간과 신을 명확하게 구분했지만 그리스는, "반대되는 것을 통합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노르웨이의 건축이론가 노르베르그-슐츠(Christian Norberg-Schulz, 1926~2000)의 표현대로, 신화와 예술에서 인간과 신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다. 복잡한 지형에 좌절감을 느껴야 했던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 신들을 통해 감정을 표현했고, 이를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섬세하고 정교한 규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섬세한 표현은 인체의 구조적 특징뿐만 아니라 심리적 묘사에까지 적용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섬세함이 서양미술의 근본이 된 것이다.
그리스 예술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건축물조차도 신에게 바치는 조형물과 같은 섬세함을 보이고 있다. 가령 건축물에는 황금분할 같은 비례가 있고, 인체를 표현한 조형물에는 팔등신 법칙을 적용했다. 그리스 신전의 다양한 형태 또한 기둥의 법칙이나 비례의 원리를 알고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그리스 신전의 특징은 기둥의 풍성함인데, 당시 거대한 신전을 짓는 데는 구조상 기둥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남성적인 신전에는 남성의 힘을 상징하는 기둥(도리스 양식)을, 여성적인 신전에는 가늘고 우아한 기둥(이오니아 양식), 또는 화려한 기둥(코린트 양식)을 사용하여 신들을 기쁘게 하려 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풍의 건물이라고 할 때는 다음 3가지 요소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선 지붕이 삼각형을 띠고, 그 아래 기둥이 있어야 하며, 지면으로부터 떨어진 단이 있어야 한다. 이는 원래 그리스 신전의 기본 요소였는데, 점차 그리스 건축의 특징으로 정착되었다. 현대에서도 이 그리스풍을 응용한 건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도시를 창조한 건축, 사회를 이해하는 척도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건축
사회와 건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 각 나라마다 주는 인상이 다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건축물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시대별로 살펴봐도 그렇다. 과거 어느 시기 건축물의 배열이나 모양은 지금과는 차이가 많다. 이는 건축이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사회상이다. 건축물이 유행만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성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도시를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서민들의 건물들은 촘촘하게 붙어 있다. 특히 도시 안에서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은 그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전면은 좁고 후면으로 더 긴 건물의 형태가 빈틈없이 붙어서 있다. 이 건물들을 지을 당시의 세법(稅法)이 전면의 면적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전면의 폭을 줄이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건축물을 보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건축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 사람들이 유동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건축물은 고정적인 이미지를 담당한다. 어떤 건축물이 도시를 꾸미고 있는가에 따라서 사회적인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다.
유럽의 도시들은 전쟁 중에 많이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복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중세의 이미지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첨단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전달한다. 또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서구의 영향을 받아 곳곳에 개발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은 경제 상황에 더 긴밀하게 영향받는다. 경제성장이 빠른 국가는 도시의 정비와 함께 도시 성격이 상업도시, 공업도시, 주거지역으로 점차 구분됨으로써 선진화된 도시 형태가 되어간다. 그러나 경제력이 약한 국가는 지지기반이 만들어질 때까지 발전 속도가 늦춰져 장기간에 걸쳐 각 도시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구조가 다르면 건축구조도 다르다
사고방식에 따른 건축구조의 차이
서양에서는 집에 들어갈 때 대부분 신발을 벗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서양과 달라 밖에서 신고 온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언뜻 보면 우리의 생활구조가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듯하지만, 사실상 관습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정(情)이라는 개념 때문인데 그 모습은 과거 우리 주택에 잘 투영되어 있다. 골목길과 집 안 내부 사이에 마당이 있어 완충 역할을 하는 영역이 존재했다. 담장을 높이 쌓지 않아 시각적으로도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방까지는 모두의 공유 영역이었다. 특히 골목길에서 안방까지 들어가는 데 마당·평상·토시마루·처마 등의 영역을 거치는 것은 냉정하지 못한 우리 사회구조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구조의 차이는 집 안의 바닥재를 달리 선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양의 바닥은 대부분 대리석이나 콘크리트로 마감한 형태로 되어 있다. 반면 우리는 석재보다 장판이나 목재를 주로 사용했다. 그래서 서양과 우리나라는 청소하는 방법과 청소하는 기구가 서로 다르다. 학교 생활환경에서도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학교에서 실내화를 신는 반면, 서양에서는 실내화를 신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집 밖의 공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서양은 이미 도시의 많은 길을 포장으로 덮어버렸다. 우리나라도 전반적으로 점차 비포장도로가 사라지고 포장도로가 증가하는 추세다. 그리고 그 결과, 폭우가 내리면 땅으로 스며들어야 할 물이 한꺼번에 하수구로 몰리면서 하수시설이 낙후된 지역에서는 홍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원래 땅은 물을 흡수하면서 지면 위의 배수를 원활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아스팔트와 같은 포장재료가 지면을 덮은 탓에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하수구로 흘러가기 때문에 도시가 점차 사막화되고 있다. 도로의 포장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국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충분하여 물을 잘 흡수하는 중세 이전 도로포장의 우수성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 바탕을 둔 건축, 미래를 준비하는 첨단과학
과학적 원리가 담긴 건축구조
과학의 집합체로서의 건축
1960년대 오일 파동이 일어나기 전 건축물은 그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해주는 기능을 하는 존재로 표현되거나 부와 권력으로 상징되었을 뿐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건물을 단열시키는 데 드는 비용보다 오히려 단열재가 더 비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근대건축이 발달할 수 있었던 근저에 기술의 발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석조가 주를 이루었던 시대가 막이 내릴 때도 새로운 형태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그전부터 끊임없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재료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18세기에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기존의 기술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수가 없었다.
