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이라고 하면 수식이나 알 수 없는 기호로 가득 찬 교과서나 학습서를 떠올리게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자들의 과학과 철학을 압축한 주옥같은 "명언"으로 과학을 만나게 한다. 그것도 영어가 곁들여진 명언이다. 각시대를 대표하는 35명 과학자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 그리고 과학자 사이의 교류와 상호 영향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과학과 과학자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있지 않았던 새로운 콘셉트에서 과학을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 과학이라는말만 들어도 재미없다는 생각부터 들던 독자도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제목처럼 단 1%의 영어를 가지고 99%의 과학을상상하게 될 것이다.
■ 저자 김형근
부산대에서 정치외교학을공부했다. 코리아해럴드와 중앙일보 기자로 20여 년간 일했다. 2004년부터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의편집위원으로 언론에서 익힌 국제 감각을 발휘하여 과학 대중화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찾은 2백여 명이 넘는 해외 과학자 및석학들과 직접 인터뷰했고, 그 가운데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 무려 삼십여 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사)유엔미래포럼의 편집위원으로 활동중이다.
■ 차례
책머리에
REVOLUTIONS
근대 물리학의 1번타자 - 뉴턴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 코페르니쿠스
천동설을 뒤엎고 지동설을 지지하다 - 갈릴레이
매우 조화로운세상의 법칙을 만들다 - 케플러
ALL ABOUT LIFE
자연의 변화를읽는 땅의 혁명가 - 다윈
세상을 향해 자연의 변화를 역설하다 - 헉슬리
생명의 기원을 유기물에서 찾다 - 오파린
인류봉사에 헌신한 의학의 아버지 - 히포크라테스
예방하고 치료하고 정리하다 - 갈레노스
완두 재배로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끈기의수도사 - 멘델
GENIUS
진정한 르네상스의 과학자 -다빈치
컴퓨터를 개발한 천재 수학자 - 폰 노이만
번뜩이는 직관으로 자연의 규칙을 추측하다 - 푸앵카레
상상력을 세상에구현한 영원한 발명왕 - 에디슨
BETWEEN SOCIETY AND SCIENCE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 오펜하이머
인류의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의 초상 - 러셀
과학과 조국과 인류를 사랑한생명과학의 아버지 - 파스퇴르
"자연"을 다루는 과학의 방법은 "비자연적"이다 - 월퍼트
ARITHMETIC
자연의 비밀을 수로풀다 - 피타고라스
좌표 평면 위에서 회의하다 - 데카르트
미적분법 최초의 창시자 - 라이프니츠
정복할 수 없는 왕국의수학 왕 - 가우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실마리를 풀다 - 제르맹
FUNDAMENTAL
원주율에서유체역학까지 이론과 발명의 선구자 - 아르키메데스
점과 선과 면으로 이성을 다듬다 - 유클리드
세상의 중심에서 지구를 놓다 -프톨레마이오스
확률론으로 세상에 도박을 걸다 - 파스칼
불연속성을 가진 미시세계를 들여다 보다 - 플랑크
THE THIRD FIRE
양자역학과상대성이론으로 세기를 바꾸다 - 아인슈타인
핵분열 실험으로 원자폭탄의 기초를 닦다 - 페르미
위대한 발견, 방사능으로 인류에헌신하다 - 퀴리
전기와 자기를 통합한 현대 물리학의 선두주자 - 맥스웰
INTO THE MICROWORLD
우주의기본, 원소의 미스터리를 풀다 - 멘델레예프
DNA 이중 나선 구조 발견의 잊혀진 공로자 - 프랭클린
단백질 결정학의 개척자 -호지킨
1% 영어로 99% 과학을 상상하다
예방하고 치료하고 정리하다 - 갈레노스(Glaudius Galenos)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를 기억하시는지요? 로마 제국의 검투사를 소재로 한 제작비 1억 달러의 초대형 시대물로 2000년 개봉 당시 흥행과 비평 모두 화제를 불러 일으켰죠. 특히 당대 최고의 장군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 다시 최고의 검투사로 거듭나는 주인공 막시무스의 인생역정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카데미 음향효과상과 시각효과상을 수상할 정도로, 화려한 전투 장면과 행군 장면 등 볼거리가 많았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검투사들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너무 잔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었거든요.
