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역: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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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16000
2016�� 03��



■ 책 소개
자선과 기부에 대한 선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다!

 

사회의 도덕기반과 윤리 이슈들을 다루는 예일대학교 캐슬 강연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회운동,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소개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기부하고 봉사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사연이나 불쌍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이타주의를 발현시키고 있다.

 

싱어 교수는 타인을 돕는 데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감정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생명과 고통이 자신의 것과 동등한 수준의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때, 세상에 더 많은 ‘선’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나눔 운동의 시작점을 제시하며, 자선과 기부에 대한 선명한 가이드라인을 그려준다. 또한 ‘반짝’ 기부자들의 환상을 깨고 ‘묻지마’ 자선단체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한다.

 

‘감정적’ 기부의 단점을 지적하고, 진정으로 ‘착한 행동’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한다. 지구촌 빈곤 퇴치부터 멸종위기 동물 보호, 말라리아 예방부터 맹인안내견 보급까지 다양한 구호활동의 가치를 비용대비효과 차원에서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 저자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이자 멜버른대학교 역사철학 명예교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실천윤리학자이자 동물해방론자로 2005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이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인간가치센터’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며 세계를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고자 행동하는 학자다.

 

싱어 교수는 역사‧종교‧문화 등 인간의 총체적 삶을 조명하며 자신의 실천윤리관을 펼쳐왔다. 특히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에 빗대어 동물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종(種)차별주의자라고 지칭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동물 해방』은 전 세계에 동물해방운동과 채식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공리주의를 다양한 현실 문제에 적용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이러한 원리를 동물의 문제뿐만 아니라 빈곤 및 기아의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동물 해방』『실천윤리학』『사회생물학과 윤리』『민주주의와 불복종』『마르크스』『다윈의 대답』『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민주주의와 불복종』『세계화의 윤리』『죽음의 밥상』 등이 있다.

 

■ 역자 이재경
경영컨설턴트와 영어교육출판 편집자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외국의 좋은 책을 소개하고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세상의 모든 공식』『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얻는가』『달 : 낭만의 달, 광기의 달』『바이 디자인』『커피북』『이노베이션 킬러』『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등이 있다.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해』를 엮었다.

 

■ 차례
머리말

 

제1부. 효율적 이타주의의 탄생
제1장. 하나보다는 여럿을 위해
제2장.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2부. 어떻게 최대의 선을 실현하는가
제3장. 적게 가져서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
제4장. 더 많이 주기 위해 더 많이 번다
제5장. 다른 사람을 돕는 다양한 방법
제6장. 나눌 수 있는 생명의 조각

 

제3부. 왜 그토록 남을 돕고 싶어 하는가
제7장. 단지 순수한 사랑 때문일까
제8장. 이성을 통해 삶의 태도를 정한다
제9장.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을 키운다

 

제4부. 어디가 도움이 절실한 곳인가
제10장. 같은 나라 사람을 돕는 게 먼저일까
제11장.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
제12장.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
제13장. 동물의 고통 경감과 자연보호
제14장. 어떤 자선단체가 좋을까
제15장. 존재론적 위험까지 막아야 하는가

 

맺는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효율적 이타주의자


효율적 이타주의의 탄생

하나보다는 여럿을 위해

내가 맷 웨이즈를 알게 된 것은 2009년이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과 수학을 전공하던 맷은 나의 실천윤리학 수강생이었다. 맷은 세계적 빈곤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한 책을 읽던 중에, 예방법이나 치료법이 있는데도 병으로 수백만 명씩 죽어가는 아동 중 한 명을 살리는 데 드는 비용을 추산한 자료를 접했다.


