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ch 부자의 탄생

   
피터 번스타인·애널린 스완(역자: 김명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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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22000
2008�� 09��



>■ 책 소개
“부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재산을모으고,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미국 최고의 부자를 선정하는 ‘포브스 400’ 명단 발표 25주년을 맞아, 1982년부터2006년까지 명단에 오른 1302명의 부자들의 초상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그린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 부(자)의 진실과 이면을낱낱이 밝혔다. 아마존닷컴 "올해의 경제경영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25년간 쌓인 방대한 자료, 독창적인 분석, 400대 부자들 및 관련종사자, 비평가들과의 인터뷰, 다양한 일화와 후일담을 통해, 세계적 거부들은 누구이고, 재산은 얼마인지, 어떻게 성공을 거두고 부를 쌓았는지,어떻게 증대하고 소비(혹은 탕진)했는지 상세히 보여준다. 또한 25년간 "포브스 400" 명단의 변화를 추적해 경제 분야는 물론 사회문화,과학기술의 극적인 변화를 심도 깊게 해부한다.


■ 저자 
피터 번스타인
 - 지난 25년간「타임」「뉴스위크」「포춘」「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에서 일한 관록 있는 언론인이자 편집자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실용적지침서』와 『언스트앤영 세금 가이드』를 엮었다. ASAP미디어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애널린 스완 - 지난 25년간「타임」「뉴스위크」「포춘」「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에서 피터 번스타인과 함께 일한 관록 있는 언론인이자 편집자다. 마크 스티븐스와 공동으로『드 쿠닝: 미국의 대가』를 저술했다. 이 책은 2005년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즈」 북 리뷰에서 선정한 "올해의10대 도서"에 올랐다. ASAP미디어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 역자 
김명철
 -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미네소타 대학에서 유학한 뒤 종합상사 및 금융 업체에서 해외 마케팅 및 투자관련 업무를, 미국 인터넷 솔루션 업체인 eComfinder 한국지사장을 지냈다. 현재 경제경영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 출판번역 전문 번역가들이 함께 설립한 (주)바른번역, "왓북" 의 대표이기도하다. 베스트셀러『경제학 콘서트』를 비롯, 『밀리언달러 티켓』『새로운 미래가 온다』『비즈니스 탈무드』『왜 자부심이 돈보다 중요한가』『집이 아프면온 가족이 아프다』『티셔츠 경제학』 등 총 30여권의 책을 번역했다.


김고명 - 성균관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현재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하며 번역가 모임인 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_ 포브스 400대 부자들의 모든 것


제1부 부자, 그들은 누구인가
1장 학벌, 두뇌와추진력 
2장 모험 
3장 행운, 그리고 타이밍 
4장 승부욕 


제2부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나 
5장 블루칼라 출신억만장자 
6장 서부의 부호들 
7장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8장 월스트리트를 넘어 


제3부 그들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나 
9장 과시적소비 
10장 상속자들의 생활 
11장 가족 불화 
12장 기부활동 
13장 권력과 정치 


맺는말 _ 돈과 행복 


감사의 말 
부록 _ 1982-2006 포브스 400 명단
주석





The Rich 부자의 탄생


머리말 _ 포브스 400대 부자들의 모든 것

포브스 400은 미국의 부자들을 일컫는 대명사다. 재산 축적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맬컴 포브스는 1982년 처음으로 400대 부호의 명단을 발표했다. 오늘날 포브스 400대 부호의 명단은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지만, 이 명단이 탄생한 것은 올해로 고작 26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포브스 400은 당대의 특유한 산물이며 근래의 역사를 생생하게 반영한다.


포브스 400이 태어날 당시는 능력이 탁월하고 활력이 넘치는 개인 및 기업가들의 시대로, 기업의 힘을 강조하던 전후 미국 사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GDP는 포브스 400이 발표된 1982년의 2배에 달하며, 조만간 3배가 될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의 개인자산 증가 속도는 이보다 빠르다. 1982년에 발표된 포브스 400 명단에는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부호가 13명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최소 10억 달러의 재산이 있어야 명단에 낄 수 있다. 1982년에는 400명 전체의 재산이 미국 GDP의 2.8%였지만, 2006년에는 이 수치가 9.5%로 뛰었다.


