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문법

   
강준만
ǻ
인물과사상사
   
15000
2015�� 02��



■ 책 소개

 

왜 우리는 ‘생각의 문법’에 무심할까?
생각의 문법과 관련된 50개의 ‘왜?’라는 질문과 수많은 학자들의 논의와 이론을 담은 책

 
사람들마다 생각의 내용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 다른 ‘생각의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늘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간은 합리적일 때도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의 문법’을 탐구하는 일은 큰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문법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깨달은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고, 더 나아가 행동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설혹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더라도, 자신의 문법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확신’과 ‘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공통의 문법’이다. ‘공통의 문법’을 찾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주로 ‘최대공약수’에 해당하는 ‘생각의 문법’을 다루었다. ‘최대공약수’에 근거한 그런 ‘공통의 문법’은 ‘나의 확신’과 ‘너의 확신’의 충돌에 의해서 빚어지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제공해줄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이분법과 편가르기 문화를 넘어서는 일은 지난한 과제가 되겠지만 ‘자신의 확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공통의 문법’에 대한 공감대를 키운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선도적인 구실을 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다. 2013년에는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는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을 촉발시키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싸가지 없는 진보』『미국은 드라마다』『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한국인과 영어』『감정독재』『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갑과 을의 나라』『증오 상업주의』『교양영어사전』(전2권)『멘토의 시대』『자동차와 민주주의』『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강남 좌파』『룸살롱 공화국』『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전화의 역사』『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머리말 - 왜 우리는 ‘생각의 문법’에 무심할까?


제1장 착각과 모방
왜 미팅만 하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걸릴까? - 머피의 법칙 chr(124)_pipe 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은 무서운 말인가? - 착각적 상관의 오류 chr(124)_pipe 왜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범주화는 폭력적인가? - 범주화된 지각의 오류 chr(124)_pipe 왜 좋은 뜻으로 한 사회고발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가? - 사회적 증거 chr(124)_pipe 왜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 자동차 사고가 급증하나? - 베르테르 효과


제2장 동조와 편승
왜 우리 인간은 ‘부화뇌동하는 동물’인가? - 동조 chr(124)_pipe 왜 우리 인간은 ‘들쥐떼’ 근성을 보이는가? - 편승 효과 chr(124)_pipe 왜 비싼 명품일수록 로고는 더 작아질까? - 속물 효과 chr(124)_pipe 왜 정치인들은 자주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가? - 언더도그 효과 chr(124)_pipe 왜 매년 두 차례의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가? - 각인 효과


제3장 예측과 후회
왜 우리는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가? - 정서 예측 chr(124)_pipe 왜 창피한 행동을 떠올리면 손을 씻고 싶어지는가? - 점화 효과 chr(124)_pipe 왜 한국인은 ‘감정 억제’에 서투른가? - 좌뇌·우뇌적 사고 chr(124)_pipe 왜 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이 은메달리스트의 표정보다 밝은가? - 사후 가정 사고 chr(124)_pipe 왜 30퍼센트 할인 세일을 놓친 사람은 20퍼센트 할인 세일을 외면하나? - 후회 이론


제4장 집중과 몰입
왜 우리는 시끄러운 곳에서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나? - 칵테일파티 효과 chr(124)_pipe 왜 ‘몰입’은 창의적 삶과 행복의 원천인가? - 몰입 chr(124)_pipe 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위험한가? - 무주의 맹시 chr(124)_pipe 왜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위험한가? - 터널 비전 chr(124)_pipe 왜 전문가들은 자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까? - 지식의 저주


제5장 인정과 행복
왜 우리는 ‘SNS 자기과시’에 중독되는가? - 인정투쟁 이론 chr(124)_pipe 왜 행복은 소득순이 아닌가? - 쾌락의 쳇바퀴 chr(124)_pipe 왜 어떤 사람들은 돈도 못 버는 일에 미치는가? - 리누스의 법칙 chr(124)_pipe 왜 신뢰가 ‘새로운 유행’이 되었는가? - 크레이그의 법칙 chr(124)_pipe 왜 재미있게 하던 일도 돈을 주면 하기 싫어질까? - 과잉정당화 효과


제6장 가면과 정체성
왜 연료 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계속 달리는가? - 번아웃 신드롬 chr(124)_pipe 왜 내숭을 떠는 사람의 ‘내숭 까발리기’는 위험한가? - 사회적 가면 chr(124)_pipe 왜 페이스북의 투명성은 위험한가? - 단일 정체성 chr(124)_pipe 왜 ‘기억’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가? - 가짜 기억 증후군 chr(124)_pipe 왜 ‘진정성’은 위험할 수 있는가? - 진정성


