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역사와 마주치는 다양한 형태를 탐색하고 역사소설, 사진, 드라마, 영화, 인터넷미디어 등에서 표현하는 ‘과거’를 통해 어떤 기억이 만들어지고, 그 기억이 확산되면서 어떻게 새로운 역사 풍경이 만들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보여준다. 역사 지식의 보급과 활용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문제로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가를 실감나게표현했다.
저자는 공식적인 역사교육보다도 다른 멀티미디어의 역사 표현이 각광받고 있는 지금, 여러매체들을 개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공명하여 우리의 역사관을 성립시키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에대한 진지함"이라는 개념을 제안하여, 우리가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고 자기 자신과 타자, 그리고 인간을 알기 위해서 과거가 꼭 필요함을 깨닫는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저자 테사모리스-스즈키
1951년 영국에서 출생했으며, 영국 브리스톨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환경성에서 근무했으며, 2006년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일본의 경제사상』 등이있다.
■ 역자 김경원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지냈으며, 2006년 현재 서울대와 인하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토토의 눈물』『마르크스 그 가능성의중심』『번역과 추세』 등이 있다.
■ 차례
1.과거는 죽지 않는다
2. 상상할 수 없는 과거 : 역사소설의 지평
3. 렌즈에 비친 그림자 : 사진이라는 기억
4. 활동사진 :역사의 영화화, 기억의 공동체
5. 마음에 새겨진 "이미지" : 만화가 보는 역사
6. 랜덤 액세스 메모리 : 인터넷 미디어가생산하는 역사
7. 우리 안의 과거 : 미디어·메모리·히스토리
참고문헌/옮긴이의 말
우리 안의 과거
과거는 죽지 않는다
역사의 위기
우리는 직접성과 끊임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지식은 경제적 가치가 있지만 낡은 지식은 가치가 없다고 치부되어 ‘공공영역’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교육은 점점 더 동시대적 화제나 실리적 기술 ― 즉시 수익 능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있다고 여겨지는) 재산 ― 을 강조한다. 이런 상황이니 여러 나라의 학교 교과과정에서 역사가 쇠퇴하는 현상은 놀랄 일이 못된다.
과거는 사라지기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불안정한 세계질서의 틈에서 마그마처럼 분출되는 역사의식에 압도당할 듯한 순간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일찍이 윌리엄 포크너가 말한 것처럼 “과거는 죽지 않는다. 과거가 되는 일조차 없다”라는 사실에 속절없이 부딪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교과서 전쟁’은 기억의 공유나 역사적 책임, 역사 교육과 같은 문제가 국가적?국제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어 역사의 망령이 사회생활에 유례없는 규모로 얼굴을 들이민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교과서 논쟁’과 역사 지우기
민족주의 학자 등 몇몇 일본인이 1996년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발족시키면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일본과 이웃나라들과의 논쟁이 시작됐다. 이 모임의 목적은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의 학생들에게 강요해온(강요해왔다고 그들이 믿는) 일본의 과거에 대한 ‘자학적’인 관점과 싸우는 것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위안소’에서 (대부분 조선인과 중국인이었던) 여성들에게 강간 등 성적 학대가 조직적으로 행해졌다는 서술에 분노한다. 이 모임은 ‘종군위안부’가 군부의 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성적 착취를 당한 희생자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또 1937년 수많은 중국 민간인이나 전쟁포로를 죽인 난징대학살 같은 일본의 군사적 침략이 지닌 의미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과거의 이해를 ‘수정’할 뿐 아니라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공의 의식 속에서 말살하고자 하는 움직임, 즉 ‘말살의 역사학’인 것이다.
