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체인지

   
수전 그린필드(역:이한음)
ǻ
북라이프
   
22000
2015�� 12��



■ 책 소개

 

인간의 뇌와 생각을 바꾸는 디지털!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 수전 그린필드 박사의 신간.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복잡한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들을 뇌의 변화로부터 시작해 다방면으로 살펴본 최초의 작품이다. 저자는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사이버 라이프 스타일이 인간의 뇌를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인간의 창조성과 사고력, 나아가 공감 능력 같은 인간의 정신 즉, 마음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탐구한다.

 

우리의 생활양식을 뒤바꿔놓은 디지털 기술의 대중화와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인간 뇌의 작동 메커니즘과 그 구조를 탐구한다. 이후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와 게임, 검색엔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 화면 위주의 생활양식이 우리의 뇌, 사고, 마음 상태에 미치는 변화를 다양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다각도로 보여준다.

 

우리의 뇌가 어떤 환경에서도 너무나 쉽게 적응한다는 점은 축복이면서 저주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신기술이 무조건 이롭다거나 혹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식의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 화면 세계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지를 깊이 성찰하며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약간의 우려를 표하고 있다.
 
■ 저자 수전 그린필드
파킨슨병 및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일인자이자 최고 권위자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고, 1977년 약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교 생리학, 해부학, 유전학과,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 뉴욕의 NYU 랭곤 의학 센터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왕립 연구소 소장과 옥스퍼드 교수직을 겸임했다. 현재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 선임 연구원이자, 신경퇴행 질환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한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생명공학 기업 ‘뉴로-바이오’의 CEO/CSO로 재직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과 해외의 여러 대학교에서 31개의 명예 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 선임 연구원, 옥스퍼드 세인트힐다 칼리지 명예교수를 지냈다. 2000년에는 왕립의사협회 명예 교수로 선출되었다. 국제적으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서 워싱턴 공로 아카데미의 골든 플레이트 메달(2003),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2003), 호주 의학 연구 협회 메달(2010)을 받았다. 2001년 밀레니엄 영국 훈장과 비정치인에게 주는 작위도 받았다.

 

2004년과 2005년에 애들레이드 체류 사상가(Thinker in Residence)로 뽑혀서 남호주 총리에게 과학을 부의 창출에 응용하는 방안에 관해 의견을 제시했다. 또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헤리엇와트 대학교 명예 총장으로 재직했고, 2007년에 에든버러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다. 최근에는 호주 멜버른 대학교 의대 초빙 교수로 재직했다.

 

10년째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회원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으며 2002년 영국 무역산업부 장관의 요청으로 『자격 요건: 과학, 공학, 기술 분야의 여성에 관한 보고서』(Set Fair: A Report on Women in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를 썼다. 수많은 논문과 글을 저술했고, 특히 영국 BBC 방송에서 방영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브레인 스토리’(Brain Story)는 책으로 출간되어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데일리 메일」이 선정한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옵저버」가 뽑은 ‘올해의 여성’, 더브렛(Debrett, 영국 귀족 연감)이 선정한 ‘영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 500’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저서로는 『브레인 스토리』『휴먼 브레인』『미래』가 있다.

 

