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강준만
ǻ
인물과사상사
   
15000
2015�� 05��



■ 책 소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야 산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이론을 들고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해부했다. 그동안 우리는 출세와 신분 상승의 모델로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야 된다’는 관점을 공유해왔다. 강준만 교수는 이를 통렬하게 뒤엎는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개천에 사는 모든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이론적 면죄부를 앞세워서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집단적 자기기만과 자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 이에 대해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한 ‘개천에서 난 용들’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서왔다며, ‘서울 공화국’ 탄생의 배경과 폐해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다. 2013년에는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는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을 촉발시키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생각의 문법』,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 『미국은 드라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한국인과 영어』, 『감정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교양영어사전』(전2권), 『멘토의 시대』, 『자동차와 민주주의』,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강남 좌파』, 『룸살롱 공화국』,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전화의 역사』,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머리말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야 산다


1장 ‘갑질공화국’의 파노라마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 아 나는 개가 아니었지 | 사회정의를 위해 무릎을 꿇게 했다 | 너 내가 누군지 알아? | 경비는 사람 취급도 안 하죠, 뭐


2장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
공부 안 할래? 너 엄마 죽는 꼴 보고 싶니?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원세대생이 연세대생 행세할까봐 우려된다 | 지잡대와 SKY는 하늘과 땅 차이지 | 난 돈 보내는 기계지 아빠가 아니다


3장 지위 불안과 인정투쟁
내 친구 알지? 걔 남편 이번에 승진했대! | 우리가 한우냐? 등급을 매기게 | 럭셔리 블로거들을 보면 내 삶이 처량해진다 | 예쁜 친구의 SNS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성형을 했다


4장 갑과 을, 두 개의 나라
왜 우리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면서도 가만히 있는가? | 실업자로 사느니 교도소 가겠다 | 정규직 때려잡고 비정규직 정규직화하자 | ‘지방충’들 때문에 우리도 취업이 어렵다


맺는말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갑질 공화국의 파노라마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

"오늘의 한구 사회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완전히 지배하는, 안전지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격투장이 되어버렸다. 한국인들은 마치 맹수에 쫓겨 정신없이 달아나는 토끼들처럼, 불안과 공포라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경쟁의 쳇바퀴를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말이다. 과장된 진단이라고 일축하기엔 유사한 진단이 정말 많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는 "기회가 많고 역동적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젠 솔직히 현대판 세습사회나 다름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라고도 혹평한다. 능력과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자유로운 신분 이동을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라는 기득권이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 그 역동성은 사라졌다. 고인 물은 썩는다. 정체되고 닫힌 사회는 병든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건 정치의 몫이 아닌가. 그러나 정치는 반감과 혐오와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서울대 교수 송호근은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비관적 진단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에게 그는 "아니다"고 단언한다.


"구한말에는 그래도 민지民智를 모을 생각은 했다. 지금은 민지를 쪼개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대한제국의 패망으로 식민지, 전쟁, 독재를 치렀듯이, 침몰하는 한국의 유산은 당대의 것이 아니다. 우리 자녀들과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짐이다. 망국을 부르는 전면전에 나서기 전에 한번 자녀들의 얼굴을 보라. 그 맑고 순진한 표정이 그것을 허락한다면 다 같이 싸워 끝장을 봐도 좋겠다."


아주 좋은 말씀이지만, 자녀들의 얼굴을 보라는 건 좋은 해법은 아닌 것 같다. 모두 다 내 자식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며, 정치를 전쟁으로 만드는 것도 다 나름의 자기 자식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말이다. 혹 우리는 무언가 잘못된 틀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위기는 낡은 것은 죽어가는 반면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981~1937의 말에 따르자면, 오늘의 한국 사회는 지정한 의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셈이다. 연세대 교수 김상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위기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아포리아aporia로 규정한다.


