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츠나구1

   
츠지무라 미즈키(역:오정화)
ǻ
리드리드출판
   
17800
2023�� 08��



■ 책 소개


보름달이 뜨는 단 하룻밤 허락된 만남, 오늘 밤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만약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제목에 나오는 츠나구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 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당장 츠나구에게 달려갈 것이고 누군가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소중한 순간을 위해 기회를 아껴 둘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상대가 있다. 살아있을 때 차마 건네지 못했던 진심 혹은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며 츠나구에게 만남을 의뢰한다. 돌연사한 아이돌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미처 화해를 하지 못한 채 죽은 친한 친구를, 실종된 약혼자를 만나러 간다. 만남을 앞두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차마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꺼낸다. 죽은 자와 단 하룻밤의 재회라는 소재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소설은 네 개의 만남과 츠나구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서로 엮이며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당신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을 망설이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곁에서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안타까운 오해로 내 마음을 잘못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도대체 왜 망설이는가?

■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
지바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독자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차세대 대표 작가. 2004년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2011년 《사자 츠나구》로 제32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2012년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사자 츠나구》는 저마다 사연을 품고 ‘츠나구’를 만나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엮인 연작소설이다. 여기서 ‘츠나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보름달이 뜨는 단 하룻밤, 죽은 자와 다시 만난 이야기가 담긴 판타지 미스터리. 고독, 가족애, 우정, 애달픈 사랑 그리고 운명이라는 주제를 감동적으로 풀어놓았다.

그 밖의 저서로는 《밤과 노는 아이들》, 《얼음고래》, 《아침이 온다》, 《파란 하늘과 도망치다》, 《슬로하이츠의 신》, 《오만과 선량》, 《호박의 여름》, 《야미하라》 등이 있다.

■ 역자 오정화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일본문화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외식기업 기획자로 근무했으나 일본어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퇴사 후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질문으로 시작하는 철학 입문》, 《알아두면 쓸모 있는 모양 잡학사전》, 《푸드테크 혁명》 등이 있다.

■ 차례
그녀가 아니었을지라도
내가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먼저 나를 배신했으니
기다리는 자는 시간의 흐름을 모릅니다
죽음 이후의 만남을 주선해 드립니다
작품 해설_소설가 혼다 다카요시

 




사자 츠나구 1


죽음 이후의 만남을 주선해 드립니다

“아유미, 내 후계자가 되어 주렴!”

아유미는 올해 할머니에게 심장 지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그전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건 고령에 따른 정기검진이라며 마음에 깊이 담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한 할머니가 담당의의 소개로 입원하게 된 것이다. 이 병원은 할머니가 아유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대학 부속 병원이다. 매번 진료받던 동네 병원이 아니라 멀리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했기에 할머니의 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유미가 병실로 돌아오자 할머니가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껍질을 깎고 있었다. 할머니가 다 깎은 사과 한 조각을 아유미에게 건넸다.


“아유미, 부탁이 있단다.”


할머니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는 짙은 빛이 감돌았다.


“너에게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을 물려주고 싶단다. 이미 일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입원하는 바람에 직접 보러 가기가 곤란해졌어.”


올해 일흔다섯이 된 할머니가 누구를 일로 만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뜨거운 음식을 식힐 때처럼 숨을 불며 말했다.


“츠나구라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네가 좋겠어. 아유미, 내 후계자가 되어 주렴.”


잠시 깜빡이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파란색 환자복 사이로 엿보이는 할머니의 손목과 목덜미가 너무 가늘었다. 할머니 입가에는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체념과 쓸쓸함 그리고 일종의 각오가 엿보였다.


“좀 전에 다녀가신 사다유키 할아버지가 점술사라는 건 알고 있지?”

“네.”


어렸을 적부터 아키야마 가문은 그런 집안이라고 듣고 자랐다. 할머니의 친정은 유서 깊은, 마을에서 영향력이 있는 가문으로 점술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오랜 세월 단골인 집안도 많고, 이름을 대면 깜짝 놀랄 만한 학자나 예술가, 연예인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부를 축적한 유복한 가문은 부모님을 잃은 아유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지원해 주었다.


“아키야마 가문의 일 중에 내가 물려받은 일이 있단다. 너뿐만이 아니라 네 작은아버지나 고모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만. 죽은 사람을 불러내 살아있는 사람과 만나게 해 주는 일이야.”


“네에?”


