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케빈 크로슬리-홀런드(역:서미석)
ǻ
현대지성
   
13000
2016�� 02��



■ 책 소개


‘어벤져스’, ‘스타워즈’, ‘토르’, ‘반지의 제왕’ … 이들의 뿌리가 된 오리지널 이야기!


 


『북유럽 신화』는 『그스 로마 신화』와 함께 서양을 대표하는 신화 중 하나로, 높은 지적수준과 웅장한 스케일, 그리고 내용의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보물 같은 이야기다. 이 신화들은 역동적인 북유럽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들은 인간의 열망과 인간이 쉽게 풀지 못하는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북유럽 신화』의 주요 신들인 ‘토르’와 ‘로키’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신화가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만화, 게임,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의 뿌리가 되는 오리지널 이야기, 바로 『북유럽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저자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케빈 크로슬리-홀런드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시인이자 역사학자로, 신화나 민담같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관한 권위 있는 전문가다. 저자는 수차례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북유럽 신화와 아이슬란드 사가 및 독일 영웅시 등을 연구해왔으며, 그 결과로 이 책 『북유럽 신화』를 출간하게 되었다.


 


■ 역자 서미석
서울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디스 해밀턴), 핀란드의 신화적 영웅들 『칼레발라』(엘리아스 뢴로트),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토머스 불핀치), 『러시아 민화집』(알렉산드르 아파나셰프), 『아이반호』(월터 스콧), 『북유럽 신화』등 인문학과 신화, 역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번역하였다.


 


■ 차례
서론
북유럽 세계
우주론
신들
출전
신화의 문학적 구조
신화에 대한 접근


 


1장 천지창조
2장 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전쟁
3장 아스가르드 성벽의 재건
4장 지혜를 얻으려 자신을 바친 오딘
5장 리그의 노래
6장 시(詩)의 신주(神酒)
7장 로키의 세 아이 / 족쇄에 묶인 펜리르
8장 도둑 맞은 이둔과 청춘의 황금 사과
9장 뇨르드와 스카디의 결혼
10장 신들에게 바친 보물
11장 스키르니르의 중매 여행
12장 그림니르의 비가(悲歌)
13장 빛나는 목걸이
14장 트림의 비가(悲歌)
15장 바프트루드니르의 비가(悲歌)
16장 우트가르드로 여행한 토르
17장 히미르의 노래
18장 힌들라의 시
19장 흐룽그니르와 대결한 토르
20장 오딘과 빌링의 딸
21장 길피와 게프욘
22장 하르바르드의 노래
23장 스비프다그의 연가(戀歌)
24장 토르와 가이로트
25장 로드파프니르의 비가(悲歌)
26장 오테르의 배상금
27장 알비스의 비가(悲歌)
28장 발더의 꿈
29장 발더의 죽음
30장 로키의 악담
31장 족쇄에 묶인 로키
32장 라그나로크


 


용어집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전쟁

오딘은 마녀 굴베이그가 찾아왔을 때 다정하게 환영하지 않았다. 그의 궁전에서 굴베이그가 황금에 대한 탐욕스러운 마음을 드러내며 말하는 동안 최고신 오딘과 에시르 신들은 혐오감을 드러내며 듣고 있었다. 화가 난 그들은 마녀 굴베이그가 없어진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해 굴베이그를 잡아 고문했다. 굴베이그는 창으로 온 몸을 난자당했다.


에시르 신들은 구멍 투성이의 굴베이그를 홀 한가운데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 속으로 집어던졌고 굴베이그는 불에 타 죽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잠시 후 굴베이그는 불꽃 속에서 온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에시르 신들은 세 번이나 굴베이그를 불타는 화염 속으로 집어던졌지만 그때마다 굴베이그는 멀쩡하게 다시 살아났다.


그 후로 어느 곳에 가든지 굴베이그는 항상 다른 이름을 얻었다. 굴베이그를 두려워하던 에시르 신들과 그들의 하인들은 굴베이그를 불타는 존재라는 의미로 헤이드라고 불렀다. 굴베이그는 예언자였으며 나무 막대기에 요술을 걸었다. 또한 황홀경에 빠져 마법을 걸었다. 굴베이그는 바로 사악한 마법의 여왕이었으며 모든 사악한 여인들의 기쁨이었다.


바르니 신들은 에시르 신들이 굴베이그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듣자 에시르 신들이 굴베이그의 황금에 대한 탐욕에 넘어간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들은 보복을 맹세하며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높은 용상, 발라스칼프에 앉아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딘의 눈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에시르 신들도 역시 날카롭게 창을 갈고 방패를 닦는 등 전쟁 준비를 했다.


