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출사해서 벼슬을 하다가 유배를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을 비롯해, 이문건의 손자인‘숙길’이 커가는 과정, 당시에 떠돌던 전염병과 그로 인한 사회적인 상황들, 조선시대의 어린아이 돌잔치 풍경,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질병과생사를 모두 신에게 맡기고 점쟁이에게 크게 의지한 점 등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는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문건이 그의 손자 "숙길"이 커가는 과정을 초년, 유년, 소년, 청년기로 나눠서술하는데 풍열, 간질, 두창, 홍역, 이질 등을 모두 앓은 손자의 가공할만한 병치레와 이를 간호하는 할아비의 안타까움이 가장 큰 부분을차치한다. 또한 공부에 취미가 없는 손자에게 공부를 시키려는 할아비의 인간적인 모습과 올바른 성품으로 커가기를 바라며 손자를 매질한 후 늘 마음아파하는 할아비의 안타까움도 함께 그렸다.
■ 저자 이문건(1494∼1567년)
고려후기의 명재상인 이조년의 후손으로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의 5대손. 둘째 형 이충건과 조광조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1513년 사마시에합격했다. 그의 선조 이조년은 어지러운 시기에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등 네 임금을 충심으로 받들며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애쓴분으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이 그를 가리켜 ‘고려 500년 역사의 제1인자’라고 일컬을정도였다.
이문건은 안처겸의 옥사에 연루되어 낙안에 유배되었다가 1527년에 풀려나 이듬해 별시문과에병과로 급제,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1533년 승문원 박사로 발탁되었고, 이듬해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1544년 중종이죽었을 때 빈전도감 낭관을 맡아 큰일을 잘 치러 당상관으로 올라가고 승정원 동부승지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1545년 명종 즉위년에 조카 이휘가택현설擇賢說을 주장하다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이에 연루되어 성주로 유배되었고, 23년간의 긴 유배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자신의 시문집인『묵재휴수고』 2책과 친우들과 주고받은 시문을 엮은 『친우시고』1책, 태극도의 일종인『도서괘화촬요』, 당대의 석학인 이황·조식·이이 등과 교유하며 주고받은 시문을 엮은『묵휴창수』 등이 있고 『거우일기』 등생활일기(세칭 『묵재일기』) 10권을 남겼다. 이 『묵재일기』 낱장 속면에서 중종 때 왕명으로 불태워졌던 최초의 한글 소설 『설공찬전』의필사본이 발견돼 국문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채수(1449~1515)가 지은 이 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보다 무려 100여 년이나 앞서나온 것이다.
■ 편저자 김찬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졸업.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홍보 업무 등을 거쳐 대기업 사보와 출판사 편집장을 지냈다. 젊은 시절 소설을 몇 편 발표하기도 했으나, 지금은조선시대 사료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하는 계획들을 갖고 있다. 저자는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결혼해 마흔에 첫아이를얻었다. 점차 일어서고, 걷고, 종알종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들을 보며 어떻게 자식을 길러야 제대로인지 고민하던 중 『양아록』을 만났다.450여 년 전에 조선의 사대부가 남긴 특이한 기록, 즉 육아일기였다. 이문건. 그는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였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을대신해 손자를 키우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이 때로는 뭉클하게, 때로는 아프게 다가왔다.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공감의 웃음이었다. 이문건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고 『양아록』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쟁이 유난히 강조되는요즘 세상에 손자를 출세보다는 인륜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노력했던 한 할아버지의 삶이 주는 의미가 결코 만만치 않다고 느꼈기때문이다.
■ 차례
제1부 손자의 마음에 남긴일기
제1장 어지러운 정치 추방된 묵객
一 유배지 성주에 도착하다
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다
三 스승조광조의 죽음이 준 충격
四 형들의 죽음을 전한 한 통의 편지
五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떠난 구삭동이 아들
六 묵재일기를 쓰기시작하다
七 멀어져가는 아들에 대한 기대
八 두 번째 유배, 이것이 마지막일 줄이야
제2장 유년기
九 희망은 오직 하나 손자를 보는 것
十 조선 최초의 육아일기『양아록』
一一 손자 얻은 기쁨을 시로 적다
一二 손자를 물어뜯는 이와 벼룩을 증오하다
一三 젖이 풍부한 눌질개에게 아이를맡기다
一四 유모 춘비를 살리려고 백약을 쓰다
一五 태어난 지 7개월 아랫니 두 개가 났다
一六 숙길의 손위 누이 숙복이죽다
一七 손자의 눈이 빨개지며 병에 걸리다
一八 언제나 습한 비장과 위장이 튼튼해질까
제3장 초년기
一九 책 읽는 흉내 내는 아이를 보며 웃다
二十 돌잔치에서 숙길은무엇을 집을까
二一 세 돌에 찾아온 위기, 학질
二二 연례행사가 된 병치레
二三 숫돌을 가지고 놀다가 엄지손가락을찧다
二四 손자가 조금 놀라도 할아비는 많이 놀란다
二五 병진년, 마귀가 심은 씨앗 같은 천연두
二六 부스럼이 곪지 않고떨어지다
二七 육아의 여백이 키운 시집 『묵휴창수』
二八 너는 어찌 밥 먹기를 싫어하느냐
二九 손자의 마음에도 때가묻을까?
