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와 도구

   
임명현
ǻ
정한책방
   
15000
2017�� 09��



■ 책 소개

《잉여와 도구》는 현재 MBC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저널리스트의 두 축을 정확하게 지칭하고 있다. 뉴스를 만들던 저널리스트가 뉴스를 전혀 만들지 못하게 되자, 말과 글을 잃은 개인들은 ‘우리는 약하다’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저널리스트들은 왜 탄핵과 정권 교체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을까. 내부인들끼리는 어떻게 그렇게 뉴스를 할 수 있느냐고 분노하다가도, 보도국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과 섞이면 부역자라는 수치심이 드는 사람들부터 뉴스를 생산하는 업무에서 배제된 사람들, 시용·경력 기자라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까지 저널리스트 조직은 내부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갈려 있는 상황이었다.

 

MBC 상암동 본사 앞에 있는 조형물처럼, 배제되어 탄생한 잉여와 주어진 환경에 맞추는 과정에서 탄생한 도구는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듯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잉여와 도구를 배치한 경영진이라는 존재는 눈에 쉬 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억압된 저널리즘을 만들어내 강한 존재감을 선보이고 있다. 저자는 공영방송 내부가 병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한 증언으로 담아내면서 저널리스트들이 말하지 못하면서도 말할 수밖에 없던 한 문장을 기록했다.

 

“나는 아직도 기자다.”

 

■ 저자 임명현
저자 임명현은 MBC 기자. 2003년 MBC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시사매거진2580> 등을 거쳤다. 기억에 남는 취재로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 추적보도와 UAE 원전 미공개 계약 조건 등이 있다. UAE 원전 보도로 제3회 한국방송기자대상 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평조합원으로 참여한 2012년 파업에서 정직 징계를 받은 뒤에는 보도국 외곽을 맴돌다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널리스트의 삶을 복원하고 문화연구자로서 진화하고 싶다는 두 가지 꿈을 갖고 있다.

 

■ 차례
책을 내며
여는 글_ 1,875일에 대한 어떤 기록
다시 마음의 피를 흘리다ㆍ5년 전 그날ㆍ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ㆍ저항하지 않는 나ㆍ1,875일에 대한 기록ㆍ‘징징대지 마’ 시대의 글쓰기

 

1장_ MBC에서 무슨 일이?
MBC는 왜?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ㆍ주저하는 저널리스트
최장기 파업의 끝은 빈손?
파업 후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다ㆍ브런치를 만들다ㆍ가혹해진 징계ㆍ“MBC의 DNA를 바꾸는 작업ㆍ비인격적 인사관리
기자들을 갈라놓다
심층 인터뷰 어떻게 했나

 

2장_ 잉여
잉여적 기자 발생하다
“왜 나한테 해코지를 하고 다니냐”ㆍ버려도 무방하기 때문에ㆍ버려진 존재라는 의미ㆍ블랙리스트와 ‘유휴’ 인력
잉여적 기자의 경험과 감정 구조
모멸감에 이은 공포ㆍ고통의 개인화ㆍ무감각화와 안정 지향
잉여적 기자가 실천하는 것
“나는 아직도 기자”ㆍ희망을 품은 유예ㆍ죽은 노동의 수행ㆍ축소되는 인간관계

 

3장_ 도구
도구적 기자 발생하다
시키는 뉴스를 잘할 사람ㆍ이질적 존재와 일하기ㆍ시용·경력 기자를 만나다
도구적 기자의 경험과 감정 구조
패배주의와 무력감 그리고 공포ㆍ“주어진 환경에 맞춘다”ㆍ수치심과 혐오ㆍ자기정당화의 여러 논리
도구적 기자가 실천하는 것
위축된 저널리즘ㆍ순응의 마지노선ㆍ축소, 단절되는 내부의 관계

 

