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그 후

   
정승욱
ǻ
지상사
   
15000
2011�� 03��



■ 책 소개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에 이은 3대 정권세습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전망한 책이다. 세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여러문제를 다루었던 저자가 북한 정권의 내부 동향과 3대 세습 시나리오의 전말, 정권 실세들의 면면과 역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향후 남북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북한 관련 자료를 객관적이고 다각도로 분석하였으며, 여러 경로를 통해 단편적으로알려져 온 북한 주민들의 생존 실상에 대해서도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해석했다. 

■ 저자 정승욱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저자는88년 세계일보 견습 1기 기자로 입사한 이후 국제, 경제, 사회, 정치, 통일팀 등 주요 부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다. 특파원 임무를 마치고복귀해 정치부 선임기자와 온라인팀 등을 거쳐 현재 문화부 선임기자로 있다. 국제부 기자 시절에는 한국 신문기자로선 처음 1996년 러시아체첸전쟁 단기 특파원으로 전장을 취재하는 등 6차례 해외취재를 전담했다. 이후 국회와 청와대를 담당하면서 국제정치 통일안보 관련 문제에천착해왔다. 청와대 출입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30여 개 국가를 방문 취재했다. 2005∼2009년까지 4년여 동안 도쿄특파원으로재임하던 중 북한과 통일 관련 문제 및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다뤄왔으며, 중국 베이징대학과 장춘사범대학을 왕래하면서 중국의대한반도 정책에 중점 연구해왔다. 향후 차기 중국지도부의 대한반도 정책 관련 책도 낼 예정이다. 해외한국입양동포후원위원회 사무국장도 맡아 모국과해외동포와의 연계에도 참여 중이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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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프롤로그 : 김정일 사후 북한 권력의 향방

제1장 김정은과 북한의미래
 
01 3대 세습의 이유 
02 김정일은 3대 세습에 부정적 
03 김정은, 어떤 스타일인가 
04김정은 후계 체제의 한계 
05 후계 체제 구축의 포인트 
06 후계 체제 구축의 속도 
07 권력승계 과정의 전말 
08후계 결정의 내막 

제2장 김정은을 둘러싼친위그룹 
01 막후 실력자 장성택 
02 떠오르는 김정은 친위그룹 
03 고영희를 향한 김정일의 구애
04 장자 김정남을 주목해야 
05 의문의 가족사 

제3장 김정은과 북한 군부 
01 선군정치의 운명 
02 국방위원회와중앙군사위원회 
03 조명록 사망은 김정은의 손실 
04 노동당 규약 개정 

제4장 김정은 체제와 중국 
01 중국이 3대 세습을 인정한 배경
02 김정은과 중국 5세대 지도부 
03 중국 인민해방군의 평양 진주 
04 중국, 북한 접수 도상훈련 
05 시진핑의봉건적인 사고방식 

제5장 김정은의대외전략 
01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시기 
02 김정은과 백악관의 비밀 접촉 
03 김정은 대미 협상팀 가동
04 남한 때리기의 노림수 
05 급변사태론의 허와 실 
06 해저 핵시설은 다음 카드 

제6장 강성대국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 
01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02 경제개혁과 김정은 리더십 
03 북한에 쇄도하는 화상(華商)들 
04 베트남식 개혁의 전망
05 개성공단의 운명 

부록
김정일 약력 
북한의 주요 역사 
북한 권력 서열 
9ㆍ28 당대표자회 전후 북한 고위직 변화
남한의 국가연합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대비 

참고문헌





김정일 그 후


김정은과 북한의 미래

건강 악화로 조급해진 김정일은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조부인 김일성을 빼다 박은 외모를 지닌 3남 김정은을 세웠지만, 이에 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뻘인데다, 2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살벌한 권력의 세계를 헤쳐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김정일이 향후 10년 가까이 권좌를 지켜준다면, 40대에 이르는 김정은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권좌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어떤 스타일인가

