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증발

   
레나 모제(역: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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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15000
2017�� 08��



■ 책 소개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증발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추적한 5년간의 일본 탐사보고서

 

1989년 도쿄 주식시장의 급락을 시작으로 부동산 가격의 폭락,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증발’하고 있다. 그중 8만 5,000명 정도가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체면 손상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일본 사람들은 빚, 파산, 이혼, 실직, 낙방 같은 각종 실패에서 오는 수치심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신분을 숨긴 채 도쿄의 슬럼 지역인 산야나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등으로 숨어든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그녀의 남편이자 사진작가 스테판 르멜은 2008년 우연히 증발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이 이야기에 끌려 일본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5년 동안 도쿄, 오사카, 도요타, 후쿠시마 등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발적 실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연과 그 이면을 심층 취재했다.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되풀이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체면과 경쟁이 중요하고 실패한 개인들의 재기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에게, ‘인간 증발’은 현재 또는 미래가 투영된 문제적 현상이다.

 

■ 저자 레나 모제
프랑스의 저널리스트로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다가 잡지 <21세기>와 <6월>에서 기자로 근무한다. 유년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의 영향으로 역사를 전공했다.

 

■ 역자 이주영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불과 번역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재학 중이다. 출판번역가 모임 바른번역의 회원이며 한불상공회의소의 한국-프랑스 비즈니스 및 문화 잡지 <꼬레 아페르>의 번역, 프랑스 시사 월간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서평 및 일본 관련 기사 번역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다룬 서구권 도서에 관심이 많다.

 

■ 차례
프롤로그 9

 

1. 야반도주 13
2. 증발하는 사람들 23
3. 은밀한 사업 37
4. 하시의 고백, 증발 26년 47
5. 일본의 불가촉천민 57
6. 시골에 숨어들다 71
7. 산야, 지도에도 없는 도시 79
8. 마키오의 고백, 증발 65년 95
9. 지옥의 캠프 101
10. 오타쿠의 성지 115
11.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 123
12. 아야에의 고백, 증발 21년 137
13.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 149
14. 사라진 청년, 그리고 북한 159
15. 토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177
16. 덴지의 고백, 증발 33년 189
17. 자살 절벽, 도진보 195
18. 증발한 사람과 야쿠자 209
19. 테루오의 고백, 2년 만에 귀가 223
20. 후쿠시마의 연기 233

 

에필로그 250




인간 증발


증발하는 사람들

신칸센이 쏜살같이 공기를 뚫고 평화로운 태평양과 일본인들의 영원한 숭배 대상인 후지산 사이, 도쿄의 서쪽을 향해 질주한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원추 모양에 흰 눈이 덮여 있는 후지산은 태양의 나라 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신칸센 개통식 날, 몇몇 승객들이 플랫폼에 신발을 놓고 열차에 올라탔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했을 때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무척 놀랐다고 한다.


아타미 시에 도착하기 몇 분 전, 통역이 우리에게 짐을 챙기라는 신호를 보낸다. 통역은 통통한 체구에 은퇴를 앞둔 영화감독이었다. 우리는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파리의 한 카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취재 활동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클리시 광장에는 이미 밤의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그때, 친구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간단히 설명했다. 매년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중에는 이미 생을 마감했으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 외의 나머지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증발한 사람들의 운명은 비명횡사하거나 영영 잊히거나 둘 중 하나다. 다른 길은 없다.


세계에서 일본만큼 증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인구 1억 2800만 명의 일본에서 증발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무모하면서도 흥분되는 도전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내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스테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두 달 뒤, 우리는 문화적으로 낯선 일본으로 향했다.



산야, 지도에도 없는 도시

산야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이다. 도시 속의 도시,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소굴이라고 했다. 도쿄의 게토라고 할 수 있는 산야를 지워버리고자 일본 정부는 산야라는 지명을 지도에서 없애버렸다. 택시 기사들은 불길한 산야 쪽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들에 따르면 산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인간, 모두에게 잊힌 인간, 이름 없는 인간뿐이라고 한다.


산야에 가려면 미나미 센주 지하철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지하에 휘황찬란한 도쿄 중심부만큼이나 명확한 나름의 규율이 자리 잡은 또 다른 진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야가 가까워지면서 현대적인 풍경은 점점 옅어진다. 도시는 어둡고 조용하다. 정신없는 간판도, 고막이 찢어질듯한 시끄러운 소음도, 자동차도, 여기에는 없다.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수도 안에 침묵이 가득하고 사회 규범이 통하지 않는 유령 같은 세계가 있다. 좁은 골목마다 쓰레기가 널려 있고 지린내와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그림자들 외에는 인기척이 없다.