4장_ ‘유예된 저항’, 그 후
전문직주의 아비투스가 부서지다
억압과 축소가 불러온 것ㆍ성장하려는 기자를 통제하기 위해
취약성의 확인
우리는 약하다ㆍ말과 글이 힘을 잃은 시대ㆍ희망을 믿지 않는 오늘ㆍ“저널리즘은 빙산에 얹혀 있는 빙조각”ㆍ그래도 기록했어야 했다
반전의 기회
유예된 주체들이 남아 있다ㆍ봉인이 풀리기 시작했지만ㆍ저항을 머뭇거린 이유ㆍ수치심과 분노가 충돌한다ㆍ넘어설 수 있을까

 

닫는 글_ 산산조각 난 시대를 지나며
참고자료  

 




잉여와 도구


1장_ MBC에서 무슨 일이?

MBC는 왜?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2016년 11월 12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하며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MBC 기자는 태그를 달지 않은 채 현장 중계 보도를 했다. 기자의 마이크 태그뿐이 아니었다. 이날 MBC 로고는 모두 가려졌다. 해당 기자를 촬영하던 카메라에서도 회사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를 떼었다. MBC 로고가 붙어 있는 중계차도 없었으며 대신 소속을 알 수 없는 미니 밴이 한 대 있었다고 한다.


며칠 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가 발행한 노보에 의하면, 보도국은 애초부터 이날 집회에 중계차가 진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취재진의 안전을 고려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당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을 비롯해 일련의 유사한 집회에서 MBC 중계차가 시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고 철수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말 <뉴스데스크>를 담당한 한 기자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평소 ‘MBC NEWS’ 마이크 태그가 비뚤어지기만 해도 바로잡으라고 알려주는데, 태그를 아예 달고 있지 않아도 뉴스센터에서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 쪽팔려서 뉴스센터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2주 뒤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11월 26일, 2주 전과 마찬가지로 집회 주체 측 추산 1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광화문 일대에 모였는데 이날 집회 현장에서도 MBC 마이크를 들고 중계 보도에 나선 기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MBC 기자는 경복궁역 근처의 한 건물 4층, 바깥이 보이는 좁은 창문이 있는 복도에 서서 현장 보도를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적지 않은 수난과 정서적 고충을 겪었다. 올해 초에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는 유튜브에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는데, 영상은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MBC 중계차가 시민들로 둘러싸여 있고, 중계차 위에서 방송을 준비하던 기자가 시민들에게 “엠병신! 엠병신!”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상에서 곽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짖어봐’ 하는 분도, ‘부끄럽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있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사회부 기자 시절 나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4년에서 2005년 정도의 시절이다. 당시 어버이연합과 같은 보수단체의 집회를 취재하러 가면 나와 카메라기자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거센 항의와 욕설을 들었다. 좌빨 방송 정도의 비난은 흔했다. 일부 참가자에게 해코지 등 물리적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MBC 로고의 마이크를 든 기자가 정반대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평상시의 보도·편집 기조를 이유로 집회 현장에서 평화로운 취재를 보장받지 못하고 물리적 위해나 압박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촛불집회 현장에서 MBC 취재진이 겪은 수난은 이런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그동안 MBC의 보도가 진보 경향에서 보수 경향으로 이동한 데서 파생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문이라면 세간에서 보수 매체로 분류되는 기자들 역시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유사한 반응을 겪었어야 하는데 딱히 그러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단순히 보도 기조가 ‘진보냐 보수냐’를 넘어 MBC의 보도는 시민들에게 근본적인 신뢰를 잃은 것 아닐까?


