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전다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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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15500
2014�� 11��



■ 책 소개

취업 전쟁 중인 대한민국에서 생존을 위한 모색!  

 

21세기 대한민국은 ‘취업 전쟁’이 한창이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도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우며 육아로 휴직했던 기혼여성이 다시 회사에 복귀하기도 어렵다. 또한 중년의 은퇴자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는 이러한 취업의 냉혹한 전쟁터 속에서 세 명의 20대 젊은이와 한 명의 기혼여성이 직접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 그 속살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에는 인턴기자였던 세 젊은이(전다은, 나해리, 강선일)가 날 것 그대로의 취업 준비 과정을 보여준다. 기혼여성인 정은주 기자도 이들과 함께 ‘취업 도전기’를 중심으로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취업 현실과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는 대한민국 기혼 여성의 실태, ‘시간제 일자리’ 제도의 허상을 보여준다. 이에 더 나아가 심리학자 김환은 세 젊은 저자를 상담하고 그들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무엇이 ‘취준생’을 힘들게 하는지 대처법을 조언해주며 마지막으로 국내외의 취업자 및 취업 준비생, 인사 담당자들의 인터뷰까지 실어 하나의 생존 투쟁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과연 우리에게 당연한 것인지 깊게 생각하게 한다.  

 

■ 저자

전다은

1986년생, 서울 독산동에서 태어난 뒤 곧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나왔다. 2004년에 동덕여자대학교 자연과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방황 끝에 제적당했고, 재입학할 때까지 5년 동안 대형마트, 통신사 대리점, DVD방, 전통찻집, 갈빗집, 호텔 라운지 등에서 일했다. 이런 기억을 더듬어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를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취업 준비생이 책까지 낼 수 있다니, 세상은 아직 살 만하구나.’  


강선일

1986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마치고 수도권으로 이사 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사 주신 5권짜리 《만화 한국사》를 읽고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결국 국민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사는 삶을 꿈꾸다가, 2013년 초 남북 대치 상황의 김포 주민에 대해 쓴 기사로 《오마이뉴스》 기사 공모전 ‘청춘기자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관한 글을 써 《오마이뉴스》에서 한 번 더 상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자신과 같은 ‘취업 준비생’을 다룬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로 이어 가게 되었다.  

 

나해리

1990년생. 5살 때부터 내리 고양시에서 살아왔다. 영어와 문학을 좋아해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3살 때부터 적성에 맞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영문학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역시 흥미로운 학문은 아니었다. 2년 동안 취업 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지기만 했다. 연속된 불합격으로 의기소침해하다가 인연이 닿아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은주

매주 금요일 마감 시간이 되면, ‘이 세상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따로 있지 않을까’ 괴로워하며 밤새 기사를 쓴다. 13년째 고달픈 인생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택한 탓이다. 이런 고민과 고통을 세 젊은이와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대학 학보사를 거쳐 2002년에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가 됐고, 2010년에 《한겨레》 경제부 기자가 됐다. 현재 《한겨레21》 사회팀장이다.  


■ 차례

첫 번째 추천의 글: 이 지옥을 바꿀 수 있을까요? - 굽시니스트(만화가)

두 번째 추천의 글: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기 ? 김영란(서강대학교 석좌교수, 前 대법관, 前 국민권익위원장)

편집자 서문: ‘나는 왜 이 시대, 그리고 이 나라에 태어났을까?’

 

I. 취업 전쟁 시대: 세 젊은이와 마흔 살 기혼 여성의 취업 체험기

I - 1. 서른이 다가오는 여자: 전다은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
스펙을 쌓아라
벌지는 못하는데 쓸 곳은 많다
또 다른 전쟁터, 취업
스터디 3개월
채용설명회의 진면목
취업 전쟁!
나는 몇 점짜리 인간인가?  

