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요동

History's disquiet

   
해리 하르투니언(역자 : 서정은· 윤영실)
ǻ
휴머니스트
   
20000
2006�� 09��



■ 책 소개
20세기 전반까지 유럽과 일본에서 생겨난다양한 일상담론을 탐구한 이론서로, 문화 연구와 지성사 연구의 새로운 시공간으로 떠오른 "일상"과 우리 지식 사회에 넓게 퍼져있는 일상의지형도를 꼼꼼하게 인식하고 세밀하게 서술했다.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일상"은 "새로운 지역학" 사유의 자연스러운 귀착점. 지역학에고질적인 중심/주변의 이분법을 깨기 위해 "동시적 근대성"을 사유하고, "동시적 근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개념인 "일상"에 주목한 것.그리고 책은 일상이 갖는 혁명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일상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관철되는 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에 균열을 내는 무수한차이들의 장"이며 "잠재성이 흘러넘치는 장"이라고.


미국의 동아시아학, 특히 일본학의 대표적 학자인 저자는 정보수집과 실증성 차원에 머물러있던 지역학에 비판적 문화이론을 도입하고 철학, 역사학, 문학, 정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학제 간 연구로서 "새로운 지역학"을 모색했다.동서양의 일상담론을 나란히 견주어봄으로써, 이들이 동시적 근대성 안에서 "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경험과 사유의 길을 밟아왔다고이야기한다. 


■ 저자 해리 하르투니언
1940년대 후반 웨인주립대학 입학, 매카시즘이 절정에 이른 1950년대 미시간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1960년대 로체스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2006년 현재뉴욕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같은 학교 동아시아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왕정복고를 향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 : 도쿠가와 시기 토착주의 담론과 이데올로기』『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근대성에 초극되다』 등이 있다.


■ 역자 서정은· 윤영실
서정은 - 연구공간수유+너머에서 공부하고 있다. 옮긴 글이나 책으로는 『예술, 영화, 예술영화』『세기의 사상가, 니체』『성스러운 공포』『니체』 등이있다.


윤영실 -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2006년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선물, 경제 너머를 꿈꾸다』, 옮긴 책으로는 『다시 에드워드사이드를 위하여』가 있다.


■ 차례
저자 소개
해리 하르투니언 : 역사의정치학(마이클 신)
감사의 말
한국어판 서문 : 시간, 경험, 파시즘의 유령
서론 ― 일상생활의 피할 수 없는"현실성"


1장 공룡의 자취를 찾아서: "지구화" 시대의지역연구
Ⅰ. 지역연구의 기원과 새로운 가능성
Ⅱ. 비판적 문화이론과 일상성


2장 일상생활의 신비: 역사 속의 일상성
Ⅰ. 일상,시간과 공간의 최소단위
Ⅱ. 일상, 자본주의의 거역할 수 없는 힘


3장 변증법적 시각 : 일상성 속의 역사
Ⅰ.일상생활을 판타지화하기
Ⅱ. 일상성의 공간을 풍속화하기


미주
저자 인터뷰 : 과거는 언제나 현재에 의해 소환된다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역사의 요동


1장 공룡의 자취를 찾아서: 지구화 시대의 지역연구
지역연구의 기원과 새로운 가능성

- 중심에서 주변을 조망하다
아시아 연구에서 오래된 아이러니 중 하나는, 연구대상으로서의 아시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식을 분할하는 행정적? 지정학적 틀과 학제적 틀을 넘지 않으려는 태도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지배해온 기존 원칙들이 서구적 자아와 동양 간의 고정된 공리적 이중성을 계속해서 정당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서양은 본질화되고 총체화되며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동양은 똑같이 본질화되고 총체화되었으나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식론적 범주와 조직적 틀의 변화에 대한 거부야말로 아시아 연구자들과 아시아 연구학회의 본심이란 걸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국 취향을 지닌 이전 세대들처럼 여전히 동양의 신비를 탐구하곤 한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동양의 동양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서양의 동양으로 남겨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동양의 신비를 보존하는 동시에 동양의 관리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분리와 고립이라는 방법을 통해 동양의 아우라를 보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지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연구에 대한 적절한 묘사이다. 대학은 지역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 비해 더 세계화되고 있으며 문화적 국경이 더 희미해져가는 오늘날에도, 지역연구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


