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말한다

   
윤석헌
ǻ
차이나하우스
   
13800
2008�� 07��



■ 책 소개
중국에서 활동한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책으로, "중국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사회, 문화, 역사와 개인적인 경험들이어우러져 편하게 읽으면서도 중국이라는 사회에 대해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 저자 윤석헌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대한우슈협회회장,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문화연구소 회장과 베이징대학 객좌교수로 있다. 2008년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엑스포, 2012년 선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한, 중의 경제와 문화교류에 힘쓰고 있다.


■ 차례
PART 01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

빨간 고양이와 죽지 않는 새 | 영광이여, 다시 한 번 | 중국의 비상, 혼자만의 힘인가! | 청운의 꿈을 안고 프랑스로 | 덩샤오핑의첫사랑 | 대륙의 지도자와 타이완의 통치자가 된 동창생 | 13억 중국인의 지도자, 따거 | 중국 역사를 견인하다 | 개혁파의 돌파구, 경제특구|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 덩샤오핑을 거인이라 부르는 이유 | 세계 최대의 지하요새 ‘완리창청’ |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은 6.25전쟁 중에사망했다 | 절대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다 |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 | 절대자 마오쩌둥의 과오 |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의 광풍 |아시아적 가치, 그것은 존재하는가!


PART 02 기회의 땅, 중국 
중국 이해하기 |해학의 중국인 | 자존심 강한 베이징인 | 깍쟁이 상하이인 | 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광둥인 | 의리에 죽고 사는 산둥인 | 하늘의나루, 톈진에서 생긴 일 | 이름만 빼고 다 바꿔 | 시골 어촌이 세계 최대의 항구가 되다 | 그것은 오해였다 | 넘어야 할 산 | 아!옛날이여 | 2006년부터 바뀐 중국의 노동법 | 엘도라도! 황금의 땅으로 | 감춰진 보배, 조선족 | 낳아준 어머니, 길러준 어머니 | 중국의노동 영웅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 중국의 마지막 원로, 완리 


PART 03 21세기형 나라, 중국 
중국 진출에가장 성공한 국가, 독일 | 13억 인구를 놓고 벌이는 KFC와 맥도날드의 한판 승부 | 한 번 만나면 친구, 두 번 만나면 옛 친구 |중국인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 | 현재 싸우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 싸움, 그것은 중국인의 협상방식이다 | 중국에 황금이 묻혀있는가? | 지방분권화시대, 모르면 독 알면 득 | 중국시장은 단일시장이 아니다 | 지나친 욕심이 일을 망친다 | 중국인들은 진짜 가난한가? |TV광고 1초당, 6,700만 원! | 불붙은 중, 미의 우주전쟁 | 중국의 성장동력, 해귀파 | 민초의 소리를 듣는다 | 2000여 년 전의수수께끼, 마침내 풀리다 |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신바드는 중국인 신바오다 | 구름 위로 달리는 ‘은하철도 999’ 중국에 있다 | 천년역사의 지게꾼, ‘봉봉’맨 | 500년 동안 운영 중인 세계 최장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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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말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유명한 개혁파 지도자 덩샤오핑은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고 쓰인 이름표를 항상 달고 다녔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보수파를 대표하는 천윈은 경제를 새에 비유하면서 ‘새장 속에 새를 가두어 놓고 키워야 한다’는 조롱경제론(bird-cage economy)을 펼쳤다. 계획경제논리로 경제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그는 항상 새장과 새를 두 어깨에 올려놓고 다녔다.