제4장 소년기
三十 자세히 천천히 깨우쳐줘야 한다
三一 새로운 이가 나더니 이를갈기 시작하네
三二 손자의 아버지, 아들 온을 잃다
三三 여섯 아이 중의 마지막, 너마저 떠나는구나
三四 아비를 잃은 숙길,못된 짓이 늘다
三五 종아리를 치니 목이 메어 울다
三六 뒤통수를 다섯 번이나 때리다
三七 손자야 열이 나는 것은 본디 너의고질병이니
三八 귀가 짓물러 손에 수건을 감아주다
三九 독이 눈초리까지 번져 침으로 째다
四十 아! 이 지독한 신열의세월이여
四一 나쁜 버릇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
四二 공부 안 하면 그네를 끊겠다고 협박하다
四三 눈을 부릅뜨고 갑자기 욕을 하는손자
제5장 청년기
四四 손녀 숙희가 독이 든 똥을 먹고 아프다
四五 손녀의 혼사가어렵게 성사되다
四六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손자
四七 술이 깨길 기다려 온 가족이 매우 치다
四八 할아비의 상상 “아비 없는한을 술로 푸나?”
四九 눈물을 흘리며 적은 할아비의 호소 편지
五十 점쟁이의 말을 듣고 이름을 수봉이라 바꾸다
五一 문정왕후가죽고, 손자의 공부길이 열리다
五二 손자의 관례를 올리고 혼처를 알아보다
五三 할아비의 난폭함을 진심으로 경계한다
五四 할아비가노쇠해지자 손자가 그걸 느끼네
五五 열일곱의 손자에게 남긴 육아일기
五六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죽다
五七 의병장이 된 손자수봉의 짧은 생애
제2부 더불어 읽기
국내 최대의 태실지,선석산 태봉
투금탄, 금보다 더 빛나는 형제간의 우애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
역사책에 나오는 연도와 시간 알아보는법
여묘살이와 삼년상
『묵재일기』와 채수의 『설공찬전』
끝내 아들을 얻지 못한 등유
사람의 목숨을 구해 자식을 얻은마묵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 성동
사현과 남북조시대를 연 비수지전
산수시의 대가 사령운
술과 국화를 사랑했던 대시인,도원량
유감과 무정보감
효를 말한 공자와 효를 실천한 증자
어머님은 하늘이시다
당대의 유림들과 주고받은 시문집,『묵휴창수』
중국 제일의 미남 반악의 도망시
고시와 증삼
고정관념을 깨뜨린 사마온공
부록 - 아들딸과 함께 원문으로 읽어보는 『양아록』
서문序文 | 손자의 탄생을기뻐하며 | 손자의 태를 묻다 | 성주 목사의 축시 | 조카 이염의 축시 | 아이 울음소리兒啼 | 얄미운 이와 벼룩憎蚤蝨 | 앉는 연습習坐 |이가 나오다齒生 | 기어다니다匍匐 | 윗니가 나다 | 이질을 앓다兒痢嘆 | 이질이 오래 계속되다久痢嘆 | 처음으로 일어서다 | 걷는 연습習步 |책 읽는 모습을 흉내 내다 | 돌잡이 | 말을 배우다學語 | 학질을 앓다兒 嘆 | 눈이 붉어지다赤目嘆 | 더위를 먹어 학질에 걸리다暑 嘆 |손톱을 다치다傷爪嘆 | 이마를 다치다傷額嘆 | 놀라는 모습이 안타까워驚俱嘆 | 전염병이 돌다行疫嘆 | 밥을 잘 먹지 않는다厭食嘆 | 할아버지를잘 따른다愛翁吟 | 글자를 가르치다誨字吟 | 젖니를 갈다毁齒吟 | 상을 당하여遭喪歎 | 종아리를 때리다 | 아이를 꾸짖다責兒吟 | 구운 고기를먹고 탈이 나다食炙嘆 | 귓병을 앓다病耳嘆 | 귀에 부스럼이 나다耳腫嘆 |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매를 들다撻兒嘆 | 홍역을 앓다紅疫嘆 |성급하고 화를 잘 낸다躁怒嘆 | 술을 마시고 취하다警醉嘆 | 마을에서 만든 술을 마시다飮村酒嘆 | 술 마시는 것을 경계하라少年醉酒戒 | 집안과가족에 대한 글 | 대를 이을 자손을 바라는 축문 | 손자의 앞날을 기원하는 축문 | 손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축문 | 손자와의 의견 차이로성급히 화를 내다老翁躁怒嘆
참고문헌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제1부 손자의 마음에 남긴 일기
1장 어지러운 정치 추방된 묵객
이문건은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그의 나이 8세 때 아버지 이문탁이 훌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 신씨는 친정 근처로 집을 옮겼다. 이문건은 어머니의 애틋한 정과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큰형 이홍건과 둘째 형 이충건을 따라 부지런히 학문을 익혔다.
