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퍼센트 인간

   
앨러나 콜렌(역:조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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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22000
2016�� 02��



■ 책 소개


21세기형 질병에 해결책은 있는가? 
제2의 게놈, 마이크로바이옴이 밝히는 신비한 미생물의 과학 
 
2016년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배를 움켜쥐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 알레르기 비염으로 코를 킁킁대는 사람,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 사람, 자폐증 아이를 둔 사람, 불안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사람, 아토피 증상이 있는 아이를 위해 자극 없는 세제를 고르고 있는 사람, 체중 관리 때문에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끼고 사는 사람…. 이러한 질병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병에 대한 경각심을 심각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것들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1940년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몸은 살과 피, 뇌와 피부, 뼈와 근육 등 10퍼센트의 인체 세포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 90퍼센트의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자신은 하나의 개체가 아닌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진 하나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2의 게놈,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 몸속 미생물의 불균형이 우리의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더 나아가 정신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밝힌다. 또한 항생제 남용, 무분별한 제왕절개, 신중하지 못한 분유 수유, 항균 제품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우리 몸에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겨두었는지 이야기하고, 획기적 치료법인 대변 미생물 이식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논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지구 상의 선배인 미생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어떻게 그것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비로소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될 것이다.

■ 저자 앨러나 콜렌
저자 앨러나 콜렌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생물학 전공으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과 런던동물학회*The Zoological Society of London)에서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열대지방 풍토병에 걸린 적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를 누비는 동물학자로 박쥐 반향정위*echolocation) 전문가다. 과학자로서 <선데이 타임스 매거진(The Sunday Times Magazine)>에 기고하고, ARKive.org에 야생동물에 관한 글을 썼다. 또한 BBC 방송의 여러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채널에 출연했다. 

앨러나 콜렌은 이 책에서 우리 몸속 9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우리가 여태껏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미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미생물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이며, 미생물의 불균형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 역자 조은영
역자 조은영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천연물과학협동 과정 석사학위를, 미국 조지아 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에서 식물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아 대학교 식물학과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생물과학과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 차례
들어가며_ 미생물과 함께 살다 
머리말_ 나머지 90퍼센트 
제2의 게놈을 만나다/ 미생물과 한 팀을 이루다/ 충수와 자연선택/ 무균 쥐 실험/ 미생물이 하는 일/ 미생물과의 교감 

1장_ 정상의 탈을 쓴 21세기형 질병들 
미생물이 일으킨 감염병/ 죽음을 몰아낸 예방접종/ 깨끗한 병원과 식수/ 항생제의 발견/ 21세기의 새로운 ‘정상’/ 전염성 질병을 대체하다/ 어디서 21세기형 질병이 발생하는가/ 누가 21세기형 질병에 걸리는가/ 언제 21세기형 질병이 시작되었나 

2장_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 
어제보다 더 뚱뚱한 오늘/ 도대체 왜 살이 찌는가/ 세균 숲이 파괴되다/ 피터 턴보의 실험/ 게으른 사람이 비만이 되는가/ 니킬 두란다의 실험/ 아커만시아의 효과/ 그 이상의 원인을 찾다 

3장_ 뇌에 손을 뻗다 
숙주를 조종하는 미생물/ 앤드루는 왜 자폐아가 되었나/ 자폐증은 선천적인 것인가/ 장내 감염과 자폐증의 연관성/ 성격을 바꾸는 미생물/ 인간의 사랑에 관여하는 미생물/ 행복과 우울을 만들다/ 뇌와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노력/ 사람에서 사람으로 

4장_ 이기적인 미생물 
위생가설의 대두/ 미생물의 생존기/ 미생물과 진화/ 항생제 복용의 명암/ 미생물과 면역계의 협업/ 면역과의 거리를 좁히다/ 면역계를 훈련시키는 방법 

5장_ 세균과의 전쟁 
항생제의 쓸모/ 항생제 남용의 참혹성/ 외면받은 경고장/ 나도 모르게 먹은 항생제/ 항생제를 둘러싼 의심스러운 사실/ 항균으로 얻는 것/ 손 씻는 행위와 정신 질환의 관계/ 안 씻어도 깨끗한 사람들 

6장_ 먹는 대로 간다 
영양학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 현대 식습관의 변화/ 우리의 식탁에서 늘어난 것/ 우리의 식탁에서 사라진 것/ 체중 감량을 돕는 두 가지/ 착한 식단으로 돌아가기/ 미생물을 의식한 식단 