그 어이없는 말에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이 아니란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일을 ‘츠나구’라고 하지. 아유미, 네가 그것을 물려받았으면 한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손때묻은 낡은 노트 하나를 꺼냈다. 노트는 어디에서나 파는 브랜드의 흔한 디자인이었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노트 옆면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가지고 가거라.”


할머니가 아유미에게 노트를 건넸다.


“여기에 츠나구의 업무가 적혀 있으니 꼼꼼히 읽고 공부하려무나.”


갈색 표지를 넘기자,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첫 페이지를 본 아유미는 당황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사자 츠나구입니다.

츠나구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의뢰를 받습니다. 물리적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의뢰를 받고 돌아가 대상이 된 망자와 교섭합니다.


깔끔한 글자로 또박또박. 노트를 보는 사람이 애를 먹지 않도록 세부적인 부분까지 마음을 쓴 노트는 장난이나 거짓말을 위해 작성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성스러웠다.


***


“혹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할머니에게서 드디어 할머니가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병실 구석의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허공을 떠도는 듯 크게 울렸다. 할머니가 일부러 천천히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이었다.


“만약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게 힘을 받기 전인 지금 만나야 해. 아직은 내가 네 의뢰를 들어 줄 수 있어.”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나요?”


“그럼.”


할머니가 말했다. 아유미는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왠지 할머니를 쳐다볼 수 없어 손에 든 노트만 바라보았다.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은 걸까?’


정확히는 ‘누구’가 아니라 ‘어느 쪽’이라고 말해야 한다. 아유미의 주변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은 두 명뿐이다.


11년 전, 자택에서 죽은 어머니. 그리고 엄마를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아버지.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처음에 누가 말해 주었는지, 자신이 사건 현장인 그 집이나 호두와 월계수가 있는 마당에 돌아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지금의 기억이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최초 발견자는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몹시 우울해하는 아버지가 걱정돼,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아들네 집에 자주 방문했다. 그날도 나물 반찬을 많이 만들었다며 나눠 주러 왔다고 했다. 현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려다가 무심결에 창문으로 거실을 보았단다. 그리고 거실에 포개져 쓰러져 있는 아들 부부를 본 할머니는 마당에 놓인 대나무 빗자루로 창문을 깼다. 할머니도 그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목은 졸린 것처럼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어머니의 목이 아닌 손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어딘가 멀리 떠나려는 걸 붙잡으려는 듯한 자세로. 아버지는 어머니 위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있었다.


그날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현관이나 창문의 자물쇠가 모두 잠겨있었다. 현장을 휩쓸고 간 흔적이나 현금이나 귀중품에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외부인이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후 자신도 뒤따라 자살했다고 보고 사건은 피의자 사망으로 처리되었다.


작은아버지와 고모는 그럴 리 없다고 경찰에 호소했다.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았다. 아들인 아유미를 혼자 남겨 두고 그럴 리 없다. 혹여나 자살이라고 해도 혀를 깨물고 죽다니 너무 부자연스럽다. 두 사람은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며 사정사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살해 동기는 차치하고 현장 상황이 너무나 명확하다며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작은아버지 댁은 이후 혼자가 된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했기에 나는 앞으로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그러나 나를 지켜 주려는 환경 밖에서는 친하지 않은 친척이나 처음부터 아빠를 안 좋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끝도 없었다.


“사랑의 도피까지 하면서 결혼한다 한들 아내를 죽이면 다 끝이야. 본전도 못 찾지.”

“돌아가신 아버지도 편히 눈을 못 감겠네.”

“남겨진 아이만 불쌍하지.”

“남편의 바람이 원인이래.”


사건 현장인 거실에서 아버지의 가방은 열린 채 발견됐다. 가방 안의 물건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핸드폰도 통화하다 만 듯한 상태로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상황 증거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바람을 의심한 어머니가 아버지 가방을 몰래 훔쳐본 것일까?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욱해서 어머니와 말싸움을 하다가 살인까지 저지른 게 아닐까? 이것은 경찰의 견해조차 없는 소문인 상태로 내 귀에 들어온 이야기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어느 호텔에서 여성과 둘이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고 군더더기까지 붙어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싫증이 날 때까지 계속 퍼졌다. 그리고 나는 결국 살인 사건 속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식이 되었다.


