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동물과 사람의 관계, 우리 삶의 진실은?
인간의 탐욕과 몰염치가 만든 거대한 동물원
인간의 거대하고 거침없는 욕망에 눌려 망가진 지구 생명체들에 대한 책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렵과 채취에 의존해 먹고 살던 인류가 우연히 동물들을 ‘울타리’ 안으로 들이며 생긴 변화에서 시작해, 현재 인간의 울타리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들 삶의 실상, 그리고 똑같이 자신이 만든 울타리에 갇혀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물들을 가축화하며 인류는 가끔씩 고기를 먹게 되었지만 대신 계급과 편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급기야 동물의 질병까지 얻게 된다. 맛난 살코기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한두 마리씩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을 한데 모아 키우는 이른바 ‘산업축산’이 등장하게 되고, 그 결과 동물과 인간에게 재앙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
■ 저자 박병상
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은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환경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생태적 시각으로 진지하게 혹 무성의하게 수행하다가 숱하게 잘렸다고 착각한다. 현재 인천 도시생태·환경 연구소 소장이다.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의 책무를 망각하고 독자와 대중에게 ‘느림의 권리’를 함부로 주장하는 이중인격의 소유자로, 후손의 처지에서 생태계의 질서를 허무는 생명공학을 반대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개발과 지역의 소통을 거부하는 대형 중앙 집중 편의시설, 그리고 땅의 황폐화를 부르는 단작(mono culture)을 반대한다. 대신 제철 제고장 농작물 먹기, 생태계와 문화의 다양성 회복하기,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사회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언제나 힘에 부쳐 허덕거린다.
참여의 가치를 설파하고,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시민운동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이은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환경운동도 가능한 시절이 왔으니 이제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행동에 나서자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환경칼럼을 연재하며,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개발에 반대하는 자로 악명을 쌓고 있다.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녹색의 상상력』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 차례
추천의 글_강수돌
들어가는 글
1장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온 동물
남성 중심 수렵채취 사회가 부른 슬픈 천형 chr(124)_pipe 경작이 가져온 편견과 계급 chr(124)_pipe 고기에 대한 욕망으로 동물을 길들이다 chr(124)_pipe 인간의 다양한 동물 사용법 chr(124)_pipe 총칼보다 무서운 백인의 질병
2장 산업축산의 탄생
살코기를 위해 키우던 가축 chr(124)_pipe 육종, 인간 탐욕의 끊임없는 선택 과정 chr(124)_pipe 극단적 육종, 허약해진 생명체 chr(124)_pipe 선망의 대상에서 ‘신앙’이 된 고기 소비 chr(124)_pipe 결국 고기가 아니라 석유를 먹는 것
3장 ‘숨 쉬는 햄버거’의 비극 공부법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소 chr(124)_pipe 추억 속의 얼룩송아지 chr(124)_pipe 프리미엄 젖소에서 최첨단 젖소까지 chr(124)_pipe 부드러운 살코기의 비가 chr(124)_pipe 쇠고기의 역습
4장 꼬리 잃은 돼지
인간과 더불어 산 돼지 생활사 chr(124)_pipe 공장식 사육장의 돼지 수난사 chr(124)_pipe ‘살처분’만이 답인가 chr(124)_pipe 생명공학의 총아가 된 돼지 chr(124)_pipe 미니 돼지? 애완 돼지!
5장 부리가 잘리는 닭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닭 chr(124)_pipe 그 많은 닭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chr(124)_pipe 싸구려 계란과 닭고기의 비밀 chr(124)_pipe 누드 닭에서 뱀닭, 싸움닭까지 chr(124)_pipe 양계장을 나온 산란용 닭의 깜짝 행복
6장 반려동물들의 애환
늑대, 최초의 가축에서 반려동물이 되기까지 chr(124)_pipe 본성을 억압해 키우면서 반려동물이라니! chr(124)_pipe 도축이 합법화되면 개고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chr(124)_pipe 음식문화 상대주의 논쟁 chr(124)_pipe 도둑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는 신세 chr(124)_pipe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만든 애완동물들
7장 실험동물과 동물원 안팎의 동물들
인간 질병을 안고 태어나는 쥐 chr(124)_pipe 제인 구달의 눈물을 닦아준 침팬지 chr(124)_pipe 제국주의를 따라 들어선 동물원 chr(124)_pipe 동물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동물 공연?