7장_ 엄마가 주는 선물 
아기가 제일 처음 엄마에게 얻는 것/ 제왕절개술 대중화의 함정/ 모유 속 미생물의 역할/ 분유가 질병의 확률을 높인다/ 미생물과 평생 함께 가라 

8장_ 제자리로 되돌리기 
자가중독 이론/ 프로바이오틱스의 이로움/ 대변을 통한 미생물 이식/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다/ 오픈바이옴의 출범/ 되돌리기 위한 노력 

맺음말_ 21세기에도 건강하게 
새로운 기회/ 사회적 변화/ 개인적 변화/ 선택 가능한 행복 

나오며_ 100퍼센트 인간 

참고문헌 
사진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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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 인간


정상의 탈을 쓴 21세기형 질병들

1978년 9월, 재닛 파커(Janet Parker)는 지구상에서 천연두로 목숨을 잃은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파커는 영국의 버밍햄 대학교에서 의학 전문 사진작가로 일했다. 파커의 암실이 의대 천연두 연구실 위층에 있지만 않았어도 그녀의 목숨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해 8월 어느 오후 파커가 전화로 촬영 장비를 주문하고 있을 때 바로 아래층의 천연두 연구실에서 공기중에 날아다니던 천연두 바이러스가 환기구를 통해 그녀의 암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를 치명적인 감염에 빠뜨렸다.


미생물이 일으킨 감염병

세계보건기구(WHO)는 무려 10년에 걸쳐 세계적인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행해왔고 마침내 그해 여름 천연두 바이러스의 근절을 앞두고 있었다. 예방접종이 천연두 바이러스를 궁지로 몰자 바이러스는 감염시킬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해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작은 피난처가 남아 있었다. 과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바이러스를 배양하던 페트리 접시가 바로 세계에서 유일한 천연두 바이러스의 번식처였던 것이다. 영국 버밍햄 의과대학교는 이와 같은 바이러스 보호구역 중 하나였다. 이 대학 교수인 헨리 베슨(Henry Bedson)과 그의 연구팀은 인간의 몸에서 사라진 천연두가 혹여 동물에서 발병할 가능성을 대비하여 천연두나 수두 바이러스 종류를 신속히 식별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었다.


재닛 파커의 운명은 그녀보다 먼저 죽음을 맞은 수천만의 운명과 같았다. 그녀는 ‘아비드(Abid)’라고 알려진 변종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아비드라는 이름은 8년 전 파키스탄에서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박멸을 목표로 집중적인 캠페인을 시작한 직후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한 세 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의 이름을 딴 것이다.


비록 천연두 바이러스는 산업화 국가에서 그 파괴력을 잃었지만, 미생물이 군림하는 포정의 시대는 20세기가 시작되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감염병은 가장 흔히 나타나는 형태의 질병이었는데 인간 본연의 사회성과 모험심 때문에 쉽게 퍼져 나갔다. 이들 중에서도 폐렴, 감염성 설사병, 결핵은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았다.


한때는 저승사자라고도 불린 폐렴은 처음엔 기침으로 시작하지만 곧 폐로 파고들어 호흡을 가쁘게 하고 고열을 일으킨다. 폐렴은 단일 원인이 있는 병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증상을 종합하여 기술한 병에 더 가까운데 아주 작은 바이러스에서부터 박테리아, 곰팡이, 그리고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동물인 원생 기생충 등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 폐렴, 감염성 설사병, 결핵 외에도 소아마비, 장티푸스, 홍역, 매독, 디프테리아, 성홍열, 백일해, 독감 등 수많은 전염성 질병들이 역사에 흔적을 남겨왔다.


이러한 재앙이 인간의 수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1900년도에 세계 평균 기대수명은 31세에 불과했다. 선진국은 그보다 나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겨우 50세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한 세기 만에, 그것도 겨우 10년 동안의 발전, 특히 1940년대의 혁신적인 항생제 개발로 인해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2005년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66세였으며, 가장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평균 80세의 고령에 도달하게 되었다.


21세기의 새로운 ‘정상’

이제 우리의 21세기 삶은 예방접종, 항생제, 정수 소독 기술, 병원 위생 덕분에 감염의 접근을 막고 무균 상태로 휴전을 맞이했다. 이제 급성 감염병의 위협은 예전만큼 크지 않다. 하지만 그 대신 지난 60년 동안 이전에는 흔하지 않았던 질환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봄이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 콧물을 흘리는 딸이 눈앞에 있다. 제1형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는 처제가 떠오른다. 늘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흔들고 남과 눈을 맞추려 들지 않던 동네 치과의사의 어린 아들이 알고 보니 자폐증이라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난다. 아토피 증상이 있는 아들 때문에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순한 세제를 고르고 있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촌 동생을 가족 식사 모임에서 만났다. 이렇듯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 소화 장애, 정신건강 질환, 비만이 바로 현대인이 생각하는 새로운 ‘정상’이다.


