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

   
NHK스페셜<워킹푸어>취재팀(역자: 김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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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4��



■ 책 소개
일해도 먹고살 수 없는‘21세기 신빈곤족’의 등장 워킹푸어!

지금은 먹을 것을걱정하는 절대적 빈곤과의 싸움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빈곤, 일을 해도빈곤할 수밖에 없는 "워킹푸어" 현상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기초생활수급비 수준을 넘지 못하고 겨우 생활을 연명하는 "일하는 빈곤층"을 지칭하는말이다.

정직원 채용을 회피하는 사회 때문에 프리터와니트 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과 가정과 임신을 이유로고용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여성들, 연금을 받지 못해 죽을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노인들 등 각계각층의 워킹푸어 실상을 보여주면서, 세계화의 파도에 휩쓸려 쓰러지는 중소기업과 그에 따른 지방 경제의 붕괴를 상세히 다룬다. 이를통해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새로운 빈곤"이 생겨나 사회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현상을 고발한다.

■ 저자 NHK스페셜<워킹푸어&& 취재팀
2006년 7월에 첫 방영된 NHK스페셜 <워킹푸어&&는, 1억 중산층 국가라는이름 뒤에 가려진 신빈곤 현상 ‘워킹푸어’의 실상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크게는 경기 불황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작게는 가족의 질병이나 파산과해고로 빈곤의 늪에 빠진 워킹푸어의 모습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일본 국회에서는 신조어 ‘워킹푸어’를 이용해 논의를 벌일 만큼 뜨거운감자로 떠올랐다. <워킹푸어&&는 ‘일하는 빈곤층’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물론,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피면서 일본 방송비평간담회가수여하는 제44회 갤럭시상 대상과 제33회 방송문화기금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역자 김규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회과학과를졸업하고, 동경 외국어대학원 지역 문화연구과 국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일본 전문학원에서 연구원이자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있다. 옮긴 책으로는 『평화를 배우는 교실』『환경을 지키는 작은 습관』『마음 가꾸기』『친구들의 이야기』『달력에 담긴 나의 이야기』『엄마의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추천의 글
여는 글

1장 워킹푸어, 일본을 좀먹는 병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 | 실업자 유키 씨의 이야기| 갈림길에 선 일본인 

2장 노숙자가 된젊은이들 
무료 급식소를 찾는 젊은이들 | PC방과 만화방을 떠도는 난민 생활 | 급속히 늘어나는 일용직 삶 | 도쿄 상경4년 만에 길거리로 | 6개월 사이에 세 곳의 직장을 옮겨 다니다 | 워킹푸어에서 벗어나고 싶다 | 낡은 잡지가 생활의 양식 | 노숙자 이와이씨의 이야기 | 사회와 이어진 끈을 잃다 

3장 붕괴 직전의 지방 
대폭설로 굶어 죽은 형제 | 구원의 집에서 만난 빈곤의 실상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 | 왜 생활보호를 신청하지 않는가 | 상가의 마지막 양복점 | 주문이 없어도 매일 가게를 연다 | 재단사스즈키 씨의 인생 | 잠자는 시간도 아끼며 일류 재단사로 | 상가 제일의 양복점으로 | 낫토와 장아찌뿐인 식사 | 가난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없다 |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 농부들 | 그래도 농사는 그만둘 수 없다 | 더 깊은 수렁 속으로 | 눈으로 폐쇄된 한계집락 | 가장이 쓰러지다| 사토 일가가 마을을 떠날 수 없는 이유 

4장 꿈을 빼앗긴 여성들 
1500통의 목소리 | 하루 수면 시간은 단 네 시간 | 이혼을 하고생활이 완전히 뒤바뀌다 | 엄마와 함께하는 단 세 시간 | 자립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 책임을 포기한 국가 | 앞으로 10년 동안, 몸이엉망이 되더라도 | 우리들은 "일회용"인가요? | 관에서 민으로! | 스물셋 오카 씨의 꿈 | 어둠 속에 빠진 꿈 | 10엔의 시급 인상 |버리고 싶지 않은 꿈 | 똑바로 앞을 보고 걸어가고 싶다 