이렇듯 근대를 열었던 계기는 바로 기술이며, 과학이었다. 당시의 키워드는 기계였다. 기계는 그 시대의 혁명이었으며, 첨단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건축도 이와 함께 발달하고, 과학은 이를 뒷받침하게 되었다.
건축물은 사실상 과학의 집합체다. 두꺼운 벽이 사라지고 건물은 더 높이 올라가려 했으며, 내부와 외부의 단절도 시각적으로는 구별되지 않았지만 영역적으로는 완벽해야 했다. 오일 파동 이후 건축은 사회문제화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에너지 소비의 원흉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회는 건축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건축가는 과거에 받았던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는 건축설계사가 대부분의 공정을 맡아서 했지만, 지금은 건축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분야가 힘을 모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최첨단 과학과 인간의 만남, 스마트 건축을 만들다
아이디어가 곧 기술이 되는 스마트 건축 시대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건축도 변화 주기를 보면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디가 있어도 기술이 이를 뒷받침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디어가 곧 기술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IT가 건축물에 지능을 더해주었다. 스마트한 건축물로 만드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사용해 원거리 관리가 가능해졌고, 관리자의 업무 일부분을 건축물 스스로가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에너지 절약 시스템의 하나로 쿨링(cooling) 시스템이 있다. 쿨링 시스템은 실내의 온도를 감지한 센서가 천장의 냉각수를 이용해 적절한 내부 온도를 유지하게끔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내부 온도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작동하는 기술로서, 항시 가동되는 시스템과 비교한다면 훨씬 에너지 절약적인 시스템이다. 빗물을 저장해 사용하고, 높은 온도는 위로 올라간다는 기본 지식을 활용한 것이다. 천장에 설치한 것은 공간 전체를 그대로 둔 채 상부 일부를 변화시키면서 공기 온도를 유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사실 이 기술은 그렇게 최첨단은 아니다.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 센서가 얻은 정보를 메인에 전달하는 회로가 중요한 요소다. 그 외의 시스템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에게서 나온다. 즉 최첨단 기술은 인간 자신임을 매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발달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건축물에 나타나는 것이다.
철학·미학·심리학적 질문으로 완성되는 건축
철학적 질문 속에서 새롭게 지어지다
"건축과 철학이 관련이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둘을 놓고 본다면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건축과 철학이 아니라 철학과 건축으로 본다면 또 다르다. 특히 철학은 가장 기본적인 학문으로 어느 분야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역사 속에서 건축이 변화한 것은 곧 그 시대의 철학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뿐 아니라 모든 학문이 의문에서 시작하고, 그 의문을 풀어나가면서 발전한다. 그 의문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축
사람들은 신본주의에서 탈출하면서 이전의 고대의 정신을 끌고 왔다. 그것이 바로 고대를 지배했던 신인동형론으로, 인간을 신으로 승격시켜 신의 능력으로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정신적인 의문이 끝없이 반복되고, 또 그 의문에 답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철학의 기본이다.
