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그림

   
타샤 튜더, 해리 데이비스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ǻ
윌북
   
25800
2025�� 02��



책 소개


삶을 예술로 만든 화가,
타샤 튜더의 자기 삶을 그리는 법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삶을 꿈꾼다. 취향과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수입을 얻고 보람되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정원가, 요리사, 공예가, 자연주의자… 다양한 수식어를 가졌지만, 70여 년 동안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남긴 성실한 예술가 타샤 튜더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림책 삽화를 그려 홀로 네 자녀를 키우면서 꾸준히 자기 주변의 것들을 그림으로 남긴 타샤 튜더. 그가 남긴 추억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맑은 수채화풍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고운 선과 색 속에 스며 있는 ‘묵묵한 실현’을 엿볼 수 있다.

타샤는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보지 않은 것을 그린 그림은 하나도 없어요” 솜씨 좋게 만든 옷과 인형, 매일의 살림살이, 부지런히 가꾼 정원 풍경,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 크리스마스카드 엽서와 동화 속 작품까지. 『타샤의 그림』은 타샤 튜더가 남긴 140여 점의 그림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일상을 예술로 만든 화가의 ‘꾸준함’을 일러준다. 좋아하는 그림이 일이 되는 순간, 즐거움과 부침의 감정을 오가면서도 주어진 하루를 착실히 살며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간 예술가의 사연과 목소리를 사랑스러운 그림과 함께 엿볼 수 있다.

■ 저자 
타샤 튜더
타샤 튜더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선 기사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샤의 집은 마크 트웨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 걸출한 인물들이 출입하는 명문가였다.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던 타샤는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살기 시작한 타샤는 비로소 그림을 그리고 동물을 키우면서 화초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이 출간되면서 타샤의 그림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혼한 뒤 그림을 그리며 혼자 4명의 아이들을 키웠던 타샤는 『1은 하나』, 『Mother Goose』 등으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획득하고 약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남겼다.

56세에 인세 수익으로 드디어 버몬트주 산골에 땅을 마련한 타샤는 18세기 풍의 농가를 짓고 오랫동안 소망하던 정원을 일궈냈고, 이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는 타샤 튜더는 골동품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수십 년간 모은 약 200여 벌의 골동품 의상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컬렉션으로 불리며 록펠러재단이 운영하는 윌리엄스버그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타샤의 또 하나 고풍스러운 취미는 인형 만들기다. 골동품 박물관 같은 타샤의 집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3층짜리 인형의 집에는 타샤의 분신인 엠마와 새디어스 부부가 살고 있으며 손톱만 한 책들과 골동품 찻잔들, 골동품 가구들이 빛을 발한다.

타샤가 여든세 살이 되었을 때, 타샤 튜더의 모든 것이 사전 형식으로 정리된 560쪽에 달하는 『Tasha Tudor: The Direction of Her Dreams(타샤 튜더의 완전문헌목록)』가 헤이어 부부에 의해 출간되었으며 타샤의 모든 것이 담긴 소중한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92세의 여름, 평생을 사랑한 정원의 품으로 돌아갔다.

해리 데이비스
글을 쓴 해리 데이비스는 10대 시절부터 타샤 튜더의 그림에 매료되어 그녀의 예술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에서 영어와 미술사를 공부한 후,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타샤 튜더의 인형의 집: 미니어처의 세계』, 『타샤 튜더의 예술 세계』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번역 공경희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성균관대 번역 테솔 대학원의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서울여대 영문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시드니 셀던의 『시간의 모래 밭』으로 데뷔한 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호밀밭의 파수꾼』, 『파이 이야기』 등을 번역했다.