"배가 좌초되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를 고대 그리스인은 아포리아라고 했다. 이는 위기보다도 더 심각한 단계다. 위기는 도움을 청하거나 노를 저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아포리아는 그보다 더 심각한 길 없음의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에게 손가락질한다."


을들끼리의 갑질 전쟁

2010년 미국의 에드 디너Ed Diener 연구팀이 130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선 90퍼센트대에 이른 반면 한국에선 절반밖에 안 되었다. "절반이나 돼?"라고 놀라움을 표현해야 하는 걸까? 이는 우리 대부분이 갑질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주유소와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 중엔 을이 훨씬 더 많을 텐데도, 이들 중 종업원들을 야라고 부르면서 반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건 어찌 이해해야 하겠는가? "야, 장사 안 해?" "야, 여기 계산 안 해줄 거야?" "야, 요구르트가 다르잖아. 윌로 갖다 주란 말이야! 윌로! 에이 씨발!"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알바로 일했던 한승태는 『인간의 조건: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푸어 잔혹사』(2013)에서 갑질 공화국의 이모저모를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다.


"이들이 단지 나이 때문에 반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도 화장실 앞에서 (훨씬 어려 보이는) 다른 손님과 부딪치면 점잖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주유원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는 쌍놈의 새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에 익숙해지면 직업엔 분명히 귀천이 존재하며 신분의 차이라는 것 역시 실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편의점도 다를 게 없다. 한승태는 "매주 한 번씩 들르는 슈퍼바이저는 접객 관련 불만 신고가 줄지 않는다며 언제나 투덜거렸다. 그는 어떤 손님이 알바와 다툰 일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회장님이 그걸 읽으시곤 해당 편의점이랑 계약을 해지하라며 노발대발했다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들려줬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적힌 어깨띠와 녹슨 못을 박은 각목을 하나씩 지급한다면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싸움이 획기적으로 감소하리라 생각하지만, 서비스업계가 이런 혁신적인 제안을 받아들일 만한 안목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택시는 어떤가? 그곳이야말로 서민이 서민에게 갑질을 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늙어서 눈길 어두우면 집구석에나 있든가!" "이 영감탱이가 귓구멍이 썩었나? 한 번 이야기했으면 됐지!" "아 재수 없게. 신호 바뀌었어. 그냥 빨리 가! 돈 더 나오면 책임질 거야?"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별 지랄 같은 놈 다 보겠네." 이런 언어폭력에 대해 개인택시를 하는 박제호(56)는 "고령화와 조기 퇴직으로 기사들의 나이가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지만 그저 우리는 투명인간일 뿐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떤 이유든 손님이 시청이나 경찰에 일단 신고하면 최소 몇 시간씩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리기사가 당하는 갑질의 수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14년 12월 현재 운전기사 폭행 총 발생 건수는 354건으로, 하루 10명꼴로 각종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 전세창은 대리기사 수난시대를 이렇게 풀이한다. "대: 대리운전 대리기사 힘들어서 못 살겠네/리: 이것저것 찾아보다 마지막이 이 길인데/기: 기사들도 인격 있다 함부로들 굴지 마라/사: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수: 수틀리면 생떼 쓰고 막말에다 하대하네/난: 난잡스런 주정뱅이 깍듯하게 모셨더니/시: 시덥잖은 주인 행세 네놈들이 상전이냐/대: 대로에서 얻어맞고 이게 무슨 경우더냐."


갑질은 늘 서로 주고받는다. 그래서인지 일부 택시 기사의 갑질도 대단하다. 한 30대 여성이 남자친구와 함께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부모 좀 잘 만나지(동네가 후지다)", "할머니구만(나이 많다)", "남의 남자 왜 붙잡냐"는 등 막말을 했다는 사연이 트위터에 올라오자, 막말ㆍ성희롱ㆍ돌아가기 등 유사 피해 사례가 쏟아졌다.


