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역: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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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0
2022�� 06��



■ 책 소개


코로나가 휩쓸고 간 세상에 보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마법 같은 위로

아내의 외도로 상처받고 바닷가를 찾은 소설가,
조기 퇴직 권고 불응으로 한직으로 빌려났지만 복싱에 빠진 중년 가장들,
인기 프로야구 선수 남자친구의 결혼 신청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나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걸 직감하고 잠수복으로 방호복을 대신한 아빠,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중고로 구입하고 이상한 내비게이션을 따라 여행한 남자

코로나의 재해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런 따뜻한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저자 오쿠다 히데오
따뜻한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력,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창조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소설가. 1959년 기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997년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로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2년 괴상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인 더 풀》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고, 같은 해 《방해자》로 제4회 오야부하루히코상을 받았다. 2004년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 2006년 《남쪽으로 튀어!》로 일본 서점대상, 2009년 《양들의 테러리스트》로 제43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도, 부조리한 세상에 좌충우돌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가치를 묻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포스트 하루키 세대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과 함께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일본의 크로스오버 작가로 꼽힌다. 주요 작품으로 제20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한 《오 해피 데이》, 제43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한 《올림픽의 몸값》, 이외에 《소문의 여자》 《침묵의 거리에서》 《나오미와 가나코》 《면장 선거》 《스무살, 도쿄》 《꿈의 도시》 《무코다 이발소》 《우리 집 문제》 《우리집 비밀》 《죄의 궤적》이 있다.

■ 차례
바닷가의 집
파이트 클럽
점쟁이
코로나와 잠수복
판다를 타고서

옮긴이의 말

 




코로나와 잠수복


코로나와 잠수복

다섯 살이 된 아들, 우미히코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건 바로 요 몇 주 전의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라는 전염병이 언제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에서 갑자기 순식간에 세계 전체로 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인류는 필요한 용건이 있는 이가 아닌 이상, 모두 외출 금지 혹은 자숙이라는 사상 초유의 생활 양식을 강요당했다.


그런 중, 35세의 회사원 와타나베 야스히코도 별다른 용건이 없어서 회사에서 재택근무 지시를 받았다. 온종일 집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보다 보니, 자연히 아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 지쳐 쓰러질 정도로 아리를 상대해줘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할무니한테 스마트폰 해줘”라고 말을 꺼냈다. 야스히코의 부모님은 본가가 있는 기후현에 살고 있다.


“할머니한테 전화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빨리 스마트폰이나 해!”


아들이 마치 직장 상사라도 되는 것처럼 명령하기에, 야스히코는 그 기세에 눌려 부모님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얼마 전 부모님의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놓은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모두 영상 통화를 쓸 수 있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손자와의 영상 통화에 활짝 웃으며 “우미히코, 잘 지내니?”라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아들은 이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할무니, 오늘 나가면 안 돼!”라고 크게 외치기만 했다.


“어? 그게 무슨 소리니?”

“할무니, 오늘 나가면 안 돼!”


아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야스히코, 얘가 왜 이러니? 무슨 일 있었어?”

“할무니! 내 얘기 좀 들어!”


야스히코를 밀치며 아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미안하구나. 무슨 일인데?”라는 어머니.

“오늘 나가면 안 돼!”


아들이 세 번째로 똑같은 말을 외쳤다.


“왜?”

“꼭이야!”


아들은 주먹을 꽉 쥐며 스마트폰 앞에 우뚝 섰다.


“어머니 오늘 어디 나가?” 야스히코가 물었다.


“응. 나가라에 있는 체육관 레슨실을 빌려서 합창단 연습을 할 거야.”

어머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안 가는 게 좋겠다. 게다가 밀폐 공간일 테고.”

“하지만 나한테는 한 달에 두 번 있는 즐거움인데. 합창뿐만이 아니라 아줌마들끼리 수다 떠는 것도 재미있고.”

“안 돼. 절대로 반대야. 어머니 같은 고령자는 감염되면 중증화된다고 뉴스에서 그랬잖아. 이번에는 좀 쉬어.”


어머니가 망설인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그때 아버지가 나타났다. 야스히코는 사정을 설명하고, 아버지에게도 외출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난 아무 데도 안 간다. 골프장도, 도서관도 다 문을 닫았으니까. 아이고 우리 우미히코, 잘 지내지?”

“할아부지도 나가면 안 돼!”

“오냐, 알았다. 우리 우미히코는 참 착하기도 하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 걱정하는구나. 할머니도 집에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어머니, 집에서 쉴 거지?”라는 야스히코.

