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지금도 멸종은 계속되고 있다!
환경이 변하거나, 지역을 대체하는 새로운 종이 유입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지속적인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 생물이 자연적으로 멸종하는 정도를 배경멸종률이라는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데,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멸종은 배경멸종률을 넘어 ‘대멸종’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이 책에 들어 있다.
지난 50억 년간 이미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고 그로 인해 생물다양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현재 과학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여섯 번째 대멸종에 주목하고 있다.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된 이래로 가장 파괴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멸종의 원인은 바로 인간일 것이다.
「뉴요커」의 전속기자인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고대 바다를 연구하는 지질학자, 안데스 산맥에서 상승 중인 수목한계선을 함께 오르는 식물학자,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직접 뛰어드는 해양 생물학자 등 현장을 발로 뛰는 다수의 전문 연구원들과 조사를 진행하며 인류가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를 이러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다.
■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
「뉴요커」의 전속기자이며 『지구재앙보고서: 지구 기후 변화와 온난화의 과거․현재․미래』의 저자다. 현재 매사추세츠의 윌리엄스타운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 역자 이혜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번역학과에 재학 중이며 프리랜스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른 일로 소중한 생명을 빼앗긴 모든 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차례
PROLOGUE
Chapter1 여섯 번째 멸종
Chapter2 마스토돈의 어금니
Chapter3 오리지널 펭귄
Chapter4 암모나이트의 운명
Chapter5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Chapter6 우리를 둘러싼 바다
Chapter7 낮아지는 산성도
Chapter8 숲과 나무들
Chapter9 마른 땅의 섬들
Chapter10 새로운 판게아
Chapter11 초음파검사를 받는 코뿔소
Chapter12 광기 유전자
Chapter13 날개 달린 생물
여섯 번째 대멸종
PROLOGUE
시작은 암물할 거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처음은 약 20만 년 전에 출현한 새로운 종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다른 신생 종과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종의 위치도 위태로운 상태다. 개체수도 적고 활동범위도 북아프리카의 일부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그 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다시 줄어들어 천여 쌍 정도만이 남을 가능성 - 일각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 높다.
이 종의 구성원들은 특별히 민첩하거나 강하다거나 번식력이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뛰어난 기지를 보인다. 점점 다른 기후와 다른 포식자, 또 다른 먹이가 있는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서식지나 지리에 어떤 제약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강을 건너고 고원을 지나며 산맥을 넘는다. 해안 지대에서는 조개껍질을 먹고 내륙 깊숙한 곳에서는 포유류를 잡아먹는다. 어떤 곳에서든 정착하고 적응하며 진화한다. 유럽에 이르러서는 자신들과 매우 비슷하지만 더욱 다부진 몸에 갈색 빛을 띠고 그 대륙에서 훨씬 더 오랫동안 살아온 생물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생물들과 교배를 한 후 어떤 이유에선지 모두 죽이고 만다.
육지 동물인 이 새로운 종은 항상 특출난 기질을 보였는데 급기야 바다를 건너가기까지 한다. 발 길이만 한 알을 낳는 새와 돼지만 한 하마, 그리고 거대한 도마뱀처럼 진화한 동물들이 사는 섬에 다다랐다. 고립된 삶에 적응한 동물들은 새롭게 등장한 새로운 종과 그들과 함께 온 친구들(대개 쥐들이었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대부분이 굴복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 종이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 퍼질 때까지 수천 년 동안 반복된다. 이 시점에 몇몇 일들이 한 번에 일어나더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이들을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번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 년 동안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났고 그 두 배로, 그리고 또 다시 두 배가 늘어났다. 방대한 산림지대가 파괴되었다. 인류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고의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 또 고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생물을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옮겨가며 생물권(生物圈)을 재배열하기까지 한다.
그러는 동안 기이하고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난다. 지하에 자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대기조성을 바꾸기 시작한다. 차례로 기후를 바꾸고 바다의 화학적 성질을 변형한다. 일부 식물과 동물들은 이동하며 이러한 변형에 적응해나간다. 산을 오르고 극지방으로 떠나간다. 하지만 처음에는 백에서 천 마리로, 그러고는 마침내 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이 죽어나간다. 멸종률은 치솟고 삶의 질은 변하기 시작한다.