순식간에 에시르 신들은 적진을 향해 달려갔고 오딘은 바니르 무리 한 가운데로 자신의 창을 던졌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진 태초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바니르 신쪽이 우세했다. 그들은 마법을 써서 아스가르드의 거대한 방벽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그러나 에시르 신족도 그에 맞서 맹렬히 싸워 바니르 신족의 세계인 바나하임에 똑같은 손상을 입혔다. 전투는 오랫동안 혼전을 거듭했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어느 쪽도 쉽사리 이기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자 양쪽 신들은 모두 전쟁에 지치기 시작했다. 전쟁의 혼란보다는 휴전과 대화가 더 좋은 해결방법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에시르 신과 바니르 신의 지도자들은 평화협정의 조건을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그들은 전쟁의 발단에 대해 다투었고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책임 소재가 에시르 신들에게만 있는 것인지, 양쪽이 다 조공을 바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협상의 결과는 에시르 신과 바니르 신 양쪽은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며 그 증거로 서로의 지도자들을 맞바꾸기로 동의했다.


그래서 바니르 신족의 두 지도자인 뇨르드와 그의 아들 프레이르는 아스가르드로 향했다. 한편 뇨르드의 딸인 프레이야와 바니르 신족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인 크바시르도 함께 따라갔다. 에시르 신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였지만 뇨르드가 친 여동생과 결혼하여 프레이르와 프레이야를 얻은 사실에 대해서는 쉽사리 용납하지 않았다.


에시르 신들은 뇨르드와 프레이르를 제사를 주관하는 최고의 성직자로 임명하고 프레이야를 여사제로 임명했다. 프레이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나하임에서 잘 알려져 있고 흔히 사용되던 요술을 에시르 신들에게 가르쳐주었다.


한편 에시르 신들 편에서는 다리가 긴 호니르와 현자 미미르를 바나하임에서 살도록 보냈다. 호니르는 체격이 좋고 준수하며 신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에시르 신들은 호니르가 전쟁시나 평화시나 누구나 부러워할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크바시르와 마찬가지로 미미르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바니르 신들도 호니르와 미미르를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바니르 신들은 즉시 호니르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임명했고 미미르는 그의 오른팔이 되어 항상 통찰력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호니르가 미미르와 함께 하면 실패하는 적이 없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짝이었다. 그러나 호니르가 미미르와 떨어져 있으면 사정이 달라졌다. 궁중회의나 회합에 미미르 없이 홀로 참석하여 신들이 자신의 의견을 물어오면 호니르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글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결정하게 합시다."


그러자 점차 바니르 신들은 에시르 신들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의심하는 마음이 커졌고 급기야는 자신들이 지도자를 교환하는 데서 커다란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잠시 후 그들의 의심은 노골적인 분노로 바뀌어 공공연히 복수를 다짐했다. 바니르 신들은 현자 미미르를 잡아 땅바닥에 쓰러뜨린 후 그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리고 사신을 시켜 자신들에게 친절하게도 호니르와 미미르를 보내준 자들인 오딘과 에시르 신들에게 미미르의 머리를 돌려보냈다.


한편 미미르의 머리를 받아든 오딘은 조심스럽게 요람에 누인 후 영원히 썩지 않도록 허브를 발라 잘 보존했다. 그런 다음 오딘은 주문을 외워 미미르의 머리가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진리들도 포함하여 미미르의 모든 지혜는 곧 오딘의 지혜가 되었다.


토르와 가이로트

"당신 매 가죽 좀 빌려줘요." 로키가 부탁했다. 프리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녀인 풀라가 가죽 외투를 가져와 로키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러자 로키는 프리가와 풀라에게 추파를 던지며 덧붙였다. "문제는 이것들은 얻기는 쉬운데 사실 별로 쓸모가 없는데 있단 말이야." 그리고 매가죽 외투의 끈을 묶더니 펜살리르를 빙 돌아 날아오르더니 문 밖으로 나갔다.


