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컨택트

   
김용섭
ǻ
퍼블리온
   
18000
2020�� 04��



■ 책 소개

 

접촉 불안이 가져온 일상의 대전환기! 우린 어떻게 소통하고 연결될까?
초연결 시대의 새로운 진화 코드 ‘언컨택트’!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스런 현실과 마주했다. 개인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우리의 일상이 흔들렸고, 이 위기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일자리의 위기이자 소득의 위기, 노후의 위기, 정치의 위기 등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전방위적 위기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에도 전염병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 사회 전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언컨택트’가 중요한 키워드이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언컨택트(Uncontact)는 비접촉, 비대면, 즉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언컨택트는 단순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불안하고 편리한’ 시대에 우리가 가진 욕망이자, 미래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가 트렌드다.

 

이 책은 대전환을 맞이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지각변동의 중심에 언컨택트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것이 우리 욕망의 진화 과정임을 분석함과 동시에, 코로나19 위기 이후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지,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등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담아냈다.

 

■ 저자 김용섭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트렌드 분석가이자 경영전략 컨설턴트, 비즈니스 창의력 연구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GS, CJ, SK, 한화, 롯데 등 주요 대기업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외교부 등 정부기관에서 2,000회 이상의 강연과 비즈니스 워크숍을 수행했고, 150여 건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주간동아〉, 〈머니투데이〉, 〈세계일보〉, 〈국제신문〉, 〈비즈한국〉 등 다수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KBS 1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 〈박종훈의 경제쇼〉,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생방송 오늘〉, 〈성공예감〉, 〈생방송 토요일 아침〉, KBS 월드라디오 〈생생코리아〉, 〈한민족 네트워크〉, CBS 라디오 〈뉴스로 여는 아침〉, SBS CNBC 〈경제, 굿앤노굿〉, 평화방송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TBS FM 〈유쾌한 만남〉, 〈김갑수의 마이웨이〉 등 각 프로그램에서 트렌드 관련 고정코너를 맡아 방송했다. SERICEO에서 트렌드 브리핑 〈트렌드 히치하이킹〉을, 휴넷CEO에서 〈트렌드 인사이트〉를 통해 대한민국 CEO들에게 최신 트렌드를 읽어주고 있으며, 다수 기업들을 위한 자문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서로 『펭수의 시대』, 『라이프 트렌드 2020 : 느슨한 연대(Weak Ties)』,『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 대한민국 세대분석 보고서』, 『라이프 트렌드 2019 :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라이프 트렌드 2018 : 아주 멋진 가짜(Classy Fake)』, 『실력보다 안목이다』, 『라이프 트렌드 2017 : 적당한 불편』, 『라이프 트렌드 2016 :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집요한 상상』(공저),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엄마의 상식』, 『트렌드 히치하이킹』, 『페이퍼 파워』, 『디자인 파워』(공저), 『소비자가 진화한다』(공저), 『날카로운 상상력』, 『대한민국 디지털 트렌드』 등이 있다.

 

■ 차례
PART 1 일상에서의 언컨택트 :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마스크 키스와 코로나 모텔 : 우린 다 계획이 있다!
불안감이 성욕을 이길 수 있을까?
레니나 헉슬리는 왜 존 스파르탄에게 섹스를 하자고 했을까?
사만다와 사랑을 나눈 테오도르는 현실의 당신일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와 엘런 테리는 언컨택트한 것인가?
왜 독일 내무장관은 메르켈 총리의 악수를 거절했을까?
왜 미국에선 의사도, 야구선수도 악수를 금지하려 할까?
가장 친밀한 인사인 비주,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구내식당도 바뀌는데 회식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전 세계로 확산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진짜 얼굴을 숨기고 싶어서 쓰는 다테마스크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 : 초연결 시대의 역설
언컨택트가 어떻게 투명성을 높여줄까?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운이 나빴던 걸까?

