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On Foot

   
조지프 A. 아마토(역자 : 김승욱)
ǻ
작가정신
   
25000
2006�� 06��



■ 책 소개
인류가 첫 발걸음을 뗀 6백만 년 전의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디뎌온 ‘걷기’의 궤적을 좇아, 인간과 세상이 ‘걷기’를 통해 무엇을 소통하고 나누고 이루어왔는지 담아낸책. 현대에 이르러 걷기는 필수가 아닌 선택처럼 되어버렸지만, 오늘날에도 걷기는 체제에 항의하는 수단으로서 대단히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만아니라, 우리는 걷기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음미하며, 자신을 세계를 향해 열어놓음으로써 직접 피부로 와 닿는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책은 세상과 자아, 그리고 육체라는 트라이앵글이 만드는 소리 없는 대화이자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걷기’의 과거, 현재그리고 미래까지를 짚어낸다.

 


우선 걷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걷기와 관련된 표현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걷기가 어떻게 세상과의 대화가 되어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최초의 직립보행부터 시작하여 중세 순례자의 걷기, 탐험가들의 걷기, 혁명과시위에서의 걷기, 현대의 소외된 보행자들까지의 다양한 "걷기"의 변천사를 들여다본다. 장 자크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다비드 르 브르통,키르케고르, 니체 등 많은 명사들의 걷기 예찬론과 더불어, 생각을 자극하고 실존에 대한 행복감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걷기"의 가치와 소중함을일깨워주는 책이다.


■ 저자 조지프 A. 아마토 
1938년 디트로이트 주미시건에서 태어났다. 1970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수료했으며, UCLA 대학교에서 유진 웨버와 함께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뉴욕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교수를 거쳐, 현재는 사우스웨스트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역사와 지방 연구 담당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고향을 다시 생각하며: 지역 역사 연구사례』 『먼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역사』『예루살렘 아티초크 서커스: 시골 아메리칸 드림의거래』『희생자와 가치관: 고통의 역사와 고통의 이론』 등 열다섯 권의 저서를 펴냈다. 1969년 이래 미네소타 주 마샬에 거주하며 교육과 집필에전념하고 있다. 


■ 역자 김승욱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뇌의 문화지도』『소크라테스의재판』『다이아몬드 잔혹사』『톨킨』『국가경영』『퓰리처』『미래의 지배』『황금의 지배』『트렌드2005』『관계우선의 법칙』『강의 기술』『세계의 지성28인의 편지』『듄』『모리의 마지막 수업』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걷기는 말하기다 
지금 걷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걷기와 관련된 다양한 언어 표현들|어떻게, 누구와 함께, 왜, 얼마나걷고 있는가| 인류와 세상 사이의 변화무쌍하고 지속적인 대화 


1. 걷기의 발견 - 최초의 직립보행에서 로마 군대의 행군까지
태초에 발이 있었다|걷기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동물의 가축화|여행과 무역과 원정으로 생긴 새로운 ‘길’들| 로마제국의 도로 건설|선구적인 로마의 도보여행자들|인류를 위한 커다란 한 걸음 


2. 중세를 걸었던 사람들 - 순례자, 거지, 기마전사, 그리고 초창기도시의 보행자 
중세사람들의 걷기|발로 일어선 문명|중세시대 최초의 보행자, 농민|기독교인들의 속죄여행|방랑 수도사,맨발의 거지, 타란튤라 무도병|말 탄 십자군 전사와 열등한 존재로 전락한 보행자|대도시와 세상을 연결한 상인들의 전성시대|‘걸을 수밖에 없는’사람과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 


3. 다르게 걷기 - 상류층 산책 문화의 등장
훌륭하게 걷는 법을 가르치다|험하고 열악했던 16세기의 ‘길’|부와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는 우아한 걷기| 교육적 가치를부여받은 춤과 고전발레|좋은 신발, 좋은 마차 경쟁|점점 더 사치스러워진 걷기의 패션과 취향| 