김정은은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품성을 지녔다는 평가가 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면서 다혈질에 도발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다. 이런 성격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왔다. 2004년 어머니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은은 항상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김정일이 시찰하는 군대에 앞장서 갔다고 한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일본 시사 잡지 사치나 2010년 10월 14일자에서 "김정은은 상당한 통찰력과 실행력을 갖추고 있어 미래의 지도자로 손색없다."면서, "정은과 악수했을 때 그의 눈빛이 아주 예리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은은 바로 위 동복형인 정철보다 기상이 뛰어났으며, 특히 농구 코트 위에서는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전했다. 김정은을 호평하는 후지모토의 발언이 어떤 의도에서 비롯한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어떤 유형의 인물인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김정은은 특히 북한과 같은 폐쇄국가의 통치에 절대 필요한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갖추고 있다. 김정일이 아마도 후계자를 선택할 때 아들들 가운데 비교적 자신을 많이 닮은 김정은을 선택한 것은 이런 요인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췄는지는 향후 스스로 국가운영을 책임질 때 구체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권력승계 과정의 전말

만일 후계 구축 이전에 김정일 위원장에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김정은에게는 파란과 격동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 김정은에게는 모계혈통의 불안정성과 태생적 한계가 가장 크다. 김정일의 정실은 김일성이 인정한 김영숙이라는 여성이지만, 그에 관한 소식은 누구도 모른다. 북한 내부에서도 전혀 알 수 없으며, 왕조시대 대역죄만큼이나 금기사항이다.


또한 김정은은 장남이 아니라 3남이어서 북한 지배엘리트 그룹이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정실의 어머니와 장남 권력승계라는 유교적 전통에 비춰 어긋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교식 혁명전통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장남 김정남은 2001년에 흠집이 나고도 오랜 동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는데, 장자를 우대하는 유교전통이 혁명전통과 함께 북한 지배엘리트층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만큼이나 후계 문제로 고심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유부녀 성혜림을 취해 장남 김정남을 낳아 출생 명분이 불투명하다. 셋째 부인 고영희도 2004년 사망했고, 두 아들에게 마음대로 후계자 교육, 즉 제왕 교육을 시킬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다. 1970년 무렵 김일성도 후계자 문제로 고민했다.


1974년 정치국원으로 입문한 김정일에게는 공식 후계자가 되는 1980년까지 권력 기반을 마련하는 시간이 주어졌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까지 14년간 2인자로 내정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동안 신격화를 위한 저작이나 혁명 성지를 만들면서 스스로 연마했다. 그런 김정일과 비교해 김정은에게는 시간이 없다.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나 경험도 일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천천히 물려받을 여유가 없는 처지다. 그래서 김정은이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국내 통치권을 빠른 속도로 넘겨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은을 둘러싼 친위그룹

9.28 당대표자회에서 장성택이 노동당 최고위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김정일을 비롯하여 리영호(군 총참모장), 조명록(군 총정치국장, 2010년 11월6일 사망)과 비군부의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내각 총리) 등 5명 상무위원은 혁명전통을 잇는다는 측면에서 상징성이 강하다. 장성택이 이런 자리에 포함된다면 오히려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자리는 원로급인데다 김정일이 있기 때문에 굳이 김 패밀리 차원에서 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후보위원들 가운데 장성택의 인맥들이 고루 포진해 있어 후계 구축에 더 효과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에는 최룡해, 태종수, 김평해, 박도춘, 문경덕 등 노동당 비서들이 포함돼 있다. 모두 장성택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박정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장성택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조직을 이끌어가는 실세인 주요부서의 제1부부장들은 거의 장성택 라인의 인물들이라고 분류하면 무리가 없다.

 

떠오르는 김정은 친위그룹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후계 구도는 크게 3개 친위그룹으로 짜여있다.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친족들이 제1그룹을 이루고 당을 중심으로 하는 제2그룹, 군을 중심으로 한 제3그룹 등 3중의 후견그룹이 그것이다. 각 그룹이 김정은을 환상으로 둘러싸고 보좌하는 형국이다. 김정일의 후계 체제 구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010년 9월 28일 당 · 군 · 내각 개편에서 노동당 인사들 가운데 최룡해 당 비서와 리영호 차수가 돋보인다. 특히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과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4개 요직을 맡아 총괄 조율하는 형태다. 당 경공업부장이며 정치국 위원에 임명된 김경희는 김정은 친족을 대표해 당을 아우르는 임무를 맡았음이 엿보인다. 이번 인사를 보면 당과 군, 내각이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는 구도로 돼 있어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는 짜임새다.


