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E.B.폴라드(역:이미경)
ǻ
책읽는귀족
   
24000
2016�� 02��



책 소개

 

‘여성이 주인공’인 역사 이야기, 처음이지? 

 

얼마 전, 한 여성 국회의원이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밉상을 산다면서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총선에 도전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공공연히 할 말은 아니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 조언이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는 선배가 자신의 경험에 의한 진심을 전했다는 것에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양성 평등’이라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사람은 없다. 최근 뉴스를 봐도 여전히 여성들은 데이트 폭력 등 가까운 남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강력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때로는 단지 그저 ‘여성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빠진 남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무시와 남녀차별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또 여성에 대한 차별은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이 책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던 세계사 속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그 동안 알고 있던 역사는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었지만, 이 책 속에서만큼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특히 이 책에선 동양 여성들이 오래 전부터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가족과 사회에서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전설과 신화, 그리고 때로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 속 에피소드를 통해 서양의 남성 지식인이자 이방인의 시각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저자 E. B. 폴라드 
저자 E. B. 폴라드(Edward Bagby Pollard)는 침례교 목사이자 교육자였던 부친 존 폴라드에 이어, 켄터키 주 남침례 신학교를 졸업하고 곧이어 1890년 침례교 목사로 서품을 받았다. 1896년에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896년에서 1902년에는 콜롬비아 대학(현재,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1902년에서 1906년에는 켄터키주 조지타운 대학에서 성서 문학을 가르쳤다. 또한 조지타운 대학의 교수 시절에는 조지타운 제일침례교회 목사직을 겸하기도 하였다.

 

미국 ‘Rittenhouse Press’에서 총 10권으로 출간한 『Woman: In All Ages and In All Countries』 시리즈의 제4권에 해당하는 이 책 『Oriental Women』을 집필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Paul Judson(1905)』, 『The Subjection of Woman According to St. Paul(1914)』등이 있다.

 

■ 역자 이미경
역자 이미경은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적응력』, 『오이디푸스 왕 ㆍ 안티고네 ㆍ 엘렉트라』 등이 있다.

 

■ 차례
기획자의 말 : 2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가의 말 : 여성의 지위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보이네!

 

Part 1 태초에 여인들이 있었다네
첫 번째 발자국 최초의 여성, 아담의 아내 ‘이브 ’
두 번째 발자국 ‘사건 뒤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다 ’
세 번째 발자국 최초의 사악한 여자, ‘릴리스 ’
네 번째 발자국 일부다처제 속의 여인들
다섯 번째 발자국 히브리인 최초의 어머니, 사라 이야기
여섯 번째 발자국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 이야기
일곱 번째 발자국 옛날 결혼은 두 명 이상의 남자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

 

Part 2 이스라엘에 영웅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동생 모세를 살린 미리암 이야기
두 번째 발자국 매춘부, 라합 이야기
세 번째 발자국 이스라엘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 드보라
네 번째 발자국 이웃, 블레셋의 딸들
다섯 번째 발자국 레위 사람의 아내와 베냐민 여자들
여섯 번째 발자국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일곱 번째 발자국 여성들의 우정과 의리, 롯과 나오미의 사랑

 

Part 3 옛날, 옛날에 왕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율법에서 내세운 여성의 위상
두 번째 발자국 히브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세 번째 발자국 이스라엘 여성의 결혼식
네 번째 발자국 히브리의 어머니들
다섯 번째 발자국 이스라엘 어머니의 모정
여섯 번째 발자국 이스라엘 여성들의 종교적 위상
일곱 번째 발자국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아내들

 

Part 4 고인 물은 썩는다네
첫 번째 발자국 나쁜 여자, 이세벨
두 번째 발자국 왕좌를 꿈꾸던 여성들
세 번째 발자국 시온의 딸들
네 번째 발자국 현명함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가 된 에스더
다섯 번째 발자국 인간의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남긴 히브리 여성
여섯 번째 발자국 유대 여인들에게 찾아온 기회
일곱 번째 발자국 알렉산더 얀네우스 왕의 미망인 알렉산드라

 