어떤 생물도 지구에서의 삶을 이런 식으로 바꾼 적은 없었으나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적은 있다. 극히 드물지만 먼 과거에 지구가 심한 변화를 겪으면서 생명의 다양성이 곤두박질친 때가 있었다. 고대에 일어났던 다섯 번의 사건은 5대(大)멸종이라는 하나의 범주를 만들 만큼 심각한 대재앙이었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지만 절대 우연이 아니다. 5대멸종은 단지 인간이 또 다른 멸종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일 뿐이다. 지금은 새로운 멸종이 5대멸종에 견줄 수 있을지 확신을 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곧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여섯 번째 멸종
파나마 중앙 지역에 있는 발레 데 안톤(El Valle de Anton)이라는 마을은 약 백만 년 전에 형성된 화산분화구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안톤 마을의 단 하나뿐인 중심가에는 경찰서와 노천시장이 들어서 있다. 시장에서는 전형적인 파나마모자와 형형색색으로 놓은 자수도 있고 황금개구리 조각상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고 있다. 짙은 갈색으로 얼룩진 노란 택시 같은 황금개구리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황금개구리는 마을 주변 언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독 개구리는(한 마리가 보통 크기의 쥐 천 마리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독을 피부 속에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명한 몸 색깔이 숲의 바닥과 대조되어 눈에 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개울은 개구리 천 마리 개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곳을 따라 걸으면 둑에서 일광욕을 하는 수많은 개구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 주변에서 개구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미국인 대학원생이 이 지역 우림에서 개구리를 연구하다 논문을 쓰기 위해 잠시 미국을 다녀왔을 때 그곳에는 한 마리의 개구리도, 심지어 어떤 양서류도 찾을 수 없었다. 2002년에는 마을에서 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산타페(Santa Fe) 주변의 언덕과 개울에 있던 개구리들이 모조리 전멸할 정도의 병충해가 우림을 휩쓸었다. 2004년이 되자 발레에서 더 가까이에 있는 엘 코페(El Copé)에서 시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파나마와 미국의 생물학자 연구팀에서 황금개구리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숲에서 성별로 30여 마리를 데려와 실내에서 기르면서 개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아동용 잡지에서 환상적인 개구리 호텔에 대한 기사를 읽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약간 다른 관점으로 쓴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두 명의 파충류학자가 쓴 이 기사는 「미국 국립과학협회보」에 실려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인류는 여섯 번째 멸종에 닥친 것일까? 양서류 세계에서 보는 시각이었다. UC버클리 대학의 데이비드 웨이크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밴스 브레덴버그가 쓴 기사였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대멸종을 생물 다양성에 심각한 손실이 생긴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 대멸종은 약 4억 5천만 년 전인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period) 말에 일어났으며 당시 대부분의 생물들이 물에 살던 때였다. 가장 큰 대멸종은 약 2억 5천만 년 전인 페르미안기(Permian period)가 끝날 무렵 발생했으며 지구를 거의 비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이 멸종은 대멸종계의 대모 또는 위대한 멸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으며 가장 잘 알려진 대멸종은 백악기 시대에 발생했는데 공룡, 사경룡, 해룡, 암모나이트, 익룡까지 모두 전멸했다. 웨이크와 브레덴버그는 양서류의 멸종을 토대로 전과 비슷한 자연대재앙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주장했다. 기사에는 단 한 장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바로 바위 위에서 배를 보이며 죽어 있는 십여 마리의 노란 다리 산개구리(mountain yellow-legged frog)였다.
당장 우리 눈앞에서 일어날 여섯 번째 멸종은 상상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 더 규모가 크고, 암울하지만 중대한 - 이 책에서 하려는 이야기 또한 전달할 가치가 있다. 만약 웨이크와 브레덴버그의 말이 맞(는)다면 현재 우리는 역사 속에서 희귀한 사건 중 하나를 목격하는 동시에 직접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류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들의 믿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양서류는 지구의 모든 대륙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던 판게아(Pangaea) 시대에 등장했다. 판게아가 분리되고 난 후 이들은 남극대륙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대륙의 환경에 적응했다. 세계적으로 7,0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열대 우림 지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호주의 모래언덕개구리(sandhill frog)와 북극권 위에서도 살 수 있는 나무 개구리(wood frog)도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자면 서로 비슷해 보이는 양서류일지라도 유전적으로 박쥐와 말이 다른 것만큼이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특이하고 특별한 종뿐만 아니라 흔한 종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에콰도르의 잠바토 두꺼비(Jambato toad)는 뒷마당에서 쉽게 발견되는 종이었지만 몇 년 사이에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호주 북동부지역에서 흔했던 남쪽 낮개구리(southern day frog)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오늘날 양서류는 세계에서 가장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라는 모호한 사실을 즐기고 있다. 양서류과의 멸종률은 배경멸종률에 비해 4만 5천 배 정도 높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다른 구성원 집단을 살펴보면 양서류의 멸종률에 거의 근접해 있다. 산호초(reef-building coral), 민물 연체동물(freshwater mollusks), 상어, 가오리 류의 3분의 1, 전체 포유류의 4분의 1, 파충류의 5분의 1, 그리고 조류의 6분의 1이 사라지고 있다.