“그래, 우미히코가 그렇게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지.”


어쩐지 어린 아들의 우격다짐에 밀리는 형태로 어머니는 외출하려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대화가 오간 다음 주, 어머니가 참석하기로 했던 합창단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왔다. 게다가 그 참여자의 가족한테서도 감염자가 다수 속출해서 집단 감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그때 깜짝 놀란 어머니에게서 전화까지 왔다.

“우미히코가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까지 코로나에 걸릴 뻔했어.”


어머니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듯 흥분한 어조로 정신없이 말했다. 그것도 감염자가 모두 아는 사람이어서, 한번 만나면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수다를 떠는 사이였단다. 즉,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어머니도 감염됐을 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근데 우미히코가 어떻게 내가 외출할 걸 알았던 걸까?”라고 당연한 질문을 입에 올렸다.


“그냥 우연 아니야?”라는 야스히코.


“아니야. 타이밍이 너무 딱 맞잖아. 한 시간이라도 더 늦었다면 난 나갔을 거야. 이건 신의 뜻이 분명해. 신이 우미히코한테 내려서 우릴 구해준 거야.”


야스히코는 어머니의 과한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지만, 자신도 그런 오컬트 같은 상상을 품은 건 사실이었다. 할머니한테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라고 외친 아들의 표정은 뭔가에 씐 것처럼 아주 절박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외출을 자제하라고 해도 어린아이가 하루 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야스히코는 딱 한시간만 아들을 밖에서 놀게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번 가던 공원으로 데리고 가 놀이기구로 놀게 하고 있는데, 철봉 앞에 선 아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더니 아예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다.


“우미히코, 왜 그래? 철봉으로 안 놀거야?”

“안 할 거야!”


아들은 높은 철봉을 마치 나쁜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노려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야스히코는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철봉에 매달려 잘만 노는데. 하는 수 없이 미끄럼틀로 데리고 가자, 거기서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천진하게 웃는 얼굴과 질러대는 환성은 평소와 똑같은 우미히코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근처 벤치가 비어서 거기에 앉으려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아들은 미끄럼틀 위에서 “안 돼!”라고 크게 외쳤다.


“아빠! 거기 앉으면 안 돼!”


야스히코는 그 황급히 낯빛을 바꾸는 아들의 태도를 본 적이 있다. 기후현에 사는 할머니한테 당장 전화를 하라고 했던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아들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야스히코가 있는 곳까지 후다닥 달려와 팔을 붙잡았다.


“이제 집에 갈래.”


야스히코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체 우리 아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고집이 셌던 걸까. 굳이 따지자면 우유부단한 성격이어서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말이 입버릇이었던 아이였는데.


그리고 다음 날, 공원 바로 옆 맨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왔다......


야스히코는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철봉과 벤치는 그 감염된 외국인이 만졌던 게 아닐까. 아들은 순간적으로 그걸 알아차렸다...... 어머니 일도 그렇고, 공원 일도 그렇고,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혹시 우리 아들한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탐지할 줄 아는 초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아내한테 그 말을 했더니, 현실주의야말로 지성이라고 믿는 그녀는 대번에 “뭐라고?” 하고 미간ㄴ을 좁히며 남편을 무슨 신기한 생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를 했다.


“매일 집에 있어서 힘들구나?”

“아니, 난 괜찮은데. 솔직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더 좋다고나 할까......”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 우리 직장에서도 창구 업무를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만 맡기고 자신은 서류도 안 건드리는 과장에다가, 자기만 자가용 차량 통근을 하면서 주차비를 경비에 슬쩍 끼워 넣는 부장에다가. 그런 비겁한 사람들이 얼마나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 난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바로 그걸 따질 생각인데 말이야.”


어쨌든 진상은 알 수 없어도 우미히코가 할머니와 아버지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지켜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우미히코, 코로나가 뭔지 아니?”

“응! 초코가 들어간 나팔 모양 빵이야.”


평소 같으면 그건 코르네(소라빵)라고 정정해줬겠지만, 상대는 다섯 살 아이여서 그냥 그만두었다. 코로나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는 듯했다.


***


“나가면 안 돼!” 아들은 강한 어조로 그 말만 반복했다. 야스히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자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까......?


“물러서, 물러서.”


아내에게 손짓으로 뒤로 물러서라고 지시한 후, 야스히코는 서둘러 거실을 나왔다. 복도를 따라 나아가서, 지금은 창고처럼 쓰고 있는 10평짜리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니, 여보 무슨 일인데 그래?”