Part 5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도 여성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인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
두 번째 발자국 죽음의 여신, 알라트
세 번째 발자국 아시리아의 뛰어난 여성, 세미라미스
네 번째 발자국 ‘금수저’ 여성이 오히려 덜 자유로웠다
다섯 번째 발자국 괴상한 방식의 결혼
여섯 번째 발자국 하렘의 여인들
일곱 번째 발자국 아시리아 여성들의 삶

 

Part 6 나일 강에는 수련 같은 여인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이집트의 여인들
두 번째 발자국 이집트의 여왕들
세 번째 발자국 이집트 여인들의 화장술
네 번째 발자국 자기 집에서는 여왕이나 마찬가지
다섯 번째 발자국 이집트 여성들의 유희
여섯 번째 발자국 이집트의 ‘생활의 발견’
일곱 번째 발자국 두 명의 이집트 여성

 

Part 7 힌두의 여인들은 문학 속에서만 사랑을 받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문학에서의 여성의 위치
두 번째 발자국 남성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함정
세 번째 발자국 여성들의 삶을 좌우하는 카스트 제도
네 번째 발자국 인도에서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
다섯 번째 발자국 남편 그늘에서만 존경받을 수 있는 아내
여섯 번째 발자국 15세가 되면 아내가 되든지, 아니면 과부가 되든지
일곱 번째 발자국 환영받지 못한 출생

 

Part 8 페르시아의 전설 시대에도 여성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동양에서는 여성이 진정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두 번째 발자국 페르시아 왕들과 아내들
세 번째 발자국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그리고 그 후
네 번째 발자국 이혼을 할 수 없는 페르시아 여성들
다섯 번째 발자국 노처녀는 천지만물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여섯 번째 발자국 페르시아의 시인들이 본 여성들
일곱 번째 발자국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 ‘라일라와 마즈눈’ 이야기

 

Part 9 아라비아 여인들의 더 특별한 이야기라네
첫 번째 발자국 ‘사막’과 ‘컬트’와 함께하는 아랍 여성
두 번째 발자국 아라비아의 여왕 이야기
세 번째 발자국 마호메트와 여성들
네 번째 발자국 여성에 대한 ‘코란의 가르침’에 따르면
다섯 번째 발자국 아랍에서 여성들에게 허락되는 일
여섯 번째 발자국 남편은 아내와 함께 걷지 않는다
일곱 번째 발자국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남편의 말 한 마디에 따라

 

Part 10 터키에도 여성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몽상가, 오스만의 이야기
두 번째 발자국 터키의 여류 시인들
세 번째 발자국 술탄과 그의 부인들
네 번째 발자국 터키의 역사에 남은 아주 특별한 여자들
다섯 번째 발자국 과거의 비극을 뒤로하고 역사는 흐른다
여섯 번째 발자국 터키 여성들에게 유럽이 깃들다
일곱 번째 발자국 터키 여성들의 내일은 과연 ‘맑음’일까

 

Part 11 그 옛날, 무어족 여성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가장 매혹적인 여성, 무어족의 여자들
두 번째 발자국 무어족 여인들이 스페인에 남겨놓은 것들
세 번째 발자국 무어족 여성들과 목욕은 일심동체
네 번째 발자국 스페인의 아랍인들을 따라가 보면
다섯 번째 발자국 무어족 여인들이 결혼할 때
여섯 번째 발자국 ‘막후 권력자’, 하렘의 무어족 여인들
일곱 번째 발자국 한 여인이 스페인을 그들에게 돌려주다

 

Part 12 중국과 조선에도 여성들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중국을 지배하는 것은 ‘가부장제’
두 번째 발자국 여자아이를 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 번째 발자국 요람에서 무덤까지 암울한 삶
네 번째 발자국 공자의 사상이 부부 관계에도 적용되었더라면
다섯 번째 발자국 중국 여성들은 항상 비슷한 옷을 입는다
여섯 번째 발자국 ‘전족’의 유래와 야심찬 여인들 이야기
일곱 번째 발자국 조선의 여성들은 ‘은둔의 나라’에서 ‘은둔의 존재’다

 