그는 그 추산치를 토대로 본인이 평생 구할 수 있는 아동 수를 계산했다. 미국 평균소득을 자신의 예상 소득으로 잡고, 그 소득의 10퍼센트를 고도로 효율적인 자선기관에 기부한다는 가정을 세웠다. 세계적 어린이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말라리아다. 맷은 말라리아 방지용 모기장을 위험지역 가정에 공급하는 단체에 기부했을 때의 결과를 계산했다. 그랬더니, 그 정도 기부활동으로 약 100명의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맷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불길에 싸인 건물을 보고, 불길을 뚫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100명을 구조했다고 치자. 그게 영웅적 위업이 아니면 뭐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도 맘만 먹으면 거기 상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맷은 2년 후 프린스턴을 졸업했다. 그의 졸업논문은 철학과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원 연구과정에 뽑혔다. 철학전공자에게는 꿈의 기회였다. 철학전공자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이때쯤 맷은 어느 커리어가 선의 최대화에 유리할지를 놓고 많은 고민과 토론을 거쳤다. 그의 고민은 결국 철학 교수와는 180도 다른 진로로 이어졌다.


맷은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증권선물거래 회사에 입사했다. 고소득 직업을 택하면 백분율로 따지든, 가용액수로 따지든 교수 수입의 10퍼센트보다 많은 돈을 기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졸업 1년 만에 맷은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섯 자릿수 금액을 고도로 효율적인 자선단체 여럿에 기부했다. 평생이 아니라 직장생활 한두 해만에 100명을 살렸고, 이후로도 매년 100명씩 더 살리게 됐다.


맷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다. 그의 커리어 선택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로 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다음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주로 하는 일들이다.


- 검소하게 살면서 수입의 상당 부분, 즉 전통적 십일조 개념보다 훨씬 웃도는 금액을 가장 효율적인 구호활동 또는 구호단체를 골라 기부한다.

- 어느 구호활동 또는 구호단체가 가장 효율적인지 조사하고 논의한다. 또는 독자적 평가주체가 조사한 자료를 참고한다.

-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더 보탬이 되기 위해서 능력과 적성이 허락하는 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커리어를 선택한다.

-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기부에 대해 논의하고, 효율적 이타주의 확산에 노력한다.

- 혈액, 골수, 신장 같은 몸의 일부를 모르는 사람에게 기증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무엇일까? 현재의 일반적 정의는 이렇다.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


이 정의에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동기, 희생, 대가 같은 말들은 없다. 이름 자체에 이타주의가 들어가는 운동이니만큼 이런 생각이 좀 의외로 다가온다. 이타주의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반대 개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효율적 이타주의는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전제하지도 않는다. 남을 위한 최선이 본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최상의 결과가 아닐까.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대다수는 본인의 행동이 희생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래도 그들은 이타주의자다.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선의 최대화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성취감과 행복을 얻는다고 해서 그들의 이타주의가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기부행위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대적으로 거액을 한두 개의 자선단체에 몰아서 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액을 여러 자선단체에 분산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한두 단체에 집중 기부하는 사람들은 해당 단체가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실제로 긍정적 효과를 내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구호활동이 입증되면 상당한 액수를 기부한다.


이에 비해 소액의 기부금을 여기저기 내는 사람들은 기부금이 정말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자선 등의 이타적 행위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성취감을 유발하는 따뜻한 빛 현상에 빗대 따뜻한 빛 기부자로 부른다. 이들은 기부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뿌듯함을 느낀다. 이들의 기부금은 대개 10달러 이하의 소액이다. 이 경우 기부성과보다 기부건당 처리비용이 커지는 배보다 배꼽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최대의 선을 실현하는가

적게 가져서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

고소득자가 아니어도 세상에 엄청난 양의 선을 행할 수 있다. 줄리아 와이즈도 고소득자는 아니지만 놀랄 만큼 많이 기부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다. 줄리아의 블로그 「기쁜 기부」에 그 비결이 담겨 있다. 우선 줄리아는 자신의 기부 의지에 대한 친구의 반응을 소개했다.


"매일 쌀과 콩만 먹고, 영화관 한 번 못 가고 사는 건 너무 우울하지 않겠어?"