■ 역자 이한음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실험실을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 『해부의 목적』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1996년)에 당선됐다.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인문적 사유가 조화를 이룬 대표 과학 전문 번역자이자 과학 전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포티, 제임스 왓슨 등 저명한 과학자의 대표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저서로는 과학소설집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DNA, 더블댄스에 빠지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복제양 돌리』『인간 본성에 대하여』『쫓기는 동물들의 생애』『핀치의 부리』『DNA : 생명의 비밀』『펄 벅 평전』『악마의 사도』『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조상 이야기』『굿바이 프로이트』『와일드 하모니』『생명 : 40억 년의 비밀』『셜록 홈스의 과학』『생태학을 잡아라』『남자』 『타고난 지능 만들어진 지능』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제1장 마음 변화_ 세계적인 현상
제2장  유례없는 시대_ 화면 앞의 생활이 현실을 집어삼키다
제3장  한 가지 쟁점_ ‘분별 있는 행동’은 가능할까?
제4장  다면적인 현상_ 소셜 네트워크, 게임, 검색엔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제5장  뇌가 작동하는 방식_ 경험은 어떻게 뇌에 흔적을 남기는가
제6장  뇌는 어떻게 변할까_ 외부 세계와 환경이 만들어내는 변화
제7장  뇌는 어떻게 마음이 되는가_ 우리를 인간으로 구별 짓는 것
제8장  마음을 잃어버리다_ 도박, 폭식, 정신분열, 유년기의 공통점
제9장  소셜 네트워크만의 특별함_ 화면 속 친구에게 끌리는 이유
제10장  소셜 네트워크와 정체성_ 페이스북 안에서 산다는 것
제11장  소셜 네트워크와 관계_ 페이스북은 현실 우정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까?
제12장  소셜 네트워크와 사회_ 도덕적 이탈과 사이버 괴롭힘
제13장  비디오 게임에는 무언가가 있다_ 짜릿한 게임 경험이 뇌에 일으키는 변화
제14장  비디오 게임과 주의력의 상관관계_ 게임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
제15장  게임, 공격성, 무모함_ 게임, 폭력을 학습하는 이상적인 공간이 되다
제16장  구글은 우리 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_ 오늘날 ‘학습’과 ‘기억’이 갖는 의미
제17장  화면이 곧 메시지다_ 행동유도성과 멀티태스킹, 하이퍼텍스트
제18장  다르게 생각하기_ 컴퓨터처럼 생각할 때의 위험
제19장  화면 너머의 마음 변화_ 구글 글라스가 가져올 세상
제20장  연결하기_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마인드 체인지


유례없는 시대

화면 앞의 생활이 현실을 집어삼키다

인간은 적응한다. 우리가 그 어떤 종보다도 잘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늘 변화하는 세계를 받아들여야 했고, 그 세계의 새로운 발명품과 기술은 우리의 생활양식, 깨달음, 취향, 우선순위를 변화시켜 왔다. 그러면 이 디지털 시대는 뭐가 그렇게 다를까?


한 예로 자동차는 삶을 바꿔놓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 식으로 비유하면, 디지털 기기 역시 처음에는 흥분과 소란을 일으켰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우리 삶에 통합된 혁신들의 기나긴 계보에 최근에 추가된 항목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혁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인쇄술을 예로 들어보자. 1439년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유럽에 도입한 인쇄술은 분명히 문명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주춧돌이 되었다. 그 발명은 지식을 민주화했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반동 세력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술 파괴주의자처럼 보이는 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책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사회적 변화를 조장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그 변화는 개인의 발전과 보편 교육으로 이어졌다. 소설도 인간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독자가 다른 시대와 지역에 사는 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자신의 관점을 형성하고 자아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그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러다가 전기가 등장했다. 19세기 말까지 밤은 통제 불가능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저 촛불을 켬으로써 현실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어떤 미지의 위험을 깜박거리는 약한 불빛 너머로 내모는 해결책을 마련했을 뿐이다. 컴컴하고 음산했던 세계가 이윽고 전깃불로 가득해졌을 때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지 상상해보라. 어떤 형태의 새로운 사고와 마음이 출현했을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우리 종이 적응한 현실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했고, 그 새로운 현실은 우리를 바꾸었다.


더 최근의 발전 사례로 넘어가자. 바로 텔레비전이다.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이래로, 텔레비전은 아이의 뇌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아이들이 독서도 야외 활동도 팽개치고 오로지 멍하니 텔레비전만 쳐다볼 것이라는 우려가 줄곧 제기되었다. 하지만 당시 텔레비전 방송은 저녁에 한정된 시간에만 나왔고, 야외 놀이, 독서, 대가족 식사가 주된 문화였다. 때문에 TV는 사실 기존 생활양식을 파괴하기보다는 보완했다. 어떤 의미에서 TV는 가정용 컴퓨터의 전신이라기보다 가정의 화합과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수단인 빅토리아 시대의 피아노에 더 가까웠다.


