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Man

   
데니스 벅 외(역: 정혜진)
ǻ
미디어트리거
   
12600
2014�� 08��



■ 책 소개 


Second Chance의 증거가 된 청년 이야기

 

 


숀 홉우드라는 스물세 살 청년은 무료한 시골구석의 일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진로에 충동적으로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장렬하고 폼 나게 죽고 싶어 은행을 턴다. 이 책의 시작은 숀이 은행을 다섯 곳을 털고 연방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때 본 하늘은 절망. 오로지 빨리 죽고 싶은 마음뿐. 그 절망의 바닥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교도소 안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서도 무언가 배우게 된다. 숀은 교도소에서 우연히 도서관 담당이 돼 노역하다 재소자들의 법률업무를 도와주게 된다. 그가 대신 써준 상고이유서가 대법원에 채택되고 송무차관 출신 변호사가 맡아 단언컨대 내가 본 최고의 상고이유서라는 극찬을 받았는데… 

 



거식증으로 고통받던 여자친구와의 굴곡 많은 러브스토리부터 암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기까지, 비틀거렸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 저자 

숀 홉우드 

1997년 네브래스카 지역에서 5차례 은행강도를 저질러 12년여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때나이 스물셋. 복역 중 감옥 내 도서관 업무를 맡았다가 4천 여건의 판례평석을 읽고 법에 매료됐다. 그가 동료재소자를 위해 써 준 상고이유서가 채택되고 미국 최고의 유명 법조인이 변론을 맡은 데다 공동변론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성공적 변론으로 연방대법원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고 출소 후에는 로스쿨에 입학해 재소자들의 희망이 되었다. 현재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애틀에서 지내고 있으며 로스쿨 재학중이다. 

 



데니스 벅 

베스트셀러 『The Translator』의 공동저자이다. 

 



■ 역자 정혜진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현재 금융권 중심으로 전문 통역사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원문의 뜻을 살려 우리말이라는 그릇에 담는 일을 사랑한다. 출판 번역은 영국 Collins Cobuild 영영한 사전 편찬 프로젝트 이후 두 번째다. 

 



■ 차례 

1. 차라리 삶이 끝장났으면 

2. 강철심장을 가져라 

3. 금속공장은 좀 아니잖아 

4. 지구별에서 온 소식 

5. 보이지 않던 작은 기적 

6. 환상속의 그대 

7. 지옥, 거기서도 가장 밑바닥 

8. 인정받기 위해 몸을 던지다 

9. 터널을 통과할 것 같은 희망 

10. 지금부터 은행을 털겠다 

11. 아름다운 번개 

12.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다 

13. 불운을 뒤집어 행복으로 

14. 네브래스카 출신 한명 추가요 

15. 연방대법원 전투가 시작되다 

16. 넓게 보라 

17.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18. 일생일대의 인연 

19.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20. 돈 보다는 친구 

21. 단단해지기 

22. 몰려오는 먹구름 

23. 마지막 면회 

24. 사악한 기운 

25. 인종갈등이 폭발하다 

26. 드디어 출소 

27. 세차장 블루스 

28. 내겐 너무 과분한 친구들 

29. 경력 공백 

30. 바깥세상 적응기 

31. 사랑은 라이프스타일이다 

32. 두 이메일 이야기 

33. 논리를 넘어서




Law Man


차라리 삶이 끝장났으면

"저기 구름 좀 봐!"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힘겹게 쇠사슬을 당기며 옆 사람 너머 창 밖을 내다보았다. 우리 목적지인 오클라호마 시티 위로 사나운 먹구름이 쌓이며 폭풍을 몰고 올 기세였다.

 

하나님 제발 이 비행기가 추락하게 해주세요.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폭풍이 몰려 와 내 삶을 끝내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베풀 마지막 은총일 거라는 생각도 스쳐갔다. 죄수들을 가득 채운 비행기에 나는 몸을 싣고 있었고 탈옥시도자로 몰려 특수수갑까지 차고 앉아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고 있었다.


