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Final Jeopardy: Man vs. Machine and the Quest to Know Everything

   
스티븐 베이커(역자: 이창희)
ǻ
세종서적
   
13500
2011�� 04��



■ 책 소개
생각하는 컴퓨터 ‘왓슨’이IBM 연구소에서 태어난 날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역사 깊은 퀴즈쇼 <제퍼디&&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날까지 그 궤적을 담은책이다.

퀴즈쇼 <제퍼디&&는 질문의 영역이역사, 문화, 예술, 대중문화, 과학, 스포츠, 비즈니스를 망라할 뿐만 아니라, 질문 자체가 복잡하며 유머와 위트, 은유적인 표현이 포함되어이곳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똑똑한 컴퓨터를 개발해야 했다. IBM의 과학자들은 3년 여에 걸친 훈련 끝에왓슨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게 했으며, 각종 분야에 해박한 지식은 물론 게임 전략까지 통달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소통 방식을 터득한 왓슨이가진 최대 장점은, 과거에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호로 분석해주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이렇게 해줄 필요가 없게되었다는 것이다. 

왓슨과 함께 하는 장밋빛 미래의뒷편에는 산업혁명기에 방직기가 직공을 대신했듯이 결국 슈퍼컴퓨터는 우리의 일자리를 꿰차고 우리를 길바닥으로 밀어내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염려에 대해 인간의 위대함은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질문"을던지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똑똑한 컴퓨터에게 한 가지 효용이 있다면 노래하기, 수영하기, 사랑에 빠지기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수한일을 마음껏 즐기도록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이 책은, 분명 나날이 스마트해지는 컴퓨터를 향한 긍정적 미래를 반기고 있지만,그만큼 우리들이 호모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도 당부한다. 
왓슨이 인간의 조력자가 될 것인지, 인간의 지배자가 될 것인지 등 사고하는 컴퓨터의탄생과 그 미래에 대해 명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 저자 스티븐 베이커(Stephen Baker) 
「비즈니스 위크」의 테크놀로지 부문수석 편집자로, 20년 이상 「비즈니스 위크」에서 일했다. 그의 기사는 「월스트리트 저널」「LA 타임스」「보스턴 글로브」「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등 유수의 매체에 실렸으며, 부상하는 멕시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취재로 ‘오버시즈 프레스 클럽 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8년데이터 마이닝에 관한 책 『뉴머러티』를 발표하여 수많은 평론가와 언론사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이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추천하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는 현재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뉴저지의 몬트클레어에 살고 있다. 

■ 역자 이창희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파리 소르본 대학교 통역대학원에서 한-영-불 통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 『뉴머러티』『엔트로피』『피자의 열역학』『다음 50년』『21세기의 신과 과학 그리고 인간』『진화-시간의강을 건너온 생명들』『지구의 삶과 죽음』『말리와 나』『태양의 아이들』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기

1. 컴퓨터,인간과의 대결을 꿈꾸다
2. 퀴즈 쇼의 인간 챔피언
3. 왓슨의 탄생
4. 컴퓨터를 가르치다 
5. 왓슨, 얼굴을가지다
6. 왓슨과 인간의 대결 
7. 인간의 뇌를 넘보는 컴퓨터
8. 인간과 기계
9. 왓슨의 자리
10. 한판승부를 준비하다
11. 결전의 날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컴퓨터, 인간과의 대결을 꿈꾸다

<제퍼디>에 출전하는 컴퓨터의 출생지는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인 IBM의 창립자 토머스 J. 왓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IBM 글로벌 리서치의 부서의 본부이다. <제퍼디> 컴퓨터라는 아이디어의 탄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 버전에 따르면, <제퍼디> 컴퓨터의 탄생은 2004년 가을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IBM 경영진은 위대한 도전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연구진을 압박해왔다. 1990년대의 위대한 도전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기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 딥 블루가 탄생했다. 1997년에 딥 블루가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것은 세계적인 사건이 되었고, 첨단 컴퓨팅의 강자라는 IBM의 평판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이어서 21세기 초기에 IBM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인 블루 진(Blue Gene)을 선보였는데, 이것이 두 번째 위대한 도전이었다.