“나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

“뭐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우미히코가 감지했어. 그래서 내 곁에 안 온 거잖아.”

“여보, 일단 진정하는 게 어때?”

“나는 지금 진정한 상태야. 우선 이 방문 손잡이부터 얼른 소독해. 그리고 어디서 방호복과 고글 좀 사 와.”

“방호복을 어디서 사? 뉴스에서는 그런 물건은 전부 품절중이라고 나오던데.”

“그럼 우비라도 괜찮아. 어쨌든 방호복을 대신할 게 필요해.”


1시간 후, 아내와 아들이 돌아왔다.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을 다 돌아봤는데, 방호복은커녕 우비도 다 팔리고 없어.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중고용품 가게가 보여서 거길 잠깐 봤더니 대신할 만한 걸 찾아서 일단 사오긴 했는데...”


털썩 하고 뭔가 놓이는 소리가 난다. 아내가 저 멀리 간 것을 발소리로 확인한 후, 야스히코는 문을 열었다. 발밑을 보니 그곳에는 옛날 영화에 나올 법한 구식 잠수복 세트가 있었다.



***


아무래도 아내가 사온 잠수복은 예전에 바닷속에서 건설 작업을 할 때 쓰는 용도인 듯했다. 상하의가 붙은 범포 재질의 옷에 고무 방수가 된 것으로, 그 외에도 둥그런 유리창이 붙은 둥근 헬멧도 준비되어 있었다. 시험 삼아 입어보니 마치 우주복 같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무거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격리된 방에 컴퓨터를 들고 들어와, 우선 아침 화상 회의부터 시작했다.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말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무슨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서 솔직히 밝혔다. 처음에는 동료들 모두 걱정스러워했지만 과장이 “괜한 착각 아니야?”라고 하자 다른 이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타나베, 조금은 밖에 나가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게 어때?”라는 과장.

결국 아무 일도 아니라는 취급을 받고 말았다.


“아빠, 밖에서 놀자.”

“알았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


야스히코는 서둘러 잠수복을 입었다. 신기하게도 이 꼴로 밖을 나다니는 것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지금은 긴급 사태니까 어쩔 수 없다는 당당함과 방역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다. 헬멧도 제대로 썼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발에는 긴 부츠를 신었다.


맨션 입구에서 마주친 관리인이 깜짝 놀랐다. 아들이 평소처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서 누군지 간신히 알아본 모양이다. 그는 대답도 없이 그냥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5분 정도 걸어서 평소의 공원에 갔다. 야스히코가 잔디밭 쪽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며 어른도, 아이도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있는 덕분에 경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야스히코는 아이와 둘이서 축구공을 패스하며 놀았다. 다른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완전히 구경거리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나자 경찰차가 나타나더니 경찰관이 두 명 내렸다. 누군가 신고했나 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야스히코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잠수복 안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초여름 태양 아래에 이런 꼴로 운동을 하면 누구라도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


야스히코는 잠복 기간이 무사히 지나길 기도했다. 자가격리 생활도 벌써 일주일을 지나려 한다. 무증상이라면 체내에 항체가 생겨 자연 치료가 된다. 인터넷으로 조사했더니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 중, 지역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x월 x일, 어디 계셨습니까?”라는 물음에, 야스히코는 달력을 살펴보다가 그만 얼어붙었다. 소프트웨어 강습을 받은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xx사 직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어제 PCR 검사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해당 직원의 이력을 검사한 결과, 일요일에 와타나베 야스히코 씨가 거의 1시간 동안 회의실에서 일대일로 강습을 받았다는 신고를 받았고요. 이 사실이 맞습니까?”


“아, 네. 맞아요.”


전화를 끊자 다시금 몸이 떨려왔다. 역시 아들의 초능력은 진짜였다. 아들이 감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아들과 임신 중인 아내까지 감염시켰을 게 분명하다. 곧바로 이번에는 회사 총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어서 야스히코는 아내에게 전화하여, 보건소에서 온 연락에 대해 보고했다.

“세상에, 정말?” 이번만큼은 아내도 크게 놀랐다.


야스히코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웠다. 그러자 온몸에서 땀이 샘솟으며 금방 속옷과 잠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속옷을 갈아입고 이불에 들어가니 또 땀이 났다. 평소 같으면 감기 증상이라고 치부하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자꾸 불안하기만 했다.


다음 날, 체온이 37.5도에 달했다. 야스히코는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저기 여보.” 문 너머로 아내를 불렀다.

