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사용설명서

   
다이앤 코일(역: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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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5��



■ 책 소개

 

현대 경제를 읽기 위한 최소한의 교양
GDP에 대한 친절하고 간결한 안내서

 

우리는 GDP라는 말을 자주 접하고, 그것이 국내총생산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GDP 통계와 함께 보도되는 세계 경제, 국내 경제에 관한 뉴스를 이해하기는 어렵고, GDP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갈등과 논쟁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왜 그럴까? 이는 우리가 GDP의 표피적인 정의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의 중요한 속성과 특징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다이앤 코일은 GDP가 그 중요성에 비해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 아래 역사와 개념 설명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GDP를 설명해 나간다. 그녀의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GDP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나라의 번영과 몰락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고 더 나아가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반대로 개념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 GDP가 왜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하는지, 왜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대 경제사에 대한 교양과 경제 뉴스를 읽는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저자 다이앤 코일
저자 다이앤 코일은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옥스퍼드대학교의 스미스 기업·환경 대학원에서 방문 연구 교수로 있다가 현재는 맨체스터대학교 공공정책학과 교수로 있다. 1985년, 1986년에 영국 재무부 자문을 지냈으며 ‘계몽의 경제학’이라는 경제 자문 단체를 이끌며 신기술과 세계화와 대한 자문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족을 아는 경제학》과 《마음을 울리는 과학: 경제학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등이 있다.

 

■ 역자 김홍식
역자 김홍식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파리10대학 경제학 박사교과과정을 다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전자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주로 경제, 금융, 투자 중심의 사회과학 계통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상어와 헤엄치기》《전문가의 독재》《케인스 하이에크》 《새뮤얼슨의 경제학》《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장인》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1장 GDP의 탄생: 경제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의 의미
- 초창기의 국민회계
- 현대적인 국민계정의 탄생
- GDP의 기본 개념

 

2장 GDP의 전성기: 성장의 비교
- 전후의 부흥
- 우리는 얼마나 잘살고 있는가
- 나라 간 비교의 문제
- 국제 비교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나

 

3장 GDP의 위기: 네 가지 도전
- 스태그플레이션
- 냉전의 경제적 결과
- 환경주의의 발흥
- 인간 역량 개발

 

4장 GDP의 고민: 혁신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 혁신의 등장
- 신경제 붐
- 서비스 활동의 측정
- 혁신을 측정하기 어려운 이유

 

5장 GDP의 반성: 문제와 한계
- 오만, 미망, 응보
- 금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생산의 경계
- 비공식경제
- 후생 측정의 어려움

 

6장 GDP의 미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GDP가 넘어야 할 세 가지 산
- 복잡해지는 경제
- 모호해지는 생산성
- 지속가능성의 문제
- 21세기에는 어떤 국민 통계가 필요한가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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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사용설명서


GDP의 탄생: 경제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의 의미

GDP의 기본 개념

GDP 관련 정의들

기초부터 시작하자면, GDP는 세 가지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 각 방식은 서로 동등하다. 첫째는 경제 내 ‘산출액’을 모두 더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경제 내 ‘지출액’을 모두 더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경제 내 ‘소득’을 모두 더하는 방식이다.


본격적으로 GDP를 다루기에 앞서 경제의 총산출액을 정의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국민’총생산, 즉 GNP라는 점을 지적해 두자. GDP는 한 나라의 경계 내에서 창출된 경제 산출을 모두 합산한 것이다. GNP는 한 나라의 국민이 창출한 경제 산출을 모두 합산한 것인데, 여기에는 국외에서 발생한 것도 포함된다. 즉 이 두 개념의 주된 차이는 GNP에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외에서 창출하는 산출이나 소득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GDP 측정 방법은 지출액 접근법이다. 평론가들은 소비자가 얼마나 돈을 썼는지, 기업이 얼마나 투자를 줄였는지 이야기한다. 다음 방정식이 그러한 설명의 골자를 추린 것이다.


