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기

   
이중톈(역자: 심규호·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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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리치홀딩스
   
26500
2010�� 04��



■ 책 소개
중국에는 2900여 개의도시가 있지만, 중국인들은 현대판 신분제라고 불리는 "호구제" 때문에 평생 고향 땅을 떠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뼈를 묻는고향, 즉 자신의 도시에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이 책은 이러한 도시와 사람을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현재 중국 최고의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학술 스타인 이중텐 교수 자신의 학술적 관심사와 개인적 관심사를 풀어놓는다.

동서남북을 대표할 만한 도시(베이징은 북, 상하이는 동, 샤먼, 광저우, 선전은 남, 청두는 서,우한은 중국의 중심), 성·시·탄·도·부·진·특구 등 중국 도시의 성격(베이징성, 광저우시, 상하이탄, 샤먼도, 청두부, 우한 삼진, 선전특구), 그리고 독특하고 기발한 문화를 가진 가장 특색 있는 7개 도시를 선정해 팔색조 같은 중국 도시들과 사람들을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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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중톈

1947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태어났다. 1981년 우한(武漢)대학교를 졸업하고, 문학 석사 학위취득과 동시에 이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샤먼(廈門)대학교 인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랫동안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일찍이 출간된 ‘이중톈 수필체 학술 저작: 중국 문화 시리즈’로 『이중톈, 제국을말하다』『제국의 슬픔』『중국 남녀 엿보기』『백가쟁명』 등이 있으며, 중국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05년 4월 CCTV의<백가강단(百家講壇)&& 프로그램을 통해 <초한지 강의&&를 강의하면서 ‘고전 대중화’의 길을 개척했다. 이 강의는 당시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열기가 2006년 『삼국지 강의』로 이어졌다. 현재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학술 스타로 각광받고있다. 

■ 역자
심규호
 -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현재 제주산업정보대학에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육조 삼가 창작론 연구』『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한자로 세상읽기』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이중톈, 제국을말하다』『백가쟁명』『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 1』 등이 있다. 

유소영
 -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중과를졸업했다. 제주대학교 통역대학원에서 강의하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마교사전』『도설천하 삼십육계』『지구가 감춰놓은 29가지비밀』『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유럽문화기행』『낙타샹즈』『법문사의 비밀』『천수관음』 등이 있다.

■ 차례
중국의 도시들
도시의 매력
남성적인 것,여성적인 것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1. 베이징성
베이징의 문 | 성(城)과 시(市) |거대한 도시 | 패기와 온기 | 평민과 시민 | 두 종류의 처세술 | 베이징 사람과 상하이 사람 | 관리 기질, 건달 기질 | 사랑스러운베이징

2. 상하이탄
외지 사람, 상하이 사람 | 상하이 사람과 상하이탄 | 상하이탄과 베이징| 도시 촌놈들 |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 상하이 남자, 상하이 여자 | 신 상하이인

3. 광저우시
괴이한 도시 광저우 | 높은 하늘, 먼 황제 |거대한 시장 광저우 | 다양한 "도시의 모습" | 남은 이야기

4. 샤먼도
샤먼이란 도시 | 가장 온화한 도시 샤먼 | 섬과 사람 | 샤먼에서 걸어나와샤먼을 보다

5.청두부

청두의 다관 | 룽먼전 | 간단한 먹을거리와 꽃시장 | 소박함과 의젓함 | 청두여, 힘차게일어서라
 
6. 우한삼진
수도가 될 뻔했던 우한 | 우한 사람들의 성격 | 강인한 생명의 노래 | 사랑스러운 우한 사람 | 우세와난제

7. 선전특구
봄 이야기 | 인간 해방 | 사투리가 없는 도시 | 내 생활은 나의 것 | 열여섯 살짜리가 얼마나 꽃을 피울 수 있을것인가? | 희망의 들녘에서

역자후기

 





독성기


베이징성

과거든 현재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베이징에 대해 갖는 동일한 느낌은 거대하다는 것이다. 베이징은 지도상에서만 거대한 것이 아니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과학기술, 문화, 교육, 체육, 정보 등을 집결해놓은 만능 도시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신중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요대에는 연경(燕京), 금대에는 중도(中都), 원대에는 대도(大都), 명/청 시대에는 경도(京都)였다. 베이징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거대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섬세하며, 요원하면서도 친근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다.