 

I - 2. 인문학을 전공한 잉여: 강선일

백수 일기
난 앞으로 ‘무엇’이 될까
공모전에 뛰어들다!
백수는 어떻게 사는가
취업 좀 시켜주세요
보험회사에서의 일주일 - 영업 사원 교육 체험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I - 3. 그럭저럭 괜찮은 스펙의 대학생: 나해리

내가 대학생 맞나요?
평범한 여학생, 그리고 취업준비생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전사로 거듭나다  

I - 4. 마흔 살의 기혼 여성: 정은주

현직 기자의 ‘위장 취업’ 분투기

 

II.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가?: 취업 준비생 심리 분석

II - 1. 세 차례의 심리 상담

첫 번째 상담 - 나를 증명하고 싶은 욕심
두 번째 상담 ? 꾸며진 나와 진짜 나의 차이
세 번째 상담 - 미래에 대한 불안감  

II - 2. 상담 결과 분석 및 취업 준비생을 위한 조언

상담에 대한 종합 평가
취업 준비생을 위한 심리학자의 조언 
 

III. 독일의 청년부터 한국의 ‘아줌마’까지: 세계 취업 현실

III - 1. 세계는 어떻게 취업하고 있는가

독일 – 1 우리도 힘들지만, 여유는 있다
독일 - 2 ‘미니잡’의 어두운 그늘
네덜란드 - 1 당신이 부르면 나는 간다’
네덜란드 – 2 네덜란드 모델의 장점과 한계
덴마크- 취직 못 해도 매달 200만 원을 받지만…
캐나다|‘취업은 여기에서도 어려워요’

 

III - 2.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

20대 - 시간제 일자리의 압박
30대 - ‘육아냐 일이냐’
40대 ?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어보지만…
50, 60대 - ‘밑바닥 일자리’밖에 없다

 

III - 3. 취업자 및 해외 관계자 인터뷰

CJ 영업 마케팅 신입 - ‘운이 좋았지요’
기아자동차 신입 - 대기업을 여러 번 옮기다
한국장학재단 2년 차 - 바늘구멍을 통과했지만…
방위사업청 6개월 차 - 6시 퇴근의 즐거움
양돈농협 2년 차 - 먼저, 자리를 잡아라
토목설계 6년 차 - 빽 없는 설움
공무원시험 준비생 -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외국계 기업의 인사 담당자 - ‘앉아 있지 말고 움직이세요’
영국의 대학생 - ‘한국의 스터디 문화는 정말 기이해요’
캐나다 대학 취업지원실 직원 ? ‘이제 1학년 학생도 찾아옵니다’
캐나다 고용지원센터 담당자 - 취업 전쟁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해제: 취업은 어떻게 ‘삶의 목적’이 되었는가 ? 노정태

청춘은 이렇게 사라졌다

금융위기와 청년들의 발버둥

‘취업 준비생’이라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

대한민국의 양반과 중인과 상놈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서른이 다가오는 여자 : 전다은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

대학에 돌아오다

2010년, 대학에 재입학했다. 대학으로 돌아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대학 중퇴자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5년간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생긴 공부에 대한 허기, 또는 절박함이었다. 지금 다시 공부하지 않으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노년이 돼서 대학 공부를 마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하지만 공부에 나이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신입생들보다 고작 6살 많았지만 대학에 재입학한 것을 후회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하물며 흰머리가 난 상태에서 20대들과 한 강의실에 앉아 야릇한 시선들을 감당하기는 싫다는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30살에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도 20대일 때 공부하는 것이 여러모로 현실적인 선택이다.


수능 점수가 인생을 결정한다

내 전공인 보건관리학은 사실 의무기록사 양성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건관리학과 학생들은 일반인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의무기록사가 되기 위해 4년을 공부한다. 졸업만 하면 의무기록사가 되는 게 아니다. 면허증을 따기 위해 시험도 봐야 한다. 의무기록사의 수요는 굉장히 적다.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자리가 좀 있을 뿐이다. 의무기록사라는 직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건관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학생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수능 점수에 맞춰 학교와 학과를 선택한 뒤, 가장 취업이 잘 되는 경로를 따르는 게 한국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 아닐까.


전공의 특성상 여러 실험 강의들을 들어야 했는데, 개중에는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 수업도 있었다. 동물실험을 하는 브랜드의 화장품은 되도록 피하고 동물원도 가지 않는 나에게 그 수업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한 학기 동안 내가 죽인 흰쥐의 수는 총 14마리였다. 수업 시작 전에는 뛰어놀던 녀석들이 한 시간 뒤 난도질을 당하고 신문지에 싸여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나는 ‘이 수업을 들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라도 이 녀석들은 죽었을 운명이다’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고작 30명 정도의 학생들을 위해 80마리의 쥐가 죽어 나갔다. 만약 이 수업이 나의 진로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면 합리화가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전공에서 떠나 있었다. 나뿐 아니라 그 수업을 듣던 학생 중 상당수가 아마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들을 갖게 될 것이었다.


