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틀에 박힌 모양으로 길들이려는 세상에 맞서
N차원의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따듯한 사고실험
이 책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며 어떤 실패도 패배가 아니므로 매 순간 충실히 몰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상은 우리를 ‘1차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1차원의 시선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므로 ‘N차원의 시선’으로 각자가 걸어갈 수 있는 수많은 갈래의 길들을 조명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N차원의 스스로를 찾아내는, 일종의 사고실험을 지속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주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과 타인을 각자의 길로 긍정할 수 있는 삶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일종의 따뜻한 사고실험이 아닐까. 이 따뜻함이 많은 이에게 전해져 새로운 차원의 시선이 계속해서 생겨나면 좋겠다.
■ 저자 김현철
저자 김현철은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그는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다. 어쩌다 선택한 물리학이 시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걸 깨닫고 물리학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핵물리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보훔 대학교 제2이론물리연구소에서 5년 동안 핵자와 강입자의 구조를 연구하였다. 1998년부터 부산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2008년부터 인하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방문 교수로 일한 적이 있으며, 일본 오사카 대학 핵물리연구소의 특임교수와 일본 원자력연구센터에 있는 고등과학연구소의 초빙연구원으로 지냈고,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한국 고등과학원의 겸임 연구원으로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핵물리학과 강입자물리학 분야에서 21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출판하였다. 더불어 물리학 교양서 ‘강력의 탄생’, ‘세 개의 쿼크’,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공저)’를 출간한 바 있다.
“우리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주의 나이에 비해 찰나처럼 보여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각자의 실패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작게는 개인의 삶을 ‘춤추는 별’로 만들 수 있고, 크게는 우리 사회에 다채로운 가능성을 되찾아 올 수 있다고 믿는다.
■ 차례
머리말
1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기까지
1. 길든다는 것 : 동종교배는 종을 무너뜨린다
2. 실패할 자유 : 시가 인생에 신의 한 수였음을
3. 내 안의 학벌주의 : 실력으로 이겨내겠다는 미몽
4. 값을 치를 준비 : 왕도는 없다, 그저 시도할 뿐ㅌ
5. 내가 갈 길은 어디인가? : 흥미가 있다면, 결국 일가를 이룰 것
2부. 혼돈을 품어야 별을 낳는다
6. 소심심고 : 잘게 쪼갠 뒤에 해결하라
7. 핵물리학이라는 속살 : 자연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하다
8. 핵자와의 만남 : 물리학에 눈을 뜨다
9. 함께하는 연구 : 따바리쉬의 마음
10. 스치는 바람을 잡다 : 기회는 햇살 아래 안개 같은 것
3부. 실로 어마어마한, 사람이라는 우주
11. 고통의 시작 : 새로운 스승, 새로운 배움
12. 반례가 되다 : 모두가 안 된다고만 했던
13. 과학하는 태도 : 클라우스와 막심과의 인연
14. 범재가 천재를 만났을 때 :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4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15. 제자라는 별 : 어떤 교수가 될 것인가?
16. 두 가지 약속 : 어떤 동료가 되어줄 것인가?
17. 뿌리 깊은 나무 : 첫 제자의 준비된 변신
18. 다섯 번째 쿼크 : 가르침의 실패와 희열
19. 소가 동그랗다고 가정합시다 :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20. 실패는 배신하지 않는다 : 물리학자의 가장 위대한 도구
5부. 진화는 반복된 실패의 결과다
21. 사람을 기른다는 것 : 가르치며 배우며
22.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 물리학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다
23.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 잠재력이 스스로 날개를 펴는 순간
24. 숨마 쿰 라우데 : 모든 변화는 한 사람부터
25. 진주가 생겨나기까지 :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감사의 말
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기까지
길든다는 것 : 동종교배는 종을 무너뜨린다
1998년, 부산대 교수가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같은 과 동료가 날 이렇게 일컬었다.
“인하대 나온 사람이 잘할까요?”
독일에서 8년 동안 지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 게 실감 났다. 쓴웃음이 나왔다.