어디서 21세기형 질병이 발생하는가

이제 우리에게 큰 문제가 하나 주어졌다. 왜 이러한 21세기형 질병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질병들을 보면 모든 병을 아우르는 공통된 원인이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비만을 일으키는 환경 변화가 알레르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자폐증이나 강박 장애와 같은 정신건강 질환의 원인이 실제로 과민성 장 증후군 같은 소화 장애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는가?


21세기형 질병 간의 괴리감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두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알레르기와 자가면역 질환은 확실히 면역계라는 공통분모로 묶인다. 면역계는 인체에 일어나는 위협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그 능력을 교란시켜 면역계가 별것 아닌 것, 심지어는 자기 자신한테도 과잉반응을 보이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 범인을 찾아야 한다.


둘째,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증상 뒤에 감춰진 골칫거리, 바로 장 기능 장애다. 몇몇 현대 질병을 놓고 보면 장 기능 장애가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명확하다. 과민성 장 증후군과 염증성 장 질환의 중심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장이 있다. 다른 병과 관련해서는, 애매하기는 해도 여전히 연관성이 있다. 자폐증 환자는 설사를 달고 산다. 우울증과 과민성 장 증후군은 나란히 나타난다. 비만은 음식물이 ‘장’을 통해 지나가는 과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장과 면역계라는 두 가지 테마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의 해부학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장에는 인체의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면역세포가 존재한다. 약 60퍼센트에 이르는 면역조직이 창자 주변, 특히 소장의 끝 부분에서 맹장과 충수로 이어지는 구역에 밀집해 있다. 따라서 장벽을 따라 행해지는 면역계의 경계와 감시는 인체를 보호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며, 필요하다면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입자와 세포들을 조사하고 검역해야 한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외과 교수인 스티그 벵마크(Stig Bengmark)는 비만 확산의 진원지로 미국 남부 지역을 꼽고 있다. 벵마크의 관찰은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 정신건강 질환 등 다른 21세기형 질병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병이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지리적 위치만으로 질병의 증가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리적 위치는 단지 다른 연관성에 관한 실마리, 운이 좋다면 정확한 원인에 대한 단서가 될 뿐이다. 그런데 21세기형 질병들이 가장 명확하게 관련되는 지리적 특성은 바로 부富다.


1990년, 독일인들은 부가 알레르기에 미치는 영향을 자연스럽게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40년 동안 갈라져 지내던 동독과 서독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되었다. 동독과 서독은 지역, 기후, 그리고 인종까지 많은 것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서독 사람들은 전쟁 이후 번영을 이루어 서구 세계의 경제적 발전을 거의 따라잡은 반면, 동독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이웃 나라인 서독에 비해 훨씬 가난했다. 이러한 부의 차이는 건강의 차이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 뮌헨 대학교 소아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서독 어린이들에게서 알레르기가 두 배나 많이 나타났고, 그중에서도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은 세 배나 더 많았다.


소위 서구 질환의 증가는 더는 서구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성적인 질환은 부와 함께 찾아온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문명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서구 세계의 문제로 시작한 것이 지구의 나머지 반까지도 둘러싸며 위협하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것은 비만이다. 비만의 뒤를 이어 비만과 관련된 질환, 이를테면 심장병이나 제2형 당뇨병이 바짝 쫓아오고 있다.


흥미롭게도 부가 증가할수록 건강이 나빠진다는 공식은 부가 최정점에 이르는 순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게 된다.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은 만성 질환의 유행에서도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체중 증가와 알레르기는 사회의 가장 부유층에서 일어나는 반면, 선진국에서 비만과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빈곤층이다.



세균과의 전쟁

2005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생화학과 교수인 제러미 니콜슨(Jeremy Nicolson)은 논란이 될 만한 가설을 내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비만 현상 뒤에는 항생제가 있다는 것이다. 과체중과 비만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것은 1980년대 이후지만 오늘날의 비만 확산이 첫 조짐을 보인 것은 1950년대였다. 그런데 항생제는 비만이 확산하기 겨우 몇 년 전인 1944년부터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니콜슨은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니콜슨은 축산업자들이 시장에 내놓을 가축을 살찌우기 위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항생제를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약물이 어떻게 가죽의 생장을 촉진하는지, 또 항생제 사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먹을거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물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상황에서 닭이 먹는 모이 양에 비해 생산량은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에 축산업자들은 너도나도 가축에게 항생제를 주입하였다.