역사의 진실?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내세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나 민족, 시대에 따라 사고방식이나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사실을 단순히 사실로서 규정하기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한 독립전쟁(1775~1783년) 기간 동안 총사령관이었고,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미국 건국의 기반을 다진 위인이다. 그러나 전쟁에 패해 미국이라는 식민지를 잃은 영국에서도 과연 그를 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영국의 역사교과서 중에는 워싱턴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거나 독립군을 반란군으로 취급한 것도 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지구상의 나라 수만큼 역사가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시오 간지의 이런 상대주의적 견해가 외국 교과서에 대한 자의적인 독해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모순을 일으키고 있음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고, 서술이란 구성되는 것이며, 과거를 ‘신의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에게 니시오의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지적?윤리적 도전장을 내민다. 역사의 서술은 모두 불완전하고 문맥에 의해 좌우된다고 인정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민족유산에 대한 무의식적 연결로부터 자연스럽게 일본의 과거를 떠올리는 니시오의 국수주의적인 해설을 우리는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멀티미디어 시대의 ‘과거’
또 하나의 기본적인 문제는 역사를 둘러싼 논의가 모조리 교과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학교 역사 교육의 내용을 주로 문제 삼기 때문에 공식적인 학교 역사 교육이 역사인식을 결정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있다. 과거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대중시장에 편입된 특정한 역사서술이 출현함으로써 크게 좌우되게 마련이다.
대중문화는 특정한 사건이나 이미지를 되풀이하여 다룸으로써 역사의 특정한 부분을 매우 친숙하고 또렷한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반면, 다른 부분은 낯설고 잘 알 수 없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상풍경이 어떻게 제작되고 강화되며 변용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과 미적 경제학 모두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소설가나 출판업자, 영화작가 같은 사람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선택할 때 각자가 활동하는 시장의 경제원칙에 얽매인다. 문화자본주의라고 할 경쟁세계에서는 그 나름대로 광범위한 다수의 독자층이나 관객이 구매할 만한 작품이 제작되므로,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를 제작자 쪽에서 어떻게 예단하는지가 영향력을 미치기 쉽다. 표현상의 전통에 얽매인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매스미디어 시대에 과거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이해하려면 이런 전통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서사를 어떻게 좌우하는가를 어느 정도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과거 : 역사소설의 지평
역사를 경험한다
대중적인 이야기 형식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다시 상상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서사시나 서사극이 세계 여기저기서 잊혀지는 역사적 사건의 기쁨이나 슬픔을 다시 경험하도록 이끌고, 그런 사건의 원인을 인간의 선이나 악, 운명이나 신의 의지로 설명해왔다.
소설의 진수는 과거의 감정에 성격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총체인 ‘사회’를 언어로 묘사하는 힘에 있다. 더 옛날에 나온 역사서사시는 한 사람의 운명이나 인생의 허무함을 숙고함으로써 시간적 경과의 감각을 취했다. 그러나 리얼리즘 역사소설은 이 감각을 사회라는 변화하는 물질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실체화한다. 이리하여 국민은 사회를 구성하는 무수한 인간들의 개별적인 삶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역사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소설 속에 깊이 스며 있는 과거 사건의 해석은 가공의 인생 이야기와 분리하기 어렵게 얼키설키 짜여 있는 한편, 은연중 암시되는 형태로 들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독자의 역사 이해에 더욱 각별한 영향을 끼친다. 역사문서에서는 역사가에 의한 과거의 해석이 서술 전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누군가 파고들거나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독자의 주의가 오로지 등장인물의 운명에 쏠려 있어, 그 배후에 있는 역사 해석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흡수되게 마련이다.
왜 ‘그때’를 선택하는가?
무엇보다도 역사소설은 독자들에게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대한 친밀감을 부여하여 그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식으로, 과거에 대한 해석을 넌지시 제시한다. 소설 속에서는 본래 한정된 장소와 시간의 틀 속에서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다.