4. 걷기의 이상화 - 걷기에 의미를 부여한 낭만주의자들
낭만적 보행자의 등장|자아, 예술, 학문의 필요수단으로서 이상화한 걷기|워즈워스의 도보주의 시| 낭만적인 걷기의 아버지, 루소|괴테의이탈리아 여행|멀고먼 땅에 대한 대한 호기심| 
훔볼트, 걸어다니며 과학을 연구하다|등산의 발견|현대적인 보행자들의 등장


5. 북아메리카의 탐험가들 - 그들은 왜 세상 끝까지걸어갔는가 
북아메리카의 이주민들|인디언들의 길|신세계 정복에 나선 유럽의 탐험가들|미국 최초의 도보 판매원|아메리카 대륙횡단과 그 이후|도보 여행을 통해 서부에 정착한 미국인들|도로의 건설과 예정된 시간표|‘걷기는 말하기’를 보여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소로의도보여행서들|어슬렁거리며 걷는 인간 선언|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의미 


6. 도시 보행자들의 출현 - 달라진 세상, 달라진 걷기
빅토르 위고의 튼튼한 다리|걸어서 일터로 가는 도시 노동자들|“티눈 잘라드려요”| 도시 보행자들의 생존을 위한 걷는 기술|세계 최초의도시 지하철 개통, 런던|새로운 보행 종족의 출현| 쇼핑객들의 등장|아케이드에서 태어난 지식 계급|도스토예프스키가 바라본 런던|찰스 디킨스의발과 펜 


7. 혁명의 시대, 걷기의 혁명 - 걸어서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간사람들 
상류계급과 걸어다니는 사람들 간의 대결|통제의 대상이 된 보행자들|필연적으로 생겨난 거리의 ‘군중’|파리 시내를행진하는 혁명 군중|인구 폭발, 교통 혼잡, 악취와 오물의 거리에서|위험한 군중을 제거하는 방법|빅토르 위고의 운구행렬과 조직화된 파리의 거리시위|빛과 보행자들로 가득한 인상파 그림들|국가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걷기 


8. 발 맞춰 행진하는 국민 - 전체주의는 군중을 어떻게 길들였나
걷기의 통제와 조정|도보여행의 열기|도시 보행자의 조직화와 행진의 합법화|영화, 수많은 종류의 걸음걸이를 보여주다|꼿꼿한자세로 걸어라|똑같은 자세, 똑같은 걸음걸이|20세기 대중시위의 뿌리가 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집단행진|보이스카우트는 어디에서 왔는가|
노동자 길들이기|보조를 맞춰 거리를 행진하는 군대의 매력|1차 세계대전과 걷기의 극단을 보여준 보병들| 


9. 밀려나는 발 - 자동차의 발명과 소외되는 보행자들
과거의 왕족과 귀족을 흉내내는 시대|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컴퓨터와 홈시어터|비행기와 자동차|인류, 바퀴 달린생물?|걷기의 종말|더 빨리 달리기 위한 ‘고속도로’|보행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러시아워와 스모그|쇼핑몰에서 걷는 사람들|걷고 싶으면사냥이라도 하는 척하라 


나오는 글: 그러나 걷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 자신의 걸음걸이를 스스로선택하라 
선택으로서의 ‘걷기’|등산을 할까, “망가진 걷기”를 할까|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를 위한 ‘걷기’를 하는사람들|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된 정치적 걷기|‘걷기 대회’의 의미|걷기의 미래|걷기의 부활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걷기의 발견
최초의 직립보행에서 로마 군대의 행군까지