실제로 검투사들은 경기 도중에 죽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운이 좋으면 경미한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전투에 맞먹을 정도로 인명이 한순간에 왔다갔다하는 현장이다 보니, 검투사들을 전속으로 돌보는 의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말하자면 축구팀이나 농구팀 주치의 같은 건데요. 갈레노스가 바로 검투사를 돌보는 전속 의사, 말하자면 주치의를 지낸 인물입니다.
갈레노스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의사이자 해부학자로 그리스 의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해부학과 생리학, 병리학에 걸친 방대한 의학 체계를 만들었으며, 그의 의학 체계와 사상은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서양 의학의 이론과 실제 모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죠.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담당의를 지냈을 정도로 살아생전에도 절대적인 권세를 누렸습니다.
서기 129년 소아시아 페르가몬 지방에서 태어난 갈레노스는 철학과 수학을 공부하다 나중에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해부학이 필수 교과 과목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의 역사적 자료를 보아도 의사들은 해부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고, 특히나 신이 만든 인체를 해부한다는 것은 신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져 금기시되기까지 했었죠. 갈레노스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갈레노스는 의학에 있어서 해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The working body is not understandable without knowledge of its structure.
(구조에 대한 지식 없이는 움직이는 인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의학이라 하면 보통 인체에 대한 구조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해부학과 기능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생리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해부학과 생리학이 상호보완적으로 인체를 연구할 때 인체에 발생한 문제, 즉 질병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갈레노스는 해부학이 등한시되고, 생리학만이 중요시되던 시대에 해부학의 중요성을 깨달아 해부학에 대한 지식들을 담은 책을 쓰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인체 해부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로 동물들을 해부하여 체내 구조에 관한 지식을 얻곤 했습니다. 나중에 검투사의 주치의로 일하게 되면서는 부상을 입은 검투사들의 상처를 열고 직접 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죠.
히포크라테스와 고대 그리스 의학의 발굴
갈레노스는 그리스 의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히포크라테스를 재발굴해 그의 명성과 사상을 널리 알렸습니다. 히포크라테스를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등극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그대로 이어받아 인체에 존재하는 4체액의 조화로운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체액이란 검은 담즙, 노란 담즙, 점액, 혈액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곧 자연계의 4원소인 불, 공기, 불, 물에 각각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In fact, all those known to us who have been both physicians and philosophers Hippocrates was the first who took in hand to demonstrate that there are, in all, four mutually interacting qualities, and that to the operation of these is due the genesis and destruction of all things that come into and pass out being.
(사실 우리에게 의사이자 철학자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가 네 개의 서로 상호 작용하는 성질을 처음으로 입증한 사람이다. 이 성질들은 모든 것의 창조와 파괴에서 기인하여 생명체에 들어왔다가 나간다. - 『자연적 재능에 관하여』)
그러나 기존 문헌에 나와 있다고 해서 갈레노스가 그 내용을 완벽하게 다 수용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철저히 관찰과 경험에 입각하여 기존 내용을 검증하고,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갈레노스의 의학 사상은 목적론적이었습니다. 즉 생명과 질병에 대해 ‘왜’,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지요. 그는 신체의 각 부분들이 신에 의해 정해진 특별한 목적에 따라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h대logy)과 생기론(vitalism)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갈레노스를 ‘의학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죠. 갈레노스의 주요 저작인 『자연적 재능에 관하여(On the Natural Faculty)』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래 인용문은 요관과 요도를 묶는 동물 실험에서 얻어진 관찰 결과를 설명하면서, 신체 기관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재능, 즉 특정한 목적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The fact is that those who are enslaved to their sects are not merely devoid of all sound knowledge, but they will not even stop to learn! Instead of listening, as they ought, to the reason why liquid can enter the bladder through the ureters, but is unable to go back again the same way, - instead admiring Natures artistic skill - they refuse to learn; they even go so far as to scoff, and maintain that the kidneys, as well as many other things, have been made by Nature for no purpose!