■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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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삶을 그린 화가, 타샤 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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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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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캔버스
잃어버린 그림
빛나는 장인 정신
기쁨을 누리길!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타샤 튜더 연표
타샤 튜더 대표 작품

 




타샤의 그림


프롤로그 -삶을 그린 화가, 타샤 튜더

타샤 튜더의 예술은 그녀의 삶과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오랜 세월 그 둘은 하나처럼 단단하게 이어져왔다. 타샤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과 풍경을 스케치하고 채색하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나이가 들고 삶이라는 그림이 점점 풍부하고 섬세해지면서 그녀의 예술 세계 또한 다채로워졌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가 한 일은 단지 주변의 일상을 기록한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중요한 예술적 유산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타샤의 삶 자체가 훌륭한 예술 작품이기에 그녀가 세밀하게 기록한 삶의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삶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강한 의지와 놀라운 상상력으로 삶을 개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나갔다. 타샤는 오랜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섬세한 그 림과 소박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책들을 세상에 선보였고, 이 작품들은 수백 만 독자들이 보낸 유년기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다.


주로 독학으로 그림을 익힌 타샤는 잠시 보스턴 박물관 미술 학교에 다녔지만 화가로서 실력을 쌓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거의 매일 그려온 스케치북의 그림들을 통해서였다. 어린 시절의 짧은 나들이 때에도, 어른이 되어 잉글랜드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1950년대에도 여행을 갈 때마다 늘 스케치북을 지니고 다녔다. 잉글랜드에 머물던 당시 스케치북에는 매주 런던의 켄싱턴 미술 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받으며 그렸던 누드화가 잔뜩 그려져 있다. 타샤는 '그림들이 너무 커서 짐을 쌀 수가 없다'는 이유로 당시 작업한 큰 그림들을 다 없애버렸다.


타샤 튜더는 75여 년간 90권이 넘는 작품을 쓰거나 그렸다. 다른 작가들이 그녀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 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자급자족하여 음식 만들기, 물레질하기, 가족들의 옷을 만들 천 짜기, 가축 돌보기, 네 자녀 키우기 등 그녀는 책에 그려진 삶 그대로를 살았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강연을 하고 마리오네트 인형극으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인 고전 의상 수집은 세계 최고의 1830년대 의상 컬렉션이 되기도 했다. 또 그녀의 자랑거리인 코기 코티지의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근사한 정원으로 꼽혔다.


타샤는 그녀의 그림이 담긴 책들만으로도 시대를 초월해 가장 성공한 삽화가로 꼽히지만 다른 분야의 작품들도 그만큼이나 훌륭한 결과를 내놓았다. 타샤는 수많은 책을 발표하면서도 400종이 넘는 크리스마스 카드 또한 그렸다. 의뢰받은 초상화를 그리고, 제품 포장 수수료를 받았고, 피에르되(프랑스풍의 가구, 패브릭, 소품 등을 파는 미국의 회사-옮긴이)에서 판매하기 위한 디자인도 했다. 그녀가 이룬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타샤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놀라운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의 책은 수백만 부나 팔렸다. 그녀가 삽화를 그린 『비밀의 화원』만 해도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타샤는 많은 독자들에게 전통을 일깨워주었고 전 세계에 걸쳐 열성 독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번은 한 집안에서 무려 5대에 걸친 가족 팬이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타샤는 화가로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평론가는 타샤를 한층 재미나고 정확히 묘사했다.


"그녀는 휘슬러 어머니(화가인 제임스 휘슬러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린 어머니라는 작품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임-옮긴이)의 고전적인 패션 감각과 마사 스튜어트의 대단한 사업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감탄의 핵심에는 그녀가 지닌 천재성과 함께 괴짜 같은 면도 자리잡고 있다. 그녀는 더딘 것으로 유명하다. 의뢰받은 작품을 만들 때면 시간을 두고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한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그녀는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깐깐한 사람일 수도 있다. 타샤는 종종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해 자신을 묘사하기도 한다.


"누구나 달과 같아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지요."


나도 타샤 튜더의 고집스런 면을 본 적이 있고, 가끔 그것을 보는 게 겁난다. 하지만 10년 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로 지내면서 그녀의 괴짜 같은 면 때문에 그녀를 향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세상에 멋진 유산을 안겨준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0년 넘게 타샤의 예술을 공부하는 데 푹 빠져 지냈다. 그녀의 책으로 글을 배웠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작품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타샤의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집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매달렸기에 부모님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으셨다.


