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오렌지색 옷을 입힐까

   
이케우치 사토시(역: 김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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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14000
2015�� 03��





■ 책 소개


‘이슬람국가(IS)’의 일본인 인질 사건 이후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바로 그 책!


잔혹한 ‘공개 처형’ 영상이 인터넷과 뉴스 매체를 통해 전파되면서 전 세계를 슬픔과 공포로 몰아넣은 이슬람국가(IS). 광기 어린 위험한 선택, 검은 두건 뒤의 섬뜩한 눈빛, 오렌지색을 입은 인질의 영상……. 그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국경을 뛰어넘어 활동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걷고 ‘국가 수립’까지 선언한 그들은 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테러를 자행하는가? 그리고 세계의 젊은이들은 무엇에 이끌려 이슬람국가로 속속 모여드는가? 이 책은 그들의 조직 원리와 근본 사상, 무기와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 미디어를 통한 선전 전략, 과거의 행적 등 그동안 이슬람국가에 대해 궁금해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정리했다.


■ 저자 이케우치 사토시
1973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지역문화연구 전공 박사과정을 밟다가 퇴학했다. 이후 일본무역진흥회 아시아경제연구소 연구원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조교수를 거쳐 2008년 10월부터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조교수가 되었다. 전문 분야는 중동 지역 연구와 이슬람 정치사상이다.


지은 책으로『현대 아랍의 사회사상(現代アラブの社會思想)』(오사라기 지로 논단상 수상), 『아랍 정치의 오늘을 읽는다(アラブ政治の今を讀む), 『책의 운명(書物の運命)』(마이니치 서평상 수상), 『이슬람 세계를 어떻게 논할 것인가(イスラ―ム世界の論じ方)』(산토리 학예상 수상), 『중동 위기의 진원을 이해한다(中東危機の震源を讀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중동 전기(CHRONIQUE D’UNE GUERRE D’ORIENT)』 등이 있다.


■ 역자 김정환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번역과를 수료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 권에 흥미를 느끼고 번역의 세계로 발을 들여,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번역의 오묘함과 어려움을 느끼면서 항상 다음 책에서는 더 나은 번역,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공대 출신의 번역가로서 공대의 특징인 논리성을 살리면서 번역에 필요한 문과의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 목표다. 야구를 좋아해 한때 ‘IMBCSPORTS.COM’에서 일본 야구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머릿속 정리의 습관』,『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까』,『하버드의 생각수업 』,『성과의 가시화 』,『일 잘하는 사람의 정리습관』,『60분 공부법』 등이 있다.


■ 차례
1. 충격, 이슬람국가
모술 함락|칼리프제를 선언하다|칼리프의 설교단|‘영역 지배’라는 새로운 체제|참수 처형과 노예제도|무엇이 이슬람국가를 만들었는가|이 책의 시각-사상사와 정치학


2. 이슬람국가의 변화
알카에다의 분산형 네트워크|성역의 소멸|궁지에 몰린 알카에다|특수부대·정보기관·초법적 송치|그래도 살아남은 알카에다|파키스탄으로 도망치다|국경을 세력범위로 삼다|조직을 프랜차이즈화하다|별도 브랜드를 찾다|런더니스탄의 론 울프|지도자 없는 지하드?


3. 되살아나는 ‘이라크의 알카에다’
‘이라크의 알카에다’|요르단인 자르카위|조직의 변천|수렁에 빠진 이라크 내전|충격적인 참수 영상|알카에다 관련 조직의 효시|자르카위의 죽음과 ‘바그다디’들|칼리프제를 향한 포석|2020년 칼리프제 부활 계획|칼리프제 이슬람 국가의 태동


4. ‘아랍의 봄’ 이후 개방된 전선
‘아랍의 봄’은 어떻게 끝날까|중앙정부의 동요|‘통치되지 않는 공간’의 출현|인접 지대로 확대된 분쟁|이라크 전쟁이라는 선구적 실험|예상 밖의 상황|제도 내 개혁파와 제도 외 무장투쟁파|개혁파의 한계|분쟁의 종파주의화