어떤 창시의 순간 ― 혁명, 독립전쟁 등 ― 은 분명 역사소설에서 반복하여 사용되는 참조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현재와 연대기적인 관계가 없어도, 또 한 나라의 역사에서 본질적인 지위를 점하지 않아도, 거기에 동시대의 정치적?사회적 관심사와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선택되는 시대도 있다. 수많은 시대, 수많은 장소가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거울에 견줄 수 있게 한다. 과거의 승리나 비극은 현재를 비추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읽으면,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역사가의 눈으로 조망할 수 있고 시간을 뛰어넘어 반복되는 인간의 행위 유형을 인식할 수 있다. 선구적인 근대 역사소설들도 과거가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를 길러내는 풍부한 원천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상상의 풍경
이처럼 역사소설은 과거와 현재 사이, 독자의 인생과 과거 사회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공감적인 연계를 부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과거 사회는 대개의 경우 국민국가라는 공간적인 틀도 부여한다. 이리하여 역사소설은 근대인들이 나라라는 조건 속에서 과거를 상상하도록 부추기는 주요한 매체의 하나가 되어 왔다. 근대의 역사서와 근대소설 모두 국가 건설의 과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표현했듯이, 19세기 소설은 ‘동시성’의 관념을 낳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수많은 인생이 같은 나라의 사회에 속한다는 사실로만 엮여서 서로 어깨를 걸고 나아간다는 의식이다. 스콧, 디킨스, 톨스토이 같은 소설가는 동일한 소설 속에서 나란히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나들면서, 공존하는 다수의 층이나 장소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실체로서 나라라는 의식을 구축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동일화로서의 역사’를 국가적인 것으로 삼는 과정이 역사인식론에 집어넣는 해석의 폭과 성격을 미묘하게 좌우하는 것이다.
넘을 수 있는 경계와 넘을 수 없는 경계
역사소설과 그것을 읽는 독자가 과거를 보는 시각 사이에는 꽤 복잡하고 불안정한 관계가 있다. 소설(novel)은 실로 ‘새로움(novelty)’에 점점 더 사로잡히는 세계에 나타났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되풀이되어온 역사서사시와는 달리 소설은 새로운 풍경, 새로운 시점, 새로운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역사적 상상력의 지평을 바꾸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나 장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런 가능성에는 전혀 알지 못하거나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투쟁으로 얼룩진 영역으로 (결국은 즐거움이나 휴식을 추구하는) 독자들이 끌려들어갈 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조건이 따라붙는다. 나아가 문화생산이 지닌 얄팍하고 견고한 경제원리 자체, 즉 소설은 인쇄자본주의의 대량생산품이고, 출판사와 서적유통업자, 판매업자들은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을 품을 만한 주제나 형식을 담은 소설의 생산을 지원하고 격려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는다. 이런 제약조건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더욱 폭넓은 시스템의 네트워크와도 관련이 깊다.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어떤 사건에 대한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가는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이나 박물관에서 본 전시물,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영향을 받으며, 최근에 들어올수록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또 다른 역사 생산 미디어의 영향도 받기 십상이다.
우리 안의 과거 : 미디어?메모리?히스토리
1989년 6월 28일은 코소보 전투에서 라자르 공이 이끄는 세르비아군이 오스만 제국에 패한 지 6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디어를 의식하여 정성스레 준비된 기념식전에는 당시의 유고슬라비아연방 지도자가 모두 참석했는데, 뭐니뭐니 해도 그 중심은 세르비아 공산당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였다.
기념식전은 마치 할리우드의 호화 쇼처럼 지나치게 화려한 의장으로 꾸민 제관식 같았다. 밀로셰비치는 헬리콥터로 날아와서는 공중에서 군중 속으로 내려왔다. 환성을 올리는 군중은 엑스트라였다. 카메라는 모두 그의 도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해설자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죄다 코소보 전투의 영웅인 라자르 공을 숭앙하는 세르비아의 오랜 전설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빗대는 어조를 취했다.