GDP = C + I + G + (X - M)


이 방정식에 담긴 생각은 간단하다. GDP는 나라 경제에서 지출된 돈을 모두 합한 것이다. 지출은 몇 가지 범주로 나뉜다. 케인스가 시작한 관행을 따라 각 범주의 머리글자를 설명하면, C는 소비(민간의 개인과 가계가 소비에 쓴 돈), I는 투자(기업이 생산 활동을 위해 공장과 설비 등을 갖추는 데 쓴 돈), G는 정부 지출(정부가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에 쓴 돈, 복지 및 연금 급여와 같은 이전 지급은 포함되지 않는다)이다. 그다음 X-M은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이다.


경제 내에서 생산된 산출을 전부 합산하는 방법(부가가치 접근법)은 훨씬 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실제 통계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갖가지 항목을 신중하게 계산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부가가치 접근법의 총계는 경제 내에서 생산된 모든 것, 즉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합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기업의 생산과정에는 다른 기업의 생산물이 투입된다. 따라서 중복 계산을 피하려면, ‘중간재’ 구매를 각 재화와 서비스의 최종 매출액에서 빼야 한다.


여기까지는 ‘명목 척도’, 즉 달러화·파운드화·원화 등 화폐단위의 금액으로 측정되는 지표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지표가 경제정책에 실제로 쓰이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분과 ‘실질’ 성장을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로지 물가만 높아져서 (명목) GDP만 높게 성장하는 것은 경제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   


문제는 물가 지수를 계산하는 방식도 십여 가지나 있고, 그 방식마다 지수 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측정하기 위해 물가 상승을 조정하는 작업은 분명 필요한 것이기는 해도, 어떤 계산 기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저히 다른 ‘실질적’ 결론이 나올 수 있다.

GDP의 위기: 네 가지 도전

전후 호황이 끝나자, 서구 자본주의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70년대에 이르자 당연시되던 종래의 경제 논리에 서로 다른 네 가지 도전이 들이닥쳤다.


첫 번째 도전은 탄탄한 경제성장과 안정된 물가가 이어지는 선순환이 사라지면서 대두했다. 성장이 둔화되거나 심지어 경기가 후퇴하는데 물가는 빠르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경기후퇴’, 혹은 ‘경기침체’는 GDP가 연속으로-통상 6개월 동안-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달갑지 않은 현상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꺼림칙한 이름이 붙었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 관리 도구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듯했다. 1973년에 이어 다시 1975년에, 석유수출국기구(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지배하는 석유 수출 카르텔)가 유가를 급격히 올리자 경기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도전은 치열해지는 냉전이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 정치가 매카시즘에 휘둘렸고 한국전쟁이 터진 데다, 두 냉전 진영의 대립이 미친 짓에 가까운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상호확증파괴로 치달았다. 공산주의경제가 망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공산권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에게는 분명해 보였다고 해도, 서방세계는 소련의 왜곡된 통계로 인해 그 후 10년 동안 계획경제의 참담한 결과를 알지 못했다.


세 번째 도전은 환경 운동의 출현이었다. 1972년 큰 영향을 미친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의 대가를 암울하게 묘사했다. 이 보고서는 매년 복리 이자처럼 늘어가는 GDP 성장이 조만간 자연 자원의 한계 때문에 멈출 것이라는 (추후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직관적 호소력이 강한 주장을 했고, 2070년에 이르면 거의 모든 광물과 에너지자원이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극도로 암담했던 이 당시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환경 목표와 경제 목표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1970년대 환경 운동의 유산이다.


마지막 네 번째 도전은 1970년대에 이르러 가난한 발전도상국 대부분이 10~2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성장의 원리가 잘 이해되고 있다고 자신했던 일부 발전경제학자의 확신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경제발전의 실패를 부채질하는 요인은 아주 많았다. 일례로 과거에 식민지였던 신생 독립국에서 냉전의 대리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정부의 만성 부패도 문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 외에도 발전의 의미를 좀 더 정교하게 이해하는 시각이 나타나면서 GDP와 그 구성 요소의 단순한 역학을 중시하던 태도를 밀어내게 되었다. 그 대신 기대수명, 아동사망률, 교육이나 전기·통신 등 기술에 대한 접근 기회 같은 것이 중요해졌다. 달리 말하면 산출 대신 후생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도 오늘날까지 GDP가 도전받는 이유 중 하나다.