게다가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집회와 결합한 민심은 그다지 컸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광화문 촛불집회로 대변되는 탄핵 민심은 훨씬 넓고 깊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은 내내 80퍼센트 안팎을 웃돌았으며, 집회에 참석한 연인원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탄핵안 가결에서도 재적 국회의원 가운데 80퍼센트에 육박하는 비율이 찬성했으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8대 0 만장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했다. 이것을 ‘사회적 합의’라고 부르지 못하면 무엇이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민심에 외면받았다면, 즉 집회 참가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조롱당한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보도 내내 메인 뉴스 시청률이 3~4퍼센트대의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면, MBC의 보도는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MBC의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사건은 최순실 씨가 추천한 인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K스포츠 재단과 미르 재단이 재벌 대기업들에게 수백억 원을 강제 모금했다는 한겨례의 2016년 9월 보도가 신호탄이었다. 한 달 뒤인 10월 24일,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를 입수한 JTBC가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다수를 수정하는 등 국정에 적극 개입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공영방송 MBC는 이 사건의 취재와 보도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겨례 보도 이후 거의 모든 언론이 취재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도 정치권 공방을 단순 중계하는 형식의 수동적 보도로 일관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MBC 보도를 진두지휘하던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MBC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고영주 이사장의 협애하고 극우 편향적인 인식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영화 <공범자들>에서 고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문제점을 묻는 최승호 감독을 향해 “애국시민에겐 지금 MBC밖에 없다는 이야기 안 들리세요?”,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그런 엉터리 여론조사를 우리보고 믿으라고 하면 안 되죠.”라며 상식에서 한참 어긋난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김장겸 본부장 역시 MBC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저널리즘 원칙에 맞게 중심을 잡은 보도’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과 관행 속에서 생산되는 뉴스가 가뜩이나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리 만무하지 않은가?  



2장_ 잉여

잉여적 기자 발생하다

뉴스 외부로 배제된 MBC 기자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해고돼 MBC의 외부로 벗어나게 된 기자들(그룹 6)이다. 다음으로는 MBC 직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지만 보도본부 외부에서 기자직과는 관계없는 업무를 맡게 된 기자들이 있다(그룹 4, 5). 또 직제상 보도본부 내에 소속돼 있긴 하나 간접 보도지원 업무만을 장기간 담당하고 있는 기자들(그룹 3)이 있는데, 이들 역시 실질적으로 뉴스 생산에서 배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그룹들은 왜 파업 이후 뉴스 생산에서 배제된 것일까? MBC 경영진은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특정해 뉴스 생산에서 제외했을까? 경영진이 밝힌 공식 입장은 이렇다. ‘매체의 융복합 시대를 맞이해 기존의 낡은 직종 구분 개념은 큰 의미가 없다.’ 또 ‘적재적소 배치 원칙을 지켰으며, 기본적으로 인사권 행사는 회사의 경영적 판단이다’라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뉴스 생산의 외부로 배제되는 기자들이 왜 대부분 파업에 적극 참여한 기자들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버려도 무방하기 때문에

MBC 경영진이 파업 참가 기자 다수를 본업에서 배제한 이유는 경영진이 희망하는 뉴스를 생산해 가는 데 더 이상 이런 기자들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원하는 편집 방향으로 뉴스를  제작하는 데서, 그룹3부터 그룹6에 해당하는 기자들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됐다는 것이다.


어떤 기자에게 뉴스 생산 업무를 맡길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우선 해당 기자의 능력이나 경력 같은 요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자로서 뛰어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면 중용하기 곤란했다는 이야기다. 경영진이 눈여겨본 것은 ‘정치적으로 통제가 가능한지’ 여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파업에 적극 참여하며 경영진과 갈등하고 대립한 기자, 또 능력과 전문성을 가졌더라도 정치적 통제가 여의치 않을 것 같은 기자는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한 기자가 된다. 즉 ‘잉여적 기자’인 것이다.


잉여란 무엇인가? 지그문트 바우만(2008)에 의하면 잉여란 ‘여분, 불필요함, 무용함’을 의미한다. 잉여로 규정됐다는 것은 버려져도 무방했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뜻이다.