멸종은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남태평양과 북대서양, 북극과 사헬(Sahel) 지역, 호수와 섬에서, 그리고 산꼭대기부터 계곡에서까지 진행 중이다. 방법만 안다면 지금 당신의 뒷마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멸종의 징후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전혀 다른 그럴듯한 이유들도 있다. 하지만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라는 한 종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을 수 있다.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멸종과학에 대한 역사는 일련의 인식체계의 대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세기 말까지 멸종에 맞는 범주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더 기괴한 뼈들 - 매머드, 메가테리움, 모사사우르스 - 이 발굴되었다. 박물학자들이 이들을 비슷한 틀에 끼워 맞추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거대한 뼈들은 북쪽에서 멸종된 코끼리와 서쪽에서 돌아다니던 하마의 범주로도 넣었으며 악의적인 미소를 띠는 듯한 고래에게도 속했다.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바뀌지 않는다 해도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곳은 결국 다른 세계다"라고 토마스 쿤이 말했다.
몇 년 동안 인간이 발을 내디딘 새로운 시대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많은 이름들이 제안되었다. 저명한 보존생물학자인 마이클 술래(Michael Soule)는 우리가 현재 신생대가 아닌 재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 스텔렌보쉬 대학교의 곤충학자인 마이클 샘웨이즈(Michael Samways)는 호모제노신(Homogenocene)을 제안했다. 오존 고갈 물질의 영향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탄 독일의 화학자인 폴 크뤼천(Paul Crutzen)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크뤼천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계속해서 인간이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남극에서 발견되는 오존홀이 지구를 둘러쌀 만큼 커지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크뤼천은 자신의 생각을 인류의 지질학(Geology of Mankind)이라는 짧은 논문에 담았고 그 논문은 「네이처」에 실렸다.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지질학적 시대의 여러 방향들을 봤을 때 인류세라는 용어를 현시대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영향을 끼친 수많은 지질학적 규모의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의 활동이 지구 육지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를 변형시키고 있다.
· 세계 주요 강들 대부분을 댐으로 막거나 방향을 틀고 있다.
· 비료공장들이 자연적으로 고정된 양보다 더 많은 질소를 뿜어대고 있다.
· 어업으로 바다 연안에서 주요 생산물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양을 잡고 있다.
· 인간은 지구상 마실 수 있는 지하수를 반 이상 소비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대기의 구성요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크뤼천이 말했다. 화석연료 연소와 삼림 파괴 때문에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지난 2세기 동안 40퍼센트가 올라갔고 더 강한 온실 가스인 메탄의 농도는 두 배나 뛰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배출물 때문에 세계 기후는 앞으로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자연적으로 변하는 기온과는 상당히 벗어난 기온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크뤼천은 인류의 지질학을 2002년에 출간했다. 곧이어 인류세라는 용어도 여러 과학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강 구조에 대한 세계 분석 : 지구 시스템 제어부터 인류세 증후군까지는 「로열협회 B의 철학적 회보」에 실린 2003년 기사의 제목이었다. 인류세의 토양과 퇴적물은 「토양과 퇴적물 잡지」에 2004년 헤드라인으로 떴다.
잘라시에비츠가 이 용어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흥미를 느꼈다. 이 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은 층위학자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고 그의 동료들이 이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당시 그는 런던 지질학회의 층위학 단체의 의장이었는데 라이엘과 윌리엄 휴엘(William Whewell), 존 필립스(John Phillips)도 각각 한 번씩 의장을 맡았던 단체였다. 오찬 회의에서 잘라시에비츠는 단체 회원들에게 인류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22명 중 21명이 가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체는 이 개념을 지질학의 공식 문제로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인류세가 새로운 시대를 부르기에 걸맞을까?(지질학자들은 세(世)에는 세분화된 시기가 있으며 시기는 대(代)에 속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완신세는 제4기의 한 세고 즉 신생대에 속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약 1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완전한 예스였다.