줄리아는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삶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설명한다. 줄리아와 그녀의 남편 제프 코프먼은 대학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가진 공간과 돈은 많지 않았고, 가장 큰 즐거움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둘은 2009년에 결혼하면서 삶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검소하게 살면서 기부하기로 했다. 벌이가 많지 않아도 꾸준히 기부하고, 소득이 많아지면 기부의 양도 늘려가기로 했다.


줄리아는 사회복지사고, 제프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2008년에는 둘의 수입을 합해도 4만 달러 아래였다. 그러다 제프의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 2013~2014 회계연도에는 26만 1,416달러에 이르렀다. 줄리아의 대학원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한 해를 제외하고 줄리아와 제프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기부했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기부비율은 50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줄리아와 제프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절약했다. 집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세를 얻었기 때문에 집세도 높지 않다. 앞으로 집을 사게 되면 주거비 지출은 늘어날 것이다. 두 사람은 주택 구입과 노후, 아이 양육을 위한 미래 비용도 저금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입의 반을 기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계획이다.


줄리아가 현실적으로 제안하는 세부 지출내역은 다음과 같다.

- 매달 집세 900달러와 공공요금 100달러

- 매달 식료품비 150달러

- 매달 의료보험료와 기타 의료비 300달러

- 대중교통 탑승권 70달러

- 매달 개인 경비 250달러

- 소득의 10퍼센트 저금

- 소득의 10퍼센트 기부


이처럼 중위소득자도 소득의 10퍼센트를 효율적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다른 10퍼센트를 미래를 위해 저축하면서도 충분히 안락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왜 그토록 남을 돕고 싶어 하는가

이성을 통해 삶의 태도를 정한다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공리주의를 비판하며 인간은 우주적 관점을 취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의를 제기한다. 도덕적 기질, 특히 충성과 헌신은 분명한 깊이와 두께를 가진다. (이런 기질이) 사람들에 의해서, 더구나 본인에 의해서, 행동이나 상태나 사건의 발생 장치로만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다. 도덕적 기질은 개인의 삶에 의미를 주고 사는 이유를 부여한다. 나를 완전히 배제한 관점을 취하고, 이런 관점에서 내 삶의 실체를 구성하는 기질과 포부와 애착을 통틀어 평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은 윌리엄스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고 있는 셈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은 가치판단에서 자기를 분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삶의 방식에 이른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초연함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삶의 방식에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이런 초연함은 이성적 사유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때의 이성적 사유는 개인적 기질, 포부, 애착을 벗어난 관점에서 삶의 방식을 평가하는 것과 유사한 정신활동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기질이나 애착에 따라 기부하는 것에 반대한다. 다음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거부하는 기부 동기들이다.


- 나는 아내를 유방암으로 잃었다. 그래서 유방암 연구를 후원한다.

- 나는 예술가를 꿈꿨지만 꿈을 실현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유망한 예술가에게 재능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단체들에 주로 기부한다.

- 나는 자연경관을 촬영하는 사진작가다. 그래서 국내 국립공원 보호를 위해 기부한다.

- 내가 미국인이므로 최우선 원조 대상은 아무래도 미국의 빈민층이다.

- 나는 개를 좋아해서 우리 지역 동물보호소에 기부한다.


우주적 관점이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마다 다르다. 상당수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비교적 젊은 시절에 지금의 인생목표를 정했다. 젊은 시절이라 함은, 이미 다른 포부를 깊이 실현 중이거나 효율적 이타주의가 아닌 가치관을 깊이 수용하기 전을 말한다. 사람은 젖먹이 때는 이성적 사유를 못한다. 하지만 여러 사물과 상황에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 사유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성을 이용해서 이미 정서적 태도를 형성한 상황들을 일반화하고 거기서 추론을 끌어낸다. 여기서 이성은 열정의 단순한 노예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이성은 열정을 수정하고, 재분배하고, 용도 변경함으로써 우리가 윤리적 행동에 이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윤리적으로 살겠다는 선택에 사유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견지를 인정하면 효율적 이타주의와 진화론 사이에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된다.