베이징의 문

베이징 지도를 볼 때 첫 번째 인상은 베이징에 문이 많다는 것이리라. 베이징 중심지역의 주, 간선 도로 모두 거의 이런 문(거기에 동서남북 방위까지 곁들여)으로 이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중국인들이 먼저 베이징의 문, 특히 유명한 두 개의 문을 통해 베이징을 알게 된다. 바로 천안문과 대전문이다. 천안문이 신중국의 상징이라면 대전문은 옛 베이징의 얼굴이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중국 신문화의 첫 장을 장식했던 5.4운동이 바로 이 천안문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역시 마오쩌둥 주석이 천안문 성루 위에서 선포하였다. 수없이 많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천안문의 지리적 위치 또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명/청 시대 베이징 도시 계획과 도시 건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모든 도시를 관통하는 18리에 달하는 남북 중추선이다. 천안문은 이 중추선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제왕의 땅으로 일반 서민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던 황가의 땅은 진정한 인민의 광장이 되었다.


거대한 도시

베이징은 크긴 하지만 붐비지 않는다. 베이징의 교통 역시 정체가 심하지만 가장 붐비는 곳도 매우 광활하다는 느낌을 준다. 워낙 큰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베이징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겸용성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베이징은 아마도 중국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다양한 건축양식을 가진 도시일 것이다. 성과 해자, 제단과 원림, 중앙의 각 부와 관아, 사당과 도관(道觀)과 절, 저택과 정원, 서민들의 주거지들이 차례로 배열되어 종횡으로 펼쳐져 있고 들쑥날쑥 흥미로운 모습으로 마치 화음을 이루고 있는 음악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인력거와 캐딜락이 함께 거리를 질주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며 노새나 말이 끄는 짐차가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베이징의 용량은 건축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 공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베이징은 예로부터 한족과 기타 민족들, 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었다. 베이징은 문화적, 인종적 편견이 없다. 심지어 다른 곳에 존재하는 고집불통의 지역문화성도 없다. 베이징은 계급 편차가 심하다. 그렇지만 공간이 거대하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피차 서로 강요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시가 반드시 개방적이고 겸용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도시의 주요 문화 기능이 바로 교류이기 때문이다. 도시처럼 교류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곳도 없다. 도시와 시골, 이 두 지역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이질성의 정도이다. 시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동질적이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은 본적과 출신, 내력과 직업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 또한 각기 다르다. 이런 교류의 기회에 대한 유혹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꾸만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교류의 기회로 인해 도시는 향촌보다 월등한 문화 수준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패기와 온기

베이징 사람들은 호방한 영웅 같은 기개에 의리를 강조한다. 그들이 추종하는 것은 인색하지 않을 것과 희생적일 것이다. 인정이 있고 정의감이 있으며 의협심이 강한 사람은 베이징에서 언제나 호평을 받는다. 베이징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그들이 신경을 쓰는 것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생활의 질이 아니라 신분이나 스타일이다. 유행에 상관없이 그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도 한다. 베이징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특히 분방하고 특히 경솔하고 특히 대범하다. 