 

PART 2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 : 기회와 위기가 치열하게 다투는 과도기!
재택근무 확산의 우연한 계기
재택·원격근무는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오피스 프리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
대기업의 주주총회 전자투표, 왜 10년이나 걸렸을까?
대규모 컨퍼런스와 전시회의 진짜 목적은 교류다!
기업 강연 시장의 붕괴? 아니면 새로운 교육 시장의 기회?
학교 수업 방식과 언컨택트 : 홈스쿨링 & 무크
더 가중된 대학의 위기 : 언컨택트 시대에 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드라이브 스루의 진화 : 진료소에서 장례식까지
쇼핑에서의 언컨택트 : 고객과 마주치지 마라
사이렌 오더와 아마존 고 : 말 한마디도 필요 없다
증강현실로 쇼핑하고, 혼합현실로 일하는 시대
코로나19에 대처한 중국의 QR코드와 안면인식 기술 : 빅브라더와 언컨택트
공장 폐쇄를 겪은 기업에게 공장 자동화란?
기업 업무에서 RPA도입 확산과 언컨택트
왜 아마존은 자율주행 배송로봇에 투자하는가?
e스포츠 시장이 더 커질 또 하나의 이유
언컨택트를 만난 의료 산업 : 비대면 진료와 원격의료
언컨택트 이코노미와 글로벌 IT 기업들의 퀀텀 점프

 

PART 3 공동체에서의 언컨택트 : 더 심화된 그들만의 리그와 양극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 Private & Premium
이웃의 부활과 자발적 고립화 : 우리가 진짜 원하는 관계는?
느슨한 연대와 언컨택트 사회 :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관계 스트레스와 ‘미안함’이란 감정의 거북함
새로운 차별이 된 언컨택트 디바이드와 사회적 숙제
종교와 언컨택트 : 스님과 신부님이 유튜버가 되어야 하는 걸까?
언컨택트 사회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동물이다
언컨택트 시대의 정치 : 선거운동과 정치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올까?
초연결 사회와 언컨택트 사회는 반대말이 아니다
초연결 사회와 언컨택트 사회가 주는 딜레마, 어디까지가 사생활일까?
글로벌화가 초래한 딜레마 : 다시 단절의 세계가 될 것인가?
양극화와 디스토피아 : 언컨택트가 우리에게 던진 고민

 




언컨택트


일상에서의 언컨택트 :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마스크 키스와 코로나 모텔 : 우린 다 계획이 있다!

2020년 2월 20일, 필리핀의 도시 바콜로드(Bacolod)에서 열린 220쌍의 합동결혼식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합동결혼식 사진을 무수히 봤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키스하는 장면은 처음 봤을 것이다. 인구 51만 명 규모의 바콜로드에선 시 정부 주최의 합동결혼식이 매년 전통행사로 치러지는데, 다른 해와 달리 2020년 2월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모든 예비부부에게 결혼식 전 14일간의 동선과 여행 기록을 제출받았고, 식장에 입장하는 모든 하객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고, 체온 측정과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하게 했다. 주례자와 하객들도 다 마스크를 썼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린 안전하고 평온할 때만 사랑을 시작하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사랑에 빠진다.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통해 행복과 희망을 얻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나 업무를 위해서 만나는 방식을 화상회의를 비롯한 언컨택트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선 쉽게 납득이 간다. 어떤 방식이든 일만 잘 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언컨택트가 가장 어려운 것이 남녀 간의 애정 관계다. 사랑과 결혼은 스킨십과 키스 등 긴밀한 컨택트와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자꾸 생긴다. 이것 자체가 변화다.


‘마스크 키스’는 메르스 때도 있었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2015년 6월 19일자 <대구매일신문> 1면 톱에 실린, 대구의 버스정류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 키스하는 연인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1면에 실은 건, 메르스가 심각해도 결국 우린 이겨낼 것이고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해석을 하자면, 당시 정부의 대응이 지탄을 받고 있던 시기였는데, <대구매일신문>에선 정부를 지지하는 뉘앙스로 ‘메르스가 심각하긴 해도 메르스 공포는 지나치니 너무 오버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스크 키스 사진을 썼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20년 1월 20일부터 한 달간은 사람들이 덤덤했다. 2월 18일까지 31명이 발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다음날부터 하루에 두 배씩 누적 확진자가 늘었다. 세계 최고의 속도로 검사를 하고, 동선을 추적하고, 격리를 한 덕분에 이후 5일간은 2.5배 증가로 한풀 꺾였지만, 2월 확산된 불안이 3월까지 이어졌다. 사회적 관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자는 정부나 지자체의 권고와 시민의 자발적 공감이 이어졌다.