(사실 분파의 노예가 된 자들은 지식도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배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액체가 요관을 통해 방광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길을 거꾸로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자연의 예술적인 기술을 존경하고,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배우기를 거절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콩팥이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 교리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수세기 동안 갈레노스의 사상이 서양 의학을 지배했고, 그의 저술은 최고의 의학 교과서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몇몇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문을 품게도 만들었지만, 갈레노스를 부정하는 것은 곧 신을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5~16세기까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죠. 1553년에 스페인의 의사이자 성직자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갈레노스를 비판했다 산 채로 화형에 처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근세에 접어들어 많은 철학자와 의학자에 의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신체 기능을 기계적 원리로 설명하려는 기계론(mechanism)이 등장하면서 갈레노스의 목적론은 서서히 서양 의학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기계론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인간을 기계에 비유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있죠.
후대로 내려와 더욱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해지며 갈레노스의 주장 중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이론도 많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갈레노스가 뛰어난 의사이자 의학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4체액설은 이후 인체 내에 존재하는 혈액과 림프액 등 여러 체액이 과학적으로 규명되면서 자연스럽게 폐기되었습니다. 구성 성분이나 작용 기제가 보다 구체화되고 이름이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시각은 여전합니다. 4체액의 균형이 건장 유지에 필수적인 요건이어서, 평소에 4체액을 균형 있게 유지하도록 식단과 생활양식을 관리하는, 말하자면 예방법의 중요성까지 설파했던 갈레노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혈액의 균형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결정학의 개척자 - 호지킨(Dorthy Mary Crowfoot Hodgkin)
매일 아침마다 비타민제를 하나씩 복용합니다. 몸에 좋다는 비타민이 A부터 Z까지 다 들어있다고 하니 그저 믿으면 먹을 뿐입니다만, 작은 궁금증이 하나 생겨납니다. 비타민은 소량으로 신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영양소입니다. 비록 에너지를 내지는 못하지만, 필요한 비타민이 부족할 경우에는 몸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호르몬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만, 호르몬이 사람의 몸 안에서 합성되는 것과는 달리 비타민은 외부로부터 반드시 섭취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타민은 학교에서 배우듯이, 야채나 과일 등 식물에 주로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타민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야채나 과일에 들어 있는 비타민을 추출한 걸까요? 아니면 화학적으로 합성한 걸까요? 인공 합성을 하려면, 비타민의 종류별로 구조를 다 알고 있어야 하다는 이야기인데요. 현재 비타민의 구조가 대부분 밝혀졌다고 하니, 그런 일을 한 과학자들에게 존경심이 절로 듭니다. 가장 복잡한 단백질 화합물이라는 비타민 B12의 구조를 알아낸 호지킨에게는 더 하구요.
인류의 비타민이 되다
호지킨은 1910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호지킨을 영국의 친척집에 1년에 몇 개월씩 맡기며 영국의 교육을 받게 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가족이 영국으로 와 정착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과학에 대한 재능을 보이던 그녀는 옥스퍼드의 서머빌컬리지로 진학했고, 여기에서 복잡한 거대분자의 X선 연구를 하게 됩니다. 그 후 1932~1934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동료들과 함께 단백질인 펩신에 관한 최초의 X선 회절 사진을 얻어냅니다.
옥스퍼드대학으로 돌아와 교수가 된 호지킨은 페니실린의 구조분석에 관해 연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비타민의 B12의 X선 사진을 찍는 데 최초로 성공합니다. 이로 인해 1948년 마침내 비타민 B12의 원자 배열을 완전히 결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거죠.