2004년의 가을날 IBM 연구소의 고위간부였던 찰스 리켈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소규모 연구진과 근처인 피시킬에 있는 사포어 스테이크 하우스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7시가 되자 손님들이 식탁에서 일어나더니, 먹던 음식은 내버려둔 채 TV가 있는 바를 향해 줄지어 걸어간 것이다. 손님들은 세 줄로 빼곡히 서서 <제퍼디>에서 50회 이상 대결해 연승을 겨룬 켄 제닝스가 또 이길 것인지 지켜보았다. 제닝스는 승리했다. 어릴 때부터 <제퍼디>를 쭉 보아온 건 아니지만, 이 광경을 보면서 리켈은 다음번 위대한 도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IBM의 컴퓨터가 켄 제닝스를 이긴다면?


어쨌든 리켈은 이 생각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많은 연구원들이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폴 혼에게 달려 있었다. 전직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혼은 1996년부터 3,000명의 인원을 거느린 IBM의 연구 본부를 이끌고 있었다.


2005년 중반에 혼은 페루치를 비롯한 최고의 두뇌를 동원하여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IBM에서 12년을 보낸 베테랑 페루치는 영어로 된 간단한 질의응답을 컴퓨터에게 가르치고 있던 다섯 명을 포함한 소수의 팀을 짰다. 이들의 개발 과제에는 질문에 대답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퍼디>는 참가자의 지식, 반응 속도, 정확도뿐만 아니라 게임 전략까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제퍼디>에서는 버저를 앞에 놓고 세 사람이 경쟁한다. 약 20분에 걸쳐 이들은 총 5만 4,000달러가 걸린 60개의 문제에 답해야 한다. 각각의 질문은 사실상 답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어떤 답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니까 출연자는 그 답이 나오게 만든 질문을 말해야 한다.


<제퍼디>에 나서려면 컴퓨터는 4초 내에 답을 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답이 어느 정도 확실한가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까 컴퓨터는 방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게임을 풀어나가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네 개의 와일드 카드 때문에 게임 전략은 더 복잡해진다. <제퍼디>의 60개 문제 중 세 개는 이른바 데일리 더블 문제들이다. 와일드 카드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파이널 제퍼디로 각 게임의 마지막 문제이다. 데일리 더블은 출연자들이 획득한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하나의 문제에 걸 수 있는데 파이널 제퍼디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통 출연자들은 금액이 남아 있기만 하면 돈을 전부 걸었다. 파이널 제퍼디에서는 결국 베팅 전략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는 수천 개의 게임을 놓고 베팅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분의 일 초 만에 확률을 계산해내고는 가장 적합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컴퓨터는 이런 수학을 잘하죠." 페루치의 말이다.


컴퓨터에게 버거운 것은 <제퍼디>의 다른 부분이었다. 복잡한 문제가 나오는 데다, 문제에 쓰인 문장에도 말장난이 들어가 있어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컴퓨터에게는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제퍼디>의 문제는 어느 분야에서 나올지 모른다. <제퍼디>의 컴퓨터는 인간 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식을 내부 메모리에 담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은 불가능해 보였고, 연구진은 대재난의 희생자가 될 것만 같았다.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에서 회사를 망신시키거나, 아니면 출연도 못 해보고 포기하는 것은 연구진의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었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페루치와 소수의 질의응답 연구진은 호손 연구소의 작은 회의실에 모였다. 팀원들이 토론하는 동안 페루치는 평소와 달리 회의실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펴놓고 웹에서 <제퍼디> 문제를 찾아서는 구글로 답을 검색하며 키보드를 달그락거렸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검색엔진이 페루치를 정답 근처까지는 데려다 준 경우도 많았다. 페루치는 구글처럼 정답 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확한 답이 나오도록 기술을 개선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탄생시키려면 각 분야의 천재가 모인 거대한 팀을 짜서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마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희박하지만 성공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구미가 당기는 프로젝트였다. 페루치는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이, 이거 해볼 만한데."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페루치는 자기 팀에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딥 블루의 블루와 <제퍼디>의 제이를 따서 블루 제이라는 암호를 붙였다. 그리고 2006년 말 크리스마스 직전에 혼에게 6개월이라는 시간을 주면 이 프로젝트가 가능한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퀴즈 쇼의 인간 챔피언