5. 이라크와 시리아에 나타난 성역 - ‘국가’로의 길
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수니파에 불리한 연방제와 의원내각제|대규모 증파와 ‘이라크의 아들’|말리키 정권의 종파주의적 정책|후세인 정권 잔당의 유입|‘아랍의 봄’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시리아의 전략적 가치|전투원의 역류|난립하는 이슬람 계열 무장세력|‘이라크·이슬람국가’의 시리아 진출|이슬람국가의 자금원|토착화되는 알카에다 계열 조직


6. 지하드 전사의 결집
용병이 아닌 의용병|지하드의 의무를 다하라|무하지룬과 안사르|외국인 전투원의 역할|외국인 전투원의 비율|외국인 전투원의 출신국|서양 출신자가 왜 주목받는가|귀환병에 대한 과잉 경계|일본인과 이슬람국가


7. 사상과 상징 - 미디어 전략
이미 정해진 결론|사이버공간의 글로벌 지하드|오렌지색 죄수복을 입히다|참수 영상의 교묘한 연출|《다비크》의 종말론적 색채|1990년대의 종말론 열풍을 이어받다|종말론의 두 가지 의미|예언자의 지하드와 연결시키다


8. 중동 질서의 행방
분수령으로서의 이슬람국가|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동 질서|나세르의 쿠데타와 민족주의|이란 혁명과 이슬람주의|걸프전과 미국 패권|9·11 테러 사건과 테러와의 전쟁|‘아랍의 봄’과 이슬람국가의 대두|이슬람국가는 앞으로 확대될 것인가|먼 지역에서의 호응과 연쇄적인 국가 분열|미국 패권의 약화|지역 대국의 영향력


맺음말
참고문헌


 




그들은 왜 오렌지색 옷을 입힐까


충격, 이슬람 국가

모술 함락

2014년 6월,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에서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자신들을 ‘이라크·샴 이슬람국가(ISIS)’ 라고 불렀던 이 집단은 6월 10일에 이라크의 제2도시인 모술을 점령했으며, 그 후 불과 며칠 사이에 티크리트와 바이지 등 북부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바그다드 근교까지 남하했다. 이에 따라 2011년의 ‘아랍의 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라크 문제가 또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북부와 서부를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서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의 북동부·북부로도 세력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시리아 북부의 도시 라카를 점령해 ‘샴(대大 시리아)주’의 주도로 정하고 시리아 북동부에서 영역 확대를 진행했다. 시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인 알레포 북부의 반체제 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에도 진출해 다른 반체제 세력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2011년 초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에 각국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면서 그 재건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던 중동 정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이래 다시 한 번 ‘테러 조직’의 문제가 중동 정치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반체제 테러 조직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하는 정치적 주체가 된 이슬람 과격파 집단과 그 이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좀 더 어려운 문제가 되어 있었다.


참수 처형과 노예제도

이슬람국가의 미디어 전략은 점점 잔혹해져갔다. 잇따른 참수 처형 영상의 공개와 이교도의 노예화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국가는 시리아에 머물던 서양인을 인질로 붙잡아 순차적으로 살해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실제로 그들을 살해한 뒤 그 영상을 공개했다. 이것은 미국의 여론을 자극해 오바마 정권이 공습을 시리아로 확대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슬람국가는 서양인 인질을 처형할 때 그 대상과 집행인을 세심하게 선택하고 시기를 결정했다. 무작정 서양인을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미국인을, 이어서 영국인을 선택하고 이들 나라가 이라크 혹은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멈추도록 요구하는 영상을 내보낸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인질을 처형하고 영상을 공개했다. 요컨대 최소한 자신들의 논리로는 정당성이 있는 살인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형태로 정보 발신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참수 처형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금요일에 공개적으로 실시되고 있듯이 이슬람 국가에서 무조건 기피되는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참수 처형 장면을 촬영해 그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수법이 이슬람교도에게 호감을 주리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런 영상을 공개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슬람국가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보다 선전과 위협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단순히 ‘광신자들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배후에 숨겨진 치밀한 계산과 연출에 주목해야 한다.