8장 인간 동물원의 가엾은 군상
홀로세의 공룡 chr(124)_pipe 생태를 참칭하는 반생태적 삶 chr(124)_pipe 우리는 누구인가: 생산인구에서 잉여인간으로 chr(124)_pipe 지구는 결국 제2의 ‘라파누이’가 될 것인가 chr(124)_pipe 인간을 보호하는 자연
나가는 글
참고문헌
탐욕의 울타리
들어가는 글
탐욕이 이끄는 산업사회는 어느새 한계를 맞았다. 지구 온난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바닥을 드러내며 치솟은 원유 값은 도무지 내려갈 줄 모르는데, 우리는 삶의 관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석유와 곡물 사료를 과소비하는 산업축산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남아도는 듯 보였던 세계 식량도 어느새 모자란다는 신호를 보낸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동물들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징후가 더 흉흉해지기 전에 삶의 궤적을 바꿔야 한다.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다분히 인간의 탐욕과 몰염치 때문이다. 후손의 내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와 탐욕의 역사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들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한다. 내인ㄹ의 대안을 서둘러 찾으려면 어쩌다 인간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동물들이 들려주는 애증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 동물원의 진상이다. 위기를 맞은 인간 동물원은 새로운 정언명령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해야 할 정언명령은 복잡하지 않다. 물려받은 땅에서 자연의 이웃과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어제의 삶이다.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온 동물
남성 중심 수렵채취 사회가 부른 슬픈 천형
이제 과학이 새로운 주술 사회를 이끌어가는 형국이다. 과학 자체보다 과학을 앞세운 탐욕스런 상업주의가 과거보다 훨씬 치명적인 주술 사회를 확산시키고 있다. 과학으로 자연의 생명을 예측 가능하게 개조하면서 나타난 주술 사회, 다시 말해 요즘 볼 수 있는 공장식 축산이 그 사례의 하나가 되리라. 값싸고 위생적이며 맛있게 대량 생산되는 살코기로 인류의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경작이 가져온 편견과 계급
왜 인간은 뒤늦게 경작이라는 기술을 깨닫게 되었을까? 인류학자의 지적대로 사냥할 동물이 드물어진 데에서 온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사냥감이 줄어들면 보통은 미련 없이 은거지를 옮겼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지 모른다. 경쟁 부족이 이미 주변을 차지했거나, 거기도 사냥감이 없거나.
그렇다면 경작 이후 인류는 고루 더 잘 먹고 살게 되었을까? 거의 모든 식량을 경작한 농작물로 얻는 현재의 우리는 당연히 그러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문화인류학자들은 경작과 더불어 인류의 영양 불균형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일시적으로 남아도는 것으로 보이는 식량을 다음 추수 때까지 동등하게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최초의 경작은 편견의 발로였다. 내가 먹기 위한 식물을 심기 위해 나머지 식물을 뽑아내야 했고, 내가 먹으려는 식물을 탐하는 곤충이나 초식동물을 몰아내야 했다. 또 경작은 마을에 분업을 낳았다. 농사꾼 외에도 갈무리한 농작물을 보관하여 지키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군인이라는 계급이 비로소 생겼을 터였다.
그런데 무기를 들고 창고를 지키는 자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기를 압도하는 힘이나 권력이 있어야 한다. 경작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은거지로 정한 마을을 잘 떠나지 않았고, 아마도 농사만 짓는 계층의 권력이 가장 약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작을 시작하며 인류 사회에는 다양한 계급이 출현했다. 편견은 분업을 낳았고, 체계적인 분업은 차별로 이어졌다.
고기에 대한 욕망으로 동물을 길들이다
인간은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서 자연의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료를 내줄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고기가 많이 돌아가는 걸 여력이 없는 사람은 참아야 했을지 모른다. 자연히 경작으로 인해 생긴 계층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골이 깊어졌을 것이다.
가축화의 역사는 비교적 근거가 명확하다. 오랜 선조가 살았던 동굴의 벽화와 동굴에서 발굴된 동물의 뼈를 근거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류가 가축화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주장이 다소 다르지만 가축화된 동물의 기원과 시기와 장소는 대체로 일치한다. 많은 대형 포유류 중에서 일부만 가축이 되었다는 점, 대부분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가축화에 성공했다는 점에 동의한다. 수렵 대상인 동물이라면 거의 가축화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대부분 길들이는 데 실패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진화학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조카인 생물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50여 년 전, 자연의 동물이 가축이 될 조건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튼튼하고, 둘째 천성적으로 사람을 잘 따르며, 셋째 생활환경에 대한 욕구가 까다롭지 않고, 넷째 유용성이 크고, 다섯째 번식이 자유로우며, 여섯째 사육과 관리가 쉬워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 여섯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동물만이 자연에서 사람 곁으로 들어와 가축이 될 수 있었으므로, 덩치가 큰 동물 중에서 가축이 된 종류는 매우 적었다.
