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사회

   
윌슨 섀프(역:강수돌)
ǻ
이상북스
   
17000
2016�� 08��



■ 책 소개 

온 사회가 중독자처럼 움직인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휘청거리게 만드는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모두 중독자다. 물질이든 행위든 혹은 관계든 그 어떤 것에 매여 있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래서 언제나 목마르고 끊임없이 갈구한다. 건강하지 않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 앤 윌슨 섀프는 개인의 중독 문제를 직, 간접적으로 접하며 또 여성으로서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는 개인의 중독 문제를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결부해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중독 행위자인 우리들이 속한 이 사회가 바로 중독된 사회라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저자는 중독자-중독 사회-중독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중독의 문제는 시스템 전환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30년 전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각 나라는 물론 한국 사회의 질곡을 해명하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데 통찰을 준다. 저자가 말하는 중독 사회의 모습은 고스란히 미국에서도, 그리고 바로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도, 나아가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자 앤 윌슨 섀프
저자 앤 윌슨 섀프는 1934년 아칸소 주 실로암 스프링스에서 북미 원주민인 체로키 인디언과 아일랜드 이주민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1956년에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6년에 유니언 인스티튜트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에는 오하이오 주의 케년 대학에서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임상심리 분야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조상들이 지녔던 지혜의 가르침에서 배운 내용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인 건강’에 적용하기 위해 1984년에 심리치유 분야를 떠났다. 이 전인 건강 해법을 섀프는 ‘과정 속의 삶’(Living in Process)이라 부른다. 또한 여성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주로 개인적 차원에 머문 심리 치유를 넘어 개인의 건강조차 조직의 건강 및 사회의 건강 문제와 결부해 함께 풀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 20년 이상 물질중독이나 과정중독 문제에 관한 각종 상담과 특별 강연, 세미나 등을 진행하며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지은 책으로는 『여성의 현실』(Women’s Reality) 『동반중독』(Co-dependence) 『중독조직』(The Addictive Organization) 『일하는 여성을 위한 명상록』(Meditations for Women Who Do Too Much) 『과정 속의 삶』(Living in Process) 등이 있고, 현재 미국 몬태나 주 리빙인프로세스센터에서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역자 강수돌
역자 강수돌은 1961년 경남 마산 생. 1981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가 경영학을 공부했으나 ‘돈의 경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삶의 경영’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1985년 대학원에 진학해 노사관계를 전공했다. 학문 심화를 위해 1989년에 독일 유학을 떠났고, 1994년 여름 브레멘 대에서 노사관계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1997년부터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 영역은 노사관계, 인간관계, 노동시장, 기업과 사회, 노동법 등이며, 저서로 『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경영과 노동』 『노사관계와 삶의 질』 『자본주의와 노사관계』 등이 있고, 역서로는 『세계화의 덫』 『글로벌 슬럼프』 『중독 조직』 등이 있다.

 

■ 차례
한국어판 저자 서문 -중독 시스템을 넘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으로!

 

제 1 부 중독자, 중독 사회, 중독 시스템
0 중독자들의 시대
1 ‘중독 시스템’의 탄생
2 통제당하는 개인, 통제당하는 사회
3 중독 시스템 용어 정리
4 진정한 사랑이라는 착각 관계중독
5 중독이라는 동전의 또 다른 면 동반중독

 

제 2 부 중독의 특성
0 사회 전체를 투영하는 중독
1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자기중심성
2 통제하거나 통제당하거나 통제 환상
3 중독 사회의 보편적 규범 부정직함
4 환상 혹은 착각 비정상적 사고 과정
5 주어진 시스템에 갇혀 살게 만드는 혼란
6 중독자들의 최고 방어 메커니즘 부인
7 기질상의 결함 혹은 회복의 최대 장애물 완벽주의
8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는 이유 망각성
9 오히려 친밀성을 파괴하는 의존성
10 불운한 인지 구조 희소성 모델, 제로섬 모델
11 에너지 고갈의 원인 부정주의
12 성장 불능 상태를 만드는 자기 방어
13 혼란스런 상호작용 소통과 반소통
14 책임감과 남 탓하기
15 한 순간에 오직 한 사람만 터널 비전
16 차단하고, 가로막고, 억제하고 얼어 버린 느낌
17 타협 또는 타락 윤리적 퇴행
18 중독 사회를 유지하는 주춧돌 두려움
19 중독 시스템은 착각 시스템
정리_개인은 전체를 반영하고 전체는 개인을 반영한다