제7장 자기계발과 조직
왜 ‘노드스트롬’과 ‘자포스’ 직원에겐 매뉴얼이 없을까? - 임파워먼트 chr(124)_pipe 왜 “준비를 갖추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하는가? - 미루는 버릇 chr(124)_pipe 왜 ‘시크릿’은 열성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는가? - 끌어당김의 법칙 chr(124)_pipe 왜 조직에서 승진할수록 무능해지는가? - 피터의 법칙 chr(124)_pipe 왜 무능한 사람이 조직에서 승진하는가? - 딜버트의 법칙

 

제8장 경쟁과 혁신
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는가? - 파괴적 혁신 chr(124)_pipe 왜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나은가? 큰 물고기 - 작은 연못 효과 chr(124)_pipe 왜 한국에선 ‘히든 챔피언’이 나오기 어려운가? - 히든 챔피언 chr(124)_pipe 왜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발전이 어려운가? - 자원의 저주 chr(124)_pipe 왜 풍년이 들면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가? - 구성의 오류
 
제9장 네트워크와 신호
왜 혁신은 대도시에서 일어나는가? 네트워크 효과 chr(124)_pipe 왜 2013 프로야구 FA 시장이 과열되었나? - 외부 효과 chr(124)_pipe 왜 유명 관광지나 버스 터미널 앞의 음식점은 맛이 없을까? - 레몬 시장 이론 chr(124)_pipe 왜 연세대엔 ‘카스트제도’가 생겨났을까? - 신호 이론 chr(124)_pipe 왜 기업들은 1초에 1억 5,000만 원 하는 광고를 못해 안달하는가? - 값비싼 신호 이론


제10장 미디어와 사회
왜 우리는 ‘옷이 날개’라고 말하는가? - ‘미디어=메시지’이론 chr(124)_pipe 왜 야구엔 폭력적인 훌리건이 없을까? - 핫-쿨 미디어 이론 chr(124)_pipe 왜 미디어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가? - 지식격차 이론 chr(124)_pipe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갈갈이 찢어지는가? - 사이버발칸화 chr(124)_pipe 왜 ‘잠재의식 광고’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가? - 잠재의식




생각의 문법


착각과 모방

왜 좋은 뜻으로 한 사회고발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가? - 사회적 증거

어느 심리학자는 남자 1명을 길모퉁이에 세워놓고 텅 빈 하늘을 60초 동안 쳐다보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그냥 지나쳤다. 다음번엔 5명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했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빈 하늘을 응시한 행인은 이전보다 4배 많아졌다. 15명이 서 있을 땐 길 가던 사람 가운데 45퍼센트가 멈춰 섰으며,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무려 80퍼센트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1968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실시한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나타난 게 이른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다.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믿음은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증거는 이른바 ‘동조(conformity)’ 현상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동료의 압력이나 징계가 두려워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볼 것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하늘을 응시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미국의 홈쇼핑 구성작가 콜린 스족(Colleen Szot)은 흔하디흔한 카피를 사회적 증거의 법칙에 따라 바꿈으로써 대박을 터뜨렸다. 구매를 유도하는 너무나도 익숙한 문구 “상담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전화해주세요”를 “상담원이 지금 굉장히 바쁘네요. 다시 전화해주세요”로 바꾼 것이다.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연구팀은 그런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이용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증을 치료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를 두려워하는 유치원생들을 모아 놓고, 한 남자 아이가 개를 데리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하루에 20분씩 보여주었는데, 단지 나흘 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무려 67퍼센트의 아이들이 개를 데리고 놀이기구에 올라가는 등 개와 재미있게 놀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증거의 법칙은 좋은 뜻으로 한 사회고발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한다는 정보에 접하게 되면, 그런 대세에 따르려는 심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수전 와인솅크(Susan M. Weinschenk)는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학(How to Get People to Do Stuff : Master the Art and Science of Persuasion and Motivation)』(201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전에 나는 대학 신입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대학 행정관이 말하기를 최근 3년 사이에 교내 기숙사에서 음주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200건이 넘었다고 했다. 그는 캠퍼스 내에 음주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시도한 갖가지 방법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상태였다. 행정관은 그 자리에 모인 300명의 신입생들에게 다른 많은 학생들이 교내에서 술을 마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은 음주 문제를 줄이기는커녕 더 증가시킬 확률이 높다.”