블랙리스트와 ‘유휴’ 인력

MBC 경영진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거나 정치적 통제가 여의치 않을 것 같은 구성원들에 대해 보복성 인사 조치를 수행하고, 이후에도 이들을 ‘잉여’로 분류해 현업에서 지속적으로 배제해 왔다는 사실은 최근 MBC 노조가 폭로한 자료들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뒤늦게 드러났지만 실제로 경영진 사이에서는 ‘잉여’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파업 참가 인력에 대한 업무 배제가 경영진의 입장에선 보복과 응징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음을, 본질적으로 이들 인력 자체를 신뢰할 수 없으며 따라서 ‘무용하다’고 간주하고 영구히 배제하고자 했던 기획이었음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무감각화와 안정 지향

“문제적 현실에 분노를 해 봐야 현실은 바뀌지 않고, 분노하는 나만 다친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이 문장을 2012년 이후 MBC 구성원들이 형성해 온 집합심리 가운데 상당히 굵직한 줄기로 이해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고통의 개인화, 분노의 내사화에 따라 잉여적 기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 상황 자체에 대해 둔감해지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비인격적 인사관리에 대한 경험 속에서 발생되는 공포와 분노, 모멸감, 무력감 같은 감정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무감각화’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희망을 품은 유예

이들이 기자의 정체성을 온전히 회복하고 다시 기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저항이다. 다시 한 번 2012년 파업과 같은 강도 높은 저항을 일으켜 경영진의 헤게모니 붕괴를 기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투항’이다. 노조 탈퇴와 같은 방법으로 경영진의 코드에 맞추는 실천을 통해 보도국으로 복귀하는 옵션이었다. 셋째는 ‘탈출’이다. 굳이 MBC라는 언론사에 미련을 두지 않고, 취재보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다른 언론사로 옮겨 새롭게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잉여적 기자들이 저항, 투항, 탈출 가운데 어떤 방법도 선택하고 있지 않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왜일까?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기자다운 기자’를 하고 싶다고 희망하면서, 왜 저항하기도 투항하지도 않고 심지어 탈출하지도 않는 것일까?


나는 이런 기자들의 마음가짐과 실천을 설명할 만한 하나의 단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유예’였다. 이들은 기자로 살고 싶지만 현재 그렇게 살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수용하면서 ‘유예된 기자’로 스스로를 인식 및 재구성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MBC에서 자신들이 희망하는 저널리즘을 구현할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 시기까지 자신들의 저널리즘 실천을 유예하며 버티고 견뎌내는 실천 전략을 취한 것이다.



3장_ 도구

도구적 기자 발생하다

시키는 뉴스를 잘할 사람

파업 종료 이후 보도국에 복귀한 기자들, 그리고 이후에도 뉴스 외부로 배제되지 않고 보도국에 남아 뉴스를 생산해 올 수 있던 기자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잉여가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일까?


경영진이 파업 이후 잉여라는 예외 상태를 발생시킨 것은, 향후 경영진이 주도해 생산할 뉴스의 모습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경영진은 노조와 파업 참가자들이 주장하는 공정방송의 이념형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운영하는 노영방송’으로 규정하면서 그런 요구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그에 따라 경영진은 뉴스 생산 과정에서 데스크와 기자가 활발하게 토론을 벌인다든지,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기사 아이템을 발제한다든지 하는 문화를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시키는 뉴스’를 잘하고 ‘하지 말라는 뉴스’를 잘하지 않는 기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Q 경영진은 왜 그러는 거예요? 선배가 보기엔?

그게 DNA를 바꾸겠다는 거 아냐? 바꿀 수 없는 DNA를 바꾸겠다는 거지.


Q DNA를 바꾸겠다고 하면, 어떤 응어리에 대한 복수의 차원인가?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뉴스를 하기 위한 걸까요?

그거 아닐까?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뉴스를 구현해 낼 만한 사람들이 필요한 거고, 그걸 구현하는 지시를 내렸을 때 껄끄러운 과정을 겪고 싶지 않은…….