포브스 400은 현대 미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가 어떤 사회적 가치(혹은 꿈)를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미국에서는 훌륭한 부자란 진취적인 기업가들이며 돈을 버는 놀라운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일자리, 활력, 아이디어, 심지어 즐거움까지도 선사했다. 또한 20세기 말에 엄청난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고 첨단 금융기법을 창안했으며, 미국산업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어왔다.



제1부 부자, 그들은 누구인가

학벌, 두뇌와 추진력

미국인의 머릿속에는 좋은 학벌이 성공의 보증수표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간에 나온 수많은 연구보고서도 학교교육이 장래소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떠돌이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데이비드 머독 같은 사람은 어떻게 40억 달러가 넘는 부동산/식품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또한 열여덟 나이에 단돈 32달러를 손에 쥐고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온 토머스 플래틀리가 그 이상 학교교육을 받지 않고도 13억 달러의 부동산 거부가 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부자가 된 배경에는 아이비리그 같은 명문대 간판은 없었다는 것이다.


서브웨이를 창업한 프레드 딜루카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헌트와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이 부자가 되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찾고 있던 딜루카는 친척에게 1,000달러를 빌려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다. 나이 열일곱에 코네티컷 주의 브리지포트에서 영업허가증도 없이 아주 작은 가게를 시작한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서브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2006년 딜루카의 재산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충분한 학교교육을 받지 않고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높은 학력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앤서니 메이요 교수는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사람에게 유리한 것은 단지 실패할 가능성이 적고 성공에의 문이 열려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2006년 재산 52억 달러)는 학력이 갖는 유리한 점에 대해 한 가지를 덧붙인다. 최첨단기술이 주도하는 현재의 미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고도의 기술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 지식은 대학 이상의 학교교육을 통해서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 캠퍼스에서 사업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같은 창업자들 상당수가 대학기숙사에서 탄생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 역시 대학교육의 덕을 톡톡히 받은 사람이다. 버핏은 네브래스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학 두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하버드에 불합격하는 바람에 컬럼비아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버핏은 가치 투자의 대부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 강의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레이엄 교수가 말하는 투자기법은 내재가치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주식에 주목하라는 것이었는데 버핏은 이 투자법을 마치 교리처럼 평생 실천했다. 버핏이 그레이엄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행운, 그리고 타이밍

사업이 위험스러운 게임이라면 반대로 행운의 게임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 크리스토퍼 젠크스 교수가 1972년에 발표한 『불평등: 미국에서 학교교육과 가문이 갖는 영향력에 대한 재평가』에서 내린 결론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는 미국인의 소득을 결정짓는 요소로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 못지않게 운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젠크스 교수는 친구나 지인들이 직장을 소개해주는 일부터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에게 맞는 구인회사를 만나게 되는 일까지 모두 운에 속한다고 한다.


자수성가형 부호 로스 페로는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동창 저녁 모임에 나가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세상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습니다." 페로가 말하는 세상사란 해군에 입대한 일과 항공모함에 배치되지 못한 때 마침 그곳을 방문한 IBM 중역으로부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제안을 들었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페로는 당시 IBM이 어떤 회사인지 몰랐다. IBM 중역은 이 가난한 텍사스 출신 해군에게 직장을 제안한 첫 번째 사람일 뿐이었다. IBM에 입사한 페로는 회사에서 최고의 영업사원이 된 다음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회사의 조직도처럼 규칙적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규칙한 거미줄을 더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허트포드셔 대학 심리학과 리 와이즈먼 교수는 10년간 행운에 대해 연구한 결과 사람의 행동과 생각에 따라 행운과 돈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결론을 얻었다. 와이즈먼 교수는 이를 네 가지 원칙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2003년 『스켑티컬 인콰이어러』에 게재한 글에서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은 기회를 잘 만들고 포착하는 사람, 운이 따르는 결정을 직관적으로 내리는 사람, 긍정적인 태도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즉 운이 나쁜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이는 재앙이지만, 포브스 400대 부호들처럼 운 좋은 사람에게 생긴 좋지 않은 일은 원래 더 나쁜 일일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행운은 변덕쟁이라서 가장 힘들 때 도망가기도 한다.