2004년 늦여름의 어느 날, 스물아홉 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켄 제닝스는 <제퍼디>의 데일리 더블에서 무려 1만 2,000달러의 거액을 걸었다. 카테고리는 문학 커플이었다. 그때까지 50게임 연속 승리라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던 제닝스는 문제를 읽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라는 영화 제목은 이 비운의 중세 연인들에 대한 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갔고, 제닝스는 머리에 떠오르는 문학 속의 중세 커플을 모두 살펴보았다. 그러나 중세 연인들이 문학 속의 인물이나 그 저자들이 아니라, 역사에 실재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엘로이즈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근거는 없지만 제닝스는 이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된 순간 제닝스의 입에서 이들의 이름이 튀어나왔고, 제닝스는 1만 2,000달러를 딴 뒤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이 단 하나의 문제를 풀려고 제닝스는 인간의 정신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몇 가지 능력을 구사했는데, IBM의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이런 것들을 기계에게 가르치려면 매우 고생스러울 것이다. 첫째, 제닝스는 복잡한 문제를 즉시 이해했다. 그는 최고 성능의 컴퓨터를 훨씬 뛰어 넘는 인간 언어의 대가였다. 일단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떠오르자, 마법 같은 인간의 정신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게 정답임을 안 것이다. 근거를 대라면 대기 어렵겠지만 인간은 그냥 안다. 그리고 <제퍼디> 고수들은 답이 떠오르기도 전에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예감을 가진다.


인간이 <제퍼디>에 출연하는 컴퓨터와 비교하여 가장 분명한 우위를 누리는 것은, 그가 같은 인간인 출제자와 공감한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제시될 때마다 출연자들은 출제자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이런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제퍼디>에서 컴퓨터가 설 자리는 없다.


물론 컴퓨터는 방대한 데이터를 인간보다 수백만 배 빨리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개발한 사고의 지름길로 이를 만회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뒤지는 대신 인간은 낯선 사람을 믿는 일이든 텐트를 칠 위치를 결정하는 일이든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결론을 내린다. 독일의 심리학자 게르트 기게렌처는 이렇게 썼다. "인간은 세상을 알 수 없으므로 입증이 가능한 증거보다는 베팅이나 불확실한 추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법칙 수십 가지를 찾아냈고, 여기에 발견법(heuristi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은 발견법으로 무장하고 <제퍼디> 게임에서 속도가 훨씬 빠른 컴퓨터와 대결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발견법은 제일 먼저 떠오른 답을 선호하는 데 바탕을 둔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온 이 답은 가장 먼저 생각났다는 이유 때문에 더 신뢰를 받는다. 또 하나의 발견법에 따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답은 대개 피험자가 가장 익숙한 답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일반적으로 효과가 있다. <제퍼디> 출연자가 어떤 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를 찾아내는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면 런던, 도쿄, 베를린, 뉴욕 같은 제일 유명한 도시들이 정답이 된다.


켄 제닝스의 놀라운 연승 기록은 2004년 11월에 방영된 게임에서 깨졌다. 제닝스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연승 과정에서 제닝스는 250만 달러를 벌고 만물박사의 지위에 올랐는데, 이는 찰스반 도렌 이래 처음이었다. 물론 해리 프리드먼은 이렇게 중요한 흥행 자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1년 후 프리드먼은 최후의 왕중왕전이라는 대회를 만들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후, 제닝스를 출연시켰다. 여기서 제닝스는 2003년 이전, 그러니까 같은 사람이 5연승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던 시절의 챔피언 두 명과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제롬 베레드와 브래드 러터는 당시 규정에 따라 무패의 챔피언으로 남아 있었다. 2005년의 대결에서 러터는 제닝스와 베레드를 비교적 여유 있게 물리쳤다. 러터는 200만 달러를 따서 제닝스를 제치고 <제퍼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딴 사람이 되었다.


