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공허한가

   
멍칭옌 (지은이), 하은지 (옮긴이)
ǻ
이든서재
   
17800
2025�� 02��



 

■ 책 소개


너와 나, 우리가 맞닥뜨린 현대 사회의 초상화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삶의 의미를 잃고 온라인 게임에 빠지며, 외모에 불안함을 느끼고, 내 집 마련에 집착하는 시대. 우리는 모두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사회병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저자 멍칭옌은 이러한 문제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책은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 성과를 나열하는 대신, 우리의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는 13가지 사회 현상을 탐구한다. 외모 강박, 알고리즘에 잠식된 일상, 끊임없는 소비 욕망, 스마트폰 중독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사회학이 제시하는 관점과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사회학을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나 추상적인 이론을 내려놓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제를 설명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스스로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새로운 관점을 선물한다.

■ 저자 멍칭옌

 

중국 정법대학 사회대학원 박사 지도교수. 2003년 난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후 중국 정법대학과 칭화대학에서 각각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7월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법대학 사회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작 『원류: 사물의 기원과 발전』이 중국 대표 온라인 서점 당당왕에서 사회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팟캐스트 ‘동창시땨오’에서 「사회병리학」, 「산하기」 코너의 패널로 활동 중이다. 오디오 플랫폼 ‘히말라야’에서 진행하는 「인문 교양 상식 100강좌」의 사회학 코너를 담당했으며, 팟캐스트 ‘칸리샹’의 「현대세계 500년: 무엇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가」의 시즌1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 역자 하은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 통역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전자 중국 법인에서 동시통역사로 일했으며, 국내 유수 기업에서 출강 및 기타 번역, 통역 업무를 담당했다. 사랑하는 남편, 두 딸과 긴 중국살이를 마치고 조국에 돌아와 적응 중이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중국어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인생에서 8가지 일에만 집중하라』, 『상위 1%는 빨리 걷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1, 2』, 『호감 가는 말투에는 비밀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추천사 _ 당신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시간
프롤로그 _누구의 문제인가

1장 추상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1. 현대인의 공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
. 인생이란 먹고 죽으려고 사는 여정이다
. 삶의 의미,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 허무한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 삶, 누가 낸 문제길래 이리도 어려운지

2. 디지털 덫에서 탈출하기, 게임 중독의 심리
. 중독,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세팅된 습관이다
. 하나의 ‘신체 기관’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 허구와 진실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의 세상
. 가상 세계를 넘어서, 현실에 집중하기

3.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식민지
. 알고리즘, 조용히 우리의 삶을 잠식하다
. 알고리즘의 얼굴 없는 지배자
. 행위의 패턴으로 짜인 지배 시스템
. 우리 머릿속의 새로운 주인들

4. 우리는 어떻게 ‘트루먼 쇼’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
. 21세기의 새로운 ‘파놉티시즘’
. 예측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
.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하는 현대 사회
. 드러나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세계

5. 사이버 폭력, ‘키보드맨’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잔인함과 포악함, 진정한 현대성의 뿌리
. 맥락을 잃은 정보의 진실
. ‘탈맥락화’된 시대, 대중의 논리적 판단은?
. 정서의 파도 속을 헤매는 인터넷 민중

2장 현대인의 공허, 그리고 그 너머

6. 다수가 만든 외모의 올가미
. 얼굴, 현대 사회의 비언어적 언어
. 미용 산업이 만든 ‘표준화된 아름다움’
. 은밀하게 이뤄지는 다수의 폭정
. 매력적인 사람의 사회적 비밀

7. 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
. 타지를 향한 현대인의 동경
.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도장 깨기’ 식 여행
. 유목민의 파라다이스
. ‘주변’이 없는 삶,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

8. 집은 많지만 내 집은 없는 현실
. 집은 생산라인의 엔진이다
. 도구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쉼터
. 우리가 짊어진 시대의 짐, 집

9. 상아탑, 교육산업이 가공업으로 변한 이유

. 아름답고도 잔인한 오해에 관하여
. 기괴하고 잔혹한 대학의 현실
. 비의도적인 결과가 낳은 교육기관 현장
.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