수도에 사는 사람과 지방 사람 간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수도에 사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이 시원스럽고 월등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탁월함 혹은 특이함은 옛 베이징 사람들의 경우 태연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어떤 일에도 놀라는 일이 없고, 지식인들의 경우 천하를 굽어보며 일단 입을 열면 세상을 놀라게 하며, 청년들의 경우 자유분방하고 거친 모습으로 거리마다 한껏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표현된다. 어떤 모습이건 간에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베이징 사람들 특유의 대범한 기개이다. 그들은 전국 최대 도시의 일원이기 때문에 대범한 기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 사람들은 모두 대시민이니 당연히 그들의 기개도 소소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전국 각지 사람들이 극도로 분노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베이징의 서비스 업종의 복무 태도와 질이 형편없다는 점이다. 베이징 사람들의 생활은 대충대충이다. 매일 삶은 배추에 썩힌 두부, 짠지에 파이를 먹는 이들에게 손님을 위해 음식에 신경을 쓰라고 할 수는 없다. 정말 사람들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쌀쌀 맞거나 남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이다.


"이리 와, 이쪽으로 와봐!" "한쪽으로 줄 서!" 베이징의 민원 창구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베이징의 종업원들은 고객들 앞에서 한도 끝도 없이 허세를 부린다. 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면 직접 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당당한 태도가 아닌 횡포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정통 베이징의 기백이 아니다. 본토박이 베이징 사람, 특히 장사치들은 이렇게 고객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온화함이 돈을 모은다"라는 말은 베이징 문화의 대범함에서 온 것이다. 베이징의 예전 장사치들의 온화함이란 서비스 태도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교양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국의 차분한 몸가짐이자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라의 여유 있는 모습이며 "대인은 소인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어짊과 겸양의 표현으로 정통 베이징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교양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베이징 사람들, 특히 정통 베이징 사람들은 외지인을 멸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베이징 토박이에게 길을 물으면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며 인정미 넘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베이징에서 서비스업과 부딪힐 일이 없을 경우 외지인에 대한 그들의 멸시나 홀대를 느낄 일은 없다. 베이징 사람들의 자긍심은 지역적이거나 사회지역적인 자부심이 아닌 일종의 민족적인 자긍심인 것이다.  



광저우시

괴이한 도시 광저우

광저우는 너무 현란하고 어지러워 현기증까지 느껴지는가 하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건축물도 특이하고 나무도 늘 보던 나무가 아니며 간판의 글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욱 기이하여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아는 사람이 길 안내를 해주거나 친구나 친척이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면 목적지를 찾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광저우 사람들은 용모가 독특하고 옷차림이 이상한 데다 모두 발걸음을 재촉하니 그 앞을 가로막고 길을 물어보면 혹시나 거절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가장 곤란한 것은 역시 언어에 관한 것이다. 광저우에 온 외지 사람은 종종 식사도 못한다. 음식 메뉴를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광저우의 화장실은 난제(男界), 뉘제(女界)라고 적혀 있다. 난제는 남자의 지역이란 뜻인가? 아니면 남자의 출입을 금하는 지역이라는 뜻인가? 외지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는지라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예전과 분명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거나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것, 그리고 춤을 배우거나 주식거래나 선물거래를 배우고, 초과수당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전업(轉業)도 예사로 하여, 사장을 몰아내거나 해직당하는 일도 흔하게 되었고, 예전에는 없던 말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광저우 문화는 이런 사유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추세는 당시 내륙에 대한 상하이 문화의 영향력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맹렬하다. 광저우와 광둥 문화가 이미 현대 중국의 가장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또한 가장 강력한 지역문화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런 영향력은 지역적인 것이 아니다. 광저우, 광둥 문화의 진정한 매력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광둥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결코 갑자기 광둥어가 듣기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너도나도 해산물을 먹으려고 하는 것 역시 해산물이 맛있다고 느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유행을 만들어가는 것은 모두 이 지역이 개혁개방의 선두적 위치에 서서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먼저 부자가 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괴이한 생활방식과 명사 술어가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만약 개혁개방이 실시되지 않았더라면 광저우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남국의 한 도시에 불과할 것이다.