이런 러터와 제닝스가 IBM 컴퓨터의 인간 경쟁자가 될 터였다. <제퍼디>의 왕으로 군림하려면 최고의 선수를 눌러야 했다. 이 두 사람은 이 목적에 더없이 적합했다. 이들은 IBM의 컴퓨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능력, 그러니까 유창한 언어 구사력, 힌트와 암시를 포착하는 직관적 느낌을 가진 데다 개념 또한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방대한 기억력, 신속한 처리력, 두둑한 배짱 등 컴퓨터와 비슷한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이 떠들썩한 시합에서 이들은 인간의 약점을 드러낼 것인가? 페루치와 그의 팀은 그렇게 되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를 가르치다 

제니퍼 추캐럴은 호손 연구소의 1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하드웨어와 종이 더미에 둘러싸여 블루 제이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생각하고 있었다. 추캐럴은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오고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팀원들이 거의 다 그렇듯 추캐럴도 컴퓨터 공학 박사였으며,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블루 제이가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특성은 교육의 고비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장소 이름과 각종 사실이 문맥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들 사이의 상호 관계는 어떻다는 것 등을 모두 설명해야 했다. 그러므로 블루 제이가 지상의 모든 사상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될 터였다. 이를 위해 수천 개의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조정해야 한다. 최후의 관문은 아마 컴퓨터에게 <제퍼디> 실전을 치를 능력을 갖추어주는 일일 것이다.


페루치 팀은 답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데이터를 블루 제이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 데이터는 각종 리스트, 백과사전, 사전, 동의어 사전, 뉴스 기사, 웹페이지 다운로드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뒤에 이런저런 <제퍼디> 기출문제로 블루 제이의 성능을 시험해보았다.


블루 제이는 괴로울 정도로 느렸다. 한 대의 컴퓨터로 작동하는 블루 제이는 데이터 잼이 발생하여 소방 호스로 빼내야 할 물을 빨대로 뽑아 올리는 꼴이었다. 추캐럴과 동료들은 점심시간 전에 블루 제이에게 문제를 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다. 컴퓨터가 열심히 돌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면 되었다. 효율적인 분업이 아닐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블루 제이의 데이터베이스는 기가바이트 단위로 성장했다. 그러나 소비자 가전의 표준에서 볼 때, 이 정도는 아직도 보잘것없었다.


열성 팬들이 만든 웹사이트에서 거의 대부분을 가져온 <제퍼디> 기출문제들은 당시의 블루 제이 교육에 있어 시험대 역할을 했다. 페루치의 오른팔인 에릭 브라운은 추캐럴과 함께 이 분야를 담당했다. 브라운은 진지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처음부터 브라운은 <제퍼디> 데이터를 엄격하게 관리했다. 브라운은 한 번에 2,000개의 기출문제만 공개했고, 연구진은 이것만으로 블루 제이를 훈련시켰다.


블루 제이의 교육에서 각각의 트레이닝 세트는 한 사람의 교사에 해당한다. 그래서 블루 제이가 어떤 트레이닝 세트에 익숙해지면 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퍼디> 문제로 블루 제이를 시험한다. 수천 개에 달하는 이 문제는 브라운 외에는 누구도 본 적이 없다. 블루 제이는 매번 익숙한 문제들을 떠나 낯선 문제들과 마주치면 성적이 5퍼센트 정도 내려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브라운이 새 트레이닝 세트를 내놓으면 이 모든 과정이 다시 한 번 반복될 것이었다.



