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중요한 상소문을 통해 그것이 쓰인 역사적 배경과 뒷이야기,그리고 군주와의 소통의 수단으로써 상소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역대 중국의 상소문 중에서 유명하고 중요한 상소문을골라 그 내용을 싣고 평했다. 저자는 엄숙하면서도 유머 있는 필치로 이를 평하고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하여 자세히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책 말미에는 명사들의 상소도 실었다.
■ 차례
서문
1.〈간축객소(諫逐客疏)〉,〈의소시서백가어(議燒詩書百家語)〉 이사(李斯) :객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간합니다. 시서백가어를 불태울 것을 논합니다
2.〈논귀속소(論貴粟疏)〉조착(晁錯) : 곡식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3.〈상서간렵(上書諫獵)〉사마상여(司馬相如) : 사냥에 대해 간합니다
4.〈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위징(魏徵) : 태종께서는열 가지를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5〈걸허찬보청화표(乞許贊普請和表)〉금성공주(金成公主) : 캄보의 화의 요구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6〈논불골표(論佛骨表)〉한유(韓愈) : 부처사리 문제를 논합니다
7.〈본조백년무사차자(本朝百年無事箚子)〉왕안석(王安石) : 백 년동안 나라에 큰 변고가 없는 것에 대해 논합니다
8.〈상고종제일서(上高宗第一書)〉진동(陳東) : 고종에게 올리는 첫 번째상소
9.〈무오상고종봉사(戊午上高宗封事)〉호전(胡銓) : 무오년 고종 황제에게 고합니다
10.〈치안소직언천하제일사소(治安疏直言天下第一事疏)〉해서(海瑞) : 치안과 천하의 대사에 대해 직언을 드립니다
11.〈피언걸휴소(被言乞休疏)〉장거정(張居正) : 모함을 당해 사직을 청합니다
12〈주진병정병기재사좌탕절(奏陳病情幷乞再賜坐湯折)〉이광지(李光地) : 병세를 알리오니 온천욕을 다녀올 수 있게끔 해 주시옵소서
13.〈주장탁권기반반절(奏張倬勸其反叛折)〉악종기(岳鍾琪) : 장탁이 반역을 권고한 것을 고합니다
14.〈주중일회의화약이성절(奏中日會議和約已成折)〉이홍장(李鴻章) : 중일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음을고합니다
15.〈주양내무갈필씨원안절(奏楊乃武葛畢氏原寃案折)〉왕흔(王昕) : 양내무와 갈필씨의 억울한 사건의 진상을고합니다
부록 - 명사의 상소문
1.〈주전화재대책(宙殿火災對策)〉동중서(董仲舒) : 화재에 대한 원인을 논합니다
2.〈상덕완형서(尙德緩刑書)〉노온서(路溫舒) :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완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3.〈전출사표(前出師表)〉제갈량(諸葛亮)
4.〈진정표(陳情表)〉이밀(李密)
5.〈간영가입경서(諫靈駕入京書)〉진자앙(陳子昻) :영구를 입경시키는 데 관하여 아뢰옵니다
6.〈간이요인정보사위비서감서(諫以妖人鄭普思爲秘書監書)〉이옹(李邕) : 간사한 정보사를 비서감서로삼은 것에 대해 간합니다
7.〈박복수의(駁復讐議)〉유종원(柳宗元) : 복수하는 것을 반박하는 것에 대해 논합니다
8.〈붕당론(朋黨論)〉구양수(歐陽修)
9.〈교전수책(敎戰守策)〉소식(蘇軾) : 전쟁과 방어의 책략을 가르쳐야 합니다
10.〈걸무할지여금인소(乞毋割地與金人疏)〉종택(宗澤) : 금나라에 땅을 내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11.〈편의십팔사소(便宜十八事疏)〉야률초재(耶律楚材) : 나라를 편하게 할 18가지방안
12.〈도임사은진정서(到任謝恩陳情疏)〉척계광(戚繼光) : 부임인사를 드리며 현지의 사정을고합니다
13.〈사총리오성군무소(辭總理五省軍務疏)〉노상승(盧象升) : 다섯 개 성의 군무총리 직을 거두어주시옵소서
14.〈청반토적조서(請頒討賊詔書)〉사가법(史可法) : 도적을 토벌하라는 조서를 내려 주시옵소서
15.〈주하정실명증정병청육여유량시절(奏夏靜實名曾靜幷請戮呂留良尸折)〉악종기(岳宗琪) : 하정의 실명은 증정이며 여유량을 부관참시하시옵소서
16.〈회주소화연토일률완준절(會奏銷化煙土一律完竣折)〉임칙서(林則徐) : 연토 소각을 모두 마쳤음을고하옵니다
17.〈홍수전역시험명분화홍복진하락상대사명이수성등능지처사초송공사회송병조주선후사의절(洪秀全逆尸驗明焚化洪福?下落尙待査明李秀成等陵遲處死抄送供辭匯送幷粗籌善後事宜折〉증국번(曾國藩): 역적 홍수전의 시신은 화장하였고, 홍복진의 행방은 아직 살펴봐야 하며 이수성 등은 능지처참하였음을고합니다