필자는 이 시기를 주목했다. 우리가 가진 불안이 우리의 연애와 애정표현까지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추가적인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역학조사로 얻은 동선 정보가 나오기 시작한 1월 말에 코로나 모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지역별 관심도를 보면, 대구광역시가 코로나 모텔 검색을 가장 많이 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확진자의 3/4 정도가 대구에서 나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위기 속에서도 사랑은 멈출 수 없다.


전염병은 우리에게 접촉에 대한 불안감을 깊이 각인시켰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 19는 종결되겠지만, 우리가 겪은 불안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아무 일 없었듯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가장 친밀한 인사인 비주,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비주(Bisou, Baiser)’는 프랑스식 인사법으로 서로 뺨을 맞닿듯 가까이 붙이고 입술로만 쪽 소리를 내는데, 이때 양쪽 뺨을 번갈아서 한다. 보편적으로는 두 번을 하지만 남프랑스의 지역에서는 세 번하는 곳도 많고, 심지어 북프랑스에서는 네 번 하는 지역도 있다. 볼 키스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볼에 입술로 직접 뽀뽀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기 입술로 소리만 낸다. 서로의 뺨도 직접 맞닿지 않고 닿은 듯 가깝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인사지만 아무나와 비주를 하는 건 아니다. 여자끼리 혹은 남녀끼리는 비주를 하지만, 남자끼리는 매우 친한 사이, 혹은 가족이나 친척 관계일 때만 한다. 물론 결혼이나 생일, 특별한 파티 때는 남자끼리도 한다. 그런데 이 인사법을 자제해 달라고 프랑스와 스위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비주와 악수의 결합 같은 손등 키스는 16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었고,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선 여전히 통용되는 인사법이다. 친한 사이에서 만나거나 헤어질 때 건네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인사다. 이 손등 키스는 사적 관계의 남녀 사이에서만 하는 것이지 비즈니스 관계에선 하지 않는다.


악수나 포옹까진 한국인도 편하게 한다. 하지만 비주는 낯설다. 상대가 비주 인사를 하면 당황스러워하는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우리의 문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이 되고 있고, 트렌드도 유튜브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동시에 퍼지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외여행은 이미 보편적 문화가 되었을 정도이고, 해외 유학, 해외 취업, 국제 결혼도 점점 늘어간다. 심지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도 급증세다. 이는 달리 말해 외국의 다양한 문화가 한국 사회에 점점 더 깊숙이 유입된다는 의미다. 포옹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듯, 이제 비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악수보다 포옹이, 포옹보다 비주가 더 친밀한 인사다. 인사 방식이지만 연인이 할 때는 스킨십이자 애정 표현이 된다. 손잡고 포옹하고 키스하는 건 연인의 전형적인 스킨십 유형이다. 그동안 우리의 인사법은 신체적 접촉을 관대하게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접촉에 대한 감염의 불안, 공포는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접촉 중심의 인사법에 대한 변화를 간절히 욕망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커진 것이다.


