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유동하는 세계, 확실했던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시대
교육은 과연 소비사회의 덫에 걸린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유동하는 근대’라는 프레임으로 사회현상을 꿰뚫어, 부유하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해온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번에는 소비사회와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우만에 의하면 소비사회에서 개인은 다른 어떤 정체성보다 ‘소비자’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쉽게 말해 인간은 ‘돈 쓰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소비사회는 과잉과 낭비, 폐기를 동력으로 한다. 기업은 소비자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도록 쉽게 만들고, 소비자는 또 그렇게 쉽게 사고 버린다. 기업은 계속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계속 상품을 사면서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가 돈을 쓰면 쓸수록 불행한 소비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소비주의에 맞서 최근 최소한의 물건으로 단순하게 살아가자는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로 건너갔지만,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만은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갈등을 중점 연구했다. 이후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짐멜의 영향을 받아 관심 영역을 확장했고, 이어 자크 데리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조르조 아감벤 등의 이론을 폭넓게 수용하며 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화,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방대한 연구 성과에 비해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 64세 때인 1989년에 발표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라는 책을 펴낸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탈근대의 조건을 모호성, 불확실성, 상대성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다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시즘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며 회의주의가 아닌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바우만의 학문 이력은 2002년 국내에 『자유』가 처음 번역되면서 알려졌다. 바우만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모두스 비벤디』,『새로운 빈곤』,『액체 근대』,『유동하는 공포』,『쓰레기가 되는 삶들』,『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이 번역되어 있다.
리카르도 마체오
에릭슨 출판사(Edizioni Erickson)의 편집자다. 출판사의 모체가 되는 에릭슨 연구소는 1984년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다리오 이아네스(Dario Ianes)와 파비오 폴게라이테르(Fabio Folgheraite)가 공동으로 설립한 에릭슨 연구소는 교육 및 사회복지 분야에 특화된 연구 및 교육 컨설팅을 제공하며, 에릭슨 출판사를 통해 교수법, 난독증, 언어장애, ADHD, 부모교육, 심리학 등의 다양한 교육서를 출판하고 있다.
■ 역자 나현영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낭만주의의 뿌리』(공역), 스티브 풀러의『쿤․포퍼 논쟁』, 데이비드 뱃스톤의『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팀 보울러의『블러드 차일드』, 로버트 베번의『집단 기억의 파괴』, 존 케이지의『사일런스』 등을 옮겼다.
■ 차례
1. 혼성 애호와 혼성 혐오 사이
2. 주제 사라마구와 기쁨을 찾는 법
3.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교육 3단계
4. 닫힌 마음을 열고 ‘영구 혁명’으로
5. 거대한 떡갈나무와 아주 작은 도토리
6. 진정한 ‘문화 혁명’을 찾아
7. 퇴폐는 박탈의 가장 교묘한 전략
8.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이 파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분
9. 소비자 산업의 첨병으로서의 젊은이
10.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창조성의 풍부한 원천이 된다
11. 실업자도 복권은 살 수 있지 않나요?
12. 정치적 문제로서 장애, 비정상, 소수의 문제
13. 분노하여 벌 떼처럼 일어나는 정치적 집단들
14. 결함 있는 소비자와 끝없는 지뢰밭
15. 리처드 세넷과 차이에 관하여
16. 라캉의 ‘자본주의’에서 바우만의 ‘소비지상주의’로
17. 지젝과 모랭, 유일신교에 관하여
18.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소비지상주의
19. 땔감, 불씨, 불
20. 성숙기에 이른 글로컬라이제이션
주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성숙기에 이른 글로컬라이제이션
리카르도 마체오
오늘은 2011년 9월 19일이며, 선생님과 사흘 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만나 이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 직후 선생님께서는 사수올로에서 자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포르데노네에서는 우리는 모두 이주자가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강연을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최근 몇 개월처럼 선생님을 자주 뵌 적이 없었어요. 두 차례에 걸쳐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더 얘기해보고 싶은 개념들이 정말 많았지만, 선생님께 드리는 마지막 질문인 이 지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그래서 두세 가지에만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족 관계에 스며든 죄책감에 대해 말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경력을 쌓느라 배우자와 자녀를 등한시하는 사이 마케팅 전문가들은 보상의 형태로 항상 무언가를 구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죄책감을 자본화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러가는 날 가져갈 선물을 사느라 많은 돈을 쓰죠. 그 결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더 줄어듭니다. 더 비싼 선물을 사려면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이런 악순환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건을 사주는 대신 곁에서 관심과 보살핌을 쏟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오늘날 프로이트가 살아 있었다면 『문명 속의 불만』을 다시 써야 했을 겁니다. 우리 문화는 이제 쾌락을 억압하거나 지연하는 대신 소비자 사회에서 제공하는 모든 쾌락과 재화를 마음껏 누리라고 촉구하니까요. 뛰어난 이탈리아 지식인 마르코 벨폴리티는 자신의 책 『수치를 모르는』에서 도덕과 관계없는 수치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알랭 에렌베르를 언급합니다. 선생님께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에서 언급하신 내용이기도 하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 정체성은 점점 불확실해지며 자아상은 지속적으로 굴욕을 겪는다. 그리하여 알랭 에렌베르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야 하는 부담"이라 부른 문제가 야기된다. 우리는 복종과 규율에 기초한 사회에서, 비인습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모든 차원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부추기는 사회로 이행했다. 가부장 사회의 상징인 오이디푸스와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죄책감은 예컨대 거울에 홀린 나르키소스와 허영으로 대체된다. 나르키소스는 자유를 가져오지만, 그 자유와 더불어 공허감과 무력감 역시 커진다.