18.〈주구고윤선불여자조절(奏購雇輪船不如自造折)〉좌종당(左宗棠) : 선박을 사거나 빌리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낫습니다
소통의 정치학 상소 - 중국편
논귀속소(論貴粟疏)〉조착(晁錯) : 곡식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영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군주가 직접 양식을 재배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직접 천을 짜서 나누어주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의 재원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삶이 고달파지면 사악한 궁리를 하게 됩니다. 빈곤은 물자부족에서 오고, 물자부족은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기 못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면 고향을 떠나 금수처럼 떠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 엄격한 법령과 잔혹한 형벌이 있다 해도 백성들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루 두 끼를 먹지 않으면 굶주리게 되고 옷을 지어 입지 않으면 추위를 겪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폐하께서는 백성들을 독촉하여 농업생산에 종사하게 하고 그들의 세금을 경감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수재와 한재에 대비하며 양식을 넉넉히 비축해 백성들의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민심은 군주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다스리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들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이익을 쫓는 데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습니다.
곡식과 비단의 원료는 땅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수확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생략할 수도 있는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몇 석의 양식은 한 사람이 나를 수 없어 간악한 이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으나 일단 이것이 없으면 춥고 굶주리게 됩니다.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오곡을 중시하고 금은보화를 가벼이 여겨야 합니다.
지금 5인 가구의 농가에서는 적어도 두 명이 관가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가꿀 수 있는 농토는 100무(1무는 6,000평방미터)를 넘습니다. 100무의 소출은 100석을 넘지 않습니다. 농민들은 수재와 한재를 수시로 겪으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지만 광가의 부역과 가렴잡세가 시도 때도 없는 것은 물론이요 아침에 정한 액수가 저녁이면 또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금을 납부할 때도 양식이 있는 사람은 반값에 그것을 판매하는 것으로 세금을 대신하지만, 집에 양식이 없는 사람은 부득이하게 고리대로 빚을 내어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때문에 땅을 팔거나 집을 파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심지어 자식을 팔아 빚을 갚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인들 중 수완이 있는 자들은 사재기로 엄청난 이문을 남기고, 좀 못한 자는 점포를 열어 폭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물자를 급히 필요로 하는 점을 이용해 물가를 올리는데, 이럴 때마다 물건 값은 평소의 2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귀족들과 사귀고 또 그것을 핑계 삼아 약자를 멸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인들이 농민의 토지를 수탈하는 방법이며 농민들이 유리걸식하는 원인입니다.