사회에서 배척받는 이들이 모이는 산야, 에도시대에는 사형집행자들이 불한당의 목을 베던 혐오스러운 장소였다가 이제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몰리는 인력시장. 비양심적인 고용인과 한때 야쿠자에 몸을 담았거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무서운 것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 그러다가 경제 위기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이들이 타격을 받았다.


모텔을 관리하는 유이치는 1층에서 잠을 자고 2층의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전에는 도쿄의 북쪽 지역에서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밥값을 벌었다. 유일한 자산인 튼튼한 두 팔은 자유를 안겨주었다. 또한 일용직이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몸져눕자 유이치가 치료비, 집세, 식비를 모두 부담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자 그의 수중에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혹여 나이든 어머니와 거리로 쫓겨날까 봐 두려웠던 그는 대출을 받았고 곧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더 이상 어머니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전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봄날 새벽, 유이치는 저렴한 모텔을 알아본 후 병든 어머니를 그곳에 버리고 그대로 달아났다. 쓰레기 채집과 막일을 전전하다가 산야의 이 작은 모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2층의 사무실과 투숙객들 사이에서 사는 현재의 삶이 편하다. 산야의 주민 중 몇 명이나 야반도주해서 왔는지,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정부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사회를 벗어난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서서히 자살해가는 셈이죠."



도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와카츠키 다다오는 평생을 도요타에 바쳤다. 이날 아침, 퇴직한 첫날을 맞은 그는 완전히 새로운 자유를 맛본다. 회사를 벗어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그는 특별히 기뻐하는 내색 없이 담담하게 말한다.


그의 차는 당연히 도요타다. 차창 밖으로 인적이 드문 단조로운 거리가 지나쳐간다. 일렬로 정리된 자동차 부품 상자들,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새 자동차들, 그리고 어디서나 보이는 도요타. 도요타 학교, 도요타 주차장, 도요타 우체국, 도요타 병원으로 가는 길. 회사, 도시, 편의시설 이름 그 자체인 도요타는 빈틈없는 계획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대중교통은 일부러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차가 없으면 지옥이죠." 다다오가 덧붙여 말했다.


그가 전에 일했던 공장은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거대한 요새 같은 곳으로, 높이 솟은 지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다다오는 자동차 프레싱 공장에서 45년간 일했다. 평생 해왔던 일이다. 다다오는 공장 입구 쪽으로 걸어가 카메라와 경비원들에게 다가가서는 왼쪽, 오른쪽을 바라보며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갑자기 빠르게 1/4회전을 90도 각도로 정확히 한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도요타 코드 중 하나죠."


누구나 지켜야 하는 도요타 코드는 회사 직원들 모두의 일상을 지배하는데, 하지 말라는 금지 조항도 많다. 예를 들어서 손은 주머니 속에 넣으면 안 되고 집과 직장 사이를 차로 이동할 때도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휴가 때도 마찬가지), 휴대폰은 밤이고 낮이고 켜놔야 하고 화장실에 갈 때는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손을 씻을 때도 차례를 기다려야 하며 집에서도 회사의 생산성을 높일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전후 일본에서 도요타는 미국의 경쟁사들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창업자의 아들 도요타 기치로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헨리 포드의 책을 읽은 뒤 새로운 경영 모델을 구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델을 가리켜 도요티즘이라고 불렀다. 도요타 기치로와 엔지니어는 대량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헨리 포드 경영 방식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인건비를 줄이는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도요타 기치로는 수요에 맞춰 회사를 운영하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주문 생산하여 재고를 없애야 한다. 이 같은 방식을 린 생산방식이라고 한다. 린 생산방식의 강점은 직원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생산성을 끝없이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특별한 장소가 필요했다. 1959년에 일본 정부는 소도시 코로모 시의 이름을 도요타 시로 바꿨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상적인 자동차 도시 도요타 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정재계 지도자들이 도요타의 경영 모델을 배우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고도화된 공장을 견학했다. 당시 사람들은 도요티즘을 마치 종교처럼 신봉했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도요타는 모방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2008년 드디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다. 도요타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안 다다오는 혼자서 혁명을 추진했다. 2006년, 도요타 시에 속하지 않는 유일한 독립 노조 전도요타노동조합연합회를 세웠다. 도요타의 공식 노조는 경영진과 긴밀히 협조하는 관계였다.


4년 동안 전도요타노동조합연합회에 가입한 직원 수가 10명 정도다. 도요타 시의 총 주민 42만 명 중 10명. 보기에는 얼마 안 되는 숫자지만 이 정도도 대단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보초를 서는 것처럼 공장 앞에 선 다다오는 보행로를 가리킨다. "전단지는 여기까지만 돌릴 수 있습니다." 1미터 앞에 지하통로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저기서부터는 노조 전단지를 돌릴 수 없습니다. 도요타의 소유거든요. 저기서 전단지를 돌리면 확성기에서 도요타 직원들에게 전단지를 받지 말라는 지시가 큰소리로 울려 퍼집니다. 도요타 측에서 사람들을 보내 우리를 쫓아내기도 합니다."