“응, 무슨 일이야?”

“열이 올랐어. 37.5도야.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저기, 우선 감기약부터 먹는 게 어때? 일단 그렇게 상황을 좀 지켜보자.”


아내는 상황을 타이르듯 말했다. 야스히코는 문을 열고 버럭버럭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내가 코로나로 죽어도 좋겠냐느면서......


아내는 왜 저렇게 느긋하기만 한지. 원래 여자는 임신하면 담이 커지는 걸까. 자신이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어서 그런지. 더더욱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식후에 감기약을 먹자 곧 잠이 오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뜨끈했다. 관절도 아팠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어쩌면 폐렴까지 증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


야스히코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꾸벅꾸벅 졸며 의식 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밖에서 놀자!”

아들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는 아들의 얼굴이 있었다. 꿈인가? 아니, 꿈이 아니다. 방문이 활짝 열려 있다.


“엄마는?”

“없어.”

“없다고?”


야스히코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어쩌니, 이걸 어쩌지? 우왕좌왕한다. 일단 잠수복부터 입기로 했다. 헬멧도 쓴다. 더 이상 아들과 접촉할 수는 없다.


그때 아내가 돌아왔다.

“우미히코를 놔두고 어딜 간 거야?”

“그렇게 화내지 마. 애가 낮잠을 자고 있길래 그 틈에 얼른 물건 좀 사러 다녀온 거라고. 근데 무슨 일 있어?”

“우미히코가 내 방에 들어왔어. 나를 만졌고, 비말도 튀었다고. 그래서 밀접 접촉자가 됐어.”

“아, 그래?”


아내는 크게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야스히코와 아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아? 우미히코가 감염되면 당신도 감염돼. 그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저기, 일단 헬멧부터 한번 벗지 그래?”

“뭐? 벗으면 비말이 튀잖아. 그보다 당신은 왜 그렇게 느긋해?”

“내가 나가타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감염자가 반드시 남을 감염시키는 것도 아니고, 설령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무증상 상태로 항체가 생겨서 자연 치유가 된대. 중증자 이외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그러셨어. 지금 전국의 병원은 자기가 코로나 감염이 된 게 아닐까 의심하는 환자들이 밀려들어 의료 대란이 일어났다더라.”

“의심이라니. 난 감염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고, 보건소도 그걸 인정했다고.”

“그건 나도 알아. 어쩌면 감염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지금은 자연 치료가 됐다고.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

“뭐라고? 뭘 근거로 그렇게 단언하는 건데?”

“그거야 우미히코가 방에 들어와서 당신보고 밖에서 놀자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

“우미히코에게는 코로나를 감지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며? 당신에게 가까이 간 것도 이제 당신 몸에서 코로나가 사라졌다는 뜻 아니야?”


“여보. 체온 한번 재봐.”

야스히코는 그 말대로 체온을 재봤더니 평열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럼 문 열게.” 아내가 격리된 방의 문을 열었다. “이제 나와. 저녁밥은 같이 먹자.”


“그전에 밖에서 놀 거야.”

아들이 야스히코에게 매달리며 안겼다. 아내를 쳐다보자 그렇게 하라는 표정이었다.


“잠수복!” 아들이 잠수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스히코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입기로 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각별한 정감마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새삼스레 가만히 살펴보니 이 잠수복은 마치 호빵맨 인형 옷 같았다. 아하,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했던 거구나.


한 달 후, 야스히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항체 검사를 받았다. 회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즉, 야스히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무증상 상태에서 자연 치료가 됐고, 이제 몸속에 항체도 생성됐다는 뜻이다. 야스히코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내에게 말하자 “우미히코의 초능력은 진짜였나 보네”라며 다소 흥분한 태도로 말했다.


“근데 난 아직도 신기한데 말이야. 당신은 왜 그렇게 태연해? 임산부니까 남들보다 더 무서웠을 거 아냐.”


아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당신은 말해도 못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입을 열었다.


“배 속의 아이가 다 알려줬어. 아빠는 괜찮다고.”


부부는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서로 미소를 나누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아내의 말을 믿어야 하나.


“아이들은 이번 바이러스에 잘 안 걸린다잖아. 그러니까 인류는 멸망하지 않아. 영장류인 인간은 은근 강하다고. 괜히 몇만 년이나 자손을 이어온 게 아니야.”


우리 집에는 작은 구세주가 두 명이나 있다. 그중 한 명은 곧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류의 사슬이 또 하나 이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행복감으로 가슴이 그득하게 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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