항생제의 쓸모

1999년에 뉴욕 출신의 전직 간호사 앤 밀러(Anne miller)는 아흔 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원래 그녀의 수명은 서른세 살이었으니 57년이나 더 오래 산 셈이다. 1942년 앤 밀러는 나이 서른세 살에 유산을 한 적이 있는데 코네티켓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연쇄상구균에 감염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밀러의 주치의는 뉴저지의 제약회사에서 개발 중인 신약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아직 아무에게도 처방된 적이 없는 약, 바로 페니실린이었다. 3월 14일 오후 3시 30분, 한 달이나 고열에 시달려 의식마저 혼미한 밀러에게 전 세계가 가진 전체 양의 절반인 한 티스푼의 페니실린이 주입되었다. 네 시간 뒤인 오후 7시 30분, 열이 떨어지더니 상태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앤 밀러는 항생제로 그 목숨을 구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로 항생제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부상병들을 시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기적적인 회생 스토리들이 대중에게 퍼지자 페니실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항생제의 발명으로 인류는 가장 오래된 원수이자 가장 무서운 적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예전에 항생제는 말 그대로 목숨을 살리는 약으로써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제 항생제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 평균 여성은 평생 총 70차례 항생제 처방을 받는다. 유럽 인구의 40퍼센트가 지난 12개월 안에 항생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


만 2세 이하 유아에서조차 항생제 복용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아이들의 3분의 1정도가 생후 6개월 이전에 처음으로 항생제를 처방을 받는다. 한 살이 되면 비율은 거의 50퍼센트 정도로 올라간다. 만 두 살이면 비율은 4분의 3이 된다. 선진국에 사는 아이라면 열여덟 살이 될 무렵 이미 평균적으로 10~20차례 항생제를 복용했다는 말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모든 항생제의 복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에서 처방되는 항생제의 반은 불필요하거나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많은 경우 항생제는 감기나 독감 환자에게 처방되었다. 감기나 독감 모두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질병이라 항생제를 처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바이러스는 건드리지도 못한다). 또한 대부분 감기는 목숨을 걸지 않아도 며칠 혹은 몇 주 뒤에 스스로 낫는다.


항생제 내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면서 의사들에게 처방을 신중하게 내려달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1998년에 미국에서 일차진료 기관의 의사들이 처방한 전체 항생제의 4분의 3이 중이염, 인두염, 부비동염(축농증), 기관지염, 상기도 감염의 다섯 개 호흡기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마 상기도 감염의 5퍼센트만이 실제로 항생제가 필요한 박테리아성 감염이라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의약품 사용에 대한 게이트키퍼(gatekeeper, 여기서는 유통되는 수많은 의약품을 환자의 안녕을 위해 제대로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옮긴이)로서 항생제 남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다고 본다. 그러나 환자의 무지가 의사들에게는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2009년에 유럽에서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 중 53퍼센트는 항생제가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47퍼센트가 항생제가 바이러스에 의해 야기되는 감기나 독감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복용하는 다량의 항생제 대부분은 확실히 불필요하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여전히 만연하는 감염성 질병이나 목숨이 달린 경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상황과는 대비된다. 목숨을 살리는데 쓰이는 약을 가벼운 병을 앓는 환자를 달래기 위해 남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항생제 내성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버틀러는 많은 과학자와 이사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우리가 곧 항생제가 발명되기 이전 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항생제 이전 시대란 수술 시 감염에 의한 사망 위험률이 높고 작은 상처에도 목숨을 잃던 시대를 말한다. 페니실린 발견 이후 알렉산더 플레밍은 항생제를 너무 적게 처방하거나 너무 단기간 처방하는 것, 확실한 이유 없이 처방하는 것 모두 항생제 내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여러 번 경고했다.


항생제 남용의 참혹성

플레밍은 옳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박테리아는 진화하여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보인 박테리아는 페니실린이 도입된 지 겨우 몇 년 만에 발견되었다. 1959년에 영국에서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보이는 황생포도상구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메티실린(methicillin)이라는 새로운 항생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겨우 3개월 만에 캐터링(Kattering)이라는 도시에서 이 박테리아의 새로운 돌연변이체가 나타났다. 이 돌연변이 균주는 페니실린뿐 아니라 메티실린에도 저항성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도 공포의 MRSA라고 알려진 ‘메티실린 저항성 황색포도상구균’이다.