미국 애리조나의 ‘화석의 숲’ 국립공원은 관광객들이 화석화된 나무를 가져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국립공원 관리자들은 이런 표지판을 세웠다. “나뭇조각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 우리의 유산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작은 조각 하나씩만 가져가도 매년 14톤가량의 석화된 나무가 유실됩니다.” 그러나 이 표지판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 표지판을 본 어느 여성은 남자 친구에게 “우리도 하나씩 챙겨야겠는데!”라고 말했다는데, 이런 식으로 표지판이 나뭇조각을 가져갈 마음이 없는 사람까지 동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치알디니를 비롯한 애리조나대학 연구팀은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석화된 나무를 가져갔기 때문에 숲이 훼손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표지판, 그리고 “숲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공원에서 석화된 나무를 가져가지 마십시오”라는 문구의 표지판을 세운 뒤 두 표지판의 효과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세 번째 경우는 아무 표지판도 세우지 않아 실험군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표지판을 세우지 않은 실험에서 전체 나뭇조각의 2.92퍼센트가 도난당한 반면,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 메시지를 전달한 첫 번째 표지판의 경우엔 7.92퍼센트가 도난당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뭇조각을 훔쳐가지 마라”는 메시지만 전달한 경우엔 1.67퍼센트가 도난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이 좋은 뜻으로 한 사회고발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의 법칙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고발을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원리에 따라,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의 역효과를 염두에 두고 사회고발을 신중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겠다.



예측과 후회

왜 우리는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가? - 정서 예측

공포영화의 대가인 영화감동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ock, 1899~1980)은 “폭탄이 터지는 것에는 공포가 없다. 공포는 오직 폭발이 일어나리라는 예감에 존재한다”고 했다. 폭탄만 그런 게 아니다. 두렵게 생각하는 모든 일에 대한 공포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감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 미국 버지니아대학 심리학자 팀 윌슨(Tim Wilson)과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1957~)는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자신의 적응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긍정적․부정적 사건들의 여파가 실제보다 오래갈 것으로 착각하는 걸 말한다. 우리 속담에 “미리 사서 걱정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정서 예측’의 핵심을 잘 말해준다. 반대로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 역시 그런 ‘정서 예측’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팀 윌슨은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사건들의 여파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쁜 일이 생긴 직후에는 불행을 느끼지만 많은 심리적 기제들을 동원하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평소의 감정 상태로 되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좋은 일도 새로움이 사라지면 더 이상 행복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또 대니얼 길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고무되거나 비참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영속성 편향(durability bias)’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생겨나면 우리는 모두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옳지 않지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면역 무시(immune neglect)’를 하게 된다. 면역 무시란 현재의 심리 상태가 항구적이고 고정적이며, 우리 뇌의 어떠한 심리적 면역 체계(psychological immune system)도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일시적인 착각을 말한다. 즉, 우리는 모욕이나 패배, 후회와 상실의 고통에서 막아주는 심리적 면역 체계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탠리 래치먼(Stanley J. Rachman)dl 실시한 정서 예측 실험에선 뱀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들을 뽑아서 이들에게 뱀을 보여주거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이들에게 작은 금속제 벽장 안에 서 있도록 했다. 이 실험을 통해 래치먼은 공포스러운 대상에 대한 실제 경험은 실험 참가자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덜 무서웠다는 점을 발견했다.


정서 예측과 관련된 인지 편향으론 ‘영향력 편향(impact bias)’, ‘초점주의(focalism)’, ‘감정이입 격차(empathy gap)’ 등이 있다.


‘영향력 편향’은 정서적 사건에 관해 예상할 때, 그 영향력을 실제보다 강하고 오래갈 것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충격 편향’이라고도 한다. 영향력 편향은 긍정적인 사건이나 부정적인 사건 모두에 해당한다. 이를 밝혀낸 대니얼 길버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직업적 성공, 애정 관계 형성, 원하는 물건 구매, 원하던 곳으로 떠난 여행 등에서 느끼는 행복이 대단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긍정적 사건에 의한 감정은 예상보다 변화폭이 좁고 지속 시간은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 실패, 낙선(落選), 가족의 죽음 등 부정적 사건에 의한 감정의 변화폭과 지속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버트는 이런 영향력 편향이 생기는 이유를 정보 집중의 문제라고 밝혔다. 특정 미래 시간에 생각을 집중하면서 다른 사건이 어떻게 되는지 무시하기 때문에 특정 사건의 영향력만 과대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점주의 또는 ‘초점 편향(focusing illusion)’은 어떤 사건에 대해 다른 요소들은 무시한 채 세부적인 특정 사항에 너무 초점을 맞출 때에 일어나는 편향을 말한다. 초점주의는 결정을 내릴 때에도 발생한다. 우리 일생의 큰 결정들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몇 개의 작은 부분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으로 소득을 과대평가하거나 투자자가 시장에 대한 한 가지 보고서나 언론 보도에 사로잡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초점 편향으로 볼 수 있다.