Part 13 벚꽃 나무 아래에 일본 여성이 살았다네
첫 번째 발자국 아주 어릴 때부터 자제력을 배우는 일본의 여성들
두 번째 발자국 먼저 태어난 아기가 모든 일에서 우선권을 가진다
세 번째 발자국 일본 여성은 인생을 즐길만한 기회가 더 많다
네 번째 발자국 벚꽃의 나라, 소녀의 결혼식
다섯 번째 발자국 자식은 아버지의 핏줄이라고 여긴다
여섯 번째 발자국 일본의 노래하는 소녀들, ‘게이샤’
일곱 번째 발자국 일본의 능력 있는 여성들

 

Part 14 문명의 흐름에서 빗겨난 여성들도 살고 있었다네
첫 번째 발자국 “가장 행복한 여성은 가장 행복한 나라처럼 역사가 없다”
두 번째 발자국 호주에는 ‘어머니’라는 호칭이 없다
세 번째 발자국 혈통은 주로 어머니를 통해 전해온다
네 번째 발자국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여성들
다섯 번째 발자국 여자의 일생을 나타내는 지표, ‘LTE급 노화’
여섯 번째 발자국 미개한 민족들의 여성은 ‘모든 일에 능한 하녀’
일곱 번째 발자국 필리핀 제도의 여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다

 


옮긴이의 말 : 이방인의 눈으로 본, 동양 여성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

 




어서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태초에 여인들이 있었다네

최초의 여성, 아담의 아내 ‘이브 ’

히브리 역사서에 따르면, ‘사람이 혼자 지내는 건 좋지 않다’는 점은 아주 초기에 밝혀졌다. 아담이 신기원을 열었다는 그 유명한 ‘깊은 잠’에 빠지자, 그의 갈비뼈를 꺼내 최초의 여성을 창조한 후 상처를 다시 봉합하니, 아담의 배필이 탄생하였다는 이 모든 내용은 누구나 아는 성서 속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랍비들에 이어 매튜 헨리를 비롯한 성서 주석가들은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아주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다.


남성 위에 군림하도록 여성을 아담의 머리에서 취한 것도 아니며, 발밑에서 짓밟히도록 그의 발에서 취한 것도 아니다. 여성을 아담의 옆구리에서 취하였다는 것은 아담과 동등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아담의 겨드랑이에서 취하였다는 것은 그의 보호를 받으며, 아담의 심장 근처에서 꺼냈다는 것은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이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로서 앞으로 ‘이쉬솨(여자)’로 불릴 것이다.” 즉 남자가 ‘이쉬’라면, 그와 동등하다는 의미에서 여자는 ‘이쉬솨’가 되는 것이다. 이후 최초의 동양 여성 이브에 얽힌 전설이 수없이 생겨났다. 탈무드에 나오는 어느 유대 전설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아담은 처음에 아주 거대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두 다리로 일어서면 머리가 하늘까지 닿았고, 자리에 누우면 거인 같은 몸집이 뒤덮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린 잠에 아담이 곯아떨어지자 그의 신체 부위로 이브를 만들었다. 이브를 만들고 난 이후, 아담은 예전의 거대한 몸집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였다. 일부 유대 랍비들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는 후손보다 하나 더 많은 열세 개의 갈비뼈가 있었으며, 바로 이 뼈가 창조주의 손에 의해 모든 인류의 어머니를 창조하게 된 물리적 토대였다고 가르쳤다.

남자는 들판에 사는 짐승이나 온갖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지배할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랬기에 이 남자를 길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을 창조하였다는 사상을 함축한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히브리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히브리인이 종교와 도덕의 스승이라는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물론, 독특하면서도 변함없는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나게 한 보수적 기질 역시 이스라엘 여성 덕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만한 증거로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 이야기

아득한 옛날, 리브가를 향한 이삭의 구애는 세세한 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양의 결혼을 특징지을 수 있는 여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결혼 성사 과정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삭이나 리브가가 강요에 의한 선택을 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삭과 그의 부모는 리히터의 표현대로 ‘아내가 없다면 남자는 경건하게 살 수도, 정의롭게 죽을 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자 신복 엘리에셀에게 주인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밀어 넣고, 이삭이 주위 사람들의 딸이 아닌 아람 지역에 사는 일가친척 여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신부를 구해오겠다는 맹세를 하게 한다.


