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영원불멸의 권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유혹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인 폭군이다!
폭군(폭정)의 역사를 통해 권력과 불의 그리고 분노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책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위협받아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에 관해 역설한다. 3,000년 인류 정치사를 관통해온 뒤틀린 정의(正義)에 관한 추적이자,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하지 않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때로는 신의 대변자로, 때로는 개혁의 주체로, 때로는 정의의 집행자로 번번이 자행돼온 이 극단적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일까? 인간이 문명을 이룬 이래 계속해서 나타난 수많은 폭정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그토록 민주주의를 열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대중의 이율배반적 심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책은 폭군이 신화에서 역사의 개념으로 처음 등장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부터 종교(기독교)가 정치와 융합하고 분열한 중세 봉건주의와 근대 전제정치를 거쳐 이념 및 사상과의 결합으로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을 야기한 현대 독재정치와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폭정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했고 변질돼왔는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어려운 용어 하나 없이 폭정과 독재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와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 저자 월러 뉴웰
저자 월러 뉴웰은 칼턴대학교 정치학 교수(정치철학·정치과학 강의). 토론토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정치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범세계적 정치 연구기관 우드로윌슨센터 및 런던대학교 국제연합 사회개발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미 레이건 행정부 정책 자문으로 활동했다. 세계 주요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리딩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국제관계 전문가이기도 하다.
문학, 철학, 예술, 역사, 정치, 경제 분야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권력과 정치의 관계에 주목해온 그는 세계 정치사에서 선정과 폭정 사이의 미묘한 연결고리를 발견한 뒤 폭군(폭정)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그 결과를 정리해 출간한 《폭정: 새로운 해석(Tyranny: A New Interpretation)》은 정치철학 분야에서 새로운 학술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후 논의의 범주를 확장하고 대중적 어젠다로 끌어올리기 위해 쓴 이 책 《폭군 이야기(Tyrants)》는 3,000년 인류 정치사에서 인간의 본성과 문화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결합해 폭군을 출현시키고 그 양상을 변화시켜왔는지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한 다른 저작으로 ‘잠재적 폭군’에 관한 진단을 플라톤 정치철학을 통해 서술한 《통치의 열정(Ruling Passion)》과, 권력욕이 폭정에 미치는 영향을 ‘남자다움’이라는 근원적 욕망과 연결해 분석한 《남자란 무엇인가?(What Is a Man?)》 및 《남성의 코드(The Code of Man)》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제시한 《리더의 영혼(The Soul of a Leader)》 등이 있다.
■ 역자 우진하
역자 우진하는 삼육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 번역 테솔 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성디지털대학교 실용외국어학과 외래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영미권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노동, 성, 권력》《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고대 그리스의 영웅들》《18세기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가다》《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와일드》《성의 죽음》《법치란 무엇인가》《들리지 않는 진실: 빈곤과 인권》 등이 있다.
■ 차례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어가며|폭군들의 수상한 행적
|제1부| 아킬레우스의 분노
제1장 호메로스의 왕과 영웅_신화의 폭군에서 역사의 폭군으로
아가멤논의 가면|현실이 된 서사시|왕의 두 가지 기능|세상의 주인|왕과 황제|폭군의 페르소나
제2장 제국과의 조우_폭정과 공화국
전쟁의 영향|기록되는 역사|권력의 기원|아테네와 스파르타|정의로운 정부|정의와 불의|모호해지는 기준|융합되는 문화
제3장 위대한 공화국_ 로마의 시대
공화국의 자질|커지는 권력|영광이 가져온 공화국의 몰락|황제의 탄생|포장된 가치|개혁형 폭군의 매력|무너지는 원칙들
|제2부| 신의 도시와 인간의 도시
제4장 중세의 환상_그리스-로마의 융합과 기독교의 반향
그레코-로만의 유산|합쳐지는 동과 서|환상이 된 제국|제국의 유전자|존재의 위대한 사슬
제5장 새로운 변화_오스만 제국
지상에 드리운 신의 그림자|술탄의 위엄|왕들의 또 다른 군주|군주와 평민|죄악에 빠진 왕국|폭군의 길|단호한 폭력
제6장 자비로운 전제정치_르네상스의 군주들
헨리 8세와 세 명의 조언자들|종교 개혁의 이유|인간의 유일한 죄|튜더 왕조의 역할|스튜어트 왕가와 혁명의 발생|루이 14세와 부르봉 왕가|러시아의 아버지 표트르 대제|프로이센의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
|제3부| 추락한 독수리들
제7장 참혹한 혁명_용서받지 못할 사상
환상의 주인공들|루소의 잔혹한 꿈|광신도를 키운 생각|로베스피에르와 대량학살 논리|이념이 된 폭력
제8장 영원불멸의 왕국_볼셰비키와 나치
천년 제국|걷잡을 수 없는 망상|만들어진 적들|자유의 자식들|황제가 된 혁명가|위대한 정오의 시간|미국식 스파르타|최고의 레닌주의자|종교가 된 이념|사이비 예술가와 사이비 과학자|총통 히틀러|대학살 계획|나치의 유물
제9장 저주받은 이념_제3세계 사회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
세계로 퍼지는 폭력|거대한 환상|혁명가의 계율|이슬람에 생긴 문제|죽음을 숭배하는 자|핵무기를 가진 신의 공화국|단 하나의 목표
나오며|민주주의는 승리할 수 있는가?