인하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이마에 새겨 넣은 주홍글씨였다. 그에게는 당시의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의 대학 입시 성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해에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아 무너져 내렸다. 그토록 좋은 학벌을 지닌 정부 고위 관료들과 기업 대표들은 국제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나라를 이끈다는 ‘고학벌 엘리트’들이 무능한 데 다 책임감까지 없었으니 나라는 외환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삶이 고통스러운 만큼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리라고 여겼다. 거기에는 교육도 포함될 거라고 믿었다. 한 번씩 연구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IMF 사태를 이겨내고 나면, 우리도 좀 달라질 거야. 한 20년 쯤 지나면, 우리도 학벌 같은 껍데기보다는 알맹이에 집중하리라고 봐. 진짜 실력 말이야.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으니, 교육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내 예측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교사들의 폭력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폭력이 학생들을 옥죄었다. 패배를 경험한 부모들은 더욱 잔혹해진 경쟁으로 자녀들을 내몰았다. 학벌주의의 요새는 공고해져 계급으로 굳어졌고, 아이들의 꿈 따위는 단칼에 무시되었다. 어떻게든 명문대에 입학하고, 의대에 들어가고,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는 데 유리한 전공을 선택하는 것만이 지상명령이 되고 말았다. 외환위기의 고통은 오히려 더 나은 직업과 학벌을 획득해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 짓고 싶은 욕망을 강화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먼저 독일은 대학 간 서열이 없다. 단지 특정 분야를 잘하는 대학이 있을 뿐이다. 내가 학생으로 있었던 독일의 본 대학만 해도 수학과가 유럽 전체에서 내로라할 만큼 경쟁력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 내에 에너지가 꽤 높은 가속기가 있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볼프강 파울(Wolfgang Paul)이 물리학연구소를 이끌고 있어 핵물리학 분야의 명성이 자자했다. 응집물질물리학 분야는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잘하고, 입자물리학에서는 뮌헨 대학이나 함부르크 대학이 뛰어났다. 독일의 대학들은 학교마다 잘하는 분야와 내려오는 전통이 달랐고, 각 대학만의 문화가 있었다.
생물학에서 근교약세(Inbreeding depression)라는 말이 있다. 동종교배는 눈에 띄지 않는 곳부터 종을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면역력은 서서히 약화되고, 작은 변화에도 견디지 못한다. 같은 학교, 같은 스승, 같은 인맥이 빚어낸 폐쇄적 구조는 처음에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관용을 잃고 변화에 둔감해진다. 생각이 다르면 배척하고, 배움은 안으로만 굴절된다. 1997년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던 것도 2024년 자가당착에 빠진 한 줌의 엘리트들이 비상계엄 사태를 초래한 것도 동종교배가 한 원인이었다.
혼돈을 품어야 별을 낳는다
소심심고 : 잘게 쪼갠 뒤에 해결하라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은 대체로 혼란스럽다. 우주의 시작도 그랬다. 엄청난 대폭발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태어났다. 우주가 생겨난 지 단 몇 분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고 대폭발로 생겨난 에너지에서 물질이 생겨났다. 전자와 양성자가 생겨나면서 우주는 서서히 질서를 찾아갔다. 전자와 양성자가 만나 수소 원자를 이루고 거기서 다시 별이 태어났다. 수소 원자들이 핵융합을 시작하며 별은 빛을 발했다. 핵융합의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하는 별들도 있었다. 별의 잔해가 모여 다시 별을 이루고, 때로는 별 주위를 도는 남은 먼지 속에서 행성이 태어나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지구도 있었다. 처음 생겨났을 때 지구는 생명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역동의 시간이 필요했다. 별들의 잔해와 충돌하기도 했고 소행성과 부딪히기도 했다. 한번은 지독한 충돌을 겪으며 지구에서 달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지표면은 지진과 화산으로 요동쳤고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대기는 햇볕을 받아 달아올랐다. 대기 중의 산소도 충분하지 않아 사람이 살 형편이 못되었다. 그렇게 지구는 45억 년이 넘도록 혼돈과 혹독한 변화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인간이 살 만한 곳이 되었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시간의 축적만 다를 뿐, 태어나서 성장하려면 혼돈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혼돈을 품은 자만이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라고 했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혼돈은 필연적이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만 진학하면 모든 게 나아지리라고 막연히 기대하지만 정작 대학에 와서도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없으니 앞날이 불안하다. 어느덧 대학 4학년이 되면 졸업 후에 무얼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취직할 것인지, 사업할 것인지,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지 선택한 뒤엔 구체적인 진로를 정해야 한다. 고민을 거듭하며 내가 갈 길을 선택한 뒤에도 내 결정이 올바른지 의심이 든다. 게다가 인생은 대체로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의도치 않은 변수들이 등장해 앞길을 방해한다.
