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헤르만 헤세 (지은이), 폴커 미헬스 (엮은이), 박종대 (옮긴이)
ǻ
열림원
   
17000
2025�� 08��



■ 책 소개


하늘과 땅을 잇는 무대 위에서
고향 없는 예술가, 구름이 부르는 예술의 변주곡

헤세의 시선에 담긴 구름에는 소년 시절의 상실, 방랑자의 지친 발걸음, 계절이 가을로 기울며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헤세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인물이었다. 그는 삶에 초연하지 않았고, 매 순간 고뇌의 끝에 구름을 두었다. “너희 방랑자들이여!?우리 또한 방랑자이니.” 이 부름에는 부드러운 동경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절박함이 스며 있다. “형태도 머무름도 없는” 구름은 헤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폭풍 같은 세월을 버텨 온 헤세는 구름을 통해 자신을 초월적 차원, 즉 바람(wish) 너머의 궁극적 존재와 연결하려 했다.  

■ 저자 헤르만 헤세
1877년 7월 2일, 독일 뷔르템베르크주 칼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선교사였고,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는 저명한 인도학자이자 선교사의 딸이었다. 1904년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고 연이어 대표작 『수레바퀴 아래서』를 발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듬해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고, 이후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들을 써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작품이 독일에서 출판 금지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에 재개되었고 그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두 번의 전쟁, 세 번의 결혼을 경험하며 정원과 화폭을 벗 삼았던 헤세는 1962년 8월 9일, 스위스 루가노주 몬타뇰라에서 85세로 생을 마감했다.

■ 엮음 폴커 미헬스
194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1969년 독일의 주어캄프와 인젤 출판사에 입사하여 독일문학 전문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동시대와 과거의 많은 작가의 원고를 펴내는 일에 헌신했으며, 특히 헤르만 헤세의 작품과 편지들에 깊이 천착하여 헤세의 문학적·예술적 유산을 백 가지가 넘는 주제로 분류하여 책을 펴냈다. 2005년에는 직접 편집한 스무 권의 헤세 전집 발간을 완료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그가 엮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화가 헤세》, 《헤르만 헤세, 내게 손을 내밀다: 영혼을 울리는 치유의 메시지》, 《헤르만 헤세의 사랑, 예술, 인생》, 《어쩌면 괜찮은 나이: 오십 이후의 삶, 죽음, 그리고 사랑》,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등의 도서가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역자 박종대
성균관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표층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지금껏 『위대한 패배자』 『데미안』 『우연한 불행』 『늑대의 시간』 『메르켈의 자유』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어느 독일인의 삶』,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낯선 도시

묘한 슬픔이 밀려오네,

낯선 도시를 거닐면,

고요히 잠든 밤의 거리,

달빛 어린 지붕들.


구름이 기이한 모습으로 흘러가네,

탑과 박공지붕 위로,

고향을 잃고 찾는 사람처럼

고요하고 장엄하게.


허나 너는 갑자기 무언가에 압도되어

그 슬픈 마법에 몸을 내맡기고,

손에서 짐을 내려놓은 채

오래도록, 쓰라리게 흐느끼네.



순례자

멀리서 천둥이 소리치고,

시커먼 사내 같은 구름이

신음하듯 답답한 대기를 질주하고

숲은 탄식하기 시작하네.


홀로 넓은 들판을 지나

한 순례자 터벅터벅 걸어오네,

세상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치욕과 상처를 입은 이가.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파르르 몸을 떨며 바스락거리고,

공기는 더욱 무겁고 누렇게 변하고,

구름 속 먼지 짙게 날리네.

순례자는 바로 나 자신이니.



구름 낀 밤

우듬지에 폭풍을 머금은,

내가 좋아하는 너 구름 낀 밤이여,

너의 격렬한 박동 속에는 어찌하여

죽음의 찬란함이 그토록 급격히 타오르는가!


너 고통의 노래여, 너 슬픔의 노래여,

너 전율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여,

나는 향수에 젖은 네 밤의 선율에 담긴

그 은밀하고 거친 매력을 잘 아나니!