인류의 진화과정이 사유 능력을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사유능력은 식량을 찾고, 번식과 협업에 유리한 짝을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맞수를 물리칠 꾀를 내는 등 문제 해결에 요긴하다. 만약 사유 능력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남들의 선(이득)이 대국적 관점에서는 나의 선(이득)만큼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면? 그렇다면 효율적 이타주의도 진화론으로 설명된다는 뜻이다. 이성으로 도덕적 진리에 닿는 능력도 산술능력처럼 존속을 위해 선택된 능력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번식력 강화 차원에서 선택된 다른 특성이나 능력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진화론에서는 이런 우연한 부산물을 스팬드럴이라고 부른다.



어디가 도움이 절실한 곳인가

어떤 자선단체가 좋을까

기부 목적을 정했다고 끝이 아니다. 같은 목적으로 일하는 단체가 수십 수백 군데, 심지어 수천 군데나 된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실천 가능한 운동으로 끌어올린 수훈갑은 메타자선단체들이다. 메타자선단체는 자선단체들을 평가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 책에도 이미 두 개의 메타자선단체가 등장했다. 기브웰과 동물구호평가회, 메타자선단체들의 평가결과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성공에 결정적이다. 하지만 이 분야 연구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들의 결과물도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자선단체들에 모이는 기부금의 태반은 감정적 반응의 결과다. 기부자의 3분의 2는 기부 전에 전혀 조사를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피골이 상접한 어린이 사진이나 해맑은 눈의 동물 사진을 근거로 기부하고,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의 요청으로 기부한다. 이들은 해당 자선단체의 실효성을 판단할 어떤 증빙자료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기부한다. 요구는커녕 앞서 말했다시피 소액 기부자들은 해당 자선단체의 활동효율성을 증명하는 자료에 노출되면 오히려 적게 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기부자 중 사전조사자의 비중은 기부영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짐작하다시피 국제원조기관에 기부하는 사람들 중에 사전조사자들이 62퍼센트로 가장 많다. 예술에 기부하는 사람들 중 사전조사자는 25퍼센트,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 중 사전조사자는 22퍼센트에 그친다.


조사하지 않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할 말은 있다. 어떤 자선단체가 효율적인 단체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기브웰이 설립되기 전 기부자가 자선단체를 검토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채러티내비게이터라는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이었다. 채러티내비게이터는 미국 최대 규모와 최대 영향력을 가진 자선단체 평가기관을 표방한다. 2012년 채러티내비게이터 웹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620만을 기록했다.


이 웹사이트는 자그마치 7,000개에 달하는 자선단체들에 점수를 매긴다. 이름 있는 자선단체들을 두루 망라할 뿐 아니라 매월 100개씩 신규자선단체도 평가한다. 엄청난 소화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좋아할 일이 아니다. 채러티내비게이터가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평가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평가가 지극히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11년까지 채러티내비게이터의 평가영역은 오로지 재무건전성뿐이었고 필요한 정보는 미국의 자선단체들이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운영보고 양식에서 얻는다. 2011년부터 책임성과 투명성이 두 번째 평가영역으로 추가됐지만 여기에도 국세청 양식이 자료로 쓰인다. 책임성과 투명성 평가에 쓰이는 다른 자료는 자선단체가 자기 웹사이트에 공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세청 양식도, 웹사이트 자료도 해당 자선단체의 구호활동 성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채러티내비게이터는 성취도를 세 번째 평가영역으로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000개에 달하는 자선단체의 활동 성취도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량이 따른다. 채러티내비게이터는 아직 시행 일정도 세우지 못했다. 채러티내비게이터 웹사이트가 자선단체의 재무성과 지표로 삼는 것은 기부금 수입에서 구호활동비 비중, 운영비 비중, 모금비용 비중이다. 홀든 카노프스키는 이 지표들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다분해서 이 지표들로 기부처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더욱 슬픈 일은 이런 지표라도 참고하러 오는 사람들은 사전조사를 하는 신중한 소수에 속한다는 거다.