고양이와 새! 덩샤오핑과 천윈!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 중국을 이끌어 온 것은 보수와 개혁이라는 쌍두마차였다. 보수관료파인 천윈과 시장개혁파인 덩샤오핑은 협력과 갈등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유의 틀을 만들었다.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두 거두 천윈과 덩샤오핑은 정반대의 날갯짓을 통해 정반합을 이루어 중국이라는 새를 이끌고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이끄는 장정(長征)에 참가한 ‘혁명 1세대’이자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혁명 동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너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덩샤오핑은 권력지향주의자였지만 천윈은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국계획경제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천윈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좀 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천윈의 동의 없이는 중국경제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없었다. 개혁파도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천윈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동의가 없다면 양해라도 구해야만 했다. 중국의 국책은행이자 산업은행인 인민은행을 포함한 재정 관련 계통의 업무는 모두 천윈의 직계들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경제는 그의 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천윈은 경제를 새에, 계획경제를 새장에 비유했다. ‘손 안에 있는 새를 힘을 주어 잡아버리면 죽어서 날 수 없게 된다. 새가 날 수 있게 하려면 놓아주어야 하는데 너무 높이 올라가면 놓치게 되고, 아무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새장 속에 넣어놓고 일정한 공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날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롱 경제론이다. 결국 모든 경제정책은 계획경제 하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으로 자원 배분의 종합적인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천윈마저도 혁명 동지 덩샤오핑의 끈질긴 설득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은 부차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주도적 역할은 계획경제가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따라서 계획경제가 주도하는 시장을 조절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시장경제를 일부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천윈의 경제관은 고속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덩샤오핑의 시장개혁론과 절대적으로 대립되었고, 거시경제 성과에 따라 보수파와 개혁파는 대립각을 세워 개혁파가 주도한 시장경제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는 동시에 소비 규모가 늘어나면서 중국사회 전반에 통화량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보수파는 ‘개혁파의 급진적 개혁과 개혁정책에 의한 부작용의 여파로 이와 같은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며 조롱경제론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정치권에서는 개혁파들을 견제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개혁파의 실기가 보수파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제 11기 3중전회 이후에 천윈과 공조해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목된 화궈펑을 누르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 분야는 천윈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천윈과 충돌하지 않고 전략적 협력관계를 통해 중국호를 이끌어 가는 통치력을 발휘했다. 1988년 자오쯔양이 총리가 되어 중국경제의 실권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지만 중국경제는 여전히 천윈의 통제 하에 있었다. 경제 관련 핵심부처인 재정부와 중앙경제위원회가 천윈의 수하에 있었던 것이다. 보수파는 1990년 초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긴축경제를 강조하는 치리정돈(治理整頓)을 주장했다. 그들은 “지금 당 내와 사회를 휩쓸고 있는 중요한 흐름은 우(佑)이다. 당 내에 비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전 사회에 자본주의의 부패한 이념이 확산되고 있고 당과 정부, 기관, 공장, 기업과 학교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라고 비판하면서 기업은 계획에 의해서만 운영되어야 하고 경제발전과 시장 운영도 반드시 국가의 거시적인 조절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시장개혁파는 개혁정책과 경기확장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자 했지만 중국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천윈의 보수파였다.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제정책은 현실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개혁파는 보수파와 전면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고심 끝에 찾아낸 것이 바로 ‘지방분권화(decentralization)’ 카드였다. 개혁파는 이 카드를 활용하여 경쟁자이자 혁명 동지인 천윈과의 극심한 투쟁을 피하고 세계화시대에는 지방분권화가 큰 흐름이라는 것을 내세워 중앙의 보수 세력을 압박해 나갔다. 당시 각 지방의 성정부는 중앙의 위세에 눌려 드러내놓고 권한을 위임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는 지방분권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었다. 결과론이지만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 구조가 중국의 지방화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천윈과 덩샤오핑은 평생을 혁명 동지로, 공산당 건국 이후에는 경쟁자이자 서로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으로 존재했다. 그들은 거대한 국가 중국을 이끌어 가면서 갈등과 경쟁을 거듭했지만 서로에게 비수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상생의 정치! 중국 원로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두 거두는 이미 이 땅에 없지만 그들을 상징하는 고양이와 새는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기회의 땅, 중국
이름만 빼고 다 바꿔

2005년 2월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상하이시의 발표에 의하면 2005년 3월 1일부터 상하이 푸동신취에 있는 첨단기술 보유 기업들의 기술뿐만 아니라 인력도 자본금으로 인정해 출자전환을 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선진 기술을 가진 사업자나 신기술을 가진 기업에 근무하는 기술 보유자, 영업을 하는 전문 영업 인재 등도 자본금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출자전환의 한도는 등록자본금의 35%로 정하고 법정평가기관을 통해 객관적으로 인력의 지분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회사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고 주주들이 동의하면 법정평가기관은 이를 인정해 주도록 되어 있다. 또 자본금에 해당하는 인력이 퇴직할 때는 자본금의 변경등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누가 공산당이 이와 같은 혁명적 발상을 하리라고 생각했겠는가? 상하이라는 이름만 빼놓고 무슨 일이든, 어떤 형태의 조건이든 합리적인 것이라면 바꾸어 보자는 것이 상하이시 공무원들과 공산당 책임자들의 생각이다. 개방한 지 160년이 넘는 상하이가 앞서 가는 국제도시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시는 또한 2005년 3월 1일부터 상하이 내에서의 창업을 활성화시키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창업 시 미리 예치해야 하는 등록자본금을 2년에 걸쳐 분할납부할 수 있도록 한 ‘기업등록자본금 분납규정’을 실시하고 있다. 분할 횟수는 편리에 따라 기업이 선택할 수 있게 따로 정하지 않았다. 상하이시가 이러한 규정을 만든 것은 새로 창업한 기업이 초기에 수익보다는 지출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시장 진입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허위 출자나 등록자본금 도피 같은 불법 경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은 후 푸동신구는 개인소득 2만 달러에 이르는 중국 최고의 도시로 떠올랐다.