 

제 3 부 중독의 과정 혹은 중독 사회가 유지되는 비밀
0 사회는 어떻게 중독자가 되는가
1 중독적 인간관계를 지속시키는 장래 약속 과정
2 중독 시스템을 영속화하는 흡수 과정
3 환상이 현실이 되는 착각 과정
4 자아조차 외적으로 구성되는 외부 준거 과정
5 아는 것조차 모르는 것으로 만드는 무효화 과정
6 무시하거나 묵살하는 인격 모독과 날조 과정
7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거세하는 이분법 과정
8 모든 문제는 짝을 이뤄 등장한다 링컨 로그
9 중독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의 힘
10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기
정리_우리는 어떻게 중독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제 4 부 치유와 회복의 과정
1 중독에 빠졌다는 사실 인정하기
2 새로운 삶의 기준 세우기
3 고유의 건강성 회복하기

 

역자 후기 -중독 사회를 넘어 건강 사회로 가는 길




중독 사회


중독자, 중독 사회, 중독 시스템

중독 시스템의 탄생

『여성의 현실』에서 나는 세 가지 주요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백인남성 시스템과 신생여성 시스템, 그리고 반동적 여성 시스템이다. 당시 나는 우리를 제약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그렇게 불렀다.


먼저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시스템을 백인남성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였다. 왜냐하면 현재 시스템 속에서 권력이나 영향력 등이 대체로 백인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논리나 문화가 백인 남성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백인남성 시스템이 우리 문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함에 따라 정부 기관, 사법 체계, 종교 기관, 학교 체제, 경제 구조, 그리고 전체 사회가 그런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백인남성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우리 모두를 에워싸거나 뒤덮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이 시스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의 언어와 가치관, 사고방식, 그리고 세계관 전체를 이 시스템에 맞게 적응시켜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시스템으로부터 약간의 인정이라도 받기 위해 우리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대체로 부정해야 하며, 각자가 가진 인간적인 힘(역량)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한편 이 백인남성 시스템의 여성적 동반자가 곧 내가 말한 반동적 여성 시스템이란 것이다. 이 시스템은 고정관점에 가득 찬 시스템이며, 외적으로 규정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 반동적 여성 시스템에 깔린 기본 개념은 여성으로 태어난 원죄라는 것이다. 즉 반동적 여성 시스템에서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가르친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단히 그렇게 살아가도록 재촉받고 있다.


『여성의 현실』이란 책에서 말하는 세 번째 시스템은 신생여성 시스템이다. 신생여성 시스템은 고정적이라기보다는 가변적이며, 시스템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열린 시스템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딱히 어떤 용어로 콕 집어 표현하진 못하지만 이미 익숙한 그 어떤 것을 접하게 되면서 매우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백인남성 시스템은 여성들에게 해롭다. 실은 이것은 여성에게만 해로운 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롭다. 나아가 동물과 식물, 우리 지구 전체에도 해롭고, 심지어 그런 파괴성이 온 우주까지 확장될 정도로 위협적이다.


반면 신생여성 시스템은 삶을 지향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존재의 충만한 삶을 구현하는 대안적 시스템이다.



중독의 특성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자기중심성

중독자들은 자기중심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물론 그들 자신은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이 빠진 중독물, 즉 자기중심성은 다른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고 만다.