아 나는 개가 아니었지

대한민국은 모욕사회

폭력을 연구하는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이 살인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그놈이 나를 깔보았다disrespected"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어느 범죄자는 살인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자부심, 존엄, 자존감"이라고 대답했다. 길리건은 은행 강도들은 돈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동기가 훨씬 강하다고 했다. 한 재소자는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만큼 자신이 존중respect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자부심, 존엄,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연구 결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자부심, 존엄, 자존감"을 박탈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회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모욕사회다 . 장은주의 정의에 따르자면, 모욕사회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기계나 도구나 동물 또는 그 비슷한 어떤 것으로 대하는 사회"다.


2011년 울산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식품 사기 판매를 해오던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을 때, 그들의 영업 전략 노트엔 "노인을 사람으로 보지 말자", "노인을 돈으로 보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스스로 그런 다짐을 해야만 노인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게 최후의 양심은 남아 있었다는 걸로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굳이 그런 자기암시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돈이나 돈 이하의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이창근은 『이창근의 해고일기』(2015)에서 파업을 진압한 후 파업 참가자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건 물론 "나는 개다"를 복창하게 한 어느 기업의 이야기를 전한다. "용역 깡패의 활극이 해방 시기 정치 깡패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위험천만하다. 관리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한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가 막힌 사례는 무수히 많다.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모욕사회다. 남에게 모욕을 주는 걸 자신의 인정욕구 충족이나 존재감의 확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다. 아니 김찬호의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2014)에 따르면, 한국은 모멸사회인지도 모른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사실 우리는 쉽게 타인에게 모욕감을 준다. 한국의 게시판 댓글에서 악플(악성 댓글) 대 선플(선한 댓글)의 비율은 4대 1로, 1대 4인 일본, 1대 9인 네덜란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익명의 네티즌들만 모욕을 주는 게 아니다. 모욕을 감당해내는 건 삶의 경쟁력이 되었다. 모멸을 정서적 원자폭탄으로 정의하는 김찬호는 문제의 근본은 공동체 붕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공동체 지수(공동체 생활로 위안을 얻고 정체성에 도움을 받는 지수)가 33위다. 우리가 개인주의 사회라 알고 있는 서구 사회보다 공동체가 훨씬 취약한 것이다."


한국의 공동체 붕괴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 모델은 개천을 지키는 미꾸라지들은 물론 개천 자체에 대한 모멸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바, 개천은 단지 용꿈을 꾸는 이들이 그 의지를 불태우기 위한 자극을 주기 위해 비천해져야만 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각개약진형 삶을 사느라 뿔뿔이 흩어진 외로운 분자들은 연대를 모른다. 언론은 앞다퉈 한국 현대사가 4ㆍ16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지만, 망각으로 고독과 고통을 견뎌내는 분자들은 그 참사를 잊은 지 오래다. 오히려 그 참사를 용의 지위에 근접이라도 해야 당해도 덜 당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새삼 확인한 사건으로만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사회정의를 위해 무릎을 꿇게 했다"

"무릎 꿇어. 대학은 나왔어?"

"무릎 꿇어. 대학은 나왔어?" 어느 손님이 매장에서 종업원이 실수를 하자 대뜸 내뱉은 말이다. 종업원이 실수를 한 것과 무릎이 무슨 상관이며, 또 대학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쓰레기 같은 발언은 정신 나간 사람의 무의미한 외침으로 들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의 많은 상황에서 갑으로 행세하는 이들이 을의 무릎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는 데에 있다.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김찬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한마디에 깔려 있는 거대한 콤플렉스 덩어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우선 그 사람의 성장 경험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하는 깊은 조류를 함께 더듬어봐야 할 것이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보는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 그 심보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출세를 한 사람들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하고 변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결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델은 개천과 더불어 개천에서 사는 미꾸라지들에 대한 모멸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며, 미꾸라지들에겐 이른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심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못된 심보 때문에 무릎을 꿇게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걸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이유 때문에 무릎을 꿇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나름의 정의감 때문이라면? 이 의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사건이 2014년 12월 27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도 부천 현대백화점 중동점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났다.