3장 존재의 가벼움, 관계의 무거움

10. 필요와 욕망 사이, 소비가 묻는 질문
. 누가, 어디에서 쏘아대는 화살일까
. 생산과 소비, 현대 사회의 이란성 쌍둥이
. 느린 혁명이 가져온 결핍과 풍요
. 소비주의로 점철된 현대 사회의 민낯

11. 고령화 사회, 당신의 부모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이미 시작한, 곧 다가올 미래
. 고령화와 시스템의 위기
. 개인적인 선택이 된 출산
. 닫혀버린 관계, 세대의 틈

12.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유
. 우울은 인류 사회의 전염병이다
. 마음의 질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시대
. 긴장감, 현대 문명의 파생품
. 내가 사는 곳에 살아가는 타인

13 우리는 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지 못하는가
.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그리움
. 무의식중에 자꾸만 하게 되는 비교
. 삶의 여정이 오롯이 새겨진 나, 그리고 우리
. 인간은 과거를 짊어지고 앞으로 ‘기어가는’ 존재다

 

 




우리는 왜 공허한가


추상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현대인의 공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

삶, 누가 낸 문제길래 이리도 어려운지

현대인은 삶의 의미를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매개체'로 여긴다. 그러나 이 매개체는 수많은 사회적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상처를 받으며, 삶에 찌든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인생의 의미나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그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렇다고 다시 예전의 전통 사회로 돌아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형이상학적인 신성한 것에 인생의 의미를 둘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의 현대인은 삶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인류는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발을 들이고 일종의 '환멸 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살게 되면서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에 관한 이론을 펼치면서 현대 사회 속에서의 '직업'을 '천직'이라 칭했다. 이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베버는 현대 문명 속 개체가 직업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 버는 행위가 아니라, 신이 부여한 신성한 사명을 이행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삶의 의미가 바로 이 과정 속에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베버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사회학자였던 뒤르켐도 『직업윤리와 시민 도덕』에서 인류가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진입하면서 사회의 분업 체계가 나날이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 직업 적 커리어가 사람들의 일상 속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직 업이 실질적으로 시민 도덕을 양성하는 중요한 직책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종교는 교리를 통 해, 정치는 충성심을 통해, 혈연은 효를 통해 도덕을 길러내는 것처럼 시민 도덕은 직업을 통해 실현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사회학 이론 시간에 학생들에게 베버의 '천직' 개념에 대해 가르칠 때 있었던 일이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서양인들은 돈을 벌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의 사명을 실현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고 일한다는 뜻인가요?"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하려면 아마 현재의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N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베버의 이론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천직'이라는 개념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현대인의 운명을 예언한 셈이다 치열한 경쟁과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종종 '무기력함' 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효율 중심, 성과 중심'을 외친다. 이런 상황에 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종종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직업의 의미가 변질되고 축소된 모습은 현대 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혼이나 커리어는 물론, 삶의 모든 면에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사라져 없어질 신기루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그 환상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어떻게든 그 의미를 '구출'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에는 '비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문학파가 등장했다. 그들에게 이토록 부정적인 칭호를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는 겉으로는 길 위를 방랑하며 낭만과 자유를 만끽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려내는 듯하나, 결국 본질적으로는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현시대 사람들의 궁극적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종종 '지금, 현 재를 즐겨야 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현재'를 살아낸다는 건 무슨 뜻이고 그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미친 듯이, 1분 1초를 치열하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 아니면 집도, 결혼도, 아이도, 소비도 하지 않고 포기하고 살면 모든 근심과 번뇌가 사라질까? 다들 '진정한 나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체 '진정한 나'란 무엇일까? 만일 그 '자아'라는 것이 텅텅 비어있는 상태라면, '진정한 나'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위 '길 위에서'라는 표현은 사실 두 가지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길 위에 있는 모든 순간' 그 자체를 의미로 보는 해석이다. 이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실질적인' 문제로 바꾸는 것과 같다. 책의 서두에서 언급한 '먹고 죽으려고 사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곧 인생의 의미 그 자체라는 시각과 유사하다. 또 다른 해석은 길 위에 서 있는 것을 현대인의 보편적인 운명으로 보고, 시종일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행위 자체가 바로 삶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삶의 의미'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허용이 「종고루」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누가 낸 문제길래 이리도 어려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 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는 근본적으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 정답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공허, 그리고 그 너머

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도장 깨기’ 식 여행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은 삶의 의미를 '되찾는' 중요한 '출구' 역할을 한다.