장성택은 이 구조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다. 이런 정밀한 설계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풀이다. 김정일 본인이 자신의 건강을 확신할 수 없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하고자 수년 전부터 정밀하게 설계했다고 볼 수 있다.


장자 김정남을 주목해야

김정은 후계 구축 과정에서 만일 다툼이 벌어진다면 그 핵심은 장남 김정남일 것이다. 그의 위상이 바로 그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선 두 가지 얘기가 나온다. 첫째 김정남은 골치 아픈 망나니라는 얘기다. 둘째는 장자론(長子論)이다. 누가 낳았든 큰아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변이나 후계 구도가 흐트러질 경우 김정남이 후계자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별 탈이 없었으면 김정남은 분명히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 김정일이 애지중지했고, 훗날 김일성도 기뻐한 손자가 김정남이었다. 2001년 일본 도쿄에 밀입국하려다 보안당국에 포착되지만 않았어도 김정남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



김정은과 북한 군부

선군정치의 운명

선군정치란, 김정일이 1990년대 말부터 내건 북한 역사의 주역 군대라는 일종의 통치전략이다. 북한은 1955년 이전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국가 통치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으나, 1977년 헌법 개정으로 주체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선포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결별했다. 90년대 초반 후계자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 김정일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군대를 국가의 근간으로 보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제안했다. 선군정치는 남한이나 국제사회에서 매우 생소한 용어다. 하지만 김정일은 사회를 이끄는 동력으로 군대를 선정, 일사불란한 통치 체제로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선군정치에 이른바 광폭정치, 통 큰 정치를 내세운 것은 김정일의 통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것은 일사불란한 군대 체계가 통제가 용이하고 정권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효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석 자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한 사람으로 정해 놓고, 아들 김정일은 그의 영도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형태가 지금의 북한 모습이다. 이런 체제가 행동반경이나 움직임 측면으로 볼 때 김정일에게 훨씬 자유롭다.


후계자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명함을 달고 공식 데뷔한 것은 그만큼 군부 장악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산 지출 등 국가운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인정하는 선군정치를 통해 군부는 북한 체제 내에서 실질적인 지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 이후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면 일종의 군사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조명록 사망은 김정은의 손실

2010년 11월 6일 사망한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직)은 김정일 체제의 군부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김정일이 인민군 총사령관을 겸하고 있지만, 조명록은 순수 군 출신 가운데 부동의 서열 1위였다. 조명록의 사망으로 후계자 김정은에게는 서열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 자리를 보장할 것이란 예측이 있으나,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듯하다. 오히려 군부를 조속히 장악해 후계 토대를 구축해야 할 김정은으로서 오히려 손실이라는 분석이다. 말하자면 김정은은 조명록을 징검다리 삼아 군부를 이끌어야 할 상황인데, 그가 사망한 이상 그만한 인물을 찾을 때까지 군부 장악이 더뎌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와 중국

중국은 북한을 소외 상태로 내버려둘 수 없다. 이는 이데올로기 차원이 아니라 국가전략 차원이다. 만일 수년 내 북한이 붕괴하고 한국 주도로 한반도가 통일되면 주한 미군이 압록강 연변까지 진출할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 턱밑에 세계 최강 미군이 칼을 들이대는,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게는 완충 역할을 할 북한이 꼭 필요하다.


북한이 벼랑 끝 외교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중국의 처지와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북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는 경제 · 군사전략적 이익이 그것이다. 북한도 자신들의 응석받이 같은 요구들을 중국이 쉽게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읽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중국은 북한의 현상유지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대북지원은 북한 경제가 회복할 정도에는 미치지 않는, 겨우 연명할 정도의 석유와 식량자원에 그치고 있다.