*인류와 세상 사이의 변화무쌍하고 지속적인 대화
나는 한때 인간의 삶에서 핵심을 차지했던 걷기의 비중이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크게 줄어들게 되었는지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 다루고 싶다. 나는 달리기, 수영, 사냥, 낚시 등 인간들이 수행하는 다른 많은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걷기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에서 선택적으로 즐기는 일로, 흔하고 평범한 일에서 가끔 즐기는 괴상하고 상징적인 일로 변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걷기는 발과 땅, 인류, 이 세상 사이의 변화무쌍하고 지속적인 대화다. 이 풍요로운 대화를 완전히 기록한 역사는 있을 수 없다. 1장과 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대화는 직립보행에서 로마의 도로와 군대까지, 그리고 중세의 농부, 탁발 수도사, 장인, 학자, 순례자에게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도보로 자신의 운명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걷기는 17세기부터 계급과 지위에 따라 더욱 계층화되기 시작했다. 3장의 주제인 당시의 상류계급은 화려한 차림새로 산책을 하면서 자신을 과시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산책과 여행은 대부분 즐거움, 교육, 시 등은 물론 심지어 자기발견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원래 상류계급의 교육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던 여행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산층의 여가활동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도로, 다리, 건물, 치안 등이 좋아진 덕분이었다. 4장에서 볼 수 있듯이, 걷기는 낭만주의자들의 여러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으며, 장자크 루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알렉산더 폰 훔볼트 같은 사람들의 펜을 만족시켜주었다.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농촌 인구가 늘고, 산업과 상업과 도시가 성장하고, 이주민들이 늘면서 도보, 말, 배, 기차 등을 이용한 여행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새로이 팽창하고 있는 도시 중심부에서 걷기는 생존을 위한 활동에서 자기발전을 위한 선택적 활동으로 변했다.


미국의 철저한 낭만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걷기는 쉼없는 종교적, 미학적, 과학적 탐구의 수단이었다. 1840년대와 1850년대에 그가 월든 호수 주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걷기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생겨났으며, 점점 팽창하고 있는 도시 중심부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층 활기를 띠었다. 도시에서는 보행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자동차들 사이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인구집중, 전례 없이 활발한 건축, 도시 내부와 도시 간 여행의 발달 등으로 인해 새로운 유형의 도시 보행자가 등장했다. 6장에서는 특히 런던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도시와 지역에서 차례로 지금과 같은 보행자, 즉 자동차의 위협을 받는 보행자로 변했다. 그들은 버스, 전차, 승용차, 트럭이 다니는 길을 미리 생각해서 점점 팽창하고 있는 도시의 빠른 속도에 맞도록 발걸음을 조정했다. 위험하고 위협적인 도시 군중에게는 교육과 위생과 사회적 통합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단속과 명령과 규제도 필요했다. 그들은 또한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사회와 보조 맞추는 법을 배워야 했다(7장과 8장에서 특히 파리를 중심으로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


9장에서 볼 수 있듯이 2차 세계대전 직후 대다수의 서구 사람들은 새로운 경제, 기술, 인구변화 등에 발맞춰 가만히 앉아서 차를 타고 다니는 법을 배웠다. 자동차는 평범하고 흔한 이동수단이 되었다. 한때 인간이나 동물이 직접 밀고 끌어야 했던 모든 물건에 장착된 바퀴가 발의 명성을 가려버렸다. 인도, 시멘트 포장, 도로 등이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걷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짐도 줄어들었다. 가정에서, 농장에서, 직장에서 걷기의 역할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나오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비중이 크게 줄어들거나 아예 자리에서 밀려나버린 걷기(달리기, 테니스, 수영, 등산, 자전거 타기, 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등 매력적인 스포츠와 여가활동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는 인간의 움직임의 기준과 속도를 정하는 권위를 잃어버렸다. 쇼핑, 운동,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관광 등에서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여가로 전락해버린 걷기는 오늘날 점점 더 불필요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활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차를 타고 다니는 사회에서 단순히 부수적인 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내 결론을 미리 살짝 밝힌다면, 이처럼 비중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걷기는 새로운 기술, 여건, 환경 등에 발맞춰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걷기는 점점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하고 있지만, 항의의 수단으로서 대단히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세상과 경험을 환기시키는 능력을 더욱 발전시켰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인류의 역사와 공존하고 있는 걷기는 여전히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



중세에 걸었던 사람들
순례자, 거지, 기마전사 그리고 초창기 도시 보행자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전쟁, 기근, 빚 등이 사람들을 도시로 내몰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과 기회가 그들을 도시로 이끌었다. (농노가 소도시에서 들키지 않고 1년 1일을 살면 영주와 영지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맨발의 빈민들, 실업자, 유랑 노동자, 부랑자, 순례자, 학생, 학자, 그리고 교회의 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방랑 수도사들은 모두 도보로 움직이면서 여행길에 자신의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한결같이 도시로 연결되었다.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한 사람들, 병들고 부상당한 사람들, 이들은 모두 함께 길을 걷는 여행자들의 두툼한 지갑 속에 자신들의 텅 빈 손을 집어넣고 싶어했다. 맨발, 절름거리는 다리, 잘린 다리 등을 이용해서 걸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던 거지들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교차로, 교회 앞, 선술집 문 앞 등에 자리를 잡았다.