오늘날 법률이 비록 상인들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나 그들은 부유할 뿐만 아니라 귀한 신분이 되었고, 법률이 존중한다는 농민은 오히려 빈궁하고 비천한 상태입니다. 그리하려 군주와 관리들이 멸시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법률을 존중하고 중시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서로 다르고 좋고 나쁜 것이 뒤바뀐 현상이 지속된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법령이 제대로 집행되고자 하는 것은 허황된 꿈으로 끝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사안은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농업생산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양식의 값을 높여야 합니다. 양식 값을 높이는 방법은 양식으로 상을 받거나 벌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에 양식을 바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사람들에게는 작위를 주거나 벌을 면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부자들은 작위를 얻게 되고 농민들은 재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라에 양식을 바쳐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가정형편이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물자를 받아 나라의 예산을 채우면 가난한 백성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으로서 실행되기만 한다면 백성들은 커다란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백성들의 소망에 부합되는 것은 물론이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군주가 쓸 수 있는 충분한 재물을 확보할 수 있고, 둘째는 백성들의 세금이 줄 것이며, 셋째는 백성들이 농사에 열심히 종사하게끔 격려할 수 있습니다.
〈본조백년무사차자(本朝百年無事箚子)〉왕안석(王安石) : 백 년 동안 나라에 큰 변고가 없는 것에 대해 논합니다
어제 폐하께서 신에게 나라가 세워진 지 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천하에 큰 변고가 없는 이유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폐하께서 이런 하문을 하신 것은 천하 백성들의 흥복이라 생각합니다.
태조께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지혜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간파해내는 영명함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또한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해 시대의 변화와 부합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좋은 장수들을 거느릴 수 있었고 장졸들을 일치단결하게 하여 대외적으로는 외적들의 침략을 막아내고 대내적으로는 내부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무거운 조세부담과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셨고, 변방 할거세력의 군사력을 약화시켜 그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탐관오리들을 처벌하셨습니다. 또한 몸소 근검한 생활을 하셔서 천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태종께서는 그의 군사적 재능으로 선제의 위업을 이어받았고, 진종께서는 겸손하고 후덕한 인품으로 위업을 지속시켰으며 인종, 영종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크게 실덕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하가 백 년 가까이 큰 변고가 없었던 원인일 것입니다.
선제들 중에서 인종 황제의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는데, 그때 신은 인종 폐하의 시종관으로 있었습니다. 인종 황제께서는 위로는 하늘을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하였는데, 흉금이 넓고 인자하며 세심하고 검소하셨습니다. 인종께서는 함부로 노역을 발동한 적도 사람을 함부로 죽인 적도 없었습니다. 논공행상에 공평하셨을 뿐만 아니라 신용을 잘 지키셨고 간관들을 중용해 여러 방면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셨습니다. 편협한 간언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등용했는데, 이때 인재를 잘못 추천하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지방의 안무사나 전운사 등 감사관원들은 물론 각 주, 현의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감히 폭정과 학정을 할 엄두를 못 냈고 백성들을 함부로 징발해 해를 입히지도 못했습니다.
조정의 대신들과 황족들, 그리고 좌우 시종들도 감히 법령을 위반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 어떤 이들은 일반 백성들보다도 더 잘 준수했습니다. 이는 누구를 불문하고 형벌이 공평했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용맹한 야심가와 교활한 자들이 100만의 군대를 보아 모반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역모는 항상 실패에 그쳤고, 전국의 재물을 한데 모은 창고에는 그것들을 기록한 장부와 일반 관리들만 있었지만 도적질하는 자는 항상 발각되었으며, 흉년이 들어 거리에 굶주려 유리걸식하는 사람이 가득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어도 도적질하는 자는 항상 붙잡혔는데, 이는 상을 후하게 내리고 신용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몇 세대의 나쁜 습관도 이어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정의 백관들과 정사를 논하는 전통이 없습니다. 황제께서 조석으로 같이 있는 사람은 환관이나 후궁의 여인들뿐입니다. 모든 것을 사물의 자체적인 발전에만 맡겨둔 채 사회를 개조하는 능동적인 사고력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명분과 실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시나 부를 시험해 인재를 선발했을 뿐 학교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지는 않았고, 과거시험의 순위나 임직기간을 고려해 관직을 내릴 뿐 해당 관리를 검증하는 전문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관직을 옮기고 승진하는 것이 빠르지만 그 치적을 검증할 방도가 없기에 놀기 좋아하고 허튼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관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사로이 당파를 만들어 명망을 얻고 또 그런 자들이 대부분 중요한 관직에 있기에 묵묵히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배척되고 소외됩니다.