비행기 안은 하강기류 때문에 쇠사슬이 덜컹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우리는 싸구려 놀이기구라도 탄 듯 이리저리 휘둘렸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잔뜩 긴장해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연방 교도소.


비행기가 비스듬히 날며 하강하기 시작하자 오클라호마 시티 교외가 시야에 들어왔다. 쇼핑센터 주차장의 조그맣고 깔끔한 도로 위에는 조그맣고 깔끔한 자동차들이 잘 정렬되어 있었고 흠잡을 데 하나 없어 보이는 고등학교에는 초록색, 갈색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평범한 삶은 스케일이 작고 지나치게 질서정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내려다보니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간절해졌다. 소박하고 질서정연하며 자유로운 삶. 저 아래 사람들은 모두 오늘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아니면 최소한 누구에게 명령을 받을 지는 선택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한 번 더 거칠게 고도를 낮추었을 때 나는 아래쪽 마을을 다시 살폈다. 이제 하늘은 갈색 빛, 저 아래 선량한 사람들이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쳐다보는 건 아니었다. 그날 우리는 폭풍보단 덜 위험한 존재였다.


사실 토네이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오클라호마를 강타한 토네이도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토네이도 중 하나였다. 가장 큰 놈이 거의 전대미문이라 할 수 있는 6단계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터치다운 후 기장이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통에 기체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기장이 엔진을 올렸다 내리자 비행기가 안착했다. "명령이 떨어지면 빨리 움직인다." 보안관들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회오리바람을 앞질러야 한다. 움직이라고 할 때 재빨리 움직이도록!"


모두들 눈살을 찌푸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공항에서 2마일 즈음 떨어진 곳에 검은 깔때기 모양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랑 같은 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전부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 어서 일어서! 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지구 종말을 알리는 듯 하늘이 더욱더 사나운 소리를 내자 우리는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대열 앞쪽에서 한 사내가 발을 헛디디자 그 뒤로 열다섯 명이 우르르 넘어졌다. 넘어진 이들이 교도관과 서로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서자 대열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서두르라고 소리쳤고 나를 포함한 중간 대열 사람들은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깔때기 구름이 우리를 캔자스나 내 고향 내브래스카, 그것도 아니면 구름이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 주길 바랐다.


곧장 다음 생으로 보내준다고 해도 좋았을 것이다. 쇠사슬로 연결된 우리 죄수들이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대부분은 검은 점으로 보였을 거다. 나는 목걸이에 걸린 몇 안 되는 하얀색 구슬이었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강철심장을 가져라

교도소가 가까워지자 철조망과 감시탑,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포함해 스무 명이 수갑과 족쇄를 차고 들어갔다. 보통 사람들은 생애 최악의 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열 달 동안 카운티 구치소 이곳저곳을 끌려 다니다 보면 같은 장소에서 한동안 머문다는 것, 나가서 운동도 하고 다리 뻗고 누울 자리도 생긴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었다.


나는 두 시간에 걸친 수속을 마치고 한 젊은 교도관의 손에 이끌려 오래된 캠퍼스처럼 여러 채의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너른 풀밭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는 앞으로 생활하게 될 일리노이 1동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나는 휴게실 쪽으로 문이 나 있는 교도관실로 안내 받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한 수감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 이름은 마일랜. 이탈리아에 있는 도시랑 철자가 같지만 발음은 좀 다르지. My Land를 발음한다고 생각하면 쉬워. 그런 식으로 기억하면 될 거야. 비독이라고 나랑 친한 친구가 2인실에 있는데 방을 같이 쓰던 사람이 몇 주 전에 다른 곳으로 이감됐어. 그 자리로 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 친구 괜찮은 친구야. 나이는 우리 또래. 304번 방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해봐."


첫날부터 만만한 사람으로 비춰질 순 없는 법. 동성애랑 관련 있다든가 날 골탕먹일 작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뭔지 헷갈렸다.