50대 여성 A 씨는 체어맨 차량에 탄 채로 쇼핑 중인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 요원 B 군(21)은 그녀에게 다른 차들의 주차를 위해 조금 이동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를 이동시키지 않았고, B 군이 차량과 조금 떨어진 뒤에서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 A 씨는 이것이 자신에게 욕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B 군에게 따졌고, 마침 쇼핑을 마치고 온 딸로 가세했다. 그 뒤 B 군은 모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30여 분 동안 있었으며, 말리던 동료 주차 요원 3명도 잠시 함께 무릎을 꿇었다가 주위에서 말려 일어섰다.


이 사건은 그냥 묻히는 듯했지만, 2015년 1월 3일 B 씨의 누나가 "백화점에서 모녀 고객이 아르바이트 주차 요원인 동생에게 30여 분 동안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했다"는 글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과 함께 올리면서 뜨거운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 목격자는 "(백화점 모녀가) 주차 요원한테 내가 오늘 (백화점에서) 740만 원 쓰고 나왔어 XX 뭐 이런 식으로 욕도 하고 큰소리를 냈다"라고 증언했다.


B 씨의 누나의 글에 대해 한 누리꾼은 댓글에서 자신을 당사자 겸 목격자라고 소개하며 "동생분이 무슨 짓을 하셔서 저희 모녀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게 됐는지 아예 안 써져 있는 것 같다"며 "주차 요원이 허공에다 대고 주먹을 날리는 행동을 해 항의를 했더니 사과하지 않고 버티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속 고개만 저으며 대답도 않고 사과도 안 하다가 사람들이 몰리니 그제서야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며 :사과를 받고 끝난 일인데 이런 식으로 글을 올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B 군은 나중에 "날씨가 추워 몸을 풀려고 섀도복싱 동작(주먹질)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며 "죄송하다, 아니다라고 해명하려 했는데 당황스럽고 말을 잘 못하니 의사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국회의원이면 굽실거려야 하느냐"

2014년 9월 17일 새벽 0시 48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벌어진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리운전 기사 사이에서 벌어진 몸싸움, 그리고 그 와중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내가 누군지 알아?"는 이 말을 입 밖에 내건 내지 않건 갑질을 저지르는 모든 갑의 의식 세계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사건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여의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집행부 간부와 유족 등 5명은 16일 저녁 여의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술도 마셨다. 이날 자정쯤 호출을 받고 도착한 대리기사 이 모(52) 씨가 30분이 지나도 손님이 나오지 않자 "다른 기사를 부르라"고 하면서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제지하며 국회의원 신분을 밝히는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현장 영상과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김현은 "너 거기 안 서?"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며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 "국회의원이면 굽실거려야 하느냐"는 이 씨의 말에 유가족들은 "의원님 앞에서 버릇이 없다"면서 폭력을 휘둘렀다. 이 씨는 "나도 세월호 성금도 내고 분향소에도 다녀왔는데 그들이 세월호 유족 대표라는 사실을 알고 더 실망스럽고 분했다"고 했다.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표창원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김현 의원의 갑질」이라는 글에서 "여러 각도에서 보아도 김현 국회의원의 행동은 명백한 갑질 패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리기사에게 30분 넘게 대기시키다가 떠나려는 것을 힘으로 막는 것은 형법상 업무 방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더구나 국회의원의 지위와 힘을 내세웠다면 아주 질 나쁜 갑질"이라고 덧붙였다.