GDP의 고민: 혁신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요동치는 1970년대에는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양분되어 케인스주의자와 통화주의자로 갈렸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통화주의 방향으로 합의점이 만들어졌다.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하기는 하지만 증거를 중시한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경제학자들에게는 경제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검증할 만한 증거가 별로 없었다. GDP 자료가 갖추어진 나라의 수는 더디게 늘어났고, 1985년에 이르도록 60개국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나라는 자료의 질도 좋지 못했다.


혁신의 등장

그럼에도 GDP 통계를 갖춘 나라는 계속 늘어났다. 솔로의 모델은 중요한 변수인 기술에 아무런 설명 없이 커다란 역할을 부여했지만, GDP 통계가 이전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면서 새로 개발된 성장론들은 더 정밀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개발된 새로운 성장 모델들은 기술을 신비로운 ‘블랙박스’로 취급하지 않고, 기술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론’들에서는 성장이 빨라지면 투자와 혁신이 더 많이 일어나서 기술 진보가 선순환을 타고 GDP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후 시기의 자료를 분석한 이러한 경험적 연구뿐 아니라, 서기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러 나라의 GDP 자료를 활용한 역사적 연구도 나왔다. 앵거스 매디슨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의 경제사가였다. 그가 수행한 국제 비교 프로젝트는 광범위한 역사 자료로부터 과거의 GDP를 현대식 정의에 맞춰 재구축하는데 필요한 어마어마한 통계 원자료를 발굴했다. 2010년에 사망한 매디슨은 경제학계 밖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는 거시경제학과 성장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의 필수 자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한편 혁신과 신기술이 나타나고 보급되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신기술이 실험실이나 작업장의 기발한 착상에서 시작해 상업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제품으로 구현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경제사가 폴 데이비드에 따르면 그러기까지 보통 5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장기 경제통계 없이 이러한 혁신의 역학을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한 통계자료가 매디슨 덕분에 마련되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요즘 경제학자들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매디슨의 통계를 너무 태평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000년에 달하는 GDP 자료를 구축하려면 수많은 가정과 영리한 추측을 동원해야 한다. 앞서 보았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사용된 국민소득 개념들은 지금과 달랐다. 그래서 매디슨은 그가 발견한 모든 자료를 현대 개념에 맞게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시기와 나라별로 매디슨과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역사가들도 있다. 많은 나라와 긴 기간의 성장 패턴을 들여다보려면 매디슨이 구축한 자료만큼 편리한 것은 없다. 그에 견줄만한 자료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매디슨의 자료를 확정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 컴퓨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근본 혁신 중 하나였다. 이 기술은 전시에 영국 블레츨리파크에서 수행된 암호 해독과 앨런 튜링의 눈부신 개념 도약 그리고 전시와 종전 후 미국에서 수행된 존 폰 노이만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핵무기 개발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컴퓨터는 군사 및 학술 용도의 기계로 출발했다가 대기업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1980년대에 충분히 작아지고 저렴해지면서 모든 사무실로 확산되었고, 점차 각 가정에까지 보급되었다.


서비스 활동의 측정

신기술이 쏟아지면서 GDP가 혁신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의혹이 일었지만, 그 전에도 측정이 까다로운 경제 부문이 여럿 있었다. 서비스 부문에 속하는 영역이 그렇다. GDP라는 것 자체가 물자 부족이 심하던 시절에 경제 내 물질적 자원의 공급량과 사용량을 측정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경제 내 서비스 부문의 경우는 물질적 생산물보다 1차 통계 원자료 자체가 늘 부족하다.