큰형은 더 이상 집안의 생계를 어머니에게만 떠맡길 수 없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충건과 이문건은 큰형의 마음을 헤아려 당대의 대학자인 조광조 문하에 들어가 열심히 학문을 익혔고, 이충건은 1510년, 이문건은 1513년에 사마시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 무렵 용인 이씨 이효언의 딸과 결혼한 이충건은 1515년 사촌 형 이공장과 함께 문과에 급제해 가문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문건은 그 다음 해에 세 살 아래인 안동 김씨 김언묵의 딸 돈이를 맞이해 가정을 이루었고, 1518년 10월에 아들 온을 얻었다. 첫아이가 울음 한번 터뜨리지 못하고 8개월만에 뱃속에서 죽은 탓에 이문건 부부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이문건의 앞날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9년 동안이나 과거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1521년 여름, 이문건의 부인은 친정이 있는 충북 괴산 집에서 첫딸을 낳았다. 이문건은 아이의 이름을 정중(貞中)이라 짓고 매우 귀여워했다. 그런 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곧 천연두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문건은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목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의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아 조정에는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조광조를 중종에게 추천하고 기묘사화 때 끝까지 조광조를 구하려고 애썼던 안당의 아들 안처겸이 남곤과 심정 등을 죽이고 경명군을 왕으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해서 그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처형당하는 옥사가 일어난 것이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가리켜 신사무옥이라 부른다.
이는 사실 권력에 눈이 먼 송사련이 남곤 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을 꾸며 고해바친 것이었다. 당시 이문건 형제도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이충건은 유배를 가던 중 청파역에서 사약을 받았고, 이문건은 낙안에 유배되었다. 이문건은 유배지에서 둘째 형이 사사되고, 큰형 이홍건마저 세상을 떠났다는 기별을 받았다. 두 형뿐만이 아니었다. 이문건은 벌써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잃었다. 또한 둘째 누나는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고, 큰누나는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 몸이 되었다.
그후 시간이 흘러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점차 고개를 꺾었다. 가끔 아들 온의 재롱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 무렵 아이를 가진 부인이 갑신년(1524) 3월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나 곧 숨을 거두었고, 다음해에는 여자 아이를 낳아 순정(順貞)이라 이름지었다.
1528년 그의 나이 34세 때 별시문과를 치러 당당히 병과에 급제했다. 이후 그는 승문원(외교에 대한 문서를 맡아보던 관아), 승정원(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시강원(왕세자를 지도하고 교육시키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사간원(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며 나랏일을 익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끊이지 않은 변고로 조정에 피바람이 불자 이문건은 환멸을 느꼈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 깊어가던 어느 날, 73세를 일기로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535년 1월 5일의 일이었다.
