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몸과 마음을 위한 심리상자

   
발렌틴 푸스터 외(유혜경 옮김)
ǻ
갈매나무
   
13000
2011�� 12��



■ 책 소개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6명은 스스로 중증 우울증인 것으로 느끼는 데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현기증이나 가슴 답답함, 숨 가쁨, 빠른 심장 박동, 호흡 곤란 등우울증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체 증상이나 통증이 우울증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지 피곤하거나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물리 치료나 약물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저자
발렌틴 푸스터(Valentin Fuster) -심장병 전문의이자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 심혈관과 과장이며, 스페인 심혈관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미국 심장협회와 세계 심장연맹회장을 지냈다. 심혈관 사고의 원인에 관한 연구로 1996년에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자’ 상을 수상했고, 2011년 5월에는 심혈관 연구의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인스티튜트 데 프랑스&&가 주는 ‘과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병 기관 네 군데에서 최고의상을 수상한 유일한 학자이며, 아스피린이 동맥에서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예방해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심장병학과 연구에관한 책인 『건강학』『과학과 생명』 등이 있다. 

루이스 로하스 마르코스(Luis Rojas Marcos)&nbsp& - 미국 뉴욕에서 정신의학과공중 보건을 전공했다. 현재 뉴욕 대학교의 정신과 교수이며, 뉴욕 의학회 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깨진 부부』『폭력의 씨앗』『우리의행복』『낙관주의의 힘』『자존감과 공존』 등이 있다. 

엠마 레베르테르(Emma Reverter)&nbsp& -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이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하였다. 

■ 역자유혜경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한서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통역번역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제회의 통역사 및 번역 작가로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자살한 양말』『너와 함께 자란다』『인간과 뇌에 관한 과학적인 보고서』『너만의 명작을 그려라』『침대 밑 악어』 등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감수문지현&nbsp&&nbsp&&nbsp&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부속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수료한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현재 미소의원 원장이며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저서로는 『십대답게 살아라』『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십대, 고수답게 싸워라』(공저), 『엇갈리는 사랑을 이어주는 사랑의 테라피』(공저)등이 있다. 

■차례
감수의 글 - 불안과 두려움을 그냥 가둬둔 채 넘어가고 있는가 - 문지현(정신과 전문의) 
서문 - 편안한 몸과마음의 비밀

1부 나를 짓누르는 강박증의실체
첫 번째 이야기ㆍ“엄마,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리고 있어요!”
심리상자 1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시작이다 
두 번째 이야기ㆍ산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심리상자 2 근거 없는 불안감의 정체
세 번째 이야기ㆍ“나는 큰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
심리상자 3 동지를 만나다
네 번째 이야기ㆍ“뚱뚱해 보이는 게 싫어요.” 
심리상자 4 육체와 정신의목숨을 건 싸움

2부 결핍이 만들어낸마음의 병
다섯 번째 이야기ㆍ“외로워서 먹었을 뿐이에요.”
심리상자 5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에 대하여
여섯 번째이야기ㆍ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자의 슬픔
심리상자 6 언제까지나 위로를 받고 싶은 속내
일곱 번째 이야기ㆍ누구나 겪을 수 있는우울증
심리상자 7 보통의 슬픔과 우울증을 구분하는 법

3부 중독의 늪에 빠진 사람들
여덟 번째 이야기ㆍ모든 것이 불만이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않다
심리상자 8 자신에게서 도피하지 않는 연습
아홉 번째 이야기ㆍ“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심리상자 9 성공보다소중한 것
열 번째 이야기ㆍ죽음보다 더 깊은 고통을 잊기 위해
심리상자 10 병은 삶에 대한 관점을바꾸어준다

4부 마음을 지배하는 관계의문제
열한 번째 이야기ㆍ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심리상자 11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라
열두 번째이야기ㆍ가족 간의 갈등이 가장 힘들다
심리상자 12 누구에게나 회복 탄력성이 있다
열세 번째 이야기ㆍ내 비밀을 절대로 들키고 싶지않다!
심리상자 13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열네 번째 이야기ㆍ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다루는 법
심리상자 14 타인과두려움을 공유하는 연습

5부 ‘나’를 만나는 시간
열다섯 번째 이야기ㆍ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무엇인가
심리상자 15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ㆍ일자리를 잃은 것인가, 세상을 잃은 것인가
심리상자 16현실 도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ㆍ어떻게 죽을 것인가
심리상자 17 죽음을 대하는 여러 가지 시선
열여덟 번째이야기ㆍ살아가는 법과 늙어가는 법
심리상자 18 건강한 자존감이 중요하다





불안한 몸과 마음을 위한 심리상자


결핍이 만들어낸 마음의 병

"외로워서 먹었을 뿐이에요."