도요타 시는 도요타의 명예를 해칠 수 있는 플랜카드와 사진이 전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도요타의 촉수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 심지어 일부 가게들은 공장이 영업하는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도요타 쪽으로 간다. 다다오가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무엇인가를 짚어준다. 주변이 모두 질서정연해 보여서 미처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이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 다다오가 이미 예견했던 일이고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살아남았지만 거대 기업 도요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2년 8개월 걸리던 자동차 디자인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면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난다. "물량 목표는 맞추었지만 제품의 품질과 직원들의 건강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2008년 경제 위기에 이어 2010년 수백만 대에 달하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도요타의 판매 실적은 급감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수백 명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인턴들과 한국인, 브라질인, 페루인 같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요타 시의 일자리지원센터 중 한 곳인 헬로워크로 향했다. 하지만 도요타만 한 곳은 없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집까지 함께 잃었다. 노숙하고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고 사라졌다.


도요타에서 은퇴한 반항적인 성격의 와카츠키 다다오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도요타는 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도요타의 잘못된 경영철학을 고발하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압력은 많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장의 조립 라인이 내는 지옥 같은 소리에 미쳐버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과로로 죽어가는 사람들, 피로와 절망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도요티즘이 일본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사와 지사 모두 좋은 직원은 사장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세뇌시켜놓고 필요 없으면 다 쓴 휴지처럼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도요타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그는 당당히 할 말을 다 한다. 어느 직원이 도요타 공장 앞에서 그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았다.


후쿠시마의 연기

2011년 3월 11일, 우리는 전 세계와 함께 일본의 북서부 해안 쪽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장면을 보았다. 휴대폰으로 촬영된 동영상을 보니 어마어마한 해일이 무서운 기세로 도시를 휩쓴다.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는 가운데 선박의 잔해, 자동차, 집, 항공 시설 등 모든 것들이 빨려들었다.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방사능이 유출된다. 몇 시간, 며칠, 몇 달 내내. 일본 정부는 통제 불가능한 엄청난 규모의 재해 앞에서 흔들린다. 시민들도 마치 천벌과도 같은 재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한다.


구름, 비, 바람, 강과 바다는 유독한 방사능 물질을 어디까지 실어 나를까?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쌀과 감자, 당근, 찻잎, 해조류, 물고기, 가축, 인간에게 스며들까? 외국의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미나미소마, 센다이, 도쿄까지 여러 도시의 공기와 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즉각 알린다. 그러나 우리의 일본 친구들은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일본 당국은 이미 국민 전체를 희생시키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침수된 원전을 가동했던 도쿄전력과 동요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정보 조작을 준비한다.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있었던 주말,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행을 감행해 오사카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도시 가마가사키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머무는 곳에 짐을 푼다.


볼프강 헤르베르트, 줄여서 볼프란 이름의 남자가 모텔 자동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볼프는 이번에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얼마 전 영상 통화로 자신을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며 일본 야쿠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고 했다. 쉰네 살의 볼프는 일용직 노동자, 야쿠자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일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일본에서 실종자들을 찾는 도전에 합류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일본의 암흑가 세계는 중산층이 사는 세계와 매우 동떨어져 있다. 볼프는 음악가와 의사, 엔지니어의 나라 오스트리아 중산층 출신이다. 부르디외의 책을 읽기 좋아하던 스물여덟 살의 볼프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참여 사회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넘어와 가마의 일용직 노동자들과 어울렸다.


오스트리아인 볼프가 담에 기대앉아 숨을 헐떡이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왜 내가 여기를 마음 편히 생각하는 줄 압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소수자에 속합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자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죠. 이들이 날 받아주고…." 볼프는 일본에서 증발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거부한 것이라고만 한다. 반항적인 어린 양, 누구나 획일적인 기준으로 승진과 성공이라는 허상의 사다리에 매달리는 일본 사회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볼프는 빈민가의 영혼과 그늘을 헤아려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을 알고 있었다. 1975년부터 센 아리무라는 상처 입은 영혼을 돌보고 있다. 쉰아홉 살의 사회복지사인 그가 하는 일은 절망한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구하는 것이다. 가마에서 누구나 기억하는 아리무라는 외로운 사람들의 믿음직한 말동무다. "사회와 인연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옵니다. 그렇게 이곳은 이들의 터전이 됩니다. 수십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숨을 필요도 없어집니다…."


