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에서 교육을 묻다

   
손승남·강요한·김연숙·남기호·장덕자·장선미·정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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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정보
   
25000
2010�� 11��



■ 책 소개
이 책은 각 고전, 즉유학의 기본서인 『논어』『맹자』『중용』『대학』, 그리고 노자의 『학기』『도덕경』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간략히 제시한 뒤, 원전해석으로 하여금이해하게 하고, 그 원전에 바탕을 둔 저자의 창조적 자기글쓰기를 보여 준다.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선현들이 일러준 내면적 정신세계의 무한한 자유에흠뻑 젖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창조적 글쓰기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고독을 추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손승남
 - 순천대학교 교직과 교수로서주요 논저로는 지속가능한 미래, 삶의 질 그리고 생태교육」(2010)「배움의 근본문제에 관한 해석학적 고찰(2008)」「뉴미디어 시대의 판단력‘도야’에 관한 고찰」(2005)『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2009, 역서)『딜타이 교육학 선집』(2008, 역서)『해석학의탄생』(2008, 역서)『학습자 중심의 대안적 교수법』(2004)『교육해석학』(2001) 등이 있다. 

강요한, 김연숙, 남기호, 장덕자, 장선미,정현미 - 순천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

■ 차례
서문

제1부 동양고전의 교육사상 
『논어』 
1. 개요 
1) 공자의 생애 |2) 공자사상의 기본성격 | 3) 논어의 체재 | 4) 논어의 주요 내용 
2. 원전해석 
『맹자』
1. 개요 
1) 맹자의 생애 | 2) 배경 | 3) 맹자의 사상| 4) 맹자의 저서 탐독 | 5) 맹자의 원본과 내용 
2. 원전해석 

『중용』 
1. 개요 
1) 『중용』의 저자와 저작 연대에 대한 논란 | 2) 자사의『중용』 저작 의도 | 3)선유(先儒)들이 논(論)하는 『중용』의 특징 | 4) 『중용장구서』에서 보이는 도통계보 | 5) 『중용』의 체계 | 6) 『중용』의 중요 내용
2. 원전해석 

『대학』 
1. 개요
1) 『소학』 ‘몸 만들기 프로젝트’ | 2) 『대학』 ‘힘 만들기 프로젝트’ 
2. 원전해석 
『학기』 
1. 개요 
2. 원전해석
『도덕경』 
1. 개요 
1) 노자(老子) 이야기 | 2)『도덕경(道德經)』의 유래 | 3) 도(道)의 의미 | 4) 도(道)의 작용 
2. 원전해석 
제2부 동양사상의 교육적 탐구 
『논어』의교육학적 이해 
1. 서론 
2. 공자의 교육방법 
3. 결론 
참고문헌 
『맹자』의 교육사상 
1. 서론 
2. 배경 
3. 교육사상
4. 결론 
참고문헌 

『중용』의 교육사상탐구 
1. 서론 
2. 중용의 의미와 특징 
3. 공자사상과 유학사상의 중용적 구조와 특성 
4. 중용의 교육관
5. 결론 
참고문헌 

『대학』:진정한지식으로 안내하는 주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 
1. 서론 
2. 격물치지를 보완한 주자의 의도 
3. 격물치지의 내용
4. ‘격물치지’가 ‘우리나라 교육’에게 묻다 
참고문헌 

『학기』를 통해 교육을 묻다 
1. 서론 
2.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 
3. 교육이론으로서의 학기
4. 결론 
참고문헌 

『도덕경』에 나타난생명교육 
1. 서론 
2. 『도덕경』과 생명교육 
3. 결론 
참고문헌 




도道로써 예술세계를 품다

동양고전에서 교육을 묻다


동양고전의 교육사상

『논어』

공자의 생애

공자는 노양공 22년 곧 주영왕 21년(B.C. 552년)에 태어나 노애공 16년 곧 주경왕 41년(B.C.479년) 그의 나이 74세에 서거하였다. 공자의 자(字)는 중니(仲尼)이고 이름은 구(丘)이다.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 추읍,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방숙은 난리를 피해 송나라에서 노나라로 왔다. 방숙은 백하를 낳고 백하는 흘(紇)을 낳았는데 흘이 바로 공자의 아버지이다.