한신대 교수 윤평중은 "내가 누군지 알아?는 한국인의 감춰진 성감대이며 우리네 삶을 추동하는 집단 무의식이다.……내가 누군데 감히 네 따위가를 핵심으로 삼는 권력 담론이자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갑질의 언어다.……인간관계를 힘의 우열優劣로 나누어 약자를 얕보는 한국인의 차별적 가치관과 봉건적 집단 무의식을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누군지 알아?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려는 내가 누군지 알아?는 궁극적으로 동물의 언어에 불과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의 반말을 언제라도 발사하려는 사람으로 가득 찬 사회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내가 누군지 알아?가 널리 수용되는 사회는 잔혹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회다. 하지만 폭행사건 피해자인 대리기사의 항변에는 희망의 싹이 엿보인다.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인 대리기사가 강퍅한 한 의원에게 던진 국회의원이면 다입니까?라는 항의야말로 열린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자强者의 난폭한 말씨에 숨은 권력관계를 거부하면서 그 정당성을 묻는 보통 사람만이 사람 사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


"경비는 사람 취급도 안 하죠, 뭐"

"개가 사고를 당했더라도 이랬을까"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본질은 "너와 나는 다르다"는 구획 설정이다. 잘났건 못났건 더불어 어울려 살기보다는 출세 순으로 일렬종대를 설 것을 요구하고, 그에 따른 구별짓기를 하는 집단을 가리켜 공동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의 아파트를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로 보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14년 10월 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B 아파트 경비원 이 모(53) 씨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이 논란이 되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속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반노조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씨가 겪은 인격 무시 사례를 폭로했다.


"(한 가해 주민은) 먹다 남은 빵을 5층에서 경비, 경비 불러서 이거 먹어 던져주는 식으로 줬다. 안 먹으면 또 안 먹는다고 질타해 경비실 안에서 (억지로) 먹었다.……일부 입주민의 일상적인 인격 무시, 폭언 등이 누적된 게 이 씨의 자살 기도 원인이다.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폭행ㆍ폭언을 당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경비원들의 상황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2013년)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3명(35.1퍼센트)은 주민들에게서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보고서는 "정신적ㆍ언어적 폭력은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지속적으로 당하는 경우 불안장애ㆍ우울증 등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압구정동의 B 아파트에선 특히 어느 할머니의 갑질이 심했던 것 같다. 이 아프트의 경비원 ㄱ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OOO호에 사는 할머니는 수시로 초소 안에 들어와 귀에다 대고 아파트 주변과 건물을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하다, 교대자는 일을 잘 하는데 당신은 왜 못하느냐고 30분 내지 40분간 잔소리를 하고, 쓰레기통에 막대기를 찔러보고 페트병 컵이 나오면 이거 나오면 안 된다고 고함을 치고, 쓰레기통 옆에 가구나 나무 소파 등이 나와 있다고 이거 누가 내놓았느냐고 물으면서 빨리 치우라고 소리치고……한 세대에서 공사 중일 때도 사다리로 운반하지 왜 엘리베이터로 짐을 운반하게 하였냐고 질책하면서 네가 허수아비냐고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면서 야단을 쳤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반노조는 이 씨가 분신을 하자 입주자대표위원회(입대위)에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는데, 개인 간의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비원 ㄷ씨는 "현재까지 입대위가 이 씨에게 병문안을 한 차례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반노조 조합원 3명은 15일 오후 5시께 B 아파트 경비원들을 대신해 아파트 입구에서 호소문을 읽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며 인격을 무시당하면 모멸감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B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경비 일을 하며 입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성원이기도 합니다. 가정보다 B 아파트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한 식구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입주민 주거 생활의 평안을 위해 경비원이 일하던 중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입주자 대표분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의 말씀도 없습니다. 저희는 감히 집에서 키우는 개가 사고를 당했더라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

"공부 안 할래? 너 엄마 죽는 꼴 보고 싶니?"