궁정과 각 지방의 당국자들은 보행자들의 증가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밤과 낮에 사람들이 맞아들일 수 있는 손님의 숫자를 제한하는 법률들이 제정되었지만, 그 어떤 법률도 방랑하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학문연구를 위해 여행을 하면서 구걸도 하고, 남의 물건을 가로채기도 하고, 약탈도 한다고 알려져 있던 학자들은 중세의 도보여행자들 중 일부였다. 옥스퍼드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랑하는 학생들은 나중에 유럽과 미국에서 추천장으로 불리게 된 서류를 반드시 들고 다녀야 했으며, 그 서류에는 그들이 속한 학교 총장의 서명이 있어야 했다. 도로에 사람이 넘쳐나면서 가난한 여행자들이 길가의 수도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몰려들었다. 그래서 여행자들을 자선을 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과 그렇지 못한 빈민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걸어 도착하는 곳은 대도시였지만, 대도시는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당시 도시들의 상황은 고대 로마와 별로 다를 바 없었으며, 이런 상태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구불구불하게 미로처럼 얽힌 비포장 통행로, 시골길, 골목길 등이 북적거리는 도로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도로가 짐승 떼, 말을 탄 사람들의 수행원, 이주하는 가족들, 가마, 온갖 종류의 수레,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당시에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여러 물건과 상품 더미 등으로 인해 자주 막히곤 했다. 쓰레기, 폐물, 물이 흘러 넘치는 분뇨 구덩이, 거주지와 헛간과 건물들 주위에 쌓인 배설물에서 흘러나오는 물 등이 거리로 흘러들었다. 배수로, 하수구, 인도(유럽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에야 비로소 이런 것들이 생겨났다)가 없는 거리는 미끄럽고 위험했기 때문에 특히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길을 걸을 때마다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많은 거리와 도로들이 가축들을 몰고 다니는 데도 이용되었다. 동네마다 주민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업의 종류에 따라 독특한 냄새와 소리가 있었다. 좁고 거칠고 북적거리는 거리들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하루 종일 길을 걸어다니다 지친 사람들은 집에서도 편안히 쉴 수 없었다.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 백성들과 유력자들 사이의 여러 파벌, 경쟁관계인 가문들(이들 때문에 요새화된 탑이 수백 개나 있는 호전적인 소도시들이 생겨났다)은 중세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항상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사람들은 호기심, 소문, 동네에서 일어난 슬픈 일 때문에 평화적인 모임을 갖곤 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성난 폭도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물론 지방과 교구와 길드가 주최하는 축제와 행렬도 대규모 싸움으로 번질 소지를 안고 있었다. 제대로 정비된 시정부도, 경찰이나 소방관도, 심지어 시민들의 재산에 세금을 물려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길도 없었던 중세 도시의 시민들은 자연의 변덕에 휘둘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폭도로 변해버리는 군중들의 변덕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시민들의 삶은 주로 도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도시는 빈민굴과 범죄를 키우는 온상이었으므로 밤이나 낮이나 안전하게 길을 걸어다닐 수 없게 되었다. 중세의 도시들은 독립적인 도시건 왕과 연대를 맺은 도시건 상관없이 여러 가지 사회악과 싸움을 벌여 시민들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종을 울려 노동시간을 규제했으며, 어스름이 깔리면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빈민과 실업자를 돌봤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계급과 지위에 맞는 행동과 옷차림을 하도록 통제하려 애쓰기도 했다. 칼뱅 시절의 제네바나 식민지 시대의 보스턴처럼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규제한 것이다.