서양인을 처형하고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미국을 위협해 개입을 막기 위해서인지는 분석가에 따라 해석이 갈린다. 다만 나는 양쪽 모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을 이라크와 시리아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미국의 공격에 맞선 자위전쟁을 주장함으로써 이슬람국가의 정통성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슬람국가는 자신들의 운동을 이라크나 시리아에서의 지배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한 글로벌 지하드로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적이 이라크 정부와 시리아 정부 또는 다른 무장 세력에 한정되지 않는다면 세계적 규모로 이슬람교도의 지지를 모으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 된다. 또한 처형 영상을 공개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의 군사 개입 의욕을 꺾기 위함이다. 이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 논리이며 ‘아픔을 느끼면 손을 움츠린다’는 인간의 자기방어 본능을 노린 것이기도 하다.



이슬람국가의 변화

알카에다의 분산형 네트워크

이슬람국가는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이슬람국가는 2000년대에 일어난 글로벌 지하드 운동의 조직 원리가 변화하면서 새롭게 나타났다. 2001년의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결과 알카에다는 조직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그럼에도 알카에다는 소멸되지 않았다. 불리한 상황에 맞춰 조직 구조와 원리를 재편해, ‘조직 없는 조직’으로 불리는 분산형·비집권적 네트워크 구조로 연결된 관련 조직망을 전 세계에 깔아놓았다. 또 알카에다의 본체·중추는 구체적인 작전 행동을 실시하는 주체라기보다 사상·이데올로기 또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알카에다의 중추 조직이 직접 테러나 군사작전을 실행하는 능력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각지에서 알카에다의 사상에 공감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세력 또는 개인이 잇달아 나타났다. 알카에다의 중추 조직이 직접 관여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호응·모방 세력이 어떤 작전행동을 입안·실시해 성과를 올린 다음 글로벌 지하드 운동의 성과로 인정해달라고 공개된 장소에서 알카에다의 본체에 요구한다. 그러면 빈 라덴이나 아이만 알자와히리 등 알카에다 중추 조직의 지도자들이 이에 응한다. 이렇게 해서 명확한 물리적 연결성이 없는 조직들이 네트워크적으로 확산되었다. 빈 라덴 주변의 인물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조직을 창설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이나 위성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한 가상적인 공감 관계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조직의 규모가 극단적으로 작거나 애초에 개인 또는 형제·친척 정도의 범위 안에서 테러가 계획·실행되는 ‘론 울프(외톨이 늑대)’형 테러도 발생했다. 테러가 실제로 일어난 뒤에 테러범 본인의 의식이나 객관적인 상황을 통해 그것이 알카에다의 사상에 공감했거나 그 배우에 있는 글로벌 지하드의 사상과 운동에 감화된 행동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알카에다 등의 조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감지해 차단하기도, 사후에 연관성을 추적해 배후 주모자나 교사범을 색출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살아나는 ‘이라크의 알카에다’

‘이라크의 알카에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한때 조직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알카에다는 이윽고 그 조직 원리를 변화시켜 분산적이며 비집권적인 네트워크형 조직 원리로 연결되는 ‘알카에다 관련 조직’망을 전 세계에 깔았다. 이 장에서는 각국의 알카에다 관련 조직 중에서도 특히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이슬람국가 조직의 직접적인 기원이 된 ‘이라크의 알카에다’에 관해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타격을 받은 알카에다가 부활한 가장 큰 요인은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그 후의 혼란으로 이라크에 새로운 거점을 형성하고 활동할 기회가 열리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난 지하드 전사들이 갈 곳이 생겼다. 그리고 이라크의 반미 무장 봉기에 참가한 여러 세력 중에서 대두한 세력이 ‘이라크의 알카에다’이며 조직 개편과 합병, 개명을 반복한 끝에 지금의 ‘이슬람국가’가 되었다.