흘은 자가 숙량으로 노나라 창평향 추읍의 한 관리로서 키가 크고 힘이 센 장사였다. 그는 처음 노나라 시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딸 아홉을 낳았고 첩에게서 낳은 아들 맹피가 있었으나 발이 병신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안씨의 셋째 딸 징재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공자이다. 50세가 넘어 노나라 정공에게 대사구로 중용되어 경의 반열에 올랐다. 69세 때 노나라로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며 『시경』과『서경』등 고전을 정리하고 『춘추』를 저술하였다. 이 무렵 공자는 아들 이(鯉)를 비롯하여 애제자 안연과 자로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다가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사상의 기본성격

공자는 종법질서의 붕괴를 목도하고 공허한 예론만 가지고 혼란한 사회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이념인 인을 제시하였다. 인이란 예에서 진일보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의 원칙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애인(愛人) 곧 남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남이란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애인은 인류애적 의미를 지닌다.


공자가 볼 때 예는 전통적 형식이면서 관습적인 사회규범이며, 예를 따름으로써 오히려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히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과 예사상은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는 인간중심주의이며 인과 예 사이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공자의 또 다른 핵심사상이 중용(中庸)이기 때문이다.


논어의 체재

논어는 유가의 핵심사상인 인을 바탕으로 치세와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 논어의 편명은 모두 각 편의 제1장에 나오는 첫 행 중 맨 처음 두세 글자를 취하여 편명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앞의 10편과 뒤의 10편을 구분하여 각각 上론과 下론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 함을 밝힌 <학이>편에서 시작하여 <팔일>편에서는 예, <이인>편에서는 인, <공야장>편·<옹야>편에서는 제자의 인물,<향당>편에서는 공자의 용의·행동·음식·의례, <자로>편에서는 정치, 마지막 <요왈>편에서는 역대 성인의 정치적 이상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논어의 주요 내용

공자사상의 핵심은 인이고, 『맹자』 의 의가 덧붙여진 인의(仁義)가 바로 유가의 핵심사상이다. 인은 인간관계에 여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그 모습이 나타나며 부자간에 있어서는 자효(慈孝), 부부간에 있어서는 화목(和睦), 군신(君臣)간에 있어서는 충의(忠義), 친구 간에 있어서는 신의(信義), 형제간에 있어서는 우공(友恭)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인>편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표현하였다. 공자가 자기의 도는 오로지 한 가지라고 말하자 증자가 충서(忠恕)일 뿐이라고 보충 설명하였다. "충서"의 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가리키며 이는 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의 주요한 내용으로 수양과 실천을 통하여 축적되어 외부로 표현된다. <옹야>편에서는 중용의 덕을 중시하였고, <이인>편에서 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뜻을 같이하는 이웃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다고 덕의 보편성을 지적하였다.


예는 도덕행위를 규정하는 하나의 형식이요, 규범이며, 인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을 행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인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사욕을 극복하여 정당한 모습인 "예"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고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일 모두 "예"를 따르고 예로 절제한다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예는 단순히 형식적인 제약이 아니며 본질은 오히려 형식적 번거로움을 피하고 예의를 실천하는 성의에 있다고 하였다. 예의는 형식적 사치보다 검소함이 낫고 상례 또한 예법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보다 슬퍼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공자가 결코 고답적 형식주의자가 아님을 잘 보여 준다.


공자가 추구하는 이상적 정치는 인정(仁政)을 바탕으로 한 덕치주의(德治主義)이다. 인정을 실천하는 정책으로는 부민(富民) · 교민(敎民 ) · 이민(利民)등의 방략을 제시하였으며 부민은 우선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고 민생을 부유하게 하며, 교민은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터로만 내몰지 말며, 이민은 법제를 백성의 편익에 따라 개폐하여 백성의 이익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정의 최고 목표는 집권자의 개입이 없이 사회가 자율로 잘 굴러가는 무위의 정치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를 이상적 인격자로 보았으며, 군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정의 내리며 설명하였다. <옹야>편에서 인의라는 본질과 예악(禮樂)이라는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가 된다고 하였고, <위정>편에서는 군자는 일정한 형태와 용도를 지닌 그릇과 다르며 박학다식하여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헌문>편에서는 자로가 군자에 대해서 묻자 군자는 자신을 수양하고 자기 일을 성실히 하면서 남을 기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논어』에서 군자는 여러 곳에서 소인과 대비시켜 언급된다. "군자는 남의 장점을 이루어 주고 남의 단점을 이루어 주지 않는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라고 하였으며 "군자는 남의 의견과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하나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라고 하였다.