시 당국자들은 도시로 들어오는 문을 강화하고, 곡식을 수입하고,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해주고, 다리와 부두를 건설하고, 화재를 예방하려고 애썼다. 길을 걸어다니는 시민들에게 무심하지 않았던 그들은 건축법, 배수시설, 거리 확장 및 직선화, 통행을 막는 물건들 치우기, 거리 조명, 광장 확장 등에 관심을 쏟았다. 중세 도시들은 거리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원시적인 법령에 의존했다. 그들은 거리를 배회하는 짐승들을 통제하고 도로 수리를 의무화했을 뿐만 아니라 도로 포장사업도 시작했다. 파리가 도로를 포장하기 시작한 것은 1185년, 프라하는 1331년, 피렌체는 13세기 중반, 브뤼헤와 독일의 일부 도시들은 14세기였다. 14세기의 파리에서 주택 소유주들은 집 앞의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도시 밖에 내다 버릴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더러운 거리에서는 시 당국이 청소를 맡았다.


방랑은 중세 초기부터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유럽사회를 계속 괴롭혔으며, 이런 사정은 현대에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방랑자들은 걸어다니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살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가진 물건들을 모두 등에 지고 시골에서 도시로 무질서하게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군대, 유랑 농민들, 도시를 약탈하려는 도적들이었다. 도시들은 방랑자들을 쫓아버리기 위해 담을 더 두껍게 쌓고, 성문을 강화하고, 법과 규정을 만들고, 간헐적으로 도시 정화작업을 실시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방랑은 도보로 움직이는 행위에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방랑은 가장 극단적인 계급 차이를 보여주었다. 필요에 의해서, 아니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 말을 타고 다니는 귀족들이 도로 한쪽을 차지했다면, 나머지 한쪽은 집도 절도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거리로 나선 보행자들이 차지했다. 대다수의 중세 사람들은 여전히 시골길과 통행로를 걸어 다녔지만, 말을 소유한 특권계층은 자신과 자신의 말들을 과시할 수 있는 화려한 저택들을 지었다.


도시의 거리는 또한 보행자들에게 새롭고 특별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범죄, 오물, 혼란, 폭동 등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보행자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와 구경거리들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거대함, 활기, 신기한 광경들, 다양한 풍경, 활기찬 시장, 다양한 행렬, 격정적인 사육제 덕분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단조로운 시골길을 걷는 것보다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일이 되었다. 도시는 인류가 이룩한 놀라운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발길을 멈추고 감탄하게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새로 확장된 도시의 성벽 위를 걸을 수도 있었고, 강가에 새로 지은 부두를 걸을 수도 있었다. 지붕이 있는 중앙 시장을 거닐 수도 있었고, 여러 상업지구들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으며, 귀족과 상인들의 궁궐 같은 집 앞에서 감탄할 수도 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감탄하던 시민들은 도시 순례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중심부의 성당을 찾기도 했다.


도시와 교회는 이런 식으로 행렬과 여행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걷기를 만들어냈으며, 드물게는 관광객까지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걷기는 말을 타는 사람들로 인해 생겨난 계급과 지위의 그림자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웠다. 중세 직후인 16, 17, 18세기에 왕과 귀족들의 궁정과 번영을 누리던 상업도시들은 새로운 형태의 걷기를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에티켓, 형식을 갖춘 춤, 공공 예절 등을 통해 귀족과 중상층 사람들은 발과 몸을 남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부유한 궁정, 사치스러운 시골 별장, 도시 광장, 널찍한 대로와 정원들은 지위가 우월한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구경을 하는 동시에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평탄한 길을 제공해주었다.



북아메리카의 탐험가들
그들은 왜 세상 끝까지 걸어갔는가

*걷기는 말하기를 보여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무렵,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사상가들은 점점 발달해 가는 도시생활에 반대하며 숲 속의 도덕적인 삶과 도시의 뒤틀린 삶이 얼마나 다른지 분명하게 강조했다. 미국 건국초기의 작가 필립 프레노는 1780년대에 숲의 철학자를 자임했다. 1790년대에 그는 『토모치키 수필집(Tomo-cheeki Essays)』에서 스스로 인디언 행세를 했다. 그는 인위적으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숲의 다듬어지지 않은 천재성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도덕을 설교했다.