중국이 3대 세습을 인정한 배경

폐쇄된 정보와 언론의 오보들 속에서 갖가지 의문을 풀 길은 없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중국이 북한 권력의 3대 세습자로 김정은을 용인한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다.


첫째, 중국 지도부는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권력 이양 시기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3대 권력 세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권력 이양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김정일의 유고를 맞게 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의 김정은 세습 인정은 현실 인식이라는 의미가 깊다.


둘째, 훗날 김정은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세습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김정은 세습에 반대하면 훗날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 김정일 집권 초기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처럼 북 · 중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셋째, 중국이 김정은의 세습을 인정하는 대신, 김정일은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에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북한의 경제난이 더욱 심화되면 언제 국가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에 주입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가 세습 용인의 조건을 미리 못박아두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김정일이 짠 후계 세습 구도가 현상을 유지할 것이다. 경제가 붕괴 직전이고 대외 요인이 만만찮은 상황에서도 후계 구축 작업을 안정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성공적이라는 분석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정일이지만 아직까지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김정은과 중국 5세대 지도부

북한과 중국의 후계자 낙점 과정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나라는 거의 같은 시기에 후계 체제 구축 작업을 시작해, 중국은 2012년 시진핑체제로 전환하고, 북한의 지도자 교체도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김정일이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를 열고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는 행사를 성대히 열었다. 말이 당대표자회지 사실상 김정은의 책봉식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공산당의 후진타오 주석도 시진핑 국가 부주석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앉혀 차기 지도자로서의 낙점을 마쳤다. 20대의 김정은을 50대 후반의 시진핑에 감히 비교할 수는 없으나, 두 사람 공히 한 국가의 후계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북한은 완전 폐쇄된 3대 세습 절차 과정에 따라 후계자를 낙점했지만, 중국은 -비록 공산당 내부 합의에 따른 것이긴 하나- 나름대로 법적 절차와 제한적인 민주적 절차를 거쳐 거대 중국을 이끄는 차기 지도자를 선출했다.


시진핑의 봉건적인 사고방식

2008년부터 북한과 중국은 속으로야 어떻든지 모든 국면에서 혈맹의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중국 쪽이 오히려 더 적극적인 모양새다. 북한 해안포대의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은 무조건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과거 중화 패권을 지향하던 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봉건적 잣대이지만, 지금 중국은 북한을 무조건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과거 북·중 간에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김정일이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국 지도부도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덩샤오핑이 폐쇄적인 북한 지도부를 평가하지 않았던 사실은 각종 연구 자료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덩샤오핑은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직후부터 김일성의 그릇됨을 비판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덩샤오핑의 노선을 따라가는 중국 지도부가 내부적으로 골치 아파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김정은의 대외전략

김정은의 최대 국외 후원자는 역시 중국이다. 여기서 중국인들은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바라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지도부의 대 한반도 관점은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잡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일단의 중국 학자들이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는 더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중국이 내심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바라고 있다는 기존의 인식과 달리 중국의 국익에는 평화적이고 통일된 한반도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내심 바라지 않는다는 주장은 지정학적인 역학관계를 바탕으로 한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한반도와 중국 간의 경제협력은 필연코 대폭 증대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국 역시 대립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북아 지역의 경제주도권 확보에 급속도로 참여할 것이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될 때 비로소 동북아 지역의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지며, 평화통일의 실마리도 마련될 것이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시기

김정일의 가장 큰 관심사는 김정은을 위시한 후계 체제의 안착이다. 우선은 사회 체제의 안정인데, 관건인 경제회생에는 우방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후계자 김정은에게 가장 안정적인 우군일 수 있는 남한과는 유례없는 냉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일거에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3차 정상회담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거의 담판 형식으로 합의를 이뤄내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합의는,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성과물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제외하고,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김정일 회담 때 합의한 서해개발 프로젝트는 대부분 사문화된 채 하나도 추진되지 못했다. 이런 남한의 정치적 정서로 인해 김정일은 실망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이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는다면 순조로운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 그 방안으로 가장 유력한 3차 남북 정상회담도 김정일 생존 시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남한 때리기의 노림수

북한의 모든 대남 도발은 철저한 계산과 예측의 산물이다. 김정일이 핵을 놓고 벌이는 노림수는 포커 게임 논리와 흡사하다. 브루스 메스키타 뉴욕대 석좌교수는 김정일의 핵 게임을 포커 판에 비유해 주목을 끌었다. 실제 조지 부시 행정부와 북한이 했던 2007년 2·13 합의는 그가 예측하고 제시한 해법대로 이뤄졌다.