크뤼천이 열거해왔던 이러한 변화들은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동안 뚜렷한 지구의 층위학 특징을 남길 것이고 같은 방식으로 오르도비스기의 빙하기도 오늘까지 알아볼 수 있는 층위학 특징을 남긴 것이다. 단체의 회원들은 발견에 대해 요약해둔 이 논문을 살폈고 독특한 생물 층서학적 기호로서 인류세가 기록될 것이다. 이 용어는 한편으로는 멸종의 산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산물이다. 또한 영원히 생존한 (그리고 인류에 의해 빈번히 재위치된)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미래의 진화라는 뜻으로 쓰일 것이라고 했다.
숲과 나무들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마일즈 실만은 자신을 산림생태학자로 부르면서 열대 생태학자, 사회 생태학자, 또는 보존 생물학자라고도 했다. 실만은 산림군란들이 어떻게 생성이 되는지 그리고 시간을 거쳐 안정된 상태로 남아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질문은 과거 열대지방의 기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게 했고 또 자연스럽게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지 조사하도록 이끌어주었다. 이렇게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막 방문하려고 하던, 나무가 있는 일련의 구역을 만드는 영감을 주었다. 실만의 구역은 총 17개가 있었고 모두 다른 층에 위치해 있어서 각 구역마다 연평균 온도가 달랐다. 마누 국립공원의 다양하고 거대한 세계 속에서 각 구역이 기본적으로 다른 산림군락의 단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래에 예로 들 여정에 대해 (순전히 가설이긴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자. 한 화창한 봄날 당신은 북극에 서 있다(상상 속에서는 북극에 얼음이 충분해서 빠질 위험은 없다). 당신은 걷기 시작하는데 - 물론 스키를 타고 가면 더할 나위 없다 - 갈 수 있는 방향이 한쪽밖에 없고 남쪽으로만 가야 한다. 그리고 자오선 360개 중 아무거나 고를 수 있다. 나처럼 당신은 버크셔(Berkshires)에 살고 있고 안데스 산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73번째 자오선을 기준으로 서쪽을 따라 가기로 결정한다. 스키를 타고 가고 또 가고 마침내 북극에서 8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엘즈미어섬(Ellesmere Island)에 도착한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북극해를 지나왔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도 육상식물 한 종도 보지 못했다. 엘즈미어섬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해 네어스 해협(Nares Strait)을 건너 - 돌아다니는 것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 문제는 둘째치고 - 그린란드의 가장 서쪽의 끝자락을 횡단하고 배핀만(Baffin Bay)을 지나 배핀섬(Baffin Island)에 도착한다. 배핀섬에서는 그 어떤 것도 나무만큼 가치 있지 않고 땅 가까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자라는 버드나무 몇 종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침내 - 이제 약 3200킬로미터의 여정에 당도한다 - 당신은 퀘백주 북부에 위치한 언게이바 반도(Ungava Peninsula)에 도착한다. 아직 수목한계선의 북쪽에 있지만 만약 400킬로미터 이상을 더 걸어가면 북쪽 수림대의 끝에 다다를 것이다. 캐나다의 북쪽 수림대는 그 규모가 방대하다. 거의 5조 평에 달하며 지구상에 남아 있는 무손상 산림의 약 4분의 1이 여기 있다. 미국에 가면 나무의 다양성이 점차 올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73번째 자오선은 콜롬비아의 적도를 가로지르며 페루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베네수엘라, 페루, 브라질을 조금씩 가르고 있다. 남위 13도쯤에 실만의 나무가 있는 구역을 지나친다. 1035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이 수치는 캐나다의 북쪽 수림대보다 약 50배나 높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새와 나비, 개구리, 균 등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어떤 (흥미롭게도 진드기만 제외하고) 종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은 북극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으며 저위도에서 가장 풍부하다.