프레노와 러시 덕분에 필라델피아 시민들이 원시주의를 화제로 삼았다면, 뉴햄프셔의 변호사 이스트윅 에반스는 "걷기를 통해 그 화제를" 실천에 옮겼다. 1818년에 그는 들소 가죽 로브를 입고 모카신을 신은 차림새로 개 두 마리와 함께 "서부를 향해 6400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보여행"을 떠났다. 문명의 악덕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에반스는 서부 황무지의 고독과 장엄함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소박함과 미덕을 배우고자 했다. "이리 호의 남쪽 호반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낭만적인 감동에 빠져들었다. 고독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랠프 왈도 에머슨은 친구인 소로에게 바친 찬가에서 그가 "자신의 발길에 자갈이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참지 못한" 사람이었다면서 "따라서 도로 대신 풀밭, 산길, 숲을 걷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에머슨의 찬가는 소로가 지역적인 삶에 헌신했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준다. "소로는 자기 고향의 들판, 산, 물에 전적인 애정을 갖고 자신의 천재성을 바쳐 글을 읽는 모든 미국인들이 그곳을 알고 그곳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소로는 뭔가를 타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걸었다. 사실 스스로 고백했듯이 그는 "결코 말들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가 걸어다닌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자신의 활동적인 성격에 맞지 않았고, 오랫동안 걷다가 자리에 앉아 글을 쓰면 지적인 생산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문학 비평가 밴 윅 브룩스에 따르면 소로는 "노동자의 손과 발을 지닌" "거칠고 근육이 잘 발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내내 걸어다녔으며, 한번은 콩코드에서 보스턴까지 29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주저 없이 걸어가기도 했다. 그는 보스턴에 가서 에머슨의 연설을 들은 다음 다시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걷기는 그를 사로잡은 또 다른 열정, 즉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융합되었다. 걷기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을 불어넣었으며, 그는 걸으면서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리처드슨의 말을 빌리면, 소로는 걷기를 통해 "사실과 신화를 연결시켰다. 그는 이것이 자연주의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걷기는 그의 정신을 생산적인 상태로 만들어주었다. 매일 한 발을 떼는 순간 그의 걷기가 시작되었고, 일정한 걸음걸이로 걷게 되는 순간 그의 머릿속 작업실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걸으면서 그때 막 메모를 하기 시작한 자신의 공책에 쓸 자료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공책이 모여 수많은 일기장이 되었다. 이렇게 작성된 그의 메모와 일기는 그가 쓴 수필과 저서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럼에도 에머슨은 젊은 소로가 따라갔던 많은 길들을 분명히 밝혀냈다. 그는 초월주의라는 대중적인 이론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초월주의는 19세기 초의 문학 사조이자 철학 사조로서 브론슨 올코트, 윌리엄 엘러리 채닝, 마가렛 풀러, 월트 휘트먼, 소로 등 신생국 미국의 유명인사들이 이 초월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경험 뒤에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초월주의는 무한의 느낌이라는 것이 에머슨의 주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계속 자연을 내재적인 생기로 보았다.


에머슨은 독립적인 정신을 권유하고 고독을 포용하면서 "이 탁발승 같은 미국,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여행을 하면서 남을 흉내내는 미국"의 대안을 찾아보려고 했다. 역사가 루이스 페리에 따르면, 그는 신세계의 여행자들(목사, 강연자, 서적 행상인, 흥행사, 도붓장수)을 생각하면서 변화하는 세상의 균형을 잡아줄 위대한 사람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했다. 소로는 에머슨의 주장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새로 등장한 개인이 반드시 문명을 뒤로하고 물러나 학식을 흉내내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숲 속의 고독한 산책은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소로는 자신과 에머슨이 이상으로 생각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되고자 했다. 실제로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2년 동안 (에머슨의 소유지에 있는) 월든에 머물면서 독립적인 삶에 관한 에머슨의 법칙을 시험해보았다. 역사가 레오 막스에 따르면, 소로의 책 『월든』은 "초월적인 전원주의 실험에 관한 보고서로 볼 수도 있다." 이 책은 또한 독일 이상주의에서부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이자 철학자(워즈워스의 친구기도 한)였던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에머슨, 소로까지, 그리고 박물학자 존 뮤어까지 이어지는 낭만적인 초월주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에머슨과 소로는 열네 살이나 나이 차가 있었지만, 여러 면에서 여행의 동반자였다. 에머슨은 소로가 평생 동안 돌아다녔던 콩코드 숲을 가끔 산책했다. 에머슨은 케이프코드로 도보여행을 가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소로는 케이프코드 여행을 세 번이나 했다. 강연자이자 학자로서 에머슨은 일생 중 많은 시간을 여행으로 보냈다. 일흔 살의 에머슨은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캘리포니아까지 여행하기도 했다. 또한 요세미티에서 박물학자인 존 뮤어(1838~1914)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러시아, 알래스카,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등지를 도보로 탐험한 뮤어는 미국 역사상 소로 다음으로 위대한 보행자다.