잘못된 결정으로 포브스 400대 부호의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사라지기도 쉽듯이, 마찬가지로 완벽한 타이밍을 택한 결정은 수십억 달러를 벌게도 해준다. 마크 큐반은 댈러스 매버릭스를 소유한 억만장자로 자기 회사인 브로드캐스트닷컴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매각한 기업매각의 교과서 같은 인물이다. 큐반은 동업자 토드 와그너와 함께 닷컴 열풍이 한창 불기 시작하던 1995년 브로드캐스트닷컴을 설립했다. 큐반은 그 당시에도 이미 백만장자였는데 마이크로솔루션이라고 하는 정보처리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1990년에 많은 돈을 남기고 매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그너와 큐반이 1998년 7월 브로드캐스트닷컴을 증시에 상장했을 때의 성공담은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주가가 상장 당일 18달러에서 시작한 뒤 그날 종가가 62.75달러로 마감되었다. 이것은 신규 상장주식의 상장 당일 주가 상승폭으로는 미국 증권시장 역사상 최대로 기록되었다. 1년 뒤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할 때 그들은 회사를 야후에 57억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큐반은 12억 달러에 달하는 야후 주식을 받았다). "인터넷기업의 주가가 그렇게까지 뛰어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큐반의 말이다.

 


제2부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나

블루칼라 출신 억만장자

포브스 400에 이름을 올린 많은 부호가 기초 재화와 서비스―예를 들어 수도설비나 중고차 부품 제작, 프렌치프라이나 피자 장사, 레슬링이나 레이싱 시합운영, 정원 가지치기, 쓰레기 처리 등―로 큰돈을 모았다. 이들의 성공 전력은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대중적이며 서비스 지향적인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블루칼라 사업으로서 지난 25년 동안 포브스 400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175명이다. 그리고 이들의 재산은 매년 포브스 400 총재산의 20% 정도를 차지했다.


저기술사업으로 큰돈을 벌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다른 복잡한 산업에서도 필요로 하는 품성, 즉 자제력과 끈기와 꼼꼼함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면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회사 및 고객과 끈끈한, 거의 혈연에 가까운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저기술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단지 기존의 것을 개선하거나 남들과 다르게 제공하기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로스엔젤레스 커뮤니티칼리지를 중퇴한 데이비드 골드는 25년 전에 잡화점의 개념을 조금 바꾸어 99센트온리를 열였다. 2006년까지 골드는 99센트온리를 230여 개 점포를 거느리고 연매출이 10억 달러를 넘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시장조사기관 AC닐슨에 따르면 면적이 2,040m2에 달하는 99센트온리의 점포들은 m2당 약 2,780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할인업계 최고치며 편의점과 약국(미국의 약국은 일용품, 화장품, 책, 식품 등도 함께 판매한다―옮긴이), 월마트 등의 매출을 웃도는 수치다. 골드가 포브스 400에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던 2003년, 그의 재산은 약 8억 6,000만 달러였다.


성공을 보장하는 한 가지 특징은 기회를 발견하고 포착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블루칼라산업에서는 기회를 포착하기가 무척 어렵다. 블루칼라산업은 고객지향적 산업인데 고객들의 마음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가령 1959년에 피자가 인기 음식이 될 줄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시 피자는 대도시의 이탈리아 식당에서도 거의 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해 마이클 일리치와 그의 아내 매리언이 1만 달러를 모아 고향 디트로이트에 리틀시저스라는 피자가게를 열었다. 약 50년이 지난 지금, 리틀시저스는 2,300개 점포를 거느린 전국적인 피자체인이 되어 번성하고 있다. 재산이 15억 달러쯤 되는 일리치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야구팀과 레드윙스 하키팀의 소유주기도 하다.