한 이론은 열대지방에 더 많은 종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데 열대지방의 진화시계가 더 빨리 가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매년 저지대에서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는 것처럼 유기체도 더 많은 세대를 생산해낸다. 세대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전적 돌연변이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돌연변이가 될 기회가 높다는 것은 새로운 종이 나타날 기회가 더 늘어난다는 말이다(약간은 다르지만 비슷한 어떤 이론에서는 높은 기온이 돌연변이 비율을 높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이론은 열대지방에 사는 종들은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에 이곳에 더 많은 종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론을 내세우는 근거에 따르면 열대지방에 중요한 요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온이다. 열대지방의 생물들은 상대적으로 열에 대해서는 참을성이 별로 없고 언덕이나 계곡에 의해 발생하는 아주 미묘한 기온차이가 극복할 수 없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 주제에 관한 잘 알려진 논문의 제목은 왜 열대지방의 산길은 높을까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고립되고 종 형성이 발생한다.
또 다른 이론은 역사에 근거를 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열대지방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열대지방이 오래됐다는 것이다. 아마존이 되기도 전부터 수백만 년 동안 아마존 우림은 존재해왔다. 그러므로 열대지방에는 다양성이 축적될 수 있는 오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반면에 최근 이만 년 전에는 캐나다의 거의 대부분이 2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였었다. 뉴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노바스코샤(nova Scotia)나 온타리오(Ontario), 버몬트(Vermont), 뉴햄프셔(New Hampshire)주에서 찾을 수 있는 나무의 모든 종들이 바로 수천 년 동안 건너온 (또는 다시 돌아온) 이주종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간적 기능으로써의 다양성이론은 다윈의 경쟁자, 혹은 공동발명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앨프래드 러셀 월리스가 처음으로 제시했는데 그는 열대지방에서 진화는 공평한 기회를 가진다고 봤으며 반면에 빙하로 덮인 지역에서는 진화가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기온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종들은 지금 당장 신경써야 할 필요는 없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전역에서 기온은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낮과 밤, 계절마다 오르내린다.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가장 적은 열대 지역에서도, 우기와 건기의 기온차는 상당하다. 유기체는 이러한 변동에 적응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왔다. 동면하거나 하면하고 이동해보기도 했다. 호흡을 빨리하고 열을 소멸시키거나 두꺼운 털을 기르며 열을 보존하기도 한다. 꿀벌은 가슴근육을 수축시켜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검은머리황새는 다리에 배설하여 몸을 시원하게 만든다(무더운 날에는 1분에 한 번씩 다리에 배설한다).
종의 생애주기를 넘어, 백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지난 4천만 년 동안 지구는 시원한 편에 속했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방대하고 대륙적인 규모로 이루어지는 이동을 묘사한 바 있다.
추위가 몰아치고 남쪽 지역이 북극 생물들에게 적합한 환경이 되고 이전의 온화한 기후에서 살던 생물들에게는 부적합하게 변하면서 동물들이 대체될 것이며 북극의 생물들이 이곳을 장악하기 시작할 것이다. 따뜻한 기온이 돌아오면 북극 생물들이 북쪽으로 후퇴하고 따뜻한 지역의 생물들이 그 뒤를 쫓을 것이다.
다윈의 주장은 여러 물리적인 추적들을 통해 확실해졌다. 예를 들어 고대 딱정벌레껍질을 연구하는 연구진들은 빙하기에 기후를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온 작은 곤충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규모로 기온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는 빙하기에 일어났던 상황과 비슷할 것이다(만약 최근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안데스 산맥은 거의 9도에 이르는 따뜻한 기온이 예상된다).
하지만 변화의 규모가 빙하기 때와 비슷하다면 속도가 관건이다. 오늘날의 온난화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을 때보다, 그리고 각 빙하기에 비해 적어도 10배 빠르게 일어난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생물들이 이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10배 빨리 적응해야 한다. 실만의 구역의 예로 들면 활동과잉의 쉐프레라 속의 가장 발 빠른 나무만이 기온 상승에 맞춰 살아남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종이 얼마큼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으며 실만은 미래에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기 유전자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는 네안더 계곡의 정동 방향으로 약 4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다. 스반테 파보(Svante Paabo)는 연구소의 진화유전학부서를 맡고 있다. 스웨덴인인 파보는 종종 고(古)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는 고대 DNA 연구를 거의 발명해낸 인물이다.