지금은 전자현미경으로 단백질 분자구조의 직접 관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단백질 구조나 형태를 알기 위해서는 X선 회절 사진이 중요했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하는데 사용했던 결정적인 방법이 X선 회절법입니다. X선을 쪼이면 원자들의 산란과 반사 모습이 필름에 나타나는데, 이걸 해석하면 분자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결정학(crystallography)이라고 합니다. 말뜻 그대로 물질을 이루는 결정의 기하학적 특징이나 내부 구조, 그에 따라 나타나는 성질에 관한 연구를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광물학의 한 분과로 연구돼 왔으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호지킨은 그의 업적에 비해 다소 늦게 노벨상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녀의 학문적 동지이자 호지킨보다 2년 일찍 노벨 화학상을 받은 막스 퍼루츠는 “I felt embarrassed when I was awarded the Nobel Prize before Dorothy, whose great discoveries had been made with such fantastic skill and chemical insight, and preceded my own(도로시에 앞서 내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상당히 당혹했다. 도로시의 위대한 발견에는 대단한 기술과 화학 연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고, 또 나보다 앞서 이루어진 것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속에서는 호지킨이 동류들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소녀 같은 그녀
이 정도 되면 뻐길 법도 합니다만, 호지킨은 능력에 비해 매우 겸손하고 소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I wasnt ambitious. I just liked working in this particular field. I am really an experimentalist. I think with my hands. I liked it as a child. I didnt imagine myself making a great discoveries.
(저에게 야망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자체를 좋아했을 뿐입니다. 저는 실험에만 매달린 실험주의자입니다. 저는 손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발견을 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직후인 1964년 겨울, 당시 영국의 유명한 분자생물학자인 루이스 월퍼트가 진행하는 BBC 방송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를 묻는 월퍼트에게 호지킨은 아주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Only by starting early. For those that came into X-ray crystallography early there was so much gold lying around. One could not help finding it.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을 뿐이죠. 그런데 (저처럼) X선 결정학 연구(회절 연구)를 일찍 시작한 사람에게는 황금이 사방에 널리 깔려 있었어요. 누가 그러한 발견을 마다하겠어요?]
월퍼트는 성공을 이루기까지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호지킨은 다시 순진하고 담담하게 응답합니다.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았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No, sometimes this works the other way. I think its because I dont notice it very much that I am a woman among so many men. There have been moments when it was to my advantage. Sometimes my male colleagues were particularly nice and helpful to me as the lone girl about.
(아닙니다. 때로 정반대였지요. 아마 남자들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오히려 이득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남성 동료들은 저를 ‘길 잃고 헤매는 외로운 소녀’라고 생각해서 특히 더 친절하고 도움도 많이 주었죠.)
사회자의 질문에 위트나 기지를 발휘한 게 아닙니다. 그저 단순하고 솔직하게 대답한 거죠. 순수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방청객과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 이 일화는 호지킨의 성품을 잘 설명해 줍니다.
순도 높은 열정과 배려
1994년 도로시가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자 퍼루츠는 「인디펜던트」 기고를 통해 과학 연구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동료를 항상 배려했던 인간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She pursued her crystallographic studies, not for the sake of honors, but because that was what she liked to do. There was a magic about her person. She had no enemies, not even among those whose scientific theories she demolished or whose political views she opposed. Just as her X-ray cameras bared the intrinsic beauty beneath the rough surface of things, so the warmth and gentleness of her approach to people.
(그녀는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고 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결정학 연구에 매달렸다. 그녀의 인간성에는 (남을 끄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적이 없었다. 그 과학적 이론이 옳지 않다고 그녀가 반박한 사람들도, 그리고 도로시의 정치적 의견과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녀의 X선 카메라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 이면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동료들에게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
과학자들은 열정이 있고 고집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집착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일상과 다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문제도 생기고 괴팍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호지킨은 그저 과학이 좋아 과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론이 다른 사람이거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호지킨을 좋게 생각하고 아껴주었다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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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