(M26 인터뷰)


M26은 파업 이후 보도국에 남아 있으면서 현 경영진 및 간부들과도 일정 부분 의사소통을 해 왔던 기자였다. 그의 말을 토대로 추론해 볼 때 경영진이 필요로 한 기자는 확실하게 통제가 가능한 기자였으며, 이들을 통제하겠다는 말은 경영진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집 방향으로 뉴스를 제작하기 위해 이들 기자를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따라서 경영진의 판단에 의해 뉴스 생산 조직에 남아 있는 이들 기자들은 ‘도구적 기자’로 분류되었다고 개념화할 수 있다. 


도구적 기자의 경험과 감정 구조

파업 종료 이후 ‘지시/통제에 잘 따를 것’을 요구당한 도구적 기자, 특히 파업에 참가했다가 복귀한 기자들 일부는 초기에는 경영진을 향해 저항하거나 적극적 교섭을 수행하려는 실천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장기간 파업을 했던 만큼, 파업 패배 이후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해서 호락호락 경영진의 도구가 될 순 없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영진의 뉴스 편집 기조에 반발하며 저항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유족의 조급증 때문에 잠수사가 사망했다’는 식의 보도에 대한 비판과 불만을 SNS 등을 통해 공유한 기자들이 있었다. ‘장기 단식 중인 유족을 비판하라’는 취재 지시를 끝끝내 거부하지 못했지만, 뉴스 다음날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잘못된 보도였음을 자인하고 성찰을 촉구한 기자들이 있었다. MBC 기자협회 또한 보도국 밖으로 배제된 기자들을 포함해 121명의 기자들이 참여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자사 보도에 대해 반성과 개선의 의지를 드러냈던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실천들은 뉴스를 바꿔 내지 못했다. 뉴스를 바꾸지 못한 정도에서 끝난 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앞장선 기자들이 징계를 받고 뉴스의 외부로 배제되는 결과가 촉발됐다. 정수장학회 관련 리포트를 거부한 기자, 사내 게시판에 자주 글을 올린 기자, 경영진을 비판하는 내용을 외부 언론과 인터뷰한 기자, 세월호 보도를 비판한 기자, 또 간부와의 충돌을 감수하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취재하려 한 기자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예외 없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거나 또는 잉여로 분류돼 외부로 배제되는 사실상의 강제 직종 전환 조치를 경험했다.



4장_ ‘유예된 저항’, 그 후

전문직주의 아비투스가 부서지다

잉여적 기자가 되었든 도구적 기자가 되었든 MBC 기자들은 비인격적 인사관리라는 현실에 맞추어 저널리즘을 유예하는 선택을 해왔다. 특히나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한국 사회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정권교체라는 가히 혁명적 상황들을 거치는 와중에서도 한동안 ‘유예’라는 봉인을 해제하지 못했다. 간헐적 실천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BC 내부 헤게모니에 변동을 가져오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한 사회의 지배 세력이 바뀌는 엄청난 변화를 목도하고도 이들의 실천이 여전히 봉인을 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MBC의 현실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억압과 축소가 불러온 것

잉여였나 도구였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12년 이후 MBC 기자들이 경험해 온 상황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그것은 이들의 저널리즘 실천을 억압 또는 축소하고자 하는 경영진의 기획이었다. 사실 경영진의 이런 기획은 2012년 파업 이전부터 기자들을 향해 작동해 왔다. 기자들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이라는 최고 강도의 저항적 실천을 조직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등장한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는 이들이 당초 기획한 ‘억압 및 축소’를 완성하고 안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파괴된 것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 바로 개개인이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데 배후 조건으로 존재하고 있던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다. 아비투스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발전시킨 개념으로, 흔히 행위자의 실천을 발생시키는 주요 배후 조건이라고 이해된다. ‘성향 체계’ 같은 말로 번역해서 쓰이기도 한다.