당시는 한 가정에 TV가 한 대뿐이었고, 그것도 꽤 잘사는 집에만 있었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단 한 집만 그런 경이로운 물건을 자랑할 수 있었고, 그 경이로움을 함께 즐기기 위해 손님들이 끝없이 밀려들곤 했다. 심지어 1960년대까지도 TV 시청은 공동체 활동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는 식구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화면 앞에서 홀로 감금 상태에 들어가는 21세기 시나리오와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이전의 기술들과 현재의 디지털 기술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정량적인 측면이다. 즉, 화면이 책, 영화, 라디오, 심지어 TV까지도 결코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의 주의를 적극적이고 배타적으로 많은 시간 독점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을 독점하는 정도가 핵심적인 차이를 낳는다고 본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발명해왔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관해 늘 걱정을 하며, 더 젊은 세대에 늘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 걱정이 대부분 중년의 기술 불안에서 비롯된 억측이 확실한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이 지금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화면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또 점점 중독성을 일으키고 있다. 점점 기본 설비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평균 가정과 그 이전 가정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나 있는 화면 때문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한 가지 특징, 10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특정 때문일지 모른다. 가까이에서 함께 사는 식구들보다 가정 바깥의 사람들과 더 친밀하게 언제나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어른이든 아이든 각자 오락, 사회 활동, 정보 검색에 쓸 디지털 기기를 여러 대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인력과 척력이 함께 작용한다. 즉 독립된 휴대용 기기 및 다기능적인 침실이 제공하는 사이버 공간을 향해 잡아당기는 힘과 예전에 가정의 중심지였던 곳에서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침실은 나쁜 행동을 한 아이를 추방하는 처벌의 장소였다. 정반대로 오늘날 많은 청소년은 그곳을 안식처로 여긴다.


예전에 핵가족이 함께 둘러않았던 따뜻한 부엌이나 거실은 상호작용과 정보가 오가는 주된 장소였고, 하루 생활의 기본 틀과 시간표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침실에 있는, 아니 어디에 있든 화면 세계가 삶의 속도를 설정하고, 기준과 가치를 확립하고, 대화를 제안하고, 오락을 제공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 함께 식사를 하는 핵가족은 이혼과 재혼이라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추세와 더 다양하고 힘겨워지는 직장 근무 때문에 중심적인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영국 심리학자 타니아 바이런은 텔레비전에서 아동 치료사로 활약해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원래는 인터넷 규제라는 문제를 연구했다. 하지만 연구를 시작한 지 겨우 2년 뒤 그녀는 그 문제가 그저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한다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화면 경험을 넘어서서 가능한 최상의 환경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가 야외에서 노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어른이 되어 직면하게 될 위험과 도전 과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기회도 줄어든다. 야외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떠오르는 자유롭고 독립된 생각을 통해 아이가 얻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예전에는 놀이는 대개 들판과 숲, 혹은 도시 뒷골목에서 하는 야외 활동이었다. 아동 문학가인 이니드 블라이턴이 20세기 중반에 쓴 많은 책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 책들의 어린 남녀 주인공은 밀수업자와 수상쩍은 악당들을 잡느라 너무 바빠서, 차를 마시고 잠을 자야 할 시간에만 실내로 들어갈 뿐이다.


당시에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자신이 성장한 환경은 실제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배경과 소품을 제공했다. 이야기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그래야 했다. 카우보이가 됐든 인디언이 됐든 간에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출현했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강조하려는 요지는 예전에는 자신이 원동력이었으며 자신의 내면세계, 자신의 사적인 현실을 스스로 통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화면이 원동력일 수 있다. 물론 장치를 켜고 이것저것 선택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지만, 일단 어떤 활동을 선택하고 나면 다른 누군가가 기여한 현란한 사이버 경험이 당신을 집어삼킨다. 이제 당신은 수동적인 수용자가 되며, 설령 심즈같은 게임에서 당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변형할 수 있더라도, 그것은 게임 설계자의 사고에 담긴 간접적인 매개 변수들 내에서만 이루어질 뿐이다.