참고문헌
찾아보기
폭군 이야기
아킬레우스의 분노
호메로스의 왕과 영웅_신화의 폭군에서 역사의 폭군으로
왕의 두 가지 기능
호메로스가 묘사한 왕의 신분이나 권리 측면에서 왕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왕은 자신과 비슷한 유력 가문 출신들로 이뤄진 전사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평화 시에는 마치 어느 거대한 개인 가문의 가장처럼 국가를 다스렸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국민들은 폭력이나 착취가 아닌 자애로움으로 집안을 다스리는 좋은 아버지를 원했을 것이다. 전쟁이 벌어져 동료 귀족들을 이끌 때에는 왕으로서 자신의 자격, 다시 말해 강력한 통솔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일도 여기에 포함됐다.
왕이 전횡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장치도 마련돼 있었다. 왕에게는 동료 전사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의무가 부여됐다. 어떻게 보면 전쟁터에서 그들은 같은 위치에 있었으며, 전사로서의 자질을 보이지 못하거나 동료 전사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서서 왕좌를 놓고 왕과 대결하겠다는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과 황제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이나 지도자들이 사람들과 격의 없이 섞여 살면서 큰 사치를 부리지 않은 데 반해, 파라오를 비롯한 동방의 군주들은 거대한 왕도의 중심에서 화려한 행사와 제사 의식을 끊임없이 진행했다. 신분의 높낮이는 행사장에서 군주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느냐에 따라 확연히 드러났다.
정치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구세주를 표방하는 모습은 우리가 살피고 있는 폭군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전능자 그리스도를 앞세운 일신교 신앙이 그 정점에 달했는데, 그리스도를 일컫는 또 다른 표현인 전능자란 모든 의심스러운 이방신을 다스리는 신들의 왕이란 뜻이며 지상에서 신을 대리하는 자가 바로 황제였다.
폭군의 페르소나
폭군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계속해서 도덕적인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방의 군주들은 그들의 업적과는 상관없이 광의의 개념에서는 모두 폭군이었다. 이들은 민중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 권력을 휘둘렀으며, 비슷한 위치라고 볼 수 있는 신분 높은 귀족들도 그리스의 경우와는 달리 이들의 권력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다.
동방의 군주들은 자기 마음대로 법도 지배했는데, 그 법을 다른 이들에게는 적용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키루스 대왕처럼 좋은 군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군사나 행정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서도 그 잔혹함과 부패상으로 악명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
제국과의 조우_폭정과 공화국
정의로운 정부
테미토클레스에 따르면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대규모 함대를 보유하고 많은 선원과 조선소가 필요해지면서부터다. 선원과 함선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정부에 대한 발언권이 강해져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르시아와 일전을 벌이게 되자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연합해 합동 작전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스파르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전쟁 이전의 생활로 되돌리려 했으나 아테네인들은 전시에 마련한 군사력에 도취됐고 승전이 가져다준 전리품의 맛에 푹 빠지게 된다.
아테네의 오만한 행보에 분개한 코린트와 같은 폴리스들의 요청으로 마침내 오랜 고립 정책을 벗어던진 스파르타는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아테네의 폭주를 막을 수 없으며 스파르타조차도 위험에 빠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그리스 본토의 모든 도시국가들이 둘로 나뉘어 싸운 30년에 걸친 처절한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단지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라 정의로운 정부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관점의 충돌이었다. 민주정을 따르는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의 편에 섰으며, 귀족들이 모여 소규모 통치 집단을 형성하는 과두정을 따르는 국가들은 스파르타의 편에 섰다.