5장 세계화의 파도에 쓰러지는 중소기업 
도미노식 연쇄 파산 | 파탄 위기에 몰리다 | 죽음을택한 장인 | 기후로 몰려드는 중국인 | 시급 200엔의 노동자들 | 위법을 해서라도…… | 성실한 업체는 망할 수밖에 없다 | 30년 밥벌이의쓸쓸함 | 밑바닥을 향한 경쟁

6장 죽을때까지 일하는 노인들 
공원에서 청소하는 노인들 | 연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 없는 자를 더 가난하게! 무서운 제도개혁 | 세찬 빌딩 바람을 온몸에 맞으며 |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부부 |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다 | 알루미늄 캔이 생활의 양식 | 캔줍기도 치열한 경쟁 사회 |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 죽을 때까지 일하는 노인들 

7장 가난을 대물림 받는 아이들 
워킹푸어의 가장 작은 약자들 |빈곤의 희생양이 되다 | 형편없는 복지시설 | 잃어버린 가정을 찾아서 | 부모의 가난이 아이의 장래를 결정한다 | 세 가지 일을 하는 아버지 |거품의 붕괴, 인생을 뒤틀어 놓다 | 꿈을 포기하지 마 

8장 현실과 마주할 시기 
아름다운 시골 풍경 뒤에 숨겨진 무참한 가난 | 암처럼 조용히…… |빈곤의 대물림 | 워킹푸어는 왜 발생하는가? | 무엇이 필요한가 | 워킹푸어는 경기회복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 워킹푸어 인구조차 파악되지않는다 | 개인의 책임이니 어쩔 수 없다? | 더 늦기 전에

닫는 글
해제 - 진실은 언제나 진행형
옮기고 나서

 




워킹푸어

워킹푸어, 일본을 좀먹는 병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

빈곤이 일본을 뒤덮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틀림없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취재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현실과 맞닥뜨린 후부터 이와 같은 생각에 휩싸였다.


2005년 가을, ‘청년실업 문제’를 다룬 토론 프로그램을 취재하기 위해 이와테 현으로 향했다. 이 시기는 ‘니트(NEET,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지만 직업 훈련과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무직자를 이르는 말)와 프리터(Freeter, 구속을 싫어해서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내는 젊은 층) 400만 시대’라고 불리며 일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일자리로 보낼지에 대한 문제로 국가가 대책 마련이 고심하던 때였다. ‘젊은이들은 왜 일하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우리는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젊은이들은 왜 일하지 않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취재팀은 일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러 구인 비율이 낮은 도호쿠 지방을 취재하기로 했다. 마침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취업 활동으로 바쁜 가을이었다. 우리는 몇몇 학생과 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스스로가 큰 착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은이들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 할 곳이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리터나 니트 족 젊은이들이란 인생을 학생 시절의 연장쯤으로 생각하는 모라토리움 신드롬(Moratorium syndrome)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장기간 계속되는 불경기로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젊으니까 하려고만 한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일을 골라 하려는 것 자체가 사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말 그대로 일이 없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일하지 않는 자신을 책망하고 세상이 보내는 차디찬 시선을 견뎌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냉혹한 노동환경과 괴로운 현실을 호소하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다.


취재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저마다 우리에게 호소했다. “정사원으로 채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월급이 적고 업무가 힘들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정말 채용하는 곳이 없어요!”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는 자위대입니다. 공무원이니까 안정된 직업이잖아요. 거기 말고는 취직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작년에 자위대에 합격한 사람은 영웅 대접을 받았어요.” “우리 학교에는 슬롯머신 업소 종업원 구인광고만 와요. 그곳에서 주는 월급은 20만 엔이 넘으니까 대우는 좋은 편이죠. 하지만 솔직히 회사나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우리가 만난 고등학생은 하나같이 성적도 우수하고 성실하고 예의도 바른 학생들이라 나라의 장래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젊은이들이었다. 도대체 일본은 언제부터 이런 지경에 처해버린 것일까? 그러나 발길을 돌려 노동 현장에서 만난 ‘일하는 젊은이들’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혹한 현실에 처해 있었다.