원전해석 

제1편 學而

성현의 도를 배우고 끊임없이 이것을 복습하여 숙달하게 되면 지(智)가 열리고 도가 밝아져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하여 나의 학문이 성취되면 학문의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와 나를 따르고, 함께 공부하기를 바랄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나의 배운 바가 널리 사람들에게 전해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선을 행하게 될 것이다.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학문은 원래 수기(修己), 즉 나의 인격 완성에 있으니, 나의 학문이 성취하였음을 사람들이 몰라주더라도 태연자약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로지 도를 즐기고 주위 환경에 동요되지 않는다면 진실로 이상적인 인격자가 아니겠는가?


자하는 이런 말은 했다. "어진 이를 경모하기를 어여쁜 여색 사모하듯이 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기를 있는 힘을 다하여 섬기며, 임금에게 충성하기를 한 몸을 바쳐서 하며, 벗과 더불어 사귈 때 언어에 거짓이 없고 신의가 있으면 이것은 인륜을 밝혀 성심성의를 가지고 행하는 것이므로 더 바랄 것이 없다. 학문하는 자가 구하는 것도 결국 인륜을 행하고자 함이니,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은 비록 학문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2편 爲政

나는 열다섯 살에 인격완성의 학문에 뜻을 두고 끊임없이 힘썼으므로 서른 살에는 안으로는 사욕에 흔들리지 않고 밖으로는 유혹에 빠지지 않아 스스로 확고한 주관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10년을 수업하여 마흔 살이 되어 도리를 밝게 알게 되고 여하한 일에도 미혹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더욱 수업한 끝에 쉰 살이 되자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알게 되었고, 예순 살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이치를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만년인 일흔 살이 되어서는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도 예의나 법도에 어긋남이 없게 되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씀하셨다. "자로야, 네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자기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스스로 기만하는 폐단이 없을뿐더러 알기를 힘써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제3편 八佾

공자께서 주공의 태묘에 들어가 제사를 지낼 때 의식에 대해서 일일이 선배에게 물어서 거행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대체 누가 저 추나라 사람의 아들을 예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물어 행하는 품이 예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악평을 하여, 공자께서 들으시고 "일일이 물어서 신중히 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제4편 里仁

자기의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지위에 설 수 있을까 하고 실력이 없는 것을 근심할 일이다. 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걱정하지 말고, 남에게 알려질 만한 일을 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어진 사람을 보면 나 자신도 그 사람과 같이 어질게 되려고 노력해야 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더라도 상대방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혹시 그와 같은 허물이 있나 살펴보라는 말이다. 어질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의 모든 행동을 본받아 배우도록 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상대방의 허물을 거울삼아 자신의 허물을 고쳐 나가라는 뜻이다. 이렇게 한다면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거나 다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제5편 公冶長

자공이 물었다. "공문자는 어떻게 해서 문이란 가장 좋은 시호를 얻게 되었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 사람은 본성이 민첩한데다가 학문에 열의가 있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므로 문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 것이다."


10호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나 정도의 충신과 신의가 두터운 사람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학문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대들도 더욱더 학문을 즐기기 바란다.


제6편 雍也

도를 알고만 있어서도 안 되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데 그 뜻이 있음을 의미한다. 도를 실천하는 데 그 뜻이 있다 함은,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일이란 것을 뜻한다. 이를 본다면 도를 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능력의 한계 내에서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공자는 바로 이 마음가짐에 관하여 인이나 덕 그리고 예와 이 등 그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면 누구나 도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설사 도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아는 것으로만 그치고, 설사 도를 실천한다 하더라도 일순간에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는 것이다.


제7편 述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워 얻은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잊어버리지 않으려 하고, 또 널리 배워 구하고 싫증을 내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남에게 가르치되 게으름을 피울 줄 모르는 이 세 가지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잘 아는 천재도 성인도 아니다. 다만 옛날 선왕의 도를 좋아하며,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배워 알게 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제8편 泰伯

증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에게 능력이나 재능이 있으면서도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며, 내가 박학다식한데도 나보다 못한 학문이 얕고 과문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며, 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 또 덕이 있으면서도 텅 빈 듯, 남이 욕을 보여도 다투고 싸우지 않는다. 이런 일은 여간한 수양이 된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지만, 이러한 태도를 옛날 나의 친구는 잘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죽고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은 뒤쫓아도 못 잡는 듯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얻은 진리는 혹시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태도로 부지런히 익혀야 하는 것이니라."


『맹자』 

맹자의 생애

맹자의 이름은 가(軻)다. 그의 선조는 노나라의 귀족들이었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사구라는 벼슬에 있으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삼환의 세력을 제거하려고 하다가, 그들에게 밀려 노나라를 떠나게 된다. 맹자의 선조는 공자를 박해했던 인물 중에 하나다.