왓슨, 얼굴을 가지다 

작명 회의 날인 12월 12일, 각 이름마다 그 나름의 논리가 붙었지만 IBM의 브랜드와 직결된 간단한 이름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서 다른 이름들은 자연스레 논외로 밀려났다. 그 이름은 왓슨이었다. IBM의 홍보팀장인 노아 사이컨은 말한다. "제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자마자 바로 이것!이라는 느낌이었죠." 왓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IBM의 창립자가 떠오른다. 특히 창립자 토머스 J. 왓슨이 당초에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던 연구 시설을 1945년에 IBM 연구소로 발족시킨 사실을 생각하면 이 이름은 더욱 적합해진다. 왓슨은 또한 명탐정 셜록 홈스의 조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물론 코난 도일의 소설 속에서는 왓슨이 지적으로 홈스보다 못하기는 하다. 그러나 질의응답 컴퓨터의 이름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명탐정의 조수 이름을 따라 짓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음 문제는 왓슨의 외모였다. 왓슨의 브랜딩에 허용된 공간은 다른 모든 출연자와 마찬가지로 얼굴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왓슨의 아바타는 인간의 모습이어서는 안 되고 추상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데에 IBM과 오길비는 의견이 일치했다. 아바타가 모습을 갖추어가는 동안에도 어떤 종류의 디스플레이 장비에 이 아바타를 띄울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조슈아 데이비스와 오길비 사는 안개 기둥 위에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기술을 비롯하여 아바타를 보여줄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재래식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거대한 몸은 얻었지만 얼굴은 아직 없는 왓슨은 첫 번째 연습 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연습 게임은 진짜 <제퍼디> 출연자들과 치르는 첫 시합으로, 왓슨의 속도와 판단력, 베팅 전략 등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었다.



한판 승부를 준비하다 

대규모 수리 기간은 끝났다. 요크타운 연구소가 자리 잡은 언덕 밑의 숲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 페루치 팀은 왓슨을 마지막으로 손질하는데 매달리고 있었다. 2010년 9월 10일, 다섯 명의 <제퍼디> 챔피언들이 개선되고 강화된 왓슨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요크타운 연구소로 들어섰다. IBM의 홍보 대행업체인 오길비 사는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데이비드 페루치를 비롯한 팀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 내에 촬영진을 대기시켰다. 오길비 사는 이번 행사의 주역이 왓슨이라는 컴퓨터보다는 이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었다.

 

연습 게임1라운드가 끝난 후 지난 넉 달 동안 페루치 팀은 왓슨을 맹훈련시켰다. 이를테면 대형 사고의 위험이 있는 카테고리를 피해가는 알고리즘이 장착되었다. 파이널 제퍼디에서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사실 검색 능력을 보강했고, 당혹스런 실수를 막아주는 욕설 필터도 추가되었다. 또한 사람들의 답을 디지털로 읽을 수 있게 하여 시합 진행 중 학습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라이벌의 답 듣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손가락도 달았다. 플라스틱 통 안에 든 이 손가락은 버저를 움켜쥐고 있다가 왓슨이 돈을 걸 만한 후보답을 찾았다고 판단하면 세 번 연이어 단추를 누른다. 왓슨의 몸통도 새로워졌다. 여름 내내 에디 엡스타인의 팀은 왓슨의 시스템 전체를 IBM의 차세대 파워7 서버로 옮겼다. IBM의 홍보대사인 왓슨이 현재 회사가 시판 중인 하드웨어에 몸을 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왓슨이 피와 살이 도는 인간과 대결한 결과로부터 나오는 수치는 개선되고 있었다. 가을 시즌 내내 새롭고 더욱 똑똑해진 왓슨은 수십 명의 <제퍼디> 챔피언들을 패배시켰다. 더욱 과감한 베팅과 자신감 있는 답으로 무장한 왓슨은 거의 70퍼센트의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가끔 지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끊임없이 저질렀다.