우리가 만난 한 20대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 있는 온천 여관에서 일했다. 그런데 여관이 파산하는 바람에 현재는 호스티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여성은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라고 말하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슬롯머신 업소에서 숙식하며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해고된 20대 남성은 다시 취직할 곳을 찾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는 “수입이 이것밖에 되지 않으니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라면서 머리를 떨구었다.


레스토랑에 취직했지만 규모 축소로 해고된 20대 남성은 시급 800엔을 받고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생활비가 빠듯해서 밤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힘들게 투잡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사실은 호텔에서 일하고 싶어요. 하지만 꿈은 자면서 꿀 수밖에 없나 봐요”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사원으로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갑자기 아르바이트로 밀려난 또 다른 20대 여성은 시급 800엔을 받으며 한 달에 채 10만 엔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날마다 헬로워크(일본 공공직업안정소의 별칭으로 고용지원센터의 역할을 한다)를 방문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아침부터 밤까지 필사적으로 일했다.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젊은이도 많았다. 모두가 장래에 대해 크나큰 불안을 안고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다’라는 소망 그리고 ‘이대로라면 결혼조차 할 수 없다’라는 비통한 심경을 품고 있었다. 갈 곳 없는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역사회는 이 정도까지 쇠퇴한 것일까?


꿈을 빼앗긴 여성들
1500통의 목소리

파견 계약은 3개월마다 갱신됩니다. 어떤 보증도 없어요. 장래의 일들은 전혀 생각할 수 없어요. 매월, 매일 단위로 짧은 기간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는 결혼이나 출산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정말, 정말 불안합니다. - 30대, 파견 사원, 오이타 현


저는 사무직 일을 합니다. 정사원과 업무 내용은 동일한데 수입은 정사원의 3분의 1입니다. 한번은 상사에게 “정사원과 아르바이트의 차이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싫으면 그만둬도 상관없어. 대신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라고 하더군요.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수 없는 건가요? - 40대, 아르바이트, 시즈오카 현


2006년 7월, NHK스페셜 <워킹푸어>가 방송된 직후부터 NHK에는 약 1500통에 달하는 한탄의 목소리가 배달되었다. 그중에서 특히 여성들이 보낸 편지와 메일이 많았다. 낮은 임금,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위치,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구인률……. 언제부터인가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된 불안과 초조함을 절실하게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1996~2006년의 10년 동안, 기업은 인건비 삭감을 위해 파견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 사원을 늘려왔다. 그 거센 바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이전에는 여성의 정사원 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일반직 채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파견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전환되었다. 지금은 일하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시급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사원이다. 부모나 남편의 수입에 의존할 수 있을 때는 그나마 불안이 덜하지만 혼자 힘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순간, 여성은 쉽게 워킹푸어의 혹독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혼을 하고 생활이 완전히 뒤바뀌다
소리마치 씨는 1993년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지역의 유명한 호텔에 정사원으로 취직했다. 프런트 업무를 시작으로 점차 결혼식과 이벤트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취직한 이듬해인 열아홉 살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낮에는 아이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녀는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일에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6년에 배관공이었던 아버지가 쉰넷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이들을 맡길 수 없었던 소리마치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다음 해에 이혼을 했지만 남편은 위자료나 양육비를 보내주지 않았다. 수중에 있는 돈은 5만 엔이 전부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아야만 했다. 공립 보육원에 보내려고 시청을 찾아갔지만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부모의 아이는 맡을 수 없다”라며 거절당했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으면 회사는 면접도 보게 하지 않았다. 사실을 숨기고 면접을 통과해도 채용하는 회사는 없었다. “자녀가 병이 나면 쉬거나 조퇴할 거잖아요.” 회사들은 이력서를 볼 때, 정사원으로 3년 반 일한 경력이 아니라 어린아이 둘을 혼자 키운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저축은 바닥이 나고 시영주택의 월세와 광열비는 연체되었다. 시청에서는 “체납된 월세를 내지 못하면 퇴거하라”라는 통보를 해왔다.