대학원생으로서의 그의 초기 연구는 이집트 미라의 살점에서 유전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그는 파라오 중 누가 누구와 연결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후에 그는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와 거대땅늘보에게 관심을 넘겼다. 그리고 매머드와 모아새의 뼈에서 DNA를 추출해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당시 굉장히 획기적이었지만 파보가 현재 벌이고 있는 전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배열을 알아내려는 어마어마한 일에 비하면 그저 준비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파보는 2006년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그때가 바로 처음 네안데르탈인을 발견한 지 150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인간 게놈배열은 이미 밝혀진 상태였고 침팬지와 생쥐, 쥐의 게놈도 분석이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인간, 침팬지, 생쥐, 쥐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죽은 생물의 게놈배열을 밝히는 것은 아예 다른 얘기였다.
생물이 죽으면 유전적 물질은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되면 긴 DNA구조 대신 남는 것은 조각들이다. 어떻게 이 조각들을 잘 맞춰 밝혀내는 일은 파쇄기에서 조각난 맨하탄의 전화번호부를 어제 나온 쓰레기더미들과 쓰레기매립지에 부패한 채로 내버려두었다가 짜 맞추는 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인간 게놈과 네안데르탈인 게놈을 염기쌍끼리 비교해 어디서 나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의 인류와 지극히 닮아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인간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DNA 어딘가에는 네안데르탈인과 우리를 구분 짓는 주요 변형 요소(어쩌면 변형요소들이)가 있을 것이고 이 요소가 바로 우리를 가장 가까운 친척을 멸종시킨 생물로 만들고 지금은 그들의 뼈를 찾아내어 게놈구조를 짜 맞추고 있는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서 현대 인류가 무엇이 바뀐 건지 알고 싶어요. 바로 그 무언가가 차이를 만들었거든요." 파보가 내게 말했다. "무엇이 우리가 거대한 사회를 만들게 한 걸까요? 세계에 퍼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기술을 발전시킨 그 특별함이 과연 무엇일까요? 분명히 유전적인 요소가 있을 겁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겠죠."
네안데르칼인의 염기서열은 예상했던 것처럼 인간의 것과 비슷했다. 특히 특정 사람과 더 비슷했다.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이 아프리카인보다 네안데르탈인의 DNA 구조와 더 비슷한 점이 많았다. 파보의 팀원 중 대다수는 유라시아 편향 결과가 오염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일부 시험이 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결과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점점 팀원들도 의견을 바꾸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파보가 부분대체가설에 대해 쓴 논문을 2010년 5월 「사이언스」에 소개했다(이 논문은 후에 「사이언스」의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됐고 팀은 2만 5000달러 상금을 받았다). 현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하기 전에 네안데르탈인들과 성관계를 맺었다. 유럽, 아시아,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인구수를 채우는 데 도움을 준 아이들을 낳은 것이다.
부분대체 가설은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그들이 낳은 혼혈아는 괴물로 취급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 아마도 처음엔 네안데르탈인이 그 후엔 현대 인류가 - 그들을 돌봤을 것이다. 이 혼혈아 중 몇몇이 자식을 낳고 또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금도 그 후로 3만 년이 지났지만 그 증거는 아직도 유효하다. 아프리카계가 아닌 모든 사람들과 뉴기니부터 프랑스와 한족까지,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에서 4퍼센트 정도씩 가지고 있다.
파보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쿨(cool)이었다. 그가 마침내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에게 그들의 유전자 일부를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는 내게 "정말 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은 그들이 아예 멸종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안에 조금씩 살아 숨쉬고 있다는 얘기죠"라고 말했다.
도르도뉴 강에서의 마지막날에 나는 그로뜨 데 콩바렐(Grotte des Combarelles)이라는 고고학 유적지를 찾았다. 이곳은 석회암 절벽을 거쳐 거의 300미터나 되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는 굉장히 좁은 동굴이다. 인간이 처음 이 동굴에 발을 디딘 것은 1만 2000년에서 1만 3000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이곳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인간을 불러들였다. 아마도 창의성, 영성, 그리고 광기였을 것이다. 동굴 속 깊숙한 곳에 수백 개의 벽화가 있었다.
이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인류는 그림에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을 거라고 추측이 되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맞는 얘기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유럽에서 수십만 년 동안 살았으며 그 시기에 다른 어떤 거대 척추동물들보다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만약 현대 인류가 그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아직까지도 야생 말과 털 코뿔소와 함께 생존했을 거라고 믿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벽화와 기호로 세상을 표현하는 바로 그 능력이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이 되었다. 또한 그것은 파괴의 능력이 되었다. 아주 작은 유전변이가 우리를 네안데르탈인과 구분지었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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