사실 상하이는 사업하기 어려운 도시로 유명했다. 1990년 주룽지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상하이에서 사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기자들에게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같은 중국인들도 힘겨워할 만큼 중국 관료의 벽은 높았다. 그랬던 상하이가 놀랍게 변하고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이 상하이의 정신이다. 2010년 세계 엑스포 대회를 개최하는 상하이! 뉴욕이나 도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상하이에는 현재 세계 500대 기업 중 450개가 넘는 기업이 진출해 있다. 또한 GE, 코카콜라, 미쓰비시, 모토로라, 폭스바겐, 나이키, 미쉐린, 시티뱅크 등 9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이 지역 본부를 상하이에 설치했다. 이 숫자는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보다 많은 것이다.


시골 어촌이 세계 최대의 항구가 되다
1995년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상하이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는 양산에 세계 최대의 해상 항만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상하이항 동남방 쪽에 있는 단산군도에 속한 대양산과 소양산을 매립해 수심 15~40m의 심수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산항 건설계획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세계 해운업계에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두들 ‘어리석은 계획’, ‘중국정부의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을 뿐이었다. 당시는 상하이항만의 물동량이 10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말함)를 갓 넘긴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하이항만 물동량의 30배가 넘는 3,000만 teu을 처리할 수 있는 항만을, 그것도 갈대밭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작은 어촌에 만들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허황한 계획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자 세계 해운업계에는 ‘양산’ 비상이 걸렸고, 이제는 그 누구도 양산이 세계 제1의 항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계획 아닌가. 세계 해운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중국은 한국이 지난 1970~80년대에 ‘안 되면 되게 하라’며 밀어붙이던 것을 벤치마킹하여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만만디는 이미 오래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중국의 15억 인구 모두가 바뀐 것은 아니겠지만 ‘빨리빨리’를 위해 ‘천천히’를 버리게 됐다. 1980~90년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수십 가지의 인허가 도장을 받기 위해 여러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 다녀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상하이와 항구도시인 톈진에서는 기업이 애로 사항을 신고하면 해당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해 24시간 내에 처리하고 결과를 직접 통보해 준다. 심지어 외국 투자기업이 특정 법률로 생산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으면 법을 고쳐서라도 도와준다. 나는 안 되면 되게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불가능해 보였던 양산항 건설계획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본다. 중국 정부는 선박들이 대형화되는 추세에 따라 수심이 얕으면 입항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양산항에 해상항만으로 불리는 심수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총 길이 32km, 왕복 6차선의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도로 폭이 31.5m에 달하며 최고 속도 80km로 달릴 수 있는 비행기 활주로 같은 동해대교를 통해 육지로 연결되는 양산항은 2005년 8월과 9월에 수차례 대형컨테이너선의 시범 접안을 실시해 성공적으로 운영을 마치고 같은 해 12월 10일 공식적으로 개항했다. 양산항이 여러 번의 시범 접안에도 큰 문제점이 노출되지 않자 그동안 반신반의하던 세계 해운업계 사람들도 해상항만시대가 도래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양산항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중국 내의 경쟁항인 톈진, 선전은 2010년까지 컨테이너 정박 공간을 10선 석 이상으로 늘리기로 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인 해운사들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크기가 축구장의 두 배 정도 되는 대형선박들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화물을 운반하려면 대형선박을 운항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상하이 내항들은 수심이 6~7m 정도여서 대형 컨테이너 선박들이 접안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양산항은 15~18m에 이르는 수심을 유지하고 있어 해운사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상하이 한편 구석진 곳,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골 양산이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적 항만이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과감히 실행에 옮긴 중국인들의 승리이다. 허황된 계획이라며 코웃음을 쳤던 세계의 해운업계! 되지도 않은 일을 한다고 우습게 본 일본의 해운업계와 한국의 해운업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누가 말했던가? 중국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그러나 중국은 이제 다른 나라에서 되는 것은 중국에서는 더 빨리 되고, 다른 나라에서 불가능한 것도 중국에서는 된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 옛날이여
중국이 2005년 3월에 폐막한 제 10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 3차 회의에서 의결한 내용들을 보면 외국자본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외자 유치는 국력신장과 직결된다’는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외자유치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선별하여 외국자본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를 총괄하는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는 정부의 전략 지구인 중서부 지역에 투자하도록 적극 유도하겠다고 전인대에 보고했다. 그는 소모율이 높은 설비나 제품은 강제로 퇴출시키는 제도를 도입해 빠른 시간 내에 시행할 것이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사업의 투자를 제한하고 점차 도태시키는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외자기업들에게는 더 이상 특혜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원가절감형 산업이나 외자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세제 혜택 등을 염두에 두었다면 반드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6년 2월 중국에 진출한 현지법인 298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한국보다 임금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 ‘추가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애로사항이 가장 많이 접수되었고,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의 50% 이상이 임금 상승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현지에서 철수했으며, 특히 2005년부터 공회(노조)가 사실상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라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분배를 강조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국정의 목표로 정함에 따라 중국정부로부터 보호받았던 외자기업들은 근본적으로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외자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노동법에 단체행동권을 없애고 일부 외국기업들의 불법 노동 관행을 묵인해 왔지만 점차 이를 단속하고 있고, 노조 설립을 권장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설립 자체를 막고 있지는 않다. 중국정부는 최저임금제를 상향 조정하도록 하고 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적용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중국정부의 국가발전계획위원회가 2002년에 만든 ‘외상투자산업지도목록’을 3년 만에 다시 수정해 발표한 것을 눈여겨보면 짧은 기간 동안 중국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외자와 함께 적극적으로 유치했던 철강, 시멘트, 비철금속 화력발전소 등이 이제는 투자 억제 대상이 됐고, 차량용 전자제품 등이 새로운 투자 대상이 되어 적극 유치 품목이 되었다. 적극 유치 품목이 되면 각종 관세와 우대조치를 받게 된다. 2007년 2월 16일 전인대는 ‘물권법’을 제정해 사유재산을 인정하였는데, 물권법에는 부동산 등기의 법적 효력, 부동산 등기기구의 권한, 각 경제 주체의 소유권 명시, 이익 보장 부동산 선의 취득, 주택건설 용지사용권의 자동 연장, 토지수용 시 국가의 보상책임 및 국유재지사용권의 자동 연장, 토지수용 시 국가의 보상책임 및 국유재산 보호책임 등이 규정되어 있다. 중국정부는 이미 ‘기업소득세법’을 제정해 외자기업에 대한 법인세 우대정책을 철폐했다.


