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않는 삶

   
오구라 히로시(역자: 백소현)
ǻ
케이디북스
   
12000
2011�� 12��



■ 책 소개
비교하고자 하는 욕망을버리고 다른 이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라!

우리가 괴로운것은 나와 남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잘못보다는 남의 잘못을 더 크게 생각하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발생은 내 탓이 아니라남의 탓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면 그런 대로 괜찮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나를 남과 비교하는 그 순간부터 행복은 우리손에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왜? 똑같은 사이즈인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근본적인 인간의 본능 심리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남의 시선에 따라 행동하고 사고하려한다.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신뢰인 자기축이 약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점점 크게 사람을 휘돌아 괴로움을 가중시킨다. 우리가 이 괴로움에서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비교하지 않는 삶의 조건을 맞추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삶을 구축해야 한다. 

■ 저자 오구라 히로시 
1965년 니가타 현에서태어났다. 아오야마학원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주식회사 리쿠르트에 입사하여 기획실과 편집부를 거쳐 조직 인사 컨설팅 과장을 지냈다. 그리고2003년 주식회사 페이스홀딩 및 페이스 총연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자신만의 컨설팅 경험과 업무 혁신 노하우를 녹여낸 그의 저서들은 일본에서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성공 이면에는 수많은 고통이 있었다. 두 번의 우울증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오구라는더 이상은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 수 없음을 느끼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끝에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있었다.

‘고민하는 30대의 멘토’에서 머물지 않고온전한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는『비교하지 않는 삶』을 저술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외친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축을잃어버리는 헛된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가 쓴 책으로는『서른과 마흔 사이(35歲からの生き方の敎科書)』『상사가 부하 직원보다 먼저벗어라(上司は部下より先にパンツを脫げ)』『33살, 평범과 비범 사이(33歲からのル―ル)』등이 있다. 

http://www.fath-h.net

■ 역자 백소현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며 책과 인연을쌓았다. ‘좋은 책은 친한 벗이자 삶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모토로 현재 번역에 전념 중이다.

■ 차례
1.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당신이괴로운 이유는 스스로 만든 것 
열심히 노력할수록 괴로워지는 삶
나와 남을 비교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어느 쪽이 위인지만생각한다면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과시하기 위한 자기긍정의 함정
‘이기’와 ‘이타’의 부조화로 인한 괴로움
‘베푸는 것’과‘구하는 것’의 차이 인식하기
쫓으면 도망친다는 이치 깨닫기
실패 또한 성공일 수 있다는 인식 갖기
나를 평가하는 것은 온전한나의 시선으로만

2. 비교하고자 하는 욕망버리기
비교하고 싶은 욕망에 농락당하지 않는 삶
자기 입장에 따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묘미 즐기기
구하지 않는 편이 손에 넣기 쉽다
나의 욕망을 명백하게 밝히기
지금 이 순간 120퍼센트 집중하기
참고 누르는게 아니라 온전히 버리기
잠깐의 눈속임에 현혹당하지 않기

3.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할 때
비교하기가 일상화된 삶 
욕심 없이는 살아남을 수없는 현실
현실적인 모순 해결하기
희망하되 욕망 없이 집착 버리기
전부 옳고 전부 그르다는 진리 인식하기
과거보다는 현재,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기
‘욕망하기’와 ‘희망하기’의 경계 짓기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

4.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부족한 자신을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연습
나의 감정을 스스로 오픈하기
자기애의 뜻 바로 알기
나를 인정해주는 최고의 친구는 나자신뿐
나에게 OK 사인 보내기
OK 사인과 NG 사인의 기준 정하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행동 습관화하기
양덕으로 잃은에너지 음덕으로 충전하기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한 초점 이동법