‘감정이입 격차’는 우리 인간은 주어진 각 상황에 따라 감정을 이입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선택하는 행동도 각각 달라진다는, 즉 우리 인간의 이해는 ‘상황 의존적(state dependent)’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개념이다. 카네기멜런대학의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조지 뢰벤스타인(George F. Loewenstein, 1955~)이 만든 말로, ‘핫-콜드 감정이입 격차(hot-cold empathy gap)’이라고도 한다.


뢰벤스타인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약속한 날짜에 청중이 많은 무대에 나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자원자가 물밀 듯이 몰려들었지만,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지원자가 참가를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뢰벤스타인은 인간의 심리 상태를 불안, 용기, 공포, 열망, 흥분과 같은 뜨거운 상태(hot state)와 이성, 합리성 같은 냉정한 상태(cold state)로 나누었다. 지원자는 처음엔 냉정한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계산을 해서 상황을 판단했지만,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면서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뢰벤스타인의 설명이다. 즉, 처음에는 돈이 중요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청중 앞에서 춤을 춰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선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것도 문제지만, 걱정을 하지 않다가 막상 일이 닥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갖는 것도 문제일 게다. 정서의 불안정성을 말해주는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에 충실한 삶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정서적 충격을 받았을 땐 현재보다는 과거나 미래로 눈을 돌리는 게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집중과 몰입

왜 우리는 시끄러운 곳에서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나? - 칵테일파티 효과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음만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온갖 잡음이 섞인 칵테일파티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똑똑하게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인지과학자] 콜린 체리(Colin Cherry, 1914~1979)는 그런 능력을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불렀다. 오늘날 칵테일파티 효과는 칵테일파티나 나이트클럽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대화가 가능하거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이야기를 골라 들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는 자기에게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 덕분이다. 이 효과는 감각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감각기억은 청각에서 일어나는 잔향 기억과 시각에서 일어나는 영상 기억으로 구분되는데, 칵테일파티 효과는 잔향 기억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칵테일파티 효과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의 선택적 지각을 끌어내야만 하는 광고제작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러 실험 결과,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좋아하거나 구입했거나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브랜드에 대해 중립적인 사람에 비해 그 브랜드 광고를 지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의 상당 부분도 칵테일파티 효과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가내수공업 소음에 시달린다는 민원들을 확인해보면 거의 사실 무근이었다.” 이와 관련, 신광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윗집은 갈등이 길어지면 아랫집이 과민반응을 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소음저감 노력을 해도 항의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때 아랫집은 실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이다.……윗집에서 나는 특정 소음에 오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이다.……의사가 일반인보다 청진기를 통해 나는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이 효과에 따른 것이다.”


조준현은 칵테일파티 효과를 ‘리어왕 효과’로 부른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리어왕의 비극도 결국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적 지각의 문제는 대인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선택적 지각으로 인해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타인의 무심한 행동도 자신을 무시했다고 곡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적 지각이 완벽해지면 망상증 환자가 된다.


이스라엘 출신 인지신경과학자인 엘라나 지온 골룸빅(Elana Zion Golumbic) 연구팀은 칵테일파티 효과에 대한 발견이 주의집중장애(ADD․ADHD)와 자폐증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뉴욕에서 단 자빗 박사(Dr. Dan Javitt)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골룸빅은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환경이 이런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dp 강한 영향을 미치는지가 다음 과제입니다. 우리는 주의집중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알아낼 수 있겠지요. 그것이 이 연구의 다음 방향입니다.”