18세의 대학생 제인이 내 진료실을 찾아왔다. 제인과 함께 온 부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인이 숨 쉬는 것을 힘들어하는 데다 제인의 주치의가 심장병 전문의를 찾아가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었다. 제인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박물관에서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인은 이들의 외동딸로 맨해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제인은 비만이었다. 그녀의 신체비만지수는 정상을 훨씬 웃돌았다. 제인은 최근 5년 동안 몸무게가 급격히 불어났으며, 그러면서 호흡 곤란 증세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운동을 할 때는 물론이고, 허리를 굽혀 구두끈을 매거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숨이 가쁘다고 했다.


제인의 증세는 뚱뚱하고 허리에 지방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지방이 많아지면 흉부에 공간이 적어지고 흉곽이 수축되며 횡격막(가슴과 배를 나누는 근육으로 된 막)이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숨 쉬기가 어려워진다. 흉곽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비만 환자들도 서 있을 때는 횡격막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호흡하는 데 크게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허리를 굽히거나 침대에 누우면 호흡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이런 자세에서는 횡격막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제인에게 비만 때문에 학교 친구들과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학교에서만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혼자였다. 과자와 음료수를 친구 삼아 텔레비전 앞에 내내 붙어 있었다. 그토록 사교적인 부모 밑에서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의 딸이 태어난 것이 신기했다.


제인의 아버지는 뚱뚱했고 어머니도 과체중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아버지는 40세부터, 어머니는 50세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쪽은 공교롭게도 형제가 각각 둘이었는데, 그들 모두가 정상보다 과체중이었다. 이런 경우는 나쁜 식습관이 체중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나는 제인의 비만 문제가 후천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에서 모두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인의 부모처럼 성인병에 걸리기 전에 제인 자신이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뒤에 심장 이상으로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전적으로 비만인 환자에게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고 치료에 결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환자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비만은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전적인 비만에는 소위 말하는 식욕의 문턱이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환자는 식욕을 채우려면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끊임없이 식욕이 솟아올라 웬만큼 먹어서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체중이 늘고 그와 더불어 자존감은 점점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

비만에 대해 환자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과 몸을 합리적으로 통제해나가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식이 요법을 꾸준히 지속하고 식사 시간을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제인에게 하루 세 번 식사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적어도 한 사람은 제인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딸을 도와주도록 부탁했다. 또 음식과 관련된 상황, 특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음식을 먹는 상황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다음으로 나는 제인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친구가 있으면 동기부여도 되지만 내성적인 성격도 개선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신체 활동은 심리적인 자극을 주며 훨씬 더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더 많이 돌보고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자신을 열심히 돌보는 사람들에게 간혹 이기적이라는 그릇된 딱지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가족과 사회에 공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려 드는 사람과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 전자의 사람들은 불안하고 지배적인 성격이거나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들이다.


심리상자 -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에 대하여

누구나 장기적으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많은 노력과 의지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일수록 그 성취감은 더욱 크다. 이때 가장 필요한 인간의 특성은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을 조절하는 실행 능력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며, 미리 대책을 세우거나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유지시켜주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런 실행기능은 점차 강화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자아와 욕구를 인식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나간다. 어른들에게 반복적으로 들어온 잔소리를 기준 삼아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정신적인 실행기능 덕분에 에너지를 조절하고 전략을 세우며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충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의식적으로 신중하게 선택한 결과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반사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려 하고, 자제력을 갖고 의식적으로 충동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기본적인 실행 능력이다. 예를 들면 체중을 줄이기로 결심한 사람이 패스트푸드점 앞을 지날 때마다 치즈버거의 유혹을 받아도,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실행기능이다.


우리의 실행기능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스스로의 능력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정서적으로 행복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합리적으로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삶을 꾸려갈 때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하루하루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고 여길 때에도 역경을 더 잘 극복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과 삶에 대한 만족감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모든 탄생에는 죽음이 뒤따른다. 이런 상관관계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의 유전자는 유한한 삶이 아닌 영원한 존재를 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대 수명을 연장해주는 건강한 습관을 기르는 일뿐이다. 어쨌든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행복해지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마음을 지배하는 관계의 문제

가족 간의 갈등이 가장 힘들다

뉴욕의 기업가인 빅토르가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59세였다. 빅토르는 혈압이 약간 높았다. 그의 아내인 클라우디아는 남편의 건강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내게 남편을 진료해달라고 했는데,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클라우디아는 빅토르의 두 번째 부인이었으며 9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빅토르는 뉴저지 주의 한 산업 지역에서 성장했다. 빅토르의 부모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고 그의 가족은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힘든 환경에서도 빅토르는 어릴 적부터 사업가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25세의 나이에 이미 직원 400명을 둔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뉴욕의 저명한 집안의 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 부부는 1남 2녀를 자녀로 두었지만 결국 빅토르가 50세가 되던 해에 이혼을 하는 것으로 관계를 매듭지었다. 이런 결정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내와 헤어진 빅토르는 클라우디아와 동거를 시작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와 결혼했다. 그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자녀들은 이 두 번째 결혼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클라우디아를 새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빅토르는 강하고 낙관적이고 지적이고 직관력이 뛰어나며,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재혼했으며, 두 딸과 아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심각하지는 않지만 혈압이 높아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남자였다.