이러한 빠른 변화에 적응하면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기의 땅이 될 것이다. 일례로 중국정부가 삼성전자에 반도체의 전 공정을 지어줄 것을 요구한 것을 들 수 있다. 현재는 반도체의 후 공정 공장들만 있는데 전 공정을 짓게 되면 세계 최고 수준인 반도체 핵심기술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중국정부의 집요한 요구를 언제까지나 거절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은 일반 기술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변화에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는가?


21세기형 나라, 중국
TV광고 1초당 6,700만 원!

2005년 10월 12일 오전 9시,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모든 중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유인우주선 선저우 6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 장면의 중계를 맡은 중국 국영방송국 CCTV가 책정한 광고비는 1초당 6,700만 원이다. 30초짜리 광고를 하려면 856만 위안(한화로 약 11억 1,000만 원)이 들어간다. 이를 두고 CCTV 광고책임자는 광고비가 비싼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 아닌가! 높은 광고비에도 불구하고 TV광고 시간을 잡기 위해 각종 인맥, 학연, 지연 등을 동원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중국경제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중국의 낙농회사 멍뉴는 급격히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을 겨냥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저우 5호에 탑승한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가 마시는 우유라고 광고를 한 것이다. 이 광고로 멍뉴의 매출액은 10%나 늘어났고, 소비자들에게 중국 내 최고의 낙농업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우주선 선저주의 공식 후원업체인 멍뉴는 지속적으로 우주복을 입은 여성 모델이 자사 우유로 힘을 내는 장면을 연출한 TV광고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항천경제, 즉 ‘우주비행경제’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우주선에서 사용하는 윤활유를 공급해 온 중국 최대 에너지회사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는 우주비행경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자 선저우 6호가 사용하는 윤활유의 90% 이상이 자사 제품임을 광고하고 있다. 또한 중국우주개발기금과 협력 파트너 관계를 맺고 선저우 6호 내부에 설치할 냉난방 시설과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을 제공하기로 한 전자업체 커룽 그룹은 ‘우리는 중국의 우주개발기관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최고의 기업’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커룽에게 선수를 빼앗긴 경쟁기업이자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은 우주비행사 양성소인 중국 인민해방군 우주부대와 계약을 맺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윈난성의 하이신차예사와 캉러차예 무역센터는 윈난성에서 생산되는 독특한 맛을 지닌 발효차 푸얼을 10g 싣기로 했다. 선저우 6호와 협찬계약을 맺지 못한 기업들은 발사 생중계 때 광고를 하려고 열을 올렸다. 생중계를 맡은 국영 CCTV는 최소한 5억 명 이상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광고 시간은 5초와 15초, 30초 등이다. 중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본을 과감히 광고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중국 시장은 국내시장보다 쉽고, 작은 돈만 투자해도 먹고사는 데 별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구름 위를 달리는 ‘은하철도 999’ 중국에 있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는 봤지만 구름 위를 달리는 기차는 상상해 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본 적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주제가를 떠올려보자.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정거장에….’라는 노랫말은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기차로 연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상상 속의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2005년 10월 15일 중국의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에서 티베트 자치구 라싸까지 연결하는 철로가 완공된 것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전체 철로의 길이가 1,142km. 그 중 960km가 해발 4,000m 이상이며 최고 높은 곳은 5,052m’라고 보도했는데 기존의 3,838km 구간을 합치면 총길이가 4,980km나 된다.