이슬람국가에 이르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활동이 침체된 적도 여러 차례였고 소멸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되살아났다. 알카에다와의 관계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이슬람국가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라크의 알카에다’를 자처하며 세계 각지에 나타난 알카에다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지명도를 높였지만, 빈 라덴이나 자와히리 같은 알카에다 중추와의 관계가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이슬람국가는 2013년 이후의 시리아에서의 활동을 둘러싸고 알카에다 중추와 대립한 끝에 갈라섰는데, 이라크 전쟁 후의 반미 무장 투쟁 때부터 이미 노선 대립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칼리프제 이슬람 국가의 태동

‘이라크의 알카에다’는 이라크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서 ‘타우히드와 지하드단’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해 충격적인 참수 영상을 공개하며 세계 사회에 강렬하게 등장했다. 잔혹한 테러 문화의 발전과 확산을 선도해 알카에다 관련 조직 중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시아파를 적대시해 종파 분쟁을 일으키는 등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리고 ‘이라크·이슬람국가’를 자칭하며 영역 지배 국가를 지향하고 칼리프제 부활을 꿈꿈으로써 알카에다의 틀을 초월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2011년 이후의 ‘아랍의 봄’에서 비롯된 중동 지역 전체의 동요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국민 탄압에 따른 대규모 내전 발발이라는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이후 개방된 전선

‘아랍의 봄’은 어떻게 끝날까

이슬람국가의 대두는 글로벌 지하드 사상·운동의 발전과 ‘아랍의 봄’에 따른 정치 변동이 결합된 결과다. 글로벌 지하든 운동의 이념과 조직은 2000년대 중반에 이미 변화했지만, 운동 쪽에 내재된 요인만으로는 그들이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적 주체로 발전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글로벌 지하드의 행동 계획과 조직론에서 기대하고 예상했던 환경조건이 갖춰지면서 자유롭게 활동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환경조건 중 하나는 ‘아랍의 봄’이 단기적으로 아랍 국가들과 중동 지역에 가져온 불안정과 혼돈이다.


2011년 이후의 ‘아랍의 봄’에서 촉발된 중동 지역의 변동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튀니지가 갑작스럽게 붕괴될 때 국제적인 언론 공간에서 정착된 ‘봄’이라는 단어는 깊은 의미에서 탁월한 표현이었다. 1848년의 ‘국민들의 봄’이나 1968년의 ‘프라하의 봄’과 마찬가지로 ‘아랍의 봄’은 적어도 사반세기는 지나봐야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보일 만큼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듯하다. 이슬람국가의 출현도 그러한 큰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아직까지 그 정착지를 알 수 없지만, ‘아랍의 봄’이 단기적으로 중동 지역에 가져온 상황이 이슬람국가의 대두에 힘을 보탠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아랍의 봄’이 안겨준 결과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슬람국가가 급속히 부각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1. 중앙정부의 동요

2. 변경 지역의 ‘통치되지 않는 공간’의 확대

3. 이슬람주의 온건파의 퇴조와 과격파의 대두

4. 분쟁의 종파주의화, 지역으로의 파급, 대리전쟁화



이라크와 시리아에 나타난 성역 - ‘국가’로의 길

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

2014년 현재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가 확보한 영역 지배 범위는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4개 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슬람국가가 6월에 이라크에서 급속히 지배를 확대하자 국제사회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거나 이라크 전체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위기감을 높였지만, 이는 지나친 경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는 19개의 주·특별시(2014년 현재)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4개 주, 즉 북부의 니나와, 서부의 안바르, 중부의 살라딘과 디얄라는 주민들 중 다수가 수니파다. 이곳에서는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의 신체제에 처음부터 반대 입장을 취했다. 한편 시아파가 다수인 남부와 중부의 9개 주(바빌, 바스라, 디카르, 카르발라, 마이산, 무탄나, 나자프, 카디시야, 와시트)에서는 압도적으로 현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