요즘 새로운 동물을 가축으로 개량하려는 뚜렷한 움직임은 없지만, 가축을 용도에 맞게 극단적으로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육종)하는 연구는 세계의 여러 대학과 관련 연구기관에서 집요할 정도로 극성이다. 그 연구가 개나 고양이와 같이 품종이 다채로운 애완동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목장의 가축에 이르러서는 끔찍할 만큼 집요하다.
살코기를 위한 소는 우유를 위한 소와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삼계탕용 닭은 통닭용과 다르고 계란을 낳는 닭과 판이하다. 더 빨리 더 많이 살을 찌우기 위해 거듭해온 육종은 그 종의 선조가 가졌던 유전자의 다양성을 잃게 만들었고, 극단적으로 육종되면서 유전자 구성이 더욱 단순화되었다. 그러자 가축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현저하게 잃고 말았다.
요즘은 공장식 산업축산으로 가축을 키운다. 같은 사료를 먹으면서 덩치가 크고 작은 가축이 들쭉날쭉 뒤섞이면 안 된다.공장에서 요구하는 부품처럼 공장식 산업축산은 똑같은 크기와 성장을 요구한다. 게다가 고기를 위해 사육하는 가축은 다 자랄 때까지 키우지 않는다. 먹는 사료의 양에 비해 살찌는 속도가 느려지면 손해라고 계산해 그 전에 일제히 도살한다. 사육의 편의를 위해 목장은 같은 나이의 가축들을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사육하는데, 그 공간에 질병이 스며들면 금방 확산된다. 그래서 현대 축산은 가축의 질병 확산을 막는 데 있어서 매우 철저하다. 항생제를 섞은 사료를 주거나 감염된 몇 마리 때문에 목장의 모든 가축을 몰살시키길 주저하지 않는다. 가축의 입장에서 보면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산업축산의 탄생
살코기를 위해 키우던 가축
이제 예외적인 농가가 아니라면 자급자족을 위해 가축을 사육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힘겨운 농사일에 쓰려고 가축을 사용하는 농가도 거의 없다. 이제 가축 사육은 산업화되었다. 투자해서 이윤을 남기려는 자본이 목축의 영역까지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 집에서 동물을 키우던 시절은 지났다.
육종, 인간 탐욕의 끊임없는 선택 과정
자연에 두 무리의 양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한 무리는 풀이 부족한 북사면에 살아 덩치는 작지만 운동량이 많아 그런지 고기 맛이 뛰어나고, 다른 무리는 풀이 풍성한 남사면에 살아 덩치는 크지만 운동량이 부족해 고기 맛이 형편없을 때, 인간은 어떤 양을 가축으로 삼고 싶을까. 물론 덩치가 크고 고기 맛도 뛰어난 양을 바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런 양은 자연에 없다. 그래서 자연의 두 무리를 사로잡아 교배시킬 것이다.
고기 맛이 형편없으면서 덩치까지 작은 개체는 당연히 배제될 것이고, 결국 덩치가 크고 고기 맛도 좋은 개체들만 선택돼 남을 게 틀림없다. 인간들은 가장 좋은 개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에 드는 개체들끼리 교배시켜 나가겠지만, 원래 자연에는 없는 품종이다. 따라서 그런 품종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에 있을 리 없다. 결국 새롭게 육종한 품종은 사람이 보살피며 다른 품종과 분리해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여네 적응하지 못해 사라질 수 있고 양친과 같은 무리와 뒤섞이거나 도태될 가능성도 있다.
인간이 아무리 개체를 선별해 교배시키더라도 이따금 본성 드러내는 개체가 태어났을 텐데, 그런 개체의 경우 절대 교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하려는 유전자의 빈도를 품종 내에서 줄여갔을 것이다. 또는 태어나면서 처음 만난 인간에게 복종하다 보니 순치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지역 고유의 품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사육 방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멀어 다른 지역의 가축과 교배가 불가능했던 시절, 가축들은 지역에 따라 품종이 달랐다. 오래 전부터 농부에 의해 꾸준히 개량된 뒤 품종이 유지되는 과정을 거쳐 독특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까닭이지만, 그 전에 지역의 농경문화와 음식문화가 달라 육종과 사육의 방향과 방식이 다르게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극단적 육종, 허약해진 생명체
극단적인 선택을 일관성 있게 반복하는 인위적 선택은 환경 변화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정도에 따라 선택 압력이 유동적인 자연선택과 비교할 때, 결과가 즉각적이다. 그러나 그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급격하게 위축시킨다.