대학의 게시판에는 여러 가지 특강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365일 붙어 있다. 한자 특강, 토익 특강, 취업 특강, 채용설명회 등. 대학은 이제 취업 학원이다. 취업률이 학교의 질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문예창작과 전공수업을 들어도 소설가인 교수들의 입에서 취업 이야기가 나온다. 취업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자는 낙오자가 돼 멸시를 받는다. 텔레비전이나 뉴스에 나오는 취업 준비생, 즉 백수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비참하다. 운동복 차림에 떡 진 머리를 한 채 컵라면을 먹으며 빈둥빈둥 노는 인간쓰레기. 이런 모습은 하나의 전형으로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불합격의 추억

인생사와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모조리 내놓고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는 일은 절대로 유쾌할 수 없는 일이다. 불합격 통보는 여러 형태로 온다. 문자메시지로 오기도 하고 메일로 오기도 하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간혹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음으로 불합격 통보를 대신하는 기업도 있다. 그럴 때는 눈치껏 불합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도 능력이다. 헌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매번 희망을 버리지 못한 나는 몇 번이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불합격이라는 확답을 받아냈다. 일찍 포기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텐데 왜 매번 실보다도 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또 떨어지다

가장 최근엔 유력 시사주간지 인턴기자 직에서 떨어졌다. 이 시사주간지는 합격자 메일 주소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합격자 발표를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 친언니에게 “대신 해주라. 나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어”라고 하자 언니는 “야, 나도 무서워”라고 답한다. 이미 언니는 내게 불합격 소식을 전해준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내가 너무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미친 사람처럼 절규하는 통에 이제는 절대 결과를 대신 확인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확인해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아이디를 확인했다. 반 정도 확인했다. 아직 내 아이디가 없다. 나머지 절반 중에는 있을지 모른다. 하나씩 하나씩 확인해나갈 때마다 심장이 뛰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 같다.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스크롤을 내리기가 힘들다. 목구멍이 답답해진다. 결국 내 아이디는 없다. 손이 떨린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정규직 기자도 아니고 인터기자인데도 그만큼 절실했기에 마음이 아프다. 혹시 내 아이디가 있었는데 못 보고 내린 걸까?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본다. 내 아이디는 여전히 없다.


대신, 나와 함께 스터디를 하고 있는 친구의 이름과 아이디가 그곳에 있다.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프다. 사실 이 친구가 전형에 지원한 건 나 때문이다. “지금 거기에서 인턴 뽑는대. 한번 도전해봐. 저번에 최종에서 떨어졌으면(그녀는 같은 곳 정규직 기자 전형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인턴은 될 수도 있잖아.” 나는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녀와 함께 서류에 합격할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때 내가 떨어지고 그녀가 붙는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말해줬을까? 잘 모르겠다. 내가 전형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 명단에 그 아이의 이름 대신 내 이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펙을 쌓아라

영어 점수 올리기

여기도 빈자리가 없다. 오전의 토익 스터디가 늘어진 탓이다. 종로3가의 싼 밥집들은 이미 학원 수강생들로 가득했다. 다시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배가 꼬르륵거렸다. 오전 8시 반 강의를 들으려고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이침을 때웠다. 배고픈 것도 배고픈 거지만 너무 추웠다. 칼바람을 맞으며 종로3가에서 조금 더 걸어 종각 쪽으로 내려갔다. 청계천에 있는 5,000원짜리 불고기 백반집. 좁은 계단을 올라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6명이 다 앉기엔 비좁았지만,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이 식당은 싸면서도 반찬과 밥이 무한 리필되는 집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여기에도 자리가 없을 뻔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았지만 다들 말이 없다. 다들 ‘노랭이’ 영단어장에 시선이 고정돼 있다. 스터디에서 매일 단어시험을 본다. 오늘 나 벌금으로 1,500원을 냈다. 틀린 문제당 100원. 에누리는 없다.


