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별 볼일 없이 태어났어도 별을 보며 가는 거다!
지금 필요한 삶은 ‘위대한 개인주의’
『단독자』는 10인의 구라가 빚어낸 예술과도 같은 책이다. 시대와 인생을 정면으로 관통하며 살아온 단독자들이 몸소 전하는 뜨겁고 단단한 메시지가 우리에게 성찰과 희망의 양식으로 다가온다. 크고 깊은 울림이 우리 삶을 조망하게 하고, 나 자신과 만나게 하고, 피해야 할 일과 걸어가야 할 길의 이정표를 보여준다.
오늘도 우리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정신적 공허함이나 불합리한 관계에서 오는 상처, 비정상적 사회 현실로 인한 분노와 절규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느낌이 든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본 것 같은, 그중 어딘가에 나의 별이 있을 것 같은, 나의 별을 보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힘들고 버거운 삶이지만 언젠가 나만의 절창을 터뜨릴 날이 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게 하는 책이다.
■ 저자 원재훈
시인, 소설가. 문학과 인문학의 뿌리인 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을 즐긴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망할 때, 그 절망을 안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홀로 견디며 자신만의 ‘성’을 쌓으라고 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 『원재훈의 작가열전』, ‘사기열전’의 인물들과 20세기 인물들을 연결하여 풀어 쓴 『남자의 인생』을 내놓았으며, 『단독자』는 그와 같은 인물 탐구의 연장선에서 세 번째로 집필한 책이다. 『망치』 등의 장편소설과 시집, 에세이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
■ 차례
저자의 말 - 영혼의 지팡이
이어령 - 시대의 화두를 제시해온 세상의 이정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주영 - ‘엄마’를 품고 ‘가난’을 노래한 문단의 거목
작가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한대수 - 소외된 자유의 가객
고독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찬 - 생명을 사랑한 눈물의 시인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유홍준 - 박제된 문화유산에 숨결을 불어넣는 이야기꾼
세상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방배추 - 변증법적 미학을 완성한 주먹계의 전설
진정한 인생의 승자는 누구인가
강신주 - 산과 시를 좋아하는 철학자
철학은 왜 필요한가
최경한 - 거리로 나간 현대 미술사의 산증인
가짜의 시대에는 무엇이 남는가
신달자 - 은유와 지혜의 인생 도서관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윤택 - 변방의 북소리를 울리는 예술계의 추장
‘위대한 개인주의’로 산다는 것
후기- ‘구라’의 육성이 듣고 싶었다
단독자
김주영 - 작가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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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주영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연유한 선생의 불우한 유년 시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가출과 방황, 일탈적인 행동으로 점철된다. 이야기책을 좋아해서 만화방에서 굴러다니는 만화책을 훔쳐보기도 하고, 어른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느라 군데군데 찢어진 소설책을 읽었을 뿐이다. 담배종이로 날아간 부분은 상상을 하면서, 책은 그렇게 남루하게 다가왔다. 가난하고 불우한 한 아이는 이야기가 좋았고, 어려운 자신의 처지에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학 공부라 할 수 있는 과정은 생략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자리 잡은 작가 김주영에게 소설을 쓰게 했을까?
"응어리지요. 응어리진 마음을 압니까? 불우한 환경과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응어리. 삶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응어리. 그 응어리가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문열, 이근배, 김원일 작가를 비롯한 모든 작가들에게 경우는 다르지만 응어리가 있을 겁니다. 작가에게 응어리는 작품의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응달진 마음, 누추한 기억, 분노와 한탄의 나날들, 그것이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고 주물러대면 응어리가 생긴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영감이 떠오르는 예술가의 운명이 응어리이다. 엄마가 응달진 마음의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선생에게 아버지는 무엇인가. 선생은 아버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선생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선생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재인데, 그래도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를 두들겨 패고, 매정한 분으로 내 곁에 잠시 머물다가 일찍 돌아가셨지요. 아버지에게는 별 영향을 못 받았지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한 번도 바라본 적이 없는 어른, 어린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몽둥이찜질로 나를 다스렸던 분이지요. 내 삶에 그런 영향을 미친 분인데, 그나마 일찍 가셨으니 나에게 아버지는 없다고 하는 편이 좋지요."