광둥 사람은 자신의 도시(너무 덥고 소란스럽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광저우 문화를 싫어할 수는 없다. 사실 광저우가 대표하는 것은 광둥 문화 가운데 비교적 우수하고 선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광저우가 자신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분위기로 전체 광둥 지역의 개혁개방에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주었으며 이를 지지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광저우는 과거(궁벽한 땅)와 현재(경제특구)를 이어주는 중개자이다.  


거대한 시장 광저우

상하이와 마찬가지로 광저우는 수많은 중국인의 마음속에 쇼핑하는 곳으로 자리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전, 심지어 개혁개방의 초기까지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막상 돈이 생겨도 살 물건이 없었다. 당시에 좋은 물건을 사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상하이나 광저우로 나가야만 했다. 당시 상하이는 비교적 괜찮은 국산품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광저우는 참신한 수입품이나 수출용으로 만들었다가 내수용으로 바꾼 보세품을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상하이는 자가 생산, 자가 소비하는 공장과 같은 곳이었던 반면, 광저우는 가격 흥정이 이루어지는 시장이었는데 가중 유명한 곳이 가오디제(高第街)이다. 가오디제는 청대부터 이름을 날렸다. 개혁개방 초기에 이곳은 유행을 선도했는데, 그 대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유행을 추구하는 젊은이들도 포함되었다. 1980년대 초반, 중국인들은 가오디제로부터 복장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동시에 몰래 생활관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켰다.


지금 광저우를 찾는 대부분의 외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다사터우(大沙頭) 하이인차오(海印橋) 아래의 전자상가이다. 이곳은 1000여 개의 상점이 운집해 있는 중국 최대의 가전제품 집산지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최신 제품을 보장한다. 해외 최신 가전제품이 출시와 동시에 이곳에 선보인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시장 광저우의 특징이다. 민첩한 반응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확실히 만족시켜준다.


광저우의 식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먹을거리 하면 역시 광저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광저우의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전국의 음식을 먹는다 혹은 전 세계의 먹을거리를 먹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광저우에서는 돈만 있으면 못 먹는 음식이 없다. 중국 각 지역의 요리부터 프랑스의 거위 간, 독일 소시지, 한국 불고기, 일본 스시 등 모든 음식이 현지 맛 그대로이다. 광저우는 도시 전체가 있을 만한 것은 다 있는 거대한 음식점과 같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수요를 만족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쓰고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편하게 돈을 버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시장일수록 다각적으로 모든 범위에서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광저우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광저우는 겉치레를 허용하는 동시에 인색함에도 너그럽다. 따라서 사람들은 겉치레도 한껏 내보일 수 있고, 절약도 내키는 만큼 맘껏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활하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점은 그들이 어떻게 식생활을 꾸려나가건 모두 자신의 능력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생활은 매우 실질적인 것이다. 반드시 자신의 노동과 지혜, 시간을 할애해야만 돌아오는 것이 있다. 실질적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주린 배로 허기진 생활을 하거나 댜오사바오(배를 곯다는 뜻의 광둥어)할 수밖에 없다. 


남은 이야기

광저우 문화가 앞으로 더욱 당당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광저우와 광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시운(개혁개방)을 잘 탔기 때문이고 둘째, 지리적인 요건(홍콩과 인접)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셋째, 사람들의 화합(광둥 사람들은 원래 경제적인 사람이다) 덕분이다. 그러나 자체 문화는 확실히 아직 덜 성숙된 상태이다. 기본적으론 협애한 지역문화일 뿐이다. 더구나 홍콩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았다("홍콩이 재채기를 하면 광저우가 감기에 걸린다"라는 말이 있다). 홍콩은 문화의 사막까지는 아니지만 고품격의 학술 문화가 미약하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경제적인 신선함이나 생기발랄함이 유지될 수 없다.