즉, MBC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는 MBC 기자들이 고품질의 뉴스를 생산하고, 또 그 과정에서 저널리즘 활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실천하기 위해 형성한 성향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MBC 기자라면 이런 성향 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를 체화한 흔적과 습관들이 자신의 몸에 배어 있음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성장하려는 기자를 통제하기 위해

MBC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는 MBC 기자 개개인이 저널리스트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의욕과 깊은 관련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취급하는 취재원과 정보의 깊이를 심화하고, 여기에 취재기술, 기사 작성, 방송 제작에 이르는 과정 전반에서 전문성을 높일 수 있게 됨을 뜻한다. 또 이 과정에서 권력 또는 자본 등의 억압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시민을 위한 공익적 책무에만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MBC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는 이렇게 ‘성장’하는 기자를 키워 내고자 하는 특징이 뚜렷했으며, 또 그러기 위해 기자들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각자의 자부심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공고한 ‘친밀성’을 형성하려는 문화를 담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아비투스 속에서 기자들은 정확하고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관(史官)의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체화해 온 것으로 관찰된다.


이런 전문직주의 아비투스의 배경 속에서 기자들이 실천하고 성장할수록, 통제에 대한 기자들의 내성은 강해진다. 전문성이 깊고, 강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으며, 동료들과의 연대감 또한 강력한 기자를 통제하려면 위계적 권한과 권위만 내세워선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 통제 욕망이 강력했던 MBC 경영진이 이런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를 파괴하려 한 것, 다시 말해서 ‘성장하려는’ 기자를 ‘억눌러지고 축소된’ 기자로 변화시키려 한 것은 경영진 입장에선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론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경영진은 비인격적 인사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즉 게이트키핑과 데스킹 권한의 실효력을 높이는 등 뉴스 조직 내의 위계적 권위를 강화하는 방법만으로 기자들의 전문직주의 아비투스를 파괴할 수 있었다면 굳이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도입할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영진은 비인격적 인사관리의 도입은 물론 비판과 견제를 전혀 수용하지 않은 형식의 적극적인 조직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업 후 5년 가까이 지나면서 MBC 뉴스 생산 조직의 기자들에게서 ‘기자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의욕이나 소명의식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친밀성과 책임의식도 크게 약화되고 균열됐다. 이런 흐름이 계속 축적되다 보니 현재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 일부에서는 ‘굳이 노력해 성장할 필요가 없는’ 달라진 조직문화를 오히려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기류가 관찰되기도 했다. 전문직주의 아비투스가 파괴된 뉴스 조직의 일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넘어설 수 있을까

지난 5년간 비인격적 인사관리 속에 자신과 서로의 취약한 민낯을 목격한 기자들은 거기서 형성된 골을 메우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양가적이고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내면에서 화해시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시절 각자가 직면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던 과정에서 좁혀 버린 예각을,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둔각으로 넓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예각에, 타자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여전히 찔리고 있다.


이들이 지금도 MBC를 지배하고 있는 체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차원에서의 넘어서기와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넘어서기가 필요해 보인다. 개별적 차원에서는 분노의 힘으로 수치심을 다스려야 한다. 지난 시절 저항을 유예하고 때로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온 날들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고 해서 분노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인간적 취약함 탓에 갖게 된 수치심으로 체제에 대한 분노를 끝까지 억누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개별적 결단 이후에는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넘어서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개인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다 하더라도 개인들은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약한 개인이 취약성의 고리를 끊어내고 저항의 강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연대해야 한다. 나의 약함과 수치심을 성찰, 고백하고 체제를 향한 분노의 마음을 모아야 한다. 오랜 기간 이들은 ‘다 꼴 보기 싫고 내 삶이나 챙기자’ 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주변에만 집중하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존재는 차단하는 방식의 실천으로 버텨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질적인 타자에게도 말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1,875일 만에 다시 저항의 국면에 직면한 MBC 구성원들은 이 두 가지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물론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퇴진, 지배구조 개선, 해직자 복직 등에 대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공론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MBC의 개별 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의제가 논의되도록 촉구할 수는 있지만, 결정할 권한은 이들에게 없다. 현 상황에서 이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이것이다.


지난 시절 체화된 취약성을 극복하고 개별적 차원에서 분노의 힘으로 수치심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 이질적 타자에게 말을 걸고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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