다양했던 유전자가 단순해진 가축일수록 사육 조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사육 조건이 까다로운 가축을 농가에서 한두 마리 소박하게 키울 수는 없다. 자급자족 농가는 신경 쓸 농사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 돼지에 얽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부의 환경 변화에 영향을 덜 받도록 엄밀하게 설계한 축사는 적지 않은 비용을 요구한다. 자급자족하는 농가는 값비싼 시설을 갖춘 축사를 보유하고 운영까지 감당할 경제력이 없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가축의 사육은 전문화되고 대형화해야 한다. 가축이 농가에서 나와 자본이 지배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독립한 것이다. 이른바 산업축산의 등장이다.
선망의 대상에서 신앙이 된 고기 소비
대량 소비의 시대는 영국에서 열었지만 고기 공급의 산업화는 영국의 몫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도제식 길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유럽은 감히 앞장 설 수 없었고,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미국이 선수를 칠 수 있었다. 미국은 소와 돼지의 도살을 자동화했다. 세계 최초인 1913년 포드 자동차의 조립라인은 당시 시카고 도살장의 돼지 분해라인을 역으로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축산과 고기 공급이 산업화될 수 있었던 건 소비가 받쳐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철도와 도로가 도시에서 마을 구석구석으로 연장되고 냉동기술이 보급된 데 힘입은 바 크다.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고기 소비는 대가를 요구했다. 목초지가 확산되고 사료 작물의 재배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생태계 파괴가 이어졌다.
『육식의 종말』에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고기 소비의 불편부당함을 고발한다. 부자 나라의 고기 과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수출을 위한 목장으로 밀어내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기회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기가 아니라 석유를 먹는 것
1960년대 미국에서 비롯된 산업축산은 과학이 선도했다. 가축을 생명이 있는 동물로 인식하기보다 고기와 가축과 우유와 계란 들을 생산하는 도구로 여기려 든 축산과학은 영악한 연구로 예측 가능한 사육을 만족시켰고, 그를 위해 울타리 안에 가축들을 빼곡히 밀집시켰다.
축산과학이 인도한 산업축산은 가축의 복지, 다시 말해 동물권을 박탈했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대부분의 포유류 어미는 자기가 낳은 새끼를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껏 보살핀다. 그것은 생명을 잉태한 어미의 권리다. 사람도 가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대의 산업축산은 가축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태어난 생명의 절반은 암컷이건만 짝을 찾는 일은 절대 금지되고 새끼를 낳는 임무도 일부에 한정시킨다. 선발된 암컷만이 그저 죽어라 새끼들을 낳는다. 그렇다고 아무 수컷하고 짝짓기를 하면 큰일이다. 고기의 질이 떨어지고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 짝짓기를 낭비로 보는 산업축산은 극소수의 수컷을 엄밀하게 선발해 죽는 날까지 정액만 배출하도록 강요한다. 그 정액으로 준비된 암컷에게 사람이 임신시킨다.
죽어라 새끼만 낳는 일부 암컷과 정액만 죽어라 배출하는 극소수 수컷 이외의 가축에게는 생ㅇ식의 기회가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고기용으로 어린 나이에 희생될 따름이다. 젖소 중 수컷으로 태어난 송아지도 마찬가지고, 돼지, 닭, 오리의 운명이 다 그렇다. 태어나자마자 빨리 몸집을 불리거나, 우유를 펑펑 쏟아내야 하거나, 알을 쉴 새 없이 낳아야 한다. 그를 위해 과학축산이 권고하는 사료만 먹어치우며 조아터진 공간에서 평생 꼼짝달싹하지 말아야 한다. 타고난 본성대로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거나 벌레를 쪼아 먹는 행복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요즘 대부분의 가축들은 유전자가 조작된 옥수수를 삼켜야 한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가끔 콩도 먹지만 그 역시 대부분 유전자가 조작된 상태다. 심지어 같은 종의 내장을 삼켜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자 예전에 없었던 질병이 만연했고, 질병을 막으려는 산업축산은 사전에 항생제를 투여하는 조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 여파는 인간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산업축산이 요구하는 옥수수 같은 곡물은 석유의 과다 투여 없이 재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머지않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운송에서 저장까지, 석유를 태우는 농기계와 거대한 운송 장비가 땅과 하늘과 바다에 총동원된다. 비료와 농약도 석유를 가공해서 만든다. 전문가들은 때를 같이해 머지않아 석유 위기의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석유 위기는 곡물 생산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산업축산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옥수수에서 1,000칼로리의 열량을 수확하려면 석유 1만 칼로리를 부어야 한다. 산업축산은 가축에게 옥수수가 아니라 석유를 먹이는 셈인데, 우리는 석유가 아니라 고기를 먹는다고 믿는다.