"이보쇼 교도관님. 이 친구 비독이랑 같은 방에 넣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그 방에 사람도 없고 둘이 잘 지낼 것 같은데. 이 주 동안이나 비어있었는걸요."

"그래, 에라 모르겠다. 위에서 맘에 안 들면 알아서 빼겠지 뭐."


"비독, 여기 숀이 자네랑 같이 방을 쓰게 됐어. 나에게 신세 한 번 진 거야. 룸메이트 없는 게 싫다며. 내가 데리고 온 거니 잊지 말아. 그럼 난 이만 갈 테니 둘이서 잘 지내봐."

비독은 감옥에서 새긴 문신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키 작고 마디가 굵은 사내였다. 타코마 출신으로 피루 블러드(Piru Blood) 조직 소속이었고 불법 총기소지 죄로 6년을 복역하고 있었다.


그가 물었고 내가 답했다. 네브래스카, 은행 강도 5범, 12년 3개월. "아니 은행을 다섯 군데나 털었는데 겨우 12년 받았다고?" 비독이 수상해하는 눈치였다. 조직원들은 특히 배신이라면 어떠한 형태든 용납하지 않는다. "범죄이력범주1" 내가 대꾸했다. 연방에서는 전과가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형량이 결정된다. 강도 이전에 진짜 잘못을 범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난 범주1에 속한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비독에게 나는 몇 마디 덧붙였다. 범행 중 단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다는 점,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 좋은 변호사를 만났고 훌륭한 판사를 만났다는 점 등등. 그제서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야."


나는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 사방에서 쇠붙이며 기계 소리가 깊게 울렸다. 철제문이 닫히는 소리, 열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퀴퀴한 담배냄새와 체취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역할만 하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멈추는 소리. 창문 하나 제외하고는 온통 철제로 된 잠수함 같았다.


나는 기지개를 펴고 결심했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어떻게 하면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다고. 가족들에게 그리고 미네소타 교도소에서 한창 적응하고 있을 톰에게도 편지를 쓰기로 했다.


톰과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 처음 은행 강도를 생각해낸 것은 톰이었지만 끝까지 밀어 붙인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때 우리는 기분이 별로인 상태에서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 치기를 부린 것인데, 내가 좋다고 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리가 은행을 고른 기준은 이랬다. 마을 크기가 중요했는데 ATM보다는 은행에서 보관하는 돈이 많을 정도의 규모는 되지만 지역 경찰서가 따로 필요할 정도로 크면 안 됐다. 또 하나, 정문에 연방예금보험공사 마크가 찍혀 있어야 했다. 우리가 훔치는 것은 정부의 돈이지 이미 뜯길 대로 뜯긴 농부의 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계획 단계였을 때 멈춰야 했다.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긴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에선지 두 사람의 의지가 뭉쳐 상식과 양심을 밀어내고 자꾸만 앞으로 나아갔다.



보이지 않던 작은 기적

교도소에서도 일을 해야 한다. 쉬러 온 곳이 아닌 거다. 시간도 죽이고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생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한다. 또 그게 규칙이기 때문에도 일을 해야 한다. 또 그게 규칙이기 때문에도 일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동안 트럭회사에서 못질이며 용접을 해본 나는 교도소 내 금속공장에 지원했다. 하지만 내 옆에 대기자가 수년 치나 있다는 말만 듣고 왔다. 아직 바닥이었던 나는 주방에서 첫 일자리를 구했다. 냄비, 프라이팬, 스팀 트레이, 쟁반, 바닥, 식탁 등을 치우는 일이었다.


주방은 요란한 알루미늄 팬과 기름때 묻은 주방용품을 위한 사우나다. 또한 사람들이 맞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교도관 눈에 띄지 않는 구석도 많았고 밥 먹는 사람들 앞에서 본때를 보여주기에도 좋았다.


주방에 있다 보면 별의별 멍청한 대화를 다 듣게 된다. 왜 히틀러가 위대한 사람인지부터 시작해 어느 래퍼가 돈을 가장 많이 버는지를 두고 싸우는 소리 까지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 없다.