채러티내비게이터의 지표들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아동자선기금주식회사라는 플로리다 기반의 작은 자선단체는 기부금 수입의 84퍼센트를 모금비용으로 쓰고, 약 10퍼센트를 운영비로 쓰고, 고작 6.1퍼센트만 구호활동에 쓴다. 당연히 이 단체는 채러티내비게이터의 평가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점했다. 채러티내비게이터의 지표들이 제 기능을 한 예다. 하지만 아동자선기금주식회사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운영비와 모금비용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선단체의 진짜 효율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운영비와 모금비용을 아주 적게 쓰는 단체에 기부해도 아동자선기금주식회사에 기부하는 것만큼이나 돈 낭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아래의 두 자선단체는 개발도상국의 빈민을 돕는다.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 자선단체A : 기부금 수입의 8퍼센트를 운영비와 모금비용으로 쓰고, 92퍼센트를 구호활동에 쓴다.

- 자선단체B : 기부금 수입의 28퍼센트를 운영비와 모금비용으로 쓰고, 72퍼센트를 구호활동에 쓴다.


A에 기부해야 할까, B에 기부해야 할까? 판단을 하려면 A의 구호 프로그램이 B의 프로그램과 동급으로 효율적인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사실상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A의 운영비 비중이 저렇게 적은 이유는 연구와 평가에 전혀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와 평가의 부재로 A의 운영자들은 프로그램이 해당 지역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 결과 프로그램의 10퍼센트만 소기의 목적을 다한다. 이와 반대로 B는 유능한 직원들로부터 상세평가를 수집하고, 제 기능을 못하는 프로그램에는 지원을 중단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90퍼센트가 빈민 구제에 실질적 성과를 낸다. 이런 내막을 알면 판단이 가능해진다.


A에 기부하면 당신의 기부금 중 8퍼센트는 운영비와 모금비용으로 가고, 83퍼센트는 아무 성과 없이 낭비된다. 정작 빈민을 돕는 데 쓰이는 것은 9퍼센트뿐이다. 반면 B에 기부하면 기부금의 28퍼센트가 운영비와 모금비용으로 가고, 7.2퍼센트는 낭비되고, 64.8퍼센트가 빈민을 돕는 데 쓰인다. 따라서 B가 훨씬 바람직한 선택이다.


같은 메타자선단체라도 기브웰은 채러티내비게이터와 대척점을 이룬다. 기브웰은 온갖 자선단체를 평가대상으로 삼는 대신 처음부터 빈민을 돕는 자선단체들에만 집중했다. 설립 초기에는 미국 빈민을 돕는 구호단체들도 평가했지만 나중에는 개발도상국의 빈민구호 활동이 부유한 나라의 빈민구호 활동보다 비용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따라 지구적 빈민 구제를 목표하지 않는 자선단체들은 아예 평가대상에서 제외했다.


기브웰은 현재까지 개발도상국 빈민 구제를 목표하는 자선단체 수백 개를 평가해왔다. 이 중 유망한 단체들에 대해 심화평가를 실시하고, 다시 이 중 극소수만 추천 자선단체 리스트에 올린다. 기브웰은 다른 자선단체들은 비용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론은 피한다. 비용 효과적이라고 말할 충분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 증거가 없는 경우 기브웰은 평가보고서만 내고 추천하지는 않는다.


최근 기브웰은 자선단체별 평가 방식에서 구호활동별 평가 방식으로 전환했다. 자선단체들의 자체 평가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기브웰이 생각하는 양질의 자료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구호활동 유형에 초점을 맞춘 학계의 조사결과다. 이를 반영한 기브웰의 현행 조사 방식은 이렇다. 먼저, 긍정적 효과가 입증된 구호활동들을 가려내고, 그다음에 그런 구호활동들에 집중하는 자선단체들만 평가한다. 거기 덧붙여, 활동내용에 대한 외부 연구기관의 조사를 환영하고,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알리고, 조사 결과에서 교훈을 얻는 데 능동적인 자선단체에 후한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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