예전 같으면 상쾌한 공기 속을 걷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면서 보냈을 시간 중에 현재 사이버 활동, 즉 미각도 후각도 촉각도 자극받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오로지 앉아서 보내게 하면서도 전통 생활방식을 압도하는, 매혹적이고 흥분되는 경험을 계속 제공하는 전혀 새로운 환경을 위해 내버린 시간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어디에나 스며든 강력한 새로운 디지털 생활양식을 약간 존재의 정점이라거나 역사상 가장 유독한 문화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극도로 단순한 견해일 것이다. 우리는 기회와 위협이 유례없이 복잡하게 뒤섞인 칵테일을 마시고 있지만, 정확히 무엇이 기회이고 무엇이 위협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의견이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와 사회

도덕적 이탈과 사이버 괴롭힘

마음 변화 - 이를테면 과학소설처럼 들릴 뇌 변화 같은 용어와 달리 - 라는 용어는 이 유례없는 디지털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가면서 개인인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의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는 용어다. 더 큰 그림을 보려면 이 변화의 토대가 되는 신경과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사회과학, 더 나아가 배후에 있는 철학까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17세기부터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사회 계약이라는 개념을 널리 퍼뜨렸다. 개인 자신의 궁극적인 보호와 안녕을 위해 개인의 자유나 권리 중 일부를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개념이다. 이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가 사회가 받아들인 도덕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2006년 미주리 주에 살던 13세 소녀 메건 마이어는 조시 에번스라는 소년과 온라인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 조시는 상냥해 보였으나, 점점 비판하고 모욕을 주는 양상을 띠어갔다. 그는 메건에게 너는 나쁜 아이니까 나가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조시는 메건과 헤어진 한 친구의 엄마였다. 이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전혀 다른 인격을 채택하는 것이 대단히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훨씬 더 중요한 점은 그런 괴롭힘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메건은 목을 매어 자살했다. 우려되는 점은 이런 유형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0대는 검열을 거치긴 했지만 그 때문에 덜 풍성하고 덜 다면적인 양상을 띠는 의사소통에 영향을 받기 쉽고, 위험을 무릅쓰는 성향을 지니고, 24시간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고, 다른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제시하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걸러지지 않은 비현실적인 모습에 빠지기 쉽다. 2012년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에서 조사한 결과, 사이버 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수가 놀랍게도 이전 7년 동안 56퍼센트, 직전 15개월 동안 44퍼센트가 증가했다고 나왔다.


사이버 괴롭힘은 누군가가 인터넷, 휴대전화, 그 밖의 기기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괴롭히고, 성가시게 하거나 당혹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연구 결과들은 젊은이 중 20~40퍼센트가 사이버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에 미국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이용하는 12~13세의 소녀 중 33퍼센트가 또래의 상호작용이 대부분 불친절하다고 답했고, 14~17세의 소녀 중에서도 2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괴롭힘은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페이스북에서 모임을 만들어 남을 험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터넷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괴롭힘은 놀이터와 직장에서도 오랜 세월 그늘을 드리워 왔으며, 우리의 정신에 깊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문화가 사이버 괴롭힘에 미치는 영향이 사소한 문제라고 주장할 것이다. 매체 자체는 무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클렘슨 대학교에서 괴롭힘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댄 올베우스는 많은 10대 초반의 남녀를 조사한 결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괴롭히는 이들과 사이버 괴롭힘을 가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이 겹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미국 청소년 중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나 가하는 쪽 가운데 12퍼센트는 사이버상에서만 그러하며, 전통적인 방식의 희생자나 깡패는 아니었다. 올베우스는 이것이 아주 적은 비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결과는 새로운 전자 매체가 사실상 새로운 희생자와 깡패를 거의 만들어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일반적인 괴롭힘 양상의 한 부분처럼 보이며, 전자 매체의 이용은 가능한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그 빈도도 아주 낮다.