너무 무거운 기억을 꺼내시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모든 영웅들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객쩍은 소리를 했더니, 선생은 그런가 하시면서 허허 웃어버린다.
"어머니는 내 나이 일흔까지 곁에 있었지요. 내가 엄마에게 품었던 미움과 저주, 반항은 바로 나에게 자유를 주었어요. 바로 어머니의 선물이지요. 나를 소설가로 만든 겁니다. 물론 세상의 어머니는 여러 모습이에요.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라나 반가의 여인이 된 어머니가 있지요. 역경을 딛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도 있지요. 가난하게 살면서 고된 고생을 한 어머니도 있지요. 사람마다 어머니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마치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우리의 고향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고향이 돼버렸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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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선생에게 전업 작가의 길에 대해서 물었다. 어려운 시절, 글만 써서 생활한 선배 전업 작가가 후배 전업 작가에게 혹은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다. 선생은 우선 자신은 전업 작가로서 행운을 누린 경우라고 말했다. 많은 전업 작가들이 힘들게 살고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소설가는 작가이기 전에 생활인이다. 선생은 작가의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돈에 대해서 집착하면 안 돼요, 생활이 어려우니까 돈 생각나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돈에 집착하면 안 돼요. 부작용이 생겨요. 사람 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계산을 하게 되고, 책이 안 나가면 불안하니까 또 자꾸 책을 내게 되는 악순환이 됩니다. 그보다는 느리게 찬찬히 가야 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씩 내공을 쌓아가는 그런 인내심이 필요해요. 정말 돈을 만지고 싶다면 말입니다. 작품을 쓸 때 멀리 보고 가는 거지요. 느리게 천천히 한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책을 냅니다.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많고, 좋은 작품을 독자는 알아보지요. 저의 경우에도 최근에 낸 『빈집』과 같은 소설은 좀 서둘렀어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가요. 엄마』와 같은 경우에는 더 천천히 썼어요. 다 써놓고도 한참을 보고 또 보고 있어요. 베스트셀러, 상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해요. 오로지 작품에만 열중해야 합니다."
선생은 더불어 많이 쓰기보다는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어라,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문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풍습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 지적인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작가로서 오래 가는 비법이지요.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경험이 자꾸 쌓이면 소설가로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권했다. 세상을 읽어야 책도 읽히는 법이니까. 그런 말씀을 하다가 이런 못을 박았다.
"작가는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이념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여기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가기가 힘들어요.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의 딜레마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념의 기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로서 양심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념에 빠지다 보면 작가의 마음은 어느새 황무지가 됩니다."
한대수 - 고독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1
신촌 뒷골목 모텔촌 사이로 난 계단에서 올라가는 한 사내가 보인다. 그는 가파른 언덕길을 겨우겨우 가고 있다. 계단 중간에 벽을 짚고 두어 번 어이구 소리를 내면서 쉬었다 간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역광으로 어둡게 보이는 사내의 뒷모습이 좁은 골목길을 다른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이 들지 않고 새만 날아오는 깊은 숲속에 아름답게 불타는 단풍의 절정, 기어이 한 번 터지고 마는 소리꾼의 절창. 이런 이미지들이 어우러진다. 누추한 신촌의 골목길을 팝아트로 만들어낸 사내의 이름은 한대수. 가수 한대수다.
한대수 선생 연세가 이제 예순 여섯이다. 선생의 인생 오십 년간 계단, 이제 열네 계단 정도는 올라갔다. 그 길은 다른 길이다. 바람의 날개를 달았던 그의 어깨에는 두 딸이 있다. 환갑에 낳은 양호, 알코올중독자 아내 옥사나이다. 두 사람을 돌보는 일이 지금 한대수가 하는 가장 큰 일 중에 하나다. 북청물장수가 양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가듯, 그는 무거운 물동이를 메고 올라간다.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어떤 자극이나 영감을 얻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만들어진다. 수학공식처럼 정해진 형식도 없고 일정한 법칙도 없다. (…)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언어는 소외와 고독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음악을 한 것 같다. 작곡으로 내가 가진 고독과 분노와 갈망을 표현했고, 노래를 부르며 해소의 숨소리를 토해냈다. 창작 활동은 내게 나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을 찾으려는 출구이자 변명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년이 되어 사람과 절망,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면서 음악은 나의 또 다른 출구가 되었으며 고독의 방패가 되었다.