6개월 후,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진 소리마치 씨는 복지 사무실로 가서 상담을 하고 ‘모자 생활 지원 시설’, 즉 ‘모자 기숙사’를 소개받았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남편의 폭력에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긴급 대피 시설이었다. 목욕탕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작은 부엌이 딸린 6조(다다미 혹은 다다미를 세는 단위를 말한다. 1조는 보통 90㎝*180㎝이다.) 정도 되는 방을 배정받았다. 이곳에서는 어머니가 낮에 일을 하러 나가면 기숙사 사감이 아이들을 돌봐준다. 며칠 후 겨우 일자리를 찾았다. 슈퍼에서 물건을 진열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시급 650엔으로 실제 소리마치 씨의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한 달에 8만 엔 정도였다. 일을 찾아다닌 6개월 동안 면접을 본 회사만도 60개사가 넘었다.


금속 공장, 건물 관리 회사, 양복점 등 그 후 소리마치 씨는 여덟 곳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두에 걸린 아이를 돌보기 위해 회사를 쉬었다고 해고된 적도 있고, 밤에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들통이 나 해고된 적도 있다. 언제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모자가정의 어머니들, 그러나 이런 해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중부 지방의 한 은행에서 파견 사원으로 창구 업무를 보던 여성은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심하니 데려가라는 연락이 올 때마다 회사를 조퇴할 수밖에 없어 일자리를 잃었다. 간토 지방의 사무용품 회사에서 파견 사원으로 영업을 담당하던 여성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일주일간 회사를 쉬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다. 휴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정사원인 남동생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간호한 결과였다. 간사이 유치원에서 임시 직원으로 급식 조리 일을 하던 한 여성은 쉬면 해고된다는 것을 알고 쉬지 않고 일하다가 아이의 병이 폐렴에서 수막염으로 악화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남자는 일을 하고 자녀 양육과 부모의 간호는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반면, 그러한 부담을 안고 일하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사회 구조는 미흡한 실정이다. 일본의 모자가정은 123만 세대(2003년), 그중에서 헤어진 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는 가정은 고작 18퍼센트에 불과하다. 80퍼센트 이상의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지만 평균 연봉은 225만 엔으로 일반 가정의 평균 연봉인 580만 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화의 파도에 쓰러지는 중소기업
도미노식 연쇄 파산

“워킹푸어는 더 이상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취재한 우리들은 이렇게 확신했다. 이 문제는 도대체 얼마나 심각하고 널리 퍼져 있는 것일까? 취재 대상을 개인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 혹은 지역으로 넓힐 필요성을 느낀 우리들은 일본의 제조업을 지탱해온 각 지방의 특화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모든 업종이 해외와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세계화 시대인 만큼 대다수 지역의 특화 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잇달아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도 워킹푸어 문제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지역 주민들의 수입이 연쇄적으로 줄어드는 ‘총 워킹푸어’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지금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 호황기라고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아이치 현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를 목표로 하는 도요타 자동차가 지역 경제를 이끌면서 2006년의 유효구인배율(공공직업안내소에 등록된 구직자 수로 구인 수를 나눈 수치)은 1.85배로 전국 평균인 1.06배를 크게 웃돌았다.


나고야 역 주변 백화점이나 지하상가에는 휴일이 되면 커다란 쇼핑 가방을 몇 개씩이나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번잡하다. 그러나 전철로 겨우 20분 떨어진 기후 역에 내려서면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번화가에 자리한 백화점은 폐점하고 건물이 해체되어 무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이 더 극명히 나타나는 곳은 양복 도매상이 모여 있는 구역이다. 어림잡아 4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선 거리에 문을 연 가게는 고작 두 곳이었다. 어떤 건물은 영업을 하는 상점이 하나도 없고 열 개 정도의 도매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간판만이 벽에 붙어 있었다. 셔터에 붙은 종이에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파산’, ‘도산’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후 시의 경제를 지탱한 것은 섬유산업이었다. 에도 시대에 번성한 직물 산업을 기반으로 양복 제조가 급속히 발전했다. 도쿄, 오사카와 함께 3대 산지의 하나였던 기후 역 앞 도매상 거리는 전국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도매상에는 봉제, 단춧구멍을 마무리하는 ‘사뜨기’, 완성품을 다림질하여 완성하는 ‘프레스’ 전문 업자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후 시뿐만이 아니라 근처의 다른 시나 마을에까지 관련 산업이 확장되어 있었다. 제조에서 유통에 이르는 다양한 공정을 많은 중소 영세업자가 분업하여 상호 의존하는 형태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고 고용을 창출한 것이다.