맹자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홀어머니 밑에서 양육 받았다. 그녀의 교육방법은 맹모삼천지교, 맹모단기지계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맹자는 성인이 된 후 중용을 지은 자사 계열의 학파에서 배웠다. 맹자가 어느 정도 학문적 성과를 거두자, 유가의 전례대로 제자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도 공자처럼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정치적 사상을 펼쳤다. 그러나 맹자의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당시에 가벼이 여겨졌던 맹자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당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유가가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서로 뭉치기 시작하였고, 한유가 맹자를 부각시켰다. 북송에 계승되었다가 남송의 주희가 사서의 하나로 삼았다. 이때부터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유고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그래서 흔히 공맹사상이라 불린다.


배경 

맹자의 시대는 전국시대, 공자는 춘추시대다. 이 시대는 하극상의 움직임이 신분계층을 위협한 시대였다. 또한 대도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봉건제도가 무너졌다. 힘의 논리에 의해 뺏고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군주는 승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력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였다. 군주들은 뛰어난 학자들을 초빙하여 국가경영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학자들은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유세하고 군주의 눈에 들면 대부의 자리를 얻어 정치에 참여하였다. 이때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제자백가라 칭한다. 신분에 상관없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중용되는 시대였다. 맹자는 그러한 사람 중(제자백가) 하나다.


공자 후에 증자, 자유, 자하 학파 간의 심각한 대립현상이 일어났다. 자유, 자하학파는 형식적인 예의나 실제적인 정무를 중시하는데 비해, 증자는 충서나 충신과 같은 내성적인 인의 덕목을 취했다. 순자는 자유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맹자는 증자학파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맹자의 사상

맹자의 사상은 도덕사회 구현이다. 맹자가 역설하는 도덕은 공자의 인과 의이다. 맹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인류애까지 확대하였다.


맹자의 성선설은 동물과 구별되는 질료적 차이를 가리킨다.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으로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이 본래부터 선했음을 가리킨다. 사람에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있다. 이것을 보아 인간은 본래부터 선했음을 의미한다.


맹자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민들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맹자는 당시 서민들이 자연환경과 농업상식, 가정의 중요성과 국가 ·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런 서민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는 도덕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인과 의만을 일방적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공자처럼 학이란 추상어를 사용하지 않고 상서라는 구체적인 교육기관을 제시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맹자의 저서 탐독

맹자는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혜왕 상, 하, 등문공 상, 하, 이루 상, 하, 만장 상, 하, 고자 상, 하, 진심 상, 하로 이루어져 있다.


맹자의 원본과 내용

『맹자』는 만장과 공손추 두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학우들이나 연배에 대해서 자라는 칭호를 붙였지만, 자신은 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제후들이 모두 시호로 칭해졌다는 점이다. 양혜왕, 등문공, 노평공은 모두 맹자 이전에 죽었으므로 시호로 호칭할 수 있으나, 양양왕은 맹자 이후에 죽었고, 제선왕 역시 맹자에 비해 이삼 년 늦게 죽은 것으로 본다. 왜 이들도 시호로 호칭했을까? 추론하건대, 맹자가 죽은 후에 문인들이 서술하여 정했기 때문에 제후와 왕들에게 모두 시호를 더하였을 것이다.(우재호, 2007)

 

원전해석 

양혜왕장구

어떤 놈은 백 보쯤 퇴각한 뒤에 멎고, 어떤 놈은 오십 보쯤 퇴각한 뒤에 멎어서 오십 보를 가지고 백 보를 달아난 놈을 비웃는다면 어떻다고 보십니까? 왕이 대답해 말하기를, 그것은 옳지 않으니 백 보를 후퇴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것 또한 달아난 것입니다.


나의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김으로써 남의 늙은이로 미치게 하며 나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다스려 남의 어린이에게 미치게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에 움직일 만한 것으로 될 것이다.