10대가 되었을 때 타샤의 그림에 대한 연구는 이미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일생 동안 해야 할 '나의 일'이 될 거였다. 언젠가는 그 일이 나의 진짜 직업이 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타샤를 개인적으로도 알게 되고 언젠가는 같이 작업하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 런 기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끊임없이 타샤의 예술을 연구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인내의 열매

타샤 '최고의 작품'은 독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경구 모음집인 『타샤의 어린이 정원』을 제외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책 속의 아이들이 의젓하고 차분하게 사색에 잠긴 모습들로 그려진 것을 보면, 튜더 집안의 아이들은 틀림없이 얌전했을 것이다. 깊이와 입체감이 살아 있는 수채화와 연필 드로잉은 타샤가 「머더 구스』에서 보여준 솜씨를 능가한다.


타샤의 책들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 두 편은 1950년대 초반에 나왔다. 『인형들의 크리스마스(The Dolls' Christmas)』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튜더 집안의 크리스마스 전통 행사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의 인형들과 동물 인형들이 자신들만의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타샤는 실제로 집안의 행사를 그렇게 준비했다. 『시슬리 비(Thistly B)』에서 잠깐 언급된 인형의 집 이야기는 인형들만의 이야기인 『인형들의 크리스마스』로 탄생했다.


타샤가 아이들과 인형, 장난감, 멀리 사는 인형 친척들과 친구들의 연락 수단으로 만든 참새 우체국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 책이다. 가족의 연례행사인 마리오네트 인형극도 이 책에서 처음 알려졌다. 타샤의 자녀들은 실제로 각자 우편함을 가지고 있었고, 인형과 장난감을 비롯해 상상 속의 친구 들이나 우편 주문 회사들로부터 편지가 정기적으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이 우편함을 '참새 우체국'이라고 불렀다. 가끔 인형들의 이야기가 등장했고, 타샤는 이런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인형들의 크리스마스』는 타샤가 삽화가로서 발전하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어준 작품이다. 훗날 그녀가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이 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제껏 그녀가 쓰고 그린 책들은 어느 정도는 자전적이었지만, 이제 타샤가 그리는 아이들은 제법 커서 그녀가 창조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친구들의 부모와 다른 어머니의 독특함을 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쩌다 시내에 함께 나가면, 꼭 열 발자국이나 스무 발자국쯤 뒤에서 따라오곤 했다니까요. 내 차림새가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아이들은 사람들이 우리를 가족이라고 보지 않기를 바랐죠."


그래도 명절을 축하할 때면 자녀들은 그녀가 만든 환상의 세계를 마음껏 즐겼다. 자녀들이 어릴 때 타샤는 아이들이 그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자세를 취하면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집안 곳곳에 스케치북을 두었다.


"미술은 아이들의 생활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이었지요. 다들 내 삽화의 모델 노릇을 하는 데 이골이 났거든요. 아이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는 건 쉬워요. 가끔 남자 애들에게는 초콜릿을 주곤 했지요. 여자 애들은 허영 때문에 기꺼이 포즈를 취했고요."


『인형들의 크리스마스』는 타샤에게 자신이 꿈에 그리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과 꿈꿔오던 삶을 적절하게 버무려 삽화를 그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생활과 예술이 뒤섞이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였다. 현실과 공상은 독특하게 혼합되었다. 타샤가 가족과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미국 전역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수많은 여자아이가 『인형들의 크리스마스』를 읽기 시작했고, 튜더 집안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이후 몇십 년간 더욱 커져갔다.


『인형들의 크리스마스』에 이어 나온 『아만다와 곰(Amanda and the Bear)』은 베서니의 친구 가족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에드거 앨런 크로(Edgar Allan Crow)』는 튜더 집안의 반려동물인 까마귀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책이다. 다음으로 『타샤의 ABC』가 나왔고,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첫 출판 당시 못지않은 반응을 일으키며 스테디셀러로 기억되고 있다. 타샤는 고모 에디스 버기스로부터 물려받은 인형 '멜리사'에게서 영감을 받아 애너벨과 옷이 가득한 옷장을 그려냈다. 글의 단순한 리듬은 어린아이들에게 저절로 알파벳을 익히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타샤가 그린 수채화와 드로잉에는 그녀의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드러난다. 이 책에서도 멋진 효과를 내기 위해 그녀는 꽃 테두리 그림을 사용했다.


