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고요한 섬김

   
인창수
ǻ
태인문화사
   
13000
2025�� 05��



■ 책 소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시작되는 책.”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요한 섬김』은 단순한 전기나 교회 이야기 그 이상이다. 이 책은 인간 프란치스코, 그리고 섬김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들려준다. 이 책은 화려한 수사나 교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교황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발을 씻기고, 침묵으로 기도하며, 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순간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과 연대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평생 강조했던 “나는 죄인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다. 이 고백은 교황이라는 무게 있는 이름보다, ‘한 사람’ 프란치스코의 진심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단지 그를 추억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고요한 섬김’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책장을 덮는 순간,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만나 참 다행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 저자 인창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책을 읽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믿음 하나로 40년 넘게 출판의 길을 걸어왔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독자와 연결하는 일을 해왔다. 책 한 권, 한 권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몇몇 책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은 대중적 글쓰기가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많은 저자들을 만나며, 더 많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애써왔다. 논리나 타당성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는 질문을 던졌고, 필요하면 수정을 요구했다.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누군가 내가 만든 책의 가치를 알아준다면 그것은 책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책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기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더 많은 대중적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책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 차례
프롤로그| 하얀 옷을 입은 사람, 세상을 품다
1부. 한 사람의 기도, 세상의 희망
2부. 섬김으로 이끄는 리더십
3부. 만남은 기적을 낳는다
4부. 고요한 믿음의 외침
5부. 프란치스코, 그 이름의 의미
에필로그| 뒷머리의 뒷모습
참고도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요한 섬김


한 사람의 기도, 세상의 희망

성베드로 성당에 울려 퍼진 첫 발자국

성베드로 광장 위로 밤이 내려앉고, 바람마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그날, 세상은 하얀 연기를 기다렸다. 전통의 굴뚝에서 피어오른 그 연기 한 줄기에, 수많은 영혼들이 희망을 걸고 있었다. 잠시 후, 성당의 중앙 발코니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어깨엔 하얀 망토가 드리워져 있었고, 얼굴에는 묘한 긴장과 온기가 동시에 어렸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플래시가 쏟아졌으며, 카메라는 숨 가쁘게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남자의 첫 마디는,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는 한 마디였다. “부오나세라” 그저 ‘안녕하세요’라는 저녁 인사였다.


하지만, 그 속엔 전례를 넘는 부드러움이 있었고, 권위가 아닌 친밀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곧이어 말했다. “여러분이 먼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 한 문장이 바티칸의 대리석 벽을 넘어,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다. 축복을 내리는 자리에서 교황이 우리에게 기도를 청하는 이 낮춤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시작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선 사람이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이름은 266대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였다.


자애로운 인품과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많은 존경을 받아온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가난한 이의 곁에 머무르고, 고통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그 이름 속에는 다짐이 있었고, 그 첫 발자국에는 눈물이 있었다. 그날 밤, 하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세상에 말없이 전했다. “나는 신이 아니라, 당신의 형제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동시에 울었다.


그 첫걸음은 교황이 된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순간이었다. 이 발자국은 권좌의 무게보다 기도의 떨림을 택한, 사랑의 발자국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황이라 불리다

그는 교황이 되자마자,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의 교황이 될 것인가?’ 수많은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자들이, 신학자들이, 성직자들이, 그리고… 이름 없는 이들이, 바티칸 담장 밖에서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말 없는 다수의 사람들, 그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높은 지붕 아래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기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세상을 끌어안은 쪽을.


바티칸의 교황청에는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빛나고,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세월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교황청 내의 전용 숙소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게스트하우스 ‘산타 마르타’로 들어갔다. 경호원들은 당황했고, 참모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함께 있는 법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방은 단출했다. 책상, 침대, 그리고 작은 십자가 하나. 가구의 수보다 기도의 시간이 더 많고, 외적인 위엄보다 내적인 침묵이 더 진하게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공동 식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식탁 위에서 주방 직원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았다. 사람들은 놀랐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고, 이내 그 자리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다. ‘오늘도 교황님이 오실까?’