왓슨의 가장 큰 약점은 파이널 제퍼디였다. 통계에 따르면, 60문제까지 왓슨은 91퍼센트의 승률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그런데 문장도 복잡하고 복잡한 베팅 전략이 필요한 파이널 제퍼디 문제만 마주치면 승률이 67퍼센트로 떨어졌다. 파이널 제퍼디에서 다 이긴 게임을 놓친 것도 전체의 4분의 1이나 되었다. 이 점이 왓슨의 약점이었고, 이는 켄 제닝스나 브래드 러터 같은 고수들과 마주치면 더욱 두드러질 판이었다. 곤덱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파이널 제퍼디 문제의 절반 정도를 맞힌다. 반면 켄 제닝스는 파이널 제퍼디에서 승률 68퍼센트로 강세를 보였다. 왓슨에게 결코 좋은 조짐은 아니었다.



결전의 날 

데이비드 페루치는 교외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요크타운 연구소로, 가끔은 좀 더 멀리 있는 호손 연구소로 가는 이 길을 수백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1월의 아침인 이날은 달랐다. 4년의 작업 끝에 자신이 이끄는 팀의 일은 끝났다. 몇 시간 후면 왓슨은 홀로 켄 제닝스 및 브래드 러터와 맞설 것이며, 페루치를 비롯하여 왓슨을 훈련시킨 모든 사람들은 그저 관중으로 머물 것이다.

 

그 전날, 기자들로 꽉 찬 회견장에서 IBM은 왓슨을 세상에 선보였다. 회견장은 지난 2주간 거의 100명의 근로자들이 매달려 설치한 최신식 <제퍼디> 세트였다. 기자회견의 백미는 제닝스와 러터가 세트 안으로 걸어 들어와 5분간에 걸쳐 15문제를 푼 시범 경기였다. 여기서 왓슨은 홀로 두 명의 인간과 대결했다. 그리고 4,400달러 대 3,400달러로 제닝스를 압도했다. 러터는 1,200달러로 한참 뒤졌다.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왓슨이 인간들을 이겼다는 뉴스가 인터넷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마치 왓슨이 본게임을 이미 이겨버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시범 경기는 몇 개의 문제만을 다루었고, 왓슨의 아킬레스건인 파이널 제퍼디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보도진이 떠난 뒤 왓슨과 두 사람은 그 게임을 마저 치르고 이어서 또 한 게임을 벌였는데, 이를 <제퍼디> 용어로는 엄지손가락 풀기라고 한다. 이 게임에서 페루치는 문제의 소지를 발견했다. 바로 켄 제닝스였다. 그는 왓슨의 약점을 감지했고, 특히 왓슨을 타깃으로 한 베팅 전략도 수립해두었다. 브래드 러터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는 버저 솜씨가 가히 전설적이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느긋했다. 버저를 누른다 해도 마지못해 누른다는 자세로 보였다. 진짜 실력은 본게임에서 보여주려고 감추는 건가?

 

두 번의 연습 게임에서 제닝스는 세 개의 데일리 더블에 모두 먼저 도착했고, 매번 가진 돈을 다 걸었다. 공격적인 베팅 전략으로 제닝스는 첫 번째 연습 게임에서 5만 달러를 기록해서 3만9,000달러에 그친 왓슨에게 상당히 앞섰다. 러터는 멀찍이 뒤처져 1만 달러에 그쳤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제닝스와 왓슨이 근소한 차로 접전을 벌이다 결국 왓슨이 파이널 제퍼디에서 앞섰다. 이번에도 러터는 3위로 밀려났다.

 

시합 당일, IBM에 도착한 직후 러터와 제닝스는 왓슨과 함께 마지막 연습게임을 치렀다. 러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엄지손가락의 마법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여기서 제닝스와 왓슨 모두를 물리쳤다. 이제 세 판의 연습게임에서 세 명의 선수는 저마다 한 번씩의 우승을 기록했다. 그런데 제닝스와 러터는 왓슨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게임 전략이 제닝스의 표현을 빌리면 순진해진 것이다. 왜 데일리 더블 사냥에 나서지 않는가?