쿠르드인이 주축인 북부 4개 주(다후크,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할라브자)도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해 쿠드르 자치정부(KRG)를 구성할 근거를 마련해준 신체제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당장은 매우 유리한 연방국 체제의 틀 안에서 내실을 다지고, 만약 이라크가 이 시스템을 버리면 민족자결권을 행사해 쿠르드의 독립을 달성한다는 것이 쿠르드인 정치 지도자들의 속셈이다. 온갖 민족과 종파가 섞여 있는 수도 바그다드나, 쿠르드인이 역사적인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민족도 많이 살고 있는 키르쿠크 주에서도 다수가 현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 대한 신임을 묻는 2005년 10월의 국민투표는 종파·민족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민의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당시 이라크는 18개 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2014년 3월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술라이마니야에서 할라브자를 분리해 19개 주가 되었다)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4개 주 가운데 3개 주에서는 반대표가 과반수였다. 특히 안바르 주(반대 96.96퍼센트)와 살라딘 주(반대 81.75퍼센트)에서는 3분의 2가 넘는 압도적 다수가 반대표를 던졌다. 니나와 주(반대 55.08퍼센트)에서도 과반수가 반대했고, 디얄라 주(반대 48.73퍼센트)에서는 찬성표가 반대표를 가까스로 웃돌았다. 헌법 개정 국민투표의 규정상 3개 주에서 3분의 2 이상의 반대표가 나오면 불신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입헌 절차가 원점으로 돌아갈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쿠르드 3개 주와 시아파 9개 주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이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고, 여러 민족·종파가 섞여 있는 바그다드와 키르쿠크 주에서도 다수가 찬성했다.


이와 같이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4개 주에서만 현 체제의 성립에 반대하는 국민의 뜻이 강했다. 서부와 북부에서 중부에 걸친 이들 4개 주는 이슬람국가가 급속히 실효 지배의 판도를 넓힌 지역과 일치한다. 수니파는 이라크 인구의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바스당의 독재 체제였던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는 지배 세력에 속했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적 선거가 실시된 뒤로 정부의 요직이 시아파와 쿠르드 세력에 다수 분배되자 현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품게 되었다. 현 체제의 국가 구성 원리와 이에 의거해 탄생한 정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서 이슬람국가의 지배까지 받아들이거나 용인하는 심정이 되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지하드 전사의 결집

지하드의 의무를 다하라

각국의 이슬람교도 중 일정수가 누군가에게 강요당하지도 않았는데 개인적 신분으로 분쟁 지역에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투원을 분쟁 지역으로 향하게 하는 종교적인 목적 의식은 어떤 규범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을까?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각각의 무장 집단이나 글로벌 지하드 테러 조직에는 저마다 목표나 규칙이 있겠지만, 그것들은 조직의 통제나 전략 측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그런 조직들이 잔혹한 행위와 비합법적인 활동까지 정당화하는 규범적 근거는 널리 가르치는 통상적인 이슬람교의 교리 체계 속에 있다. 일반적으로 정통시하는 교리에 근거를 두지 않으면 그 집단·조직은 자신들의 존재와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라의 길을 위해 (Fi Sabili Allah)’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전투가 지하드이며, 그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주어진 의무라는 것은 이슬람 법학상 확고한 정설이다. 다만 항상 전원이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이슬람 공동체(움마) 중에서 누군가가 실천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 실천을 면제받는다는 ‘집단 의무’의 범주에 지하드도 포함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학설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하드에 참가하지 않은 대다수의 이슬람교도도 ‘위법’이 아니게 되며, 실제로 지하드를 위해 전장에 나가거나 지하드를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거나 인원을 수배하는 이들은 알라가 공동체에 부여한 의무를 솔선해서 수행하는 숭고한 인물이 된다.