서비스는 국민계정 통계 담당자들에게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명목 GDP는 최종 사용자가 돈을 지불하고 시장가격으로 구매하는 금액을 측정한다. 민간 부문의 서비스는 이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 부문의 서비스는 그렇지 못하다. 만일 공공 부문 서비스가 민간 부문과 직접 경쟁하는 관계라면 민간 부문에서 통용되는 가격으로 공공 부문 서비스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 그러나 비교할 만한 민간 부문의 활동이 없거나, 있더라도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부문 피고용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기준으로 해당 서비스의 가치를 측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 방법으로 GDP 집계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공공 부문 피고용자 1인당 산출액, 즉 생산성의 향상 여부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공공 서비스의 생산성에 대한 우려는 생산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근본 의문을 제기한다. 생산성이란 말 그대로 생산물과 관련된 개념이다. 생산성은 투입물 한 단위당 생산되는 산출물의 숫자를 측정한다. 서비스업에서 주된 투입물은 피고용자가 자기 업무에 투여한 시간이다. 그런데 예컨대 교사의 산출물은 무엇인가? 학교에서 배출한 어린이들의 숫자인가? 그 학생들이 졸업할 때 취득한 평균 성적인가? 학생들이 졸업 후 평균적으로 갖게 되는 자질이나 능력이나 평생 소득인가?


당연히 이런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 힘들다. 생산성 개념은 서비스의 성격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OECD 회원국에서 서비스는 GDP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GDP의 미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GDP가 넘어야 할 세 가지 산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GDP는 ‘경제’와 이를 측정하는 방법에서 이전 개념들을 대체하는 최고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의 경제 위기와 더불어 새로 부상한 환경 운동은 처음으로 새로운 종류의 지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새로운 지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금융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금융 서비스가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측정하는 지금의 표준 방법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뿐 아니라, ‘행복’과 후생 지수 그리고 계기판 방식과 같은 여러 가지 대안적 접근이 새삼 활발해졌다.


이 마지막 장에서 나는 GDP를 허겁지겁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GDP는 과거에나 적합했던 경제지표인 것은 맞다. 미국 댈러스 지역 연준이 언급한 대로 “GDP는 대량생산에 맞게 고안된 통계다. 즉 생산된 단위의 숫자를 헤아리는 아주 단순한 셈법이다. 따라서 무형적인 혜택을 측정하는 데는 부족하다. … 그렇다고 수량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말한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조만간 이전과는 다른 측정 방식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이유 세 가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 오늘날 경제의 복잡성: 혁신과 신제품 및 서비스의 도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거니와, 세계화와 더불어 제품의 제조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복잡한 생산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지금의 경제는 복잡성을 더해 가고 있다.

- 물리적인 상품 대신에 서비스와 ‘무형 상품’이 선진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현상: 일례로 가격이 부과되지 않는 온라인 활동은 질과 양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양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 없다.

- 시급해지는 지속가능성의 문제: 자원과 자산의 고갈은 미래에 GDP가 성장할 여지마저 붕괴시키는 만큼, 지속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복잡해지는 경제

앞에서 모든 선진국 경제의 GDP를 구성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다양성이 증가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다양성이 어째서 GDP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가령 식탁에 놓는 수저류가 GDP의 구성 요소라고 보면, 내가 나이프와 포크와 숟갈을 하나씩 만들든, 숟갈만 세 개를 만들든 (전부 단위 가격이 같다고 치면) 내가 GDP에 기여하는 크기는 똑같다. GDP는 생산된 품목의 개수만 헤아릴 뿐이다.


GDP는 경제 내 상품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탓에 성장을 과소평가한다. 혁신과 맞춤 생산의 효과를 측정하기에는 부족한 척도인 데다, 그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정도도 굉장히 크다.


이제는 대다수 제품이 세계 공급망을 통해 ‘제조’되는데, 그로 인해 경제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또 다른 통계의 난점이 발생한다. 수많은 나라에서 제조되는 갖가지 부품이 세계를 가로질러 옮겨져 한 곳에서 조립된 다음, 각각의 목적지 시장을 향해 다시 수송된다.