"말하는 대로 떠나는 여행!",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살면서 꼭 가봐야 할 50군데!" 이러한 문구들은 여행사 광고나 항공권 프로모션, 호텔 특가 행사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렇다, 세상은 넓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곳을 꼭 가봐야 할까? 단순히 호기심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할까? 인생은 짧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곳을 꼭 방문해야 하는 걸까? 그냥 집에서 쉬면 안 되는 걸까?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자는 '욜로' 정신으로 풀어야 할 문제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의미'를 잊고, 그로 인해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삶에 의미가 꼭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전통 사회와 달리,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이 '의미'는 종교적 신앙이나 군주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대신 일상 속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물신 숭배'나 인간의 '소외'가 드러나고, 베버가 말한 종교 개혁 이후의 '천직' 개념은 사라졌다. 그 결과, 현대의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 의미에 따라 살아가며,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인은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논리는 '평등, 자유, 독립'에 있다. 이는 현대 문명 속 개인에 대한 일종의 '약속'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인은 이 약속을 지키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불만을 품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늘 직장생활에 할애해야 하므로,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느낀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와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지만, 삶은 자꾸만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아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이끌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다. 누군가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처자식이 삶의 이유이자 의미라고 말한다.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저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인 사람도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가 현대인에게 정해진 모범 답안이 없는 '열린 문제를 제출하다 보니 사람들은 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


현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표준화되고 프로세스화된 삶을 살아간다. 대다수 현대인의 삶은 패스트푸드처럼 맛보다는 열량을 채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장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가치'와 같은 건 뒷전이다. 치열한 경쟁, 빈번한 변화, 고강도의 삶으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자꾸만 '나 자신'과 '의미' 따위를 잊는다. 하지만 어떻게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대체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생존 상태와 마음의 구조가 현대인 내면의 '디폴트'라고 한다면, 최근 '도장 깨기' 식의 여행 방식이 유행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지, 가서 뭘 해야 할지에 관한 모범 답안은 없다. 그런데 현대인에게는 정보를 획득할 엄청난 수단과 무기가 있다. 블로그나 각종 여행 애플리케이션, 영상에는 현지 맛집은 물론 꼭 가봐야 할 장소, 심지어 여행 루트까지 세세하게 올라와 있다. 기술과 자본의 힘으로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야금야금 씹어 먹다 보면 그곳에 가지 않으면 뭔가 시대에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SNS에 올라온 유명 맛집이나 여행지는 그저 트래픽, 조회 수가 낳은 결과일 뿐이다. 물론 자본과 기술, 정보를 활용해 '후미진 곳'까지 새로운 여행지로 재탄생시키는 현대인의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요즘 관광지의 핵심은 그곳에 스토리가 있는지, 사진 찍기 좋은 곳인지, 조회 수가 많이 나올 수 있는 곳인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무언가가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SNS에서 유명한 핫풀이 되려면 그 장소가 사회적으로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보다는,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에게 얼마나 큰 매력이 있는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지, 그곳에 다녀온 걸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는 현대인에게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는 호기심은 수많은 동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보다 인증샷을 찍고 SNS에 올리면서 “나도 와봤어. 이게 바로 의미지.”라는 만족감을 느끼는 게 더 큰 목적일지 모른다. 그래서 불국사나 석굴암을 가도 그곳에 얽힌 문명이나 역사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모두가 똑같은 곳에 서서 사진을 찍고 그걸 SNS에 올려서 '좋아요'를 누르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무지함'이나 '허영심'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와봤다'는 동작과 행위 자체로 그들의 마음에 어떤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물건을 구매할 때도 '구매'라는 행위 자체가 '물건 그 자체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그걸 SNS에 올리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에는 어떤 기제가 작용하는 것일까? 인증샷을 SNS에 올린 다음부터 우리의 행복감과 만족감은 게시물에 달린 '좋아요' 수와 함께 덩달아 올라간다. 하지만 '좋아요'가 많지 않거나 멈춰 있으면 만족감도 서서히 사라진다. SNS에 게시물을 올려본 사람이라면, '좋아요'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여행을 자주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여행 자체는 인생에서 잃어버린 의미를 채우기 위한 일종의 '충전물' 역할을 한다. 수많은 유형의 충전물을 선택할 때, 미디어 기술과 영리한 자본의 감각, 그리고 현대인의 공허함이 마치 테트리스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진다. 매번 명절이나 연휴 때마다 곳곳에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된통 당하고' 온 사람들은 "내년에는 절대 어디 가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연휴 가 다가오면 이내 짐을 챙긴다.