둘째로, 대단히 흥미로운 선생님의 책 『포위된 사회』에서 분석하신 칸트의 텍스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이 이념』(1784)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구이므로 "이 사실을 무효화하지 않는 한 일정 거리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은 무한한 확산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그저 달리 갈 곳이 없기에 모두 이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엔 서로를 참고 견디며 공존해야 합니다.
저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것은 지역적인 것에 가까우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리드보컬 믹 재거는 최근 여러 뮤지션들과 슈퍼그룹을 결성했습니다. 유리스믹스의 데이브 스튜어트, 젊은 소울 가수 조스 스톤, 레게의 황제 데미안 말리, 아카데미 상 수상자인 인도의 영화가 A.R.라만이 그들인데요. 이들의 첫 뮤직비디오에는, 보통의 뮤직비디오가 그렇듯 세트와 의상과 머리모양이 정신없이 바뀌거나, 잘 빠진 몸매에 노출 심한 옷을 입은 남녀 댄서들이 줄줄이 등장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뮤직비디오에는 그저 다양한 목소리와 인종과 스타일을 잃지 않은 뮤지션들이 출연할 뿐입니다. 이 뮤직비디오가 단순히 성공한 마케팅 전략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걸 보면서 우리의 첫 대화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창문 밖으로 하교하는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곤 하시는데, 40년 전의 아이들이 같은 피부색끼리 어울려 다녔다면 요즘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들다고 하셨던 말씀이요.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 창안, 또는 재창안이 산불처럼 퍼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세계화로 인해 이 유서 깊은 은유가 틀렸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산불이 퍼지면서 나아간다면, 오늘날의 사회 창안은 도약하며 전진합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 최근에 일어났지만 벌써 반쯤 잊힌 아랍의 봄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측면을 환기해보려 합니다. 아랍의 봄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하는 사실은 지리적 거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거리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며 거리의 길고 짧음은 더 이상 확률분포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인접한 정도나 물리적 근접성도 마찬가지죠. 사실은 원인과 결과의 근접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높은 근접성을 암시했던 도미노 효과라는 은유가 상당히, 아마도 거의 정확성을 잃은 이유입니다.
자극은 원인과 따로 떨어져 이동합니다. 원인은 지역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주는 자극은 세계 곳곳에 미치죠. 원인은 세계적일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지역적으로 형성되며 지역을 겨냥해요. 월드와이드웹 속에 얽힌 모방의 패턴은 역외 공간의 곳곳을 거의 닥치는 대로 날아다닙니다. 계획된 비행 일정은 없으며 장벽이나 검문소를 거치는 일도 거의 없어요. 그러나 착륙하는 곳은 언제나 지역의 활주로 위죠. 어떤 활주로에 착륙하게 될지, 셀 수 없이 많은 관제탑 중 어디에 발견되고 붙잡혀 지역 비행장으로 안내될지, 그리고 어디서 얼마나 많은 불시착을 하게 될지 결코 미리 확실할 수 없습니다.
예상이 시간 낭비가 되고, 그 예측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 활주로와 관제탑 역시 똑같이 유영하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에요. 선별된 단 하나의 트로피를 거머쥐기 위해 임시로 구축된 활주로와 관제탑은 하나의 사냥감을 쫓다가 임무가 완수되는 순간 폐쇄되곤 하죠. 아랍의 봄에서 홀로 군중을 소집해 타흐리르 광장을 몇일 동안 아고라로 바꾼 이 알 샤히드(순교자)는 누굴까요? 이전에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없습니다. 인터넷 닉네임을 알 수 없는 광장에서 이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핵심은 이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먼 곳과 가까운 곳, 여기와 저기의 구별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어요. 현실 공간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며, 온라인 또는 방송의 지연될 수도 있는 상상력이 아닌 현실적 잠재력에 굴복한 결과죠. 이것이 바로 지역성에 중요도를 분리하는 동시에 의미를 추가하는 과정인 글루컬라이제이션이 처음부터 목표로 삼은 조건입니다. 이런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아니 그보다 우리를 그런 조건으로 데려다 놓았음을 인정할 때가 온 거에요.