한번은 어느 수감자가 직접 만든 와인을 비닐봉지에 담아 주방 천장 밑 선반에 숨겨놨다가(선반 위 열기로 와인이 발효된 상태였다) 긴 막대기로 다시 꺼내고 있었는데 와인 봉지가 뾰족한 금속 조각에 걸리고 말았다. 남자가 봉지를 홱 잡아 당기자 구멍이 났고 남자는 물론 주방 바닥까지 술 범벅이 됐다.


"이걸 어째?"

그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주방 교도관에게 말했다. 결국 그는 몇 주동안 독방신세를 졌고 이걸 어째?는 그 후 몇 달 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일하면서 주변에서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렇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휴게실로 돌아와 상대적으로 멀쩡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제서야 쏟아내는 것이다. 그날도 텔레비전 경기를 보며 당시 30대 중반의 백인 라이언에게 주방 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는 같이 보던 경기에 재미 삼아 우표 여섯 장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교도소에서 우표는 돈 같은 역할을 했다.


얼마 후 광고에서 눈을 뗀 라이언이 대꾸했다. "숀, 나랑 같이 법학 도서관에서 일해보는 게 어때? 거기 담당이 버레스라는 친군데 나랑 잘 아는 사이거든. 일이 괜찮아. 자네는 대학문도 밟아봤겠다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라이언은 감방의 변호사 같은 존재였다(동료재소자들을 위해 소장 등 재판 관련 서면을 써주거나 법률상담을 해 교도소 내에서 변호사 역할을 하는 재소자를 감방 변호사라고 부른다: 역주). 사람들은 라이언에게 우표나 다른 물건을 주고 소송 관련 서류 준비 등의 도움을 받았다. 똑똑하면서도 교활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은 한 10분 다녀본 거 같은데요." 내가 대꾸했다. "뭐, 하지만 똑똑해 보이잖아. 그리고 사실 읽고 쓰는 법만 알면 돼. 책을 찾아서 대출해주는 일이니까. 버레스에게 말하면 자네 자리 하나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네가 날 좀 도와주면 되겠네. 나는 자넬 가르치고."


주방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 일상에 신선한 변화가 될 것 같았다. 교도소에서는 그런 변화가 있어야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주방의 시대가 끝나면 그만큼 시간도 흘렀다는 뜻이겠지.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교도소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똑같기 때문이다. 시계도, 달력도 복역기간이라는 커다란 산 앞에서는 너무나 느리다. 새로운 수감자가 들어오거나 있던 사람이 나갈 때, 새로운 교관이 들어오거나 있던 교관이 나갈 때, 식당에서 새 메뉴가 나올 때, 누군가 양말 안에 숨긴 통조림캔으로 두들겨 맞을 때처럼 뭔가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있어야 자유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경기를 보면서 라이언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정말 매일 그와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는 책략가였다. 항상 마약이나 와인, 또는 둘 다를 손에 넣을 계획을 꾸며냈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미소도 지녔다.


하지만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마 몇 년을 주방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나는 기회를 잡았다. 나는 주방 최소 근무 기간인 90일 채우고 법학 도서관에 들어갔다.



터널을 통과할 것 같은 희망

피킨의 법학 도서관은 나른한 곳이었다. 항상 오는 사람들 몇 명이 어슬렁거리며 한가로이 걸어 들어와 책을 한 권씩 대출하면서 신분증을 건네주면 나는 도서대장에 기록을 남기는 식이었다. 책을 반납하러 왔을 때는 같은 과정을 거꾸로 반복하고 책을 도로 꽂아놓았다. 업무 사이사이 책 읽을 시간이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판결을 내리는 연방대법원도 형사시스템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일으킬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2000년 6월 26일 이 같은 판결이 나왔다. 연방대법원은 세스 왁스만 미국 송무차관(Solictor General, 대법원에 대하여 미연방정부를 대리하는 직위로 11번째 대법관이라 불리기도 함. 세스 왁스만은 1997년~2001년 까지 송무차관으로 재임했다: 역주)이 변론한 사건에서 미란다 경고가 우리 헌법 전통의 일부라고 선언하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날 이보다 덜 알려진 다른 사건에 대한 판결도 나왔는데, 바로 교도소 세계를 즉각적으로 뒤흔든 아프렌디 대 뉴저지 판결이었다.