2
사람은 그가 사는 집을 보면 인생을 알 수 있다. 가난한 골방의 시인과 대저택의 재벌총수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가 머무는 공간에 의해 생활을 알 수 있다. 같은 식으로 한대수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대수의 젊은 날은 미국의 다락방과 한국의 별채로 정리된다. 다락방은 아버지, 별채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소외와 고독의 공간이다.
미국의 다락방은 실종된 아버지 한창석 씨를 다시 만나 몇 년간 같이 지낸 공간인데,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없는 소외의 공간이었다. 재가하신 엄마 집의 별채에서 다시 머물기는 했지만 고독한 공간이었다. 부모와 한 공간에서 지낸 경험이 없는 그는 바람에게 위안을 얻는다.
"내가 아버지, 엄마 이렇게 좀 불러보고 싶었어. 난 어려서 그 소리를 한 번도 못하고 자란 거지.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되냐고 물었어. 아주 어릴 때지.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면서 그건 안 되지,라고 하시더군…. 그래 그건 안 되는 일이지. 할머니를 엄마라고도 할 수 없었어. 아버지는 그런 거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아버지가 되면 자식을 돌봐야 돼.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식을 버려서는 그래서는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로 일세를 풍미한 한대수. 그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온 가객이다. 그의 출생과 성장의 통로에는 우리나라의 지난한 현대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우리 엄마 18살, 우리 아버지 19살에 결혼해서 일 년 후에 날 낳았어. 백일잔치를 하고 아버지는 스무 살 청년으로 서울대 공대에서 미국의 양호한 대학인 코넬로 갔는데, 핵물리학을 전공했어. 미국의 양호한 물리학자 에드워드 델리의 양호한 제자였지. 집안과 나라의 자랑이란 말이야. 이렇게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아버지가 연구를 하다가 실종이 되어버린 거야. 엄마는 19살 나이로 혼자가 된 거야. 그렇게 7년을 계시다가 재가를 하셨어.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살았는데, 어르신들이 대수가 청년이 될 때까지는 연락을 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나 봐. 사춘기에 그런 일이 있으면 아이에게 안 좋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엄마가 재가하신 나이가 그래야 스물다섯 살이잖아. 요즘에 보면 아직 애들 같잖아. 하하하. 엄마하고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하고 살아. 우리 옥사나하고도 사이가 좋아요. 옥사나는 영어로 말하고 엄마는 한국말 하니까, 고부 갈등이 없어요. 서로 무슨 말 하는지 모르거든. 우하하하."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실종 이야기가 나와 버렸다. 부친의 실종 사건은 핵 문제가 걸려 있어서인지, 한미 양국 간에 극비사항이다. 당신께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무서운 세월이 지나갔지만, 비밀로 남아 있는 기억은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싶다. 아버지의 실종에 대해서 한대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뭐. 지금도 핵 가지고 저 난리들을 치잖아. 그건 매우 불온한 국가 간의 일이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실종은 한국과 미국에서 아마 영원히 봉인되겠지. 그건 그렇고, 우리 아버지 엄마, 내가 딱 한 번 서울에서 모신 적이 있어. 헤어진 지 오십 년 만에 말이야.
그때가 말이야. 언제였더라… 그래, 1998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유니텔 락 콘서트 자리였는데, 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서 모시고 싶었어. 당신도 한국에 한번 오셔야 할 거 아니야. 이팔청춘에 미국으로 건너가 50년 동안 한국에 못 오셨는데, 이번에 내가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데 올 수 있냐고 했더니…, 오시겠다고 하시더군. 엄마에게도 내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지.
그때 아마도 아버지는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거야. 엄마도 아버지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시고 말이야. 그렇게 무대 뒤의 대기실에 우리 가족이 모였어. 그런데 말이야. 허 참, 엄마 열아홉, 아버지 스물에 두 분이 헤어진 거란 말이야. …엄마가, 칠순이 넘은 엄마가 아버지를 보더니 갑자기 열아홉 살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라고…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수줍어하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당신…, 옛 모습하고 똑같아요. 하나도… 안 변했네요."