타샤의 삶과 예술의 방향이 정해졌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였고, 타샤는 삶과 예술의 균형을 최대한 맞추었다.



하얀 캔버스

1962년부터 1971년까지의 10년은 타샤가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독창적인 삶을 개척해낸 시기였다. 이 성공적인 10년의 여정이 마무리될 무렵 그녀는 대중적 인기와 비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71년 초에는 가톨릭 도서관 협회에서 수여하는 유명한 '리자이너 메달'을 받기도 했다. 특정 작품보다는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어린이들에게 주는 것은 최고여야 한다"라는 월터 드 라 메어의 말에 합당할 만큼 아동문학에 평생을 헌신한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타샤는 마침내 소로가 말한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예술과 삶 양쪽에서 새로운 도전거리와 영감을 얻을 준비가 된 셈이었다.


1971년 11월 타샤는 새 집을 짓는 아들 세스를 거드느라 분주했다. 집의 설계는 타샤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친구 집의 구조에 기초했다. 동력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집을 지었으며, 정원 설계와 조성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래서인지 타샤의 다음 책은 1975년에야 출판되었다. 책에는 그녀 특유의 꿈과 노고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재판본에는 타샤의 새 집 그림이 처음으로 선보여져 있다.


이 책은 시집이었고 타샤의 어떤 작품보다 그녀다웠다. 생쥐들이 불 켜진 성냥을 높이 들고 산타클로스를 지붕 꼭대기로 안내한다. 산타클로스는 초판본에서보다 한층 더 요정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양이와 코기, 산타의 선물인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들이 더욱더 환상적이고 마법같이 느껴진다. 독자들이 바라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책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타샤의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녀가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기쁨과 자녀들이 성장한 후 얻은 자유는 새로 시작한 작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후 9년간 그녀는 일 년에 한 권에서 네 권의 책을 작업했다. 그중 몇 권은 타샤 튜더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발간 이듬해에 펴낸 『크리스마스 고양이(The Christmas Cat)』는 딸 에프너와 공동 작업한 세 권 중 한 권이다. 타샤의 잔잔한 그림은 에프너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을 찾는 고양이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마법 같은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이어 에프너가 쓰고 타샤가 그린 1977년 작 『에이미의 거위(Amy's Goose)』와 1978년 작『캐리의 선물(Carrie's Cijf)』도 발표되었다.


1977년 작품인 『타샤의 특별한 날』에는 튜더 집안의 명절 이야기가 전부 담겨 있다. 그림에서 아들 탐은 어른으로 나오고, 타샤는 할머니가 되었다. 이번에는 손자 손녀들이 타샤의 옛 기억과 스케치북 속에 존재하는 아이들 속에 더해졌다. 오랫동안 전통으로 내려온 기념일 행사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논다. 타샤는 과거로 되돌아가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아냈다. 섬세한 묘사들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타샤는 베서니의 케이크가 블랙 워터강에서 떠내려오는 장면을 다시 그렸고 이전 그림보다 깊이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이 책은 가족 간의 사랑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타샤는 이 책의 삽화를 그리며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타샤가 타샤의 특별한 날의 삽화 전부를 보관한 사실만 봐도 타샤가 이 작품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원판의 가격이 높아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녀는 이 그림을 한 장도 팔지 않았다. 이전에 책의 삽화를 전부 보관한 것은 『코기빌 마을 축제』뿐이었다.



기쁨을 누리길!