100여 년 전 윌리엄 제임스(Wiliam James, 1842~1910)는 “세상은 쿵쿵대고 윙윙거리는 시끄러운 혼돈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만 그런 상태를 견딜 수 있는 걸까? 칵테일파티 효과의 인터넷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칵테일 효과’도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걸까? 인터넷 칵테일 효과는 인터넷 서핑 중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유저가 의도적으로 감각기관을 차단해 듣거나 보거나 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칵테일파티처럼 시끄러운 곳에서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축복으로 여겨도 무방하겠지만, ‘정보 편식’을 조장하는 ‘인터넷 칵테일 효과’는 사회적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코 반길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네트워크와 신호

왜 기업들은 1초에 1억 5,000만 원 하는 광고를 못해 안달하는가? - 값비싼 신호 이론

2014년 2월 2일 개막된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2014 슈퍼볼’의 광고비가 사상 최고액을 돌파했다. 이 슈퍼볼 광고비는 30초 한 편당 400~450만 달러 선으로 지난해 380만 달러보다 비싸졌음에도 경기를 2개월여 앞두고 광고가 완판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시장조사업체 커뮤니커스에 따르면, 지난해 선보였던 슈퍼볼 광고의 20퍼센트만이 실제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었다. 슈퍼볼 광고의 효용성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는데도, 왜 기업들은 1초에 1억 5,000만 원이나 들어가는 광고를 못해 안달하는 걸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1943~)의 신호 이론을 정보 내용이 없는 매우 비싼 광고를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늘 광고를 화려하게 만드는 코카콜라가 대표적인 예이며, 1초에 1억 5,000만 원이나 들어가는 슈퍼볼 광고를 기업들이 앞다퉈 하는 이유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광고가 매우 비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잠재 고객들은 그것을 높은 품질의 제품을 계속 생산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연결시키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게임 이론에서 광고를 가리켜 ‘캐시 버닝 시그널(cash-burning signal)’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돈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이벤트, 즉 터무니없이 비싼 광고를 해댐으로써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해 소비자들의 궁극적인 신뢰를 얻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슈퍼볼 광고의 단기적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는 살아남는 덴 백해무익(百害無益)이지만 암컷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지녔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작용한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dl 말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도 수컷이 암컷 앞에서 꼬리를 펼쳐 으스대는 행동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신호는 신호이되 값비싼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을 가리켜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 1928~)는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를 ‘장애 이론(handicap theory)’으로 설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수공작의 꼬리가 수컷에게 장애가 되면 될수록 수컷이 암컷에게 보내는 신호는 그만큼 더 정직하다. 수컷이 긴 꼬리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암컷에게 수컷의 난관 극복 능력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인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공작의 꼬리는 장애가 되지 않을 때보다 장애가 될 때 더 빨리 진화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가 결국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자하비의 기발한 논리는 ‘정직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장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로맨틱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과시적 소비인 셈이다. 상대의 사랑을 위해 과도한 선물 공세, 과도한 웃음,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 디에고 감베타(Diego Gambetta, 1952~)는 ‘값비싼 신호 이론’이 범죄자나 조폭이 왜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는가 하는 것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잠재적 ‘영업 대상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문신을 통해 신호를 보냄으로써 ‘영업’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으며, 조직 내부엔 자신이 헌신적인 구성원이라는 신뢰의 신호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를 통한 신호 보내기는 꼭 잠재적 소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잠재적 구경꾼들도 주요 대상이다. 예컨대, 고급 자동차인 BMW는 대중적인 잡지에도 광고를 싣는데, 그 목적은 구경꾼들이 그 차를 살 능력이 있는 소수를 존경 어린 눈으로 쳐다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잠재 고객들의 구입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신호에 민감한 사람은 ‘동조(conformity)’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방 경쟁’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이들은 혁신과 창의성을 위해 신호에 덜 민감하게 굴 것을 요청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랴. 일상적 삶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질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우리가 어찌 남들의 신호에 둔감할 수 있으랴. 신호 주고받기는 우리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미국 뉴멕시코대학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F. Miller, 1965~)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기가 많은 유인원은 오래 살고 번성하며, 따돌림을 당하는 유인원은 새끼를 낳지 못하고 죽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사회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지지자, 동맹자, 친구들에게 우리의 개인적인 자질들을 과시하는 강한 본능을 갖도록 진화했다.”