여행이 비어 있는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은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작용한다. 여행은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현대 사회의 질서와 경제 사슬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좋고 나쁨을 따질 필요는 없다. 여행은 그저 현대 사회가 돌아가는 논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존재의 가벼움, 관계의 무거움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유

내가 사는 곳에 살아가는 타인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같은 감정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하며, 일상적인 논리로 관계를 형성하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음을 굳게 닫고,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감정 상태는 어쩌면 현대인이 흔히 입버릇처럼 말하는 보편적인 심리 상태일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 타인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종의 '희귀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는 심리적 질병이 마치 하나의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독일 사회학자 박스 베버는 "인간은 자신이 직조한 의미의 그물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을 언급할 때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베버가 강조하려 했던 것이 바로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주관적 의미는 타인에게 이해받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드러낸다.


문제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과 심리적 구조를 볼 때, 타인이 이제 희귀 아이템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주체 의식은 전례 없이 강하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점 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확연히 나타난다. 이론적이든 현실적이든 현대인은 자신의 삶에 대 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배권은 개인에게 신성성을 부여하며, 그 영역을 쉽게 침범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현대인은 '나의 삶'이라는 민감한 영역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고, 이를 보호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사람들 간의 관계에 경계를 세우고,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심지어 얼어붙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태가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거대한 시스템 속의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협력 아니면 경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소원하고 얼어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사실상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둘째, 현대인은 현실 속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자유롭거나 자주적이지 못하다. 각종 외부 규제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제한하며, 동료나 동종 업계의 '직업적 관계'만을 이어가게 만든다.


부부 관계조차도 법적으로 재산권과 권리를 보호받을 의무를 지니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점점 법이 규정한 대로 형성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은 외부 규정으로 보호를 받지만, 그것은 대개 인간의 행위만을 구속할 뿐, 마음이나 내면의 의지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이자 주관적 의지와 감정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마음과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그리워하고 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요구는 외부적 제약에 의해 제한된다. 즉, 인간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욕구는 현실의 규제 속에서 실질적으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편, 정보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미디어는 현대인에게 더 편리한 수단과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집'이라는 작은 공간, 즉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의 세계에서 자아를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자연의 법칙은 인간을 지탱하는 힘은 진실한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진실된 물리적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 즉 직접 체험하고 겪어본 것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우리가 쓴 맛을 아는 이유는 쓴 약을 먹어봤기 때문이며, 피곤함'을 아는 이유는 실제로 그것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부모나 친구. 배우자에 대한 마음이나 의지하고 싶은 생각 등도 모두 실제 공동의 생활을 하며 겪어본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모든 감정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겪어낸 '구체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현대 사회에서 등장한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은 많은 사람이 생활의 어려움이나 거대한 좌절을 겪으며 정서적으로 깊은 골짜기에 빠져 있을 때 완벽한 '가상'의 세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변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고, 심지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할까 염려한다. 그래서 이들은 갈대밭을 찾아 현실의 이름과는 완전히 다른 이름을 사용하거나 익명으로, 마치 '내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며, 현실에서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사람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지의 효과는 매우 단발적이고 연약해서, 부모나 친구들의 따뜻한 포옹 한 번보다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낯선 사람은 극도로 자기 보호적인 성향 속에서 형성된 '가상의 타인'이기 때문이다. 이 가상의 타인은 개인에게 무해한 위로를 전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나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염려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회적 고등 동물이다. 인간의 이러한 '고급스러움'은 복잡한 사회 분업 체제 속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교제와 관계, 그리고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사람 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타인'이 나의 세상에 들어와야 한다. 나를 이해해 주는 타인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고 긍정적으로 정의해 주는 존재이며, 영혼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타인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추상적인 자아의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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