가마의 남자는 일본 만화의 캐릭터가 되었다. 상처투성이 인생, 이 빠진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짐을 싣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가마의 남자다. 아리무라는 만화를 십여 편 출간했다. 캐릭터 가마의 남자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정을 느낀다. 거칠고 삐딱한 모습이다. 아리무라는 증발한 사람들을 이렇게 생각한다. 외롭지만 자유로운 사람들, 외로움 대신 완전한 자유를 얻은 사람들.


찌는 듯 무더운 저녁, 젊어 보이는 남자 세 명이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 남자는 희망을 위해 건배한다.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제안했다. 적어도 두 달 동안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다. 쓸고 닦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는 작업이다. 쓰레기의 정체는 원전 폐기물, 핵먼지. 내일 이 세 명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가출한 사람들이라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다.



에필로그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제대로 주차된 자동차, 기차역 앞에 나란히 자물쇠가 채워져 보관된 자전거, 문 밑으로 밀어넣은 우편물, 아름다운 전통 가옥의 문이 열려 있고 그 틈으로 곰팡이가 슨 가족사진들이 보인다. 가족은 더 이상 없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벽에는 금이 갔고 지붕은 움푹 들어갔으며 식물이 건물 위를 서서히 덮거나 포장도로 안으로 들어가 있다. 전에는 매우 아름다운 지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가 잘못되었다. 방사능 폐기물이 그득 담긴 자루가 집의 현관문, 축구 경기장, 혹은 시청 옆에 놓여 있다. 오다카 시까지 몇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침묵을 깨는 것은 오직 까마귀 울음소리와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호들갑스러운 안내 방송뿐이다. "우리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곧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후쿠시마 그 후를 사진에 담기 위해, 재난 현장을 보고 주민들의 말을 듣기 위해 걸어서 혼자 왔다. 주민들은 떠났다. 버림받은 것들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도시는 황량하고 삶은 망가졌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원전이 보인다. 키가 낮고 평범한 원전이다. 하얀색 옷과 마스크 차림에 헬멧을 쓴 사람들을 태운 트럭도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세 개의 구역을 안전지대로 정했다. 마치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 연기와 먼지, 물이 안전지대는 침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심해잠수부가 된 기분이다. 컴컴한 바닷속 같은 후쿠시마에서 나와 주민 6만여 명이 사는 미나미소마로 이동한다. 나른한 느낌의 지방 도시. 얼핏 삶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인다. 서류 가방을 든 샐러리맨들은 출근하고 노동자들은 빌딩 보수 공사를 하고 퇴직자들은 꽃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눈다. 철 지난 웨딩드레스들이 디스플레이 된 쇼윈도 앞에서 나는 스즈키 히로유키의 자동차에 올라탄다. 일흔일곱의 할아버지지만 영원한 십대처럼 옷을 입는 멋쟁이다. 재난이 발생하자 노령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 그룹을 이끌었다. 그의 방사능 측정기는 거리에 설치된 공공 방사능 측정기보다 두 배나 높은 방사능 수치를 가리킨다. 히로유키는 길가와 낙수받이에서 보이는 알 수 없는 검은 먼지에서 방사능 수치가 매우 높게 측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오염 제거 프로그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부가 교외 전체의 흙을 파헤치지만 방사능 수치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흙을 파헤치는 작업에 사용되기도 전에 누군가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고 한다. 부정부패의 승리. 이미 야쿠자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 노숙자들, 가출한 사람들을 이 혼란스러운 곳에서 일할 일꾼으로 모집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정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리케이드 둘러친 집들은 간혹 부서지고 약탈당한 흔적이 있으며 커튼이 내려져 있고 운동장은 조용하다. 히로유키는 동네 주민들은 짐을 싸 떠날 수밖에 없었고 다른 도시에 마련된 작은 임시 주택에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나미소마 자체가 방사능 수치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일본에는 원전 폐기물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모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줄 만큼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히로유키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가 있는 거리는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연배의 노인들뿐이다. 더 이상 아이들도, 학교도, 미래도 없다. 원전 누출 사고가 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일본은 참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암환자가 처음으로 증가했고 후쿠시마 출신의 여성들이 유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이곳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예쁜 방울토마토로 붉은 물이 든 채소밭에 한 노인이 서 있다. 그는 채소밭 가꾸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고 털어놓는다. 나날이 커지는 외로움에 지쳐가고 있다. 일요일마다 손주들을 데리고 놀러와 수확한 채소를 나눠먹던 아들네도 오지 않는다. 대대로 물려받은 큰 집에 더 이상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그의 전 재산, 그의 이야기와 정체성은 원전 방사능재와 함께 사라져갈 것이다. 인간의 위선이 안겨주는 망각.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어느 지방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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