언컨택트가 어떻게 투명성을 높여줄까?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파를 막는 방법 중 필수가 확진자의 동선 파악이다.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예외 상황인 건데, 확진자 동선 파악 과정에서 불륜을 비롯, 자신의 부끄러운 일상의 비밀이 드러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에겐 위험 요소다. 자신이 확진자가 아니어도, 확진자와 접촉한 것만으로도 동선이 노출된다. 결국 우리 모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일상이 노출될 가능성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코로나19는 누군 만나고, 어떤 모임에 나가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등 평판 관리와 투명성에 대한 자각에 좀 더 눈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받고, 뇌물 주고받고, 짬짜미로 계약하는 것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관성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이것이 문제라는 자각이 부족했던 이들도 생각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접대 없이는 비즈니스가 안 된다는 한국적 마인드를 깨는 데 사회적 투명성과 함께 언컨택트 트렌드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직접 대면하면서 몰래 하던 것과 달리, 언컨택트의 방식으로 하게 되면 근거가 다 남는다. 가장 대표적인 언컨택트가 캐시리스(cashless)다.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스웨덴이다. 1661년 유럽 최초로 지폐를 만든 스웨덴이 지금은 현금을 세계 최초로 없애려는 중이다. 스웨덴의 상점 상당수는 ‘현금 없는 가게’라는 표시를 써 붙였고, 상점에서 손님이 현금을 낼 때 거절할 수 있는 법도 만들었다. 심지어 2015~2016년 스웨덴 정부가 새로운 크로나 지폐를 발행했는데 아직까지 실물로 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또 수년간 현금을 써본 적이 없다는 스웨덴 사람들도 많다.


캐시리스는 모든 국가들이 고려하는 미래의 금융 환경이다. 스웨덴을 비롯, 북유럽 국가나 영국 같은 금융 강국들은 캐시리스 금융 서비스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폐나 동전 없이 신용카드나 디지털 화폐로 거래를 하면 실물이 오가지 않기 때문에 화폐를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도 줄이고, 현금을 보다 생산적인 영역으로 흐르게 하기도 용이하며,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직접 대면, 직접 접촉의 컨택트 시대엔 사람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컸고, 이에 따라 부정과 비리에 연루될 기회도 더 많았다. 사과 상자에 현금을 넣어 차 트렁크에서 꺼내 다른 차 트렁크로 옮겨 싣는 일도, 봉투에 현금을 넣어 슬쩍 찔러주는 것도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박카스 박스에 5만 원권을 넣으면 얼마, 100달러 지폐로는 얼마가 들어가고, 007가방에는 얼마가 들어가는지 계산해보기도 한다. 서로 입 다물면 들키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짬짜미든 작당이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캐시리스의 시대에는 이게 다 불가능하다. 돈이 어디서 어디로 갔는지 근거가 싹 남기 때문이다. 캐시리스로의 전환은 음성자금, 지하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회적 투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가 캐시리스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다.


물론 투명성, 효율성은 누구나 바라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그걸 거부하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기술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는 그 문제를 풀어갈 방법을 찾아줄 수 있다. 언컨택트는 결국 사회적 진화의 산물이자, 우리가 가진 라이프스타일에서의 기본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당연하던 컨택트를 대신해 당연하지 않았던 언컨택트에 대해 우리가 자꾸 관심을 가지고 방법을 모색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화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의 언컨택트 : 기회와 위기가 치열하게 다투는 과도기!

재택·원격근무는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의 태도와 라이프스타일도 바뀐다. 원격근무를 한다는 건 우리의 삶의 방식도 바뀐다는 의미이고, 컨택트 중심에서 언컨택트 중심으로 전환되는 삶이 가질 장점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격근무는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에겐 익숙한 문화로,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근무가 확산되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Z세대 직장인들에겐 원격근무 선호도가 더 높다. 네트워크 환경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원격근무 선호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연근무제는 복지 이슈이기도 하다. 유연근무제를 통해 원격근무, 재택근무도 좀 더 수월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복지 혜택으로 보는 셈이다. 맞벌이가 필수가 되면서 출산 후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도 커졌고,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녀가 되는 여성 문제도 커졌다. 이를 해소하는 데에도 유연근무제이자 원격근무, 재택근무는 중요하다.