일례로 알코올 중독자는 오로지 언제 또 술을 마실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관계 중독자는 다음에 언제 또 만날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리고 중독 시스템은 이런 자기중심성을 일종의 좋은 덕성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 자기중심성이라는 특성은 전염성이 있다. 예컨대 우리가 우리에게 별로 신경을 써 주지 않는 이들로만 온통 둘러싸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각종 물품도 잘 챙겨야 하며, 갈수록 자신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의 또 다른 측면은 늘 자기를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에게 유리한 것(즉 자기를 지지하는 것), 아니면 불리한 것(즉 자기에 반대하는 것) 중 하나로 인식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기중심적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이 자기중심성이 별 거부감 없이 수용될 뿐 아니라 심지어 장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자기중심성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 싸워 극복할 대상이라고 본다. 즉 나는 이 잘못 학습된 사회적 행동에 우리가 정면으로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엔 아직 또 다른 면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흔히 임상 전문가들이 에고(자기) 경계선이라 부르는 것과 연관된다. 즉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이 에고 경계선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또 다른 경계선의 시작과 끝이 어딘지 전혀 모른다. 그 결과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잘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글자 그대로 타인들을 독립적 실체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런 현상을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아주 확실히 볼 수 있다. 미국이 세계 곳곳의 반미 국가들을 미워하고 친미 국가를 마치 부속물 취급하는 것이 좋은 예다-옮긴이.)


내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이나 여러 중독에 관한 문헌들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중심주의 개념을 알았을 때, 내게는 하나의 새로운 깨달음이 일었다. 그것은 자기중심주의 성향과 연관된 모든 것이 중독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중독 시스템에서는 자아가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사람, 그리고 (자아에 의해 인지된) 모든 사물은 자아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고, 그 자아와 연결되어야 하며, 자아에 의해 정의되기도 한다. 중독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뭔가 객관적으로 본다거나 타인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아주 힘든 일이다(비록 그들은 자신의 주관을 관철하기 위해 종종 객관적인 사실을 의도적으로 뜯어 고치지만 말이다).


반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에서는 관계망이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 속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자아를 초월하는 과정 속에 있다. 여기서는 모든 관계들이, 철학적으로 볼 때 대체로 동료 관계로 개념화된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만남이 평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서로서로 평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함께 타인도 동시에 보는 습관, 나아가 자신의 견해와 타인의 견해를 동시에 존중하며 볼 줄 아는 습관을 형성한다.


불운한 인지 구조 희소성 모델, 제로섬 모델

중독 시스템은 희소성 모델에 근거해 작동한다. 이 희소성 모델은 그 어느 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기에 충분치 않다는 가정에 입각해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확보해 놓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 희소성 모델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침투해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나 물질적 재화, 심지어 사랑이나 위신 같은 것도 가능한 한 높이 쌓으려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 충분치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필요나 예상 사용량보다 훨씬 더 많이 축적하려는 경향이 있다(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거듭 말하지만 희소성 모델은 우리 모두가 고루 나눌 것이 충분치 않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다른 말로 이것은 제로섬 모델로서, 만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을 갖게 되면 막상 내가 필요할 때 그것을 전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상정한다. 즉 모든 것이 제한된 물량, 한정적 수량으로만 사용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희소성 모델에 빠지면 우리의 관계들은 이상하게 변해 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양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쉬운 예로, 어린 시절에 형제자매간에 경쟁심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줄 사랑이나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희소성의 모델의 덫에 걸리면, 친구관계나 가족관계조차 시기와 질투로 채색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갖고 싶은 그 모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굳이 필요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반드시 갖고 싶어 하는 경향도 있다.


마찬가지로 중독 시스템 안에서도 이런 모델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백인남성 시스템에서는 권력이 엄격한 제로섬 원리 위에 작동한다. 만일 당신이 권력을 갖고 있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권력을 덜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생여성 시스템, 즉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에서 권력은 별 다른 제한이 없는 것으로 인지된다. 즉 내 권력을 당신과 나누면, 신기하게도 우리는 모두 더 많은 권력을 향유하게 된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에서의 권력 문제와 관련해 진짜 중요한 점은 바로 이 힘이 우리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필요나 욕구 충족을 위해 굳이 외부의 그 어떤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가고 스스로 깨치면 된다.


바로 이 점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중독 시스템과 비교해보라. 중독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더 많은 폭탄을, 더 높은 국민총생산(GNP)을,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려 한다. 한 나라 또는 한 사회의 수준에서도 무슨 일을 하건 결코 만족이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결코 우리를 온전한 상태로 만들지 못한다.