농민들은 부역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지만 구휼의 혜택을 받은 적이 별로 없고, 그들을 위한 관리도 파견되지 않아 농민을 위한 수리시설 보수사업도 하지 못합니다. 병사들 중에는 나이 많고 병든 자가 많은데 그들을 적당히 훈련시킨 적이 없고, 군대에 장수를 파견해 변방의 군사들을 통솔하고 지휘할 권한도 주지 않습니다.
나라의 재정을 보더라도 통일된 규정이 없어 비록 근검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백성들은 부유하지 못하고, 관리들이 정사를 걱정하고 부지런해도 나라는 강성해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변방 소수민족들의 세가 강성하지 않고, 요, 탕 시절처럼 큰 수재나 한재를 입지 않았기에 별다른 위급상황이 닥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태평성대가 백 년을 넘긴 것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도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성인의 자질을 갖추셨고 태조 황제께서 열어놓은 대업을 이어받으신 바, 하늘의 도움은 늘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 것이고, 사람의 일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큰일을 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신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시고 신이 올린 진언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피언걸휴소(被言乞休疏)〉장거정(張居正) : 모함을 당해 사직을 청합니다
과거 수많은 성현들과 호걸들 중에는 높은 재능과 아름다운 품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용되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하지만 신은 폐하의 깊은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이렇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거늘 어찌 이대로 끝낼 수 있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신이 떠나고자 주청을 드리는 것은 실로 부득이한 사정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신이 있는 자리는 높고도 위험한 자리로, 하는 일은 폐하의 대업이고 쓰는 글은 폐하의 말씀입니다. 지금 신을 탄핵하는 사람들은 소신이 그 자리에서 위세를 부리며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은 폐하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는 행운을 누리고 있을 뿐 위세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 만약 개혁을 멈춰 보수적 신하들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면 신은 나라의 대업을 망친 죄과에서 벗어날 수 없고, 폐하께서 신의 개혁을 지지하시어 폐하를 계속 모시게 된다면 신은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사사로이 당파를 만들어 겉으로는 백성을 위한다지만 실제로는 사적인 이득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쌓인 지 이미 오래됩니다. 신이 하루라도 빨리 조정을 떠나지 않으면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도 편치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신의 행동에 대해 계속해서 논한다면 신이 하는 모든 일은 위세를 부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감정적인 참소가 그칠 날이 없어 영명한 폐하께서도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고, 신 역시 저를 의심하는 비방과 날조에 휩싸이게 될 것이니 이것은 정녕 신의 지조와 부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청을 들어주시어 아둔한 신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많은 사람들의 비방을 잠재우게 해주십시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산림과 묘당에 은거해 있는 능력 있고 품성도 훌륭한 인재들을 찾아내시어 관리로 임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에 공헌할 수 있게 하고 소인배들의 원한도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 신종 만력제의 교지
비록 큰 부담을 짊어지고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하늘도 그대의 정성에 감동되어 그대를 지켜줄 것인 바 간사한 소인배들의 참소가 어찌 하늘의 의지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짐이 그대의 충성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바 소인배들의 참소가 그대의 충성심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는 곧바로 조정에 나와 선황 폐하의 유지를 게을리 하지 말지어다.