아스가르드에서 보내는 나날이 아무 문제나 꼬이는 일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자 로키는 심심해 슬슬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었다. 요툰하임으로 향한 로키는 잠시 후 이빙 강을 건너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둥그런 평원에 도착했다. 평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있는 은빛 바위와 회색 빛 암벽이 뒤엉켜 에워싸고 있었다. 그 곳에 집 한 채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로키는 서서히 하강하여 창문의 선반에 내려앉았다. 창문으로 몰래 들여다보니 집안에서는 거인과 그의 두 딸이 성찬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거인 가이로트는 창문 밖을 흘깃 보았다가 근사하게 생긴 매 한 마리가 창턱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가서 저 새를 잡아 내게로 데려오너라." 가이로트는 하인에게 명령했다. 그 소리를 듣자 로키는 눈을 번쩍 빛내더니 가이로트의 하인이 집 밖으로 나오자 폴짝 날아올라 하인의 손이 닿을까말까한 담벼락 끝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하인은 창턱을 밟고 올라서서 매를 잡아들이려고 한쪽 손을 뻗쳤다. 그러나 꾀보 로키는 결코 호락호락 잡힐 의사가 전혀 없었다. 다시 지붕위로 폴짝 뛰어오른 로키는 지붕 꼭대기 거의 굴뚝까지 다가가 비웃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지붕 위에는 손으로 잡을 만한 것도 마땅치 않은데다 하인이 생명을 무릅써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했으므로 로키는 그가 지붕 위로 기어오르기 전에는 굳이 도망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하인이 지붕까지 쫓아왔으므로 로키는 날아가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날개를 펼쳤다. 로키는 공중에 가볍게 떠올랐지만 바로 그때 실망스럽게도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두 발이 그만 나무 줄기의 가지처럼 지붕에 단단히 달라붙고 만 것이었다. 그제서야 로키는 자신이 상대하던 거인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로키를 꽉 움켜쥔 하인은 그를 주인인 가이로트에게 데려갔다.


"이 녀석의 발에 가죽끈을 잡아매야겠다. 우리에 가두고 내 손에 잘 훈련 될 때까지 먹을 것을 조금씩만 주야지." 가이로트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하인이 가이로트의 옴폭한 손에 매를 내려놓자 가이로트는 매를 단단히 움켜쥐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로키의 눈은 붉은 색과 초록색이 섞여 있었고 교활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자 가이로트가 두 딸 걀프와 그라이프에게 말해 주었다. "이것은 매가 아니다. 다른 무엇인가가 매로 변장한 것이 틀림없어. 자, 이 녀석 눈을 한 번 보거라."


가이로트는 무쇠 같은 손에 매를 쥐고는 꽉 눌렀다. "네 녀석은 누구지?" 로키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가이로트가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자 로키는 자신이 마치 단단한 덩어리로 뭉쳐질 것만 같았다. 로키는 그 고통에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쫄쫄 굶기면 제 녀석이 실토 안하고 배기겠어?" 가이로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홀을 성큼 질러갔다. 그리고는 커다란 상자를 열더니 그 안에 매를 던져 넣고 뚜껑을 쾅 닫은 후 잠가 버렸다.


그 후 세 달 동안 로키는 어둠 속에 갇혀 지냈다. 물론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 안에서 똥오줌을 쌀 수밖에 없었다. 퀴퀴한 공기로 숨을 쉬며 자신이 매우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굶주려 너무 기력이 떨어진 탓에 밖에서 들리도록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혹은 소리를 질러 밖으로 들렸다하더라도 가이로트와 그의 딸은 전혀 못 들은 체했을 터였다. 세 달이 흐른 후 가이로트는 상자를 연 후 매를 꺼냈다.


"이 정도면 충분했겠지?" 가이로트가 한 말은 그뿐이었다. 밝은 빛에 눈이 부신 매는 눈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끔한 맛을 더 보고 싶다는 말이냐?"


"로키에요."


"아하! 그 유명한 로키란 말이지!" 가이로트는 매를 움켜쥔 손에 한층 힘을 주며 웃었다. 로키는 홀의 문 쪽을 애타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가이로트가 무척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으므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좋아, 로키. 너 더 살고 싶으냐?" 로키는 무슨 말인가 싶어 유심히 들었다. "그럼 나와 거래를 하기로 하자. 네가 토르를 쇠망치와 힘을 주는 허리띠 없이 이곳으로 데려온다고 맹세하면 네 목숨을 살려 주겠다." 로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가이로트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그는 멈출 의사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로키는 동의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토르를 가이로트의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맹세했다. 그제서야 가이로트는 로키에게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 먹고 난 후 로키는 가이로트와 걀프와 그라이프를 노려보더니 날개를 펼쳐 아스가르드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토르와 로키는 서로 뜻이 잘 맞았으므로 아홉 세상을 함께 여행할 때가 많았다. 우연히 아스가르드 동쪽의 바위투성이 고원 위로 걸어가고 있었을 때 토르는 로키를 믿었으므로 로키가 봄기운이 완연한 푸른 초원을 건너 조금만 더 가면 거인 가이로트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고 말하자 토르는 아무런 낌새도 눈치 채지 못했다.