모호해지는 기준
폭군의 비뚤어진 영혼은 바로 민주주의의 부도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폭군은 민주주의의 장점을 잘못 이용해 월권을 저지르는 선동적인 정치가로부터 시작되며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군중의 분노를 부추긴다. 소크라테스는 폭군이 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성적 욕망이 자신의 성향 속 폭군의 기질을 일깨우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이기심을 충족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폭정에 대한 열망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제되지 않는 그 열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그것은 모든 역량을 정의 실현과 공공 이익 쪽으로 흐르게 할 때라야 가능하다.
플라톤이 설명하는 폭정이 항상 그렇게 완벽할 정도로 무자비한 것은 아니다. 《법률》제4권에서 그는 폭군이 정의로운 사회의 기틀을 닦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야심만만한 폭군 주변에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융합되는 문화
알렉산드로스는 키루스 대왕의 사령관으로서의 역량과 아킬레우스가 전쟁터에서 보여준 개인적 영웅주의를 하나로 합쳤다. 이집트까지 이어지는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미래의 새로운 신화에 어울리는 호메로스식의 영광의 길을 밝히는 불꽃으로 봤다.
본토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변방의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 문명의 대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그리스 본토를 정복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을 구원했고 마침내 그리스를 하나로 통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크세노폰과 마찬가지로 최고 권위를 가진 완벽한 왕정을 꿈꿨다.
이런 왕국을 꿈꾼 알렉산드로스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의 독특한 문화와 동방 제국의 신격화된 왕이라는 개념을 융합시켰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정복 전쟁과 함께 자치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국 비슷한 체제를 퍼뜨리게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피정복민들이 그리스인들처럼 될 수 있는 환경까지만 제공했다. 그 결과 우리가 헬레니즘이라고 부르는 복합적인 문명이 탄생했다.
신의 도시와 인간의 도시
새로운 변화_오스만 제국
술탄의 위엄
오스만 제국의 시각에서 보면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은 곧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토지 소유가 금지됐던 유대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제국에서 특히 환영을 받았다. 이스탄불을 비롯한 부르사나 아드리아노플과 같은 대도시는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경제 특구로 지정돼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상점 주인이나 무역상이나 기술자가 돼서 자유롭게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경제 자치 기구를 후원한 것은 제국의 수입을 더 크게 늘리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쥐고 있는 절대 권력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도 아라비아 지역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외국의 석유 회사들은 원유 채굴 권리를 부여받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는 있지만 유전 자체에 대한 소유권은 결코 가질 수 없다.
단호한 폭력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지도자는 더 큰 폭력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언제든 단호히 폭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벌어질지도 모를 더 큰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지금 선제공격을 할 준비도 돼 있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그저 운에 맡길 수는 없으며, 만일 다른 나라가 위협을 가해온다면 그들의 공격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선제공격을 가해야 한다. 그것도 주저 없이 당장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교훈이 어떻게 현실 세계에 적용되는지에 관해 생각할 때는 그가 결코 분별없는 대규모의 과도한 정치적 폭력을 옹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야망이나 욕심을 억눌러 다른 곳으로 분출하도록 두는 게 아니라 자기발전을 위한 힘으로 그 야망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초기 로마 역사에서 발생했던 살인과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었다.
자비로운 전제정치_르네상스의 군주들
종교 개혁의 이유
비록 처음에는 귀족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새롭게 시작된 종교 개혁은 주로 중간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상업에 종사하는 중간 계층이 늘어났다는 것은 루터가 처음 주장한 양심에 따른 종교적 자유가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개인적 이익 추구에 대한 자유와 어떻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세 시대에는 일반 평민들이 사회 여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지만,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른바 시민 인문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세속과 종교 모두에서 일어난 개인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은 이제 하나로 거대한 흐름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러시아의 아버지 표트르 대제
표트르 대제가 말 그대로 러시아를 일으켜 세워 근대 국가로 발돋움시켰다고 해도 사실 과언은 아니다. 그는 국가 건설에서 튜더와 부르봉 왕가가 갔던 길을 국내 및 국외 정책 모두에서 그대로 따랐으며, 해군력을 증강해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제국주의 정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표트르 대제는 마키아벨리가 절대 왕정에 대해 르네상스식으로 꿈꿨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인재와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국가의 권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문화 혁명을 통한 내실을 다지고 나자 러시아는 유럽의 다른 근대 국가들처럼 과학과 기술 발전에 주력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일종의 새로운 식민지처럼 경영하면서 자신이 유럽에서 보고 배운 우수한 문화와 과학 그리고 발전된 기술을 수용하도록 했다. 반면 영국식 자치 정부 같은 체제는 절대로 도입하지 않았다. 새로운 러시아와 예전 러시아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근대 국가를 건설한 폭군들이 보여주고 있는 역설적인 모습은 근대 국가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통상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은 영토나 민족적 유사성에서 찾는데, 유럽 근대 국가의 정체성은 계몽주의 전제 정치에서 확보됐다.