장점도 많고 합리적인 제도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원격근무는 일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쉽다 보니 오히려 워라밸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원격근무가 통제하지 않고 자율로 하다 보니 느슨해져서 일을 더 못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반대인데, 이 또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으론 비대면 비접촉이지만 네트워크 연결에선 과잉 대면, 과잉 접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원격근무를 위해선 시간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중요하다. 경계를 확보하기 위해 업무시간 외에는 직장과 일부러 연결을 끊는 직원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를 위한 법은 아니지만, 프랑스는 2017년 1월 1일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발효시켰다. 2013년 독일 노동부는 업무시간 이후엔 비상시가 아니면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영국은 2020년 4월 노동당 대표가 된 레베카 롱베일리가 항상 연결되는 ‘24/7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여러 정부와 기업들에서 이런 법적 제도나 지침을 만들어낸다는 건 결국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12월, 공무원 갑질 행위의 개념과 유형을 구체화한 공무원 행동 강령 개정안이 시행되었는데, 그 내용 중 휴일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산하기관에 카톡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거나 떠넘기는 것도 갑질에 해당되며, 이는 공무원 징계 사유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것 자체를 법제화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 권리를 포함하는 법 제도는 일부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향후 원격 근무, 재택근무가 확산될수록 더 중요해지는 법 제도다.


원격근무가 외로움, 소외감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뜩이나 현대인들은 정신건강 문제가 적지 않은데, 원격근무의 확산은 자칫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격근무를 하면서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꼈을 때 이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도 앞으로 기업이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원격근무를 위한 IT 솔루션만 지원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원격근무가 일하는 방식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것이기에, 단순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장밋빛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문화를 바꾸는 것이기에 당연히 적응과 문제 개선을 위한 시간과 이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드라이브 스루의 진화 : 진료소에서 장례식까지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등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주로 쓰던 방식이었다. 차를 탄 채로 주문하고 물건을 받아서 가는 건데, 한국은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에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응용했다. 차에 탄 채로 검진을 받을 수 있어 접촉을 최소화하고, 대기자 간 감염 방지, 검체 채취 시간 단축, 의료진의 안전 확보 등 여러 장점이 있다. 기존 선별 진료소보다 검사 과정이 1/3 정도로 줄어 시간도 그만큼 단축되는데, 이는 검진 능력을 세 배로 늘리는 효과가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FT>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조기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고 분석했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WSJ>도 한국의 검사 능률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대비된다면서 한국이 중요한 모델이 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드라이브 스루 이동 진료소 운영 노하우를 요청했고, 미국 전역에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를 만들었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 호주 등에서도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를 운영했다. 한국식 방식이 전 세계로 퍼진 셈이다.


심지어 한국에선 드라이브 스루 횟집도 등장했다. 지방의 한 횟집에서 차에 탄 채로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회를 포장해서 준 것이다. 비접촉, 비대면을 위해선 드라이브 스루가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인데, 언컨택트 사회가 될수록 더더욱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2020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해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이 치러져 현지의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를 통해 소개되었고, 이것이 다시 해외 토픽으로 전 세계에 전해졌다. 신랑, 신부가 의자에 앉고, 하객이 자동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며 축의금을 내고 서로 인사도 나눈다. 이때 신랑, 신부가 음식이 담긴 봉투를 차에 넣어준다. 악수나 포옹 등 일체의 신체 접촉은 없다. 이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은 기존 결혼식보다 비용도 절감된다.


심지어 일본에선 2017년 12월에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장이 만들어졌다. 차에 탄 채로 접수대에 가서 창문을 내리고 태블릿 PC의 방명록을 적은 뒤, 불 붙인 향처럼 생긴 전열식 향(전기창치로 되어 진짜 불은 붙이지 않음)을 건넨다. 그리고 접수대 뒤의 창문으로 빈소를 보며 조의를 표한다. 조문자의 차가 접수대에 도착하면 빈소 안에 램프로 신호를 해주는데, 이때 상주는 모니터 화면으로 조문자를 본다. ‘아니, 이게 무슨 장례식이야?’할지도 모르지만, 일반 장례식장에 가기 힘든 고령자나 신체 부자유자도 좀 더 편리하게 조문할 수 있다는 점과, 복장을 갖출 필요도 없이 편리하고 빠르게 조문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장례식장에 눈도장 찍으러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으면서도, 우리도 솔직히 진심 어린 애도 때문이라기보다는 눈도장 찍으러 장례식장에 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우리의 장례 문화 자체가 가까운 가족과 친척, 지인 등 진심 어린 애도를 하는 사람들만의 장례식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하는 건 한국, 일본, 중국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일본의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장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따르면, 고인이 80대 이상인 빈소 비율이 2008년 30.6%였는데 2017년에는 47%였다. 거의 절반이 80대 이상의 장례식인, 상주와 문상객의 나이 또한 점점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은 분명 합리적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장례식 문화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큰 시대를 만났다. 더 이상 과거 방식을 고수할 수도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없앨 순 없으니 변화를 받아들여서라도 장례식 자체를 유지하려 할 테니 말이다.