결전의 시간이 되었다. 강당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페루치는 트레벡이 손을 한 번 휘저어 <제퍼디> 전광판에 1라운드의 카테고리 여섯 가지를 띄우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러터가 해리 포터의 책에 관한 문제에 대해 볼드모트라는 정답을 내 놓을 때까지 왓슨은 5,200달러를 벌어 1,000달러에 머문 러터를 멀리 따돌렸다. 제닝스는 겨우 200달러를 달리고 있었다. 첫 번째 <제퍼디> 대결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러터의 성적은 올라갔고, 왓슨의 성적은 떨어졌다. 결국 둘은 5,000달러로 공동 우승을 했고, 제닝스는 2,000달러로 뒤처졌다. 이렇게 해서 3일로 예정된 인간 대 기계의 <제퍼디> 대결의 첫날 분 녹화가 끝났다.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버저를 독점하면서 왓슨은 데일리 더블을 사냥했다. 파이널 제퍼디에서 틀린 답을 내놓았지만 947달러만 걸어 왓슨은 러터보다 2만5,000달러, 제닝스보다는 3만 달러 앞선 상태로 최후의 게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러터와 제닝스는 왓슨의 약점인 카테고리를 만났다. 제닝스는 이 카테고리에서 점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데일리 더블 탐색 과정에서 제닝스는 문제 선택권을 몇 번 빼앗겼지만, 점수를 계속 쌓아나갔다. 본 라운드가 끝날 때쯤 제닝스는 8,600달러로 선두를 달렸고, 그 뒤를 4,800달러의 왓슨과 2,400달러의 러터가 쫓고 있었다.


이제 더블 제퍼디 전광판 하나만 남았다. 선수들은 데일리 더블 두 문제를 포함한 30개의 문제와 파이널 제퍼디를 앞에 두고 있었다. 게임 막바지에 이르자 제닝스는 2만 달러를 기록하여 왓슨에 2,000달러 앞섰다. 두 번째 데일리 더블이 여전히 전광판에 남아 있었다. 8만 달러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제닝스는 몇 년을 두고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큰 실수를 저질렀다. 문제 선택권은 제닝스에게 있었고, 제닝스는 데일리 더블이 1,200달러 아니면 1,600달러 문제에 숨어 있다고 판단했다. 제닝스는 첫 번째 데일리 더블을 1,600달러로 기억하고 있었고, 1,200달러 문제를 열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제닝스는 거꾸로 기억하고 있었다. 버저를 차지한 왓슨은 정답을 내놓았고, 제닝스가 착각 때문에 못 잡은 문제를 선택했다.


"그 순간 게임은 끝난 거에요." 페루치가 말했다. "다들 알았죠." 기계가 이겼다. 남은 문제를 몇 개를 두고 제닝스와 러터는 2등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왓슨은 2연속 경기에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모두 석권하여 7만 7,147달러를 기록했다. 제닝스는 2만 4,000달러로 멀찍이 떨어진 2위를 차지했고, 러터가 2만 1,600달러로 바짝 뒤쫓았다.


시합이 끝난 후 제닝스와 러터는 왓슨에게 말을 알아듣는 훈련을 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퍼디>가 버저를 둘러싼 속도전이 아니라, 순전히 지식의 유무만을 평가하는 필기시험이었으면 자신들이 왓슨에게 반드시 이겼으리라고 입을 모았다. "우린 버저 때문에 졌어요." 러터가 말했다.


왓슨을 만드는 데 4년을 매달린 사람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들과 나는 아는 사이가 되었다. 이들이 패했으면, 제닝스나 러터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는 달리 IBM 연구원들은 게임 후에 일어날 일도 생각해야 했다. 지는 날이면 프로그램을 개선해서 재대결을 하라는 엄청난 압력이 들어올 것이 뻔했다. 왓슨도 딥 블루처럼 이길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프로그램은 계속 개선하면 된다. 그렇다면 <제퍼디>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도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재대결은 유례없고 흥미로운 행사가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의 복수혈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지금, 모두 앞으로 가면 된다. 페루치와 팀원들은 다들 다른 세계를 탐색하려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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