광저우 문화를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광저우 사람들이 지나치게 순종 광둥 토착민이라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어리석음이다. 한 도시의 진정한 도시화 수준은 그곳의 개방성, 포용성과 정비례한다. 그중에는 언어의 개방성, 포용성도 포함된다. 광저우가 대 광저우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지위, 영광의 칭호와 걸맞은 문화 환경과 언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광저우가 전국적인 곳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자 광저우가 전국, 특히 전국의 엘리트들을 포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청두부

청두의 다관

옛말에 "베이징에는 아문(衙門)이 많고 상하이에는 양행(洋行, 서양 상점)이 많으며, 광저우에는 점포가 많고, 청두에는 다관이 많다"라 했다. 청두는 우한과 마찬가지로 동서남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도시이다. 창장(長江)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고, 친링(秦嶺)을 분계로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우한과 동일한 위도에 있으며, 라싸(拉薩)나 상하이에서 거의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나 두 곳의 자연적인 조건은 천양지차이다. 우한은 겨울에 몹시 춥고 여름은 무지무지하게 덥다. 그러나 청두는 겨울에도 삭풍이 부는 일이 없고 여름에도 뜨거운 태양이 무섭게 내리쬐는 일이 없다. 하늘은 온화하고 땅은 기름지며, 물산은 풍부한데 가격 또한 대단히 싸다. 이처럼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청두 사람은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으며, 애써 힘을 쓸 일도 없다. 그러니 그저 유유자적 세월만 보내면 그뿐이다.


그렇다면 그 유한한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관에서 차를 마시면서 보낸다. 청두의 화차(花茶)는 향이 좋고 짙으며 오래가는데, 한 번 차를 타서 여덟 번을 우려내도 무방하다. 청두 사람들은 다완(茶碗), 다개(茶蓋). 다선(茶船)이 모두 구비된 다관에서 차를 마신다. 청두 사람들은 차보다 다관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청두통람(成都通覽)』을 보면 청말 당시 청두에는 거리가 516개 있었는데, 다관은 454군데나 되었다고 하니 거의 모든 거리에 다관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5년 「신신신문(新新新聞)」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청두에는 다관이 599개나 있었으며 매일 차를 마시러 다관에 들르는 손님 숫자는 무려 12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전체 인구가 60만이었으니 놀랄 만한 숫자다.


지금도 청두는 다관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래된 거리나 골목을 걷다 보면 채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또 다른 다관을 만날 수 있다. 어디든지 손님으로 가득하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 그 까닭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시민 가운데 다객(茶客)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다객들이 차를 마시는 시간이 유별나게 길어 "한 번 차를 끓이면 반나절"이라고 말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청두 사람들이 다관을 즐겨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룽먼전(龍門陣, 적과 대치한 뒤에 벌이는 설전)을 크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두 사람은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인가를 먹고,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들이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다. 너스레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할 때 차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소박함과 의젓함

청두는 전원도시이자 문화 고성(古城)이다. 명대 만력 연간에 나온 『쓰촨총지(四川總志)』에서 "습속이 소박하고 선비들은 대범하고 빼어나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청두 사람들의 기풍은 소박하고 유아(儒雅, 학문이 깊고 품행이 의젓함)하다. 다시 말해 평민의 기질이 농후하면서도 재자(才子)의 기질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청두와 광저우는 아마도 중국에서 먹는 것을 가장 신경 쓰는 도시들일 것이다. 그러나 두 곳의 식문화는 다르다. 광저우 음식은 맑고 담백하며, 청두 음식은 진하다. 광저우 음식은 비교적 화려하고 비싸지만, 청두 음식은 소박하고 값이 싸다. 광저우 음식은 겉치레를 중시하지만, 청두 음식은 실리를 추구한다. 광저우 음식은 주로 돈 많은 부자들을 위해 서비스하지만, 청두 음식은 대중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확실히 청두 사람들의 생활은 상당히 평민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잘 먹는 후이궈러우(回鍋肉)은 전형적인 평민 음식이다. 후이궈러우는 맛이 진하기 때문에 그것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기름도 많아서 쉽게 배부르다. 고기를 삶은 탕은 무와 배추를 넣어 다시 끓여 먹을 수 있으니 실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민들은 물론이고 고관이나 귀인들도 즐겨 먹는다.