당시는 부족 내의 결혼이 히브리 관습으로 확고하게 뿌리 내렸던 때였다. 이곳에서는 화려하고 값비싼 결혼 선물을 주는 일은 결혼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풍습이었다. 그러나 리브가와 그녀의 오빠 라반이, 리브가의 구혼자가 지닌 재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라반이 결혼을 두고 하는 거래에서 맡았던 역할은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결혼식과 같은 행사에서 남자 형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결혼을 위해 낯선 자의 낙타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났던 리브가의 결단력을 주목해 볼만 하다. 리브가의 성품이 지극히 우아하고 온유하긴 하였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용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디킨스의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젊은 숙녀가 사냥감만큼 온순하고, 사냥감이 그녀만큼 온순하다면 더 이상 청할 게 없다. 기대 이상이다.”그러나 세상이 시작된 이래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수많은 만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애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돈독해진다! 그래서 ‘결혼은 결국 복권이나 마찬가지’라는 냉소 섞인 흔한 말에, 오래도록 공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옛날에 왕들이 살았다네

히브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대다수 고대 민족 가운데 히브리인들이 결혼한 여성들의 권리를 가장 잘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의 재산은 주로 남편들이 관리하였지만, 지참금은 그게 돈이든 땅이든 보석이든 상관없이 아내의 소유로 여겼다. 남편은 아내를 그녀 조상들의 땅에서 억지로 제외시킬 수는 없었다. 따라서 여러 면에서 여성 개인의 권리가 보호되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 여성들의 열등한 위치는 그 대단하였던 나라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한 가지 원인이었다. 로마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들에 대한 모독은 로마 권력의 하락을 부채질하였다. 로마의 쇠퇴기에는 사교나 공적인 모임에서 눈에 잘 띄는 여성들을 천박하다고 여겼다. 이와는 반대로, 히브리의 잠언 속 현자는 남편이 극구 칭찬하는 여성을 가리켜 덕망 있는 여성이라 부르고 있다.


“남자는 성이나 궁전을 세울 수 있지만, 불쌍한 존재다!”

결혼 대상자를 자기 부족으로 제한하는 이스라엘의 관습은 계속되었다. 상속법은 이런 풍습에 힘을 더하였다. 따라서 아주 가까운 친척들이 가장 먼저 결혼상대로 꼽혔다. 야곱은 두 명의 사촌과 결혼하였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도 이와 비슷하였다. 남편들은 특별한 상황에 처한 경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여자 형제라는 말은 아니었다. 가부장적 형태의 사회에서는 같은 집안이나 형제와 누이는 결혼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복형제와 누이, 특히 어머니가 다른 경우의 결혼은 전적으로 부적절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은 물론 다른 모든 지역에도, 프란시스 파워 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적용된다. “남자는 성이나 궁전을 세울 수 있지만, 불쌍한 존재이다! 솔로몬처럼 현명하고 크로이소스처럼 부유해도 성이나 궁전을 가정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어떤 남자도 불가능하다. 여성, 오직 여성만이, 하여야 하고, 혹은 그렇게 원하면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집을 가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이스라엘의 독특한 가정 문화도 주로 히브리의 아내와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을 때 가정을 지키는 일이 여성의 의무였다거나, 그런 일을 선호하였던 것 같지는 않다.



고인 물은 썩는다네

왕좌를 꿈꾸던 여성들

유다 왕국의 아하시야 황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을 제거하려는 반란에서 예후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그러자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모든 후계자를 몰살시켰다. 그러나 죽은 아하시야 왕의 누이가 그의 아들들 가운데 갓난아기 한 명을 무자비한 학살 현장에서 구해내 성전에 숨겼다. 이로써 다윗왕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때가 무르익자, 제사장 여효야다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고, 이제 일곱 살이 된 어린아이를 내세워 왕으로 천명하였다. 아달랴는 충격에 휩싸여 끝내 죽임을 당하였으나, 유다 왕국에 6년이란 부당한 통치 기간을 남겼다.