- 신종 만력제의 재교지
원보(정거정의 자)에게 알리노라. 선황 폐하께서는 짐의 나이가 어린 것을 염려하시어 그대에게 부탁하였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당파를 만들어 양심을 망각한 채 그대를 헐뜯는 여론을 퍼뜨려 나라의 안정을 해치고 있으니 짐은 법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대는 소인배들의 지적에 개의치 말고 선황 폐하의 유지와 짐의 기대에 부응해 나라의 안정과 태평을 위해 즉시 나와서 조정 사무를 보좌하라. 짐은 그대가 짐의 의사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 사은소
폐하의 교지에 <사은소(謝恩疏)>를 올려 신의 뜻을 고하고자 합니다. 무릇 모든 일은 이치에 맞아야 하는 바 한 사람의 마음을 어찌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신의 조그마한 충성심을 폐하께서 중히 여기시는 마당에 그까짓 참소들은 실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은 폐하의 교지를 받들어 노력에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주장탁권기반반절(奏張倬勸其反叛折)〉악종기(岳鍾琪) : 장탁이 반역을 권고한 것을 고합니다
신 섬서총독 악종기 고합니다. 황송스럽지만 폐하께 비밀리에 이 일을 고하니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9월 26일 9시쯤, 신이 관아로 돌아오는데 관아 앞에서 누군가 손에 서찰을 든 채 다가왔습니다. 봉투 겉면에 신의 직책이 대원수라고 적혀 있어 깜짝 놀란 신은 그자를 바로 순포에게 넘겼습니다. 관아에 돌아온 신은 밀실에 들어가 서찰을 뜯어보았습니다. 서찰에는 남해 유민 하정이 제자 장탁을 보내 서찰을 전해드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서찰에는 청나라를 헐뜯는 말로 가득했는데 모두 허황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을 송나라 무목 악비의 후손이라면서, 신이 지금 병권을 쥐고 있고 또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의 관리로 있으니 이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켜 송나라와 명나라를 위해 복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곧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무신서림을 모셔와 함께 장탁을 심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림은 장군으로서 만주 관병들을 훈련시켜야 했기에 신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올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안찰사로 하여금 밀실에 있게 한 후, 장탁을 아문에 데려와 차를 대접하며 상냥하게 그를 대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그의 스승이 어디에 머물고 있냐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신이 장탁을 심문한 내용입니다.
악종기(이하 ‘악’) : 어디로 가야 자네 스승 하정을 만날 수 있는가?
장탁(이하 ‘장’) : 편지에 씌어진 대로만 하면 광동에 계신 저희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악 : 자네 스승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기에 나한테 서찰까지 썼는가?
장 : 광동에 있을 때 총독께서 3차례나 황제의 부름을 물리치셨다는 얘길 듣고 저를 파견해 서찰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섬서에 도착해보니 그런 일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먼 길을 온 이상 그냥 서찰을 전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었습니다.
악 : 폐하께서는 영명하기 그지없으시고 천하는 더없이 태평한데 자네 스승은 왜 반란을 꿈꾸는가?
장 :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섬서의 상황은 괜찮아 보이지만 호광(오늘날의 호북, 호남, 광동성 일대) 지역은 몇 해 동안 수재가 들어 길가에 시체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악 : 그것은 천재(天災)이거늘 어찌 사람을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듣기로 호광 지역의 피해는 몇 개 현에 지나지 않고 조정에서도 수차례 구휼했다고 하네. 또한 섬서성보다 상황이 나은 곳이 수두룩한데 자네는 하나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장 : 지방의 관리들은 성격이 급할 뿐 아니라 각박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스승이 있는 장소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3시가 되어 무신서림도 관아에 도착했습니다. 장탁이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신들은 형벌을 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탁은 자신의 스승이 남해에 근접한 곳인 광동성 남부와 교지국(베트남) 접경지대에 있다고 얼버무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장탁을 불러 다시 물었습니다.
악 : 광동의 추로라는 자가 처음에 연갱요와 함께 반란을 획책했다가 나중에는 자수했는데, 자네는 그자와 마찬가지로 믿기 힘들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형벌을 가해 자네를 심문할 수밖에 없었다.