그의 존재는 엄숙함이 아니라 따뜻한 기대가 되었다. 그는 고급 차량도 거부했다. 소형차를 타고 바티칸 안팎을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다. 수많은 플래시가 번쩍이는 순간에도 그는 옷깃을 여미며 조용히 웃었다. 세상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약한 자들을 향했다. 거리의 노숙자, 구호소의 난민, 벽 뒤의 죄수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교회의 관심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교황의 기도 안에 머물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고장 난 배와 같고, 내가 가장 먼저 손에 물을 묻혀야 한다.”


그 말은 단지 겸손한 비유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세상의 눈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곳에서 함께 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난한 사람들의 교황’이라 불렀다. 그 이름은 칭호가 아니라, 고백이었다. 그의 삶은 어떤 선언보다도 진실했고, 그 진실은 권위보다 깊고, 말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알려주었다. “진짜 리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먼저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교황과 소년의 포옹, 그날의 눈물

201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가정의 해’를 기념한 공개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가족들이 그 자리를 함께했고, 광장은 장엄한 예식과 축복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났다.


미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한 어린 소년이 제단으로 뛰어올라 교황을 끌어안은 것이다. 소년의 이름은 파올로 가브리엘리. 그는 당시 여섯 살이었고, 입양된 후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다. 사람과 시선을 두려워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힘들어했던 그 아이가, 수천 명의 눈이 쏠린 그 순간, 교황을 향해 달려간 것이었다. 순간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했지만, 교황은 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이 역시 교황의 의복 자락을 놓지 않고 한동안 그 곁에 서 있었다. 그 장면은 전 세계 생중계 화면에 담겼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울음을 삼켰다. 아이의 행동은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그 안에 본능적인 신뢰와,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소년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 옆에 앉고, 손을 잡고, 심지어 다른 내빈들의 의자에 앉아 보는 천진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 순간, 교황의 제단은 더 이상 의례의 공간이 아니라, 환대와 수용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을 입은 아이의 쉼터가 되었다.


그날 이후, 수많은 언론은 이 장면을 “교황직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준 장면”이라며 보도했다. 성직자와 아이, 제단과 거리, 권위와 신뢰, 그 모든 경계를 허문 포옹은 신앙의 핵심이 ‘가까이 다가감’에 있음을 조용히 증명했다.


파올로는 이후 안정적인 삶을 회복하며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많은 심리학자와 아동 전문가들은 그날 교황의 반응이 아이의 삶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 평가했다. 교황은 그 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한 동작이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 그날의 포옹은,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전해진 무언의 메시지였다. “당신은 환영받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섬김으로 이끄는 리더십

높은 자리에 있다면, 더 많이 꿇어야 한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사람들은 그의 옷차림을 주목했다. 화려한 비단이 아닌 단정한 흰색 수단, 황금십자가 대신 단순한 철제 십자가 하나, 그의 첫인사에서부터 세상은 무엇인가 달려졌음을 느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군중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 말하던 그 순간부터, 그는 권위가 아닌 기도의 자세로 세상을 이끌었다. 그는 종종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더 많이 섬기라는 뜻입니다. 높이 선 사람은, 더 자주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말로만 하지 않았다. 매일의 삶에서,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깃든 그 ‘무릎’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나라이자 종교의 중심지인 바티칸에는 오랜 전통과 규범이 있다. 교황은 리무진에 오르고, 전용 궁에 머물고, 시종의 도움을 받으며 오직 축복을 내리는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그 전통을 ‘사랑’ 이라는 잣대로 다시 썼다. 교황궁을 마다하고, 직원들과 함께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를 택했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던 주방 직원에게도 매일 아침 “부온죠르노!” 인사를 잊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묵은 방의 숙박비를 직접 계산하기위해 서류를 들고 사무실에 나타난 교황에게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들은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늘 작은 차를 타고 다녔다. 군중을 뚫고 지나가는 고급 차량 대신, 구불구불한 길을 조용히 지나며 ‘교황’이라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되기를 택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교황님은 우리를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눈높이로 와서 앉아 주십니다.” 한 신부가 그에게 물었다. “교황님, 리더십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마도… 무릎 꿇는 용기일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더 자주 무릎을 꿇고, 더 자주 기도하고 더 많이 용서하는 것. 거기서 진짜 리더십이 나옵니다.”