이슬람 세계가 식민 지배를 당하거나 독립했더라도 초강대국의 패권 구조에 편입되어 종속적 위치에 놓이는 상황이 되자 ‘우리나라는 이미 이교도에 지배당하고 있다’ 또는 ‘이슬람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하고 이를 근거로 지하드의 의무가 자신에게도 부여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런 이들을 지하드주의자라고 부른다. 지하드주의자들은 이슬람교도가 지배권을 잃는다는 이슬람법상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지하드를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하드 실천을 금지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가의 제약을 무시하고 지하드에 출정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정당하며, 이를 막는 국가를 지하드의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정당하다고 믿는다.


이슬람 국가들을 지배하고 지하드를 방해하는 지배자야 말로 지하드의 첫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하드 사상사에서 ‘가까운 적’ 지향의 흐름이라고도 표현된다. 이교도 세력이라는 ‘먼 적’보다 이슬람 각국의 지배자라는 ‘가까운 적’과의 싸움을 우선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종교적인 가치 규범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국가의 통제에서 빠져나가 개인적으로, 또는 조직을 만들어 지하드를 실천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근대의 ‘지하드주의’다.



사상과 상징 – 미디어 전략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히다

이슬람국가의 미디어 전략 중에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시리아에서 서양인을 인질로 붙잡아 살해하고 참수 전후의 모습을 촬영한 선전 비디오를 잇달아 공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잔혹한 영상을 공개한 데는 대체 무슨 의도가 숨어 있으며 그 효과는 무엇일까? 또 어떤 연출과 영상 기술이 구사되었을까?

2014년 8월부터 11월까지 인터넷 공개된 영상을 통해 알려진 이슬람국가의 서양인 살해 사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2014년 8월 19일경 제임스 폴리 (미국)

9월 2일경 스티븐 소트로프 (미국·이스라엘)

9월 13일경 데이비드 헤인즈 (영국)

10월 3일경 앨런 헤닝 (영국)

11월 16일경 피터 캐식 (미국)


이들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에 붙잡혔거나 다른 집단에 붙잡힌 뒤 이슬람국가로 인도되어 살해되었다. 이슬람국가가 서양을 직접 공격하거나 점령하고 있는 영역에서 서양인을 살해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오지는 않았다. 이것은 8월 8일에 개시된 미군의 이라크 폭격이나 공습 범위를 시리아로 확대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9월 10일 발표 같은 사태에 대해 적대적 자세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이나 영국에 공습 중단을 요구하고 기한까지 회답을 기다린 다음 이런 예고·공개 살인을 저질렀다.


서양인 인질은 모두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있다. 아랍인과 이슬람교도가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나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 수용되어 폭행과 굴욕을 당한 기억은 아랍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에 수감당한 이들이 입었던 오렌지색 죄수복을 반대로 자신들이 구속한 서양인에게 입히고 요구 사항을 읽게 한 다음 살해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써 속이 후련해진 일부 이슬람교도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어디까지나 미국 측이 먼저 행한 부정에 대한 ‘정당한’ 보복임을 주장하려는 것이리라.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은 인질의 살해와 영상 공개라는 수법은 이슬람국가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타우히드와 지하드단’이 2004년에 대두할 때나 ‘이라크의 알카에다’로서 세계적인 관심을 높일 때도 이 양식에 따른 참수 처형과 영상 공개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각지의 무장 집단이 이 처형 양식을 모방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자신들이 이라크 전쟁 이후의 이라크 분쟁 속에서 정착하고 성장해 세계로 확산된 ‘테러 문화’의 이른바 ‘본점’이며 ‘원조’임을 재인식하라고 강요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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