5.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때
‘아는 것’과 ‘하는 것’을 착각하는 오류
남이아니라 나에게 화살 돌리기
내가 변한다고 남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 버리기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나의 이기심에서 나온것
신뢰로 남의 마음 움직이기
상대방에게 변화하고자 하는 선택권 넘기기
당신이라는 주어보다 나라는 주어 많이 사용하기
위가아니라 옆에서 깨달음의 자극 주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해도 자기 자신과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상처받지 않도록 경계선 긋는법
다른 사람의 ‘다른’이라는 것에 주목하기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 의미 찾기
괴롭고 힘들 때도 그것에 반발하지않기

6. 실패해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때
실패는 계속 다시 시작하라고 존재하는 것
몇 번의 실패는 손등에 긁힌 생채기일 뿐
계속하기 위해서 무리하지않기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하늘이 보낸 메시지 긍정적으로 읽기
하늘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내주지않는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살아보기
괴로울 때는 끝없이 괴로워하기
괴로움 안에서 공감의 수위높이기

7. 그릇이 큰 사람으로 성장할때
나에게 솔직한 삶이 바로 비교하지 않는 삶
나쁜 마음이 아닌 예쁜 마음으로 바꾸는 연습
늦은 것은 없다,지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 갖기
안과 밖의 행동 일치시키기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더욱 부모에게 잘하기




비교하지 않는 삶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당신이 괴로운 이유는 스스로가 만든 것

지금 당신 마음속에는 이런 불만이 움트고 있을지 모릅니다. "회사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유는 회사의 목표가 너무 높고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지요.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방해만 하지 사기를 높여주지 않아요. 그리고 상사의 터무니없는 소리에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또한 집에서 퍼붓는 잔소리 탓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경기불황이나 구조조정 혹은 성과주의 때문에 일하는 환경이 혹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괴롭히는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비교하는 습성 때문이지요.


위의 하소연처럼 매사가 잘 풀리지 않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흔히 외부에서 이유를 찾거나 자기정당화를 합니다. 너무나도 괴로운 나머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겁니다. 다소 다른 사람을 깔보는 태도로 이런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당신 혼자서 편안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겁니다. 모든 책임과 잘못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선량한 사람일 테니까요. 결국에는 불경기나 세상 탓으로 돌려버려야 속이 시원하지요.


하지만 계속 당신이 괴로운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면 당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막다른 곳으로 몰릴 뿐이지요. 주위 평가도 좋을 리 없지요. 오히려 미움을 받기 일쑤일 겁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당신을 멀리하겠지요. 그러면 삶이 더욱 괴로워질 뿐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이 모든 불행을 짊어져야 할 테니까요.


아귀에 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귀신으로, 먹지 못하기에 더 먹으려고 애를 쓰지요. 아귀에 씌다라는 표현은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항상 굶주림과 갈증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귀 세계입니다. 남의 탓을 하는 것도 아귀 세계와 똑같습니다. 만족을 모르다 점점 괴로움에 빠지는 원리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욕망에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일 년에 1000만 엔을 벌겠다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것을 성취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다음 연도에는 2000만 엔으로 목표지수를 높이겠지요. 이 금액이 달성되면 또다시 3000만 엔이 될 겁니다. 이것이 욕망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충족될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언가를 성취하면 더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지요. 우리를 고통의 구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욕망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특히 남의 탓만 하고 싶은 욕망은 자신에 대한 우월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열등감을 키우게 하는 근원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불행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겪게 될 겁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다른 사람만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치졸한 행위입니다. 즉, 남의 탓은 당신의 격을 낮게 만드는 악(惡)인 것이지요.



비교하고자 하는 욕망 버리기

자기 입장에 따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료칸[에도 시대 후기의 조동종(曹洞宗) 승려이자 시인 그리고 서예가]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욕망 없는 삶의 본보기와 같은 인물이지요. 료칸은 원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출가하여 수행을 쌓아 훌륭한 스님이 된 분입니다. 상당히 출세를 했음에도 초가집에서 살아가며, 하루 종일 이웃에 사는 아이들과 공을 차거나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료칸은 서예에서도 높은 업적을 이룬 분이라 당시 높은 사람들의 부탁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것도 매우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서요. 하지만 료칸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아이들이 연을 주며 부탁하면 기꺼이 써주었다고 합니다. 요컨대 료칸은 욕망을 지닌 어른과는 일절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에게는 돈이 전혀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그저 행복하다는 삶을 실천한 분입니다.