나오는 글 -그러나 걷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걸음걸이를 스스로 선택하라

발이 우리의 오랜 친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발은 가장 진실한 최고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발은 팔, 몸통, 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발을 이용해서 우리는 주위환경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다. 다리와 발은 어떤 지형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수백만 년 동안 완벽하게 진화해왔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면서 땅과 처음으로 접촉한다. 걷기를 통해 아이는 위와 아래, 똑바른 것과 구부러진 것, 짧은 것과 긴 것, 빠른 것과 느린 것, 서 있는 것과 넘어지는 것,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기본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아이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커갈지 생각해본다. 그들은 아이의 걸음걸이를 통해 아이의 건강상태, 우아한 몸짓, 운동신경, 성격, 태도 등을 파악한다.


걷기는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직립보행을 했던 때로부터 계속 진화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이 세상을 걸어다닌다. 걷기는 우리가 몸을 움직여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자 동력원이다. 우리가 먼 거리를 이동해 땅을 조사하고 소유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하는 이동방법은 바로 걷기다. 어떤 땅에 발을 내딛는 행위 속에는 우리가 바로 그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장소와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다. 걷기는 우리를 풍경 속의 나무, 바위, 산, 강둑 등과 결합시켜준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된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여러 지역사회들과 접촉한다. 걷기는 시간을 응고시키고, 거리(距離)를 팽창시키고, 어떤 장소에 복잡한 세부사항들을 빽빽이 채워 넣는다. 걷기는 도로, 상업, 정부, 대중문화의 환원주의와 조직화에 맞서 각각의 장소들을 확장하고 방어해준다. 세계화가 유행하는 시대에 걷기는 각각의 지방들을 옹호하는 대변자가 된다.


걷기는 보행자를 위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준다. 걷기는 보행자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발이 머리와 가슴을 이끌 수 있게 해준다. 걷기는 우리의 몸과 감각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고정된 리듬과 확실한 호흡을 통해 걷기는 자주 방해를 받곤 하는 의식(意識)으로부터 보행자를 해방시켜주며, 기도를 하거나 곰곰이 생각에 잠기거나 혼잣말을 할 수 있는 정신상태를 만들어준다. 걷기는 땅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시켜준다.


인류 역사에서 장차 걷기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걷기는 지금도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수단이다(후진국 일부지역의 주민들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무한한 세상의 질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아무리 많이 늘어나도, 우리의 정신은 자신이 있는 곳을 인식하고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인식하기 위해 마치 용수철처럼 걷기로 회귀할 것이다. 교통수단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우리가 아주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속도와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온 걷기로 회귀할 것이다. 다리와 발은 이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지구를 연구하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감각은 여전히 두 발로 걷는 행동에서 나온다.


가만히 앉아서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걷기는 항상 잠재적으로나마 새로운 르네상스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적어도 어렸을 때 많이 걸었던 사람들은 걷기를 통해 최초의 자아로 돌아갈 수 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한가로이 물 흐르듯 걷는 단순한 동작과 접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동작이 가만히 앉아서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움직임에 더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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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모든 이점들을 생각해보면, 걷기는 궁극적으로 차량을 이용하는 문명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될 것이다. 현대문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걷기는 여전히 인류의 삶과 움직임의 핵심을 차지할 것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걷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