점심을 먹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학원으로 돌아간다. 학원의 리스닝 테스트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면 각자 틀린 문제들을 점검한다. 채점하는 동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함께 스터디를 하는 현수가 내 시험지를 흘끔흘끔 본다. 오늘은 몇 개 안 틀렸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현수가 갑자기 펜을 던지며 말한다. “내가 외국계 회사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진짜.”


매일 아침 8시면 종로3가 금강제화 사거리는 학생들로 붐빈다. 학원 건물 밖의 한 귀퉁이는 그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커피 자판기 앞에는 졸음을 쫓으려는 발길이 이어진다. 학원 엘리베이터 앞에는 수십 명이 줄 서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부대까다가 강의실에 도착하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시 몸을 부대껴야 한다.


‘토익 900점 돌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스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곧 900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발에 채이는 게 토익 900점이라던데 나라고 못 하겠나.’ 그랬기에 월 14만 원의 학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점수는 올랐다. 단 5점. 나에겐 그 강의가 소용이 없었다. 학원비 28만 원, ‘노랭이’ 영단어장 1만 2,900원, 스터디 비용 1만 원, 시험 응시료 4만 2,000원, 거기에다가 스터디 벌금까지. 나는 토익 5점과 35만 원을 맞바꿨다.


IT 자격증은 유행에 민감하다

토익 학원에서 함께 스터디를 했던 한 친구는 수십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그는 IT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했다. 전공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30살이 되도록 졸업을 하지 못한 그는 자격증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이력서에 쓰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다양한 IT 자격증들을 따고도 취업에 실패하자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나도 컴퓨터 자격증을 하나 갖고 있다. 2011년 8월에 여름방학 두 달을 바쳐 딴 모스(MOS, Microsoft Office Specialist)가 바로 그것이다.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액세스 총 4번의 시험을 쳐야 했는데, 물론 응시료도 네 번 내야 했다. 한 번에 7만 9,000원이니, 네 번이면 30만 원을 넘는다. 거기다가 컴퓨터 학원 수강료와 교재비까지 합해 45만 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그런데 모스는 이제 찬밥 신세다. ‘돈만 들이면 누구나 따는 자격증’으로 격하됐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에선 입사 지원서 자격증 항목에 모스가 검색조차 안 된다. 이제 대세는 ‘컴활(컴퓨터 활용 능력) 1급’이라던데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수험생이 돼야 할 것 같다.


벌지는 못하는데 쓸 곳은 많다

‘취업 준비’는 결국 돈 싸움이다

“땅을 파 봐라, 100원짜리 하나라도 나오나.”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이다.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이 말이 제대로, 절실하게 다가온다. 움직이면 다 돈인 세상에서 취업 준비생도 예외는 아니다. 잡다한 비용이 쉴 새 없이 나간다. 밥값, 커피값, 스터디 룸 사용료, 출력비, 스터디 벌금, 교통비, 학용품값, 신문 구독료, 책값….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출력비다. 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저렴하게 출력할 수 있었다. 열 장을 출력해도 300원만 있으면 됐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스터디 룸이나 킨코스에서 출력할 수밖에 없다. 한 장당 100원이니 열 장을 출력하면 벌써 1,000원이다. ‘모아 찍기’와 ‘양면 출력’은 필수다. 많은 양의 출력이 필요할 때는 눈치가 보여도 종로에 위치한 형부 회사로 간다.


돈 들어갈 곳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100원짜리 하나 그냥 생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친구들은 보통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떤 친구는 7년째 같은 웨딩홀에서 일하고, 또 다른 친구는 1년째 경마장에서 마권을 발매한다. 평일엔 공부하느라 쉬지 못하고 주말엔 일하느라 쉬지 못한다. ‘백수가 가장 바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해요’

컵라면과 에너지 음료를 들고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았다. 훤칠한 키의 잘생긴 사회자가 무대로 올라갔다. ‘청춘, 스펙에 변명하지 마라’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현수막이 무대 위에 걸려 있다. 사회자는 첫 강연자인 최일구 전 MBC 앵커가 좀 늦을 것 같다면 양해를 구했다. 방청석은 이미 꽉 차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빗속을 뚫고 이곳에 모인 이들은 어떤 강연을 기대하고 있을까?