토르는 가이로트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본다고 대답했다. "그는 좀 못 생겼지만 그의 두 딸은 무척 매력적이지. 그가 토르 너를 만나고 싶어하니 너도 그 딸들을 만나보면 좋잖아." 토르는 입을 오므리며 만일 일이 잘못될 경우에 대비해 힘의 허리띠와 망치 묠니르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게다가 우린 오늘 밤 그리드와 함께 보낼 수도 있잖아. 그녀의 집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 말이야." 토르도 그 제안은 마음에 들었다. "오딘도 그 집에 들어갔다 나오고, 비다르도 다녀갔는걸." 로키는 눈썹을 올리며 매우 유쾌하게 말했다. 토르는 계속 걸었고 밤이 되기 전에 로키와 토르 두 사람은 이빙 강을 건넜다. 두 사람을 환영한 그리드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얼마 되지 않자 로키는 밀짚을 깔고 잠이 들었다. 날름거리는 불빛에 비친 그의 표정은 밝았다 어두워졌다, 유쾌했다 불쾌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로키가 이제야 깊이 잠들었으니 가이로트에 대해 사실을 말해 주겠어요." 토르는 술에 취해, 무슨 소린가 싶어 거인족 여인 그리드를 쳐다보았다. "제 말 잘 들어요. 가이로트는 신들을 싫어하는데 특히 흐룽그니르를 죽인 신은 더하죠."


"하지만 그건 바로 나잖아!"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거예요. 잘 들어요. 가이로트는 여우처럼 교활하답니다. 그는 보통 호락호락한 적수가 아니에요. 당신에게조차 말이죠. 그는 당신을 자기 집으로 걸어 들어오게 놔둘 텐데 사실은 다 그렇게 일부러 꾸민 일이에요."


토르는 숙취가 머리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크게 뜨기를 반복하며 술이 깨도록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꼭 가야 한다면 가세요. 하지만 반드시 잘 무장한 후 가야해요. 당신에게 내 무기를 빌려 드리겠어요." 그리드는 토르에게 자신의 힘의 허리띠와 철장갑, 부러지지 않는 곤봉을 내주었다. 토르는 그리드에게 깊이 감사한 후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토르와 로키는 그리드의 집을 나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토르의 무기를 본 로키는 자신이 먼저 잠든 후 그리드가 토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토르는 토르대로 로키를 보며 그가 가이로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잠시 후 두 신은 물과 월경으로 나오는 피가 한데 뒤섞여 흐르는 넓은 급류인 비무르에 도착했다. 수면 위로는 물살이 닳아 반들반들해진 바위들이 삐죽삐죽 돌출되어 있었고 수면 바로 아래로도 많은 바위들이 물살에 쓸리고 있었다. 물살은 하류로 흘러 내려가며 거품을 냈고 거칠게 쉭쉭 흐르는 소리도 났다.


토르는 힘의 허리띠를 허리에 단단히 조이고 로키에게 그것을 꽉 잡고 매달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드가 준 곤봉을 꽉 잡고 그 위에 체중을 싣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발 아래 조약돌은 매우 미끄러웠고 물고기들이 발목을 간질였다. 곧 물살은 토르의 허리께까지 차 올랐고 로키는 겨우 목만 수면 위로 달랑 내밀었다.


강의 중간쯤 오자 로키는 아예 토르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강은 토르의 어깨 너머로 넘쳐흘렀고 수위는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토르는 강에 대고 소리치며 욕을 퍼부었다. "네 녀석은 내가 가이로트에게 가는 것을 막지 못해. 네가 아무리 높이 솟아올라도 나는 더 높이 솟아오를 것이다. 난 하늘만큼 높이 솟아오를거라구!"


토르는 숨을 고르려고 잠시 멈추었고 상류인 바위투성이 산골짜기를 올려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들이 지금 악전고투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가이로트의 딸인 걀프가 급류에 두 다리를 벌린 채 걸터앉아 생리혈을 쏟아 내고 있었고 그것이 강의 수위를 점점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토르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외치더니 몸을 구부려 물 속에 처박고 강바닥에서 바위 하나를 들어올렸다. "강은 그 수원지를 틀어막아야 해." 토르는 외치며 대단한 힘으로 큰 바위 덩어리를 걀프를 향해 던졌다. 토르의 조준은 정확했고 바위가 다리 사이에 박힌 걀프는 불구가 되었다. 그녀는 크게 울부짖으며 아버지 집으로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급류의 힘이 너무 거세져 토르는 로키를 목에 매단 채 중심을 잃고 급류에 휘말렸다. 하류로 떠내려가던 토르는 강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마가목을 움켜잡았다. 다시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설 수 있었던 토르는 그 곳에서 얕은 여울로 헤쳐나갈 수 있었고 드디어 강 맞은편 둑에 다다랐다.