튤립과 같은 여성이 인기를 끌 때

바알 숭배는 아시리아의 왕, 살만에셀에 전복될 때까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수월하게 자리 잡았다. 이세벨이 이 바알 숭배를 조성하여 신성을 모독하였는데, 천박한 자연숭배로 남성성을 파괴하고, 여성성을 모독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 이세벨을 위해 건립된 기념비는 하나도 없지만, 그녀의 삶이 미친 악영향이 사라지기까지는 여러 세대가 지나야만 하였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던 오만하고 잔혹한 여왕과는 달리, 여호와를 숭배하며 엘리야를 보호하고 위로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미천한 여성들이었다. 새커리(영국의 소설가)는 이렇게 말한다. “소박한 제비꽃이나 데이지 같은 여성이 무시당하는 시절에는 튤립과 같은 여성이 인기를 끌 것이다.”사르밧의 이름 없는 과부를 잊는 것으로 이 말 속에 담긴 비난을 피해 가면 안 된다. 그녀는 달아나던 선지자 엘리야를 자신의 초라한 집에 숨겨주었다. 그리고 단지에 남은 마지막 몇 줌의 밀가루와 약간의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그를 대접하였다고 한다. 엘리야는 1년 동안 그 과부의 집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근이 끝날 때까지도, 과붓집에는 음식과 기름이 끊이질 않는 기적이 함께하였다.



페르시아의 전설 시대에도 여성이 살았다네

이혼을 할 수 없는 페르시아 여성들

페르시아에는 여러 부족과 민족을 비롯해 서로 다른 종료가 혼재되어 있고, 풍속과 관습, 심지어는 언어도 서로 다르다. 민족과 종파마다 끊임없이 서로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야기하고, 증오와 투쟁을 낳기도 하였다.


페르시아의 남녀 관계를 이 나라의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는, 단 한 줄로 정의할 수는 없다. 백성 대다수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풍습은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다른 모든 나라와 비슷하다. 이곳의 법은 부인의 수를 여섯 명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여자는 남편을 선택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여자는 부모에 의해 팔려간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고 부모의 집에 머무는 특권을 누리려면, 아버지에게 혹독한 노동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페르시아 여성들은 이혼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편이다. 부유한 페르시아인들은 대개 도시에서 방이 여럿 딸린 대저택에서 산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진흙 집이나 9미터에서 12미터 너비 정도의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열린 창문과 늘 함께하는 페르시아의 가정주부

페르시아 여성들은 동양 여성들이 보통 그렇듯, 여러 가지 보잘 것 없는 일들을 한다. 물론 빵을 굽는 일도 한다. 여자들이 이 화덕에 하루에 한 번씩 불을 피운다. 이 화덕의 연료는 구하기 힘든 나무 대신, 동물의 배설물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연기도 심하고, 냄새도 아주 고약하다, 하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불순물이 화덕 바로 위에 있는 지붕 구멍이나 창문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이 창문은 항상 열어 둔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 연기가 모두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참을성이 필요한 일들은 모두 여자들의 몫

페르시아에서는 직물 짜는 일은 남녀 모두가 한다. 원시적인 조면기는 물론, 직조기나 방적기가 가족들이 먹고 자고 요리하고 대화하는 공간에 같이 놓여 있다. 실을 잣는 여성들은 일찍 일어나 지치지도 않은 채, 온종일 실을 잣는다. 실 잣는 기술이 평균 수준인 여성이 열심히 일해서 하루에 1파운드의 면을 잣는다면, 약 20센트를 받는다.


여성들은 우유를 짜는 일도 한다. 실제로 남자가 우유를 짜면, 체면에 먹칠은 아니더라도 품위는 깎인다고 여긴다. 여성들은 소, 물소, 양, 염소 등의 젖을 짠다. 버터는 양이 많고 유난히 하얀 색인 물소젖으로 만든다. 페르시아에서는 생우유보다는 쉬어서 굳은 우유를 더 귀하게 여겼다. 흔히 가정주부들은 하루에 두 번 우유를 짜는데, 오전에 짜는 일을 끝내면 곧바로 생우유가 끓어오를 정도로 데웠다. 그러고 나서는 약간 식힌 후, 신 우유를 한 숟가락 정도 첨가한다. 그러면 우유가 빠르게 응고되기 시작하고, 다음 날 아침에 시럽을 넣으면 늘 먹는 아침 식사가 마련된다.