인쿠르트와 현대백화점이 공동 주최하는 ‘멘토’들의 토크 콘서트 현장이다. 최일구 앵커,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 방송인 홍석천이 강연자다. 나는 그들의 성공 이야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다못해 자기소개서에 인용할 만한 말 한마디쯤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토익 등의 스펙은 기업을 향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숫자는 ‘얘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예요. 스펙 없이 날 봐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가 말했다. “인정하세요. 세상은 1등만 기억해요. 좋은 학교 간 것도 능력이에요. 저는 이 세상이 좋아요.”


6시가 다 돼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컵라면과 에너지 음료를 든 채로. 나는 컵라면을 싫어한다. 에너지 음료도 싫어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것들이 청춘을 상징하게 됐다. 컵라면을 먹고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밤샘 토익 공부를 하는 청춘. 강연장을 가득 채웠던 젊은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청춘, 스펙에 변명하지 마라’라는 말이 ‘청춘, 스펙을 높여라’와 같은 뜻이었음을 되새기고 있을까?



취업 전쟁!

카스트가 나뉘다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정장을 입은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눈길을 끄는 그것은 그의 재킷에 달린 현대자동차 배지였다.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 됐을 텐데…. 애사심이 대단하네.’


남자친구 주현이의 졸업식 뒤풀이였다. 나와 주현이가 술집으로 들어서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각자의 명함을 건넸다. 배지를 단 남자는 유난히 열을 올렸다. “신입사원 연수교육 갔는데 왜 대기업 가는지 알겠더라. 예전엔 솔직히 그냥 남들이 좋다니까 가려고 한 거였는데 괜히 ‘대기업, 대기업’ 하는 게 아니더라니까.” 그는 교육 기간에 운동복과 간식을 받았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 CJ 들어오세요. 여자가 들어가기 제일 좋은 회사에요. 복지카드만 있으면 돈 쓸 일이 별로 없다니까요. 우리 회사는 미팅도 카페에서 해요.” 그들은 술에 취해 각자의 회사를 자랑했다. 나는 견디기 어려워 일찍 자리를 떴다.


유난히 조용했던 어떤 남자는 나보다 먼저 사라졌는데, 나중에 들을 바로는 어떤 중소기업에 입사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입사한 회사에는 신입사원 연수교육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9월 전투

오늘만 자기소개서를 3편째 쓰고 있다. 두산과 KT, CJ. 이 세 기업은 모두 내일이 채용 마감이다. 나는 오늘 총 5,650자를 써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다 써도 할 일은 남는다. 두산은 DBS(doosan biodata survey)를, KT는 KT핏 테스트를 해야 한다. 어린 조카 둘이 있는 집에서는 전투를 제대로 치르기 힘들다. 그러므로 나는 이른 아침부터 집 근처 카페에 진지를 구축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배가 고파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려면 식량도 필요하다.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왔다.


이런 날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취업 스터디에서도 자기소개서 첨삭만 하루에 서너 시간 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인·적성 공부와 시사상식시험, 면접 준비까지 해야 하지만 아무도 그럴 여유가 없다.


9월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여러모로 힘든 달이다. 현대, 포스코, 한화, LG, CJ, 두산, SK…. 9월 셋째 주와 넷째 주, 수많은 대기업의 공채 마감일이 몰려 있다. 또 그 와중에 추석까지 껴 있다.


두산 잡 페어에서 인사 담당자는 다른 기업의 이름을 미처 지우지 못하고 보낸 자기소개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해는 가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자기소개서는 버릴 수밖에.” ‘복사+붙여넣기’. 하루에도 몇 기업씩 지원이 마감되는 시즌에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누구나 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번엔 자기소개서 하나에 하루씩을 온전히 바치겠다고 다짐했지만 마감이 몰리자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도플갱어 자기소개서를 보내야 했다. 기업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판박이인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나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이어리에 적힌 기업들의 지원 마감일들을 그렇게 더듬더듬 지워나갔다.


서류 전형에서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다. 기업들은 인·적성시험을 한꺼번에 봤다. 서류 전형에 어렵게 합격해도 몇 군데는 포기해야 한다. 전형 일정이 하루에 몰려 있기 때문이었다. 취업 준비생들은 그런 날을 ‘인·적성 A매치 데이’라고 부른다. 이럴 때에는 하루에 두 개의 인·적성을 보기도 한다. 오전에 현대모비스 시험을 본 뒤 오후에 CJ 시험을 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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