나와 라이언은 예비조사를 실시했고 도서관 교도관들에게 수감사 대출용으로 사건 자료를 여러 부 복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라이언과 스틱스란 이름의 흑인 감방 변호사가 열두 명 정도 되는 다른 감방 변호사들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라이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범죄에 대한 형량까지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에 대해 유죄답변거래를 했는데, 결국에는 판사가 무거운 범죄기준으로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나도 거의 그런 경우였다.


"코카인 50그램 유통한 죄로 기소되었는데 판사가 2킬로 기준으로 선고하는 경우 말이죠?" 내가 말했다. 연방 시스템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이젠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라이언이 말했다. "그래서 이제 재소자들이 자기 형량을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겁니다. 동물원처럼 사람들이 득실거리겠죠."


실제로 해결 판결로 인해 미국 내 교도소란 교도소의 법학 도서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하루에 몇 안 되는 사람만 상대하다 이제는 40~50명 정도를 상대해야 했다. 질문이 쏟아졌고 해당 판결에 대한 몇 권 안 되는 책자와 유인물을 두고 거의 싸우다시피 했다. 손님이 많아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야 했다.


피킨 수감자 모두 자신이 감형심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한 몇 달 동안은 도서관이 정신 없이 돌아갔다. 감형심사 관련 비슷한 요청들이 쇄도했고 나는 오래되어 낡은 플레이 북을 보고 작전 지시를 내리는 코치마냥 한 번에 여러 명에게 비슷한 자료를 나눠줬다. 나만의 조사 방법도 고안했다. 관련 판례를 찾아내거나 재소자들의 진짜 변호사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논거를 발견하는 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 자신을 위해 시작된 일이 난생처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로 발전했으며 나 또한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아프렌디 판결이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집단 탈옥이라도 계획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전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건은 사장됐다. 내 형량을 선고한 판사가 내 사건은 오래 전에 합의, 종결되어 아프렌디 판결이 적용되지 않으며 설사 내 사건에 적용된다 하더라도 양형 기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낙담했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집중하면서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재심사 관련 작업 말고도 내가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일리노이 센트럴칼리지와 오하이오대 통신강좌와 카플란 법과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패러리걸로 직장을 구하려면 대학졸업장이 필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난생 처음 학구적이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 수업을 듣고 무언가에 흥미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기뻐했다. 자식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면서 부모님도 변화를 겪고 있었다. 어머니는 직장에서 승진했고 사장 딸인 앤 마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앤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밑에서 인체영양 상품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주 하는 전화 통화에서 한번은 어머니가 나에게 나중에 꼭 앤 마리 같은 괜찮은 여자애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끔은 어머니가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하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나에게 멋진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게 힘이 되었다.



아름다운 번개

2000년 12월. 내가 피킨에 들어온 지도 2년이 된 시점이었다. 가족을 제외한 고향 사람들에게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숀 홉우드!"

나는 철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엽서였다. 발신인 주소를 봤다. 앤 마리 메츠너가 보낸 엽서였다. 아니 왜…? 들뜬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경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달 전 어머니가 앤이 내 주소를 물어봤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실제로 편지를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조차 어려웠던 거다. 처음엔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단정한 글씨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엽서를 읽었다.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읽고 또 읽었다.


그녀는 잘 지내냐는 인사와 함께 필요한 건 없는지 물었다. 회사에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소식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편지에 힘내라는 말과 자신이 식이장애를 겪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썼다. 처음 쓴 답장은 너무 길어 다시 썼다. 글씨를 깔끔하게 쓰고 싶었지만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또 다시 썼다. 가장 먼저 편지를 쓴 이유가 나 또는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 때문은 아닌지 물었다. 내가 필요한 건 친구지 동정이 아니었다. 일단 동정심 때문은 아니라고 가정하고 나니 자칫 하나라도 말실수를 하게 되면 그녀가 다시는 편지를 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편지 말미에는 꼭 답장해달라는 말과 함께 지금 모습이 궁금하니 사진도 몇 장 보내줄 수 있냐는 말도 부탁했다.