그로부터 10년 후, 69세가 된 빅토르가 다시 내 진료실을 찾아왔다. 나는 그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옛 모습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고혈압이 점점 더 심해졌고 가족 간의 갈등 상황도 더 극심해진 것 같았다. 그는 패배한 사람처럼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을 클라우디아가 내게 설명해주었다.


"두 딸 중 하나가 몇 년 전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했어요. 그 아이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죠. 특히 빅토르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딸의 죽음에 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일체 말을 꺼내지 않아요. 그런 침묵은 마치 딸의 죽음을 부인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선생님, 빅토르에게 닥친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의 외아들도 코카인 복용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켰어요.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그 아들과 남은 딸은 빅토르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아요."


그렇다면 클라우디아와 자녀들과의 관계도 여전히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클라우디아는 내 추측을 부정하지 않으며 빅토르의 자녀들과 자신과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다고 말했다. 또 회사의 상황도 좋지 않다고 했다.


"빅토르가 그토록 힘겹게 세운 회사인데, 주주들이 그에게 은퇴를 요구했어요. 그러면서 더 젊은 사람에게 사장 자리를 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빅토르도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투자자들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막에는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죠."


한 시대가 끝나는 것

빅토르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가정과 회사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부터 해결해야 했다. 우선 나는 그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회사의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딸에게 맡기라고 했다. 또 회사를 세웠던 당시의 열정과 강도로 자선사업에 힘써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이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을 때였다.


가족의 재탄생

내가 만나는 60~70대 정도 되는 환자들 중에는 가족 간의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갈등은 그 연령대의 사람들에겐 아주 흔한 일이다. 그전까지는 수면 아래에만 머물다가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부모가 전보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이 되었을 때 터지는 잠재적인 문제인 경우도 있다. 그 연령대의 환자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자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으레 가족들끼리 논쟁을 하기 시작한다. 그 논쟁은 힘이나 지배력의 논리에 의한 싸움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빅토르의 경우를 통해 나는 아무리 뿌리 깊은 가족 간의 갈등에도 반전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빅토르는 현재 자선사업에 협력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정신의학 연구에 할애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딸의 죽음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비슷한 슬픔을 안은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돕는 여러 기관과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빅토르는 아주 관대해졌으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리상자 - 누구에게나 회복 탄력성이 있다

역경을 견디고 극복하는 능력

빅토르는 너무나도 강하면서 동시에 약한 사람으로서 정신적 외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부부 생활의 파탄과 그로 인한 가정의 해체, 마약에 중독된 아들과 딸의 죽음, 그리고 리더십의 붕괴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의 사임 등이었다.


나뭇잎에 나무에서 떨어질 때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삶의 균형을 깨는 예기치 않은 불행들은 자주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꿔 놓는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불행을 이겨낼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이런 역경을 견디고 극복하는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 탄력성은 개인적인 능력이며 선천적인 요소와 후천적인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능력은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며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환경과 사건을 느끼고 판단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의 본질과 심각성은 차치하고, 그 경험이 주는 충격은 우리가 그 사건에 부여하는 주관적인 의미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각자가 지닌 회복 탄력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역경을 극복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해로운 요소는 무력감이다. 역경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 자신이 무슨 일을 해도 상황은 변하지도 좋아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냉담하고 패배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다. 결국 그들은 빨리 포기해버리고 만다. 무력감을 느끼며 도움의 손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더 위험한 상태로 들어간다. 나약한 감정과 좌절감이 깊어지며, 의욕과 희망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을 통제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존감을 공격당했을 때 더 잘 견디며, 단호하고 효율적으로 문제에 직면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스스로 지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갈망을 도전으로 바꾸려고 애쓰게 되고, 우리의 능력을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앞길을 막는 장애도 극복하게 될 것이다.


빅토르의 삶의 굴곡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살면서 만나게 되는 통제 불능의 역경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회복력에 감탄하며 위로를 얻게 된다. 인간이 가진 이런 놀라운 회복 탄력성 덕분에 사람들은 끔찍한 불행을 겪어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게 역경을 극복해낸 후에 타인들과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진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자기 자신에게서 이전까지는 몰랐던 창의적인 면이나 이타심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일상이 주는 사소한 행복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된 사람도 있다.