중독 시스템은 착각 시스템

이제 나는 마침내 중독 시스템을 일종의 착각(환상) 시스템으로 파악한다. 나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로를 통해 이런 인식에 이르렀다. 그 이전에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인식이 내게 수정처럼 맑게 다가왔다.


나는 예전에 리처드 바흐(Richard Bach)의 『환상』(Illusions)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동양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몰고 미국 중서부의 콜로라도 산악지대를 지나가게 되었다. 특히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달리던 중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말과 모든 게 환상이라는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저 산들 중에 하나라도 내가 만든 게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저 산들은 바로 저 자리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스템 역시 저 산을 창조한 게 아님이 분명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 산들은 우리의 시스템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저 산들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그런데 중독 시스템은 늘 시스템 자체가 현실이라고 정의한다. 그 외 다른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파악한다(비현실). 그래서 중독 시스템은 우리 자신의 현실이나 고유의 경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것, 아는 것이 중독 시스템에선 부정당하고 말 수밖에 없다. 실은 중독 시스템 자체가 환상이고 착각에 불과하기에 우리 모두에게 세상 만물을 환상으로 인지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요구 자체도 이미 환상(착각)에 의한 행동에 불과하다.


앞에서 중독 시스템은 그 자체로 환상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정의한다고 했다. 당연히 이것 또한 환상에 불과한데, 그 결과 시스템은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중독 시스템은 통제 환상, 완벽주의 환상, 부정직함, 현실 부정, 그리고 현실을 좌뇌 중심의 구성물로 왜곡하는 사고방식 등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중독 시스템 그 자체가 유일한 현실이라는 믿음도 일종의 환상인데, 바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어떤 현실(실재)도 없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은 당연히 존재한다. 바로 이것을 나는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라 부른다. 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우리는 중독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우리의 지식이나 깨달음, 우리의 인식들로부터 너무 멀리 분리되어 나갔다.


이 환상에 기초한 시스템은 한참 꼬인 사고 과정이자 세련된 자기 방어 시스템이며 무수한 난센스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환상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환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별 무리 없이 살아 나가기 위해 우리는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실제 현실로부터 차단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다양한 중독 현상들이 중독 시스템의 생존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생동성이 제거된 비생명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시스템 속에서는 앞서 말한 산들조차 실제 현실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이 된다.


정리. 개인은 전체를 반영하고 전체는 개인을 반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이것이 제대로 건강성을 회복하게 돕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스템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시스템은, 몸이 엄청 망가지거나 퇴화하는 중인 알코올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중독 행위자로 되어버렸다. 실제로도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병적과정에 더 이상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제 더 이상의 부정은 안 된다. 지금까지처럼 코끼리의 다리나 꼬리만 만지는 일은 그만두고, 그 총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중독 시스템이 바로 그 전체 코끼리다.



중독의 과정 혹은 중독 사회가 유지되는 비밀

환상이 현실이 되는 착각 과정

중독 시스템은 모든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래서 중독 시스템이 말하는 것이 곧 현실인 반면,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현실은 오히려 환상 혹은 착각으로 치부되고 만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이것은 혼란을 초래하고, 나쁘게 보면 우리를 마비시킬 뿐이다. 그 결과 우리가 새롭게 질문하거나 느끼거나 탐색하는 두뇌 작용은 기존의 합리적 사고방식들에 의해 인질로 붙잡히고 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갈등을 푼답시고 우리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과정(분석이나 여러 개념적 도구를 이용한 지식 체계 등)을 십분 활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고양시켜 그 갈등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엉터리로) 교정하는 (값비싼) 도구의 개발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현실을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묵살해 버린다. 이런 묵살은 역으로 우리로 하여금 경험이나 실제 현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과정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시스템은 이런 식의 통제를 행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잘 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이나 시스템은 아예 그런 통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런 통제가 환상을 만들기 위한 통제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기

중독 시스템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중독 시스템으로부터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우리가 아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중독 시스템은 완전한 파멸로 이끌 것이다

중독 시스템은 비활력(nonliving) 지향성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어진 시스템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정체성과 고유의 힘, 깨달음, 지식 등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것은 우리에게 언젠가 세상에 완전히 파멸할 가능성도 아무 말 없이 수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고약한 냄새가 나는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중독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위협으로 느껴진다. 원래 모든 조직의 공식 목표는 생산성, 이윤, 봉사 같은 것들이지만 이들의 비공식 목표는 시스템 자체의 보존, 그리고 현상유지다.