하지만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10대 청소년이 12퍼센트라는 수치는 결코 아주 적은 비율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인터넷이 이 행동을 부추기는가, 나아가 사이버 괴롭힘이 전통적인 괴롭힘보다 당하는 이에게 더 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전통적인 괴롭힘보다 괴롭힘을 목격할 수 있는 관중의 규모가 훨씬 더 커졌으며, 괴롭힘의 증거가 인터넷에 영구히 남을 수도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인 괴롭힘에 비해 사이버 깡패와 희생자 모두 문제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더 높다고 한다. 우울증과 자살 행동의 사례를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 매체는 희생자와 깡패 양쪽에 훨씬 더 심각하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부도덕한 행동에서의 추가 이탈을 일으키는 독특한 세계를 창조한다고 주장해왔다. 도덕적 이탈의 과정은 개인이 본래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는 내면의 도덕적 통제력을 어떤 식으로 불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탈은 사이버 괴롭힘의 전제조건일 수 있다. 희생자의 고통 같은 시각적 단서가 없는 한편으로, 화면이 빚어내는 거리는 죄책감과 수치심 등의 감정을 억누른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기술 이용을 온라인 게임, 친구와의 대화, 사진 교환과 연관 지으므로, 사이버 괴롭힘은 다른 오락 수단과 밀접하게 연관될 때가 종종 있다. 이 발견은 사이버 괴롭힘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낀다는 연구 결과와 들어맞는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깡패와 희생자가 직접 접촉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취리히 대학교의 소냐 페런과 에벨린 구츠빌러헬펜핑거는 도덕적 이탈과 사이버 괴롭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것은 깡패가 도덕 가치를 억누를 필요조차 없을 만큼 화면이 희생자를 비인간화함으로써, 애초에 이탈하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책임의 확산과 희석도 사이버 괴롭힘 행동을 부추기는 원동력이다. 집단으로 괴롭히면 행동의 책임이 희석될 수 있듯이, 사이버 괴롭힘은 가상의 군중 내에서 일어나곤 한다. 인터넷은 집단에 익명을 부여하며, 따라서 혼자 할 때보다 더 못된 짓을 저지를 기회를 제공한다. 이스트런던 대학교의 매체 연구자이자 강사인 그레이엄 반필드는 트레버 맥도널드와 오늘 밤을이라는 영국 TV프로그램에서 해피 슬래핑(이유없이 폭력을 저지르면서 그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이 구타하는 자에게는 명성과 악명을 떨칠 지름길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진 전혀 새로운 유형의 심리 상태다.


쇼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어두운 측면에 관한 증거가 쌓이고 있긴 해도, 정보가 억압되거나 통제되는 나라에서 경이로운 속도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잠재력은 대단히 중요한 도구가 된다. 더군다나 소셜 네트워크는 세계 이용자들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투표를 하거나 인도주의적으로 비참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부추길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들이 공동 모금하여 다른 사람이 시작한 노력을 지원하는 활동인 크라우드펀딩 방식은 많은 돈을 모아서 재해 구호에서 스타트업 기업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세계의 현안들에 관한 대량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클릭티비즘은 거의 오로지 이용자를 기분 좋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유형의 수동적이고 쉽게 관심을 보이는 태도를 슬랙티비즘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앞서 화면이 대인 의사소통을 제거하고 개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 결과들을 고려할 때,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인본주의적 위기 상황을 접할 경우 오프라인에서 접하는 것보다 덜 와 닿을 수 있다. 클릭티비즘은 인본주의적 현안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려는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용자가 좋아요를 누르고 대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0대와 청년층을 면담하여 젊은이들이 도덕 문제를 비롯해 온라인 삶에 얼마나 몰두하는지를 살펴본 연구가 있다. 이 자료는 온라인에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개인주의적 사고가 중심에 놓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동체 중심의 사고방식은 가장 적었다. 게다가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다 자신이 온라인 활동의 도덕적 요인을 하찮게 취급한 사례가 적어도 한 번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개인들이 온라인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더 관용적임을 시사한다. 우리는 존던의 유명한 구절을 정말로 잊을 위험에 처해 있는 듯하다.