그런데 이 같은 외주 조달로 인한 대폭적인 가격 하락을 기존의 가격지수로는 포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동안 수입 가격은 크게 과장되고, 수입 물량은 과소평가되었다. 게다가 무역 통계는 중간재 투입을 걸러내지 못한다. 가령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아이폰 수입 총액은 미국의 경상수지 규모에 버금갈 정도로 크다. 이에 대한 통계 연구 하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무역을 기록하는 전통 방식은 실제 가치 사슬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반영하지 못하기에 쌍방 무역 관계를 왜곡한다.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불균형은 대단히 부풀려진 것이다.” 부가가치 기준의 무역 통계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데, 이 자료를 분석해보면 세계경제의 전체 모양새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바뀔 공산이 크다.


모호해지는 생산성

어째서 생산성은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와 같은 것일까?


그 이유는 GDP가 경제를 측정하는 척도로서 가진 두 번째 문제, 즉 경제에서 물리적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제 산출을 측정할 때 공장에서 출하되는 자동차나 냉장고, 못이나 즉석식품 등의 숫자를 세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간호사, 회계사, 정원설계사, 음악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의료 보조인 등의 산출은 어떻게 측정 할 것인가?


‘산출량’은 서비스가 아니라 제품, 특히 대량생산되는 유사한 제품들로 구성된 경제에 가장 적합한 개념이듯이, ‘생산성’ 개념도 그렇다. 생산성은 일반적으로 효율이나 효과를 뜻하는 말이다. 경제학자들은 생산성을 투입물 한 단위당 생산되는 산출물의 양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투입물은 노동, 자본, 토지, 원료다. 경제학자들은 보통 노동생산성을 언급하는데, 왜냐하면 노동자 수는 측정하기 쉬운 반면 자본은 측정하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을 기준으로 말하면, 생산성의 정의는 노동자 1인당 산출액 혹은 피고용자 1인당(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작업자 1인의 1시간을 노동의 단위로 계산하는 ‘인시person-hour’당) GDP다.


이러한 정의는 세탁기나 아침 식사용 시리얼의 생산성을 따질 때는 적합하지만, 그런 물리적 상품은 미국이나 EU 회원국 같은 나라들의 GDP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사무직 노동자라면 누구나 그들 업무의 생산성 측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매출액으로는 조직의 생산성을 알기 힘들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 동안에 실현된 조직의 매출액을 같은 기간 동안 피고용자들의 보수 상승분만큼 공제해서 실질 기준의 매출액을 산출하고, 이것을 다시 피고용자 수로 나눈 1인당 실질 매출액이 GDP 방식으로 계산한 그들 업무의 생산성이다. 하지만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 수행하는 업무의 질이 그들이 생산하는 ‘산출물’의 본질적 요소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GDP 통계가 경제의 실상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미국 경제분석국이 GDP 방식대로 추정해 보니 미국인이 소비하는 인터넷 접속량이 실물 기준으로 2011년 2분기 이래 계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얼토당토않은 결과다.


21세기에는 어떤 국민 통계가 필요한가

미국 상무부는 GDP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불렀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GDP를 대체할만한 수단이 없다. 하지만 통계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은 개념의 정의와 세부 사항을 계속해서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21세기 ‘경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수십 년에 걸쳐 경제가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경제의 구조와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어떤 정의도 영원히 유효할 수는 없으며, 환경이나 가사 노동 같은 ‘위성’ 계정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경제는 오히려 다시 정의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그래야만 하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경제의 정의를 바꾼다면 GDP를 대폭 개혁하거나, 새로운 경제의 정의에 적합한 다른 척도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다른 척도가 단일 척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러 개의 척도, 즉 계기판이 될 공산이 크다.


한편 GDP를 사회적 후생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가 변화하는 양상으로 인해 GDP와 후생 사이의 괴리가 예전보다 더욱 커졌다. 갈수록 제품이 다양해지고 맞춤형 생산이 늘어나고 있으며, 수많은 직업에서 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GDP 성장률이 후생의 증가를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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