아버지 역시 그런 말을 했다. 친부모 사이에서 아들이 통역을 했다. 아버지는 한국말을 잘 못했다. 지난 5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는 완벽한 미국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겨우 아버지를 찾았을 때 아버지는 인쇄업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한대수가 처음 아버지를 만났을 때,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거죽만 동양인인 아버지였다. 그건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한대수는 말했다. 그런 아버지가 엄마를 만나 오십 년의 세월을 다시 지웠다. 그때 한대수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럼 그 사진이 있겠구나 싶었다. 가족사진이 있는지 물었다. 한대수 선생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거 참, 그 사진이 한 장도 찍히질 않았어. 친구가 사진기 조작을 잘 못해서인지 필름이 헛돌아가서 인화를 해보니까, 전부 깜깜밤중이야. 그래서 우리 가족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 명색이 내가 사진작가인데, 우리 가족사진이 없단 말이야. 우하하하."
이것이 한대수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결국 가족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 참으로 기구한 일이다. 내 일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진다.
방배추 - 진정한 인생의 승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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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나라 주먹계의 전설이었다.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이들과 일대일로 주먹으로 겨루었다.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된 주먹이다. 방배추의 전설 중에 17대 1의 전설이 유명하다.
우리나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혼자서 수십 명의 깡패들을 때려눕히는 신출귀몰한 모습의 멋진 주인공이 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각목으로 내리쳐도 다시 일어나 상대방을 제압한다. 그래서 주먹을 쓴다 하면 "나 17대 1로 겨울바람 휘몰아지는 청계천 골목에서 애들을 손봐줬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구라의 원조가 바로 방배추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질문하니, 선생이 말했다.
"그날을 난 분명하게 기억하지…, 날짜까지 말이야. 크리스마스 이브였어. 주한미군 위로 방문차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한 날이었지. 엄동설한, 영하 20도 이하로 추운 날씨였어. 미국 대통령이 온다니까 서울 시내에 비상이 걸려서 경비가 삼엄했어. 장소는 을지로 6가였는데…, 지금하곤 달라 그땐 허허벌판이었어. 거기서 주먹 좀 쓴다는 깡패들 17명하고 붙었어."
"진짜 이기셨나요?"
"어떻게 이겨. 졌지."
"그럼…, 그 이야기는…."
"그게 바로 구라야. 난 졌어. 무참하게 얻어터졌어. 백기완 같은 친구야 100명이 와도 나한테 안 되지. 그런데 그놈들은 이른바 싸움꾼들이야. 전문가란 말이야. 전문가 열일곱 명을 어떻게 이겨. 어디서 한 방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가는 거야. 내가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도 아니고 말이야. 동네 개싸움이란 말이야. 룰도 법도 없어. 다구리로 달려드는데 어떻게 이겨."
"그러다 잘못 맞으면 절명하는 거 아닙니까?"
"나, 그때 죽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어. 사방에서 날아오는 주먹, 발길질에 기절했지. 귀 찢어지고, 입이 찢어졌어. 여기 봐봐. 이 코 안에 상처와 귀 찢어진 거 보이지. 구두가 입으로 날아 들어온 기억이 나. 그때 까무러쳤지. 그 자리에서 안 깨어나면 죽는 거야. 잠깐 죽은 거지 뭐. 누워 있는데 어디서 말 달리는 소리가 나더라고. 이놈들이 달려들어서 발길질하는 소리지. 을지로 6가, 전후 폭격의 잔해가 남아 있는 황무지에서 개처럼 맞고 죽었었지. 아마 난 그때 죽었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나봐.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아니면 순찰을 돌던 중이었는지 경찰의 손에 병원으로 옮겨져서 눈을 떠보니 환자 침상 위더군. 그렇게 살았어."
이것이 바로 17대 1의 전설이다. 사실 이 구라의 배경에는 주먹 세계의 변천사가 있다. 이 사건 이전에는 절대 다구리로 달려들지 않았다고 한다. 일대일로 대결을 하던 시절에서 방배추 을지로 사건 이후 다구리가 생겨났다.