***


“혹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할머니는 질문하면서 분명 머릿속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 동시에 사라져 버린 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진상은 물론 궁금하다. 하지만 누구와 만나야 한 점의 의구심 없이 그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진상을 알기 위해서라면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만나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살인자인 아버지를 만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차라리 어머니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같은 자리만 뱅뱅 도는 시곗바늘처럼 생각이 움직이다가 멈추었다. 만나서 어쩔 작정이지? 그런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올라 목구멍을 뜨겁게 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철들기 전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 그들 사이에 있었던 불길한 사건의 진상을 진심으로 알고 싶은 걸까? 애초에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부모를 만나서 어쩔 셈이지? 나는 정말 그들을 만나고 싶은 걸까?

***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병원에 남았다.


“그럼 시작할까?”


할머니가 보라색 주머니 안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손바닥 크기의 둥근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게 뭐예요?”


“이것을 소유한 사람이 츠나구란다. 거울이지.”


손으로 감싸며 거울을 감추듯 덮은 할머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직 보면 안 돼.”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무도 없는 식당을 망설임 없이 지나 자물쇠가 잠긴 입구를 열쇠로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중요하단다. 이제 츠나구의 본분에 대해 말해 주마.”


벤치 위에 하늘을 바라보도록 놓아둔 청동 거울은 간신히 달빛을 비출 정도로 희미한 빛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말거라. 알겠니? 자, 일단 츠나구는 이 거울을 사용해 망자를 불러낸단다. 단 그것은 소유자인 츠나구에게만 허락된 거야. 힘을 넘겨 줄 때, 새로운 츠나구는 거울과 계약을 맺지. 그리고 그 시점부터 전 계약자는 츠나구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단다.”


“네.”


“거울에는 항상 계약자가 있어야만 한단다. 만약 계약자를 잃으면 바로 다음 계약자를 찾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이어져 온 츠나구의 힘이 거기에서 끊기게 되거든.”


“책임이 막중하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너도 책임감 있게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한단다. 알겠니?”


“네.”


“계약한 이후에는 거울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 가족에게도 거울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나를 봐라, 감쪽같았지?”


“그러네요.”


이런 거울이 집에 있는 줄도 몰랐다. 할머니는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지만 더 가까이에서 거울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아까부터 경계하듯 나를 일정한 거리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단다.”


할머니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하는 내 눈을 할머니가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거울은 소유자 이외에 다른 사람이 보면 절대 안 된다!”


할머니의 말이 점차 느려졌다. 할머니는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거울을 보면 그 사람은 거울 소유자와 함께 목숨을 빼앗긴다.”


할머니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 하늘을 향해 있는 벤치 위 거울에 시선이 갔지만 허둥지둥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죽는다는 건가요?”


“맞아. 그러니까 이 거울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스스로 관리해야 해. 나는 시집올 때 누구에게도 거울의 존재를 말하지 말라고 배웠다. 몹시 위험하니까 남편인 네 할아버지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할머니가 긴장된 공기를 누그러뜨리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울을 본 사람이 목숨을 빼앗긴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거울 소유자까지 그때 죽는 거예요? 둘이 같이?”


“맞아.”


할머니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들여다보았으니 거울 소유자를 일단 초기화할 필요가 있단다. 거울의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으로 거울을 본 사람과 함께 목숨을 빼앗기는 거지.”


긴장한 탓인지 나는 절로 침이 삼켜졌다. 목에서 꿀꺽 소리가 났다.


“어떻게 죽나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실제로 옆에서 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하지만 분명 괴롭겠지.”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가 더 괴로워 보였다. 할머니가 잠시 시선을 떨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항상 거울에는 계약자가 있어야만 한단다. 오랜 기간 계약자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연이어 목숨을 잃지.”


“그렇게 무서운 물건이라는 걸 왜 이제 와서 알려 주시는 건가요?.”


“너에게 물려줄 때는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거울 소유자를 바꾸는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단다. 규칙만 잘 지키면 무서운 게 아니야.”


***


“조금 걸을까?”


병실을 찾아간 나에게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손자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설 뿐이었다.


“할머니가 츠나구의 힘을 물려주는 사람으로 저를 선택한 이유는 저를 아키야마 가문의 일원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죠?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부모님이 없는 제가 걱정되니까. 츠나구의 힘을 물려받으면 그것만으로도 아키야마 가문은 저를 내치지 않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도울 테니까. 그런 관계를 만들어 주려고 저를 츠나구로 선택하신 것 아닌가요?”