장 : 총독께서 저를 형벌로 심문하셨기에 오늘 저도 총독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악 : 어제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기백을 알 수 있었고 또한 자네가 절대로 이해득실 때문에 자신의 절개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이실직고해서 나의 의혹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자고로 반란은 사고가 많은 틈을 타 일부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으로 지금은 천하가 태평해 그 어떤 지방에서도 난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는다면, 나를 설득시키려면 내가 사람을 보낼 때 자네의 스승을 비롯해 뜻을 같이하는 자들을 데려와야 한다.
장 : 그러나 이는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저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비록 많지 않으나 당신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
악 : 자네는 계속 의심을 품고 있으니 풀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
장 : 당신은 이제 저를 풀어줄 수 없습니다. 어젯밤 저를 심문한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중에 조정에서 추궁한다면 총독께서 난처해지지 않겠습니까?
악 : 만약 내가 자네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사실대로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조정에서 그 사실을 알면 필시 나를 의심할 것인 바 나 역시 편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소문이 조정에까지 퍼진다면 나는 미련한 서생들이 말하는 허튼 소리라고 하면 될 것이고 피의자를 심문해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밝혔다고 하면 그만일 것이다.
신은 나라를 위해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자 했기에 이상한 말들을 하며 반란을 꿈꾸는 무리들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에 신은 폐하께서 비밀리에 장탁을 북경으로 압송하여 대신들이 직접 심문함으로써 반란을 꾀하는 무리들을 일망타진하시기를 주청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기밀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정의 서찰은 원래 폐하께 전해 올려야 하나 그의 말이 하도 추잡한지라 폐하의 이목을 더럽히실까 걱정되어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록 - 명사의 상소문
〈전출사표(前出師表)〉제갈량(諸葛亮)
선황 폐하께서는 창업에 전념하시다가 그 반도 못 이루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천하는 세 개로 분열되어 있는데, 익주는 약하고 피폐해졌으니 실로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를 모시는 조정의 신하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충성스런 장수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모두 선황 폐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기에 그에 보답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폐하께서 지혜로운 덕을 크고 넓게 하시어 선황 폐하께서 남기신 아름다운 덕을 빛내기 위해서는 포부가 장엄한 지사들의 뜻을 따르시고, 폐하 스스로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시어 사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들어 충언과 간언을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됩니다.
궁인들과 관리들은 모두 폐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그들에 대한 상벌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시중인 곽유지와 비위, 시랑인 동윤 등은 모두 폐하를 모시는 신하로서 선량하고 착실하며 그 마음이 충성스럽고 순정합니다. 이런 까닭에 선황 폐하께서는 그들을 선발하여 중용하시다가 폐하께 남겨주신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 대소사를 막론하고 궁중의 일을 모두 그들과 상의한 후에 시행하신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 널리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장군 향총은 군무에 밝고 성품이 곧고 맑습니다. 신의 생각으로 군영의 일을 모두 그와 의논해 시행하신다면 군 전체를 한마음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간사한 소인배들을 멀리했기에 전한은 흥할 수 있었고, 소인배를 가까이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했기에 후한은 기울게 되었습니다.
신은 본래 일개 평범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을 일구며 난세를 맞아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제후들을 찾아가 영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선황 폐하께서는 그러한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송구스럽게도 몸소 몸을 굽혀 세 번이나 신의 초막을 찾으셔서 천하대사를 물으시니 이에 신은 깊이 감동하여 선황 폐하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선황 폐하께서는 신이 신중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임종 전 신에게 대사를 맡기셨습니다.
선황 폐하의 유지를 받은 후, 신은 이를 완수하지 못하여 선황 폐하의 명예에 누를 끼칠까봐 두려워 매일 밤낮으로 근심하였습니다. 이제 남방이 평정되었고 군대와 무기도 풍족하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진군해 중원을 평정해야 할 것입니다.