왕왕 국제사회에서 김정일은 이단아이자 야만적인 지도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김정일은 결코 바보가 아니며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없는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카드를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무대의 주요 변수로 대두시킨 기민한 정치가란 평가도 따라붙는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동을 유추해보면 김정일은 자신의 위한 최선의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예측 가능하고 좀 더 나은 길로 그를 유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김정일이 내보일 카드를 숙지하고 대비·대처한다면 대남 도발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를 개방의 길로 유도할 수도 있다.


김정일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기본 병법 논리나 게임 이론에 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역추적해보면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패와 상대방 남한이 취할 수 있는 패 모두를 게임 판에 올려놓고 요리하는 형국이다. 이에 비해 남한 쪽은 상대를 모르는 것 같다. 알아도 한계가 있는 것 간다. 희망적인 내용을 단정적으로 파악해 정책 결정에 대입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게 이명박 정부의 한계라는 평가다.



강성대국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

북한의 화폐개혁은 시장의 기능을 정지시킴으로써 물자 공급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해 당초 의도했던 물가 안정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을 통해 1960년대 계획경제 배급제로의 복귀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부자들이 애써 모은 재산을 사실상 몰수하는 시대착오적인 강압적 수단이 거센 반발을 불렀다.


한편, 화폐개혁 실패가 역설적으로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파탄 위기와 정치권력의 해체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6자회담 등 국제사회에 조기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김정일은 후계 구축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경제회복을 이룩해야만 할 것이다. 경제 상황과 주민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면 김정은을 위시한 후계 구축은 그만큼 순조로울 것이다.


중국 쪽 정부 인사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일반 주민생활은 매우 어려운 형편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조국이 스스로 헤쳐 나갈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현실을 덮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거나 그럴 조짐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생활고에 어려움이 크지만 사회에 변혁을 가져올 정도로 유동적이지는 않으며, 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후계 체제로의 전환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사회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북한 당국도 경제 불안이 통제 이완으로 연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2010년에는 이례적으로 김정일이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다. 9· 28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후계자를 선출한다는 것을 중국에 설명하고, 중국에서 경제회생의 아이디어를 찾고 사회 불안의 요인을 진정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국내 정세에 밝은 중국 연구원은 "대표자회에서는 후계 체제뿐만 아니라 경제개혁 등을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경제난에 휩쓸려 국민의 불만이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회생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북한 내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나타낸 것이다.


베트남식 개혁의 전망

도이모이(쇄신)으로 대표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이 북한에 적절하며, 북한 역시 이를 벤치마킹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의 전문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금 같은 전제군주적인 정치제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으로 모든 분야에서 외자를 도입하고, 민간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폈다. 그 결과 70년대 2.6%에 불과했던 경제성장률이 80년대 들어 3.6%로 높아졌고, 1990년대 미국과 수교한 이후에는 7%를 웃돌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 보면 시급한 현안들을 베트남이 먼저 이룩해냈다. 전면적인 경제개방을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정치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베트남식 개혁의 매력이라는 평가다.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지향한다면 먼저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 미국과 수교에 성공해야 국제 금융기관의 신용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외자 도입이 가능하다. 미국과 수교하려면 교착 상태인 핵 문제에서 일정한 진전을 보여야 한다. 핵 포기는 몰라도 최소한 핵을 해외에 반출하지 않는다는 보장 또는 문서 담보물이라도 내보여야 할 것이나, 이런 움직임은 현재 꿈을 꿀 수도 없을 만큼 진퇴양난이다. 차세대가 지금과 같은 고착 상황을 열어젖힐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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