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입학 후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생각하기!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지탱하면서 성공적인 인생의 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신조와 가치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훌륭한 지식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곱씹은 후’, ‘지식과 경험을 재료로 삼아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세계 명문 대학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일과 인생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 하버드의 토론 수업, 옥스퍼드의 압박 면접, 프랑스의 수능시험 ‘바칼로레아’ 등은 최고의 지성들에게 끊임없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 놀랍게도 그것은 학부생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입학 전부터 그들은 ‘생각하는 법’을 시험한다.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물으면서 말이다.
세계 일류를 경험하고 진짜 인재에게 필요한 것이 ‘생각하기’임을 깨달은 저자는 이 책에서 하버드의 입학시험, UN의 채용시험 등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들’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다양한 분야의 철학자와 사상을 함께 소개하여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질문들에 스스로 생각하고 답하면서 일과 인생을 장악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다.
■ 저자 후쿠하라 마사히로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도쿄은행에 입사했다가, 기업 유학생으로 INSEAD(유럽 경영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어 ‘대학위의 대학’이라는 프랑스 최고 고등기관인 그랑제콜 HEC(파리 경영 대학)에서 국제금융을 공부, 최우수 성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회사인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Barclays Global Investors)에 입사, 세계 최고의 교수진으로 구성된 글로벌팀에서 외환 연구와 전략을 구축했다. 35세에는 최연소 매니징 디렉터를 일임하기도 했으며 그 후에는 일본법인 인사로 취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오프닝 벨을 울리기도 했다.
2010년 하버드, 옥스퍼드, 스탠포드 등 명문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IGS(Institution for a Global Society)를 설립했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 하프문베이에서 열린 세계 회의가 그 계기였다. 세계 최고의 외국계 자산운용사 파트너들이 참가하는 회의에서 글로벌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확고한 가치관과 진정한 교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물의 본질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고 궁리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것, 그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조리 있게 주장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이를 계기로 앞으로의 인생을 건 학교를 설립, 그와 관련된 다양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왜 일본에서는 진짜 엘리트가 성장하지 못하는가?(なぜ、日本では本物のエリ-トが育たないのか?)』(다이아몬드사)가 있다.
■ 역자 김정환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역과를 수료했다. 2014년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초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 이야기』『재밌어서 밤새 읽는 지구과학 이야기』『재밌어서 밤새 읽는 물리 이야기』『재밌어서 밤새 읽는 화학 이야기』『위대한 수학자들』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시작하기 전에 - 무엇을 공부하든 그 전에 필요한 생각들
제1강 인식을 단련한다 -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한다 | 네 가지 단계로 진위를 파악한다 | 멀리 봐야 포착할 수 있는 것들 | 나와 조직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
Practice 나의 인식 스타일은?
Column 하버드의 신입생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게임
제2강 국가를 이해한다 - 조직과 사회 안에서의 나를 생각하다
국가를 공기처럼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 평등이 위험한 이유 | 국가는 왜 필요한가 |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든다면
Column 하버드의 학생이 기겁한 회사의 규칙
제3강 자유를 깨닫는다 -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유라는 모호한 개념을 잡다 | 대부분의 의견은 남의 의견에 불과하다 | 타인이 원하는 ‘나’로 산다 | 자유가 주는 해악
Practice 죽음에도 자유가 있을까
Column 옥스퍼드의 학생들을 곤경에 빠트린 난제
제4강 경제를 안다 -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들
경제의 출발점은 노동 |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를 이해한다 | 마르크스의 주장을 살펴본다 | 자본주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 빚 없이 살 수 있을까
Practice 국가 예산을 세워 보자
Column 내가 만약 부자가 된다면
제5강 과학기술과 자연 그리고 예술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할 것들
과학은 어디까지 진보할 수 있을까 | 자연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 | 미래를 위한 선택
Practice 내가 만약 ‘환경 서미트’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 예술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Practice 전통문화 사업을 검토해 보자
Column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답하기
마치며
하버드의 생각수업
인식을 단련한다 -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필터로 인식한다
한 가지 생각을 해 보자. 이 세상에 나와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지금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가치관과 취향, 판단 기준, 우선순위가 똑같은, 마치 정신적인 클론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경험을 쌓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가치와 의미, 영향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하는 경험은 사실과 인식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실제 경험을 한 그 사실과 그 사실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 말이다. 결국 어떤 일(경험 또는 사실)이든 자신의 인식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해하고 해석한다.