오직 인자만이 능히 큰 것을 가지고 작은 것을 섬길 수 있으니, 또한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능히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섬기니, 큰 것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도리를 즐거워하는 사람이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기는 사람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이니, 천도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천하를 보존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루장구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남을 사랑하여 그 사람이 친해 오지 아니하면 자기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고, 남을 지휘하여도 지휘를 받지 아니하면 자기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남에게 경례하여도 답례하지 아니하면 자기의 남을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볼 것이니라. 자기가 행하여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모두 자기에게 반성해 볼 것이니, 자기 몸이 바르면 천하가 다 돌아오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이 항상 이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들이 항상 이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만장장구

맹자께서 만장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한 마을의 착한 선비라야 한 마을의 착한 선비와 벗할 수 있고, 한 나라의 착한 선비라야 한 나라의 착한 선비와 벗할 수 있고, 천하의 착한 선비라야 천하의 착한 선비와 벗할 수 있다. 천하의 착한 선비와 벗하는 것만으로 아직도 부족하게 여겨서 또 옛사람을 나아가서 논하게 되는 것이니, 그들의 시를 외우며 그들의 글을 읽으며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옳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논하는 것이니, 이것이 옛사람을 숭상하여 벗하는 것이다.


고자장구

맹자가 말하기를,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길을 버리고 길대로 가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놓쳐 버리고 찾을 줄을 알지 못하니 슬프구나! 사람들이 닭과 개를 놓치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놓치고 추구할 줄을 모르나니,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없다. 자기의 놓쳐 버린 마음을 다시 추구하는 것뿐이니라.


대개 도라는 것은 큰 길과 같아서 어찌 알기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사람마다 도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될 뿐이다. 당신은 돌아가서 스승 될 사람을 구한다면, 얼마든지 남아돌아가는 스승이 있을 것이다.


진심장구

맹자가 말씀하기를,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의 왕자가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굽어서 사람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니,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통일하여 왕자가 되는 것은 여기에 함께 들어 있지 않다.


인이라는 것은 사람이란 뜻이니, 합해서 말하면 도가 된다.



동양사상의 교육적 탐구

『중용』의 교육사상 탐구

서론 

인간 삶의 보편적이며 숭고한 철학을 담고 있는 중용을 교육의 관점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우선 중용 문자의 의미 분석을 필두로 하여 중용의 세계관, 중용의 학문구조를 통하여 중용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고, 공자사상과 유학사상의 중용적 구조와 특성을 살펴 중용사상의 기원을 포괄적으로 이해한 다음 중용의 교육사상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중용의 의미와 특징

중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중은 정중이라고도 하여 바름을 뜻하기도 하고 최고의 이상 경지를 지시하기도 한다. 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평상으로 보는 견해와 항상이라는 주장, 용이라는 설로 나누어진다.


중용은 주관적인 사상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을 의미한다. 중정에서 중이란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측이 바로 서는 것을 뜻하며, 정이란 그 반대말이 부정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뜻을 지님을 볼 때 모자라는 것을 채워 온전하게 하는 다움을 의미한다. 과한 것은 덜어내고 불급한 것은 보태어 그 대상이 대상답게 곧추설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의식이며 방법론이다.


중용의 교육관

중용, 중화, 시중은 그대로 인간의 자기 수양, 대인접물, 처사응변의 슬기와 능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순서 역시 인간성취의 과정과 부합된다. 즉 먼저 자기 수양에 의해 인격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할 때 마땅히 화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마음속에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어떠한 사태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능히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의 중은 최고경지, 최고의 윤리로 모든 것의 근본, 정도, 정리다. 이것을 얻었을 때는 사통팔달 어느 면으로나 변화에 적응해 갈 수 있다. 중화의 중은 항상 자아의 표현이 모든 것과 잘 맞도록 노력하는 태도 또는 상태로 본체의 형평으로 볼 수 있고, 시중의 중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이 조화하는 모습을 말하며 전체와 개체의 조화를 말한다.


교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새로이 넣어 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본래부터 있어 온 것들을 가장 바르고 마땅하게 실현되도록 깨우쳐 주고, 계발해 주며, 바로잡아 주는 계기이다. 기품의 방해를 최대한 해소하고 도를 마땅하게 실천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도를 적절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북돋워 주고 도와주는 일련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유가의 수기공부이다.


결론 

중용의 문자의 의미 해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중용의 세계관, 학문구조를 통하여 중요의 의의를 파악하고, 중용사상의 근원과 시발이 되는 공자사상과 유가사상의 중용적 구조와 한국 유학 전통 관점에서의 중용의 의미와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고대로부터의 중용사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광대한 원리를 속속들이 빠짐없이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천지간 만물에 천명으로 부여된 선단을 인식하고 성인의 도를 닦아 성지의 수행공부를 통하여 중용-중화-시중의 원리로 끊임없이 자아를 계발하여 천지경영에 참여할 수 있겠다는 동기를 부여받은  듯하여 가슴이 벅차다. 현세의 교육현실을 중심으로 일상의 모든 곳에 중용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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