이 기념 축하는 ‘세르비아 정치지도자로서 밀로셰비치를 옹립하는 제관식’으로 바뀌고, 이를 기화로 구유고슬라비아는 전쟁과 인종학살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미디어가 자주 떠든 역사적 사전은 1389년 코소보 전투만은 아니다. 1990년 크로아티아 대통령에 취임한 프라뇨 투지만은 역사학 교수로 역임하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견해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크로아티아의 안테 파벨리치 정권은 나치스 독일에 협력했다.) 그는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민족학살 행위는 시대를 불문하고 보편적’이라고 강조하여 상대화하려고 애썼다. 말살의 역사학에 특히 크게 기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투지만의 해설이다. 그는 수많은 세르비아인과 유고슬라비아계 유대인이 살해당한 크로아티아의 야세노바치 수용소에 대해 그곳의 사망자 수가 심히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투지만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지자 세르비아 텔레비전 쪽에서 그의 주장에 반박할 목적으로, 공식적인 역사는 전시 중 크로아티아인이 행한 세르비아인 학살의 규모를 은폐해왔다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공동묘지를 파내어 유해를 다시 매장하는 장면을 찍었다. 야세노바치 같은 장소에서 세르비아인이 비참하게 도륙당한 기억이 되살려지고,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에 대한 세르비아인의 묵은 증오가 다시 타오르면서 공포 분위기가 조장되었다. 한편 크로아티아 텔레비전도 전쟁 중 세르비아인의 행위를 악마의 짓이라 부르고, 크로아티아야말로 진짜 희생자 ― 공산주의 선전의 희생자 ―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비극
역사를 표현하는 미디어는 과거와 현재의 동일화 의식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일이 자주 있는데, 그러는 가운데 역사와 현재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한 해석을 은연중이지만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이를 테면 라자르 공이 싸움을 하다가 죽은 장소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헬리콥터에서 내려온다는 TV 쇼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밀로셰비치에게 세르비아의 역사적 영웅의 후계자라는 역할을 부여할 뿐 아니라, 시청자 대다수의 마음속에 14세기 이슬람교 오스만 제국에 기독교 세르비아가 저항했던 과거의 투쟁을, 기독교 세르비아인과 코소보의 이슬람교 아르메니아인의 대립이라는 현재의 투쟁과 연결시킨다. 전쟁 중 벌어진 대량학살에 관한 기억은 서로 이웃한 공동체 사이에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옛날에 적에게 당한 폭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고조되는 정치적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폭력적인 반응을 드러낸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경우, 양쪽 다 텔레비전에 미치는 국가의 입김이 강한 데다가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정보원을 손에 넣기 힘들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해석의 역사를 보급하는 데 특히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1992년 세르비아의 학생시위대가 ‘TV를 꺼라, 눈을 감아라!’라고 외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비록 노골적인 조작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아닐 때에도 미디어가 사람들의 과거 이해에 미치는 영향은 좋든 나쁘든 티가 안 나도 섬세하고 뿌리가 깊은 법이다. 이제까지 나는 미디어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거나 개탄하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오히려 역사 교육을 통해 21세기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미디어를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과거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스스로 양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세르비아 학생시위대의 슬로건을 패러디해서 말하면 ‘TV를 켜라, 눈을 떠라’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 다양한 미디어의 가능성과 한계, 커뮤니케이션 코드를 이해하는 일이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배워야 할 기본이라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문학연구나 영화연구처럼 각각의 미디어를 개별적으로 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서로 어떻게 작용해 우리의 역사관을 성립시키고 있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세계 전체의 역사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익히도록 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학교의 역사 수업은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가장 친근한 문제, 즉 자기 나라나 이웃나라, 그리고 힘이 센 나라들, 최근 몇 세기 동안 일어났던 제일 극적인 사건 같은 역사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를 배움으로써 다른 ― 현대 세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 것도 알고 익히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로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과거를 탐색하기 위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힘, 또한 학교를 마친 이후에도 탐색을 멈추지 않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발칸 전쟁 같은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 물음을 던지고 사건의 원인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정보에 근거해서 각국 정부나 국제기관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과거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역사에 대한 지식을 ‘관계’로서 추구한다는 생각도 소중하다. 이제까지 나는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 그 사건의 기록이나 표현에 관여한 사람들, 그 표현을 보거나 듣거나 읽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표현되는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고 써왔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란 우리 안에 있는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알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데 과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역사 교육이 이런 주의를 환기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무엇을 가르친들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다.
다양하고 서로 다른 과거 사건의 표현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의 전모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기술을 동등하게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순수한 상대주의에 빠진다면 사태는 더욱 곤란하다. 나름의 한계가 있더라도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란 무엇보다도 과거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거를 조망하는 데 현재가 아닌 훨씬 유리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과거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의 마음이나 육체에 우리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체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자기가 놓인 위치에 대해, 또 과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미래의 비전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에 대해 정직하고자 노력하는 일뿐이다. 우리가 현재로부터 과거를 본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관점의 한계를 충분히 자각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과거에 대해 배우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 있는 위치를 창출해내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의 일환이 되리라고 보는 바이며,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