공동체에서의 언컨택트 : 더 심화된 그들만의 리그와 양극화!

새로운 차별이 된 언컨택트 디바이드와 사회적 숙제

언컨택트로 인한 소외와 차별을 일컫는 ‘언컨택트 디바이드(Uncontact Divid)’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 되었다. 햄버거를 하나 먹으러 가도 사람이 아닌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 앱으로 다 처리하고, 주차장에선 더 이상 사람에게 주차요금 계산하는 걸 보기 힘들어졌고, 심지어 현금 안 받고 카드만 받는 주차장도 많다. 키오스크 사용이 서툴거나, 스마트폰이 없거나 혹은 있어도 서툴거나, 카드나 디지털 계좌가 없는 사람들은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어렵고, 주차장도 이용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람에게 직접 주문하거나 계산하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다고 여겼던 사람들로선, 편리 뒤에 숨겨진 소외된 이들의 불편을 생각해보지 못한다.


언컨택트 기술과 서비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을 불편과 소외를 뜻하는 언컨택트 디바이드는 엄밀히 말하면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의 한 요소다. 왜냐하면 언컨택트로 전환된 서비스들은 모두 IT 기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약국에 마스크를 사러 가도 스마트폰 앱으로 어느 약국에 물량이 남아 있는지를 실시간 확인하며 가는 사람과 그냥 무작정 가보는 사람과는 기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스크뿐 아니라 장보기도 마찬가지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 편리한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도 수월한데, 직접 장을 보러 가서 물건 사는 것만 가능한 계층에선 상대적으로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디지털 디바이드의 실태>(2019.11)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79.1%, 70대 이상은 35.0%다. 즉, 실제 노인들은 스마트폰을 가졌어도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경우는 극히 낮다. 10~40대까진 누구나 기본적으로 하는 일상적인 것도 노인들에겐 높은 방벽인 것이다. 심지어 10살 미만의 어린이들보다 노인들의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노인이 사회적인 약자로서 경제적 기회나 활동에서 제약이 따르는데, 디지털 디바이드와 언컨택트 디바이드까지 겹치며 더더욱 소외받고 차별되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 앞에서 그들의 집단적 목소리와 유권자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사회적 약자가 되고 소외받고 차별받는 상황에 빠져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디바이스, 새로운 트렌드를 잘 받아들이고 적응할 노인들도 있긴 하겠지만 결코 다수가 아니다.


사실 디지털 디바이드는 단지 IT기기를 다루냐 못 다루냐가 아니라 IT가 경제, 산업, 사회, 문화를 장악한 지금 시대에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느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격차를 해소하는 법을 만들고 취약 계층을 지원했다. 인터넷 보급률, 스마트폰 사용률 등은 거의 100%에 가까울 만큼 높아졌지만 장애인, 고령자, 농어민, 저소득층 등 주요 취약 계층이 가진 디지털 디바이드는 여전하다.


언컨택트 디바이드만큼 언컨택트가 초래할 일자리 감소도 중요한 숙제다. 하이패스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요금 수납원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마트에 가서 장 보는 이들이 줄고 온라인 쇼핑이 증가할수록 마트 계산원들의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모든 서비스업에서 언컨택트가 확산되면 이렇게 일자리의 위기를 겪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흡할수록 공동체 안에서의 불필요한 갈등도 더 커진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는 변화가 누군가에겐 위기가 된다. 기회 쪽에 있는 사람과 위기 쪽에 있는 사람이 서로 대결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선 두 집단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심각한 위기를 낳았듯, 언컨택트 환경에 적응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도 위기가 되고, 이런 위기는 특정 동네에만 몰려 있는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우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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