"마가목이 우리 목숨을 구해주었군." 토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잠시 쉰 후 다시 길을 나선 두 신은 오후 늦게 가이로트의 집에 도착했다. 가이로트 자신은 집에 없었지만 그들이 도착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거인의 하인들이 그들을 환영하며 그들이 묵게 될 잠자리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토르와 로키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오랜 여행 끝에 지쳤으며 강에서 벌인 사투로 온통 진흙과 피투성이였다.


그런데 하인들이 두 신을 안내한 곳은 옥외의 별채에 있는 어두침침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염소 우리였다. 그 곳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썩은 짚과 단 하나의 의자밖에 없었다. 그와 같은 모욕에 토르는 털이 다 쭈뼛 섰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이로트와 맞붙을 때까지는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로키는 가이로트의 집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닦고 오겠다며 나갔고 토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드의 곤봉을 꽉 움켜쥐고서 그는 하품을 했다. 극도의 피로감이 분노심보다 컸으므로 토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눈이 스르르 감기고 얼마 안 있어 토르는 꿈속에서 비무르 강을 다시 건너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잃고 피비린내 나는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고 물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얼핏 눈을 뜬 토르는 자신이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정말로 다시 붕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토르는 의자에 앉은 채 염소 우리의 천장을 향해 점차 솟아올라 곧 머리부터 부딪힐 형편이었다.


토르는 그리드의 곤봉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리고 곤봉을 들어올려 천장에 대고 있는 힘껏 버텼다. 토르가 강하게 힘을 주었으므로 바로 밑에서 그를 천장 쪽으로 들어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결국 더 이상 토르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바람에 토르는 커다란 충돌음을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소리에 우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한편 가이로트의 두 딸, 걀프와 그라이프는 토르가 처음 의자에 앉았을 때 그 의자 아래에 숨어 있다가 그를 천장에 받히게 하여 죽이려고 했었다. 그러나 의자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토르에게 주려고 했던 운명을 자신들이 맞이하게 되었다. 토르의 육중한 무게는 그들의 뼈가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결국 두 딸은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등뼈가 부러져 심한 고통 속에 죽어갔다.


냇가에 나갔던 로키가 돌아오고 얼마 안 되어 금세 가이로트의 하인이 우리 밖에 나타나 가이로트가 돌아와 집 안에서 토르를 기다리고 있다고 외쳤다. 집 안에 들어선 토르는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화덕이 있어야 할 자리에 홀의 길이를 따라 거대한 화로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붕이 비록 높기는 했지만 후끈후끈 달아 있었고 방은 안온하다고 느끼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한편 가이로트는 홀의 제일 끝 쪽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들이 두 손님 뒤로 문을 잽싸게 닫자마자 가이로트는 앞으로 걸어나와 손을 뻗쳤다. 그러나 그것은 토르를 환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젓가락을 집기 위해서였다. 가이로트는 화젓가락 사이에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공을 집더니 "어서 오시오!" 외치는 소리와 함께 토르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쇠공이 날아오는 것을 본 토르는 곤봉을 놓고 쇠장갑을 낀 두 손을 들어 올려 쇠공을 잡았다. 토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탁자 아래로 기어 들어가기 바빴고 가이로트 자신은 재빨리 쇠로 된 홀 기둥 뒤로 숨었다. 토르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고 그 안에 든 쇠공은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토르는 온 힘을 다해 가이로트를 향해 쇠공을 힘껏 내던졌다.


쇠공은 쇠기둥에 구멍을 뚫고 가이로트의 몸을 관통한 후 홀의 한쪽 벽에 구멍을 내고 경사진 바깥 땅에 떨어졌다. 가이로트는 뒤로 쓰러졌다. 자신의 몸 속을 채웠던 모든 독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숨을 할딱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격렬하게 비틀더니 단말마를 내지르며 숨이 끊어졌다.


가이로트가 죽자 그리드의 곤봉을 집어든 토르는 사방팔방으로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로키가 아무 눈에도 들키지 않고 몰래 홀을 빠져나가는 동안 토르는 가이로트와 그의 두 딸을 시중들던 얼뜨기들의 머리를 모두 박살내 버렸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정적만이 감도는 홀을 성큼성큼 빠져나온 토르는 바위와 돌무더기만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토르는 봄내 물씬 나는 푸른 초원과 가이로트의 매력적인 두 딸에 대해 로키가 얘기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토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중인격자 로키에게 반드시 그 날의 원수를 갚아 주겠다고 맹세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