그에게 무릎은 단지 육체의 낮춤이 아니라, 영혼의 깊이를 상징하는 자세였다. 기도할 때 꿇고, 용서를 구할 때 꿇고, 상처 입은 이를 마주할 때 꿇었다. 그 무릎은 바닥을 닿았지만, 동시에 가장 높은 사랑의 자리를 보여주었다.


이 시대, 많은 이들의 권위를 말하고 힘을 말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용히 말했다. “무릎 꿇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바티칸이 아닌 거리에서 발견한 리더

밤이 내려앉은 로마의 거리, 가로등 아래 누군가 외투깃을 세운 채 조용히 걷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노신부 같았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가끔 사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갔다. 공식 일정 없이, 경호도 없이, 그저 바티칸을 나왔다. 조용히 도시를 거닐며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밤하늘 아래 들려오는 작은 신음과 고독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로마 중심가의 한 노숙인 급식소를 방문했다. 그는 간단한 식사를 함께 나누고, 이름도 묻지 않고, 직분도 맑히지 않은 채 그저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며칠 후 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은, “어제 오신 분이 교황님이셨다고요?”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날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외곽의 한 성당을 일반 신도들 사이에 앉아 고해성사를 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사제가 있는 고해소에 들어가 죄를 고백했고, 그 후에야 고해를 주는 자리에 앉았다. 그에게 ‘리더’란 먼저 앉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2015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행사를 마친 뒤 그는 혼자 성당을 떠났다. 이유도, 목적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밤늦게, 바티칸의 노숙인 쉼터를 찾아 조용히 앉았다. 그는 그곳의 난방 상태를 점검하고, 바닥에 깔린 매트 상태를 확인하고, 가만히 노숙인의 등을 토닥이며 앉아 있었다. 그는 말했다. “세상은 리더에게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들으려 합니다. 말은 쉽게 잊히지만, 들어주는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바티칸 바깥의 교황은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가 누군지 몰라도, 그의 손을 잡은 이들은 말했다. “그 사람은, 마음으로 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종종 리더를 무대 위에서 찾는다. 마이크를 쥐고, 군중을 이끄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무대 아래, 조용히 빈자리 옆에 앉아 있는 리더였다. 그가 세상을 바꾼 방식은 웅변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우는 자의 곁에 머무는 방식이었다. 


그는 ‘리더란 빛나는 이력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낮아지고, 얼마나 자주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인가로 정의된다’ 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인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곁에 앉아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그 이름의 의미

교황의 이름, 가난과 평화를 선택하다

2013년 3월 13일. 하얀 연기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 위로 피어오르자 전 세계의 눈과 귀는 하나의 질문에 쏠렸다. “새 교황은 누구인가?” 하지만 또 하나, 더 깊은 질문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이름을 택할 것인가?” 카메라가 성베드로 광장의 군중을 비추던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목소리가 전했다. “프란치스코.”


사람들은 놀랐다. 2000년 교황 역사상 처음 등장한 이름이었다. ‘요한’, ‘바오로’, ‘베네딕토’라는 익숙한 계보가 아닌, 가난의 상징, 평화의 순례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 이름을 택한 순간, 이미 그가 어떤 교황이 될지를 말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왜 그 이름을 선택했냐고 묻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교황 선출이 확정된 직후, 제 친구인 브라질의 한 추기경이 제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시오.’ 그 순간, 제 마음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것은 선언이었다. 교회의 방향, 리더의 중심, 신앙의 핵심이 ‘가난한 이를 향해 돌아가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난한 이와 병든 이를 위해 살았고, 동물과 자연조차 형제라 불렀으며, 무기를 들지 않고 적의 진영으로 걸어 들어간 평화의 사도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그 이름을 입고, 현대 교회의 길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청 안에 전용 숙소의 금실을 벗고, 산타 마르타의 평범한 방에 들었고, 리무진 대신 작은 차를 탔으며, 빈자의 손을 먼저 잡았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그를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그 이름은 매일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전히 가난한 이의 편에 서 있습니까?” “당신은 여전히 평화를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는 매일의 선택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그가 말한 ‘가난’은 단지 물질적 결핍이 아니었다. 관계에서 버려진 이들, 외로움 속에 있는 이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상태, 그가 말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음에 원한이 없는 상태, 대화가 시작되는 공간,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용기. 그 이름 하나로, 그는 교회를 바꾸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금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자신 안의 가난한 영혼으로 돌려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처럼 살아낸 사람이다.”