- 주변성을 거부하는 주변으로부터의 지역연구
중국학에서는 도전과 응전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패러다임은 중국이 그 퇴행적 조직과 지적 전통 때문에 서양에 응전했다가 실패했다고 본다. 중국의 퇴행성은 종종 비서구 전체의 특징에 해당하는, 과학이나 자본주의의 발전이 결여된 상태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남아시아 연구의 선구자들은 식민주의의 과거를 쉽게 간과해버린 채 인도가 해방 이후 겪은 민주주의의 미성숙 같은 문제들을, 마치 인도가 한번도 식민화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인도 자체의 종교와 과잉인구 탓으로 돌려버렸다. 남아시아에 대한 이런 연구는 여전히 인도의 삶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헤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일본 전문가들과 일본이라는 연구 현장과의 관계는 다른 어떤 지역연구들에서보다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일본 스스로가 생산한 엄청난 양의 토착지식과 그에 따라 일본의 근대성을 특징짓게 된 자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토착지식의 증대는 유럽과 미국이 그 외부 세계, 특히 아시아를 연구할 때 늘 따라다니던 직업상의 난점이기도 했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이런저런 이국정서와 이곳과 저곳 간의 거리를 줄이면서도 차이를 보장하려는 접근에의 욕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현장은 내부 혹은 토착적인 것으로, 서구의 아시아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토착지식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외부에서 온 방문자로 여겨졌다. 이렇듯 서구의 오만함을 바탕으로, 장소(place)를 현장(field)으로 바꿔치기 하는 수법은 오래된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은 역사가, 정치학자, 사회학자,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 되었다. 학생들은 일본,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을 민속 연구의 현장으로 바라보도록 교육 받았고, 그에 따라 강도 높은 외국어와 현지 원주민과의 생활경험을 요구받았다.


2차대전 이후 일본학을 공부하던 학생들은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일본인 부인들은 일본학 연구자들이 현장을 떠나 있을 때조차 그곳에 대한 정보원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장 경험도 충족시켜 주었다. 미국의 일본 연구자들에게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은 이런 관행은, 미국 내 일본학이 이후 일본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비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 관계는 대개 젠더적인 측면에서도 일방적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즉 결혼은 주로 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졌을 뿐, 그 반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2장 일상생활의 신비: 역사 속의 일상성
일상, 시간과 공간의 최소단위

- 역사적 지위를 획득한 일상
일상성 개념은 19세기 유럽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일종의 논평으로 발전되어온 근대성 담론을 통해 공식화되고 유통되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이론화는 2차대전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20세기 초반의 거대한 산업적 변혁기에,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 모두는 일상 개념을 통해 현재를 조직하고 통합시켰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도시에서 경험하는 삶의 단조로움과 진부함을 꿰뚫어봄으로써 아직 실현되지 않은 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전망을 찾고자 했다. 다른 한편, 소비에트 연방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그 새로운 질서가 부르주아적 문화의 굴레와, 19세기에 한때 노동계급과 연관되어 있기도 했던 새로움과 쾌락에 대한 부르주아적 열망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에트 연방 외부에서도 일상성이 더 인간적인 존재양식을 가능케 하리라는 기대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때의 일상은 상품화 및 사회적 추상화에서 자유로운, 사물들의 새로운 질서와 동일시되는 것이었다.


- 일상성의 의미와 가능성
일상성 담론은 흔히 중요하지 않고 깊이가 없으며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해 다양한 실천의 세부사항들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다른 담론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막스 베버가 일상성을 종교와 분리된 영역으로 설정하고 베루프, 즉 소명이론에 의해 이 분리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게오르그 짐멜은 이런 분리를 근대성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산 경험의 영구적 특징으로 받아들였다.


우리의 일상이 점점 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지적 노력의 산물들로 둘러싸이게 됨에 따라,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의사소통도 그만큼 상징적인 용어들로 채워진다. 그 용어들에는 광범위한 지성이 축적되어 있지만 개인들은 그 중 극히 일부만을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객관적 세계가 주관적 문화를 장악하며 "일상과 객관세계의 모든 측면이 점점 더 그  불일치를 증가시킨"다. 그렇기에 "개인의 정신은 오직 이 객관적 문화에서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것보다 훨씬 더 느린 속도로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만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주관적 정신을 풍요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돈의 철학』449쪽)


짐멜의 세계에서 시간은 어떤 진정한 차이의 분화도 허락하지 않는 현재로 압축되며, 시간성 그 자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경계로부터 해방된다. 역사는 이제 주기성이 아니라 오직 의지와 능력, 그것들을 수행할 객관적 조건들의 반복으로 설명되며, 영원한 현재인 일상의 이미지로 환원되고 만다. 짐멜이 다른 어딘가에서도 설명했듯이, 과거는 흔적 속에서만 존재하며,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잔재들 속에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현대생활의 풍경 속에 놓인 그 잔재들은 현재에 대한 강렬한 감수성만을 남긴 채 객관적 영역과 주관적 영역이 영원히 분리되기 이전의, 이제는 사라져버린 과거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짐멜이 말하는 현재는 시간이 멎어버린 상품성의 세계이다.