언젠가 소년 시절처럼

너는 어두운 슬픔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구나.

그건 너무나 익숙한 아픔이자,

당시의 오래된 슬픔이구나,

다만 달콤함이 없고 더 깊기만 한.



룰루

높은 초원 위를 스치는

한 점 구름의 수줍은 그림자처럼

너의 아름다움이 조용히 다가와

나직한 슬픔으로 나를 어루만졌네.


꿈과 꿈 사이 때때로

삶이 나를 붙잡으려 하고,

황금빛으로 빛나고 명랑하게 유혹하다가도

이내 사라지고-나는 다시 꿈을 꾸네.


깨어남의 순간을,

내 눈이 잠든 사이

그림자처럼 내 위를 지나가 버린

운명들을 꿈꾸네.



구름

내 머리 위로 구름이,

조용한 배들이 흘러가며

섬세하고 경이로운

색깔의 면사포로 내 마음을 울리네.


푸른 공기에서 생겨난 듯한

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세상이

문득문득 나를 신비로운

매혹으로 사로잡는구나.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난

가볍고 환하고 맑은 거품들이여,

너희는 정녕 이 오염된 땅에서

아름다운 향수의 꿈이런가?


파란 하늘 조용히 어린 구름 지나고,

아이들은 노래하고 꽃들은 풀밭에서 웃네.

지친 내 눈은 어디로 향하든

책에서 읽은 것을 모두 잊으려 하네.


내가 읽은 모든 무거움은 진정

먼지처럼 날아가고 겨울의 망상일 뿐이었어라.

내 눈은 상쾌해지고 치유되어

새롭게 샘솟는 창조를 바라보네.


그러나 내 가슴에 새겨진,

모든 아름다운 것은 덧없다는 진실은

봄이 다시 찾아올 때마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어떤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네.



비 오는 날들

소심한 눈길이 온 사방에서

잿빛 벽에 부딪힌다.

이제 태양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물에 젖은 나무는 벌거벗은 채 가만히 서 있고,

여인네들은 외투로 몸을 감싸고,

비는 한없이 계속 쏟아진다.


언젠가 내가 소년이었을 때,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맑았으며

구름마다 가장자리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보니

모든 광채는 사라지고,

비는 쏟아지고, 세상은 변해 버렸다.



꽃가지

쉼 없이 이리저리

꽃가지가 바람결에 나달거린다.

쉼 없이 아래위로

내 마음이 아이처럼 사부작거린다.

환한 날과 흐린 날 사이에서,

욕망과 고행 사이에서.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고,

가지에 열매가 달릴 때까지,

아이 상태에 지친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삶의 소란스러운 놀이도 무척 즐거웠고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때까지.



잔향

흘러가는 구름과 시원한 바람이

병들었던 나를 식혀 주네.

나는 조용한 아이처럼 꿈꾸며

쉬고, 치유되었네.


다만 가슴 깊이 남은 울림 하나

가엾은 내 사랑의 흔적이라,

모든 요란한 기쁨 가라앉히며,

조용히 애잔하게 남아 있네.


바람과 소나무가 속삭이는 동안

나는 몇 시간 며칠이고

이 이름 없는 울림에

묵묵히 귀 기울이네.


나는 비와 바람 소리에 즐겨 귀 기울이고

따뜻한 어둠이 깔린 숲속을 자주 헤매 다닌다.

하늘을 떠도는 구름에 묻노니,

너희의 희망은 무엇이고, 너희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가끔 낯선 집의 창문을 들여다보는 게

방랑자로서 나의 위안거리다.

낯선 이의 삶, 기쁨과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다 마음에 담아 간다.


그러다 밤이 되어 저 하늘 높은 별이

무자비하고 차갑게 내 잠자리를 내려다보면

나는 추위에 떨며 숙소에 들어 섬뜩한 깨달음과 마주한다.

그새 내 마음조차 낯선 것이 되어 버렸음을.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