어느 날 료칸이 초가집에서 자고 있는데 도둑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도둑은 값나가는 물건을 찾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실로 아무것도 없어, 이불이라도 훔쳐가자는 생각에 료칸이 덮고 있던 이불을 억지로 걷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 료칸은 말짱히 깨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속 잠든 척을 하며 일부러 몸을 뒤척이면서 도둑이 이불을 수월하게 걷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이 사람은 분명 이 이불이 갖고 싶은 게로구나. 그럼 주면 되지. 아마도 료칸은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요. 만약 료칸에게 한 줌의 욕심이 남아서 이 이불만은 가져갈 수 없다며 실랑이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다가 강제로 빼앗겼다면 료칸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료칸 또한 사람인지라 두고두고 분한 마음이 솟아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료칸은 한 줌의 욕심 또한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불마저 주었던 것이지요. 료칸의 이러한 자세야말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삶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료칸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그런 생각이 듭니까? 확실히 료칸은 훌륭한 인격자로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괴로움 없이 즐겁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료칸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생활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도둑이 들어왔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다면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이나 저는 사회 속에서 착실히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안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료칸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안에서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멋진 방안이 있습니다. 료칸이 도둑에게 이불을 내준 것은 불교인으로서 불교적 사고방식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실천하기 위해섭니다. 제법실상이란 쉽게 말하면 모든 일이 옳다 또는 만물은 모두 있는 그대로 좋다라는 사상입니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삼라만상은 자연의 조화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 조화를 자신의 욕망으로 거스르려 하면 사람은 괴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료칸이 도둑에게 이불을 건넨 것은 종교인으로서의 제법실상을 다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경찰이었다면 도둑에게 이불을 건네지 않고 도둑을 잡는 것이 제법실상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만약 그가 도둑이었다면 값비싼 물건을 훔치는 것이 제법실상에 속할 겁니다. 즉, 입장의 차이로 인하여 도둑을 맞는 것이 옳고, 도둑을 잡는 것이 옳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 옳게 됩니다. 같은 이치로 당신이 기업인이라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제법실상이 될 겁니다. 결국 각자의 입장이 가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제법실상인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워지지 않는 삶의 요령입니다.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나를 인정해주는 최고의 친구는 나 자신뿐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해야만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조건 있는 애정은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것은 이를테면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를 비추어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겁니다. 요즘 시험에서 90점 이상 받으면 장난감을 사준다는 등, 말 잘 들으면 초콜릿을 사준다는 등 조건을 내걸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이상적인 모습에 자신들의 아이를 끼워 맞추기 위함이지요. 이는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조건부 사랑이자 거래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아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하는 겁니다. 아쉽게도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경험을 들어보자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그 아이의 존재만으로 세상이 행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점점 욕심으로 변해간다고 합니다.


즉 부모가 꿈꾸는 아이의 이상형과 실제 자신의 아이를 비교하면서 이상형의 틀에 억지로 밀어넣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지요. 조건 없는 애정을 쏟아 부어야 할 자식도 비교 대상이 되면서 조건부 사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부모의 비교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조건 없는 애정이 조건부 애정으로 슬며시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매력은 베풀 때 생기고 구할 때 사라진다는 이치를 살펴보면 부모의 "이거 하면 네가 원하는 것 사줄게"라는 말은 부모로서 베푸는 행위인 줄 알지만 사실은 아이에게 요구하는 행위임을 의미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나는 아이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어째서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애정이 아니라 부모의 자기애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상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행위인 것이지요.