또 여성들은 옥수수를 원시적인 절구에 넣어 빻거나, 납작한 석판에 놓고 돌망치나 다소 개량된 가재도구로 거칠게 부수거나 맷돌로 갈기도 한다. 한 번에 밀을 소량만 갈 수 있어서, 이런 일에는 상당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흔히 남자들은 이 일을 여자들에게 맡긴다.


노처녀는 천지만물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젊은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사는 마을 내에서 혼인을 한다. 각 마을은 대체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기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지역사회다. 페르시아도 부모가 혼사를 결정하고, 자녀는 그런 상황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동양의 관습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남녀가 단절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 사는 젊은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마음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규모가 작아서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일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오랫동안 독신으로 사는 젊은 처녀는 천지만물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동양 전역에서 통상 그렇듯, 페르시아의 젊은 여자들도 12세, 더 정확히는 15세가 되면 혼인을 할 때가 된 것이다. 정혼이 빠르면 유아기에 종종 하기도 한다. 부모들은 우의를 돈독히 하거나, 적어도 우의를 표현하기 위해 아이들을 정혼시키기도 한다. 서로가 결국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자란 이런 아이들은 열렬한 연인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이런 결혼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 여성들의 결혼식

제일 먼저 해야 할 결혼 준비는 신부가 입을 혼례복을 구입하는 일이다. 옷값은 신랑 아버지가 지불한다. 신랑 아버지는 신부의 친지는 물론, 그녀의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마련해야 한다. 마을의 이장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물 준비가 끝나면 양측은 결혼식 준비를 한다. 신부가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신부와 신랑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 신랑 아버지가 마련한 이런 뻑적지근한 연회는 사흘에서 엿새 동안 계속된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페르시아인의 생활과 풍습에 따른 특유의 음악과 춤이다. 하객들이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전문 가수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이삼 일에 걸쳐 쉴 새 없이 진행되던 신부 측의 결혼 준비와 하객 측의 연회가 끝나면, 성인 남자들과 어린 소년들은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선다.


한편, 신부는 앞으로 자신이 살 집을 향해 떠날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마침내 신부의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악사들은 애절한 가락을 연주하고, 신부는 부모님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한다. 이윽고 신랑이 신부의 도착을 알리면 동네 사람들은 죄다 집 밖으로 나와 결혼 잔치를 구경한다. 약간의 의례가 끝나고, 신부가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의 집 앞에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신부는 예를 갖춘 대접을 받게 된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남편과 아내는 이제 신랑이 태어난 곳이자 앞으로 자신들이 살게 될 집으로 안내된다. 그런 후에는 여자 친구들은 처음으로 베일을 벗은 신부의 얼굴을 보기도 하고, 신부가 직접 예단에 놓은 자수를 꼼꼼히 살피기도 한다. 날이 저물면 친구들은 떠나고, 신랑과 신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사형 방법에도 남녀차별이 존재한다

요즘에도 페르시아 여성들에게 왜 글을 배울 필요가 없냐고 물으면, 곧잘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도시나 소도시마다 학교는 있지만, 모두 남자아이들만 다니고 있다. 기독교 학교를 제외하면 여자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없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고, 체념하도록 만드는 것이 신중한 정책이라는 통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한 부모일수록 딸들을 위한 가정교사를 고용하기도 한다.


특히 남녀를 차별하는 뿌리 깊은 관행은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형 방법에도 나타난다. 처형당하는 자가 남자이면 경정맥을 자르고, 못으로 벽에 박아 대포로 날려 버릴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머리카락을 전부 깎이고, 얼굴을 검게 그을리고, 안장 없는 당나귀에 태워 일반 대로를 따라 끌고 가다 마지막에는 자루에 넣어 때려죽인다. 또는 발가벗겨 고양이가 우글거리는 자루에 넣어, 이내 할퀴고 물려 죽게 만들기도 한다.