그러나 항생제 남용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결과는 항생제 내성뿐만이 아니다. 크리스 버틀러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부작용이다. 버틀러와 그의 연구팀은 대단위 임상 시험을 통해 급성 기침을 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항생제의 이점을 테스트했다. 그 손해는 가장 흔하게는 피부 발진과 설사의 형태로 나타난다.


내성, 그리고 이차적인 피해라는 항생제의 단점이 하나로 합쳐지면 끔찍한 상황을 초래한다. 바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린 감염증(CDI)이다. 시디프는 장에 붙어 있으면서 독소를 분비하여 환자에게 극심한 복통과 함께 냄새가 지독한 묽은 설사를 일으킨다. 설사가 끝없이 나오기 때문에 탈수 증상이 일어나고 체중은 빠르게 감소한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 감염증의 발병률과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시디프는 새롭고 위험한 균주로 진화하면서 특히 병원에서 흔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화를 통해 새롭게 무장한 박테리아는 내성과 독성이 훨씬 강했다. 항생제 내성 외에도 시디프 감염이 증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항생제 남용에 일침을 가할 것이다.


원래 시디프는 사람의 장에서 별로 유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 박테리아다. 하지만 이것은 늘 틈을 엿보여 돌아다니다가 한 번의 기회라도 잡으면 위험한 존재로 돌변한다. 그런데 그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항생제다. 건강한 장내 미생물총은 시디프를 감시하면서 증식을 막고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는 지역에 가둬놓고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항생제, 특히 광범위 항생제 때문에 정상적인 미생물총의 균형이 흐트러지게 되면 감시가 소홀해지고 때마침 시디프는 이때다 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자리로 되돌리기<

프로바이오틱스의 이로움

우리의 장에는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수보다 1,500배 많은 박테리아가 우리 몸속에 있다. 100조 마리의 미생물은 약 2,000개의 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2,000개의 종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균주가 있고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유전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대체로 친밀하고 우호적이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결코 사이좋은 이웃은 아니다. 각 개체나 개체군은 영양분을 두고 경쟁하면서 영역 싸움을 벌인다.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기 위해 개체수가 많은 집단은 숫자로 몰아붙여 약자를 내쫓는다. 또는 화학전을 통해 침입자를 제거하여 영역을 사수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공격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런 적자생존의 치열한 전쟁터에 요거트 한 그릇을 밀어 넣는다고 상상해보자. 요거트 속에 들어 있는 한 무리의 이방인들은 요거트라는 이동수단에 탑승하여 우유 속을 헤엄치며 장으로 간다. 이 이방인 무리는 새로이 정착할 것을 찾아 헤매는 약 100억 마리 정도의 박테리아로 이루어졌다. 겨우 장까지 도착한 놈들도 정착하여 번듯하게 살 수 있게 되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한다.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뿐더러 친절한 이웃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가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해 걸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기대치부터 생각해보자. 프로바이오틱스는 항생제의 가장 불쾌한 부작용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항생제를 사용해 병원균을 제거하려다 의도치 않게 미생물총의 대량 파괴라는 이차적인 피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약 30퍼센트에 달하는 많은 환자에게 이런 미생물 살상의 결과는 설사로 나타난다. 이는 운 나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게 약을 끊으면 설사는 사라진다.


총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한 63개의 임상 시험에서, 실제로 환자들은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여 항생제 연관 설사가 일어날 확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했을 때 설사를 하는 사람이 30퍼센트라면 프로바이오틱스를 함께 복용했을 때는 17퍼센트로 줄었다. 유독 어떤 항생제가 설사를 일으키는지 알게 되면 그 항생제를 처방할 때 프로바이오틱스를 함께 처방하여 이러한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복합적인 병은 어떤가? 이미 몸속에 자리를 잡은 질환들에 대해서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어떤 효과를 보일까? 제1형 당뇨병이나 다발성 경화증, 자폐증처럼 완전히 몸을 장악한 자가면역 질환이나 정신건강 장애의 경우 프로바이오틱스로 효과를 보기엔 프로바이오틱스의 힘이 미미하거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버렸다.


학계에서 검증받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상표의 프로바이오틱스에 들어 있는 박테리아 종이나 균주들이 아토피나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하며 과민성 장 증후군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또한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의 기분을 호전시킬 뿐 아니라 임신 중 당뇨병을 예방하고 알레르기를 치유하여 심지어 체중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발견되었다. 이 질환들은 몇 주나 몇 달 만에 단번에 치료되지는 못하지만 프로바이오틱스를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분명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프로바이오틱스는 치료 목적으로보다는 예방 차원에서 사용했을 때 더 큰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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