추락한 독수리들
참혹한 혁명_용서받지 못할 사상
환상의 주인공들
프랑스 혁명의 주역들은 오랫동안 공화국 로마의 엄격한 덕성을 되살린 환상의 주인공들이었다.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를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학창 시절부터 고대 로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혁명의 반대 세력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거기에 연관된 모든 전통과 관습은 파괴돼야 한다. 더 순수하고 더 조화로운 집단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악한 성정이 공포로 정결하게 될 때 야만성과 가학성이 희로애락의 폭발과 함께 일어나며, 그로 인해 인간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선한 본성이 다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자코뱅파가 주장한 인간 역사 원년(Year One)으로의 회귀는 고대 로마 시대의 소박하면서도 전원적이고 금욕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 물질주의와 악한 품성을 포기할 수 있고 강제로라도 과거의 황금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담고 있다. 요컨대 루소가 주장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훗날 소비에트 공산당 볼셰비키가 쿨라크(Kulak), 즉 제정 러시아 시절의 부유한 지주나 악덕 상인을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나치가 유대인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듯이, 자코뱅파는 반혁명분자들의 유혈이 새로운 축복의 시대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영원불멸의 세상을 꿈꾸는 혁명의 대표적인 특징을 제시했는데, 혁명에 반대하거나 충성이 의심스러운 자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유죄를 선고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영원불멸의 왕국_볼셰비키와 나치
최고의 레닌주의자
훗날 국가보안위원회(KGB)로 바뀌는 공산당 내무인민위원회(NKVD)는 스탈린이 크게 경멸하던 무기력하고 말만 앞서는 공산당 구세대가 아닌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인물들로 이뤄진 조직으로서 일종의 국가 속 국가가 되어 학살극의 선봉에 서게 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가차 없는 공포정치는 이른바 사회주의 원시 축적론이라는 소비에트 경제 이론에 의해 정당화됐다. 다시 말해 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사유재산은 단기간에 공장을 건설하고 근대식 강군을 육성하기 위한 자금으로 착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근대 산업 국가가 농업 문화 한 가운데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단기간 내에 완성돼야 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를 통해서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됐고 모든 노동 자체는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돼야 했다. 솔제니친의 유명한 분석에 따르면 볼셰비키의 이른바 교정을 위한 강제 노동 정책은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이룩할 이상향의 본보기였다. 모든 소속감, 신앙, 가족, 사유재산을 포기한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을 양성해 오직 스탈린만을 따르는 극단적인 단일 국가에 충성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인간 행위의 모든 측면에서 비범한 인재가 되자는 자신의 선동과 주장을 스스로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예술 분야에도 자주 개입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소비에트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고,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반공산주의로 여겨지는 근대 음악이 아닌 진정한 소비에트 공산주의 음악을 작곡하라는 충고도 했다.
종교가 된 이념
패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나치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사회주의가 내세운 영원불멸의 이상향에 대한 꿈 때문이었으며, 이런 모습은 제1차 대전 당시 프로이센 황자가 내세웠던 단순한 세계열강의 반열에 오르겠다던 군국주의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가사회주의는 하나의 종교다. 그리고 머지않은 때에 모든 독일 국민이 믿고 따르는 종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꿈이자 희망이다."
레니 리펜슈탈이 연출한 선전 영화의 걸작 <의지의 승리>는 그 제목부터가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데,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중심이 된 멋진 신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또한 독일 국민들이 그 신세계가 현재 건설 중이라고 열렬히 믿고 있다는 사실과 신세계 건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유대인들을 영원히 멸절시키는 것이 왜 인류를 위한 축복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나치의 승리는 계몽주의 운동에 대해 오랫동안 쌓여온 반발의 문화를 설명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나치즘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적어도 반세기 이상 축적돼온 독일의 운명에 대한 환상에 의해 준비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라가르데와 브루크 같은 당대의 인기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상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시켰다. 바그너 음악의 인기와 함께 더욱 유행하게 된 이런 주장은 거의 신성시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는데, 얄팍한 근대 부르주아의 물질주의를 벗어던지고 기사도 정신과 세계를 뒤흔들 만한 용기가 있던 태고의 환상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선동하게 된 것이다.