고대 기독교 교파인 네스토리안 교회의 교도들 사이에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가끔씩 태형을 가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이 허다하다. 여성들은 이런 일을 자신들의 지위에 따른 조건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남편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남편은 존경하는 여성의 수가 아내를 때리지 않는 남편만큼이나 적다’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중국과 조선에도 여성들이 살았다네

중국을 지배하는 것은 ‘가부장제’

조상 숭배는 아득한 먼 옛날부터 중국 민족의 특징이었다. 중국인의 민족성 중에서 가장 커다란 특징은, 바로 부모에 대한 효도이다. 효도를 가르치는 일은 어린 시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천민에서 황제에 이르기까지 효도에 관한 한, 예외는 없다. 중국인의 삶에서 최선의 덕목도 효도에 대한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토대는 땅에 두고, 머리는 하늘을 뚫는 거대한 가부장제는 중국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제도다.


사회적 또는 종교적 이상이 어느 민족에서나 여성의 삶을 형성하는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중국의 초기 역사부터 효도는 당연히 여성관 형성에도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이에 따라, 노인 공경은 중국의 미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수많은 관습에서 드러난다. 가령, 사람들이 함께 걸어가게 될 때 연장자가 맨 앞에 선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 짝을 이루어 그 뒤를 따르게 된다.


여성에 대한 공자의 입장은

여성과 여성의 행실에 대한 공자의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이 여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국 남자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결혼과 축첩 허용에 관한 그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공자가 남긴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오점에 속한다. 초기 중국 문학의 중심을 살펴보면, 여성에 관한 고대의 이상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 민족의 고루한 보수주의로 인해, 이런 고대의 이상이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을 감정적인 민족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고대 시 중에는 낭만적 요소가 넘치는 시들도 상당히 많다. 그 같은 감정을 표출한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아! 상냥한 아가씨, 너무나 아름답고 수줍어하는구려, 모퉁이에서 내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오.


또한 중국 여성을 노래의 소재와 영감의 대상으로 삼은 노래 상당수도 공자를 통해 전해졌다. 문왕의 신부가 지닌 덕을 노래한 축가에서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미덕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착하고 정숙하고 수줍은 아가씨에게 거문고의 미파를 연주해주고 싶네.

들쭉날쭉한 마름 나물을 이리저리 삶았네.

착하고 정숙한 아가씨를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도다.

조선의 여성들은 ‘은둔의 나라’에서 ‘은둔의 존재’다

조선의 여성들이 사리분별을 잘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성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여성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주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부를 수 있도록 임시로 성만 붙여 부른다. 사춘기가 되면 친구들은 더 이상 이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딸아이가 결혼하면 친정 부모는 아이 때 불렀던 이름으로 딸을 부르지 않고, 시집간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다. 하지만 시부모는 며느리를 출신지에 따라 그곳 이름을 붙여 부른다.


조선에는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생활이란 게 없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 별도의 구역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절대적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아내와 말을 섞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남녀 어린이들도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의 여성은 결혼 후에도 때로는 아이로 여겨진다

조선의 여성들은 전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남성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여성들을 존중한다.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거리에서 여성을 만나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서기도 하고, 여성에게는 가장 정중한 어조로 말을 한다.


“조선의 여성에는 3계급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는 보이지 않는 여성들, 즉 항상 안채에만 있거나 외출할 때도 가마를 타고 다녀서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여성들이다. 두 번째는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여성들, 즉 가진 재산이 많지 않아 걸어서 외출을 하지만 남들 눈에는 옷 뭉치가 움직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보고도 그 모습을 알 수 없는 여성들이다. 세 번째는 보여도 눈에 띄지 않는 여성들, 즉 모습은 분명히 볼 수 있지만, 이목을 끌지 못하는 가난한 계층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일하는 여성들로서, 그녀들을 쳐다보는 것은 예의에서 벗어난 일이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 생활이 훨씬 더 제한되어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조선의 법도는 너무 엄격하여 모르는 이가 손끝으로 여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딸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죽이기도 하며,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은둔의 나라’에서 남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이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서상 젊은 남자는 자신의 생활을 넉넉하게 꾸려나가거나, 적어도 함께 생활할 배우자 없이 오랫동안 혼자 지낼 수는 없다.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아이로 취급되며, 때로는 결혼 후에도 오랫동안 아이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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