물론 남녀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은 상대방의 신호를 얼마나 잘 간파해내느냐 하는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 1953~)는 ‘머리가 텅 빈 금발 미녀(bubble-headed blond)’라는 고정관념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들은 실제로 지적으로 모자란 게 아니라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접근해 보라는, 심지어 성적인 접근도 좋다는 전략적 신호의 일환으로 그러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머리가 텅 빈 금발 미녀’는 값비싼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사실 이성적 판단과는 거리가 먼 남녀 관계야말로 값비싼 신호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썸 타기’는 가벼운 수준의 ‘신호 전쟁’이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상대에게 값비싼 신호를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내 모든 걸 다 드리겠어요”라거나 “사랑밖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식으로 절규하는 대중가요가 많은 것도 그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미디어와 사회

왜 미디어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가? - 지식격차 이론

지식격차 이론(knowledge-gap theory)은 1970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필립 티치너(Phillip J. Tichenor), 조지 도너휴(George A. Donohue), 클라리스 올리엔(Clarice N. Olien) 등이 제시한 것으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체계에 주입된 매스미디어 정보가 증가하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집단은 이러한 정보를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집단보다 빠른 비율로 습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집단 간의 지식격차는 감소한다기보다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 가설은 ‘미디어 이용→지식격차→빈부격차’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물론 ‘지식격차 가설’은 “하층 사람들은 완전히 무식한 상태에 머문다(또는 지식이 없으면 없을수록 절대적인 의미로 가난해진다)”라는 것이 아니라 “상층 사람들의 지식 증가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상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의미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티치너 등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이유를 들어 지식격차 가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차이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기초적인 정보처리 능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2) 저장되어 있는 정보량, 즉 이미 습득된 지식의 양에는 차이가 있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혹은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서 이미 토픽을 알고 있을 것이다.

(3)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주제와 관련된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할 것이다. 즉, 그들은 공공의 사건이나 과학 뉴스 등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러한 주제에 관해 토의할 것이다.

(4) 선택적 노출, 수용, 보유의 메커니즘이 작용할 것이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태도와 가치에 부합되는 공공사건이나 과학에 관한 정보를 추구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그러한 정보에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5) 매스미디어 체계 자체의 본질은 그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추어졌다는 점이다. 공적인 사건들과 과학에 관한 뉴스의 많은 부분은 인쇄 미디어에 나타나는데 인쇄 미디어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흥미와 취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지식격차 가설은 뉴미디어가 왕성하게 도입되는 정보화 사회에서,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낙관론자들은 ‘정보의 불평등’ 현상은 일시적일 수는 있어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확산이 그런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또한 이들은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아 더욱 신뢰하기 어렵다.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격차’ 또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는 바로 이 지식격차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디지털 격차는 교육 분야 등에서 이른바 ‘참여격차9participation gap)’로 이어져 정치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디지털 문화의 내용에 따른 국제적 격차도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사례다. 한국은 인터넷 선진국이지만, 한국의 인터넷은 정보 추구형이 아닌 오락 중심형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디지털 격차’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은 오히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의 휴대전화다. 한국은행 조사에서 한국 가계의 목적별 소비 지출(2005년 명목금액 기준)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비의 비중은 5.4퍼센트로 미국의 1.6퍼센트에 비해 3배 이상 높았으며 일본의 3.1퍼센트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었다.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통신비는 2008년 1분기 13만 4,086원에서 2013년 1분이게 15만 7,579원으로 5년 만에 17.5퍼센트 늘었다. 이에 대해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2G나 3G 폰을 쓰고 싶은 수요가 있는데도 정부나 통신사의 정책은 고가 스마트폰에 맞춰져 있다”면서 “이런 것들이 최신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지갑까지도 억지로 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엘리자베스 데일리(Elizabeth Daley)는 그동안 글에만 한정된 리터러시(literacy)의 개념을 음향적․시각적 요소까지 확장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디지털 겨가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의 격차가 아니다.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기기가 작동하는 데 배경이 되는 언어를 알아야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의 격차다. 달리 말하면, 단지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런 언어를 쓸 줄 알고, 그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단지 읽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동국대 신문방송학교 교수 이호규는 “정보격차의 해소는 단순히 컴퓨터 등의 하드웨어의 균등한 분배를 의미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정보를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어떤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며 그 미디어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선 빈곤층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에드 메이요(Ed Mayo)와 아그네스 네언(Agnes Nairn)은 2009년에 출간한 『컨슈머 키즈(Consumer Kids)』에서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더 형편이 나은 아이들에 비해 컴퓨터 앞에서 받을 먹을 확률이 9배,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를 하고 있을 확률이 5배 더 높다고 밝혔다. 빈곤층과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에서 취하는 건 주로 엔터테인먼트이며, 격차를 우려해야 할 정보와 지식은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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