숨 쉬는 햄버거의 비극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소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의 소를 발굽 달린 메뚜기 떼로 표현했다. 백인들이 정착하기 한참 전부터 떼로 이동하던 들소들이 아무리 밟아대도 미국 중부의 대초원은 다양한 풀들로 무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들소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소가 울타리 안에 갇혀 땅을 짓이기기 때문에 땅에서 풀이 자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분뇨로 뒤덮인 축사 안에서 되새김질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자라는 소가 미국에 1억 마리 이상이고, 그 소들이 먹어치우는 옥수수는 미국인이 먹는 곡물의 두 배, 1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부드러운 살코기의 비가
쇠고기가 부드러우려면 살아 있는 소의 근육 내에 지방의 함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단백질 사이에 지방이 물결치도록 운동량을 최소로 줄이고 영양분이 넘치는 사료를 듬뿍 먹여야 한다. 비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지방이 대리석처럼 물결치든, 이슬처럼 점점이 박혔든, 단백질보다 지방이 많은 살코기는 부드럽기 짝이 없지만 그런 근육을 가진 송아지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잔혹한 사육 방식에 의해 어린 나이에 그만 불구가 된 것이다. 그뿐인가. 되새김질을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생리에 맞지 않는 사료만 먹어야 하는 탓에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을 얻어 죽을 수도 있다. 섬유질을 압도하는 사료 속 전분이 혹위에서 거품을 형성하며 부풀어 올라 폐를 압박할 경우 질식할 수 있으므로 인부는 그때마다 서둘러 혹위까지 호스를 찔러 넣어야 한다. 그도 저도 귀찮으면 축산과학이 나선다. 돈이 들어가지만 혹위 속을 몸 밖에서 들여다보며 해결할 수 있도록 옆구리에 구멍을 뚫는다.
그뿐이 아니다. 옥수수는 소화되며 산성이 된다. 중성이어야 할 소의 위가 산성화되면서 궤양이 생기고, 궤양은 위염과 간질환, 면역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옥수수 사료만 먹는 소는 간이 망가져 보통 5개월을 넘기기 어렵지만 강력한 항생물질이 그 위기를 넘기게 한다. 이는 항생제 내성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쇠고기에도 항생제 성분을 남길 수 있다. 그렇게 1년 이상 키우면 아직 송아지인데 어느덧 다 자란 소의 몸집이 되고 몸은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먹는 사료량에 비해 몸집이 늘어나는 효과가 낮아지면 머지않아 도살할 때가 되었다는 걸 의미할 텐데, 이미 더 오래 살 능력을 잃었다. 그때가 대략 생후 20개월 전후다. 아래 턱 앞니의 젖니가 영구치로 바뀔 때이므로 사람으로 치면 일곱 살 언저리다.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소는 이래저래 죽는다.
쇠고기의 역습
인간에게 광우병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건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일 것이다. 쇠고기나 소 도축 부산물에서 기원하는 소의 변성 프리온을 음식으로 섭취할 경우, 문제의 프리온이 먹은 이의 뇌로 가서 뇌를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염된 소를 도축해 얻은 쇠고기를 가공과 포장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생길 경우 피부를 통해 소의 변성 프리온이 침투할 수 있다. 광우병 감염자의 피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혈돼 감염된 사례가 있고,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감염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적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교훈을 호되게 새긴 영국은 소 육골분을 소 사료에서 제외했지만 광우병 소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소 육골분을 먹은 돼지와 닭의 육골분을 소에게 먹였던 것이다. 교차오염에 놀란 영국은 결국 모든 육골분을 소 사료 목록에서 제외했고, 이후 영국의 소는 비로소 광우병에서 자유로워졌다. 영국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도 같은 길을 따랐다. 그러나 미국의 축산 자본만은 여전히 가격이 싼 살코기를 생산하기 위해 귀를 틀어막고 있다.