‘사랑하다’보다 더 깊은 ‘함께하다’

‘사랑해요.’ 이 말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가볍다. 말로는 쉽게 건넬 수 있지만, 그 말보다 깊은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남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말 없는 사랑’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랑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사랑을 ‘동행’으로 살아냈다. 한마디로 말하지 않아도, 그의 침묵과 시선, 손끝과 걸음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기뻐할 때보다 고통 속에서 빛난다.


2015년, 그가 한 병원 병동을 찾았을 때였다. 말기 환자들, 그리고 그들을 간병하는 가족들의 지친 눈빛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도 없고, 연설도 없던 그 공간에서 교황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을 아끼고, 손을 잡고, 눈을 맞췄다. 한 어머니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교황의 사랑이었다. 말보다 더 깊은 동행, 침묵 속에서 건네는 마음. “사랑이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선택이며, 사랑은 상처 옆에 앉는 것입니다.” 그는 자주 ‘경청’을 사랑의 첫 번째 언어라 말했다. 정작 사랑을 말하는 이들은 상대의 고통을 들어주지 않기에, 그는 ‘사랑은 말하기보다 먼저 들어주는 일’이라 정의했다. 


한 시리아 난민 아이가 교황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 아이는 부모를 잃고 말을 잃은 상태였다. 교황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꿇고, 아이가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날 그 아이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작게, 아주 작게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그 한 마디는 수많은 ‘사랑해요’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말보다 깊은 진심이 낳은 기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삶 안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수없이 말했다. “사랑이란,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은,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오래 기억되었다.


그가 건넨 사랑은 자리를 내어주는 식탁, 무릎 꿇는 리더십, 이름 없는 포옹, 그리고 침묵 속의 기도로 남았다. 그는 말없이 사랑했고, 그래서 그 사랑은 누구보다 깊었다.


우리에게 남긴 교황의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긴 사람이다. 그의 가르침은 특정 신앙을 넘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섬김, 겸손과 나눔을 실천했고, 우리에게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는 늘 “섬김은 힘보다 강하고, 사랑은 경계를 무너뜨린다”라고 말했다. 세상이 흔히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을 때, 교황은 반대로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임을 증명했다.


그가 남긴 가장 강렬한 가르침 중의 하나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울 바티칸 광장에서 그는 노숙자들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보도 놀랐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다가갔다. 교황의 행동은 세상의 벽을 허물고, 사랑으로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전통을 깨고 여성과 무슬림 청소년의 발을 씻어주며, 인류가 만들어놓은 차별과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는 경계를 만드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다리를 놓는가? 그는 늘 “종교가 우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의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와 경제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단순한 자선 활동을 넘어서 경제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배제하는 경제는 건강한 경제가 아닙니다.”


그는 부요한 자들에게도 “돈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경제 구조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가르침은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고, 일부는 그의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해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건넸다. 세계청년대회에서 그는 “삶의 한편에 정체돼 있지 마십시오. 원대한 꿈을 꾸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환경보호에도 닿아 있다. 그는 “지구는 우리의 공동의 집입니다. 우리는 것을 돌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환경보호는 단순히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메시지이다.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힘을 움켜쥐는가, 아니면 나누는가?’ ‘우리는 경계를 만드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다리를 놓는가?’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가, 아니면 그들과 함께하는가?’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선택하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작은 선한 행동이 세상을 바꿉니다.” 그 변하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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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