나는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긴 편지를 보냈다. 사실 그녀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의 꿈은 아무리 메마른 땅에서라도 잘 자라는 법. 나는 난간에 기대어 그녀의 답변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편지가 왔다. 이번엔 엽서가 아니었다. 편지지에 써 내려간 편지와 그녀가 모델 시절 찍었던 화보 사진 몇 장을 포함해 여러 장의 사진이 마닐라 봉투에 두둑이 들어있었다.


숀,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해둘게. 내가 편지를 쓴 건 동정심 때문이 아니야. 마음 깊숙이 정말 쓰고 싶었기 때문에 썼던 것뿐이야. 지난 몇 년 동안 너에 대해 종종 생각했었고 어떻게 지내는지 항상 궁금했어. 오래 전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얼마 전까지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거야. 내가 연락해서 네 기분이 상하거나 내가 누군지 기억조차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되었건 한번 써보자고 결심했던 거지. 그러니까 내 의도는 순수해. 너에게 편지를 쓴 건 그냥 그러고 싶어서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어.


편지는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크레이튼 미국대학스포츠협회 1부 리그에서 뛰다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결핍으로 심각한 골절이 생겨 그만 둬야 했던 이야기, 이후 영양학을 공부하게 된 이야기, 지금은 아버지 사업을 도와 제품라인을 애완동물을 위한 건강용품에서 인간을 위한 영양상품으로 확장하고 있는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또 사무실에서 우리 어머니를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게 좋으며 절대로 어머니가 시켜서 연락하게 된 건 아니라고 다짐했다.


숀, 이전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지난 한 해 동안 거식증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아직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 언젠가는 꼭 해줄게. 아무튼 지난 2주 동안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골다공증도 심각해졌어. 등이란 골반, 엉덩이, 다리에 작은 골절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힘든 고통과 싸웠지. 그거 말고도 지난 2주 동안 다른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 결국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거야. 곧 투손에 있는 미라솔이라는 곳으로 떠날 거야. 그냥 여기서 이렇게 계속 살다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아주 분명해졌어. 하지만 나 죽기 싫어. 살고 싶어.


치료소에서는 우리에게 치료에만 집중하래. 가끔은 여기에 갇혀버린 것 같고 영영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지지난 밤 밖에 나와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어. 그리고는 널 생각하면서 짧은 기도를 했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 순간 너처럼 감옥에서 지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되더라. 난 진짜 감옥에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거든.


애니(이제 난 그녀를 친근하게 애니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자신의 회복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도 내 심정이 어떨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보낼 때 마다 감옥에서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감옥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편해지게끔 자기가 도와줄 것은 없는지 항상 물었다.


숀, 나랑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날 믿어 줘서 고마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 같아. 우리 사이에 뭔가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고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믿어. 그럼 잘 지내.

사랑을 담아.

앤 마리


마지막에 사랑이라는 말이 그저 의례적인 표현이었을까? 그냥 예의상 덧붙인 것이었을까? 사랑이라면 어떤 종류의 사랑일까? 친구간의 사랑? 아니면 그 이상?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어쩔 수 없었다. 휘갈겨 쓴 편지 몇 통과 고등학교 시절에 품었던 환상으로만 알게 된 여자, 그것도 한번 만져보기도 전에 점점 사라지고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두 가지 망상에 사로잡혔다. 하나는 애니와 인생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 두 번째 망상은 이전보다 더 큰 뜻을 품지 않으면 그녀를 얻기 힘들거라는 점이었다. 애니 덕에 내 세계도 확장되고 있었다. 로스쿨에 들어가 볼까? 변호사 한번 해봐?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생각해볼 가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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