그러나 청두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역시 훠궈(火鍋)이다. 청두의 훠궈는 종류가 많다. 일반적인 양고기 훠궈나 해산물 훠궈는 물론이고, 닭고기 훠궈, 노란 고추 훠궈, 맥주와 오리고기를 넣은 훠궈, 개고기 훠궈 등 종류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쓰촨성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라탕(麻辣湯, 산초를 넣어 매운 탕)도 빠질 수 없다.


마라탕이 청두 사람들의 소박하고 질박한 일면을 나타낸다면 파얼둬(원래는 귀가 얇다는 뜻인데, 공처가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잖고 우아한 유아(儒雅)의 성격이 변이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청두 여자는 한 떨기 꽃이고, 청두 남자는 공처가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두 남자들이 마누라를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는 청두의 다관만큼이나 유명하다. 아내 앞에서 나긋나긋하게 행동하는 것은 실로 여성을 깊이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청두는 점잖고 의젓한 도시이다.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 악기와 노래, 새와 꽃을 키우는 일 등은 모두 이들이 즐기는 것들이다. 청두에서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화초가 있다. 마치 사람들이 있는 곳에 훠궈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원이든 발코니든 어디에서나 난과 대나무, 금계 등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사람들이 청두를 용성(蓉城, 후촉 황제가 부용화를 좋아하여 백성들에게 담장마다 부용화를 심도록 해서 생긴 이름이다)이라 부를 만하다.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과 근면한 손놀림으로 도시를 마치 아름다운 화단처럼 꾸며놓았으니 소박하면서도 점잖고 우아할 따름이다.

 


선전 특구

인간 해방

인간 해방은 원래 개혁의 중요 과제이다. 투자국(招商局) 서커우(蛇口) 공업지역이 건립될 당시 선전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인사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중앙의 동의를 얻은 후 특구에서 파견한 인력초빙 사업팀이 전국 각지로 흩어져 공개적으로 인재를 모집했다. 수많은 이들이 초빙 여부에 관계없이 짐을 꾸려 남쪽, 선전으로 향했다. 


이러한 남하세력의 주체는 1977년 대학입시제도가 부활한 후 졸업한 대학생, 석사, 박사 대학원생들이었다. 새로운 사고에 익숙하며 구시대의 끈이 적은 그들은 이 도시의 성격에 걸맞은 인재들이었다. 선전 역시 그들을 향해 줄곧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전국에서 인재를 모집하는 현상은 선전에서 이루어지는 인사제도의 핵심이자 인사부서의 일상적인 업무가 되었다.


선전에서는 월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없고, 가만히 앉아 남이 이루어놓은 것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정리하고 이곳저곳 알아보며 동분서주해야 한다. 체면 따위는 소용없다. 선전 사람들은 인내심이 매우 강한 편이다. 이런 능력은 주식시세 등락, 부동산 가격의 변화, 직위의 변동을 경험하면서 길러진 것이며 또한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단련된 것이다. 선전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오래된 회사가 파산하고, 새로운 회사가 문을 여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또한 거의 매일 직장을 잃고 새 일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들고 나는 일, 승진과 좌천이 비일비재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주위에서, 또는 자신이 이런 일을 겪는다. 많이 보면 담담해지고 많이 겪다 보면 어지간한 일은 무던해지게 마련이다.


선전 사람들은 개혁을 통해 심리적으로 더 성숙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선전 사람들이 이로부터 얻은 가장 큰 이득은 생활방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천 리 떨어진 먼 곳에서 선전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간섭할 사람이 없다. 부모와 선생님, 직장, 심지어 아내까지도 모두 내륙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자유인이다. 계획경제 시대에는 이런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구체제 속에서는 상품이나 인적 자원 모두 일괄적으로 매매가 이루어지고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을 져야 했다.