인식이 다르면 진실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무의식중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지, 사실이나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에는 역사와 문화, 법률, 관습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준다. 그러나 어떤 사정이나 배경이 있든 어떤 하나의 사상에 대한 인식이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처지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 당연히 이것이다라고 의심 없이 믿는 것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똑같은 정보를 얼마나 다르게 인식하는가? 우리는 사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유형일까?
멀리 봐야 포착할 수 있는 것들
모든 사람에게는 흰자와 노른자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지금 어떤 그룹에 속해 있을 것이다. 직장이나 학교, 친구들의 그룹, 가족 등이다. 생명 관계학 전문가인 시미즈 히로시는 그 그룹, 장소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이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예로 들어 이 장소와 자신의 관계를 매우 알기 쉽게 설명했다. 본래 자신이라는 존재는 타인과 쉽게는 섞이지 않는 단단한 부분과 타인과 섞임으로써 유연하게 모습을 바꾸는 부분이라는 이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것이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복수의 사람이 존재하는 장소는 말하자면 달걀을 깨기 위한 그릇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깨져서 그곳에 담긴 달걀이다. 달걀을 깨면 흰자끼리는 서로 섞여서 경계선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노른자는 결코 섞이지 않고 그릇 안에서 식별 가능한 상태로 계속 존재한다. 이 흰자와 노른자가 자신이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이해한다 - 조직과 사회 안에서의 나를 생각하다
국가를 공기처럼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국가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다
외국에 가면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한 번쯤은 받아 봤을 것이다. 그러면 망설이지 않고 "저는 한국인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상대가 "당신은 왜 한국인이죠?"라고 다시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받는 일은 거의 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분명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까요"라든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같은 이유를 대며 자신을 설명할 것이다.
Q. 당신이 생각하는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대부분이 국가란 무엇이냐는 주제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을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나라가 존재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 나라에 소속되어 그 나라의 법률과 문화에 따라 생활하고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한국이, 일본인에게 일본이, 중국인에게 중국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에 있었던 존재다.
그러나 시선을 세계로 돌리면 국가란 결코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제까지 유고슬라비아인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크로아티아인이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국가는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당연하게 존재하지도 않으며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란 대체 무엇일까?라는 단순한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토론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면 "당신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라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또 "그 나라는 무엇을 소중히 여깁니까?", "어떤 이념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까?" 등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담긴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가 속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해 설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밑바탕으로서 생각해 놓아야 할 것이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가?이다.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든다면
나를 넘어 내가 속한 나라를 돌아보는 일은 장소에 속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는 중요한 주제다. 특히 국내가 아니라 국외, 세계로 나간다면 더욱 필요한 생각이다. 세계 한가운데 서게 되면 다양한 인종, 국가, 문명의 사람들과 만나게 될 텐데 그때 우리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누구인지를 넘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데도 국가는 무엇인지,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질문은 필요하다. 대표인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반드시 이 생각을 해보길 권한다. 국가란 무엇인지,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자유를 깨닫는다 -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의견은 남의 의견에 불과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외부의 정보에 놀아나고 있다
가령 카레를 먹고 싶어서 카레를 먹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언뜻 나 자신이 외부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카레 향기를 맡았다거나) 카레가 먹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자유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칸트의 주장을 응용하면 그것은 외부에서 영향을 받은 욕망이지 나 자신이 본질적으로 지닌 순수 이성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다. 요컨대 그런 행위는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결정한다=자유롭다라고 생각하지만, 외부에서 영향을 받고 있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타인에게서 영향을 받은 끝에 내린 결정은 개인의 자유로 봐야 할까? 좀 더 말하면, 세뇌 상태인 사람은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자유라고 해야 할까, 부자유라고 해석해야 할까?