틈새시장에서 조그맣게 시작해 제2의 99센트온리, 제2의 리틀시저스로 성장하는 기업이 분명히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도 소비자의 취향은 죽 끓듯 변할 것이고, 기존 상품에 대한 새로운 상품의 공세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블루칼라 부호들도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사람이 컴퓨터칩이나 헤지펀드를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론 재벌들에게도 쓰레기를 치워줄 사람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예전부터 할리우드는 엔터테인먼트 부호들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누릴 것을 모두 누리며 살던 스타와 사업가들 중에서 6명이 1982년 첫 포브스 400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에는 워서먼, 밥 호프, 조지 루카스도 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할리우드는 포브스 400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많은 부호들이 영화에 투자하거나 LA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바뀌었다. 예전에는 영화제작자나 영화사 사장 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각광을 받았다. 그중에는 출연료가 5,000만 달러에 이르는 톰 행크스나 니콜 키드먼 같은 스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할리우드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관객에게 새로운 형식의 엔터테인먼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는 사업가들이다. 


그 예로 지난 25년 동안 테드 터너, 존 맬런, 스탠리 허버드 같은 사업가들은 케이블 TV와 위성 TV를 확산시켰는데 사람들의 여가시간과 소득이 늘어나면서 이 사업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맥, 아이팟, 아이폰 등 인터넷 시대에 맞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을 만들어 휴대장비가 엔터테인먼트의 주요 유통채널이 되게 했다. 그 후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광고를 파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편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거느린 루퍼트 머독과 섬너 레드스톤 등도 업계를 휘젓고 다니며 신문, 잡지, 방송국, 음반사, 할리우드 영화사, 테마파크, 웹사이트 등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삼키며 모든 유통채널에 대한 공급력을 갖추었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산업만큼 변화무쌍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산업도 없다. 때문에 앞으로 어디에서 미디어부자가 탄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뉴요커』의 미디어 비평가 켄 올레타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아무도 모르며, 상반되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인터넷이 대중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고 미디어를 민주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나 책을 출판하고 동영상과 TV 프로그램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으며, 세계의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기업이 기업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구글이 유튜브를 사들인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런 기업들은 웹의 위협을 받으면서, 동시에 웹을 위협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커다란 역설입니다. 우리는 미디어가 분산되고 민주화되는 것을 보는 동시에 더 많은 영향력이 소수의 회사에 집중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것은 단 한 가지다. 새로운 물결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큰돈을 번다는 사실이다.

  


제3부 그들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나

기부활동 

1997년 가을, 테드 터너는 당시로서는 기부 역사상 최고액을 희사하기로 했다. 과거 그는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하면서 미국의 거부들이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말해 여러 기업가들의 빈축을 샀다. 그는 특히 미국 1, 2위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심하게 비판했다. 버핏은 그때까지만 해도 죽을 때까지 재산을 내놓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터너는 맨해튼에서 열린 UN 만찬회에서 10년 동안 해마다 UN에 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예상했던 대로 청중(그리고 자선사업계)은 놀라 자빠졌다.


하지만 10년 동안 터너에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터너는 약속한 10억 달러 중 6억 달러를 지급한 상태였으나 타임워너와 아메리칸온라인(AOL)의 합병으로 주식 손실이 커서 기부금 지급기간을 10년에서 15년으로 늘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포브스 400의 구두쇠들이 터너의 비판에 영향을 받았는지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는 1997년에 8,000만 달러를 기부했지만, 터너의 발표 후 2년 만에 다시 28억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2006년 중반까지 빌 앤 멜린다 게이츠재단을 자산 규모 300억 달러의 거대 재단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터너의 기부금을 푼돈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은 워렌 버핏이었다. 2006년 6월, 빌 게이츠 부부의 초대로 국제기구 관계자, 자선사업가(당시 90세였던 자선사업계의 대부 데이비드 록펠러 포함), 과학자, 학생, 언론인 등 300여 명과 버핏 집안, 게이츠 집안의 사람들이 뉴욕 공공도서관 본관의 셀레스트 바토스 포럼에 모였다. 그들은 전설의 투자자 버핏이 재산의 85%(약 310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서명하는 광경을 보았다. 기부금의 약 70%는 해마다 16억 달러씩 빌 앤 멜린다 게이츠재단에 지급되기로 약속되었고, 나머지는 버핏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여러 재단에 귀속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생명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큰돈이 기부되는 것을 보면 21세기의 첫 10년이 자선사업의 황금기가 확실하다고 썼다. 버핏은 단일 기부금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비판자들도 인정하듯 순수한 기부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다. 자선사업을 하면 재단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버핏은 이를 포기하고 빌 앤 멜린다 게이츠재단에 재산을 기부했다. 『부자』의 저자 리처드 코니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부의 역사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행동은 드물었다." 