아무리 자기가 낳은 아이라 해도 부모 생각대로 성장할 수는 없지요. 자기 자신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들면 괴로움에 빠집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식에게조차 조건 없는 사랑을 쏟길 어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쏟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쏟아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실수를 범했을지라도 자신을 용서하세요. 자신에게 자신은 인생에서 단 하나뿐인 최고의 친구입니다.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다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최고의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며 오랫동안 괴로워했습니다. 언제나 저를 응원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사실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고 자신을 항상 인정해주는 최고의 친구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때

내가 변한다고 남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 버리기

남을 탓하는 것을 그만두면 무척 마음이 편해집니다. 예를 들어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을 상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시다. 그런 생각을 품으면 바로 상사에게 전해져 반감을 사게 될 것입니다. 특히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순간, 상대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시켜야만 하는 강제성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기란 매우 힘들다는 것을요. 아니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시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니 괴롭지요. 그 화살을 빙글 돌려서 자신을 향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괴로움이 전부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계속 남의 탓만 하면 영원히 인간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변화하면 상대방이 변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마세요. 상대방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면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행위는 상대방의 변화 여부와는 관계없습니다. 상대방이 변화하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저는 강연을 많이 하는데 지금까지 3만여 명 정도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중 자기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90퍼센트 이상은 됩니다. 반면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을 10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제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의 관리직이나 경영자들입니다. 제가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십시오"라고 말씀드린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주 날아옵니다.


"오구라 씨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저는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해서 그 원인을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늘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데 제 부하 직원들은 몇 번을 말해도 상사나 회사탓을 합니다. 그 직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무심코 한숨을 내쉴 뻔했습니다. 당신도 이미 알아차리셨겠지요. 이 질문자는 "저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라고 말하면서도 부하 직원이 잘못한 것은 부하 직원 탓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남을 탓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하 직원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에 서툽니다. 아니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해도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화가 풀어지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애를 써도 외부로 화살을 돌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잘 아셔야 합니다. 외부로 화살을 돌리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러므로 자신에게 자신도 모르게 외부로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심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곤 합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그러면 안 되지.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줘야겠다. 게다가 그것을 악의가 아닌 선의로 생각합니다. 베풀기의 한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상대방의 기분이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위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동입니다.


나는 옳다 나는 선의에서 행동한다라며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화살을 자신 쪽으로 돌리고 남 탓은 안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남을 올바르게 지도하겠다는 생각은 선의가 아니라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바람입니다.


상대방 또한 잘못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며 잘못된 그쪽을 올바르게 지도하려 하기 때문에 상대편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투고 싸우며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날 뿐입니다. 



실패해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때

계속 하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기

저는 요즘 들어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욱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저의 목표는 큰 것보다 작은 것에 초점을 맞추지요. 일찍 일어나기의 목표도 이와 관계가 깊습니다. 하지만 전 이 목표를 평생에 걸쳐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도 저를 관대하게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365일 중 100일을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265일은 성공했으니까요. 이는 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입니다. 이렇게만 지속시켜나간다면 당신도, 저도 조금씩 발전할 것입니다.


조금씩 발전한다는 개념을 복리 예금으로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루에 0.2퍼센트씩 금리가 붙는다면 356일 후에는 원금의 두 배가 됩니다. 즉 하루에 단 0.2퍼센트의 발전만을 목표로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 정도만 계속해도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실패하면 바로 포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실패한 자신이 싫어서 괴로움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패했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책망도 하지 말아야 하지요. "OK, OK, 괜찮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자."