구경꾼들은 방배추의 싸움이 싱겁다고 했다. 손만 대면 그 자리에서 상대방이 뻗어버렸다. 한 대면 끝나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가 단칼에 적을 베는 것과 같다.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퍼져서 한번은 부산에 놀러 갔는데, 두 사람이나 "나 몰라? 내가 경신 배추다"라며 선생 앞에서 호기를 부렸다고 한다. "허허, 정말 웃기는 일이야. 구라도 그런 구라가 없었지. 내 앞에서 나라고 하는데, 그럼 난 뭐야? 유명세라는 게 그런 거야. 짝퉁이 나타나야 진품도 같이 빛나는 거지. 그런 시절이 있었어." 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싸움이란 무엇인가? 선생은 웃으면서 싸움은 반칙이 원칙이라고 운을 뗀다.
"내가 보기에 싸움이란 건 타고나야 되는 게 있어요. 선천적인 요인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 후천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예를 들어 최홍만 같은 친구는 힘이 얼마나 좋아. 덩치도 크고 말이야. 그런데 격투기는 잘 안 되잖아. 격투기와 싸움은 또 달라. 싸움은 룰과 장소가 없어. 그냥 아무 데서나 붙는 거야. 싸움은 반칙이 원칙이야. 싸움에는 심판이 없어. 김두환이나 시라소니는 타고난 사람들이야. 세상살이는 경기가 돼야지 싸움판이 되면 안 돼. 반칙이 난무하는 그런 싸움판에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놈들이 승리하는 거야. 대신에 경기는 다르지. 공부하고 노력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싸움판 같은 세상이 싫어서 싸웠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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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추 선생이 매우 망설이면서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에 가장 큰 기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은 방배추가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에 일어났다. 조선일보 선우휘 선생이 어떤 사람과 같이 찾아왔다. 그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그건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여간 선우휘 선생과 어떤 사람이 제안을 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심복이 필요한데 배추 네가 적격인 거 같다, 그분 밑으로 들어가라, 이 고생 그만해라,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집 걱정할 필요 없다.
"그 자리에서 거절했어. 제안을 한 사람이 그러더군. 넌 소인배다, 네가 들어가면 주위에 있는 사람 여럿이 잘살게 된다, 자존심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버리냐. 그래 난 소인배지. 차라리 소인배가 낫지. 배신자보다는 말이야."
선생은 고문 이야기를 했다. 고문을 하기 전에 일단 그들은 야구방망이를 든다. 야구방망이에는 국산 거짓말탐지기라고 적혀 있다. 그들은 청와대를 향해 "각하,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복창하고 고문을 하기 시작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난 싸움꾼이라 몸이 강해. 그런데 고문을 견디는 인간의 몸은 없어. 언젠가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면서 뇌파 검사를 하는데, 고문 이야기만 나오면 뇌파가 일직선을 그리면서 멈춘다는 거야. 뇌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지. 그 기억이 너무도 힘들어서 몸이 지워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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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싸움꾼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어. 우선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유부녀의 남편이야. 그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놈한테는 지지 않아.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면 난 항우장사라도 이길 수 있어. 하하. 싸움은 하는 게 아니야. 주먹 자랑도 하는 게 아니지. 싸움에 일등은 없어. 단지 성실하게 사는 거야. 최고의 싸움꾼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거야. 그저 겸손하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키면서 사는 거야.
경복궁에서 야간 순찰을 하면서 지난 세월 여기에서 살았던 왕과 왕비, 뭐 대단한 사람들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걸 보지. 여기저기 나무가 있던 자리 있잖아. 원래 저기는 전부 건물이 있던 자리야. 모두 사라지고 나무를 심어놓은 거지. 조선의 왕들도 저렇게 가고 없는데, 나 같은 늙은이 하나 사라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오늘을 그저 열심히 사는 거야. 순찰 돌고, 운동하고, 밥 먹고…."
선생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절대 구라를 치지 않는데 구라라는 별호를 얻은 사람이고,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수컷이 아니라 이 시대를 가장 열심히 살아온 노동자의 한 사람이다. 사업가, 방랑자, 자상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가 좌파건 우파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 이제는 사라진 조선 범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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