Q. 자유로운 의사란 대체 무엇일까?
실제로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에서 발신된 정보를 보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해 폭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해 여론을 유도하는 경우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나의 의사라고 믿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사고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정보가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나 자신의 사고나 의사 결정에 타인이 관여하고 있다면 나의 자유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내가 믿고 있는 자신의 판단이 진정으로 나의 자유의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지금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정보화 사회이며, 불과 수년 전과 비교해도 정보의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어떤 한 가지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맹렬한 기세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침투되어 여론을 형성해 나갈 위험성을 지닌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시시비비를 논한들 발달한 정보 전달 기술은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시대의 리스크를 인식해야 한다.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때 이것은 원래 나의 생각이야라고 믿으며 의사 결정을 하는 것과 이것은 외부에서 주어진(어쩌면 편향된) 정보야라고 의식한 다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획득하려면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같은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자유라는 것을 지극히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깊게 파고들면 그 의사 자체가 진정으로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것이냐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자유의사를 다시 한 번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경제를 안다 -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들
경제의 출발점은 노동
Q. 당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세계의 경제 정세를 살펴봤을 때, 사회주의가 쇠퇴하고 많은 나라가 자본주의화 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라면 역시 구소련의 붕괴일 것이다. 중국과 북한, 베트남, 쿠바 등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도 많지만, 그런 나라들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부분이 자유화되고 있다. 사회 정세가 이러다 보니 사회주의가 패배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을 가지고 자본주의가 옳았고 사회주의는 틀렸다고 안이하게 결론을 내려도 되는 것일까?
또한 이 문제의 시비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이해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먼저 이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을 말하라
자본주의란 어떤 제도인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개요를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기는 의외로 어려운 법이다. 이 설명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똑같지는 않다. 이 점이 참으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독재주의가 한 세트가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가령 중국을 생각해 보자. 중국의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주의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답은 독재주의일 것이다. 건국 이래 공산당 일당 독재가 계속되고 있으며, 적어도 현재의 중국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관점을 경제로 옮기면 중국은 사회주의이며 자본주의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현대의 중국에서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널리 인정되어 국가와 기업 모두 크게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도저히 자본주의라고는 부를 수 없는 측면도 많이 남아 있다.
정치와 경제의 문제는 각 나라마다 복잡하게 얽혀서 독자적인 법률과 제도, 문화, 습관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자연 그리고 예술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할 것들
과학은 어디까지 진보할 수 있을까
Q. 예술은 과학보다 덜 필요한가?
2011년의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출제된 문제다. 달달 외우는 입시 공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대학 입시에서 예술의 의미를 묻는 것에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일본과 한국의 획일화된 교육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음악이나 미술 수업 시간에 수학 등의 입시 공부를 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세계의 지식층들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가? 나는 무작정 과학과 예술을 비교하기는 어려운데…….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과학과 예술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애초에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하며, 과학에 관해 생각하려면 자연이라는 주제를 간과할 수 없다.
애초에 과학이란 무엇인가? 인류에게 어떤 이익과 불이익을 안겨줬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우선 과학기술은 진보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과학기술의 진보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Q. 왜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나라, 어떤 민족, 그리고 어떤 시대에나 예술은 존재한다. 음악은 말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하며, 음악이 없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다. 고대 유적을 발굴하면 실용품 이외에 예술품이나 벽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곁에는 항상 예술이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예술을 추구할까?
애초에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림 속에는 예술이 없다
예술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통해 표출시킨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생각이다. 요컨대 예술가나 예술 작품에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으로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왠지 선문답 같은 표현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진정한 예술은 그림 자체나 화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화가가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한 마음이나 이미지이며, 모델이나 풍경이 지닌 냄새나 공기감, 삶의 모습, 감촉 같은 것이다.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그 그림에 그려진 풍경(혹은 인물, 물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의 이면, 너머에 있는 진리를 느끼려고 한다. 하이데거는 그 작품의 이면에 있는 진리야말로 예술이며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