학력ㆍ학벌증명서로 대체된 양반족보

지배층의 갑질은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를 잘 보여준 게 조선의 몰락이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경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국가 시책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린 탓도 있었지만, 황ㅎ실은 세원稅源이 없어 벼슬을 팔아서라도 국고國庫를 충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탐관오리貪官汚吏들만 득실거리게 되었다. 벼슬을 돈 주고 샀으니 본전 뽑고 이익까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백성을 착취하는 것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오죽했으면 백성들 사이에서 가난이 보호막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양반의 갑질에 질린 백성들의 저항은 양반족보 구입으로 나타났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 지역은 1690년(숙종)에 양반이 9.2퍼센트, 양민이 53.7퍼센트, 노비가 37.1퍼센트였다. 약 100년 뒤인 1783년(정조)에는 양반이 37.5퍼센트, 양민은 57.5퍼센트, 노비는 5.0퍼센트가 되었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1858년(철종)에는 양반이 70.3퍼센트, 양민이 28.2퍼센트, 노비는 1.5퍼센트로 줄었다. 조선 말기에는 양반이 80~90퍼센트가 되었다고 한다. 양반 족보를 사서라도 양반 시늉을 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양반족보는 학력ㆍ학벌증명서로 대체되었다.


한국의 학력별 임금 차이는 매우 높다. 고졸과 같은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가 중졸 이하의 저학력 근로자에 비해 29퍼센트나 임금을 더 받는다. 반면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는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근로자에 비해 47퍼센트나 적게 받는다. 이런 격차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각각 8위, 10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하지만, 문제는 학력에 따른 이런 임금 차이가 20여 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저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2012년과 같은 29퍼센트였고, 고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43퍼센트였다.


숙명여대 교수 권순원은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대부분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와 맞물려 있다"며 "중간학력이나 저학력자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많이 취업해 있는 반면 고학력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취업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다 보니 고교생 대부분이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고, 노동시장이 왜곡되는 것"이라며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이중 노동시장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물론 학벌에 따른 임금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에서 성공ㆍ출세 요인으로 학벌과 연줄을 꼽은 학부모의 비율은 2006년 33.8퍼센트에서 2008년 39.5퍼센트, 2010년 48.1퍼센트로 급증하고 있다. 차별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한국노동패널의 7차(2004년) 조사에서 학벌은 취업차별 경험자의 43.8퍼센트로 1위였다. 임금 차별의 47.5퍼센트, 승진 차별의 49.1퍼센트, 사회생활 차별의 47.2퍼센트도 학벌을 가장 많은 이유로 꼽았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갑의 갑질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열한지는 당해본 을만이 안다. 그런데 갑을관계의 진짜 비극은 갑의 갑질에 있다기보다는 갑질을 당한 을이 자신보다 약한 병에게 갑질과 다를 바 없는 을질을 한다는 데에 있다. 병은 또 자신보다 약한 정에게 갑질ㆍ을질과 다를 바 없는 병질을 한다.


이런 먹이사슬 관계를 온몸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이들이 놀랍게도 아직 갑을관계의 본격적인 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대학생들이다. 미리 연습을 하려는 걸까? 사회학자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란 책은 대학생들의 대학 서열 중독증을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대학생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에 근거한 애정 어린 고발인지로 괴물이 된 이십대에 대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오찬호는 대학의 수능점수 배치표 순위가 대학생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전국의 대학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대학 간 서열을 따지는 건 단지 재미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인정투쟁이자 생존투쟁이다. 대학 서열은 수능점수나 학력 평가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아예 노골적인 인간차별로 이어진다. 왜? 수능점수는 진리의 빛이기 때문이다.


오찮고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이라는 영화를 인 서울(서울 소재 대학) 대학생 열다섯 남짓과 같이 보고 나서 지방대생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학생들은 모두 "차별이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입장을 내보였다. 한 학생은 "에이, 그래도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 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말했고, 이 말에 모두 다 동의했다나.