누가 죽든 나는 줄어든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그대를 위해 울리는 종일지니.


페이스북, 트위터 및 비슷한 사이트들은 계속 연결되고 원하고 찬미되고 사랑까지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사이트들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현재의 가치와 도덕에 도전하는 정체성 및 관계의 해석을 우리 사회에 들여오고 있다.



구글은 우리 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오늘날 학습과 기억이 갖는 의미

"나는 인터넷을 이용할 때 느꼈던 재미와 기술, 그리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단어를 원했다. 나는 물고기와 그물과 항해를 떠올리게 할 무언가를 원했다."


도서관 사서인 진 폴 리가 회고한 글이다. 그녀는 서핑(surfing)이라는 용어를 1992년에 자신이 처음 썼다고 주장한다. 어떤 글의 제목에 쓸 비유를 찾다가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그 용어는 TV 채널 서핑(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진짜 파도를 타는 활동에 비해 지극히 비스포츠적이고 지극히 안전하며, 꼼짝하지 않고 그저 TV를 향해 리모콘을 눌러대는 활동에 그 말이 붙이다니 얄궂긴 하다.


그런 한편으로, 채널 서핑과 인터넷 서핑은 그 전자기기들의 서퍼(이용자)도 더 깊은 차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별 관심없이 어디에서 타든 간에 그저 타고 달리는 기쁨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진짜 서핑과 비슷할 것이다. 아무튼 서핑이라는 단어 자체는 당신이 사이트, 동영상, 사실 사이를 쉽사리 스치듯 옮겨 다닐 때의 흥분, 건강, 젊음, 속도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사이버 문화에만 있는 활동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금 엄청나게 많은 인류는 검색엔진과 웹사이트를 통해 사실상 무한한 양의 정보에 쉽게 접근한다. 우리는 구글어스(Google Earth) 같은 사이트를 통해 세계의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시시각각 지켜볼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 개념은 더 이상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더 이상 우리 삶을 제약하지 못한다. 그런 한편으로 자국의 매체를 감시하려고 애쓰는 대다수의 정부는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잃어왔다.


하지만 서핑에는 어두운 측면도 있다. 직접 폭발물을 만드는 법, 자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믿을 수 없게도) 인간의 살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 같은 섬뜩한 것까지 배울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누구든 어디에서든 그런 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무료로 마음 내키는 대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정보 습득 방식은 공식 교육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디서든 수업을 듣고 강의를 할 수 있다. 서핑은 공식 학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수반하라 수 있다. "구글과 위키피디아가 없다면, 나는 그냥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 멍청이가 된다." 언론인이자 하버드 초빙 연구원인 존 보해넌은 이렇게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구글효과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인터넷이 기억의 일차적인 원천이었던 가족 구성원의 집단 노력을 대체하는, 개인적인 기억 은행이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보해넌은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자신의 남편과 아내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예전 같으면 배우자가 했을 방식으로 기억 과정을 보완하는 일을 구글이 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이다.


검색엔진을 써서 무언가를 쉽게 찾는 방식은 이미 기억 전략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 과정 자체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 중 상당수가 학생 시절에는 질문은 많고 답은 적었던 환경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백과사전을 한 장 두 장 넘기거나 시간을 들여서 멀리 도서관을 찾아갈 계획을 짜야 했던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어떤 것도 빨리 또는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늘 힘겹게 애써야 했고, 정말로 핵심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어떤 질문의 답을 찾으려 할 때에는 아주 명확한 목표를 갖고서 탐험, 즉 여행에 나서야 했다. 여행의 각 단계는 선형 경로를 따라서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각 경로는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특정한 목적지로 이어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바로 이 점에서 사고 과정은 원초적인 즉각적인 느낌과 다르다. 사고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나는 바로 이 목표 지향적인 시간을 통해 얻는 경험이 우리 각자에게 자기만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 안의 사건과 사람에게 독특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해왔다. T.S.엘리엇은 <리틀 기딩>에서 이 점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탐험은