히틀러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바그너의 수제자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바그너가 작곡한 <신들의 황혼>은 세계적인 대변동이라는 주제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 히틀러는 미래의 독일이 세계의 주인이 되든지 아니면 장렬하게 죽어야 한다는 이상을 품게 된다.
저주받은 이념_제3세계 사회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
하이데거는 프랑스 지식인들과 그 후계자들, 특히 캄보디아의 폴 포트나 이란 혁명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알리 샤리아티와 같은 야심만만한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과정에서 계몽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방해를 벗어나 근본적 의미를 되찾았던 국가사회주의의 민족정신 속 국민은 제3세계 사회주의 속 국민으로 거듭났다. 아울러 이 제3세계 사회주의는 서구 사회의 제국주의 세력을 겨냥한 민족 해방 운동의 폭력적 투쟁을 통해 그 운명을 되찾게 됐다.
이렇게 해서 국민은 혁명이라는 심리극 속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하게 됐고, 혁명적 투쟁의 중심은 발전된 산업 민주주의 속 계급투쟁에서 식민지 국가들과 서구 제국주의 압제자들 사이의 투쟁으로 바뀌게 됐다.
세계로 퍼지는 폭력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제2차 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프롤레타리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거나 노동자들의 혁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사회를 여전히 증오하던 사람들은 그 파괴 작업을 위한 새로운 세력을 필요로 했고 결국 제3세계에서 그 세력을 찾아냈다.
영원불멸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 운동을 통해 추적해온 종말론적 사상을 계속 유지하는 동시에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던 압제자들의 주체는 이제 부르주아라는 계급에서 서구 열강의 자본주의 민족 국가로 바뀌었다.
이런 새로운 흐름들 중 상당수를 직접 실행에 옮긴 인물은 당대의 가장 악질적인 독재자 중 한 사람인 중국의 마오쩌둥이었다. 그가 주석으로 있던 시기에 인민재판, 처형, 자살, 기근, 수용소 노역 등을 통해 중국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7,000만 명에 달했다. 그 가운데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그나마 이뤄졌던 경제 근대화를 철저히 파괴하려고 했던 시도로서, 이를 통해 마오쩌둥은 아직 중국 국민들 사이에 남아 있을지 모를 부르주아의 물질주의나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를 다 씻어내 강제로 과거의 집산주의 시절로 되돌리려고 했다.
거대한 환상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해왔지만, 그런데도 폭정이 계속되는 이유는 권력을 향한 결코 꺼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인간의 심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을 위시한 고대 사상가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정의에 대한 열정, 분노, 호전성, 경쟁자에 대한 질투심, 의심, 소유욕 등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플라톤은 이런 모습을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 중에서 격정을 느끼는 기개라고 불렀으며 나머지 두 부분 이성과 욕망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폭군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과거의 독재자들은 베르사유 같은 거대한 궁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삶을 누리며 지배자로서의 대중적 정체성을 자신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세련된 취향과 동일시했다. 키루스 대왕에서 루이 14세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군주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질서정연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슬람에 생긴 문제
기독교가 지배하던 서구 유럽과 달리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 개혁 운동이나 세속의 문화 부흥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종교와 정치의 자유라는 두 가지 원칙에서 핵심이 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아퀴나스 신학이 "모든 인간의 문제는 종교적 계시와 신권정치에 의해 직접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잠시나마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와 같은 사상가들을 통한 철학적 깨달음이 만개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사상가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의 계시를 서로 조화시켜보려고 했는데, 이런 노력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븐 타이미야 같은 완고한 원리주의자에 의해 맥이 끊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불신과 정치적 계급에 대한 선호 때문이었는지 이들은 일당 독재 체제하에 위로부터의 개혁과 발전을 지향하는 소비에트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빈약했던 각국의 경제력은 시장의 힘과 기업가정신의 부재로 마비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독재자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마음대로 지배당하고 수탈당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시리아의 아사드, 이집트의 무바라크,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와 같은 독재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실패한 개혁형 폭군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이 부르짖었던 근대화 역시 결국 소비에트 연방이 이미 오래전 포기한 것처럼 텅 빈 껍데기만 남기게 됐다. 게다가 이들의 뻔뻔스러운 탐욕은 결국 대중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며 등장한 무슬림 형제단의 출현을 불러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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