새로운 것은 곧 새로운 의문과 같다. 그러나 중세에는 이러한 사고법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인간은 결코 신과 동급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중세철학의 바탕이었고, 그래서 어떠한 새로운 일도 시도하지 않았다.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중세에는 과학이 전무한 상태였고, 철학의 기반도 약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인본주의를 선택하고, 고대의 철학을 통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시작된 이러한 발상은 모든 분야에 걸쳐 나타났다. 미술작품에서는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표현했고, 착시현상을 만들었다. 날지 못하면 나는 방법을 찾았고, 갈 수 없으면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향을 잃으면 방향을 찾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이런 것들이 발단이 되어 여러 가지 필요한 상황들이 만들어졌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건축물은 본래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본적인 기능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미적 형상이 건축을 결정한다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미적 가치를 더하다
그 시대 또는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 모델 역시 우리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우리는 종종 다른 문화권에서 전해진 예술을 아름답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있다. 가령 인도의 고전음악을 생각해보자. 이는 인도 문화권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유럽예술사의 한 축을 이루는 고딕 양식 또한 오랜 시간 천박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취급당했다. 16세기의 중요한 건축가의 한 사람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 저주스러운 형상은 모든 면과 부분에 계속해서 쌓아놓기만 하는 많은 작은 집들을 따라 했다. (……) 이러한 찬합 속에 긁어모은 것을 자체적으로도 불안정하게 적용하는 집은 안정감이 없다. 그리고 돌과 대리석으로 된 것이 오히려 종이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괴테는 1772년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de Nortre Dame de Strasbourg)〉을 보고 고딕 양식의 건물을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말해 고딕 양식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건 근 2세기가 지나서였다. "나의 영혼은 수천 개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딕의 건물을 보고 위대한 인상을 받았다. 즐거이 체험하고 즐기지만 어떤 방법으로 인식하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건축물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 또한 아름다움을 지각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물 지하에 나폴레옹이 묻힌 파리의 유명한 〈앵발리드(Hotel des Invalides)〉나, 무굴 제국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만든 인도의 〈타지마할〉은 물론 그 형태 자체가 관찰자에게 특별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샤 자한이 타지마할과 마주 보는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소로 쓸 동일한 건축물을 만들려 했고, 이로 인한 파산을 막으려는 그의 아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사실에 관한 지식은 이 건물에 대한 평가에 특별한 점수를 부여한다.
문화 전달자로서의 건축, 건축의 상징을 녹여내는 영화
문화 수행자 또는 전달자로서의 건축
한 문화의 증인으로 존재하는 건축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의미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신전이다. 신전은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건축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문화유산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스트리아 건축가 한스 홀라인(Hans Hollein, 1934~)은 현대의 건물이 과거의 신전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이 얹히는 것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인간 삶에서 형성된 종교적인 질서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발달해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다. 즉 모든 건축은 의식의 행위다."
건축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건축물은 추상적인 사고를 명확한 형태로 구현하고, 그 문화의 척도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홀라인은 "건축은 건물을 통해 정신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건축물이 분명한 목적하에 지어졌음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건축물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인식에서든 좋은 인식에서든 한 문화의 증인으로 남는다.
오늘날을 포함해 오랜 시간 동안 종교적·사회적·정치적인 이상이 건축을 포함한 예술에 반영되었고, 개인적인 이상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건축문화 또는 건축양식이라 일컫는 것은 공공의 이상을 건축물에 적용한 표현이자, 한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다.
건축과 영화는 서로 닮았다 〈건축학개론〉
추억의 매개체로서의 건축
영화는 제주도 서연의 옛집을,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함께 다시 지어가는 동안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현재의 감정들을 쌓아가는 과정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진행된다.
제주도 서연의 옛집인 벽돌집 같은 구조를 통틀어 조적식(組積式) 건물이라 한다. 조적식 건물은 말 그대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모던하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가 힘든 철근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벽돌은 표현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를 반영할 수 있다. 이는 독일 표현주의 건축에서 벽돌이 많이 사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건축에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벽돌 질감의 표현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형태언어인 것이다.
특히 두 주인공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서촌의 한 빈집은 6·25전쟁 이후 우리의 도시 가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전원 속의 집들은 울이라는 테두리를 지나 마당을 거쳐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사실상 시각적으로 개방된 상태를 보인다. 반면 도시의 집들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시각적·물리적으로 내부와 외부가 완벽하게 분리된 영역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정식(中庭式)과 같은 울을 갖고 작은 마당을 두어 공동의 영역으로 사용되던 과거의 주거 형태임을 잘 보여주었다.
영화 속 빈집은 제주도와 서울을 잇는 매개체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 한옥 빈집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되는데, 뒤이어 개포동의 어느 콘크리트 건물이 등장하면서 묘한 대비를 보인다. 저 멀리 많은 아파트가 보이는 장면까지 비치면서 앞으로 이 도시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음을 암시한다. 한옥의 이미지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보이는 반면, 콘크리트와 수많은 아파트는 다소 혼란스러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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