소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해 간흉들을 물리치고 한나라 황실을 부흥시켜 옛 도읍지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황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신의 책임입니다. 이제 이해득실을 따져 폐하께 충언을 드리는 것은 곽유지와 비위, 동윤 등의 몫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적을 토벌해 한 황실을 다시 세우는 소임을 신에게 맡겨주시어 만약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 선황 폐하의 영전에 고하시어 신의 죄를 다스리옵소서. 만약 덕치에 관한 충언이 없다면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을 불러 태만을 꾸짖으시고 그들의 허물을 드러내십시오. 폐하 또한 도모하는 바가 있으시면 신하들을 모아 좋은 방도를 물으시고 손익을 잘 가리시어 선황 폐하께서 남기신 유훈을 깊이 따르소서.
〈붕당론(朋黨論)〉구양수(歐陽修)
붕당에 관한 논쟁은 예부터 있은 바, 폐하께서는 군자들의 붕당과 소인들의 붕당을 구분해주셨으면 합니다. 군자들의 지향하는 바가 같아 붕당을 결성하거나 또는 소인들이 공동의 이해득실을 위해 붕당을 결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나 신이 새삼스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소인들에게는 그 무슨 붕당이 있을 수 없고 군자들에게만 붕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문과 녹봉이고, 그들이 탐하는 것은 재물입니다. 그들은 이익이 일치하면 서로 잠깐 동안 결탁하여 이른바 붕당을 만드는데 이는 허위적인 붕당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이와 달리 도의를 견지하고 신의를 지키며 자신의 명예를 소중하게 지키려 합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기준으로 수신하기에 공동의 믿음을 갖고 함께 정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군주가 소인들의 붕당을 배척하고 군자들의 붕당을 중용하면 천하의 대사를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당요시절에 소인배들인 공공과 환두 등 4명이 붕당을 만들었고, 군자인 팔원과 팔개 등 16명도 붕당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우순은 요를 보좌해 소인배 4명의 붕당을 물리치고 군자들의 붕당을 기용해 천하가 잘 다스려지게 했습니다. 우순이 임금이 된 후에는 고도, 후직, 계 등 22명이 조정에서 일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칭찬하고 겸양하며 붕당을 만들었고 우순은 그들 모두를 기용하여 천하의 큰 흉복을 실현했습니다.
『상서』에 따르면, 은나라 주왕에게는 억만 명의 신하가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억만 개였고, 주무왕(周武王)에게는 고작 삼천 명의 신하가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나였다고 했습니다. 은나라 주왕이 통치할 때는 억만 명의 사람이 각자 딴 마음을 품어 붕당이 없었다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망국했지만, 주무왕의 신하들은 삼천 명이 똘똘 뭉쳐서 하나의 큰 붕당을 만들었기에 나라가 흥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라 헌제는 전국의 유명한 인사들을 붕당으로 의심해 잡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황건봉기가 폭발하고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들어서야 크게 뉘우치고 잡아들였던 사람들을 모두 석방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국가의 운명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당나라 후기 조야에는 점차 붕당에 관한 논의가 나타났고, 소종 재위 시에는 조정의 이름난 사대부들을 전부 잡아다 죽였는데, 어떤 사람들을 황하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맑은 청류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나라 역시 얼마 안 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서로 칭찬하고 겸양하며 의심이 많지 않았던 인사라면 우순 시대의 22명의 대신과 비할 자가 없는데 우순은 추호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고 관직에 기용했습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우순을 비웃지 않고 오히려 영명한 성인이라 칭찬하는데 그 원인은 우순이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을 구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무왕 때에는 전국의 이름난 신하 삼천 명을 하나의 붕당으로 묶었는데 과거의 크나큰 붕당 중에 주나라의 붕당만 한 것이 없었고 그러한 붕당 때문에 흥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에 선량하고 정직한 인사가 비록 많긴 했지만 국가가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과거 여러 조대의 안정되었던 시기와 혼란에 빠졌던 경험 및 흥하거나 망했던 경험을 폐하께서는 자세히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