“아니라면 죄송해요.”


할머니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대답했다.


“할머니, 아버지에게도 힘을 양도한 적이 있지 않나요?”


할머니의 얼굴이 움찔했다. 허리를 곧게 편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외래어가 많은 메모는 분명 할머니보다 젊은 사람의 글씨였다. 아버지의 글씨체. 작은아버지 댁에 보관하던 아버지의 서류나 책, 유품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글씨는 할머니가 건넨 노트 속 글씨와 매우 닮았다. 그 노트를 물려받은 사람은 내가 두 번째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츠나구를 물려준 이유는 명백하다. 할아버지와 점점 멀어져 집에서 내쫓긴 아들의 처지를 걱정한 것이다. 아버지의 일이 궤도에 올랐다고는 해도 할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하게 비쳤을 것이고 며느리도 시아버지와 만날 수조차 없었던 상황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키야마 가문이 그 가족을 지켜 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닐까?


“전부 내 탓이다.”


이윽고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듯한 힘없는 목소리는 할머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아유미의 가슴에 묵직한 아픔이 퍼졌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듣고 싶고, 알고 싶기도 했다.


“네 말대로 네 아버지에게 츠나구의 힘을 물려주면서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츠나구의 힘과 역할에 관해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받았다. 사건 현장에는 아버지의 가방이 마치 어머니가 가방 안을 훔쳐본 것처럼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 당시 아버지에게는 좋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녔다. 어디 어디의 호텔에서 여자하고 둘이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일이라고 하지만 확실히 수상했다 등등.


그건 그 시나가와의 호텔에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달과 거울의 빛이 지나가는 길은 츠나구가 일을 수행하는 장소다.


“내 잘못이야. 아들에게 아내한테는 제대로 설명하라고 말해야 했어. 츠나구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내한테 오해도 받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죽을 일은 없었을 텐데.”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사이가 좋았단다. 그럴 줄 알았으면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아내한테는 말해야 했어. 의심 끝에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 무슨 안타까운 일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단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괴로웠을 거야.


***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괴로웠다. 나에게 츠나구를 물려주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할머니는 자신의 책임에 관해서도 모두 털어놓기로 계속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면 또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도 아키야마 가문도 예전부터 나에겐 한없이 친절했다. 그 덕분에 나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


내가 천천히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보니 자신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 손을 붙잡고 걸을 때 올려다본 할머니는 그렇게나 키가 커 보였는데, 이제는 내가 훨씬 크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아버지는 아마 자신이 츠나구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을 거예요.”


할머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것은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했다.


“할머니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얘기했을 거예요. 그것도 분명 츠나구가 되고 얼마 안 돼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의심할 리 없어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디까지 자세하게 말했는지는 모르죠. 어쩌면 절대 보면 안 된다고만 했을 뿐 거울을 들여다보면 죽는다는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츠나구에 관해 알고 있던 어머니가 아마 아버지 대신 거울을 사용하려던 게 아닐까요? 망자는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불러낼 수 없다는 규칙을 어머니는 분명 알고 있었을 거예요.”


“아.”


할머니의 얼굴에 무언가 깨달은 듯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충격을 받은 할머니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떨리는 목소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눈에 하얀빛이 드리웠다. 그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의 죽음은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반년 후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우울해하는 아버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며 이리저리 방법을 궁리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가 무너진 이유 중에는 어머니와의 결혼도 있었기에 항상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둘을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바라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아마도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려고 했던 거예요. 할머니가 사다유키 할아버지를 어머니와 만나게 해 준 것처럼 어떻게든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었던 거죠.”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세상을 떠난 후 소문으로 들은 부모님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살아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부모님의 죽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과거도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은 서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믿었기에 안타까운 엇갈림이 생겨 버린 것이다.


사망 후 부모님이 발견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으려는 듯이.


할머니의 눈은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의 주름은 눈물이 흐르며 한층 더 깊고 또렷해 보였다. 할머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므린 손가락으로도 막지 못한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는 할머니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입술을 깨물고 손에 힘을 실었다. 진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그것이다.


‘그렇죠, 아버지?’


고개를 들자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빛이 빗방울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실눈을 뜨자 태양 빛이 가늘고 길어졌다. 어렸을 적 기억을 채우는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란빛이 시야의 끝과 끝을 연결했다.


울음을 멈춘 할머니의 야윈 뺨이 눈물로 하얘졌다. 거기에서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