그런데 학생들과의 심층면담과 그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통해 접한 104건의 케이스에 "자신의 대학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에 대한 실제 학문적 역량차를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해보았는가?"라는 질문에 92퍼센트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심지어 사람을 딱 보면 대학 서열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다. "아니, 자꾸 선생님이 우리 보고 편견이라고 그러시는데, 정말 그렇지 않아요? 수준 떨어지는 대학을 다니는 애들은 딱 보면 알지 않나요? 선생님은 여러 대학 출강하시는데 그런 것 못 느끼세요? 제가 지금 오버하는 거예요?" 물론 오버지만, 대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키워져온 걸 어이하랴.


"원세대생이 연세대생 행세할까봐 우려된다"

"연고전 때 원세대생이 가면 욕먹냐?"

"연세대학교 입시 결과별 골품 비교한다. 성골=정세(정시합격생)ㆍ수세(수시합격생)ㆍ정재세(재수 정시합격생), 진골=정삼세(삼수 정시합격생)ㆍ정장세(장수 정시합격생)  수재세(재수 수시합격생), 6두품=교세(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학생)ㆍ송세(연세대 국제캠퍼스생)ㆍ특세(특별전형), 5두품=편세(편입생), 군세(군인전형), 농세(농어촌전형), 민세(민주화 유공자 자녀 특별전형)……."


몇 년 전 이른바 연세대 카스트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세대 커뮤니티 세연넷의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세연넷에선 입학 형태에 따라 학생들을 계급화한 표현이 버전을 달리하며 꾸준히 업데이트되는데, 이런 글(2014년 6월 15일)도 있었다. "원세대 다니는 친구놈이 나한테 동문 동문 거리는데 원세대 놈들 중에 이렇게 신촌을 자기네하고 동급 취급하는 애들 있을까봐 심히 우려된다."


네티즌들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를 원세대, 고려대학교 조치원캠퍼스를 조려대, 세종캠퍼스를 세려대라고 부르며 신촌과 안암에 있는 본교와 구분을 하고 있다. 한 원세대 학생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상위 1퍼센트에게만 입학이 허락되는 본교에 비해, 2~4등급 정도의 학생들이 다니는 분교 학생들은 "실력은 안 되는데 수도권 대학의 타이틀을 사칭하고 싶은 속물들이나 가는 학교로 오해"받기 십상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오스카는 "현대판 서자인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자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조선시대 서자와는 달리 스스로 선택해 입학했다는 점에서 캠퍼스가 아닌 같은 등급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는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마 전 가수 윤종신 씨의 열등감 발언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그룹 015B 출신인 그는 서울대 학생이었던 멤버들에게 열등감과 음악적 박탈감까지 가지게 되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는데요. 평소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알려진 그의 이러한 발언에 어리둥절해했던 네티즌들이 그의 학력이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라는 걸 알고 비로소 이해하는 촌극이 벌어졌었죠. 명문대생 밴드로 이슈가 되었던 그룹의 멤버였다는 점이 더해져 그의 콤플렉스의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캠퍼스인데요를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며 살아온 거예요."


포털사이트에서 원세대를 검색했더니 웹문서란에 "연고전 때 원세대생이 가면 욕먹냐?"는 질문이 등장한다. 궁금해서 눌러 보았더니, 일베사이트다. 이런 답들이 올라 있다. "응원석도 아예 따로 지정해서 줌. 본캠 원주캠 무시 진심 개 쩐다고 함. 웬만하면 안 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고 우리 누나가 말해줌. 우리 누나는 연대 10학번 본캠……원세대 의대 아닌 이상 가는 거 존나 의미 없다 개무시 차별 쩔고 니들이 한번 사고 치면 ㅉㅉ 분캠 새끼들 이러고 존나 욕함. 고대도 마찬가지인데 세려대는 의대도 없어서 세려대는 아예 안 오는 걸 추천……내 친구 세려대 08학번의 증언 ㅋㅋㅋ……누가 세려대라고 하냐 ㅋㅋ 조려대 아님 썩창이라고 하지……그러하당 그냥 분교는 끼리끼리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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