민간자선사업은 오래전부터 위대한 기업가의 징표였다. 카네기와 록펠러 가문이 자선사업계의 전설이라면, 그들보다 앞서 활동했던 조지 피바디는 근대 자선사업의 아버지다. 피바디는 1795년 매사추세츠 주의 댄버스에서 가난한 농부와 피혁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현명하게 투자해 상인과 국제금융업자로 크게 성공했다. 자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모은 돈은 약 1,200만 달러(지금 가치로 1억 8,500만 달러)였다. 그중 2/3 이상을 자선사업에 썼는데,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행하면서 목격한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일대학의 피바디 자연사박물관과 미국 최초의 음악학교인 피바디음악대학을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조지타운 대학의 자선사업학 교수 제임스 앨런 스미스는 기부활동을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자선사업은 늘 미국인이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 되었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지만, 우리는 자선사업의 도움으로 그에 대응할 지적자본을 개발/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예는 미국의 고등교육계에 일어난 변화다. 미국의 자선사업은 교양과목 위주로 수업하며 학벌주의에 매여 있던 고만고만한 대학들을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바꿔놓았다. 다른 나라의 우수한 대학들이 예산을 줄이고(그리고 명성을 잃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교를 변화시킨 것은 분명히 작지 않은 업적이다. 


권력과 정치

예로부터 정치는 큰돈이 들어갔다. 그래서 미국 최고의 부자들이 정치두뇌집단에 자금을 대고 527후원회에 거액을 기부하거나 실제로 출마하는 등 정치의 모든 영역에 연관돼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 포브스 400이나 상속자 중 직접 출마해서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극소수만 권력을 잡았고, 그중에서도 극소수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커먼코즈의 부대표였던 셀리아 웩슬러는 "통계적으로 선거에 큰돈을 쓴 사람들은 거의 다 낙선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02년 중간선거 후보자들 중 자비를 가장 많이 쓴 후보 10명은 모두 선거에서 패했다. 실제로 부자라는 사실이 선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공화당 고문 존 그로타가 1998년에 논평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돈이 가장 많은 후보가 아니라 다양한 유권자에게서 소액 후원금(100~200달러)을 가장 많이 받는 후보다.


정계에 입문한 기업가들이 가장 큰 상으로 여기는 대통령직은 가장 손에 넣기 어려운 상이기도 하다. 넬슨 록펠러는 1959년에서 1979년까지 뉴욕 주지사로 일하면서 1960년, 1964년, 1968년에 대권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지 소로스, 페로, 마이클 블룸버그 등 포브스 400 부자들이 정치에 쏟아 붓는 돈이 어마어마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재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2001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블룸버그가 쓴 7,200만 달러는 재산의 2%도 되지 않았다. 사실 블룸버그는 재산보다 더 귀중한 것을 걸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바로 그의 명성이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만둘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정치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페로는 대선에 출마하기 전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비록 변덕스럽긴 했어도) 사업가였다. 하지만 대선을 두 번 치른 후에는 놀림감으로 전락해 말만 거창한 괴짜라는 소리를 들었다. 경영에서는 승자였지만 대중의 인기투표에서는 패자였다. 애리아나 허핑턴도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나 얼마 안 가 선거운동 때문에 상속 재산을 낭비해버렸다. 블룸버그도 첫 번째 시장 선거에서 두 사람과 똑같은 운명을 맞을 뻔했다.


하지만 재산만큼 변덕스러운 것이 여론이다. 블룸버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가였으나, 두 번이나 뉴욕 시장을 맡으면서 대선출마설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다. 지난 6년 동안 시정에 전념하면서 해마다 연봉으로 고작 1달러를 받았는데도, 블룸버그의 재산은 크게 늘어났다. 시장에 선출되었을 때 블룸버그의 재산은 40억 달러였는데, 「포브스」가 측정한 바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재산은 55억 달러이며, 다른 자료들은 더욱 높게 추정하고 있다. 억만장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맺는 말 _ 돈과 행복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다. 돈 없이도 행복했던 사람은 돈이 생기면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 마크 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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