1996년 11월 6일,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의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 포크 아트 센터'에서 타샤의 삽화가로서의 인생에 한 획을 긋는 전시회가 열렸다. 개막식 전날의 호응은 5개월 동안 진행된 전시회에 쏟아질 찬사의 시작에 불과했다. 타샤의 팬임을 자처하며 그녀의 그림 인생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전시 작품의 방대함에 하나같이 놀랐다. 멋진 갤러리에서 전문가들이 배치하고 평을 붙인 작품들을 본 관람객들은, 한 작가가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는 데 무척이나 감탄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전시회는 타샤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전시회 관람을 주저했고, 마지못해 조용히 가보기로 결정했다. 일 년 반이라는 긴 준비 기간을 거쳤기에 큐레이터들이 타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개막일 전 일주일 동안 작품이 진열될 때 들러보긴 했지만 완성된 전람회장 풍경에 타샤는 압도되었고 마침내 필생의 업적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타샤는 전람회장에 들어갔다. 큐레이터들이 상기된 얼굴로 전시회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철저히 준비했기에 타샤의 반응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타샤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기대했다. 안에 들어선 타샤는 전시의 규모에 깜짝 놀랐으니 묘한 광경이었다. 대부분 코기 코티지에서 매일 일상적으로 쓰던 물건들이었지만 유리 진열장 안에 있으니 낯익으면서도 어딘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이 전시회의 장점 중 하나는 그녀의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점이 잘 나타난 것이다.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진열되면서 그림 속에서 묘사된 실제 사물들에도 눈이 쏠렸다. 의상, 가구, 인형, 장난감, 바구니, 그릇, 뜨개질로 만든 소품들, 크리스마스 장식품, 찻잔 세트, 부엌 가재도구 등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였다.


타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우리는 전시장 구석구석을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떤 작품 앞에서는 진지하게 설명을 읽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를 대하듯 반가워했다. 타샤는 빠른 속도로 전람회장을 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전시회를 기뻐하면서도 이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는 듯했다. 타샤는 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빛나는 열정과 기백이 나이와 주름살을 초월한 듯했다. 그녀가 감격에 겨워 더듬더듬 말했다. "정말로 내가 이걸 다 했나 봐요. 해리. 내가 성공을 이루었네요.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도 내가 이렇게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우리는 전시회장을 한 번 더 둘러보면서, 평소에 쓰던 물건들이라 필요할 때 아쉽다며 언제 되돌려받게 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타샤에게 선물로 받은 황동 찻주전자가 가장 아쉬웠다. 매일 쓰던 물건이었다. 전시회장에 걸려 있는 타샤가 그려준 생일 축하 그림을 보자니 그 그림이 걸려 있던 내 침대 위의 텅 빈 벽이 기억나서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타샤가 어른이 된 내게 어릴 적 내 모습을 담아 생일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었다. 그녀는 어릴적 내 사진을 본 적이 없는데도 놀랄 만치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내가 물으니 타샤는 재미있어하며 대답했다.


"육감 같은 거지요. 내 아이들을 갖기 전에도 소년, 소녀를 그렸어요. 신기한 것은 내가 첫 책에서 그린 아이들이 나중에 낳은 내 아이들과 똑같은 모습이었어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전시회를 준비하는 오랜 시간 동안 윌리엄스버그의 관계자들과 일을 하면서 타샤는 이들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은 집에 있는 것은 뭐든 가져가서 전시해도 좋다는 '백지 수표'를 받았다. 살아 있는 예술가로부터 이만큼 방대한 전시물을 모으기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또 작품과 그에 관련된 해석의 정확성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타샤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타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네요! 우리 모두 굉장한 일을 해냈군요."


타샤는 전시회에 대한 의심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떨친 듯 했다. 이제 승리를 만끽할 시간이었다. 대단한 몇 시간이 흘러갔다. 큐레이터들은 안도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타샤가 전시품들을 잘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경비원들은 미소를 지었다. 전시회 관계자들과 작품을 창조한 주인공이 함께 어우러지자 전시회장에는 축제 분위기가 흘렀다.


전시회를 통해 타샤는 아동 문학과 더불어 그것을 넘어선 장르에까지 반향을 일으킨 대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타샤의 업적이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삽화를 그렸고 글도 썼다. 그녀의 독자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녀의 책을 찾았다. 어떤 삽화가도 누리지 못한 영예였다. 어릴 때 읽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을 기억해서 자녀와 손자 손녀에게 사줄 수 있다. 하지만 타샤 튜더의 책은 어른이 된 독자들이 자신을 위한 책으로 구입한다.


삽화가로서 오랜 세월 빛나는 발자취를 남긴 타샤는 어느 편집자의 말처럼 '역사상 가장 존경받고 많은 작품들을 창작한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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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