출발한 곳에 이르러서 끝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마지막 행에 바로 핵심이 담겨 있다. 원래 출발한 곳이 이제는 사실상 다른 곳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견의 여행에 우리가 투자하는 노력 자체, 즉 점들을 잇고 신경망들을 교차 연결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우리가 배우는 것에 중요성과 의미를 제공하며,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시나리오로 진입할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 뇌가 쏟아져 들어오는 답으로 포화되어 있지만, 처음에 알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놓쳐버리기 쉬운 질문이 거의 없는 세계로 말이다.


현재 구글을 비롯한 검색엔진들 덕분에, 우리는 질문들을 명확히 한다는 차원을 떠나서 출렁거리고 굽이치는 답들의 사이로 헤쳐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인터넷에서는 사실들이 끝없이 흘러 다니지만, 깊고도 흥미로운 질문들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현재 더 심각한 문제는 사실들을 알기 위해 외부 원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보다는, 동떨어진 단편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마음 상태가 예전의 정상적인 사고 과정 즉, 내면화한 개념 틀 속에서 점들을 연결시켜 사실을 활용하는 사고 과정을 대체했다는 데 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유례없는 경험은 유튜브다. 유튜브 같은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학습 행위다. 동영상 시청은 화면에서 뇌로 오는 입력을 처리하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쥐꼬리만큼의 정보는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겠다는 명시적인 동기가 전혀 없이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한다.


유튜브의 매력은 말보다는 행동을, 즉 시각 정보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행동은 사실 말보다 더 시끄럽다. 보기 드물거나 짜릿하거나 웃긴 행동을 지켜볼 때만 잠시 시선이 고정되며, 당신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당연히 유튜브도 댓글을 달 수 있고, 친구들 사이에 링크를 공유랄 수 있다. 물론 그 점에서는 영화나 책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양쪽의 커다란 차이점은 유튜브 동영상의 길이가 대개 15분 정도이므로 영화나 책과 달리 더 짧고, 따라서 말하려는 이야기가 훨씬 더 단순하다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동영상이 수백만 편이나 올라와 있으므로, 당신의 주의를 끌기 위해 동영상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영상들은 아주 쉽고 빠르게 유통된다는 점 때문에 질보다 양이 우선할 것이며, 동영상의 짧은 길이는 더 짧아진 주의 지속 시간과 상호 연관되어 개인적인 관여나 깨달음의 수준도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굳이 이야기조차도 필요 없이 그저 잠시 웃거나 놀라거나 고개를 젓거나 울게 하는 무언가를 수동적으로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당혹스럽거나 안타깝거나 걱정스럽거나 일부에게는 지극히 이해할 만한 일로 비칠 수 있다. 이것이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가장 최소한의 활동일 것이다. 잠시나마 바깥 세계를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반응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수동적으로 짧게 주의를 사로잡을 뿐인 사이버 세계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얼마든지 다시 반복하여 볼 수 있다.


아마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는 중간 휴식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노력도 어떤 입력도 심지어 어떤 생각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것이 지닌 매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보를 지식으로 번역할 수 있도록 사실들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일에서 멀어져 온 셈이다.


내가 (가장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 곳이 어딘지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사무실이라고 답한 사람이 딱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주 이른 아침에 그랬다고 답했다......다시 말해, 건물이 사실상 사무실로 기능하지 않을 때였다. 흥미롭게도 디지털 기술을 언급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기술은 착상을 퍼뜨리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좋지만, 착상을 부화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듯하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은 여기서도 다시금 비관론자가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서핑하거나 헤엄치거나 익사하는 데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왓슨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서핑에 있는 마법 같은 무언가는 무한한 내용의 가치, 유례없는 속도, 접근 용이성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가 불가능한 경험을 할 기회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이 온라인 경험은 애초에 서핑을 시작한 더 장기적인 이유를 쉽사리 짓밟을 수 있다. 무언가를 찾겠다는 그 목적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광경을 곧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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