이문건은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렀다. 불혹을 넘긴 이문건은 이제 자신의 수양보다는 집안의 장손 휘와 외아들 온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문건은 모친상이 끝난 1537년 4월 1일 정사(政事)에서 다시 사간원 정언이 되어 관직에 복귀했다. 그는 글씨, 특히 해서와 초서에 뛰어나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필법이 신묘해 글씨를 청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는 부탁을 받으면 기꺼이 써주었다. 이후 당상관이 되어 승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기도 했다. 갑진년(1544) 막내딸 순정이 2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이문건에게 남은 자식은 온 하나뿐이었다. 이 와중에 이문건은 을사사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성주로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제2장 유년기
- 조선 최초의 육아일기 『양아록』
이문건은 53세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 자식들의 운명도 지극히 사나웠다. 그의 부인은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네 아이는 일찍 죽었다. 막내딸 순정도 어린 나이에 풍에 걸려 왼손을 못 쓰게 되었고, 간질까지 앓아 6년 넘게 고생하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죽고 말았다. 남은 자식이라고는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온뿐이었다. 하지만 온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학문을 쌓아 휘와 함께 벼슬길에 나아갔다면 그마저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들이 살아 있기에 대를 이을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집온 다음해인 1547년 9월 18일에 맏딸 숙희를, 1549년 둘째 손녀 숙복을, 그리고 1551년 1월 5일에 이문건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아들 숙길을 낳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문건은 손자가 커가는 과정을 일일이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이다.
이문건은 포대기에 싸인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숙길. 내 손자 숙길. 착하게 잘 자거라.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뻐근했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 태어난 지 7개월 아랫니 두 개가 났다
숙길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4개월이 지나자 들어올려 안을 수 있게 되었고, 목에 힘이 생겨 붙들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6개월 후에는 앉아 있기도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점차 달라져갔다. 그러다 7월 초에 잇몸이 생기더니 보름쯤 되어 이의 끝이 뾰족하게 드러났고 그믐쯤 되어 차츰 커졌다.
태어난 지 이제 7개월
아랫니 두 개가 났다
젖을 빨고 어미를 보며 즐거워하고
점점 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이문건은 손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 아이와 같은 때가 있었겠지. 그런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었겠지. 손자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늘 신기했고 즐거웠다.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로 오고, 그 모습이 아들에게, 또 손자에게로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귀양살이였다. 날이 저물 때까지 손자의 재롱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다.
제3장 초년기
- 돌잔치에서 숙길은 무엇을 집을까
임자년(1552) 정월 5일. 숙길이 태어난 지 1년이 되었다. 비록 귀양살이를 하는 처지였지만 이문건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불러 크게 잔치를 벌였다. 이문건은 기쁨은 남달랐다. 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첫돌은 어려운 한 고비를 완전히 넘겼음을 뜻했던 것이다. 그는 특히 돌잡이를 할 때 손자가 어떤 물건을 집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며느리와 여종들은 옥책(玉冊)과 붓과 먹과 벼루, 활, 도장, 투환(套環, 집에 전해 내려오는 옥 중에서 금으로 테를 두르고 안쪽을 꾸민 것), 쌀, 실, 떡 등을 자리에 깔아 방 중간에 차려놓고 숙길을 동쪽 벽 밑에 앉혀 세로로 그것들을 보게 했다.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어떤 것을 집는지 보는 것은 옛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절구 5수를 지어 집은 것에 대해 읊고, 덧붙여 경사를 기리고 축하하는 뜻을 나타냈다.
첫 번째, 붓과 먹을 집다
장난감 높이 쌓아놓고 장차 무엇이 될지 시험해보는데
기어와 살펴보더니 붓과 먹을 집는다
손을 들어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가지고 노는 것이
훗날 진실로 무장을 업으로 삼을 듯하다
두 번째, 투환을 잡다
금과 옥이 장식되어 있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투환을 집어들고
작은 구슬을 거듭 살펴본다
은근히 바라건대 너는 마침내 너그러운 성품을 갖추어
따뜻하고 인정이 있으며 순수하고 굳센 마음으로 성인과 더불어 살아가라
세 번째, 활을 집다
남자는 세상에 나오면 동서남북에 두루 뜻을 두어야 하는데
문장과 계책, 무예와 책략에 모두 뛰어나야 할 것이다.