아무리 계획을 촘촘히 세워도 이 변수들 때문에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심심고라는 말이 있다. 소박한 마음으로 깊이 살펴본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박함이란, 이런 것이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면,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 작은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신중히 다루는 걸 의미한다. 소심심고를 구체화하면 아마도 미적분과 비슷할 것이다.
스티븐 스트로가츠(Steven Strogatz)는 ‘미적분의 힘(Infinite Powers)’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적분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복잡한 문제를 더 단순한 부분으로 나누는 데 있다. 물론 이 전략은 미적분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난 전문가들 대부분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여러 부분으로 나누면 더 쉽게 풀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제대한 뒤에 내가 맞닥뜨린 문제도 비슷했다. 앞날을 결정해야 했다. 취직과 대학원 진학,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취직을 하자니 공부에 미련이 남았다. 대학원을 선택하자니 과연 내가 업으로 삼을 만큼 공부를 좋아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학부 때 제법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력을 제대로 쌓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마음은 대학원 쪽으로 기울었다. 우선은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공부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는 직장도 찾지 않고 대학원에도 진학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공부하겠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졸업까지 했으면서 지금 뭐 하는 거냐”며 야단을 치시기도 했다. 아버지의 눈총을 버텨가며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했다.
일 년 넘게 날마다 책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능률은 오르지 않았고 진척도 빠르지 않았다. 이미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낙오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한 번씩 학교에 들러 대학원생이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는 여전히 뒤처진 것 같아 불안했다.
새롭게 시작하기 전에 무언가를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함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모든 걸 다 갖춘 뒤에 시작하겠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취직이든 대학원 진학이든 우선 결정해야 했다. 부딪혀 보기 전에는 문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혼자서 공부하면,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시행착오로 잘못된 경로에 들어 한참 동안 헤맬 위험도 있다. 고립된 채 보냈던 일 년은 실력이 느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사람이라는 우주
범재가 천재를 만났을 때 :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제2이론물리학연구소에 온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새로운 연구원이 연구소에 왔다. 그의 이름은 테루아키였다. 나와는 달리 이미 보홈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라 내가 공부하는 내용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테루아키는 박사과정 때 한 연구를 이어서 하는 것이라 바로 계산을 시작했다. 더구나 계산을 무척 치밀하게 하는 친구라 배울 점이 많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함께 일할 동료이기에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함께 논문도 몇 편 출판했다.
1995년 봄, 미국 뉴멕시코에 있는 산타페에서 ‘제7차 바리온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그곳은 미국에서도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숙박비가 비쌌다. 어느 날 클라우스는 날 부르더니 테루아키와 함께 바리온 학술회의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숙박비가 워낙 비싸니 테루아키와 같은 방에서 지냈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물론, 너는 한국 사람이고 테루아키는 일본 사람이니까 서로 앙숙이라는 건 잘 알아. 그래도 이참에 한 방에 머물면서 친하게 지내봐.”
그렇게 테루아키와 함께 산타페로 갔다.
내겐 첫 국제학술회의라 흥분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산타페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테루아키와 제법 친해졌다. 학회가 끝나기 이틀 전이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호텔 객실로 돌아와서 테루아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테루아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박사과정 때 참 힘들게 익힌 걸 넌 아주 손쉽게 익히는 것 같아 네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어. 그게 내겐 참 괴로운 일이었어.”
그러더니 테루아키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학벌 때문에 생긴 열등감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박사과정 때 얼마나 애썼을까 상상이 갔다. 테루아키는 열등감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안타까웠다.
열등감이란 무엇일까? 열등감은 교만과 한 쌍이다. 나보다 뛰어난 이에게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나보다 못한 이를 대할 때는 교만해지기 쉽다. 열등감은 학벌과도 깊이 관련 있다. 나보다 더 나은 학교를 나온 사람에게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나보다 못한 대학 출신 앞에서는 교만해진다. 한 발 떨어져 곰곰이 따져보자. 어떤 이들은 적당한 열등감이 있으면 열심히 하려는 동기를 부여하므로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내 속을 갉아먹는 열등감에 휘둘릴 필요가 있을까.
사실 보홈에 와서 막심과 파샤를 만났을 때 처음 느낀 감정도 열등감이었다.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많은 걸 알고 창의력도 넘쳐나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피폐해진다. 거기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나의 선생으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대개는 좋아한다. 선생을 거저 얻는 것이니 내게는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남을 가르치는 걸 귀찮아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내 속도를 유지하며 갈 길을 가면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가면 가치나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여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핵물리연구소가 있다. 1996년 2월 이곳에서 2주 동안 열린 겨울 학교에 참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무척 소중한 기회였다.