"위기에서 기회를 만나는 비결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좋은 일이 기다린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이 속담은 바로 회복 탄력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외상 후 성장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만나는 시간

일자리를 잃은 것인가, 세상을 잃은 것인가

팀은 55세의 기혼남성으로 이미 성인이 된 세 자녀(32세, 30세, 28세)를 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부인과 함께 내 진료실을 찾았다. 몇 개월 전 그의 주치의가 심방 세동(부정맥의 일종으로 심방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면서 불충분한 수축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이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걱정이 된 나머지 다른 전문의의 의견도 듣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팀은 최근에 음주량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혹시 자신의 문제가 알코올 때문인지 궁금해 했지만,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아내가 설명해주었다. "남편은 1년 전에 해고를 당했어요. 회사의 인사과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왔는데 말이죠. 회사는 사전에 예고도 없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당신도 많은 구조조정 대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라고 통보해왔어요. 그날 팀은 밤새도록 거실 쇼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텔레비전만 봤어요. 그 뒤로는 신문도 읽지 않고, 먹는 것도 잊은 것 같았고, 잠도 거의 자지 않았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점점 어려워하기 시작했어요.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 화면만 응시한 채 맥주 캔만 계속 비워대는 날들이었죠. 또 어떤 때는 코냑을 마시면서요."


팀의 아내가 말한 것들은 팀의 우울증 증세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팀은 술을 과도하게 마신 탓에 심방 리듬 장애가 생겼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이유는 우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우울증이었다. 그에겐 정신과 도움이 필요했다. 그의 우울증을 치료한다면,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팀에게 믿을 만한 정신과 의사를 추천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실직에 노출되어 있다. 기업의 이동(합병, 인수, 구조조정)이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일자리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또 누구나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해고, 명예퇴직 혹은 오랜 직장 생활 후의 퇴직 등……. 그러므로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우리 스스로가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해주는 다른 통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자원봉사다. 오랜 경험과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가지고 사회를 돕는 일 말이다.


팀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맡은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심리요법과 약물로 그를 치료했다. 팀의 아내도 팀의 치료를 옆에서 도왔다. 그리고 몇 개월 후부터 팀은 한 재단을 돕기 시작했다. 할렘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건강 습관을 가르쳐주는 활동을 하는 재단이었다. 그는 또 알코올 중독자 협회에도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습관적으로 맥주를 마시다가 알코올에 중독되었던 경험 때문에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그러운 태도와 에너지 그리고 타고난 능력 덕분에 팀은 현재 두 기관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 어찌나 바쁜 자원봉사자가 되었는지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으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리고 팀의 삶이 잃었던 리듬을 되찾자, 그의 심장 역시 리듬을 되찾았고 심방 세동도 완전히 사라졌다.


심리상자 - 현실 도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일은 자신의 일부이며 희망이고 삶의 의미라고 입을 모아 외친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직을 하게 되면 정체성 전부를 잃은 것처럼 느끼며 사기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자존감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삶에 대한 통제력도 손상된다. 게다가 굴욕감, 거부감, 무력감이 증가한다. 이처럼 평생 동안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주된 원천이었던 사람들에게 강제 퇴직은 불안과 사기 저하의 원인이 된다. 삶에서도 강제 은퇴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팀도 오랜 세월 노력과 진심을 기울인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자 공허감과 허무함을 느꼈다. 더욱 커져가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바라보면서 팀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고통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팀은 자신의 일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해고를 당했을 때, 그는 깊은 상처를 받았으며 한순간에 쓸모없는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점차 삶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를 취했으며 모든 것을 어둡게만 보았고, 알코올과 텔레비전으로 자신의 의식을 속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었으며, 삶을 즐기는 능력과 삶의 의욕조차 점점 잃어갔다.


심장 전문의인 발렌틴과 정신과 의사와 팀의 아내, 이 세 사람의 협력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직장을 잃은 남편이 성격까지 변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내였다. 발렌틴은 근본적인 문제는 심장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구체적으로는 자존감과 정체성의 상실이 문제였다. 팀은 결국 모두의 노력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 가장 효과 좋은 치료법은 이타주의였다.


이타주의의 위력

우리 인간이 유전적으로 이타주의의 경향을 타고났으며, 그런 경향이 종의 진화와 개선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과학적 자료들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두 살짜리 어린아이들도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심란해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든다. 강한 연대감으로 뭉친 사회가 이기주의로 쪼개진 사회보다 더 많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동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선량함을 칭찬하면서 진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눈부신 보석의 아름다움 역시 수백 년 동안 바위의 압력을 견딘 덕분에 얻은 결과이지만, 보석을 보면서 그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인간의 선량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당연한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언론에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하거나 심지어 우리의 행복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은 상호관계와 사회적 존중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회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는 자세는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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