어떤 시스템 전체가 비활력 지향성을 띤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깊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느껴질 것이다.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아무 활기도 없이 그저 적응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는 순간, 아마도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또 우리 삶에 중요한 정책적 결정들이, 자기들의 중독적 과정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알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후손의 삶에 대해 진정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던질 질문을 바로 이런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중독 시스템이 약속하는 파멸적 미래를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하는가?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독자들이 바닥을 치지 않으면 회복 과정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믿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일부 치유 센터들은, 중독자들이 완전한 바닥을 치기 전에 미리 치유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런 면에서 중독 시스템 차원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희망이 가능하다.


중독 시스템은 인간적 욕구도 왜곡한다

몇 년 전에 나는 어떤 세미나에서 내가 쓴 『여성의 현실』에 나오는 몇몇 개념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대 우리는 백인남성 시스템의 신화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신화 중 하나는, 그 시스템에 의해 정의된 신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청중으로 참여한 여성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그게 백인남성 시스템의 신화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걸요. 그러면서 제 생각에는 신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모든 인간이 가진 욕망이 아닐까 싶은데요라고 덧붙였다.


그 뒤로 나는 이제까지 우리가 배운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이런 식으로(시스템 내 적응을 위해) 뒤틀려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이 과연 중독 시스템의 인식 체계에 의거한 것인가?


나는 우리의 신학적 배움에서 원천 역할을 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혹 교회 역시 중독 시스템의 일부로서 그것을 영속화하는 역할을 해 온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점차 내가 깨달은 것은 놀랍게도 약속, 흡수, 통제, 외부 참조, 무효화, 그리고 이분법과 같은 중독 과정이 모두 교회의 특징적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렇게 파악하고 나니, 교회가 어떤 식으로 우리 나름의 참된 영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간섭하는지 알기가 매우 쉬워졌다. 마치 동반중독자처럼 교회가 중독 사회와 일종의 공범관계를 이루고 있기에, 교회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도덕성조차 타협을 통해 변형시키고 마는 것이다.


교회와 같은 종교 기관은 종종 사람들에게 치유와 영적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중독 과정을 통해서는 치유도 영적 성장도 결코 가능하지 않다. 물론 교회나 사찰 등 종교기관이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진실은 인간의 영혼에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진실을 널리 퍼뜨리는 수레바퀴는 중독 시스템을 지탱하는 수레바퀴와 동일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종교 기관조차 아예 처음부터 중독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결국에는 모든 구성원들을 비활력의 세계로 이끈다.


중독 시스템에서는 인성 발달도 뒤틀린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청소년기의 반항적 태도가 인성 발달에서 정상적인 단계라고 배웠다. 또 우리는, 청소년기의 그 반항적 태도가 의도하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것, 그리고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만일 어떤 청소년이 통제 지향적이지도 부정직하지도 않은 부모, 그리고 자기중심적이거나 의존적이지도 않은 부모 아래 건강한 방식으로 성장한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에조차 청소년들이 그렇게 반항적으로 멀리 달아나려는 모습을 보일까?


만일 청소년들이 자신의 느낌과 진솔하게 접촉하며 자라난다면, 또 거기에 근거해 행동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나 기분도 존중하며 성장한다면, 과연 이들이 굳이 자신을 부모로부터 스스로 소외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정체성 형성이 그들 자신에 의해 내면에서 서서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러한 청소년 반항이란 개념은, 내가 보기엔 청소년이 가진 많은 장점들이 다시 열리고 재발견되는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인성 발달과 관련해 우리가 아는 그 모든 것은 사실상 중독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학교의 교사들에 의해 교육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교육은 늘 현실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지만, 사실 그 현실은 진짜 현실의 실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사회를 중독 시스템으로 파악할 때 얻을 수 있는 시사점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렇게 우리가 중독 시스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며 파악할수록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제대로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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