강의가 없던 어느 날 막심과 파샤, 그리고 둘의 지도교수였던 드미트리 디아코노프, 빅토르 페트로프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파티를 했다. 러시아의 파티는 한국의 옛날식 술자리와 비슷했다. 보드카를 마시고 기타를 치며 러시아 민요와 노래를 부르고 물리학을 논했다.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막심과 빅토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새벽의 가치나는 온통 눈으로 덮여 세상의 모든 소리마저 파묻힌 듯 고요했다. 달빛을 받은 새하얀 눈이 어두운 길을 환히 밝혔다. 우리는 말없이 눈길을 걸었다. 한참 후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론물리학 분야에는 에드워드 위튼 같은 천재들이 즐비한데, 연구하다 보면 기가 죽어요.”
빅토르는 깊이 생각하는 듯 말없이 걷더니 말문을 열었다.
“위튼이 하룻밤 사이에 낼 수 있는 결과를 우리가 한 달이 걸려 계산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야?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 한마디에 깊이 깨우쳤다. 이론물리학을 하면서 누군가와 비교하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비교하지 않으면 딱히 열등감이 생길 이유도 없었다. 비교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리학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살면서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값진 조언 중 하나였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두 가지 약속 : 어떤 동료가 되어줄 것인가?
내 연구실에 들어온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여러 학생 앞에서 강의하는 것과 달랐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정이 드는 만큼 갈등도 생기고 서로에게 상처받을 수도 있었다. 내가 연구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저들도 겪을 터였다. 학생들은 내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는 건너뛰고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몇 가지 원칙을 세워야 했다. 이제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학생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학생을 대하는 선생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처음에는 많은 원칙을 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칙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원칙은 두 가지였다. 학생에게 받을 약속 둘, 내가 지킬 약속 둘, 그것이었다.
내 연구실에 들어오겠다는 학생은 두 가지를 약속해야 한다. 첫째는 게으르지 말 것. 게으르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태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시스템의 차이를 설명했다. ‘시스템 1’은 의식적 개입 없이 빠르고 자동으로, 거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작동하는 반면에,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한 정신적 노력이 필요한 활동에 집중력까지 요구한다. 시스템 1을 작동하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시스템 2를 가동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나태에 빠진 이들은 시스템 2를 거의 가동하지 않는다. 게으르게 살다 보면 자신을 통제할 능력을 잃고 지적 게으름에 빠진 채 나날을 보내게 된다.
나태가 지닌 심각한 문제는 이렇다. 나태는 시스템 2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걸 배우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방해한다. 배우지 못하므로 잠재력을 일깨울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자기 속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음에도 단지 게을러서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더 큰 비극은 스스로 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가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걸 병식이라고 부른다. 우선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야 치료받을 수 있다. 게으름도 마찬가지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일단 자신의 게으른 상태를 알고 난 뒤에는 게으른 상태에 계속 머무를지, 아니면 게으름을 떨쳐내고 거기서 벗어날지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에겐 선택할 자유가 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떨쳐내야 할 게 게으름이다.
둘째는 교만하지 말 것. 교만함 역시 학문의 적이다. 학문에 첫발을 디딜 때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 교만함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박사학위란 자기 분야에서 혼자서 연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면허증 같은 것이지, 무언가 통달하거나 남들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는 증서가 아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야 학문을 제대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므로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C. S. 루이스는 교만함을 이렇게 일컬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아래를 바라본다. 그래서 결국 자기보다 위에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교만하면 성장을 멈춘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높은 산을 오르는 등반과 같다. 교만한 자는 정상에 이르지 못한 채 산 중턱에서 멈춰 아래만 내려다보며 자족한다.
학생에게서 두 가지를 약속 받았으니 나 또한 두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네가 내 학생으로 있는 한 절대로 널 연구의 수단으로 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째, 네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너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약속은 훗날 인하대로 옮기면서 마음에 더욱 깊이 새겼다. 내게 오는 학생들은 공부에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임을 명심하고자 했다. 내 연구실에서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항상 두 가지를 약속받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두 학생이 내게 배우려고 찾아왔을 때 정말 잘 가르치겠다고 결심했다. 첫 제자가 아닌가? 내 연구실의 흥망이 두 사람에게 달렸다고 여겼다. 그러나 두 학생을 가르치면서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해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선생도 함께 자라야 했다. 결국 선생이란, 함께 성장하며 학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두 사람과 함께 한 첫걸음은, 나를 성장시키는 첫 수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