3장 변증법적 시각: 일상성 속의 역사
일상성의 공간을 풍속화하기

- 샐러리맨의 공포시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독일의 경제적? 정치적 붕괴와 때를 같이하여 가정에 집착했던 화이트칼라 노동계급의 고통을 민속학적으로 기록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합리화와 중산계급 빈곤화  간의 관계, 또한 소비에 대한 이들의 기대와 자본주의적 위기가 불러온 결과 간의 은밀한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와 정확히 같은 때에 지구 반 바퀴 건너의 일본에서 아오노 스에키치는 『샐러리맨의 공포시대』를 출간했는데, 그 표지에는 건물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한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아오노의 작업은 크라카우어보다 한층 더 나아가, 샐러리맨 계급(일본의 소부르주아)의 사회적 조건을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라는 더 큰 문맥에서 엄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샐러리맨 계급의 소비에 대한 기대와 충족 능력 간의 점증하는 격차로 인해 그들이 지속적인 불만과 심리적 우울로 점철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다.


아오노는 경기 침체가 현재 모든 집단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소부르주아는 대자본의 무게에 압사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이트칼라 계급은 한편으로는 중상층과 하류층 사이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와 소작농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한 채로, 사회적 재화의 보급로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쪽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아오노에게 샐러리맨의 공포시대란 엄청난 궁핍과 총체적인 영혼의 피폐화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그는 소부르주아들이 경험하는 영혼의 피폐라는 상황이, 좀더 광범위한 일본 사회 전체의 공통운명을 가리키는 하나의 비유라고 확신했다.


아오노는 이들이 겪는 영혼의 곤궁이 특정한 심리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아오노의 주장에 따르면, 샐러리맨의 비극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삶의 현실과 봉건적 풍속이라는 부르주아의 심리적 이상이 한데 묶인 완전한 자기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추구와 (과거의) 조화로운 가족주의적 추구 사이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오노는 샐러리맨의 세계관에 철학의 기초가 되는 것은 보수적인 관념론 및 상층 부르주아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열망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념론적 세계관은 원래 생산 과정에 직접 연루되지 않은 유한계급의 철학이지만, 샐러리맨의 문화적? 정신적 삶의 가장 근저에 자리 잡은 채 그들의 모든 판단에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을 결여한 관념론적 철학은 비운동, 정지 상태, 정적이고 고정된 것들에 특권을 부여하며, 이런 의식은 세계,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눈앞의 그 무엇도 보지 않았다. 


- 일상성의 철학
샐러리맨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온 관념론은 일상적 현재의 지금이라는 시간과 마주쳐, 이를 하나의 모순으로 인식한다. 그 결과, 문화 그 자체가 두 개의 영역으로 양분된다. 하나는 고급스러운 정신적 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저열하고 대중적이며 물질적이고 천박한 문화이다. 이 새로운 문화적 질서에서, 고급스럽다는 것은 고정되고 정적이며 움직이지 않으며(반역사적이며) 영원한 것을 의미했다. 반면 저급한 것은 일상성, 즉 동일한 것 안에 있는 늘 새로운 것으로서의 상품과 대량 소비 세계에 관련된 것으로 대중적이고 천박한 세계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제 철학은 진실한 경험, 역사와 변화의 우연성에 영향 받지 않는 진정한 운동, 초월적 가치를 지닌 삶에 대해 설명한 임무를 부여 받는다. 이런 삶은 산업화된 도시의 일상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 즉 상품형식에 지배받고, 표준화되고, 평균화되고, 동질화되고, 탈자연화된 사회적 삶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토사카 준은 역사와 정치, 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영혼과 문화의 우수성만을 주장하는 관념론 철학의 주장이 철저히 파산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오늘날 철학의 임무는 현재라는 문제와 일상생활의 지금을 규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재정의했다. 그러나 토사카는 오늘날 철학은 "우리가 논의하는 바로 그 일상이라는 현상이 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철학이 다시금 상식의 세계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생활로 끌어내려졌다는 것이다.

?

토사카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여전히 계급과 세계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나 혹은 사회로서의 개체는 계급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되며, 어떤 하루도 세계사 내의 하루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을 어느 곳에나 있는 것으로 개념화하는 와중에, 그는 곧 특이하고 지역적인 것과 일반적이고 세계적인 것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다. 일본은 자본주의 하에서 일상생활의 규칙적 일과와 반복을 경험하는 어떤 다른 사회와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나 일상성의 공간 안에는 또 다른 가능성들도 존재한다. 일상성은 비판이라는 현실화를 통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관습을 전복하고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무한한 실천들의 시공간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