참을성이 있고 고생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활할 것이며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만년 밥그릇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전은 다른 도시에 비해 인구의 유동이 많다. 이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개인에게는 자유를 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직장, 한 직업에 얽매이지 않는다.


직업의 자유는 생존에 대한 자유나 마찬가지이다. 생존의 자유가 있으면 몸과 마음의 자유도 얻을 수 있다. 사실 선전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유로운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선전을 찾은 거의 모든 사람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투리가 없는 도시 

이민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선전은 방언, 즉 사투리가 없는 도시가 되었다. 선전에 들어가면 다음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선전 사람들이 매우 젊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모두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전이 다른 광둥 지역 도시 및 기타 국내 도시들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선전은 중국 어떤 한 지역이 아니라 중국 전체의 것이다. 그곳은 특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국에 존재한 것들이 선전에 꼭 있을 필요는 없지만 중국 현대화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모두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있는 것들이 꼭 선전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다른 지역에 없는 것들이 선전에는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선전에는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 공동의 생계 방식은 존재하지 않고 해고와 해직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만년 직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전에는 개혁개방과 관련이 있고 국제관례와 궤도를 같이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국제적, 현대적인 것과 거리가 먼 방언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선전 생활은 다양하기도 하지만 또한 다층적이다. 선전은 원래 빈부귀천의 차이가 심한 사회이다. 선전 사람들은 평균 수입이 내륙보다 훨씬 높고 대다수가 돈이 많은 편이지만 모든 이들이 세계적인 명차를 타고 초호화 객실에 묵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검약하게 생활하여 고향으로 돈을 부치는 노동자들과 나이트클럽에서 돈을 물 쓰듯 하는 사장님을 함께 거론할 수 없고, 열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 선전으로 온 청년과 증권거래소에서 장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만 달러짜리 골드카드를 가진 부자는 명품 옷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고 거드름을 피우며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봄직한 최고급 생활을 한다. 그러나 심신이 피곤한 데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노동자들은 좁은 방에서 홍콩이나 타이완 영화에 넋을 빼놓기 마련이다. 그러나 선전 사람들은 그들을 방치하지 않는다. 양심적인 선진 사람들은 만약 이런 청년 노동자들의 땀방울 어린 노고가 없다면 이 땅 위에 건물이 들어서고 돈이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선전 사람들은 청년 노동자를 위한 휴식처를 만들어놓았으니 그곳이 바로 다자러(大家樂)이다.  


공원에 위치한 다자러는 실내 공간과 무대가 넓고 시설도 쓸 만하며 입장료가 저렴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돈을 쓰고 싶지 않다면 밖에 서서 구경해도 된다. 다자러의 무대는 개방적이며 수용적이다. 그곳에는 높은 담벼락도, 삼엄한 경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다자러, 즉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다. 이런 장소는 일종의 선전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다. 개혁개방의 목적은 일부 사람들의 부의 축적을 통해 공동의 부를 창조함으로써 모두를 즐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전 사람들의 다양하고 다층적인 생활은 수많은 기업에 상거래의 기회를 부여하며, 그들이 도전의식을 갖도록 한다. 소비자의 수요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뭘 먹고, 뭘 마시고, 뭘 하고 노는가는 중요치 않다. 어디에서 먹고, 어디에서 마시고, 어디에서 노는가에 점차 신경을 쓰고 있다. 선전 사람들의 생활은 날로 좋아지고 그 양식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도시에는 사람들도 형형색색, 사람들의 생활도 형형색색이다. 이것이 바로 선전이다. 단순함이 소도시의 특징이라면 다원화, 다양화, 다변화, 다층화는 바로 특구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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