현장 공사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2001년 6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공사를 하면서 철로부설 공사에 투입된 베테랑 인부들이 고산증세 때문에 작업을 한꺼번에 많이 할 수 없어 수시로 교대하며 작업을 했다. 그동안 수많은 난공사를 했지만 산소마스크까지 쓰고 하는 작업은 처음이었다.”라고 밝혔다. 고산증은 높은 산에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해 일어나는 증세로 두통, 식욕 부진, 구토 등을 느끼게 된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무거운 철로를 들고 침목을 놓아야 했으니 얼마나 난공사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해발 5,000m나 되는 곳을 오르는 것은 전문 등산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면서 공사를 하는 것은 전투와 비교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가장 건설하기 힘든 구간에 철로가 놓여졌다. 이 지구상의 가장 오지까지 철로를 연결한 것이라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산 지역이라 열차는 완전 밀폐된 채 운행된다. 승객들과 기관사들의 고산병 증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차 안에는 산소를 공급한다.


중국철도부는 기차의 운행을 디지털시스템으로 원격 조정해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다. 탑승 시간만 58시간으로 2박 3일을 열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최고 높이 5,072m인 티베트 자치구 안둬의 탕구라산을 지나는 지역이다. 이곳에 탕구라산역이 세워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이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해발 5,068m’라고 보도했다. 백두산이 2,750m니 백두산보다 두 배나 높고, 4,807m인 서유럽 알프스 산의 최고봉 몽블랑보다 200m나 더 높은 곳이다. ‘구름 위에 있는 기찻길’ 아닌가!


중국에서의 인사와 노무 관리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히 현지화해야 한다. 현지화를 위한 첫째 조건은 바로 인사와 노무 관리인데 그것을 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들이 많다. 마찰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히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계약제 고용을 한다. 따라서 타 회사로 옮기기가 쉽기 때문에 이직에 신경 써야 한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중국인이다. 근무성적이나 인사고과에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둘째, 인건비를 급류 기준으로만 책정하면 착오를 빚을 수 있다. 중국정부에서는 2004년 2월부로 ‘최저임금규정’을 발표해 사회보험료와 주택보조금 등의 비용들을 급료와는 별도로 지급하게 했다. 이러한 지출을 인건비와 별도로 계산한다면 큰 착오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 중국의 노동법은 1일 8시간 근무, 주 5일 근로, 40시간 노동을 표준을 정해 실시하고 있다. 잔업은 1일 3시간, 최대 1개월에 36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넷째, 유급휴일이 연간 30일 이상이다. 구정에는 공식적으로 일주일을 쉰다. 또한 5월 1일 노동절부터 일주일을 쉬고, 10월 1일 국경절부터 또다시 일주일을 쉰다. 인건비가 싸다고 좋아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다섯째, 외국기업이 중국 내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는 원칙적으로 공장의 주소지 지역에 사는 직원을 모집해야 한다. 주소지 외의 지역에서 사람을 뽑을 경우에는 관할 지역 노동인사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관할지방정부의 노동국과 인사국의 추천자를 채용할 수도 있고 독자적으로 모집해 채용할 수도 있는데 독자적인 채용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여섯째, 중국의 노동법은 계약기간에 따라 실습기간을 두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 기간 중에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타 기업에 재직 중인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옮겨왔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고용주가 해당 직원이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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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위의 내용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