만약 당신이 무언가에 실패했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실패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시점이 극적으로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면 체중을 몇 킬로그램 감량하면 OK라는 시점에서 계속하고 있으면 OK라는 시점으로 이동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시점 전환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순환 고리의 입구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지금 금연에 도전하고 있나요? 아니면 일찍 일어나는 것에 도전하고 있나요?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나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도전 중인 당신에게 OK를 보내세요. 자신을 향한 OK 사인이 많아지면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집짓기에 대입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기둥을 자신에게 보내는 OK라고 가정해봅시다. 그 기둥이 단지 몇 개밖에 안 되면 구조가 불안정하겠지만 많이 세워져 있으면 든든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단 하나만으로 전부를 지탱하는 큰 대들보를 세우는 것보다 작은 기둥을 많이 세우는 것이 더 수월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자신이 원하던 일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조정한다는 느낌이, 그런 실감이 더욱더 삶을 멋져 보이게 할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며 여유입니다. 결국 인생이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비결은 앞만 바라보며 작은 도전을 계속하는 데 있다고 풀이할 수 있겠지요.



그릇이 큰 사람으로 성장할 때

나에게 솔직한 삶이 바로 비교하지 않는 삶

여러 가지 방법론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이를 하나로 정리하면,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그릇이 큰 사람이란 집착하지 않는 사람, 욕망이 없는 사람, 무리하지 않는 사람, 이타심을 지닌 시람, 남을 탓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릇이 큰 사람은 맨얼굴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제가 리크루트에서 일하던 시절에 만난 상사가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옛날이야기입니다만 그때는 회사에서 대학교수나 유명인을 초청해 강연을 열어주었습니다. 대부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경제학이었지요. 하지만 전혀 티를 내지는 않았지요. 왜냐하면 못 알아듣는 척을 하면 인사고과에 마이너스로 채점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어느 날 또 강연이 있다기에 자리에 앉아서 다 알아듣는 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사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소린지 통 못 알아듣겠군."


그 순간이었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아! 사실은 나도 알아듣는 척했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라고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직감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속내를 털어놓은 상사가 제일 그릇이 큰 사람이구나.


그릇이 큰 사람이란 파 껍질 벗기듯 자신의 겉치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요. 당시는 제가 부하 직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겨우 눈치 채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철학서, 심리학서, 교육학서, 자기계발서 등을 엄청나게 찾아 읽었습니다. 어덜트 칠드런(adult children, 부모의 학대나 방임 등 기능 부전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심리적 외상을 지닌 사람)에 관련한 책만 스무 권 이상 읽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제 사고방식을 근본부터 바꿔버린 커다란 발견을 했습니다. 바로 융 학파의 정신과 의사 가와이 하야오 씨와 시인 다니구치 준타로 씨의 대담을 다룬 책 『영혼에 메스는 필요 없다』에서 본 사람은 성숙할수록 파 껍질 벗기듯 맨얼굴이 된다라는 글귀입니다.


당시의 저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글귀였습니다. 저는 그 글귀와는 정반대로 지식이나 이론을 제 몸에 휘감으면서 굉장히 수준이 높은 척을 하고 있었지요. 제 자신의 맨얼굴을 감추려 애를 무던히도 썼다고 할까요? 저는 멋져 보이고, 강하게 보이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글귀와 마주쳤을 때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맨얼굴인 녀석이 제일 멋있다라는 것을 말이지요. 약점을 태연히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멋진 사람이었구나……. 부족한 자신이라도 괜찮은 것이었구나…….


지식이나 이론으로 아무리 무장해도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이것만으로 큰 깨우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식으로 무장한 갑옷을 스스로 벗어버리고 맨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우선 욕망이 아닌 희망을 품고 뜻을 세울 것, 단 그 희망은 사회와 조화를 이룬 것이라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희망을 작은 목표로 설정하고서 조금씩 꾸준히 노력할 것, 몇 번씩 좌절하고 실패할지라도 몇 백 번씩 다시 시작하며 포기하지 말 것, 조금씩이라도 결심한 바를 실천하는 자신을 사랑할 것, 실패해도 부족해도 자신을 괜찮다고 받아들일 것,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만을 보며 자신축에 따라 자신에게 OK나 NG 사인을 보낼 것,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말 것. 즉, 지금까지 말씀드린 원칙을 지킨다면 결과적으로 당신들은 그릇이 큰 사람으로 변모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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