활을 잡고 육예(六藝)를 익히는 것은 진실로 너의 일이다
도를 배움에 당기고 펼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강건함이 있어야 빼어난 인재가 된다
네 번째, 쌀을 집다
장난감을 놓더니 다시 쌀을 끌어당겨
손에 쥐고 입에 넣어 서너 번 맛을 본다
백성들의 목숨, 곡식이 있어야 유지되듯이
도를 따라야 모름지기 몸이 편하고 즐거워진다
다섯 번째, 도장을 집다
각진 나무를 깎아 글씨를 새겨넣고
시험 삼아 점을 치니 관직에 오를 좋은 징조가 보인다
주위를 돌아보다 마침내 도장을 집어드는구나
반드시 어진 신하 되어 성군(聖君)을 도우라
- 숫돌을 가지고 놀다가 엄지손가락을 찧다
이문건은 조카 염의 둘째 아들 천택을 가르치고 숙길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얌전한 천택은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말없이 앉아 책만 읽었다. 문제는 놀기 좋아하는 손자에게 있었다. 몸이 가벼운 손자는 조심성 없이 나대다 다치기 일쑤였고, 할아버지만 없으면 밖으로 뛰쳐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이다.
손자가 숫돌을 가지고 놀다가 엄지손가락 손톱 가운데를 찍었다. 세로로 찢어져서 피가 솟아올라 흐르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물을 흘리며 운다. 사람들이 종이로 감싸서 묶어주었는데 아픔을 참으며 손을 오므려 감춘다. 다쳤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어수선해져 상처를 보려고 하니 단단히 숨긴다. 여러 날 지나서 다친 곳을 내보이는데 몸이 떨려 자세히 살펴보기 어렵다. 상처가 아물자 다쳤던 손톱이 거슬린다. 나가거나 들어올 때 아프게 하고 거치적거린다. 살짝살짝 손톱 모양을 따라 자르니 붉은 살점이 그 옆에 돋아나 있다. 눈 비비고 그 뿌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른 새 손톱의 끝이 자라 있었다. 다쳤을 때 놀란 것을 매우 가엾게 여겼는데 점차 손톱이 되살아나 기쁘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가 남과 같지 않으니 비록 심하진 않지만 썩 좋은 일은 아니다. 하늘로부터 완전한 몸을 받아 태어났으니 사랑하고 보호하며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옛날 현인은 물려받은 손발을 잘 보전하여 아름다운 자취를 남겨 오랜 세월 높이 받들어졌다. 손자는 마땅히 현인의 뜻을 따라 털끝 하나라도 감히 상하게 하지 마라. 어찌 다만 손가락 다친 것을 아까워하겠는가. 심성이 어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터. 마음을 다스려서 온전한 품성을 이루어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며 굳세고 단단하게 하라. 이루어진 성품을 보존하고 지켜나가 도의를 갖추어 복과 경사가 그치지 않도록 하라. 을묘년(1555) 동짓달 초 6일에 쓰다. 9월 초에 다쳤는데 10월 보름경에 상처가 아물고 동짓달 초에 새 손톱이 나왔다.
제4장 소년기
- 자세히 천천히 깨우쳐줘야 한다
이문건은 손자가 깨우치는 것이 나날이 늘자 시험 삼아 글자를 쓰고 읽게 했다. 하지만 혀가 짧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잡다한 생각이 많아 잘 잊어버리고 외우지 못했다. 이문건은 손자의 타고난 성품이 중간 수준은 되므로 꾸짖거나 바라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하고 가르쳐줄 때에는 화를 내며 지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손자를 가르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었고, 이문건은 마침내 자신과 손자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해 붓을 들었다.
자세히, 천천히 깨우쳐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성급하게 다그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때때로 나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가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것을 글로 써서 후일을 경계하려 한다. 9월 5일 새벽에 쓰다.
- 아, 이 지독한 신열의 세월이여
숙길이 귓병을 앓은 다음해 2월 초에는 홍역이 온 마을을 휩쓸었다. 몸이 약한 숙길도 홍역에 걸려 고생했지만 다행히 10여 일 만에 나았다.
경신년 2월
홍역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손자 또한 앓았는데
열이 많이 나고 숨이 거칠어졌다
처음에는 얼굴 전체에 좁쌀 같은 것이 돋아나더니
다음에는 팔다리, 그 다음에는 등과 배에 났다
열로 인해 가려움이 갈수록 심해져
긁은 곳은 손도 댈 수 없다
병세가 가라앉고 고통이 좀 줄어들었지만
몸이 약해져서 잘 보살피고 돌보았다
쉽게 피로를 느끼고 핏기가 없으며 밥을 좋아하지 않고
마실 것만 찾아 설사할까 걱정된다
병에 걸려 일어날 때까지 열흘이 걸렸는데
이제는 병이 다 나은 듯하다
홍역이 다 나았으니 누가 가장 기뻐하겠는가
머리카락 하얗게 센 할아버지 아니겠는가
제5장 청년기
- 취해 비틀거리는 손자
숙희의 결혼식 다음날 이문건은 찾아온 손님들을 대접하며 혼례를 도운 사람들과 처가 식구들, 친인척들에게 각각 선물을 주었다. 숙희는 결혼 후에도 당시의 풍습대로 성주 집에서 살았는데 남편 정섭은 집을 그리워해 돌아가고 싶어했다. 이문건은 그런 정섭을 달래가며 『논어(論語)』를 가르치면서 성주에 머무르도록 했다. 참된 선비가 되려면 『논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숙길은 『소학』을 배우고 있었다. 1년 만에 두 번 반복해서 배운 후 12세에는 『대학(大學)』을 배웠고, 그해 7월부터는 『맹자(孟子)』를 익히게 되었다. 교육은 글씨를 쓰고, 문장을 익히고, 글을 읽고 뜻을 풀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이문건은 반드시 전에 배운 것을 외우도록 한 후 다음 진도를 나아갔다.