꼬리 잃은 돼지
공장식 사육장의 돼지 수난사
산업축산의 비정한 정도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위아래 턱의 송곳니 여덟 개가 절단되고 꼬리도 잘린다. 동물복지에 어긋난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해 과학축산은 어금니로 어미의 젖꼭지를 물어 상처 내는 걸 방지해야 하고 철분이나 영양이 부조한 새끼들이 장차 서로 꼬리를 물어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2주에서 3주가 지난 어린 수컷은 거세를 한다. 젖을 일찍 뗀 고기용 새끼들은 성장을 위한 축사에 한꺼번에 옮겨져 집중적으로 덩치를 키운다. 오로지 먹고 자고 배설하며 쑥쑥 자라 90~120킬로그램이 되는 생후 140일에서 180일이 되면 일제히 도살된다. 사료 소비와 몸무게 증가를 비교해 그 때가 가장 경제적이라고 과학축산이 계산한 까닭이다. 몸이 하도 무거워 간혹 발굽에 상처가 나 절뚝거리거나 바닥의 파이프 사이에 끼어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전체 사육 과정에서는 사소한 일일 따름이다. 도살하기 전까지 생존해 있기만 하면 된다.
살처분만이 답인가
동물복지가 따지는 문제는 살처분이다.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살처분을 가축에 대한 가혹한 폭력이다. 분명히 멀쩡한 가축임에도 불구하고 위험반경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기에 당국은 윤리적 규정을 마련하고 실무자에게 안락사를 권고한다지만, 워낙 많은 가축들을 빠른 시간 안에 살처분을 해야 하므로 까다로운 규정이 지켜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한다.
생명공학의 총아가 된 돼지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하는 데 현재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는 면역거부 반응만이 아니다. 내인성 바이러스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모든 생물의 염색체 안에 예외 없이 포함돼 있는 내인성 바이러스는 오랜 감염의 결과다. 아주 먼 과거, 현재의 생물종으로 진화하기 훨씬 이전의 선조가 어느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런 바이러스는 감염된 지 매우 오래된 만큼 그 개체와 같은 종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은 게 보통이다.
부리가 잘리는 닭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닭
울타리 안의 닭은 서로 쪼는 행동으로 서열을 엄밀하게 정하는 동물이다. 가까이 있는 닭들은 틈나는 대로 서열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밀집된 좁은 공간에서 날카로운 부리에 쪼이면 상처가 생길 수 있고, 그 상처에 병균이 침투해 질병이 발생해 퍼진다면 산업축산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축산은 병아리 때부터 대처했다. 신경과 실핏줄이 밀집된 부리를 어려서부터 뭉툭하게 자르는 것이다.
그 많은 닭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산업축산은 먹이를 먹을 때만 전등을 켜고 나머지 시간엔 꺼둔다. 그래야 눈에 띌 만큼 부쩍부쩍 자라는데, 4주 가까워지면 양계장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찬다. 어떤 닭은 다른 닭의 등을 밟고 다녀야 할 지경이 되도록 과학축산이 설계했다. 그렇게 밤낮 없이 1년 365일 사육해 4주 간격으로 도축하는 닭들이 삼계탕이 되고 장작구이가 된다.
나그네새와 철새는 서해안 주변에 대형 양계장들이 자리 잡기 한참 전에도 내려왔는데, 어찌된 이유인ㅇ지 최근 들어 조류독감을 옮긴다고 아우성이다. 가끔 죽은 철새를 수거하는 보건당국에서 조사해 보니 관련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괴이한 것은 조류독감은 철새가 올 때보다 떠날 때 퍼진 적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철새가 조류독감을 옮기는 게 분명한 걸까? 예전엔 조류독감을 옮기지 않던 철새들이 왜 근래 들어 탈을 만드는 걸까?
예전에 없던 떼죽음의 가장 큰 원인은 유전적 획일성이다. 자연에서 짝을 찾아 유전자를 교환하는 철새들은 물려받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잘 간직한다. 따라서 변화무쌍한 환경을 잘 견딜 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체 수만 많을 뿐 하나 같이 획일적인 유전자를 가진 채 인큐베이터 같은 양계장에서 엄격하게 관리되는 어린 닭들은 면역력이 유난히 약하다. 조류독감을 비롯한 질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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