장소에서 중요도를 분리한다는 말은 그 자오의 상항과 잠재력, 충만함이나 공허함, 그곳에서 펼쳐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끌어들이는 관중들을 더 이상 그곳만의 문제로 간주할 수 없음을 의미해요. 일을 꾀하는 것은 장소지만 그 일을 결정하는 것은 흐름의 공간속을 돌아다니는, 알 수 없으며 통제되지 않고 다루기 힘든, 예측되지 않은 힘들입니다. 시작점은 여전히 지역에 있더라도 이제 그 결과는 전 지구에 미치는 거죠.
이것은 예측도 계획도, 그 힘이 발생한 장소나 관련된 다른 어떤 장소의 방향 설정도 끝내 미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 힘들은 일단 발사되고 나면 악명 높은 인텔리전트 미사일처럼 오로지 단독으로 움직여요. 이 힘들은 운명의 인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 힘들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운명은 기존의 모방 패턴을 받아들이기 위해 급하게 포장된 지역 활주로들이 경쟁을 계속하는 도중 끝없이 만들어졌다 사라지고, 만들어졌다 사라지곤 하지만 말입니다.
"정부가 어떤 발언을 할 때마다 현장의 사건들이 즉시 그 말을 뒤집는다.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에 대한 모든 가정은 단 며칠 만에 뒤집혀버렸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국제위기감시기구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책임자 로버트 맬리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BBC 북아메리카 편집국장 마크 마델은 이집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죠.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20년간 이집트 국가정보부장으로 있었으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오른팔로 이집트의 새 부통령이 된 오마르 술래이만에게 전화를 걸어 더 민주적인 사회로 이행할 기회를 당장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행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한 폭력 사태에 큰 충격을 받은 클린턴은 배후를 조사해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몇 시간 후에는 메르켈, 사르코지, 캐머런, 사파테로, 베를루스코니를 비롯해 유럽 핵심 국가의 정상들이 평소 같지 않은 만장일치로 힐러리 클린턴의 호소와 요구를 되풀이했어요. 하지만 한쪽에서 서구 정상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알자지라」 방송 카메라는 닥쳐라, 오바마!라고 적힌 시위대의 플래카드를 찍었죠. 장소의 의미, 장소의 중요도에 반비례하는 바로 이런 플래카드와 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수용할 때 생겨납니다. 전 지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여하기에는 너무 짧은 팔일지라도 지역을 포용하고 꼭 껴안는 한편, 사기꾼과 불청객을 밀어내기에는 충분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발표로부터 하루 뒤, 「뉴욕 타임스」는 미국 외교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알렸어요. "오바마 정부는 수요일, 격동의 지역에서 한때 흔들림 없는 미국의 우방으로 간주되었던 무바라크 대통령과 되도록 거리를 두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라고요. 글쎄요. 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흐리르 광장이라는 지역이 새롭게 발견된 자신의 의미를 활용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세계열강으로서의 미국이 이토록 곡예와도 같은 급선회를 할 일은 없었을 겁니다.
예멘의 국회의원이자 반정부 인사인 샤우키 알 카디가 암시하는 대로 국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에요. 이런 정부들은 글로벌 세력에게 권력을 넘긴 대가로 국민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났죠. 그는 말합니다.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이제는 정부와 안보세력들이 국민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세대, 곧 인터넷 세대는 두려움을 모른다. 이들은 온전한 권리와 존엄성 있는 삶을 원한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의 비논리적 논리가 작동함이 극적으로 드러나며, 세계 지도자를 자청하는 자들의 머릿속에는 글로벌 세력들이 쥐어짜 만든 형태의 정부가 불안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는커녕 불안정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었습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서로 견딜 만한 공존의 생활양식을 절충해야 하는 일종의 혼인 동거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결혼한 부부 대다수에게 소음과 분노는 무척 익숙하지만, 이혼은커녕 별거도 별로 현실적이거나 바람직한 대안은 아닌 까닭입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은 매혹과 혐오가 뒤섞인 애증 관계에 붙는 이름입니다. 더 근접하기를 갈망하는 사랑이 거리를 두기 바라는 증오와 뒤섞이죠. 마치 펜치처럼 두 날이 불가피하게 맞물려 있지 않았다면 이 관계는 자체의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을 겁니다.
전 지구적 보급로가 차단된다면 오늘날 장소의 자율적 정체성을 만드는 원료와 그 정체성을 지키는 장치가 모자라게 되겠죠. 한편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지역 비행장이 없다면 글로벌 세력들이 착륙해 인원과 물자와 연료를 보충할 장소는 사라지고 말 겁니다. 이 둘은 동거의 운명을 타고났어요. 좋든 싫든 간에.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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