이때 갑자기 부인의 병세가 악화되어 이문건은 병간호를 하느라 한동안 숙길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숙길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즐겨 마신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이문건은 집주인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처음으로 숙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집주인 배인손(裵仁孫)이 계해년(1563) 10월 15일에 찾아와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해 술과 고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정 생원(정섭)과 같이 가려 했으나 달빛을 받으며 숙길과 함께 갔다. 정섭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겨 가지 않았거늘 숙길은 아직 비굴함을 알지 못한다. 저녁이 되어 집주인의 집에 도착해 술 석 잔을 마셨다. 손자는 돌아오는 길에 이미 취해서 말을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했다. 숨기려 했으나 끝내 참지 못하고 마침내 취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지식이 많이 쌓이고 옳고 그름을 가릴 때가 됐는데 이처럼 어리석기 그지없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한다. 늙은 할아비 손자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술이 깰 때까지 기다린다.
- 할아비의 난폭함을 진심으로 경계한다
병인년 4월 초 4일, 손자 숙길에게 글을 읽으며 스스로 배워서 익히라고 일렀지만 게으름을 피워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에 해 질 무렵 등잔에 불을 밝히고 가르쳤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 ‘한가(漢家)의 정치는 고(古)에 미치지 못한 곳에서 끝났다’고 논한 대목에 이르러 “한나라의 정치는 옛날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숙길은 “한나라의 정치는 끝내 옛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다시 내 견해가 옳다고 하자 숙길이 성질을 부려 밤에 그것에 대해 가르쳤다. 하지만 숙길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분하다는 듯이 “제가 풀이한 것 같이 해야 많이 뒤떨어졌다는 뜻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책을 밀쳐놓고 대꾸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늙은 아내에게 손자의 잘못을 깨우쳐주어야겠다고 말했다. 손자를 불러 앞에 엎드리게 하고 말 부릴 때 쓰는 채찍 손잡이로 엉덩이와 종아리를 30대 때렸는데 겁을 먹고 숨 막힐 듯 놀라기에 매질을 멈추었다. 또 초 10일 밤에는 글을 읽으며 익히려고 하지 않아 꾸짖고 그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손자는 베개 위에 엎드려 아무 말이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로 등과 엉덩이를 때렸더니 숨을 잘 쉬지 못해 그만두었다. 19일에도 살펴보고 학문을 익히도록 타일렀지만 따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화가 나서 지팡이를 집어 들고 사정없이 종아리를 때렸다.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에는 늘 어여삐 여기고 안타깝게 생각해서 차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지만 글을 가르치는 지금은 늘 성급하게 화를 내고 손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가. 할아비의 난폭함을 진심으로 경계한다. 손자도 지나치게 게으름을 피워 날마다 익히는 것이 고작 몇 장이다. 서른 번 읽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고 열다섯 번이나 열 번 정도에서 그만두고 만다.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며 읽으라고 일러도 끝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할아비와 손자가 함께 실수를 저질러 그칠 때가 없구나. 반드시 할아비가 죽은 후에야 멈출 것이다. 아아,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 읊는다.
?
이 늙은이가 하나밖에 없는 손자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을 완성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
글을 읽을 때 스스로의 생각으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할까 걱정되어
뜻을 풀이하기 전에 반드시 본래의 의미를 가르쳐주거늘
손자는 어찌 가끔 지극히 오만한 대답을 하는가
앞으로 누가 날마다 가르쳐서 익힐 수 있게 하겠는가
손자가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다면
인륜에 어긋나지 않게 내 은혜를 갚을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