기후 시의 통계에 따르면 최대 전성기인 1991년에는 섬유산업에 종사하던 사람이 2만 5000명에 달했다. 통계에 누락된 부업과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몇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연간 판매액은 8700억 엔에 달했다. 하지만 해외 제품과의 치열한 가격 경쟁은 섬유의 거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후 시에서 주로 제작한 것은 원래부터 대중을 상대로 한 저렴한 제품이었다. 그런 상황에 압도적으로 값싼 인건비로 만들어낸 중국 제품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기후 시가 보유하고 있던 시장은 순식간에 침식되어 재고가 쌓이고 도산하는 도매상이 잇달았다. 도매상이 도산하면 일을 하청받던 봉제와 프레스 업자들도 일거리를 잃는다. 도미노처럼 업체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섬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전성기부터 계산하면 매년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섬유 업계 종사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비용 절감 경쟁에 내몰려 줄어든 수입과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고 있다.


가난을 대물림 받는 아이들
워킹푸어의 가장 작은 약자들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은 가장 약한 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워킹푸어 문제도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을까? 본디 누에고치처럼 아이를 지켜야 하는 가정이 일부 아이들에게는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우리는 아동 학대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부모의 학대로 상해를 입은 아이에 대한 기사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아이가 피해자인 상해 사건. 가해자는 아버지나 어머니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단계적으로 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폭력을 휘둘러 큰 상처를 입힌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현장은 도쿄의 서민층이 많이 사는 대규모 단지였다. 같은 층에 사는 주민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가 된 가족에 대해 자세히 아는 주민은 거의 없었지만 사건의 조짐을 눈치 챈 사람은 있었다. “그 집 아이가 현관 앞 복도에서 자주 울었어요. 얼굴에 맞은 흔적이 있어서 아동 학대가 아닌가 하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같은 층에 사는 한 부부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신고하지 않았다.


쾌청한 일요일에 방문한 단지의 복도는 창문으로 희미한 빛만 들어올 뿐이어서 낮에도 어두침침했다. 아동 학대뿐만 아니라 이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이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지역사회가 와해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단지 1층의 한쪽에는 우편함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우편함에는 온갖 전단지가 엉망으로 꽂혀 있었고 바닥에는 종이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현관 문틈으로 살짝 보이는 방도 어수선한 가정이 적지 않았다. 왠지 황폐한 인상을 받았다. 황폐한 생활이 지속된 끝에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에게서 학대받고 보호 조치를 받거나 사정상 부모나 친척이 키울 수 없는 아이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시설이 있다. 아동양호시설이다. 아동양호시설은 아동복지법에 의해 정해진 시설 중 하나로, 부모가 사망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아이들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해주는 시설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5년 10월 전국에 558개의 시설이 있고 약 3만 명의 아이들이 아동양호시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부모에게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데려와 보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래 들어 눈에 띄는 특징은 보호자가 있는 아이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과 마주할 시기
더 늦게 전에

이번 취재에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워킹푸어 문제가 결코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워킹푸어가 된 원인을 한편 살펴보자. 모자가정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을 했고, 스물셋의 한 여성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도시의 전문학교에 가는 것을 단념했다. 고령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늙는 것’ 자체가 원인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원인이 되어 워킹푸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전에 염두에 두고 치밀한 대책을 세운다면 워킹푸어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운이 나빴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워킹푸어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진학의 기회를 잃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는 사회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 더 이상 문제의 해결을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다. 빈부 격차 문제에 관심이 모이고 워킹푸어가 국회에서도 논의되었다. 일본은 재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효력이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한 경기가 회복되면서 고용 상황도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끝날지 주시해야 한다.


워킹푸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고용 문제를 비롯하여 의료 및 사회보장 문제, 더욱이 고령화와 세계화 등 각자가 서로 다른 사정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써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책을 강구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 방식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 선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